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잠비크(Mozambique)

 

 모잠비크는 아프리카 대륙의 남동부, 인도양에 면한 해안선을 따라 세로로 긴 나라로 북으로는 탄자니아, 북서쪽으로 잠비아와 말라위, 서쪽으로 짐바브웨 및 남쪽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국경이 접해 있다. 남부 아프리카 지역에 있어 동방에의 창구 역할을 하는 모잠비크는 주변국에 중요한 수송 루트를 제공하는,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수도는 마푸토이다. 길쭉한 모양의 모잠비크는 남북길이는 1,770km이고 동서길이는 북부 지역에서는 645km, 남부 지역에서는 320km이다.

 

 모잠비크는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다양한 생태계와 문화가 공존하며 열대기후에 속하는 나라이다. 모잠비크의 길게 뻗은 해안선은 모잠비크 해협을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이 해협은 아프리카 본토와 마다가스카르 섬 사이에 위치한다.

 

 모잠비크의 해안을 따라 천혜의 조건을 갖춘 아프리카 최고의 항구들이 발달해 있다. 이러한 항구들로 인해 모잠비크는 인도양 해양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모잠비크의 하얀 모래 해변은 각광 받는 관광지로서 모잠비크의 관광산업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모잠비크의 북부와 중앙에 펼쳐진 비옥한 토지는 다양하고 풍요로운 농업 생산을 가능하게 했으며, 잠베지 강은 관개에 이용되는 큰 규모의 강이어서 지역적으로 중요한 수력발전의 원천이 되었다. 하지만 모잠비크는 혼란스러운 역사 때문에 이러한 자연의 이점들을 충분히 누릴 수 없었고, 안정적인 경제 발전을 이룩하지 못했다.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모잠비크는 얻는 것은 거의 없으면서도 광업 및 농업 생산물을 멀리 떨어져 있는 식민모국에 받쳤다.

 

 1975년 독립 이후에 모잠비크는 소련과 쿠바의 부분적 지원을 받는 마르크스주의 정부가 반공산주의자 세력들과 전투를 벌이면서 내부 갈등으로 분열되었다. 반공산주의 세력들은 모잠비크 지배권에 대해 야욕을 가진 남아프리카와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았다. 무수한 테러가 자행되었고, 뒤이은 전쟁은 최소 400만 명을 난민으로 만들었으며, 그로 인한 폭력과 굶주림, 질병으로 말미암아 10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폭력과 분열은 경제발전을 가로막았다. 특히 관광산업의 확대에 장애가 되었고, 외국인 투자의 방해 요인이 되었다.

 

 1992년 공식적으로는 갈등이 종결되었으나, 여전히 갈등의 여파가 상당 부분 존재한다. 21세기 초 터지지 않은 채 묻혀 있는 100만여 개의 지뢰가 시골길과 도로를 따라 남아 있고, 많은 정치적 투쟁이 야당세력과 중앙정부 간의 갈등을 지속시키고 있다.

 

 2005년 독립 30주년을 기념하는 횃불 잇기 프로그램의 일부로, 아르만도 구에부자 대통령은 횃불의 불꽃은 모잠비크 역사의 상징이고, '공고한 독립과 국민들의 행복에 이르는' 길을 비출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구에부자는 횃불이 전달될 때, 나라가 독립되던 해에 태어난 한 모잠비크인에게 말했다.

 "이 횃불을 젊은이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우리가 빈곤에 대해 벌이는 전투가 우리의 젊은이들에 의해 계속될 것이라는 확신을 상징한다. 젊은이들은 우리의 영광스러운 정치·역사·문화적 유산의 수호자들이다."

 

 독립할 때까지 로렌코마퀘스로 알려진 수도 마푸토는 훌륭한 식민지 시대 건축물과 마푸토 만의 심해 항만을 따라 형성된 매력적인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마푸토는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이다. 도시 길을 따라 카페, 술집, 디스코테크가 발달해 있어 아프리카 남부에서 가장 생동감 있는 유흥문화를 즐길 수 있다. 다른 주요 도시들 대부분은 인도양 해안에 면해 있거나 가까이에 있다. 이러한 도시로는 베이라, 켈리마네, 치모이오, 테테, 남풀라, 나칼라가 있다.

 

 

모잠비크(Mozambique) 개요

o 공식명칭: 모잠비크 공화국 (Republic of Mozambique)

o 수도: 마푸토

o 면적: 약 79만㎢(한반도의 3.62배)

o 인구: 약 3,200만 명(2022년)

o GDP: 약 139억$(2022년. 세계 132위)

o 언어: 스와힐리어,포르투갈어

o 주요민족: 총가족, 마쿠아족, 롬웨족

o 기후: 사바나기후

o 정부/의회형태: 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o 종교: 로마가톨릭(24%), 이슬람교(18%), 시온주의 그리스도교

o 화폐: 메티칼 (MTn)

o 국화:

o 국가번호: 258

o 전압: 220~230V / 50Hz

o 도메인: .mz

 

 

비 자

 인근 국가 모잠비크 대사관에서 받아야 한다. 여권과 여권사진 1장이 필요하다.

 말라위 릴롱궤(Lilongwe) 또는 블란타이어(Blantyre), 짐바브웨 하라레(Harare) 등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비자를 취득하는 장소와 비자 발급 소요일에 따라 비자피(visa fee)에 차이가 있다. 아프리카 이외의 장소에서 비자를 발급받을 경우 관광용 싱글 비자피(유효기간 한달)가 미화 약 $20, 유효기간 3개월의 복수비자피가 약 $40 정도이다. 일부 국경에서 찍어주는 입국 스템프는 비자와 같은 효력을 지니고 있지 않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 스템프만으로는 국경지역을 벗어난 타지역으로의 이동이 불가능하다. 주의하도록 한다.

 

 

위 치

 모잠비크는 아프리카의 해안선을 끼고 남동부, 인도양을 면해서 2,500km 뻗어 있다. 북쪽으로는 탄자니아와 국경을 마주하며 말라위와 잠비아는 북쪽으로 짐바브웨는 서쪽 남아공과 스와질랜드는 남 서쪽으로 각각 국경이 마주하고 있다.

 마다가스카르 섬나라는 모잠비크의 동쪽 바다에서 400km 떨어져 위치해 있다.

 

 

지 형

 해안을 따라 200km 정도의 저지대가 남동부 쪽으로 뻗어있고 북서쪽으로는 중, 고원지대로. 림포포와 잠베지 두 개의 강이 가로지르고 있다. 중부지방을 흐르는 잠베지 강은 배수역의 면적이 12만 9,500㎢가 넘는 이 나라 대동맥이며 인도양으로 흘러들어 비옥한 토지를 만들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정치, 경제, 문화의 교류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강 중류에는 아프리카 최대의 발전량을 자랑하는 '카볼라 밧사 댐'이 있다. Massive lake Malawi(nyasa)는 말라위와 모잠비크 사이에 나란히 걸쳐있다.

 서쪽으로는 사바나와 산림지 그리고 열대림 숲이 해안선을 따라 좁고 길게 뻗어있다. 나무는 활엽수와 아카시아나무, 파파야 나무들이 있으며 파우나(Fauna)에서는 희귀종에 속하는 검은 코뿔소도 볼 수 있다.

 

 

민 족

 2,410여만 명에 달하는 모잠비크의 총 인구 중 53% 가량이 북쪽지역에 밀집되어 거주하고 있다. 잠베지 강 북부를 중심으로 이동 농경을 하는 마쿠아(Makua)족은 16개 주요부족 가운데 인구의 약 40%를 차지하는 최대 부족이다. 이밖에도 남쪽의 Makonde, Sena, Shangaan족 등이 있다. 순수 포르투갈인도 총 인구의 1%를 차지하고 있다.

 

 

언 어

 공식어인 포르투갈어는 대도시 중심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긴 하나 지방으로 갈수록 그 사용범위가 한정되어 있다. 반면 모잠비크에서 통용되는 다양한 아프리카어는 모두 반투어족(Bantu)에 속하는데, 이는 크게 인구의 1/3 이상(특히 북쪽지방)이 사용하는 Makua-Lomwe어와 중앙의 Sena-Nyanja어, 남쪽의 Tsonga어의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기 후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대를 제외하면 중부 이북은 열대성 기후, 잠베지강 남부는 아열대성 기후로 크게 구분된다. 우기와 건기가 있는데, 우기는 11∼4월까지이고, 비교적 고온으로 무더운 날들이 계속된다. 건기인 5∼10월은 강수량 적고 1년 중에 가장 지내기 쉬운 계절이며 남부에서는 아침 저녁에 스웨터가 필요하게 될 정도로 으스스하게 추운 날이 계속되는 일도 있다. 그 중 2월이 여름으로, 22∼31℃까지 올라가고 겨울인 7월에는 13∼24℃까지 내려간다. 베이라 남부의 해안지방 및 말라위, 짐바브웨와 국경을 접하는 고원지대는 가장 비가 많다. 북부의 해안 지방은 습한 무역풍이 마다가스카르에서 불어온다.

 

 

마부토(Maputo) 기온

도시명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마부토

(Maputo)

최고평균

29.9

29.6

29.3

27.8

26.4

24.6

24.4

25.3

26.1

26.5

27.4

29.1

최저평균

22.3

22.3

21.5

19.4

16.8

14.4

14.2

15.4

17.2

18.3

19.7

21.4

평 균

26.1

26.0

25.4

23.6

21.6

19.5

19.3

20.3

21.7

22.4

23.6

25.3

강우량mm

171

130

105

56

31

17.6

19.6

15

44.4

54.7

81.7

85

강우일수

8.1

7.6

7

4.4

2.8

2.4

1.8

2.2

3.2

5.5

7.9

7.5

 

 

방문시기

 모잠비크를 방문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6월에서 8월 사이로, 강수량도 적고 기온이 낮아 여행하기 좋은 시기이지만 건기가 끝난 후 8월 말에서 9월 사이는 기온이 올라가 덥기 시작하지만 이시기가 풍부한 야생을 즐기기에는 가장 좋은 때이다. 반면 새들을 구경하게에 좋은 시기는 한창 우기철인 11월에서 12월 사이가 좋다.

 

 

사회, 문화

 모잠비크의 부족은 97%가 반투계 아프리카인으로 부족 은 여러 갈래로 갈려 복잡하게 나뉘어 있다. 잠베지 강 북부를 중심으로 이동 농경을 하는 마쿠아 롬웨(Makua-lomwe)족은 모계 쪽으로 가계가 이어지며 인구의 약 40%를 차지하는 최대 부족이다. 다음으로 남쪽의 송가(Thonge)족이 25%를 차지하며 부계쪽으로 가계가 이어진다. 이 외에 북쪽의 이슬람 교도인 야오족과  통가족, 쇼나족, 마론데족 등 전부 43개의 부족이 있다.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이므로 도시 및 그 주변에는 포르투갈어로 충분히 통용된다. 모잠비크는 다부족국가이고 각 부족마다 다수의 현지어가 존재하지만 그 중에도 마쿠아 롬웨어가 꽤 넓은 범위로 통용되고 있다. 또 모잠비크는 영어권의 나라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도시의 지식계층에는 영어교육을 충분히 받은 사람이 많다. 그러나 문맹률은 85∼95%나 된다.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이므로 도시 및 그 주변에는 포르투갈어로 충분히 통용된다.

 현재 모잠비크의 종교는 150개를 넘는 수가 등록되어 있지만 주요 종교는 이슬람교(10%)와 그리스도교(30%)이고, 그 외의 대부분은 마콩데족의 정령신앙 등 원시종교(60%)이다. 이슬람교 신자는 북부의 마쿠아 롬웨족과 오족을 중심으로 약 400만 명에 달해 모잠비크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갖고 있다. 가톨릭교의 신자는 약 300만 명으로 전국에 널리 퍼져 있고 모잠비크 정치나 문화에 끼치는 영향력은 대단히 강하다. 프로테스탄트는 중, 남부를 중심으로 약 200만 명의 신자가 있다.

 

 

모잠비크(Mozambique) 역사

 3, 4세기 경부터 반투계의 아프리카 인종이 북방으로부터 남하하여 현재 모잠비크의 위치에 정착을 시작했다. 그 후 10세기 경에는 아랍이나 스와힐리계의 상인과 농업산품을 중심으로 교역이 번창하게 되었다. 14, 15세기에는 쇼나족에 의해 짐바브웨로부터 모잠비크에 걸친 대제국이 창설되어 금을 중심으로 광물자원 교역이 아랍인과의 사이에서 행해지고, 그 융성이 극에 달했다. 15세기 후반에는 모잠비크 북부와 중부의 해안선에 아랍인이 완전히 정착했다.

 

 15세기 말에는 포르투갈인이 서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모잠비크를 방문했다. 16세기에 오면서 포르투갈인은 노예무역을 개시하고 식민지 활동을 본격화하면서 아랍인을 몰아내고 내륙부에 세력을 점점 넓혀 나갔다. 모노마타파 제국의 쇠퇴로 통합되면서 17세기 초에는 모잠비크 전 영토에 걸쳐서 지배권을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그 포르투갈 정부는 포르투갈인의 이주를 적극적으로 추진, 그들에게 대농원주(프라자로)로서의 지위를 주었다. 포르투갈인 농원주는 아프리카인을 노동자로서 사용하면서 무거운 세금을 내고 노예시장을 번성하게 하는 것으로 많은 아프리카인, 특히 북부의 마콩데족이나 남부의 송가족으로부터 강한 저항을 받았다. 그러나 모두 진압되어 일방적으로 크리스트교와 포르투갈 문화의 보급을 진행하는 것으로 포르투갈의 안정된 식민지 경영이 이어졌다.

 

 19세기 말에는 유럽 열강에 의한 아프리카 분할은 종식되고 포르투갈은 영국 및 독일과의 사이에서 현재의 국경을 확정했다. 이후 포르투갈 정부는 프라자로에 의한 대농원 경영을 바꾸어 상업개발 등에 관한 특권을 3대 회사(모잠비크 회사, 니아사 회사, 잠베지아 회사)에 주고 식민지로서 모잠비크 북부와 중부의 경제 개발을 진행하도록 했다. 그러나 3대 회사의 아프리카인에 대한 강권적 지배가 강한 저항운동을 불러 일으켰다. 한편 포르투갈은 모잠비크 남부의 경제개발을 도모하기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관계를 강화하였다.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트란스발 지방에서 산출되는 금의 반출 때문에 철도가 로렌시마르게스 항(현재의 마푸토)까지 건설되었고, 매년 8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인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광산 노동자로서 제공했다.

 

 1951년 포르투갈은 모잠비크를 식민지로부터 해외주(海外州)로 정치적 지위를 변경하는 취지의 선언을 했지만 포르투갈의 식민지 경영을 한층 강화하게 할 뿐이었다. 1960년대에는 모잠비크 독립을 목표로 해방운동 조직이 로데지아, 케냐, 말라위에서 결성되고 1962년 미국의 시라큐즈 대학교수인 에드워드 몬드라네(Ecuardo Mondlane)의 밑으로 3개의 조직이 통합되어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이 탄자니아에서 태어났다. 프렐리모(Frelimo)는 1964년에 무력투쟁을 개시하고 포르투갈과의 장기적인 식민지 해방투쟁의 길을 열었다. 1969년에는 Frelimo 의장인 몬드라네가 작은 폭탄에 의해 암살 당했지만 사모라 마셸(Samora Machel)이 뒤를 이어 Frelimo의 세력은 북부로부터 남부에 걸쳐 점차로 광대하게 되었다.

 

 1974년 4월 25일, 포르투갈 본국서 쿠데타가 일어나 식민지 해방의 방침을 가진 사회주의 정권이 등장하고, 같은 해 9월 7일 포르투갈과 Frelimo와의 사이에서 독립에 관한 루사카 협정이 체결되었다. 다음 해 6월 25일 모잠비크 인민공화국으로 정식 독립, 마셸이 초대 대통령이 되고 수도의 이름은 로렌시마르게스에서 마푸토로 개명되었다.

 

 독립 후, Frelimo 당은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표방하고 일당 독재에 의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추진했지만 독립 직후부터 백인 이주자를 주체로 하는 모잠비크 국민저항운동(Renamo : MNR)이 사회주의정권 타도를 향해 게릴라 활동을 개시하여 내전에 휩쓸리게 되었다. MNR의 배후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가 자금과 무기의 원조를 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의 모잠비크 불안정화 공작도 심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1984년 모잠비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소코마티 협정(불가침조약)을 맺어 내전의 종결을 향해 일보 내딛었다. 또 IMF, 세계은행에의 가입이 허락되면서 파탄상태였던 경제활동의 회복을 도모하는 단서가 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모잠크 정부의 생각과는 달리 MNR의 게릴라활동은 끊임없이 국민의 생활을 위협하며 계속되었다.

 

 1986년 항공기 사고로 사망한 마셸을 이은 시사노(Joao Alberto Chissano) 대통령은 사회주의 노선을 버리고 시장경제의 도입을 도모하는 한편, 적극적인 민주화를 추진하고 1990년 11월에는 민주주의적 신헌법을 도입하고 국가재건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또 가장 골치 아픈 문제인 MNR과의 내전에 대해서도 1990년 7월에 양자간의 직접 교섭을 개시하고 평화의 실현을 향해 강한 교섭을 하여 불안정한 가운데에서도 1992년 드디어 정전이 실현되었다.

 

o 1498년 : 바스코 다가마가 모잠비크 발견. - 포루투칼의 인도무역에 중간 정착지 역할로 쓰였다.

 

o 1700년 : 포르투칼의 내륙 진출.(식민지 건설)

 

o 1932-68년 : 모잠비크는 기근에 허덕이게 되었다. 포루투칼이 현금화할 수 있는 모든 식량을 몰수해 버렸기 때문이다. 포루투칼은 모잠비크의 자연자원만을 탐닉했을 뿐 사회적 투자나 경제 활동은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모잠비크는 식민지 하에서 갈수록 황폐해져 갔으며 몇몇 병원과 학교은 한정된 수의 백인과 포루투칼인에게 만 특권이 주어졌었다.

 

o 1951년 : 포르투갈은 모잠비크를 식민지로부터 해외주(海外州)로 정치적 지위를 변경하는 취지의 선언을 했지만 포르투갈의 식민지 경영을 한층 강화하게 할 뿐이었다.

 

o 1960년 : 포루투칼 군대는 평화적이 집회에도 발포를 해 600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이것을 도화선으로 하여 독립의 기운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모잠비크 독립을 목표로 해방운동 조직이 로데지아, 케냐, 말라위에서 결성되었다.

 

o 1962년 : 미국의 시라큐즈 대학교수인 에드워드 몬드라네(Ecuardo Mondlane)의 밑으로 3개의 조직이 통합되어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이 탄자니아에서 태어났다.

 

o 1964년 : Frelimo는 무력투쟁을 개시하고 포르투갈과의 장기적인 식민지해방투쟁에의 길을 열었다.

 

o 1969년 : Frelimo 의장인 몬드라네가 작은 폭탄에 의해 암살 당했지만 사모라 마셸(Samora Machel)이 뒤를 이어 Frelimo의 세력은 북부로부터 남부에 걸쳐 점차로 광대하게 되었다.

 

o 1974년 :

- 4월 25일, 포르투갈 본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식민지 해방의 방침을 가진 사회주의 정권이 등장하고,

- 9월 7일 포르투갈과 Frelimo와의 사이에서 독립에 관한 루사카 협정이 체결되었다.

 

o 1975년 :

- 6월 25일 모잠비크 인민공화국으로 정식 독립, 마셸이 초대 대통령이 되고 수도의 이름은 로렌시마르게스에서 마푸토로 개명되었다.

- 독립 후, Frelimo 당은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표방하고 일당 독재에 의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추진했지만 독립 직후부터 백인 이주자를 주체로 하는 모잠비크 국민저항운동(Renamo : MNR)이 사회주의정권 타도를 향해 게릴라 활동을 개시하여 내전에 휩쓸리게 되었다. MNR의 배후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가 자금과 무기의 원조를 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의 모잠비크 불안정화 공작도 심해지게 되었다.

 

o 1984년 :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소코마티 협정(불가침조약)을 맺어 내전의 종결을 향해 일보 내딛었다. 또 IMF, 세계은행에의 가입이 허락되면서 파탄상태였던 경제활동의 회복을 도모하는 단서가 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모잠비크 정부의 생각과는 달리 MNR의 게릴라활동은 끊임없이 국민의 생활을 위협하며 계속되었다.

 

o 1986년 : 항공기 사고로 사망한 마셸을 이은 시사노(Joao Alberto Chissano) 대통령은 사회주의 노선을 버리고 시장경제의 도입을 도모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민주화를 추진

 

o 1990년 : MNR과의 내전중 7월에 양자간의 직접 교섭을 개시하고 평화의 실현을 향해 강한 교섭

 

o 1992년 : - MNR과의 내전에 정전협상 성공

               - 11월에는 민주주의적 신헌법을 도입하고 국가재건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여행 길잡이

쇼핑

 마푸토와 남풀라(Nampula), 펨바(Pemba) 등의 지역에서는 백단 조각품이나 점토 용기 등의 유명한 마콩데(Makonde) 목각용품을 구입할 수 있는 상점들이 많다. 그 밖에도 Inhambane 지방의 바구니, Cabo Delgado의 정교하게 짜여진 매트류, Ibo 섬의 은제품류 등이 잘 알려진 특산물이다. 사람이 붐비는 시장에서 쇼핑을 할 경우 항상 날치기나 소매치기를 주의하도록 한다.

 

음식

 옥수수 및 카사바로 만들어진 모잠비크의 대표적인 음식은 xima, upshwa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camaroes(참새우)나 lagosta(가재) 등의 다양한 해산물요리도 맛볼 수 있다.

 

영업시간

 은행의 주중 영업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이다. 대부분의 상점들은 일반적으로 평일 오전 8시부터 정오까지, 그리고 다시 오후 2시부터 6시나 6시반까지 문을 연다(토요일은 오전에만 영업을 함). 북쪽의 Cabo Delgado 지역의 경우 영업시간이 조금 더 일찍 시작되기도 한다.

 

마푸토 시내 중심부에서의 사진촬영에는 별 제약이 없으나 대통령 관저, 군 관련시설이나 항만시설 등을 무단으로 촬영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현지인의 모습을 찍을 경우에도 미리 촬영대상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여행자의 매너이다.

 

 

 

 관광 명소

마부토(Maputo)

 모잠비크 남쪽 끝에 위치한 마부토는 세계를 여행하는 여행자들 사이에 케이프 타운이나 리오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시민 전쟁이 일어난 후 거의 20년에 걸친 전쟁으로 수도는 박탈되어 부서진 건물과 더러운 거리로 쇠퇴해져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자연환경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도시는 점차 그러나 확실하게 향상되어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마부토가 예전의 모습을 찾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오래된 시골의 유적지들을 관광하며 가끔은 시골길에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오래 전 에펠에 의해 건축된 기차역도 볼 수 있는데 이 역은 최근 보수공사가 이루어져 윤기 나는 질 좋은 나무와 대리석장식 그리고 거대한 동판지붕을 올려 궁전처럼 보인다.

 

 

베이라(Beira)

 베이라는 모잠비크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며 항구와 열차 정착지이기도 하다. 이곳의 치밀하게 짜여진 중앙지역과 오래된 대륙풍 빌딩은 소탈한 매력을 준다. 도시의 심장부인 쁘라사(Prasa: 주 광장)에는 상점과 시장 그리고 사무실들로 둘러싸여 있다. 정신없이 바쁜 시장 충가 모요(Tchunga Moyo: 용감한 마을)에는 수입 상품과 금제품이 즐비하며 가끔 불미스런 일들도 발생하므로 이곳을 여행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오래된 이 항구에는 낡고 부서진 범선들로 꽉 차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모래와 깨끗한 물을 찾아 쁘라이아 드 마꾸뜨(Praid de Macuti)를 찾아 간다.

 

 이 해변 북쪽 끝의 빨갛고 하얀 등대 근처 해안에 오래된 다 망가진 난파선이 있다.

 베이라(Beira)는 마부토(Maputo)에서 북쪽으로 880km 가량 떨어져 있으며 Maputo 또는 모잠비크, 짐바브웨에서 비행기나 기차가 일주일에 몇번 운행된다. 버스편도 있는데 버스는 마푸토에서 하루에 2번 출발한다.

 

 

항구도시 펨바(Pemba)

 펨바(Pemba)는 큰 만의 입구에 위치한 해변도시로써 몇몇 흥미로운 건물들과(특히 오래된 biixa) 활기로운 주변 환경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윔비 비치를 찾는데 이곳은 특히 산호초로 유명하다.

 윔비 비치는 도시의 5km에 위치하며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산호초 사이에서 수영하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막 시작되는 여행 산업의 영향으로 몇몇 곳에 술집이나 식당, 다이빙이나 스노우쿨링, 낚시도 즐길 수 있게 형성도어 있다.

 도심의 주요거리외 해변을 사이에 위치한 Makondo 작업장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좋은 나무조각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다.

 

 

모잠비크 섬(Mozambique Island)

모잠비크 섬은 육지에서 3km 정도 떨어져 있으나 지금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한때 동부 아프리카의 식민지 사업의 근거지가 되었던 곳이다. 이곳에는 흰두교 사원과 교회 모스크장식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곳으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유적지가 북쪽 중아 지역에 위치하며 이것들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곳 초고의 볼거리는 상파울로 예배당과 궁전인데 1700년대 통치자와 왕족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포루투칼, 아라비아, 인도, 중국에서 온 가구와 장식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Sacred Art 박물관은 종교적인 장식과 그림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섬의 북쪽에 위치한 사웅 세바스띠앙 요새(Fort of Sao Sebastido) 역시 산 역사의 증인으로 보존이 잘 되어 있다.

 

 바로 옆에 위치한 노싸 세뇨라 드 발루아르뜨(Nossa Sanhora De Baluarte) 예배당은 남반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알려져 있다. 일랴(Ilha)에는 남뿔라(Nampula)에서 버스로 직접 갈 수 있는 교통편이 마련되어 있다.

 

 

 

바자루또 아키팰러고(Bazaruto Archioelago, 해양 국립공원)

 해안선에서 약 10km 떨어져 있는 아키팰라고는 완벽한 하늘빛과 바닷물, 모래사장, 야자나무 어우러져 숨막히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산호초 사이를 오가며 수영도하고 물고기도 잡을 수 있는 이곳은 과연 지상 천국이란 말이 아깝지 않다.

 육지와 이 섬 사이의 150m 깊이의 바다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곳으로 보호되고 있다. 만약에 고급스런 롯지에서 머물고 싶다면 빌란꾹로(Vilankulo)에서 스피드 보트를 타고 이동을 할 수 있고($100) 이보다 싼 범선을 이용할 수도 있다. 

 

 

또푸 & 바라 해변(Tofu & Barra Beaches)

 길고 아름다운 해변을 가진 또푸(Tofu)와 바라(Barra)는 오래 전 전설 속의 명성을 되 찾아가고 있다. 또푸(Tofu)는 좀 더 발전이 되어 있어 교통편도 편하며 휴일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을 위한 시설로 오두막이나 깨끗하고 품격 높은 호텔 등이 마련되어 있다. 바라(Barra)는 교통 편의시설이 드물어 가기는 좀 힘들지만 조용하며 해변의 모래와 파도는 깨끗하다. 망그로브 숲에는 앵무새와 원숭이가 뛰어 노는 환상적인 전원을 선물 받을 수 있는 곳이다.

 해변에 가면 쉽게 또푸(Tofu)에 가는 교통편을 찾을 수 있다. 또푸(Tofu)로 가는길은 어디든 차로 갈 수 있으나 바라(Barra)에 가려면 길을 아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라고 드 까호라 바싸(Logo de cahore Bassa)

 해변으로부터 북서쪽으로 500km 떨어져있는 잠베지 강은 바라젱 드 까호라 바싸(Barragen de cahore Bassa)에서 제방으로 막혀있다. 이것은 1970년에 지어졌으며 아프리카에서 실행된 공사중 가장 큰 공사였다. 오늘날 이곳에 올라 주변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으로 이름이 나 있다.

 이곳에서 제방은 바라젱 드 까호라 바싸(Barragen de cahore Bassa) 골짜기에 훌륭한 풍경을 만들어내었다. 270km의 거대한 호수는 잠베지 강과 루앙가 강의 물줄기가 합류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코끼리는 전쟁 동안 고통받고 많은 수가 희생을 당했지만 지금 여행객들을 끌어들이는데 한목 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이곳을 관광하며 즐길 수 있는 부대시설이나 오락시설은 미비하여 단지 몇 가지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이 댐(Dam)까지는 차로 이동이 가능하며 버스도 송고(Songo)에서 출발하는 것이 있어 교통 편은 편리하다. 댐(Dam)의 상가 밀집 지역이나 떼뜨(Tete) 같은 곳은 거의 큰 도시에 가까우며 잠베지강에서 남동쪽으로 150km 밑쪽에 위치한다. 이곳을 방문하기 전에 허가증을 미리 발급 받아야 하며 송고(Songo)에서는 시설 좋은 숙박시설 이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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