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는 우리의 기억속에 자리한 킬링필드의 나라가 아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한 캄보디아는 수세기전에 현존하는 앙코르와트를 세웠던 찬란하고 웅장한 옛 크레르 문화가 숨쉬는 동남아시아에서는 유일한 세계 7대 불가사의를 갖고 있는 나라이다.

 또한 오염되지 않은 에머럴드 빛의 해안 그리고 풍부한 관광자원, 소박한 국민이 있는 나라이다.

 

 1993년 UNTAC하에 현 시하누크를 국왕으로 하는 입헌군주제를 채택하여 정치적 불안과 내전을 불식시키며 관광입국으로 발돋움을 하고 있는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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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국명인 KINGDOM OF CAMBODIA로 1993년에 출발한 이 나라는 현재 유럽, 일본과 대만에서는 많은 관광객과 투자자들이 방문하고 있다.

 

 

 캄보디아 왕국(Kingdom of Cambodia) 또는 캄푸치아 왕국(Kingdom of Kampuchea)는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는 입헌 군주국이다. 태국, 라오스, 베트남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남서쪽에는 타이 만을 끼고 있다.

 

 국토 면적은 18만㎢이며, 인구는 1600만 명이다. 공식 종교는 상좌부 불교로, 국민의 95%가 믿고 있다.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는 프놈펜으로,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지이다. 총리인 훈 센은 1985년부터 장기 집권 중이며, 국왕은 노로돔 시하모니이다. 크메르 제국의 유적인 앙코르 와트와 앙코르 톰 등으로 유명하다.

 

 나라 이름 캄보디아는 크메르 제국의 다른 이름인 '캄부자에서 유래한 프랑스어 '캉보주'(Cambodge)가 영어화된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1970년 이전 왕국시대에는 캄보디아로 불려오다가, 1970년 론 놀의 쿠데타로 공화국이 성립되자 국명이 크메르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1975년 4월 크메르 루주에 의해 수도 프놈펜이 함락되고 국명은 또다시 민주 캄푸치아로 바뀌었다. 4년 뒤인 1979년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헹 삼린가 캄푸치아 인민 공화국으로 바꾸었다가, 이후인 1993년에 현재의 국명으로 되돌아왔다

 

 

 수도는 프놈펜(Phnom Penh)이다. 서쪽과 북서쪽은 타이, 북동쪽은 라오스, 동쪽과 남동쪽은 베트남, 남서쪽은 타이 만(灣)과 접하고 있다.

 

 넓은 평원과 여러 개의 큰 강으로 이루어진 캄보디아는 중국과 인도 및 동남 아시아를 잇는 주요 육상로 및 수로 가운데 위치한다. 프랑스와 미국의 영향 및 여러 아시아 문화의 영향이 수도인 프놈펜에 다양하게 나타난다. 프놈펜은 대부분이 농촌으로 이루어진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중심지 모습을 띠고 있다.

 

 2,000년 동안 캄보디아는 인도와 중국으로부터의 영향을 흡수했으며, 그 흡수한 문명을 다른 동남 아시아로 전파했다. 1~8세기에 푸난과 첸라의 힌두교-불교 왕조에서부터 9~15세기 앙코르 시대를 통해, 캄보디아는 지금은 타이, 베트남, 라오스의 일부가 된 영토를 지배했다. 캄보디아의 크메르 제국은 12세기에 왕조의 전성시대를 누렸다. 이 시기는 앙코르와트, 바욘, 그리고 제국의 수도인 앙코르톰으로 알려진 거대한 사원 건축물 시대로 특징지어진다.

 

 400년에 걸친 쇠퇴기 후에 캄보디아는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고, 20세기 동안에는 전쟁의 혼란을 경험했다. 그 후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했고, 그 이후 다시 정치적 불안정을 겪었다. 1975~79년 나라는 농촌에서 공산주의 게릴라 운동을 펼치던 크메르루즈의 집권으로 황폐화되었다. 크메르루즈 집권기 동안 최소한 150만 명에 달하는 캄보디아인들이 피살되었거나 사망했다.

 

 캄보디아는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캄푸차 인민공화국 정권 아래서 회복을 위한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 나라는 정치적 자치를 회복했고 헌법에 기초한 정부를 재수립했다. 이어서 보통선거를 시행했다. 캄보디아 경제는 꾸준히 개선되었고, 이 나라는 "미래를 겁내지 말고 과거 때문에 슬퍼하지 말라."는 캄보디아의 격언대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형적으로 총 육지면적의 3/4을 차지하는 중부의 넓은 평야들과 남쪽으로 국토의 동부를 가로질러 흐르는 메콩 강(Mekong River)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중부 저지의 비옥한 충적평야들은 톤레샵 호수(Tonle Sap Lake)를 둘러싸고 있으며 이 호수의 물은 사브 강을 따라 동쪽으로 흘러 메콩 강에 유입한다.

 

 중부 평야지역을 둘러싸고 북동쪽과 동쪽에는 평균 해발 360m의 고지대가 있고, 북쪽에는 당그레크 산맥(평균고도 490m), 남서쪽에는 오지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크라반(카르다몸) 산맥담레이(코끼리) 산맥이 있다.

 

 메콩 강은 캄보디아에서만 약 505km의 거리를 흐른다. 메콩 강의 연례적인 범람은 양쪽 언저리 광대한 지역에 비옥한 퇴적물을 쌓으며 수많은 논에 자연적으로 물을 대주고 있다. 기후는 열대 몬순 기후이고 기온은 1월의 28℃에서 4월의 35℃ 사이를 오르내린다. 남서계절풍이 부는 시기에 주로 비가 내리며, 연강우량은 남서부 산지 사면의 5,000㎜에서 중부 평원의 1,400㎜ 사이에 걸쳐 있어 지역적으로 차이가 있다. 기후는 자연식생에 적합하여 국토의 약 3/4은 삼림으로 덮여 있다. 동물로는 코끼리·들소·표범·곰 등이 있다.

 

 

 캄보디아는 1975∼79년 공산주의 정권 크메르루즈 치하의 전체주의 국가였으나 이후 1979∼91년에는 인접한 베트남의 지원을 받는 보다 온건한 공산당의 통치하에 있었다. 1991년부터 UN 감시하에 일정 기간 과도정부를 거친 후 1993년 새로운 국회의 구성을 위한 다당제 자유선거가 실시되었다. 캄보디아를 입헌군주국으로 하는 새 헌법이 채택되었고, 노로돔 시아누크(Samdech Norodom Sihanouk, 1922~2012) 국왕이 크메르루즈를 제외한 모든 주요 정당들이 참여한 연립정부를 통할하게 되었다.

 

 말라리아, 주혈흡충증과 같은 전염병이 유행하며, 영양실조가 만연되어 있다. 초·중등학교와 고등교육기관이 있으며, 6∼12세를 대상으로 의무교육이 실시된다.

 

 

 캄보디아의 문화는 과거의 풍부한 유산, 특히 앙코르 사원에서 볼 수 있는 앙코르 시대(802∼1432)의 건축과 조각을 통해 전해내려왔다. 이 건축과 조각 유물들은 다른 문화 유적들과 함께 파괴·약탈·관리소홀로 큰 피해를 입었다.

 

 

개 요

o 위 치

 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하여 북으로는 태국과 라오스, 동과 남으로는 베트남, 남과 서로는 씨암만, 태국과 국경을 이루고 있다.

 

o 자 연

 캄보디아의 중앙부에는 남북으로 흐르는 메콩강과 그 지류가 이루는 방대한 평원이 펼쳐져 있다. 중평원은 완만한 고지에 둘러싸여 있고, 북서부는 메콩강의 유량 조절지인 톤레삽호가 있다.

 

o 면 적

 181,035㎢로 대한민국의 2배의 면적을 갖고 있는 나라이다.

 (동서 580km. 남북 450km)

 

o 주요도시

- 제1도시 - 프놈펜 (수도) 인구 약 200만 명(2016년)

- 제2도시 - 바탐방

- 그외의 도시 - 18개의 지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o 국 체

 노로돔 시하누크 국왕(입헌군주제/민주주의)(1993년 14장 139조항의 헌법

 

o 기 후

- 평균: 27℃     최저평균: 16℃

- 건기 - 11월~3월(12월이 가장 춥다. 11월~2월 평균기온 27℃. 3월~5월 35℃)

- 우기 - 4월~10월(4월이 가장 덥다. 평균 38℃. 거의 매일 비가 옴- 스콜현상)

- 강수량 - 평균 강수량 프놈펜 14,000mm, 산악지역 50,000mm

 

o 인 구

- 약 1,600만 명(2016년) - 남자 35%. 여자 65%

- 인종 85%가 크메르족으로 산지에는 쿠이, 프놈, 스첸 등의 소수 원주민이 있다.

   그외 화교가 약 50만명, 베트남인이 약 40만명이다.

 

o 종 교

- 캄보디아의 종교는 소승불교이며, 사원과 승려의 수가 많으며,

   불교는 국가의 보호를 받아 생활속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o 교 통

  대중교통 수단으로 오토바이 택시(모토 돕)나 씨클로를 이용한다.

 

o 산 업

 인구의 80%가 농업, 산림업, 어업에 종사

 

o 언 어

 크메르 어(산스크리트 어에서 기원)- 모음 37자, 자음 33자로 구성

 

o 화 폐

- 기본 화폐단위: 리알(RIEL)

- 화폐종류: 100, 200, 500, 1000, 2500, 5000, 10000, 50000 등이며

   최고 고액권은 100,000 리알이다. (환율은 1 USD : 2,500 RIEL)

- US$와 병행해서 사용

 

o 전 기 - 220V / 110V(전기사정이 좋지 않아 발전기를 사용하는 업체가 많다)

 

o 전 화

- 국가번호: 855

- 한국에서 캄보디아로 전화하려면

    ☎ 001 -- 855(국가번호) -- 23(프놈펜 지역번호) -- 00000000( 상대번호)

 

 

프롬펜의 기후(℃)

지 역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프롬펜

(캄보디아)

최고평균

31.7

32.2

33.9

34.4

33.9

32.8

31.7

31.7

31.1

30.6

30.0

30.0

최저평균

21.1

22.2

23.3

23.9

24.4

24.4

24.4

24.4

24.4

24.4

23.3

21.7

평 균

26.0

27.5

28.9

29.6

29.6

28.1

27.5

27.6

27.2

27.1

26.7

25.6

강수일수

1

1

2

6

14

15

16

16

19

17

9

4

 

씨엠립

(캄보디아)

최고평균

32.0

33.3

34.6

35.5

35.2

33.5

32.7

32.0

32.2

31.3

30.6

31.0

최저평균

19.7

20.8

26.1

25.1

25.6

24.8

24.8

25.0

24.5

23.9

22.4

20.3

평 균

25.4

27.1

30.4

30.3

29.2

28.8

28.5

27.6

28.4

27.6

26.5

25.7

강수량mm

0.7

3.5

28.0

61.2

175.9

221.3

236.6

151.0

276.1

248.0

81.7

10.1

 

 

캄보디아 역사

1. 고대 - 앙코르 왕조

ㅇ 1~6세기경까지 메콩 델타 유역을 중심으로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은 푸난(Fu Nan) 왕조와 첸라(Chen La) 왕조가 존재

- 산스크리트어를 도입, 크메르 문자로 발전시켰으며, 카스트제도는 정착되지 않는 등 인도문명을 선별적으로 수입, 정착

 

ㅇ 802년 자야바르만(Jayavraman) 2세가 스스로를 神王으로 칭하고 앙코르 왕조를 열어 1431년 샴의 침략으로 쇠퇴할 때까지 크메르 민족의 전성기 구가

- 베트남 남부, 라오스, 미얀마, 태국 일부를 포함하는 대제국을 형성, 앙코르와트와 수많은 사원과 뛰어난 관개시설등 세계적 문화유산을 남김

 

ㅇ 1431년 샴의 침략 후,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기까지 샴과 베트남의 지배를 번갈아 받으며 왕국의 명맥만 유지, 사실상 몰락

- 베트남은 캄보디아의 모든 문화를 베트남식으로 바꾸어 놓으려고 시도함으로써 캄보디아인의 증오 촉발

 

2. 프랑스 통치시대

ㅇ 1864년 캄보디아는 샴과 베트남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자진하여 프랑스의 보호령으로 편입

 

ㅇ 1884년 노르돔(Norodom)왕은 프랑스의 강압으로 명목상의 왕위만 유지하고 통치권을 프랑스에 넘겨주는 협정에 서명

- 프랑스는 식민지 지배과정에서 현지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불어나 프랑스식 이념을 전파하지 않는 대신, 베트남인을 데려다 식민통치의 도구로 사용

- 캄보디아는 후방의 물자지원 기지화하고, 캄보디아인은 종속적인 지위로 전락(1945년 프놈펜 인구의 절반이 베트남인), 캄보디아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배태

 

3. 시아누크 왕정 

ㅇ 1941년, 프랑스는 조종이 쉬울 것으로 생각되는 19세의 노르돔 시아누크(Norodom Sihanouk)를 아버지 노르돔 수라마리트(Norodom Suramarit) 대신 왕으로 즉위 시켰으나, 시아누크는 1945년 일본의 후원하에 독립 선언

 

ㅇ 일본 패전 후, 프랑스가 지배권을 회복하였으나, 1953.11월 군사, 사법, 외교권을 시아누크에게 허용, 사실상 캄보디아 독립

- 1954년 인도차이나 문제에 대한 제네바 회의에서 독립 보장

 

ㅇ 1955년 시아누크는 아버지에게 왕위를 양위, 본인은 선거를 통해 총리 로 취임, 1960년 부친 사후 국가수반직 회복

 

ㅇ 독립직후, 프랑스 유학파 지식인 계층 귀국(Salth Sar: 후에 Pol Pot로 개명, Ieng Sary, Khieu Samphan), 1963년 학생시위 후 시아누크의 대규모 좌익 숙청으로 지하 조직화

 

ㅇ 1965년 월맹에게 캄보디아 동부지역 보급로 설치 허용, 미국은 월남전을 캄보디아까지 확대

- 1969.3.18 비밀리에 캄보디아 영토 폭격 개시, 1970.5월까지 B-52기 총 3,630회 출격

- 1973.8.15까지 미국은 총 54만톤의 폭탄 투하(2차 대전 전 기간 중 일본에 투하한 규모의 절반), 이로 인한 사망자는 약 80만명으로 추정

- 월맹은 캄보디아 영토내 더 깊숙히 잠적, 보급기지 설치, 전쟁확산

 

4. 크메르 공화국

ㅇ 시아누크 왕 외유 중 1970.3.28 론놀(Lon Nol) 장군 쿠데타 성공, 4.10 공화국 수립(Khmer Republic) 선포

 

ㅇ 론놀 치하의 공화국은 반정부 세력을 공산주의자로 탄압, 크메르 루즈(Khmer Rouge)의 성장 배경 제공

- 베트남인 대량학살로 크메르루즈와 베트남의 합작을 초래, 대도시의 절반 이상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 공산주의자들은 국민적 인기와 영토에 대한 통제력 획득

- 1975.4.12 미국, 캄보디아 철수 완료

 

5. 민주 캄푸치아

ㅇ 1975.4.17 크메르루즈, 프놈펜 입성, 급진 혁명 추진

- 1976.1.5 민주 캄푸치아(Democratic Kampuchea) 선포

- 도시 소개(疏開), 농업에 강제노동 투여, 화폐.의료.교육.통신 완전 마비

- 통치 3년 8개월간 기아, 질병, 강제노동, 처형 등으로 인한 사망자 170만 내지 300만 명으로 추정

 

ㅇ 1978.12. 베트남 캄보디아 침공

 

6. 캄푸치아 인민공화국 

ㅇ 1979.1.7 베트남군 무력으로 캄보디아 점령, 크메르루즈내 친 베트남 세력인 헹삼린, 훈센을 세워 괴뢰정권

   (캄보디아 인민민주주의 공화국) 수립

 

ㅇ 1982년, 시아누크, 손산, 크메르루즈 반베트남 연합전선 구축

- 망명정부 '민주캄푸치아 연립정부' 구성, 유엔의석 확보

 

ㅇ 1989.10 소련 및 동구권 몰락과 캄보디아 운영의 경제적 부담, 국제사회의 비난에 따라 베트남군 철수

 

7. 신 정부 수립

ㅇ 1989.4.30 캄보디아 공산당은 국명을 State of Cambodia로 개칭, 탈 공산주의 추진

   (당명도 캄보디아 인민당 CPP: Cambodian People's Party로 개칭)

- 투표에 의한 의회구성

- 사유재산 인정, 민영화 추진

- 형법등 각종 법령 정비

- 1991.10월 전당대회에서 체아 심(Chea Sim)을 총재, 훈 센(Hun Sen)을 부총재로 선출

 

ㅇ 1990년 UN안보리, 포괄적 캄보디아 평화안 채택

 

ㅇ 1990.10월 자카르타 비공식회의에서 4개 정파간 Supreme National Council of Cambodia 설치 합의

- 시아누크의 FUNCINPEC, 시아누크 왕정에서 총리를 역임한 손산의 KPNLF

  (Khmer People's National Liberation Front), 크메르루즈, CPP 등 4개 정파간 합의

 

ㅇ 1991.10.23 파리 평화협정 서명(Agreement on a Comprehensive Plolitical Settlement of Cambodia Conflict)

- 참여국 :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ASEAN 6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일본, 호주, 카나다, 인도, 유고등 19개국 참가(프랑스와 인도네시아가 공동 주재)

- 시아누크 왕 지도하에 UNTAC(UN Transitional Authority of Cambodia)와 SNC에 18개월간 통치권을 위임, 신정부 구성 추진

- 1992.3월 45개국 22,000명으로 구성된 유엔사상 최대 규모의 평화유지군 파병, 정전협정 준수 여부 감시

 

ㅇ 1993.5.23-28간 UNTAC 주관하에 총선거 실시

- 470만명 유권자 등록, 90% 투표 참여

- 민족연합전선(Funcinpec) 45.47%, CPP 38.23%, 불교자유민주당 (BLDP) 3.8% 획득, 각각 국회 120개 의석중 58,  51, 10석 차지, 군소당 Molinaka가 1석 차지

- Khmer Rouge는 Cambodian National Union Party를 구성 하였으나, 선거 불참

 

ㅇ 1993.6.14 제헌의회, 시아누크를 국가수반으로 선출

- 7.2 푼신펙(Funcinpec)의 라나리드(Ranariddh) 총재와 CPP의 훈 센(Hun Sen) 부총재를 캄보디아 임시정부의 공동 총리(Co-Prime Minister)로 임명

 

ㅇ 1993.9.23 헌법 공포, 9.24 시아누크 왕 즉위, 라나리드와 훈센을 Co-Prime Minister로 임명하고, 중앙 및 지방의 모든 권력을 분점하는 독특한 연립정부 구성

 

ㅇ 1993.11.15-12.31간 UNTAC 요원 철수완료

 

8. 현 정부 수립

ㅇ 1997.7 무력충돌사태 이후 국내 정치 격변기를 노련한 정치력으로 극복한 훈 센(Hun Sen) 제2수상은 1998.7월 총선을 승리로 이끈후 1998.11.30 정치 라이벌인 라나리드 왕자를 국회의장에, 훈 센(Hun Sen) 제2수상 자신은 단독 수상에 취임하는 신정부를 출범, 최초로 캄보디아 전역을 중앙 행정력으로 통제하는 통치권 장악에 성공함.

 

ㅇ 98.11 시아누크 국왕 중재로 캄보디아 인민당(CPP)의 훈센총리와 민족연합전선(Funcinpec)의 라나리드공 연립정부 구성

 

ㅇ 1999.3 국회를 상.하 양원으로 구성하는 헌법개정과 1999.4월 캄보디아의 ASEAN 가입으로 국내 정치 안정과 국제사회에의 복귀를 통한, 국정 개혁과 경제발전을 추구

 

ㅇ 2002.2.3 코뮌(Commune) 선거 실시

- 총 1,621 개 코뮌(Commune) 단체장중 CPP가 1,597명 Funcinpec 10명, Sam Rainsy가 13명 차지

- 집권 CPP는 98년 총선시 득표율보다 약 20%가 증가된 총 60% 이상의 유효득표를 획득

- Funcinpec은 98년 총선 득표율보다 약 10% 감소되어 세력이 약화되었으며, 야당인 삼 랑시(Sam Rainsy)는 프놈펜 Commune 단체장 6석 획득 등 수도권에서 강세

 

 

캄보디아 약사

 1~6세기 경까지는 메콩삼각주와 툰레삽 유역을 중심으로 인도문화의 영향을 받은 푸난(Fu Nan)왕조와 뒤를 이어 나타난 첸라(Chen La)왕조가 현캄보디아를 지배하며, 인도 문명의 유입으로 산스크리트어를 기틀로 크메르 문자로 발전시키면서 독자적인 문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인도문화의 신-왕을 배경으로 802년 동남아시아의 최강의 지배력을 가졌던, 앙코르 제국의 서막을 열었다. 당시 인도차이나 반도에서의 영향력 뿐만 아니라 앙코르왓을 세웠던 건축술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지정 보호할 만큼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후 앙코르 제국이 막을 내리고 샴(태국)의 침공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던 1431년 이후부터 19세기 열강들의 세력다툼까지 캄보디아는 침략과 약탈의 수난시대가 이루어 졌다.

 

 샴(태국)족과 베트남의 지배에서 자생이 힘들어 지자 1864년 프랑스의 보호령에 편입하게 된다. 당시 캄보디아의 노로돔(Norodom)왕은 프랑스의 외압에 형식적인 왕위만을 유지한 채, 1884년 모든 권한을 프랑스에 위임하는 협정을 맺기에 이른다. 이후 프랑스의 식민시대는 베트남인의 식민통치로 이루어지면서, 후방의 물자지원를 위한 기지화를 구축하게 된다.

 

 프랑스는 정략적인 정권 교체를 위해 아버지의 왕위를 이어 받은 새로운 왕, 노로돔 시하녹(Norodom Sihanouk)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일본의 지원을 받은 캄보디아는 프랑스의 세력이 약해졌지만, 세계 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다시 프랑스의 힘은 커지고 캄보디아 내에서는 독립을 위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때 조직화된 독립운동 펼친 단체가 크메르 루즈였다.

 

 이들은 좌익 독립운동 단체로써 1975년 공산 혁명을 달성한 이후 캄보디아 역사상 가장 침울했던 크메르 루즈(Khmer Rouge)의 시대를 열었다.

 

 1975년 4월 미국의 캄보디아 철수가 되고, 크메르 루즈의 프놈펜 수도 이전이 이어지고, 1976년 민주캄푸치아(Democratic Kampuchea)가 수립되었다. 3년 8개월간의 크메르루즈시대에는 "킬링필드"의 잔혹한 학살이 이뤄졌다. 1978년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과 1979년 점령은 소련의 몰락과 베트남군에 대한 국제적 비난이 밀려 캄보이아에서 철수한다.

 

 1989년 4월, 캄보디아로 국호를 바꾸고, 의회구성, 사유제, 법률정비, 총재와 부총재를 선출 등 탈 공산주의를 추진한다. 1997년 캄보이아를 통합, 통제하는 신정부가 출범함으로써, 화려한 역사와 참혹한 역사의 양면성을 지녔던 캄보디아는 새로운 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크메르왕국의 역대 왕

순서

재위 기간()

초대

자야바르만 2세

802 - 835

2대

자야바르만 3세

835 - 877

3대

인드라바르만 1세

877 - 889

4대

야소바르만 1세

889 - 910

5대

하르샤바르만 1세

910 - 923

6대

이샤나바르만 2세

923 - 928

7대

자야바르만 4세

928 - 941

8대

하르샤바르만 2세

941 - 944

9대

라젠드라바르만 2세

944 - 968

10대

자야바르만 5세

968 - 1001

11대

우다야디티야바르만 1세, 자야비라바르만, 수리야바르만 1세

1001 - 1006

12대

수리야바르만 1세

1006 - 1050

13대

우다야디티야바르만 2세

1050 - 1066

14대

하르샤바르만 3세

1066 - 1080

15대

자야바르만 6세

1090 - 1107

16대

다란인드라반 1세

1107 - 1113

17대

수리야바르만 2세

1113 - 1145

18대

다란인드라반 2세

1150 - 1160

19대

야소바르만 2세

1160 - 1167

20대

트리부바나디티야바르만

1167 - 1177

21대

자야바르만 7세

1181 - 1218

22대

인드라바르만 2세

1219 - 1243

23대

자야바르만 8세

1243 - 1295

24대

인드라바르만 3세

1295 -1308

25대

인드라자야바르만

1308 - 1327

26대

자야바르만 9세

1327 - 1353

 

 

거지와 아이들

 오랜 내전에 시달려 온 나라인만큼 이곳에는 거지가 인도만큼이나 많다. 따라서 아이들조차도 먹고 사는데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조그만 시골 도시 같은 씨엠립에서부터 앙코르왓까지 지도책이나 안내 책자를 파는 아이들이 여행 시작에서 여행 끝까지 가이드북이나 우편엽서를 가지고 1달러를 외치며 몰려든다. 측은하게 보이는 사람들은 돈을 주고 구매를 하는데, 마음이 약해서 뿌리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탕이나 초콜렛을 준비해 가서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다. 아이들이 많으면 필사적으로 달려들며 그 틈을 이용하여 소매치기를 하기도 한다.

 이 캄보디아의 교육제도는 의무교육이 아니라 매일 수업료를 지급해야 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은 학교를 가기보다는 돈을 버는 것을 더 나은 기회로 여기며, 거리의 부모들 또한 딱히 학교에 보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며, 차라리 돈을 벌라고 거리로 내보낸다. 따라서 관광객이 가는 곳은 어디든지 아이들이 따라 붙는다.

 이들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돈을 주기보다는 외면하는 것이 낫다고 이 지역의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캄보디아 비자

캄보디아 비자를 받는 방법

➀ e-비자 받기: www.mfaic.gov.kh/evisa/?lang=kor에서 신청하면 하루 정도 소요되어 발급되며, 이메일로 전송된다. 입국 시 이메일로 전송된 e-비자를 프린트해서 가져가면 된다.

 

➁ 주한캄보디아 대사관에서 직접 받기: 비자신청서 1부, 여권, 여권사본 1부와 함께 수수료(약 US$20)를 가져가서 신청한다. 약 2~3일 후에 받을 수 있다.

 

➂ 현지에서 받는 도착비자: 서류를 작성하여 신청하면 받을 수 있다. 수수료는 약 US$20이며, 속행으로 처리 받고 싶은 경우에는 추가비용 US$1~5를 지불하면 된다.

 

 

입국절차

 우리나라 사람은 대개 동남아의 주요도시를 거쳐 씨엠립 국제공항으로 입국을 한다. 캄보디아 씨엠립 국제공항은 씨엠립 시내에서 10분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공항 청사는 비행기에서 내려서 30m 떨어진 곳에 작은 창고 정도의 허름한 단층 건물이다. 모두 걸어가야 하며, 입국시 출입국 카드, 세관 신고서를 작성 제출해야 한다. 단, 비자가 없을 경우 먼저 도착 비자폼을 작성하여 사진과 $20, 여권을 제출하고 비자를 받은 다음,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한다.

 입국 심사대에서 입국 도장을 받은 후 가방을 찾아 세관 검사대를 통과하면 입국 절차는 끝난다. 모든 것이 한 층 내에서 이루어진다.

 

외국인 여행객의 경우

 외국인 여행객의 경우 공항 심사원들이 별도의 돈을 요구한다. 첫번째 도착 비자 취득에 대한 별도 요금과 두번째 입국심사 과정에 따른 별도 요금을 요구한다. 각 절차마다 US$1이나, 단체일 경우 US$7~8불 정도를 주면 되고, 만약 돈을 주지 않는다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질 것이다.

 대개 단체 여행객일 경우 많이 요구하며, 이러한 상황이 온다면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고 웃으며 그 상황을 대처하는 것이 좋겠다.

 

 

 

관광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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