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Tunisia)

튀니스(Tunis)하마메트(Hammamet) 엘젬(El Jem) 도우즈(Douz) 토제우르(Tozeur)

 정식 명칭은 튀니지 공화국(Republic of Tunisia)이며, 지중해 연안 해안선의 길이는 1,148㎞에 달한다. 면적은 163,610㎢, 인구는 1100만 명(2016년)이며, 수도는 튀니스(Tunis)이다.

 

 종족은 아랍인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유태인과 프랑스인 등이다. 공용어는 아랍어이나 프랑스어가 널리 통용되고 있으며, 국교는 수니파 이슬람교로 국민의 98%가 믿고 있으며, 나머지는 기독교 1%, 유태교 1%이다.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좋은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육지 면적의 27.8%가 농경지이고, 36.3%가 목초지, 5.4%가 삼림지대이다. 1956년 독립 이래 20여 년간 농업개발, 관광산업개발, 인광석·석유 등 부존자원 수출, 외부자원 유치를 성공리에 추진하여 고도의 경제성장을 달성하였으나, 1980년대에 들어와 재정적자의 누적, 외부자본 유입감소, 만성적 무역적자 누적으로 경기침체가 지속되었다.

 

 튀니지의 정체는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이며, 의회는 양원제로, 임기 6년의 상원(126석)과 임기 5년의 하원(182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정당으로는 민주헌정연합(RCD), 부흥운동(HE), 통일국민당(PUP), 사민당(MDS) 등이 있다.

 

개 요

o 국 명 : 튀니지 공화국(Republic of Tunisia)

o 수 도 : 튀니스(Tunis)

o 면 적 : 163,610㎢(세계 93위. 한반도의 3/4)

o 인 구 : 약 1,100만 명(2016년)

o 화 폐 : 튀니지 디나르(TND)

o GDP : 453억$(2015년. 세계 82위)

o 종 교 : 회교(99%), 카톨릭, 유태교

o 위 치 : 북위 36.48/ 동경 10.12

o 주요도시 : 스팍스, 수스, 가베스, 비제르트

o 주요민족 : 아랍인(95%), 베르베르인, 프랑스인, 유태인

o 주요언어 : 아랍어, 불어

 

 최근 10년내에 튀니지는 지중해의 주요 관광국으로 발전해 나갔고 해마다 수많은 북유럽인들이 튀니지의 따뜻한 햇볕을 찾아온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려는 사람들에게 튀니지는 알제리와 남부 아프리카로 가는 길목이다.

 

지 리

 서쪽으로는 알제리, 남동쪽으로는 리비아, 동쪽과 북쪽으로는 지중해와 맞닿아 있다. 북부 해안은 울창한 크루미리에(Kroumirie) 산맥밑으로 기름진 해안 평야가 펼쳐지는 튀니지의 녹지대이다.

 

기 후

 북부 튀니지는 덥고 건조한 여름, 온화하고 습한 겨울날씨를 보이는 전형적인 지중해 기후이다. 겨울(11월부터 4월까지)은 서북부 산악지대를 제외하고는 영하권으로 내려가기도 하며, 여름(5월부터 10월까지)은 35℃에서 42℃의 무더운 날씨이나 일몰 후에는 기온이 크게 내려가 일교차가 심하게 난다. 남부로 내려갈수록 더 더워지고 건조해지는 사하라성기후를 보인다. 사하라 지역은 몇 년동안 비가 내리지 않기도 한다.

- 겨울 평균기온(12월) : 11.4℃

- 여름 평균기온(7월) : 29.3℃

 

사회문화

 북아프리카 서부일대의 원주민은 베르베르인으로 튀니지의 대다수의 인종은 아랍인과 베르베르인이지만 순수 베르베르인은 1%정도밖에 안된다. 튀니지에서는 그 역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기원전 12세기경 페니키아인을 시작으로 로마인, 반다르인 등에 의해 지배되었다. 더군다나 7세기에 시작된 아랍인의 지배를 격음으로 혼혈이 생겨나고, 그 후에 정복자 스페인인, 토르코인, 프랑스인 등의 피가 섞였다. 튀니지 남부에서는 흑인의 피까지도 상당히 섞여있으며 유대인도 살고 있다.

 튀니지는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여 국민의 90%가 이슬람교도이고 소수 종교로 가톨릭교도, 유대교도, 그리스정교도가 존재한다.

 튀니지는 이슬람 문화가 지배하는 곳이다. 하지만 패스트후드, 팝송, 여자들의 의상 등 곳곳에서 유럽문화의 영향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아직도 전통적인 생활양식이 주류를 이룬다. 성직자이자이자 사회주의자, 전대통령이었던 하비브 부르기바(Habib Bourguiba, 1903~2000)의 영향으로 튀니지에도 여성인권에 대한 바람이 불어 그나마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 비해선 좀 나은 편이다.

 튀니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2개국어를 구사한다. 아랍어가 교육기관과 정부기관에서 사용되는 공용어이지만 실생활에서 사람들은 프랑스어를 쓴다. 주요 관광지역외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정말 드물며 튀니지의 아라비아어는 튀니지어라고도 불릴 정도로 본래의 아라비아어와는 많이 다르다.

 

시 차

 한국시간보다 8시간 늦다. 한국시간이 자정일 경우 튀니지의 현지 시각은 전일 오후 4시가 된다.

 

종 교

 국교는 헌법상 회교이나 의무는 아니며 국민 대부분이 온건한 수니(Sunni)파이며, 튀니지는 초대 부르기바 대통령 이후 추진해온 개방 정책의 결과, 일부다처제를 금지하고 일요일을 공휴일로 정하는 등 회교를 현대 개방사회에 접목하는데 성공. 튀니지에는 유대교, 로마 카톨릭, 그리스 정교회, 영국 국교회, 개신교 교회가 있으며, 외국인들은 종교 활동이 보장되지만, 튀니지인을 상대로 한 회교 이외의 선교활동은 금지.

 

통 화

 튀니지 화폐 단위는 디나르(dinar ; TD)이고 작은 단위는 밀러미즈(Millimes(mills))이다.

 TD1 = 1,000 mills. 디나르의 반출과 반입은 금지되어 있으며 출국시 재환전할 경우 디나르로 환전했던 금액의 30%이상은 재환전할 수 없고 1인당 TD100이 한도액이다. 그리고 외화를 디나르로 환전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 환전증이 필요하므로 환전시 반드시 챙겨두도록 한다.

 Visa, Amex, Master 카드와 같은 신용카드가 큰 쇼핑점, 호텔, 렌트카 센터, 은행 등에서 통용되며 현금은 현지화폐인 디나르만이 사용된다.

 

전 화

 전화망이 잘 되어 있어 자동 다이얼링이 전국을 연결한다. 공중전화는 택시폰( Taxiphone)이라고 부르며 노란색 표시가 되어 있어 쉽게 발견할 수 있고 국제 전화 사용 가능하다. 튀니지 국가 번호는 216, 수도인 튀니스(Tunis) 지역번호는 01, 비제르테(Bizerte)는 02, 수스(Sousse)는 03, 가베스(Gabes) 5, 카이루완(Kairouan) 7이다.

 

우 편

 튀니지의 우편 체계는 느리긴 하지만 확실하다. 우편시설은 주요 도시에서 이용가능하다. 우체국 근무시간은 6월 15일~9월 15일까지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08:00-13:00, 9월 16일에서 6월 14일까지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08:00-12:00, 14:00-18:00 토요일은 08:00-12:00 이며; 라마단기간중에는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08:00-15:00까지 영업한다.

 

전압 - 110/220 V, 50 HZ

 

현지연락처

한국 대사관

주소: 16, RUE CARACALLA, NOTRE-DAME, 1002 TUNIS, TUNISIE

☎: 893-060, 799-905

 

공휴일

 보통 양력을 기준으로 하는 공휴일과 이슬람력을 기준으로 하는 공휴일로 나뉘어져 있다.

양력에 의한 공휴일

1월 1일 신년

3월 20일 독립기념일

3월 21일 청소년절

4월 9일 현충일

5월 1일 노동절

7월 25일 공화국기념일

8월 13일 여성의날

 

 

 

 

이슬람력에 의한 공휴일

 해당 휴일 전날의 달이 지는 시간대를 정확히 관찰한 후 휴일여부를 결정하여 TV 또는 라디오로 알리기 때문에 사전에는 해당 공휴일이 언제라고 단정하기 곤란하다. 그 정확한 일시는 해당공휴일 전날 야간 텔레비전 또는 라디오 뉴스를 통해서 발표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의 1995년의 이슬람력에 의한 공휴일은 다음과 같다.

10월 1일∼2일 라마단 종교일

12월 10일∼11 일양의 축제일

1월 1일 음력신년

3월 12일∼ 모하메드생일

 

 

튀니지의 역사

 페니키아인이 서기전 9세기경 카르타고 제국을 건설한 바 있으며, 7세기경 아랍족의 진출로 회교국으로 변모하였다. 19세기부터 프랑스 등 유럽열강의 침략을 받아 1881년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다가, 1956년 3월 20일 독립하였다.

 1956년 6월 헌법을 제정하고 안정된 정치기반 아래 고도성장을 달성하였으나,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고, 후계자 선정을 둘러싼 권력투쟁 격화, 경기침체 지속으로 인한 식량폭동 발생 등으로 정치안정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1988년 4월 정당법 개정으로 복수정당제가 공인되어 정당활동이 이루어졌으며, 1987년 11월에 취임한 벤 알리(Ben-Ali) 대통령이 2004년 10월 4선에 성공하여 장기집권하고 있다.

 대외정책은 우경중립의 비동맹중립외교를 펴고 있으며, 1956년 유엔에, 1961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친서방 온건노선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중동평화문제에서는 현실을 반영하는 합리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한편, 알제리·리비아·모로코 등 마그레브(Maghreb) 제국과의 협력체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며, 아랍연맹본부 유치, 팔레스타인해방기구본부의 자국 이전 등으로 아랍권내 외교를 주도하고 있다.

 

 1702년 튀니지에 정변이 일어나 아랍인 후세인이 베이(Bey, 지방장관)직을 장악하여 왕권을 수호하면서 부터 베이(Bey)직은 과거 종주국에서 하사된 단순한 자치왕권이라는 의미에서 벗어나 튀니지 독립의 상징이 되었으며, 1830년 프랑스의 알제리 점령 및 1837년 터키의 리비아 재장악 등 이후 서구 열강들의 식민정책에 대항하여 베이(Bey)를 중심으로 국가 개혁운동이 추진됨

 

 1860년 군대창설(2만 6천 명)

 

 1861년 헌법제정 및 대법원 설립(이슬람 국가로는 최초의 헌법제정 및 대법원 설립이었으나, 개혁에 따른 외국인의 유입 을 두려워한 농민층 반대로 1884년 헌법정지)

 

 튀니지의 개혁은 중앙아시아 출신의 마물크 케레딘(Mamulk Kherredin) 수상의 영도하에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 걸쳐 추진되었으며, 이러한 개혁운동은 튀니지 독립운동의 추진력이 되었고, 독립 후 신생국 기틀의 근간이 됨

 

 프랑스의 지배 및 독립

 1837년 즉위한 아흐메드 베이(Ahmed Bey)는 개혁으로 과도한 재정을 낭비하여 파산에 이르렀고, 1868년 프랑스, 영국, 이태리 3국이 국제금융위원회를 조직, 튀니지의 재정을 장악하였고 1878년 베르린회의에서 영국의 싸이프러스 지배와 교환하여 그랑스의 튀니지 지배가 유럽 열강의 승인을 받음

 

 1881년 프랑스군의 진주에 이어 1883년 알 마르사(Al Marsa) 조약으로 튀니지는 프랑스의 보호령(Protectorate)이 됨

 * 'Portectorate'라는 용어는 당시 튀니지 주재 프랑스 행정관 피에르 파울 캄봉(Pierre Paul Cambon)에 의해 제조된 용어로 프랑스와 튀니지의 특수관계(보호관계)를 지칭키 위해 사용

 

 20세기 초 시작된 민족운동과 세계적 탈 식민지 추세에 힘입어 프랑스와의 독립협상을 통해 1956.3.20 독립을 성취하고 1957.7.25 튀니지 독립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부르기바(Bourguiba)가 초대대통령에 취임

 

 독립 이후 부르기바 대통령은 1956년 일부다처제 폐지, 여성의 남성과의 동일한 지위를 위한 법제정 등 많은 업적이 있었으나, 장기집권과 사회주의 정책의 실패로 70년대들어 정치 자유화 운동과 함께 유혈 폭동 등 사회적 혼란이 계속됨. 이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87.9월 총리에 임명된 벤 알리(Ben Ali)는 부르기바 대통령의 노환으로 인하여 87.11월 대통령직을 승계하였으며 89.4 선거를 통해 자신이 대통령에 취임

 

 벤알리 대통령은 집권 이후 복수정당제 도입, 국회에서의 야당의석 보장 등을 통하여 국민여론을 수렵하였으며 95년 EU와의 제휴협정을 통하여 시장경제체제 도입, 민영화 추진, 제조업 육성 등 경제개혁을 실시하여 매년 5% 이상의 경제성장을 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사회안정을 도모하고 이에 힘입어 2004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

 

 

튀니지 입국절차

비자

 양국간 사증면제협정이 체결되어 있어 30일까지 체류에는 비자가 필요없다.

☞ 대사관

o 주소: 서울시 용산구 동빙고동 7-13번지 튀니지 대사관

☎: 790-4334~5

 

입국

 입국카드는 통상 기내에서 기입하여 둔다. 외화에 관해서는 거액의 경우 세관에 신고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다지 엄밀하게는 보지 않는다

 

 

여행도우미

 튀니지는 선진 유럽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점과 벤 알리(Ben Ali) 대통령 집권이후 이룩한 정치, 사회적 안정에 힘입어 천혜의 관광자원(기후, 햇빛, 해변, 사막 등)과 오랜 문화 유산, 그리고 잘 발달된 도로망 등을 이용, 적극적인 관광개발사업을 추진하여 북아프리카, 중동 국가 중 최대의 관광국으로 부상

 

여행시기

 1월~2월 사이는 여행비수기로 날씨가 시원한 편이며 비가 많이 내린다. 이 기간중 호텔요금은 저렴해진다. 성수기는 6월~8월로 이때는 호텔요금이 올라가며 시장과 박물관, 미술관 등이 외국 관광객들로 붐빈다.

 

복장

 따라서 사계절 의류가 모두 필요하며, 양복, 양말, 구두, 평상복등 일체를 넉넉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 겨울의류로 무스탕등 한겨울용 외투는 필요없으나 바바리등은 준비하는 것이 좋다.

 

문화 생활

 영화관은 많이 있으나 시내중심가의 아프리카(Africa) 극장이 외국인들이 출입하기에 분위기나 청결상태가 무난하다. 매 2년마다 개최되는 카르타고 영화제에는 세계각국에서 많은 영화가 출품되어 상영된다.

 시내 곳곳에 산재한 미술관에서 수시로 미술전람회가 개최되며 주요 일간지에 전람회 계획이 광고된다. 시립극장등에서는 수시로 음악회가 개최되며 튀니지에는 자체 교향악단이 있다.

 

호텔

 주요관광지로는 Sousse, Hammamet, Tabarka, Tozeur, Dougga, Djerba, Kairouan 등이 있으며 튀니지에서 자동차로 2~5시간내 접근이 가능한 거리에 위치해 있다.

 관광지 호텔가격은 관광시즌에 따라 비시즌(11~3월), 중간시즌(4~5월, 9~10월), 하이시즌(6~8월) 등으로 나뉘어 큰 차이가 있으며 대체로 유럽 여행객이 많이 오는 6월 말부터 9월 초까지는 호텔 사전 예약이 필수적이다.

 전반적으로 호텔시설과 서비스가 우수하며 하이시즌 중 호텔가격은 100불(별 5개급-최고급), 70불(별 4개급-고급), 50불(별 3개급-중급) 정도이다.

 

 

한니발(Hannibal(BC247~BC183))

 한니발은 카르타고의 장군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눈덮힌 알프스 산을 넘어 로마로 진격함으로써 2차 포에니 전쟁(BC 218~202)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2차 포에니전쟁을 일명, "한니발 전쟁"이라 일컫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니발은 하밀카르 바르카의 아들로, 1차 포에니 전쟁에 패한 후, 카르타고에서 에스파냐로 건너간 후, 기원전 221년 26세의 젊은 나이로 에스파냐 전군의 총지휘관이 되었다.

 로마의 동맹시 육로를 이용한 이탈리아 진공 전략으로, 프랑스 남부전투에 승리한 다음, 기원전 218년 알프스를 넘어, 로마군을 티키누스, 트레비아 전투에서 격파하였다.

 계속되는 한니발의 승전은 본토에서의 지원을 이끌어 내지만, 로마와의 전쟁을 준비하지 못한 카르타고 본토를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가 이끄는 로마군이 침공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퇴각한 한니발은 기원전 202년, 자마전투에서 패함으로써, 결국 2차 포에니 전쟁도 카르타고의 패배로 끝을 맺게 되었다.

 로마와의 강화조약 체결이후, 한니발은 소아시아의 비티니아로 피신생활을 하다, 로마의 신병인도에 대항하여 자살함으로써, 역사상 위대한 장수의 일생을 마치게 된다.

 

<포에니 전쟁(Punic Wars)>

 지중해 패권을 둘러싼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의 싸움으로, 로마 인이 페니키아 인을 포에니라고 부른 데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BC 3세기 초 이탈리아 반도에 세력을 확립한 로마는 신흥 귀족의 뛰어난 지도력, 시민병의 충만한 사기와 국가 의식, 이탈리아 반도의 여러 나라와 동맹 체제를 유지함으로써 점차 지중해 세계의 유력한 국가의 하나가 되었다. 로마는 카르타고와 1~3차에 걸친 전투에서 승리하여 서부 지중해에 대한 패권을 차지하였다.

 1(BC 264~BC 241) 전쟁에서는 처음에 로마 군이 섬 전체를 제압하였으나 카르타고 해군의 반격을 받고 접전이 계속되었다. 기원전 241년 아에가테스 해전에서 로마가 승리하여 강화 조약을 맺고, 로마는 최초의 해외 영토인 시칠리아, 코르시카 등을 속주로 삼았다.

 2(BC 218~BC 201) 전쟁에서는 BC 216년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이탈리아에 쳐들어가 칸나에서의 싸움에서 압승하였으나, 로마는 스키피오를 기용하여 기원전 202년 자마의 싸움에서 완승하였다. 그 결과 카르타고는 소도시로 전락하였다.

 

 3(기원전 149~기원전 146) 전쟁에서 치른 로마의 잔혹한 소탕전으로 카르타고는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튀니스의 기후(℃)

지  역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튀니스

최고평균

15.7

16.5

18.1

20.7

24.0

29.0

32.6

32.7

29.7

25.2

20.5

16.7

최저평균

7.2

7.4

8.3

10.4

13.7

17.3

20.0

20.8

19.0

15.5

11.3

8.2

평   균

11.4

11.9

13.2

15.6

19.3

23.1

26.3

26.7

24.3

20.3

15.4

12.4

강우량mm

59.3

57.0

47.2

38.0

22.6

10.4

3.1

7.1

32.5

65.5

56.0

66.8

 

 

 

 관광 명소

 

 

튀니스(Tunis)하마메트(Hammamet) 엘젬(El Jem) 도우즈(Douz) 토제우르(Tozeur)

 

 

 

마트마타(Matmata)

 마트마타는 원래 베르베르(Berber)족의 이름에서 기인된 것으로, 튀니스에서 남쪽으로 450km, 가베스 남쪽 43km에 위치해 있다.

 

 

 

카이로우안(Kairouan) 고대도시

 서기 670년에 건설되어 Aghlabide 왕조때인 9C경 번영을 이룬 도시다. 12C경 수도가 튀니스로 이전된 후에는 종교적 신성도시로 존재했다.

 풍부한 건축적 유산(대리석 주랑이 달린 大 모스크, 9C경의 三門 모스크 등)이 현존하고 있어 튀니지 여행객들이 일정상에 잡는 도시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1988년 지정됐다.

 

 

 

 

 

스타투어(Star 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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