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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정착 이전
- 수렵 및 채취경제를 한 부쉬맨(Bushman)족과 가축사육을 하던
호텐토트족(Khoi-khoi)이 오렌지강까지 진출, 17세기경까지 거주
- 잠베지강과 탕가니카호수 및 말라위호수 주변에 주로 거주하던
Bantu족의 선조들은 철기 및 금속문화를 보유하고 3세기 경 림포포강 이남으로 진출, 18세기 후반까지 오렌지강 이북 및 칼라하리 동부지역 등을
포함한 남아 전역에 퍼졌으며, 동부해안까지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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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4세기 이전에 "산"종족(San People)이 보츠와나 및 남아지역에 수렵생활을
하며 정착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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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이주 시작
- 1488 : 포르투칼의
Bartholomu Dias가 희망봉 발견
- 1647 : 네델란드 선박이 케이프에 정박
- 1652 : 네델란드 동인도회사는
자국선박의 보급기지 및 노예, 천연자원, 귀금속등 상품취득을 위해 케이프타운에 정박소를 설립, 이것이 최초의 백인 거주로
기록
- 1679 : 동인도회사 유럽 이주민들에게 토지분배를 시작, 이후 네델란드인과 독일인의 이주가 시작, 백인들의
정착농업생산 시작, 네델란드인은 전매회사를 통해 Khoi-khoi족 등과 교역을 시작, 기존 사회나 경제체제를 잠식하여 원주민들을
임금노동자 또는 노예로 전락시킴. 네델란드인들 및 종교적 박해를 피해 이주해 온 백인들은 스스로를 보어(Boer)인이라
불렀으며, 이들은 케이프타운 주변으로부터 내륙으로 이주.
- 18세기
경부터 백인들은 유색인 차별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절대권이라 주장하고 인종간의 평등제기는 백인의 생활양식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
- 18세기
경 동부해안으로 진출한 보어인들과
Great Fish강 근처에서 동케이프 지역으로 진출하던 반투족의 충돌이 시작되어 약 100년간의 분쟁 끝에 19세기 후반
반투족은 백인에게 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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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진출
- 1795~1803 : 영국은
케이프타운을 점령하였으나 곧 네델란드령으로 다시 편입
- 1806 : 영국은 케이프타운을 다시 점령하였으며 1814년 정식으로 영국령
케이프로 편입하고 1820년부터 이민을 시작하여 보어인을 내륙오지로 몰아 넣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영국인과 보어인간에
관계 악화
- 1834 : 영국정부가 노예제도를 폐지하자 보어인들은 오렌지강 이북으로 대 이주(Great Trek)를 시작,
내륙으로 진출해간 보어인은 원주민을 정복, 1852년 오렌지 자치국과 1854년 Transvaal 공화국을 세움.
이 두 보어인 공화국에서는 소수 백인의 지배권을 보호하고 기독교 문명의 우월성을 보호하기 위해 아프리카 토착인을
노예로 취급하여 백인과는 엄격한 차별 대우를 하는 관습을 확립.
- 1899 : 영국은 남아프리카(보어)전쟁을 일으켜 보어인의 두 공화국을
병합함으로써 20세기초 남아프리카에서 절대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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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연방의
수립
- 1909 : 9. 20 영국의회는 남아프리카 법(South Africa Act)을 통과시켜 마침내 오렌지 자치국, 트란스발 공화국, Cape Province, Natal등 4개 주로 된 남아프리카 연방을 수립하고 영연방 내의
자치정부라는 지위를 갖도록 함
- 1910 : 5. 31 영연방국가로 독립
- 1912 : 남아원주민
민족회의(SANNC)가 창설되어 흑인들의 반정부 운동이 조직화되기 시작하였으며 SANNC는 1923년 아프리카 민족회의(ANC)로
명칭 변경.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남아프리카인의 백인사회는 자연히 보어계(백인인구의 60%)와 영국계로 갈라지고 양자는
대립적인 관계에 서게 되었으며, 남아프리카연방이 성립된 이후에도 영국계가 상공업, 금속업 등 경제계에 두각을 나타낸 반면,
아프리카너(Afrikaner)로 개칭한 화란계는 농촌을 기반으로 하여 정계의 실권을 장악하여 왔음
- 1948 : 국민당
정권의 발족이후 남아정부는 심한 인종차별정책을 실시하였고 국민당의 기반인 보어계와 영국계 백인과의 대립으로 반영정책을 추구해
왔음
- 1953 : 반투교육법 제정으로 흑인고등교육을 제한
- 1960 : 3. 21 샤프빌에서 통행증명서 휴대에 반대하는
흑인소요사태가 발생하여 67명 사망, 200여명 부상. 1976년 유엔은 동일을 기념하기 위해 3. 21을 "인종차별철폐 국제의
날(Human Rights Day)"로 제정
- 1994 : 4. 26~29 최초의 흑백 다 인종 자유총선이 실시되고 ANC가 63%의
지지로 승리, 320여 년간의 인종차별에 의한 백인정권이 종말을 고하고 1994. 5. 10 ANC 만델라 의장을 대통령으로 하는
흑인다수정부(사실상 흑백연합정부)가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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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정부 수립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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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 5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국민당(NP), 잉카타자유당(IFP)등 3당이 참여한 거국정부(GNU:
Goverment of National Unity)가 수립되어 ANC 주도하의 민주화 과정이 원만히 추진되어 옴. 신 정부는
94년 하반기 UN, SADC, OAU, 비동맹, 영 연방등 관련 국제기구에 모두 가입한 이후 아프리카의 지도국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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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치
1918년 남아공 트란스카이의 템부부족
추장의 아들로 태어나 27년에 걸친 투옥등 험난한 투쟁 끝에 342년간
지속된 인종차별을 종식시키고 1994년 5월 10일 남아공 대통령으로 취임한
만델라 대통령이 지난 1995년 7월에 한국을 방문하였다. 다 인종
민주선거가 거행된지 3년이 지난 현재 남아공은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여
국제적으로 고립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고 만델라 대통령이 주창한
진실화해 위원회의 활동을 통하여 괄목할 만한 국민화합을 성취하고
있다.
남아공 내에서 사형제도가 지난 95년에 폐지되었고
남아공 의회의 제헌과정이 인터넷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되었고 96년에
헌법을 제정하게 되었다.
물론 만델라 대통령이 남아공의
기적을 일궈낸 주요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긴 하지만 남아공은 강력한
대통령제가 아닌 집단적 지도 체제인 내각제에 의하여 운영되는 나라라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내각제에 의한 안정적인 지도체제에
더하여 만델라 이후 시대의 지도체제 안정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바
타보 음베키 부통령은 이미 대부분의 일상적 국정운영을 담당하고 있으며
만델라 대통령이 1997년 말에 아프리카 민족의회당수직을 사임하고 나면
음베키 부통령이 그의 뒤를 이어 당수직을 맡게될 전망이다.
활동적인
야당의 부상 또한 남아공 정치 정상화에 일조하고 있으며 1995년의 성공적인
지방 선거는 남아공 사회에 민주가 굳게 뿌리박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증거다.
국내에서의 긍정적인 발전 상황은 남부 아프리카는
물론 아프리카 전 대륙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확대일로에 있는 남아공의
의미 있는 역할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남아공은 남부 아프리카
개발공동체, 비동맹운동, 유엔무역개발회의의 의장국으로 되었고 아프리카
평화유지군 조직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 왔고 콩고민주공화국(자이레)
평화 노력에 중심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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