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The Seven Wonders of The World)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여러 가지 불가사의 한 일들을 접하게 되는데, 지구 상에서 불가사의한 것으로 여겨지는 7가지 사물(事物)을 정리해 본다.

 세계 7대 불가사의는 BC 330년경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이후 그리스인 여행자들에게 관광 대상이 된 7가지 건축물을 가리키는데, 일반적으로 알려진 세계 7대 불가사의 소개해 보자.

 

1. 이집트 기자에 있는 쿠푸왕의 피라미드(Pyramid)

 고대 이집트의 국왕·왕비·왕족 무덤의 한 형식. 어원은 그리스어인 피라미스(pyramis)이며, 이집트인은 메르라 불렀다. 현재 80기(基)가 알려져 있으나, 대부분은 카이로 서쪽 아부 라와슈에서 일라훈에 이르는 남북 약 90km인 나일강 서안 사막 연변에 점재해 있다. 그러나 와력(瓦礫)의 산으로 변한 것과 흔적만 남아 있는 것도 있어, 옛날의 모습을 남기고 있는 것은 의외로 적다.

 피라미드에 대해 현재 남아 있는 최고(最古)의 기록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BC 5세기)의 <역사>권 2에 있다. 그는 기자의 대(大)피라미드에 관하여 10만 명이 3개월 교대로 20년에 걸쳐 건조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쿠푸는 카이로 남서쪽 15km에 위치한 기자에 최대의 피라미드를 건설하였다. 이것은 대피라미드 또는 제1피라미드라 일컬어지며, 높이 146.5m(현재 137m), 저변 230m, 사면각도는 51°52'이다. 각 능선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오차는 최대의 것이라도 5°30'에 지나지 않은 만큼 극히 정교한 것으로, 피트리에 의하면 평균 2.5t의 돌을 230만개나 쌓아올렸다. 진정 세계 최대의 석조건물로서 그 장대한 규모와 간결한 미는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다. 내부구조는 복잡해서 독일의 보르하르트에 의하면 계획이 2번 변경되었다고 한다.

 북측의 지면에서 약간 위에 있는 입구로 들어가 그대로 하강하면 암반 밑에 설치된 방에 도달한다. 이곳이 제 1차 계획의 매장실이고, 그 위에 있는 통칭 ‘왕비의 방’이 제2차 계획의 매장실이다. 그리고 제 3차 계획에 의해 피라미드는 완성되었다. 제1피라미드 남서쪽에 카프라왕의 제2피라미드가 있다. 높이 136m, 밑변 216m, 동쪽에 있는 장제신전에 450m의 참배로가 뻗어 하곡신전에 이른다. 유명한 스핑크스는 하곡신전에 가까운 참배로 북쪽에 엎드려 있다. 기자에는 그 밖에 멘카우레왕의 제 3피라미드와 왕족들의 소(小)피라미드 6기가 있다.

[건조법]

 피라미드를 건조함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무거운 석재를 필요한 높이까지 운반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피라미드 측면에 직각으로 경사로를 만들고 석재는 썰매로 운반하였다. 일정한 높이마다 핵재(核材)·내장재·전재(塡材)·외장재의 순으로 쌓아놓고, 피라미드가 높아짐에 따라 경사로도 높아졌다. 이 경우 경사로의 기울기는 일정해야 하므로 길이는 점차 길어진다. 정상까지 다 쌓고나면 위에서부터 외장을 완공시켜가면서 서서히 경사로를 낮게 하여 완성시키는 방법을 취하였다. 외장은 정성들여 시공되고, 석재는 종이 한 장 끼워지지 않은 정도로 정밀하게 쌓아졌다. 완성에 걸린 연대에 대하여 헤로도투스는 기자의 대피라미드를 20년이라 적었으나, 실제로는 더 짧은 기간으로 생각된다. 

 

 

 

2.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1994년 가을에 프랑스 해저 고고학 발굴팀이 깊이 7m 정도의 바다 속에서 등대의 잔해 수백점을 건지는데 성공을 하였다. 이로써 오랫동안 수수께끼에 싸여 있던 파로스 등대의 신비가 조금이나마 벗겨졌다. 발굴팀은 화강암으로 된 높이 4.55m, 무게 12톤의 여신상을 기중기로 끌어 올리는데 성공하였다. 발굴팀은 아직도 바다 속에 스핑크스와 오벨리스크등이 잠겨져 있어 그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고 밝혔다. 여기에서 발굴된 잔해 또는 조형물마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 문자가 새겨져 있어서 사람들은 파로스 등대의 비밀이 밝혀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는 파로스 섬과 헵타스타디온이라고 불리던 1㎞정도의 제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곳의 동쪽 끝에 세계의 모든 등대의 원조격인 파로스 등대가 서 있었다.

 대부분이 대리석 돌로된 등대의 높이가 135m로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명령으로 소스트라투스가 만들었다. 등대는 3개의 층계로 만들어졌다. 맨 아래층이 4각형, 가운데층이 8각형, 꼭대기 층은 원통형이었다. 각 층은 모두 약간 안쪽으로 기울게 지어졌다.(기울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음)

 등대 안쪽에는 나선형의 길이 있어서 등대 꼭대기의 옥탑까지 이어져 있었다. 옥탑 위에는 거대한 동상(여신상)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아마도 알렉산드 대왕이나 태양신 헬리오스의 모양을 본떴을 것으로 여기지고 있다.

 등대 꼭대기의 전망대에서는 수십km나 떨어진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고 또 먼 본토까지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7세기이후 이집트를 정복했던 아랍인들에 따르면 램프 뒤쪽의 반사경으로 비치는 타오르는 불길은 43㎞정도 떨어진 바다에서도 볼 수 있었고, 맑은 날에는 콘스탄티노플까지도 반사경이 비쳤으며 또 햇빛을 반사시키면 160㎞ 정도 떨어져 있는 배도 태울 수 있었다고 한다.

 B.C280년경에 만들어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어떻게 등대에 불을 지폈을까? 아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파로스 등대는 상당히 오랜 기간 존속하면서 등대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단단한 돌로된 등대가 무너진 것은 12세기경으로 짐작하고 있다. 아마도 1100년과 1307년의 두차례의 큰 지진으로 그 모습을 감추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잊혀져 있다가 20세기 초반 독일의 고고학자들이 등대의 흔적을 발견함으로써 그 모습을 처음으로 알게되었다.

 

 

 

3. 메소포타미아 바빌론의 세미라미스 공중 정원(空中庭園)

    - Hanging Gardens of Babylon

 BC 500년경 신(新)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왕비 아미티스를 위하여 수도인 바빌론에 건설한 정원이다. 실제로 공중에 떠있는 것이 아니라 높이 솟아있다는 뜻이다. 지구라트에 연속된 계단식 테라스로 된 노대(露臺)에, 성토하여 풀과 꽃, 수목을 심어놓아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삼림으로 뒤덮인 작은 산과 같았다고 한다. 유프라테스 강물을 펌프로 끌어올려 물을 댔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사막기후로 인공적으로 정원을 조성해야만 한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왕비의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서 공중 정원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바빌론의 왕이 되자 메디아 왕국의 키약사레스 왕의 딸 아미티스를 왕비로 맞았다. 산이 많아 과일과 꽃이 풍성한 메디아에서 자란 왕비는 평탄하고 비가 잘 오지 않는 바빌론에 마음을 두지 못한 채 항상 아름다운 고향의 푸른 언덕을 그리워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 안타깝게 여긴 왕은 왕비를 위하여 메디아에 있는 어떤 정원보다도 아름다운 정원을 바빌론에 만들기로 결심했다.

 왕의 명령을 받은 재주가 뛰어난 건축가, 기술자, 미장이들은 곧장 작업에 들어가 왕궁의 광장 중앙에 가로·세로 각각 400m, 높이 15m의 토대를 세우고 그 위에 계단식 건물을 세웠다. 맨 위층의 평면 면적은 60㎡에 불과했지만 총 높이가 105m로 오늘날의 30층 빌딩 정도의 높이었다.

 한 층이 만들어지면 그 위에 수천톤의 기름진 흙을 옮겨 놓고 넓은 발코니에 잘 다듬은 화단을 꾸며 꽃이랑 덩굴초랑 과일 나무를 많이 심도록 한 이 파라미드형의 정원은 마치 아름다운 녹색의 깔개를 걸어놓은 듯이 보였다.

 그런데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이 곳에서 이렇게 큰 정원에 물을 대는 것은 여간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은 정원의 맨 위에 커다란 물탱크를 만들어 유프라테스 강의 물을 펌프로 길어 올리고 그 물을 펌프로 각 층에 대어줌으로써 화단에 적당한 습기를 유지토록 하였으며 또한 그때그때 물뿌리개를 이용하여 물을 공급하도록 하였다.

 정원의 아랫부분에는 항상 서늘함을 유지하는 방을 많이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창 너머로 바라보는 꽃과 나무의 모습은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또한 방에 물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방 위에는 갈대나 역청을 펴고 그 위에 납으로 만든 두꺼운 판을 놓았다.

 바빌론은 현재 부서진 잔해 위에 약간 복원을 했을뿐 공중 정원에 대한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지만 바빌로니아 왕국의 수도 바빌론의 페허는 오늘날까지도 그 모습이 남아있다.

 

 

 

4. 에페수스(Ephesus)의 Artemis 신전 [로마 신화의 달과 사냥의 신인 Diana]

 에페수스시는 소아시아에 있는 고대 이오니아 지방의 열두개 도시 중 하나로서 B.C 6세기 경에 이미 서아시에서 상업의 요충지로 번영하여 가중 부유한 도시로 알려졌다. 이 곳을 더욱 유명하게 한 것은 바로 아르테미스 신전이다.

 이 신전은 당시 최고 부자였던 리디아 왕 크로이소스(B.C 560∼B.C 546)때 세우기 시작하였다. 높이 20m 정도의 훌륭한 이오니아풍의 백색 대리석 기둥을 127개나  사용한 이 신전은 완성되기까지 120년이 걸렸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에페수스를 방문하여 이 신전을 돌아보고는, 기자에 있는 피리미드에도 떨어지지 않는 걸작으로 묘사하면서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헤로도토스가 에페수스를 방문한 지 1세기 정도 지난 뒤 그 훌륭하고 아름다운 신전은 어리석은 한 인간에 의해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B.C 356. 10월 "어차피 나쁜 일을 하려면 후세에까지 알려질 수 있는 악행을 저질러야 한다"고 생각한 헤로스트라투스라는 자가 신전을 계획적으로 불태워 버린 것이다.

 그 후 디노크라테스가 불타 버린 신전을 재건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때 에페수스의 여인들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석등을 팔았고, 왕들은 크로이소스 왕을 본받아 기둥을 기증하기도 했다. 더욱이 아시아 원정 길에 올랐던 알렉산더 대왕은 한층 완성중에 있던 아르테미스 신전의 장대함과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았겨 "만일 에페수스인이 이 신전을 나의 이름으로 세워준다면 모든 비용을 내가 내겠다"고 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페수스인들은 다른 나라의 신을 모시는 신전을 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야심이 강한 에페수스인들은 자신들의 신전을 지금까지 어떤 신전보다도 뒤지지 않는 훌륭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여, 그 당시 가장 훌륭했던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신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파르테논은 길이가 69m. 폭이 30m, 높이 10m정도로서, 대리석 기둥을 58개나 사용한 신전이었다. 에페수스인들은 아르테미스 신전을 파르테논 신전의 두 배 정도의  규모로 만들기 시작했다. 높이 18m짜리 기둥을 127개나 사용했고, 길이는 120m, 폭은 60m로 했다. 또한 신전의 건축용 자재는 가장 순도 높은 백색 대리석만을 사용했으며 중앙의 넓은 홀에는 네 방향으로 대리석 계단을 딛고 올라갈 수 있게 하였다. 그 규모나 화려함은 당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 제우스와 레토의 딸, 아폴론과는 쌍둥이 남매간이다. 처녀 사냥꾼으로 산과 들에서 사슴을 쫓는 활의 명수라고 하며, 그의 화살은 산욕(産褥)을 치르는 여자를 고통없이 그 자리에서 죽게 하는 힘을 지녔다고 한다. 또한 처녀의 수호신으로서, 순결 정절의 상징이었는데, 처녀의 순결에 상처를 입힘으로써 죽음의 벌을 받은 자 가운데는 오리온이나 아크타이온이 있다.

 소(小)아시아의 에페수스에서 신앙되던 아르테미스의 상(像)은 풍부함을 표시하는 듯 살이 쪄 있고 가슴에 무수한 유방을 갖고 있었다. 주변에는 기묘한 모습의 동물들이 얽혀져 있다. 고장에 따라 특징 있는 숭배를 받았는데, 옛날에는 인신공희(人身供犧)를 하는 고장도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로마 신화에서는 디아나와 동일시되었다.

 아폴론이 태양의 신인 데 반하여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으로 생각되었는데, 이는 월신(月神) 셀레네, 헤카테와 동일화되었기 때문이며, 아르테미스라는 이름도 그리스계(系)가 아니고 옛 선주민족(先住民族)의 신의 이름이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원래는 대지, 특히 야수들이 사는 들판을 주관하는 모신(母神)으로서 동식물의 다산(多産)과 번성(繁盛)을 주관하는 것으로 믿어, 출산과 어린이의 발육을 수호하는 신이 되기도 하였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260 ∼268년 유럽에서 아시아로 침입해 온 고트인에 의해 약탈되었으며 이 때의 방화로 철저히 파괴되고 말았다.

 1863년 영국의 고고학자 J.T 와트가 대영박물관의 원조와 11년동안의 노력으로 마침내 지하 7m  지점에서 대신전을 발굴해 냈다. 발굴한 건축용 석재, 기둥, 조각을 토대로 예술가들의 도움으로 꽤 정확하게 신전의 본래 모습을 복원할 수 있었다.

 로마의 남쪽 25km에 위치한 아리키아 부근 네미 호숫가에 있는 디아나 네모렌시스는 가장 유명한 신역(神域)으로서, 이곳에서는 디아나가 여성의 수호신으로 신앙되고 있다. 로마의 유명한 디아나 신전은 아벤티누스 언덕에 있다.

 

 

 

5. 제우스 신상

 제우스 상이 있는 올림피아는  그리스 남부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쪽 앨리스 지방에 있는 제우스의 신역으로서 완만한 구릉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이 곳은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경기로 예부터 잘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최고의 신 제우스를 믿었다.  제우스는 고대 로마의 최고의 신 '주피터'와 같이 고대 그리스 신 가운데 최고의 신으로 천둥, 번개와 비바람을 만드는 신이며, 그의 주 무기는 벼락이었다. 제우스는 우주를 지배하는 신이며, 인간 세계를 다스리는 신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도시마다 제우스 신을 모신 신전을 짓고 성대한 제사를 지냈다.

 고대 그리스에는 아테네, 스파르타, 앨리스 등의 도시 국가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처음에는 땅의 신 크로노스와 여신 헤라를 숭배했지만 뒤에 제우스 신을 숭배하게 되어서 B.C457년에 제우스 신전을 만들었고 그 안에 '피디아스'가 만든 제우스 상을 안치하였다.

 제우스 신상과 파르테논 신전의 아테네 여신상은 피디아스의 2대 걸작품으로 꼽힌다. 피디아스는 8년여의 작업 끝에 제우스 상을 완성했는데, 그는 제우스의 신성함 위엄과 함께 너그러움을 거의 완벽하게 표현해냈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걸작 중의 걸작 제우스 상은 오늘날 안타깝게도 남아 있지 않다.

 대지 위에 우뚝 세워진 신전에는 양옆에 열세 개씩, 양끝에 여섯 개씩 장엄하고 무거운 도리아식 기둥이 세워져 있으며, 완만하게 기울어진 지붕이 덮여 있다. 이 신전의 한가운데 있는 제우스 상은 높이가 90㎝, 폭이 6.6m인 받침대 위에 세워져 있는데, 높이가 12m 정도 되는 상은 거의 천장을 닿고 있다.

 제우스 상은 나무로 만들어져 그 위에 보석과 흑단, 상아를 박아 장식한 금으로 만든 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금으로 된 발 디딤대에 올려져 있는 양다리는 거의 예배자의 눈높이와 일치하였다. 오른손에는 금과 상아로 만든 승리의 여신(Nike)상을 떠받치고 있으며 왼손에는 황금을 박아 장식한 지팡이(왕홀)를 쥐고 있다. 지팡이 위에는 매가 앉아 있다. 상아로 만들어진 어깨에는 꽃과 동물이 새겨진 황금의 아름다운 망토가 걸쳐져 있다.

 제우스 신전의 발굴 움직임이 18세기 경부터 일어났고 처음으로 발굴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였다. 1829년 프랑스인이 제우스 신전이 있던 자리를 발굴하기 시작하여 메도프, 기둥, 지붕 등의 파편을 발견하였다. 1875년경에 독일 정부의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의해 올림피아의 전체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고, 제우스상이 있던 신전도 거의 드러나게 되었다. 1950년대 제우스 신전 터에서 피디아스의 작업장 유적이 발견됨으로써 제우스 상이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히 밝혀졌다.

 

 

 

6. 할리카르나소스(Halicarnassus)의 마우솔로스 영묘(靈廟)

    - Mausoleum

 페르시아 제국 카리아의 총독 마우솔로스를 위하여 그리스의 할리카르나소스에 건조된 장려한 무덤기념물이다.

 면적 29×35.6m, 높이 50m. 할리카르나소스의 묘묘(墓廟)라고도 한다. 마우솔로스의 생전에 착공되었으나, 그가 죽은 뒤 왕비 아르테미시아가 계속 진행하였으나 완성된 시기는 왕비 아르테미시아가 죽은(BC 350) 뒤로 추측된다.

 설계는 사티로스와 피테오스가 하였다. 동서남북의 장식조각은 각각 스코파스, 레오카레스, 티모테오스, 브리아크시스가 담당하였다.

 각 면의 조각·프리즈는 발굴되어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또, 로마인은 비슷한 대규모의 분묘건축(墳墓建築)도 마우솔레움이라고 일컬었다. 마우솔레움은 그 특이한 모양과 복잡한 장식 때문에 세계의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혔다.

 

 

 

 7. 로도스 항구의 거상 콜로서스(Colossus)

 거상(巨像). 그리스어 콜로소스에서 유래한다. 그리스의 헤로도토스가 이집트 기자의 스핑크스 등을 보고나서 칭한 말이 그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시대에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로도스섬의 콜로서스이다.

 B.C 407년경 로도스섬은 도시국가연합(Rhodo-Egyptian)의 수도로 건설되어 상업적으로 번성하고, 그들의 주요한 동맹국(Ialysos, Kamiros, 그리고 Lindos)과 함께 지중해 유수의 무역중심지로 발전하였다.

 B.C 305년 마케도니아의 데메트리오스 1세는 동맹을 깰 방법으로 도시를 관통할 수 없게 로도스를 포위하였다.

 

 그러나 도시국가연합은 마케도니아를 무찔렀고, 그들의 단일성을 축하하기 위하여 장비를 팔고, 모은 돈으로 높이 36m의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청동상(철로 보강하고 돌로 무게를 더함)을 세워 로도스의 거상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되어 있었다는 많은 사람들의 믿음은 중세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거상의 건설은 린두스(로도스 섬 동쪽에 있던 고대 도시의 이름) 시(市)의 카리오스에 의해 12년에 걸려 B.C 282년에 끝마쳤다. 이 거상은 B.C 225년경 지진에 의해 파괴되었고, 거의 천년간동안 상이 파괴된 채로 놓여있었다.

 A.D 654년 아랍인이 로도스를 침범하여 부서진 대거상의 나머지를 분해하고, 그들은 시리아의 한 유태인에게 팔았다. 거상 조각 900개가 시리아로 낙타의 등위에 운송되었다고 전해진다.

 그 밖에 현존하는 것도 많으나 모두 기념비적인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그리스의 로도스섬은 고대의 격전지로, 수많은 정복자들이 탐을 낸 지역이었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이 섬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청동거상으로 유명하다. 태양신 '헬리오스'의 청동상은 기원전 306~305년 로도스에서 벌어졌던 시리아와의 치열한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기원전 303~291년 조각가 샤레 드 렌도스에 의해 로도스섬 항구에 건설되었다.

 

30여m 높이의 청동거상은 바다를 응시하며 두 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데 한쪽 발은 단단한 땅위를, 다른 쪽 발은 방파제 위를 딛고 있었다. 그 사이를 거대한 함선이 지나다녔다고 한다. 이 모습은 카푸의 변호사이자 순례자인 니콜로 디 마르토니가 1394~1395년에 그린 거상의 모습에서 기인했다. 이 그림을 따라 수많은 화가들이 거상의 가랑이 사이로 함선이 지나가는 장면을 그림으로써 로도스섬의 거상은 더욱 신비로운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거상의 두 다리 사이로 배가 지나갈 수 있기 위해서는 거상의 높이가 최소한 120미터는 되어야 하기 때문에 거상의 두 다리 사이로 배가 지나다닌다는 것은 상상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상상하게 할 만큼 컸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거상이 세워진 지 2세기 후에 현장을 방문한 플리니우스는 자신이 목격한 파괴된 거상의 모습을 《박물지(Natural history)》에 생생하게 적었다. '규모가 얼마나 큰지 거상의 엄지손가락을 두 팔로 감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물론 다른 손가락도 어떤 거상의 것보다 컸다. 부서진 몸통은 거대한 동굴이 입을 벌린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예술가들이 거상을 세울 때 채운 커다란 돌들을 볼 수 있었다. 거상을 다시 복원하는 데 12년이 걸리고 300달란트가 든다고 한다. 세계에는 수많은 거상들이 있지만 로도스의 거상만큼 큰 명성을 갖고 있는 것은 없다.'

 

 플리니우스의 말처럼 대형 청동상이 로도스섬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로도스의 거상이 건설될 즈음 지중해 동부에는 거의 2만 개의 청동상들이 있었다. 아테네· 올림피아· 델피에는 각각 약 3000개의 청동상이 있다고 플리니우스는 적었다. 이들 청동상들은 비록 로도스 거상만큼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상당수가 매우 큰 규모였다.

 

 로도스의 거상은 고대부터 수많은 목격자들에 의해 청동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지지만 청동판을 붙여서 만든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당시에는 청동이 매우 비싼 재료였기 때문에 거상을 청동으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조각가 샤레가 이 거상을 만들 때 청동이 아닌 재료나 청동판을 붙여서 거상을 만들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샤레의 자존심이 달린 문제라는 것이다. 더구나 1년에 단지 2~2.5m밖에 거상을 제작할 수 없었다는 기록과 거상을 만들기 위해 당시 전 세계의 청동을 수집했음에도 청동을 구하기가 매우 힘들었다는 기록은 청동거상이 청동판을 붙여 만들지 않았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학자들은 청동상의 일부분이든 전체이든 청동판을 붙여 만들었다고 추측한다. 로도스섬의 청동상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이 거상이 어디에 설치되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을 만큼 이 거상에 대해 제대로 알려진 것은 없다. 그 이유는 건설된 지 66년 만에 거상 무릎 부분이 파괴되면서 전복됐기 때문이다.

 

 로도스인들은 곧바로 청동상을 재건하기 위해 델포이신전에 '청동상을 재건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나 델포이신전의 신탁은 청동상 복원에 부정적이었다. 신탁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었지만 로도스인들은 신탁을 존중했다. 그들은 거상이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들어가는 역작임에도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복원하지 않은 채 부서진 그대로 방치했다. 어떤 이유로 거상을 복원하지 말라고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지만 거상에 너무 많은 예산을 투입한 것에 불만을 가진 로도스인들이 델포이신전에 뇌물을 주어 신상을 재건하지 말라는 신탁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는 추측이 가능한데 강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거상의 형태가 어떠했는지를 알려주는 기록도 전혀 없다. 그러나 헬리오스가 어떤 신인가를 알면 그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다. 헬리오스는 태양신으로 천상에서 세상의 일을 모두 내려다보고 이야기를 듣는 신이다. 헬리오스는 네 마리 말이 끄는 태양의 수레를 타고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인도를 받아 동쪽에서 서쪽으로 달린다고 알려져 있다. 제우스가 지상의 나라들을 신들에게 나누어줄 때 헬리오스는 태양의 수레를 몰고 있던 탓에 자기 몫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제우스는 로도스섬을 그에게 주었다. 로도스섬은 헬리오스에 대한 숭배가 성행한 유일한 섬이다. 이러한 신화를 근거로 학자들은 거상이 태양광선을 의미하는 방사상의 관을 머리에 쓰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해바라기와 같이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형태로 조각되었다는 전설과도 거의 일치하고 로도스섬에서 발굴된 수많은 동전에 등장한 헬리오스의 모습과도 일치한다.

 

 한편 고대에는 청동의 가격이 금에 버금갈 정도로 매우 비쌌기 때문에 거상의 흔적이 없어졌을 가능성도 크다. 아랍인들이 로도스섬을 점령한 시기는 아주 짧았지만 그들은 거상을 보자마자 상당한 가격으로 팔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653년 아랍의 칼리프 우트만의 지시로 현장에 방치되어 있던 거상은 잘게 잘려 시리아로 옮겨진 후 경매에 붙여졌고 유대인 에데스가 청동 조각을 모두 구입한 후 900개의 청동 낙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New The Seven Wonders of The World)

 

 

 

     이밖에 여행지에서 접할 수 있는 현대의 7가지 불가사의가 있다.

     1. 이집트의 피라미드

     2. 로마의 원형극장(콜로세움)

     3. 영국의 거석기념물(巨石紀念物, 스톤헨지)

     4. 이탈리아의 피사 사탑(斜塔)

     5. 이스탄불의 성(聖)소피아 성당

     6. 중국의 만리장성

     7.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를 7대 불가사의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그 밖에 L.코트렐은

      ① 크레타섬의 미노스 궁전

      ② 테베·네크로폴리스(묘지)

      ③ 왕가(王家)의 계곡

      ④ 시리아의 팔미라 고도(古都)

      ⑤ 바위의 돔

      ⑥ 클라크 데 슈발리에(시리아의 십자군 성채)

      ⑦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

      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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