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Tanz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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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자니아는 한반도의 4배가 넘는 넓은 국토에 4,830만 명의 국민이 살고 있으며, 국민의 98%는 반투족을 주축으로 하는 아프리카인이다.

 

 탄자니아 북부는 가장 오랜 인류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으며, 아랍과 포르투칼, 독일 등 외세의 지배를 받다가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영국의 신탁통치령이 되고, 1961년에 독립을 획득하였다. 1964년에는 잔지바르와 연합, 공화국을 형성하였다.

 

 탄자니아는 가족적 연대를 주축으로 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에 역점을 두었으나 국민경제 특히 농촌경제는 도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근년에 무역의 자유화로 만성적인 물자부족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으나, 현대 국가로서의 발돋움은 아직도 요원하다.

 그러나 인도양의 낙원 잔지바르를 비롯하여, 수많은 호수와 울창한 삼림 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야생동물의 천국으로서, 앞으로는 관광개발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현대화의 도약을 기약할 수 있는 나라이다.

 

 

탄자니아(Tanzania) 개요

o 공식명칭: 탄자니아 합중국 (The United Republic of Tanzania)

o 수도: 도도마(Dodoma. 해발고도 1,300m)

o 면적: 947,030㎢(세계 31위. 한반도의 4.3배)

o 인구: 약 6,149만 명(2022년)

o GDP: 약 659억$(2022년. 세계 75위)

o 언어: 스와힐리어(Swahili), 영어, 아랍어(잔지바르지역 공용어)

o 주요민족: 아프리칸 (참고로 120여 부족이 넘는다.99%), 아시안 (1%), 유럽인, 아랍인

o 기후: 고도에 따라 완화되는 적도기후

o 정부/의회형태: 중앙집권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o 종교: 기독교(40%), 이슬람교(30%), 토속종교등(30%)

o 화폐: 탄자니아 실링 (TZS)

o 국화:

o 국가번호: 255

o 전압: 220~240V / 50Hz

o 도메인: .tz

 

 

위 치

 탄자니아는 남쪽으로는 모잠비크 말라위 잠비아와 접해 있으며 서쪽으로는 자이르 부룬디 르완다와 접해 있고 북쪽으로는 우간다, 케냐와 그리고 동쪽으로는 인도양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가로서 동아프리카 최고 면적의 국토를 가진 나라이다.

 

지 형

 탄자니아의 면적은 945,087 km²로서 세계에서 31번째로 넓은 나라이다. 나이지리아의 크기와 비슷하며 이집트 다음가는 넓이이다.

 북동부는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 산을 비롯해 산악 지대가 주를 이루며, 북서쪽에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넓은 빅토리아 호와 아프리카에서 가장 깊은 탕가니카 호등 호수 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중부 지방은 넓은 평원과 경작 지대가 펼쳐져 있다. 동쪽 해안 지대는 덥고 습하다. 웅구자 섬(잔지바르 섬)은 바로 동쪽 해안에 접해 있다.

 탄자니아에는 북쪽의 응고롱고로 분화구와 세렝게티 국립공원, 남쪽의 셀로우스 사냥 제한지역미쿠미 국립 공원 등을 포함해 생태학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광대한 규모의 야생 공원이 여럿 있다. 서쪽의 곰베 국립공원은 제인 구달 박사의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곳이다.

 한편, 탄자니아 정부는 관광부를 통해 남서부의 칼람보 폭포를 탄자니아의 주요 관광지중 하나로 육성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칼람보 폭포는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높은 폭포이며, 탕가니카 호수의 남쪽 끝단에 위치하고 있다.

* 메루산 - 4556m

* 킬리만자로 - 5896m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

 

기 후

 케냐의 국경을 따라 북동쪽으로 킬리만자로(Kilimanjaro) 산과 메루(Meru) 산이 우뚝 솟아 있어 이곳 주변으로 지구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의 누, 가젤, 얼룩말, 영양 등 어마어마한 수가 서식하고 있다. 특히 코끼리, 버팔로, 하마, 악어, 들개, 침팬지등이 이곳에 집중적으로 서식하고 있다. 북동쪽 지역은 일년 내내 기온이 쾌적하여 사파리를 즐기기에 좋다. 우기철에는 매일 엄청난 양의 비가 오는 대우기 이기 때문에 3월에서 5월까지는 피하는 것이 좋다. 11월에서 1월에도 소우기가 있어 길지는 않지만 비가 오가 많이 오는 시기이다.

 해안지대는 인도양에서 계절풍이 불어오기 때문에 평균기온 25.8℃로 고온다습하지만, 내륙은 기온의 차이가 심하고 평균기온 22.6℃이다. 북부 산간지대, 빅토리아 호 연안은 습도도 기온도 높고 일정하다. 우기와 건기는 명확히 구분된다. 3~5월이 대우기, 10월~11월이 소우기. 연간 강우량은 1000mm정도로서 해안지대에 강우량이 많고, 내륙은 아주 적은 편이다.

 

 

탄자니아 약사

 1880년대까지 잔지바르 왕국의 영향권에 있다가 1891년에 독일령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령이 되어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를 받고, 1946년부터 유엔의 신탁통치를 받았다. 1961년 12월 9일 영국에서 독립하여 영연방에 속하는 탕가니카공화국이 되었다.

 한편, 잔지바르는 1963년 12월 입헌군주국으로 독립하여 유엔에 가입하고, 이듬해 1월 혁명으로 잔지바르 공화국으로 바뀌었으며, 10월에는 탕가니카공화국과 연합하여 탄자니아공화국으로 개칭되었다.

 초기인 1967년 대부분의 주요 생산수단을 국유화하여 사회주의 노선을 강력하게 추진하였으나 경제적 성과가 뚜렷하지 않자 1970년 말 실용주의적 노선을 일부 채택하였다. 1977년 4월 헌법을 제정하고 1980년대 중반부터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완화하고 산업의 효율화를 위한 민간경제의 활성화를 모색하고 있다.

 탄자니아는 과거 비동맹중립·범아프리카주의, 공산국가와의 친밀한 관계 유지, 서방측과의 관계 향상을 통한 원조 획득 등을 특징으로 한 외교정책을 전개하면서 좌경중립의 외교를 펴고 있으며, 1961년 유엔에, 1964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1990년 이후 전세계적인 민주화 추세에 따라 점진적인 정치체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2005년 12월에 키크웨테(Jakaya Kikwete) 대통령이 취임하여 정부를 이끌고 있다.

 

1856   잔지바르, Oman 술탄령

1885-1916   탕가니카, 독일 보호령

1890   잔지바르, 영국 보호령

1916   세계1차대전 중 영국군, 탕가니카 점령

1919-1961   탕가니카, 영국 위임통치령

1962.12.9   탕가니카공화국 독립(초대대통령 Julius K. Nyerere)

1963.12.10   잔지바르 술탄령 독립(초대대통령 Abeid Karume)

1964.4.26   탕가니카공화국과 잔지바르공화국 합병

1965.9.21   총선 실시(Nyerere 대통령 재선)

1965.9.30   내각 구성, 탄자니아합중국(United Republic of Tanzania) 정식 발족

1967.   Arusha 선언(주요산업 국유화)

1977.2.5.   Tanzania 본토의 TANU당과 Zanzibar의 Afro-Shirazi 당의 합당으로 혁명당(CCM) 구성, Nyerere의 정치기반 확립

1978.12 - 79.05   우간다와 전쟁(전비 : 총 5억불)

1979. 11.   Zanzibar 별도 자치 헌법 제정

1980.10.26.   총선 실시, Nyerere 제5대 대통령에 당선

1983.1.   쿠데타 불발

1984.4.   Ali Hassan Mwinyi, 잔지바르 대통령 피선

1984.10.   대통령 권한 제한 및 의회 권한 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헌법 개정

1985.1.   Zanzibar 신헌법 채택

1985.8.   Ali Hassan Mwinyi, 제6대 대통령에 당선

1985.10.   Idris Abdul Makil, Zanzibar 대통령에 피선

1987.10.   Nyerere, CCM당 총재 재선

1990.8.    Mwinyi, CCM당 총재 피선, 총선 실시(241석)

1990.10.28.   Mwinyi, 제7대 대통령 당선, 11.10. 취임.

1992.5.8.   다당제도입 헌법 개정안 가결, 7월부터 재야정당 등록 허용

1992.12.   Mwinyi, CCM당 총재 재선

1995.10.   대통령선거 및 총선 실시.

- Mkapa 제 8대 대통령 당선(11.23.취임)

- Dr. Salmin Amour 잔지바르대통령 당선 (10.27.취임)

1996.3.14.   탄자니아, 우간다, 케냐, 동부아프리카협력체(East African Cooperation) 재출범

1996.6.22.   Mkapa대통령, CCM당 총재 피선

1997.10.10.   Mkapa대통령, CCM 전당대회에서 총재 재선

2000.10   대통령선거 및 총선 실시.

- Benjamin William Mkapa 제 9대 대통령 당선(2000.11.9. 취임).

- Amani Abeid Karume 잔지바르 대통령 당선(2000.11.8. 취임)

2001.1.15   EAC 공식 출범

 

 

방문시기

 1 월과 2 월 사이에 이곳을 방문하면 덥지만 건조한 기후로 가장 상쾌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비 자

 탄자니아 비자는 도착 후 공항에서 발급받는 도착(arrival) 비자이고 서울주재 탄자니아 명예 총영사관에서 미리 발급받을 수도 있다.

 

 

문 화

 탄자니아에 분포하고 있는 부족의 수만 해도 120여 부족이 넘는데 총인구 4,830만 중에서 98%가 반투계 중심의 아프리카인이다. 그밖에 아시아계 약 19만 명, 아랍 유럽계가 약 10만 5000명이다.

 종교는 잔지바르의 97%, 본토의 60%가 이슬람교이고 그리스도교는 20%이다.

 마사이족은 주로 Engai와 Kindong’oi라는 신을 섬기며 나머지는 각 부족 고유의 전통적 종교를 가지고 있다.

 언어는 스와힐리어와 영어가 공용어이며 잔지바르에서는 아리비아어도 쓰이지만 스와힐리어가 주로 쓰이기 때문에 이를 배우려는 관광객이 모여드는 곳 이기도하다.

 그밖에 반투계 언어도 쓰이고 있다 대다수의 국민이 영어를 할 줄 알기 때문에 영어를 사용할 줄 안다면 불편함을 느끼지않을 수 있다.

 탄자니아의 음악과 춤은 동부 아프리카에서 유난히 발전된 곳이다. 강한 리듬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음악은 그에 어울리는 춤을 이끌어 내었다. 레미 온갈라(Remmy Ongala)는 탄자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가로 아프리카 전역에서 사랑받고 있다.

 케냐와 탄자니아는 인접국 이긴 하지만 식생활은 약간 차이가 있다. 탄자니아 음식들은 별로 구미에 맞지 않지만 쉽고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대표적 탄자니아 음식이다. 잔지바나 펨바 해안에서는 스외힐리 전통식인 바다음식이 주를 이루고 있어 콘야기(Konyagi)라고 불리는 투명한 럼주와 곁들여 먹으면 일품요리가 될 것이다.

 

 

탄자니아 여행 도우미

여행시즌

 탄자니아에는 두 시즌간의 우기가 있다. 3월~6월까지의 대우기와 11월~1월까지의 소우기가 그것이다. 대우기 동안에는 폭우와 함께 폭풍이 동반되기도 하지만 소우기 동안에는 덜 심각하다. 이러한 기후를 고려할 때 탄자니아를 여행하기에 좋은 시기는 지역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다.

- 북탄자니아 : 7월~10월, 12월~3월

- 남탄자니아 : 6월~10월

- 쟌지바르, 펨바, 마피아 : 7월~10월, 12월~3월

- 서부탄자니아 : 5월~10월

 

준비물

 물자부족이 심하므로 모든 일용품은 충분하게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상비약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옷은 열대 기후에 알맞게 준비해 가야 하는데, 고원지대의 밤기온은 생각보다 싸늘하므로 소매 긴 옷과 긴 바지를 꼭 준비할 것. 소매 긴 옷은 이슬람권에서는 관광에 반드시 필요한 옷차림이다.

 

주의사항

- 탄자니아에서는 미국 달러의 통용도가 높다. 달러 표시 여행자 수표는 사용범위가 넓고, 영국의 버클리즈 은행이나 토머스 쿡 회사의 여행자수표는 더 광범위하게 쓰인다. 크레디트 카드는 VISA, AMEX, Diners Club이 관광업소에서 사용된다.

- 팁은 포터에게는 짐 1개당 5~10Tsh, 레스토랑에서는 요금의 10% 정도를 팁으로 준다.

- 최근 외국인을 상대로 한 범죄가 도시는 물론 교외지역에서도 늘고 있다. 버스나 기차를 탈 때 주의해야 하며 놀이동산 근처를 드라이브 할 때도 주의해야 한다. 범죄와 도로사정이 좋지 않은 관계로 밤시간의 관광은 매우 위험하다.

- 운전시 우리나라와 반대인 우측 핸들 사용한다.

 

 

 관광 명소

다르에스살람 (Dar es Salaam)

 탄자니아의 수도 다르에스살람은 아랍어로 '평화로운 천국'이라 불리는 항구이다. 문자 그대로 파도가 잔잔한 천혜의 항구로서 금세기 중엽까지 계속된 식민지 탕가니카의 수도(1961~1964)이며, 아울러 동아프리카 연안 무역의 중심지로서 번영했었다. 1860년 잔지바를 지배하고 있던 술탄이 이곳을 항구도시로 건설했다.

 지금은 탄자니아의 옛 수도로서 약 인구 520만 명.

 

 몸바사, 마푸토와 함께 동아프리카의 3대 항구도시로 꼽힌다. 지금도 이곳엔 많은 아랍인들의 범선이 바쁘게 드나들고 있다.

 

 공항으로부터의 버스는 우후루 공원에 있는 음나지 음모자에 정차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은쿠루마 스트리트와 사모라 애버뉴쪽으로 향해 가면 시계탑이 나오며 그 로터리의 우측에 역이 있다. 이 시계탑과 카리아쿠 마켓(Kariakoo Market)이 있는 곳이 가장 번화한 거리이다.

 

 

 각지의 주요 도시로 주 1~2회 기차가 출발하며 육로를 통해 입국하는 경우 모롱고로 로드의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택시는 타기 전에 반드시 합의를 보는 것이 좋다.

 

 

 다르에스 국립 박물관은 도심에 위치하고 있다. 올드바이 계곡에서 발견된 진잔트로프스 보이세이 유골과 식민지 시대의 사진 및 그림, 별관에 있는 탄자니아 각지의 공예품, 악기, 도구류 따위가 전시되어 흥미진진한 시간이 될것이다. 이곳에서 카메라 촬영은 안된다.

 

 역 근처에 버스 정류장에서 102번 크웰게행 버스를 타고 10km 정도 벗어나면 탄자니아 각지 부족들의 주거 형태를 재현해 놓은 곳으로 민속 박물관이 있다. 휴일에는 민속무용도 볼 수 있으며 입장료는 약 1,800Tsh.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가면 별도로 2,400Tsh를 더 내야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도심에서 멀지않은 곳에 위치하며 또한 아름다운 오이스터 해변(Oyster Bay)은 무사사니 로드를 자동차로 10분 정도 달려가다 보면 위치해 있다. 다르에스살렘에 머무는 동안 호텔을 찾는 일이 좀 어려울 수 있다. 언제나 관광객들로 북적이기 때문에 싼 곳이든 비싼 곳이든 미리미리 예악을 하는 것이 좋다. 다르에스살렘은 탄자니아의 국제선 항공회사 사무실 대부분이 위치하고 있어 이곳에서 예약이나 발권등을 하면된다.

 

 Tazara 기차는 다르에스살렘과 카프리음포시(Kapri Mposhi, 잠비아)를 잇고 있다 . 다르에스살렘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인 만큼 호텔 바탕 등이 임시 디스코장을 만들기도 하고 카리아코 시장 앞의 D.D.C.도 토요일 밤에는 디스코장이 된다. 재즈의 원류인 아프리카 음악과 젊은이들의 열기. 한번 가볼 만한 가치가 있다. 엄청나게 시끄러운 가운데 술을 마시고 흥청대는 여느 도시와 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은 산업의 중심지이며 주요항구로 기후는 연강우량이 1,100㎜로 무덥고 습기가 많다. 다르에스살람('평화로운 안식처, 평화의 집, 평화의 땅'를 뜻하는 아랍어 '다르살람'에서 나온 이름)은 1862년 잔지바르의 술탄에 의해 음지지마라는 마을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는데, 1887년 독일 동아프리카회사가 이곳에 철도역을 세우기 전에는 작은 항구에 지나지 않았다.

 

 다르에스살람은 중앙선 철도의 출발점으로서(1907) 독일령 동아프리카의 수도(1891~1916)와 탕가니카의 수도(1961~1964)였으며, 그뒤 탄자니아의 수도가 되었다.

 

 1974년 도도마가 새로운 수도로 결정된 이후로는 공식기능이 완전 이관될 때까지 탄자니아 정부의 일시적인 소재지가 되어 있다. 현재 이 도시는 탕가니카 호 연안의 키고마로 가는 서부철도와 빅토리아 호 연안의 므완자(Mwanza)까지 가는 북부철도의 출발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히 발전하여 종합병원과 공과대학 및 고등법원을 비롯한 현대식 고층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1961년 설립되어 1970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다르에스살람대학교, 몇 개의 도서관과 연구소 및 국립박물관(1959년 메리 리키가 올두바이 협곡에서 발견한 175만 년 전의 사람 두개골이 소장되어 있음)이 있다.

 

 다르에스살람의 자연적으로 형성된 내륙항구는 탄자니아 본토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광산물 대부분을 수출하는 항구이다. 또한 콩고 강으로 가는 배가 반드시 거치는 항구이며, 여기서 철도를 이용하면 콩고 강의 지류인 루알라바 강(항행 가능)까지 갈 수 있다. 그밖에 1975년에 완공된 탄잠 철도는 잠비아와 다르에스살람의 항구를 이어준다. 이 지역 주산물로는 비누· 페인트· 담배· 식료품· 금속제품· 유리제품· 직물·목각제품· 구두 등이 있다.

 

 

국립박물관

 올드바이 계곡에서 발견된 진잔트로프스 보이세이 유골과 식민지 시대의 사진 및 그림, 별관에 있는 탄자니아 각지의 공예품, 악기, 도구류 따위가 있다.

* 개관은 09:30~18:00. 카메라 촬영은 안된다.

 

민속 자료관

 역 근처에 버스 정류장에서 102번 크웰게행 버스를 타고 마쿰부쇼에서 내린다. 탄자니아 각지 부족들의 주거형태를 재현해 놓은 곳으로 휴일에는 민속무용도 볼 수 있다.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가면 별도의 요금을 더 받는다.

* 개관은 09:00~18:00

 

오이스터만(Oyster Bay)의 해변

 무사사니 로드를 자동차로 10분 정도 가면 위치해 있다. 해변에는 호텔도 있다. 시내버스의 무사사니행이나 택시로 갈 수 있다.

 

쿤두치 해변

 시내로부터 약 10km 정도 떨어진 곳. 파란 하늘과 산호가 투명하게 들여다 보이는 바다가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휴양지. 대안의 봉고요섬이라는 작은 섬으로 해변에 있는 3곳의 호텔에서 보트가 떠나고 있다.

 

 

 

 

 

빅토리아 호수(Lake Victoria) = 냔자(Nyanza) 호수

 동부아프리카의 우간다, 탄자니아, 케냐 국경부에 있는 이 호수는 폭 250km, 길이 410km, 평균수심 75m, 호수둘레 3,000km, 평균면적 69,490㎢에 이르는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담수호이다. 최고수심은 88m로 규모에 비해 수심은 그리 깊지 않다. 냔자(Nyanza) 호수가 유럽인들에게 최초로 알려진 것은 1858년 영국의 탐험가 존 해닝 스피크(J H Speke)에 의해서 였고 빅토리아호수라는 이름 역시 이 탐험가에 의해(당시 영국 여왕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빅토리아호의 훼손은 20세기 초 유럽의 식민정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차, 커피, 설탕 등의 작물재배를 위해 호수 주변의 원시림을 밀어내면서 시작된 농업으로 인해 노출된 토양 표층의 흙은 비료, 농약과 함께 우기가 올 때마다 호수로 유입되었고, 이로 인해 호수의 유기물이 크게 늘면서 여러 수초(이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물히야신스(water hyacinth, 부레잠옥)라 불리우는 부레옥잠 종류이다.)와 담수조류(algae, 淡水藻類)가 호수에 크게 번성하게 되었다.

 

 또한 이 농사에 필요한 많은 인구가 대거 유입되면서 빅토리아호에서의 어업 역시 과거의 전통적인 소규모 방식과는 크게 달라져 대규모 기업화되었다.

 

 이로 인해 전에 빅토리아호에서 많이 잡히던 어종인 Ngege(Oreochromis esculentus)는 1950년대에 이르러 거의 멸종 위기에 이르렀는데 당시 영국관리들(우간다는 1962년, 케냐와 탄자니아는 196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이 이를 타개하기 위해(호수의 다른 어종 개체수를 조절하면서 좀 더 큰 물고기를 잡고자 하는 어업을 목적으로) 1954년에 빅토리아 호수에 도입한 어종이 "나일 틸라피아(Oreochromis niloticus)"이고 1955년에 도입한 어종이 "나일 퍼치(Lates niloticus)"이다.

(하지만 1955년보다 훨씬 이전부터 빅토리아호에서 나일퍼치가 존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1954년 이전에도 북부아프리카의 고원지대 계곡에 낚시를 취미로 하던 영국식민주의자들이- 어업이라는 측면이 아니라 고향인 영국에서 하던 낚시를 계속 즐기기 위해- 여러 송어류를 방류한 일이 있는데 이와 비슷하게 빅토리아 호에도 나일퍼치를 방류했다는 이야기이다. 다른 목적이 아니라 바로 "낚시"를 하기 위해서.)

 

 

 

세렝게티 국립공원(Serengeti National Park)

 세렝게티란 마사이어로서 '끝없는 평원'이라는 의미이다.

 14,763㎢의 광활한 초원으로 이곳을 누비는 영양의 일종인 누 무리를 보면 웅대한 자연의 신비 앞에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북쪽으로 케냐의 마사이마라 동물보호구역과 맞닿아 있고 서쪽은 빅토리아호 8km, 남쪽은 마스와 동물보호구역까지 이어져 있다.

 총면적 1만 4,763㎢ . 표고 1,600m의 평원에 약 400만 마리의 동물이 산다. 대형 초식동물 30종 이상 조류는 500종 이상으로 5~7월 건기에는 회유 이동현상이 일어난다. 얼룩말과 누가 풀을 찾아서 대이동을 시작한다.

 

 이 공원 중앙부의 세로네라 부근에서 서쪽의 빅토리아 호, 또는 그 북쪽의 케냐의 마사이 마라로 이동한다. 그리고 소우기인 11월에는 세렝게티로 돌아온다. 누의 수는 약 200만 마리이다. 세렝게티의 약 300만 마리 초식동물 중 1/3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누인데, 누는 4월부터 8월에 걸쳐서 세렝게티 대평원에서 북쪽의 케냐 국내에 있는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으로 풀을 뜯기 위해 약 500km의 대이동을 한다. 누 외에도 얼룩말, 톰슨 가젤 토피(영양의 일종), 임팔라, 기린, 들소, 코끼리 따위를 구경하면서 평원을 달리다 보면 도로는 세렝게티의 한복판인 세로네라로 이어진다.

 

 전에는 암보셀리에 있는 텐트 캠프만 있었지만 현재는 바위산 위에 세워진 세로네라 야생 동물보호소도 두러 볼 만한 곳이다.

 

 

 

 나이로비에서 출발하여 아루샤, 마냐라호, 응고롱고로 연보호구, 세렝게티 국립공원, 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를 거쳐 다시 나이로비로 되돌아 오는 것이 가장 잘 알려진 코스로 동물들을 관찰하기 가장 좋다. 그러나 현재는 세렝게티 국립공원~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 사이가 폐쇄되는 경우가 많아 사전에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다. 이곳을 여행하려면 반드시 4륜 구동차가 필요하다.

 

 세렝게티로 가는 일반적인 방법은 아루샤에서 응고롱고를 통과해서 가는 방법이다. 응고롱고로 분화구 사이를 달려 오른쪽에 있는 크레타 분화구 아래 길을 뒤로 하고 산을 돌아 들어간다. 응고롱고로의 서북쪽에는 대초원이 펼쳐져 있다. 

 

 

 

응고롱고로 (Ngorongoro Conservation Area)

 공원의 북동쪽에 위치한 너비 20km, 길이 600m의 응고롱고 분화구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은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밀림으로 우거진 숲을 걸어 내려 오다 보면 흡사 에덴동산에 올라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며 흥분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응고롱고로 자연보호구는 남북 16km, 동서 19km, 깊이 600m라는 세계 유수의 분화구로서 539㎢의 분화구 평원에는 기린을 제외한 아프리카의 수많은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응로공로고'는 '큰 구멍'을 뜻하는 마사이어로서, 이 보호구역의 총면적은 6,475㎢이다. 응고롱고로는 아루샤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180km 지점에 있다. 분화구에 들어가려면 분화구 서비스 요금이라고 해서 분화구로 내려갈 때 1인당 10US$를 받는다. 분화구 안으로는 4륜 구동차량 이외에는 들어갈 수 없으며 개인적으로 여행 온 사람들은 전날에 호텔 프런트에서 4륜 구동차량을 예약하거나 아침에 직접 관광 안내소로 가서 신청해야 한다. 분화구 안으로 들어가는데는 코스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자유로이 루트를 선택할 수 없다.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은 도로 쪽이 좁아서 자가운전을 할 경우에는 루트를 미리미리 인지하고 가는 것이 안전하다.

 

 마가디(Magadi) 호에서 몇 km 떨어진 마사이족이 가축을 키우며 살고 있으며 마을엔 민속 공예품을 파는 시장도 있고 몇몇 저렴한 숙박지도 있다. 이 마을에서 수림지대를 따라 5km 정도 달리면 응고롱고로 공원이 나온다. 세렝게티 주변의 호수에는 하마를 볼 수 있는 습지대와 마가디(magadi) 호수에는 홍학과 펠리컨 등의 무리가 서식하고 있어 볼거리가 풍성하다.

 

 

 

 

응고롱고로 분화구(Ngorongoro Crater)

 응고롱고로 분화구(Ngorongoro Crater)는 아루샤 시에서 서쪽으로 120㎞ 떨어져 있으며, 분화구 가장자리가 2,400m까지 올라서 있는 반면, 밑바닥은 가장자리보다 1,700m 낮다.

 

 사냥감이 많은 이 분화구는 아프리카의 주요보전지구 중의 하나인 응고롱고로 국립공원(1956)의 중심지로 '달의 분화구(Crater of the Moon)'와 같은 장관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응고롱고로 분화구(Ngorongoro Crater)는 탄자니아에 있는 초대형 화산(초화산) 분화구로, 칼데라 지형이다.

 

 화구 중앙에는 화구호가 있으며, 많은 아프리카의 야생동물의 터전이 되었다. 사자, 물소, 치타 등의 야생 동물이 살고 있다. 지금은 사화산 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분화를 했을 것이다.

 

칼데라 지름은 20km 이상이다.

        

 

 

 

올두바이 계곡(Olduvai Gorge)

   - 태초의 인류를 찾아서

 아루샤에서 약 180km 떨어진 곳. 응고롱고로 분화구에서 세렝게티 나비힐 게이트(Naabi Hill Gate)로 가는 길에 올두바이 계곡이 있다.

 

 올두바이 계곡에서 발굴된 화석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18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Australopithecus Boisei) 두개골이다. 1959년에 메리 리키(Mary Leakey)에 의해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 두개골은 인류진화의 놀라운 발견이었다.

 

 두개골은 '호두를 까는 연장(Nutcracker)'라는 의미의 커다란 어금니 때문에 진잔트로푸스(Jinjanthropus)로 불리기도 한다.

 

 1972년에는 올두바이 계곡에서 남쪽으로 45km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된 발자국은 약 370만 년이나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을 기본으로 케냐와 에디오피아에서도 다른 화석이 발굴되었다. 발굴지를 보기위해 계곡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박물관도 있다.

 

 

 

 

아루샤 (Arusha)

아루샤(Arusha)는 메루 산과 킬리만자로 산의 기슭에 위치한 고원도시로 메루 산과 주변일대가 아루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관광 도시이다. 탄자니아의 가장 매혹적인 도시중의 하나로 아루샤는 걸어서 시내구경을 할 수 있는 작은 타운으로 시장주변 들이 활기가 넘쳐흐른다. 케냐 나이로비와 탄자니아 다르살람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며 세렝게티, 응고롱고로, 킬리만자로 산으로 가기 위한 관문 도시이다.

 

 

 아루샤(Arusha)는 1963년에 세워졌으며 북쪽으로 케냐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북서부에 세렝게티 평야가 있고, 남부에는 고립된 편마암 구릉들에 의해서만 끊기는 마사이 대초원이 있다.

 

 중부지역에는 크레이터 고지가 있어 동아프리카 지구대에 속하는 구역들과 경계를 이룬다. 화산활동과 단층운동에 의해 넓은 용암평야들과, 화산성 산괴들인 메루 산(4,566m), 간간이 활동하는 올도이니오 렝가이(해발 2,878m) 등이 형성되었다. 연강우량은 메루 산의 1,800㎜에서 반건조 평원의 508㎜까지 다양한 분포를 보인다. 지형은 입목 사바나 지대와 저산대 삼림지에서 고산지역까지 분포한다.

 

 아루샤는 주요 커피 산지이며, 그밖의 작물로는 곡류· 채소· 목화· 제충국(除蟲菊)· 파파인· 사이잘삼· 해바라기씨 등이 있다. 마그네사이트와 해포석(海泡石)이 채광되며, 암염· 운모· 초석(礁石)· 석간주 등의 광상이 있다. 관광산업도 한몫을 하고 있으며 타란키레 국립공원의 대형동물 사냥터, 응고롱고로와 응구르도토 분화구, 올두바이 협곡, 마니아라 호(湖) 등이 주요관광지로 꼽힌다.

 

 아루샤 주에 사는 종족을 민족언어학적으로 분류하면, 아루샤족·메루족·이라쿼족·마사이족 등으로 나누어진다. 아루샤 시는 이 주의 주도로서 산업 중심지이기도 하다.

 

 

 

잔지바르 (Zanzibar)

o Dar es Salaam에서 선편으로 1시간 반, 비행기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섬으로 회교 도시

 

o 면적: 1,666㎢.     o 인구 약 8만여 명

 

o 오만 슐탄(Sultan) 지배시 번영했던 곳으로 곳곳에 동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으며 특히 동쪽 해안의 해변(Beach)이 아름다워 많은 유럽인들이 몰려들고 있음.

 

o Stone Town, Palace Museum, 잔지바르에만 있는 "Colobus" 원숭이(red monkey) 및 죄수들을 가두었던 Prison Island(현재 대형거북이 서식지)등 구경거리가 있음. 동쪽 해안의 경관이 아름다움.

 

 파란 바다와 하얀 구름 사이로 떠가는 다우(잔지바르 전통 배)가 아름답게 펼쳐진 아름다운 섬 잔지바르.

 

 옛날부터 인도양을 중심으로 하는 무역의 중심지로 많은 다양한 문화들이 섞여 고유의 잔지바 문화를 이끌어냈다.

 

 '스파이스 섬(Spice Island)'로 불릴 만큼 다양한 향신료가 생산이 되며 여러가지 열대과일도 풍부하게 재배가 되고 있다. 일명 프리즌 섬(Prison Island)라고 불리는 '창구섬(Changuu Island)'는 세계에서 가장 큰 거북이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SEA STAR, FLYING HORSE, SEA BUS, SEPIDEH 등의 배들이 다르살람과 잔지바를 하루에 네 차례씩 연결해 주고 있다.

 

 잔지바 섬 북쪽으로 50km 떨어진 곳에 기름진 땅인 펨바 섬이 있다. 잔지바 섬의 1/3 크기지만 향신료 생산은 두 배나 된다.

 

 

 1964년 잔지바르는 펨바(Pemba) 섬 및 그밖의 보다 작은 몇 개의 섬들과 함께 본토의 탕가니카와 합하여 탄자니아 연합공화국을 형성했다. 잔지바르와 펨바는 한때 아프리카 대륙의 일부였는데, 530만~2,370만 년 전의 마이오세에 펨바가 분리되고 160만~530만 년 전의 플라이오세나 그후에 잔지바르가 분리된 것으로 여겨진다(펨바 섬).

 

 온갖 종류의 석회석이 두 섬의 기반을 이루며, 인접한 본토의 충적층과 비슷한 각종 퇴적물과 함께 융기된 모래밭과 사암도 나타난다. 석회석의 광범위한 풍화는 침식 및 지각 운동과 결합하여 적토·흑토·점토·사질토를 포함한 각종 토양을 만들어냈다.

 

 잔지바르의 동부·남부·북부 및 서부의 섬들에는 산호성 석회암의 평지가 나타난다. 산호는 얕은 적토나 충적토로 덮인 곳이 많다. 본토에서 다가가면서 볼 때 잔지바르는 대체로 작은 산등성이들이 남북으로 뻗어 있는 길고 낮은 섬으로 코코야자나무와 그밖의 식생이 지표를 덮고 있다. 최장 길이는 85㎞이고, 너비는 39㎞이다. 중앙 능선의 최고봉은 마싱기니로 해발 119m이다. 보다 높은 땅은 완만한 기복을 그리며, 거기서 몇 개의 작은 강이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거나 산호지역에서 사라진다.

 

 기후는 전형적인 열대 도서의 습한 기후이며, 연평균강우량은 1,500~2,000㎜에 달한다. 강우는 동아프리카 대부분의 지역에 비해 고른 분포를 보인다. 12~3월에는 북동무역풍이 불고, 5~10월에는 남동무역풍이 분다. 3~5월에는 장마비가 내리며, 10~12월에는 잠깐씩 비가 내린다. 자생림(自生林)의 작은 구획들과 고립된 큰 나무들은 이 섬의 많은 부분이 원래 짙은 상록의 밀림으로 덮여 있었다는 견해를 뒷받침해준다. 산호가 노출된 광야에는 짙은 잡목숲이 있고, 평탄한 점토질의 평원은 풀로 덮여 있다.

 

 주요야생동물로는 잔지바르산(産) 표범, 사향고양이, 몽구스, 2종(種)의 원숭이, 레무르(여우원숭이), 아프리카돼지, 삼림다이커(숲속에 사는 작은 영양류), 난장이영양, 약 20종의 박쥐, 그리고 30종의 뱀이 있다. 우기에는 모기가 엄청나게 번식한다. 허리노린재류와 같은 코코넛을 좀먹는 해충, 체체파리와 진드기(소에게 동해안열병을 옮김) 같은 동물 기생충들은 연구와 억제의 대상이 되어왔다.

 

 잔지바르 섬의 남부와 동부 지역에는 반투어(語)를 쓰는 하디무족이 주로 거주하고, 잔지바르 섬의 북부와 그에 인접한 툼바투 섬은 반투어를 쓰는 또다른 종족인 툼바투족이 차지하고 있다. 이 두 종족이 잔지바르에 최초로 들어온 종족이다. 이들은 19세기 내내, 그 후에도 나중에 도착한 종족들(특히 아랍족)에게 섬의 서부와 보다 비옥한 지역의 땅을 빼앗겼다. 그러나 1964년의 토지 국유화에 이은 경제개혁으로 토지가 재분배되었다. 어업은 해안 마을들에서 전통적으로 중요한 생업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는 고도로 아랍어화한 스와힐리어(키스와힐리어)이다. 반투계(系)의 언어들이 존속하며 아프리카 토착민들에 의해 쓰이고 있다. 아랍인들 사이에서는 일상어로 보통 스와힐리어가 쓰이며, 순수 아랍어는 학자들과 최근에 아라비아에서 온 사람들에 한정되어 쓰이고 있다. 구자라트어· 힌디어· 우르두어· 콩카니어는 아시아계 사람들이 사용하며, 영어와 스와힐리어가 가장 널리 쓰인다.

 

 동아프리카 본토의 항구들이 개발되기 전에는 잔지바르가 이 지역의 무역 중심지로 중계무역이 성했으나, 오늘날 이곳의 경제는 농업과 어업에 의존하고 있다. 비옥한 토양의 땅이 상당한 면적에 달하고 기후 조건이 좋아 각종 열대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향(丁香)과 코코넛이며 벼· 카사바· 마· 열대과일 등의 식량작물도 재배된다. 물고기는 주민들의 식생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며, 주민의 약 1/10이 근해 어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잔지바르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지리적 조건이다. 이 지역에서 부는 탁월풍으로 인해 잔지바르가 인도양 무역의 직항로상에 놓이게 되어 아라비아, 남부아시아, 아프리카 본토로부터 상인들과 식민지 개척자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초로 이주해온 사람들은 아프리카인이었고 그 다음이 페르시아인이었는데, 페르시아인은 10세기에 잔지바르에 상륙하기 시작했고 단기간에 현지민들에 흡수되어 독립된 집단을 이루지는 않았다. 그들의 영향은 이질적인 부락들이 점차 통합되어 하디무와 툼바투로 알려지게 된 두 농촌 부족이 형성되는 것으로 남았다.

 

 아프리카·페르시아 부족들은 이슬람교로 개종했고, 페르시아의 많은 전통을 수용했다. 오늘날에도 잔지바르의 아프리카계 주민 대다수는 자신들을 '시라즈인'으로 자처하는데, 이는 최초로 내도한 페르시아인들의 고국인 고대 페르시아의 시라즈 공국 사람이라는 뜻이다.

 

 잔지바르에 가장 깊은 영향을 끼친 것은 아랍인들이었는데 그것은 아프리카로 노예 원정을 다니고 원양 무역을 하는 아랍인에게 잔지바르가 중계무역의 최적지였기 때문이었다. 오만에서 온 아랍인들이 잔지바르에 상인과 지주들의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함으로써 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들은 결국 이 섬의 귀족 계급이 되었다(노예무역).

 

 그후 16세기에는 포르투갈 사람들이 내도하여 동아프리카 해안의 모든 해항을 정복했다. 그 가운데는 가장 부강한 몸바사를 비롯하여 잔지바르와 같은 섬들,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를 포함한 아라비아 해안지역이 포함되어 있었다. 포르투갈인의 주된 목적은 정치적인 제국의 수립이 아니라 상업이었기 때문에, 17세기중에 그들의 세력이 약화되었을 때 그들은 체류했던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고 떠났다.

 

 1650년에 무스카트의 포르투갈인을 몰아내고 전지역에서 그들에 대항하는 주도적인 세력이었던 오만의 아랍인은 점차 잔지바르를 포함한 많은 개척지에 대해 최소한 명목상의 지배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연이은 왕조 전쟁과 아프리카 해안의 영토를 상실하고 획득하는 오랜 분쟁을 거친 후 오만의 통치자가 된 사이드 이븐 술탄은 수도를 무스카트로부터 잔지바르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잔지바르 섬이 전략적으로 중요했을 뿐만 아니라, 18세기말과 19세기초에 남·북아메리카에서 농장 노예를 필요로 하게 되어 노예 무역량이 급격히 팽창한 결과 잔지바르가 아프리카 내륙으로 통하는 노예 및 상아 무역로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잔지바르 자체에 코코넛·정향·식량 등의 중요한 자원이 있기도 했으므로 술탄은 1832년에 잔지바르를 수도로 삼았다.

 

 1861년에 잔지바르는 오만으로부터 분리되어 독립된 술탄국이 되었으며, 사이드가 획득한 아프리카의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다. 그러나 술탄 바르가시(1870~88 재위) 시대에 영국과 독일이 아프리카 본토에 있는 잔지바르 영토의 대부분을 점령·분할하고, 나머지 해안지역에 대한 경제적 지배권을 확보했다. 1890년 영국은 잔지바르를 본토령으로 선포했으며, 술탄의 권위는 격하되고 노예 무역은 금지되었다(대영제국).

 

 1963년 술탄국은 독립을 되찾고 영국 연방의 일원이 되었으나 1964년 1월 좌파에 의한 반란으로 술탄국이 전복되고 1당 체제의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4월에 잔지바르와 탕가니카의 대통령들이 두 나라의 통합안에 서명함으로써 그해 얼마 뒤 탄자니아라는 이름의 새 나라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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