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Kazakhs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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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없는 한인들의 한많은 수난의 역사가 쓰여진 중앙 아시아의 국가 카자흐스탄. 1937년 스탈린의 정권하에서 이루어진 강제 이주에 따라 수십만의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이주되었다. 이들은 일본인이 한인을 이용해 간첩으로 쓴다는 우려와 한인수의 증가에 따른 자치요구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 농업(벼농사)기술을 중앙 아시아의 농업 개척에 이용 하기 위한 목적, 소수 민족 분산 지배 정책 등의 정치적 이유로 화물차와 가축 운반철도로 이송되었다.

 

 10월과 12월 추운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한달여에 걸친 이동중 추위와 굶주림으로 다수가 사망하였으며, 한인들이 당도한 곳은 인가하나 없는 황량한 반사막 초원지대인 우슈토베란 곳으로, 소련당국은 이 황무지에 수십만의 한인들을 내려 놓고 아무런 대책없이 생활을 하도록 강요했다. 2차 세계대전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게 되자, 한인들이 적성민족이라는 누명을 쓰고, 후방의 노동전선(탄광, 군수공장, 북극권 산림벌체 등)에 동원되어 추위, 기아, 강제 사역으로 고통받았던 것이다.

 카자흐란 이름은 '유랑자' 또는 '독립인'이라는 말로 이들 민족은 13세기 징키스칸의 후예로 전통적인 유목민족이다.

 중앙 아시아에 위치하고 있고, 면적은 272만 4900㎢로 세계에서 9위이며, 남한의 27배에 달한다.

 인구는 약 1,8000만 명이다.

 정식명칭은 카자흐스탄 공화국(Republic of Kazakhstan)이다.

 

개 요

o 수 도 : 아스타나(Astana) * 1998년 12월에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이전

o 인 구 : 약 1,800만 명(2016년)

o 화 폐 : 텡게 (KZT)

o GDP : 2,031억$(2015년. 세계 46위)

o 면 적 : 2,724,900㎢ (세계 9위, 남한의 27배)

o 주요도시 : 알마티, 카라간다, 췸켄트

o 주요민족 : 카자흐인 51%, 러시아인 32%, 우크라이나인 4%, 독일인 3%

o 주요언어 : 카자흐어 40%, 러시아어 66%(공식 언어로 널리 사용됨)

o 종 교 : 회교(수니파), 러시아정교

 

 현재, 카자흐스탄은 CIS 유일의 한글 주간 신문 (한,노어판)인 고려일보(구, 레닌기치)가 발행되고 있고, 한인 교포로만 구성된 조선 극장이 창단 6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1997년은 한인 중앙 아시아 정착 60주년이 되는 해로 이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개최되었다.

 1991년 구소련의 소비에트연방에서 독립하여 독립국가연합(CIS)의 하나가 되었다. 현재는 공화제의 형태로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고, 90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방한을 한 후 우리 나라와 북한에 각각 92년 1월에 외교관계가 수립되어, 공관이 설치되어 있다. 1998년에는 수도를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옮겼다.

 북쪽은 러시아연방에 접해 있고, 동쪽으로 중국과 몽골에 남쪽으로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에 접하고, 서쪽으로 카스피해(海)에 닿아있다.

 역사적으로 카자흐는 나라없는 한인들의 한많은 수난의 역사가 쓰여진 중앙 아시아의 나라이다. 1937년 스탈린의 정권하에서 이루어진 강제 이주에 따라 수십만의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이주되었다. 이들은 일본인이 한인을 이용해 간첩으로 쓴다는 우려와 한인수의 증가에 따른 자치요구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 농업(벼농사)기술을 중앙 아시아의 농업 개척에 이용하기 위한 목적, 소수 민족 분산 지배 정책 등의 정치적 이유로 화물차와 가축 운반철도로 이송되었다.

 추운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한달여에 걸친 이동중 추위와 굶주림으로 다수가 사망하였으며, 한인들이 당도한 곳은 인가하나 없는 황량한 반사막 초원지대인 우슈토베란 곳으로, 소련당국은 이 황무지에 수십만의 한인들을 내려 놓고 아무런 대책없이 생활을 하도록 강요했다. 2차 세계대전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게되자, 한인들이 적성민족이라는 누명을 쓰고, 후방의 노동전선(탄광, 군수공장, 북극권 산림벌체 등)에 동원되어 추위, 기아, 강제 사역으로 고통받았던 것이다.

 카자흐어를 공용어로 하나 일반적으로 러시아어가 통용된다. 공식적인 국교는 없지만 이슬람(수니파), 러시아 정교, 신교 등 다양하고 복잡한 인종구성으로 인해 타 중앙아시아처럼 이슬람을 신봉하는 인구가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고려인은 11만 명 정도가 있으며, 교민도 10만 5천여 명으로 추정된다.

 

 국경일

 카자흐스탄에서는 2번의 크리스마스, 4번의 신년, 3번의 유월절이 있는데, 국적에 따라 따르면 된다. 흥청망청 지내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초다국적 나라의 특징을 잘 반영한 것이다. 휴일에는 중대한 비지니스나 약속을 잡지 않는 것이 좋다. 이날에는 어디서나 테이블에 보드카를 가져다 놓는다.

 

o 공식 국경일은 8번으로, 휴일이다.

- 신년: 12월 31일, 1월 1일, 1월 2일

- 세계 여성의 날: 3월 8일

- Nauryz : 3월 22일

- 카자흐스탄 민족의 날 : 5월 1일

- 승리 기념일 : 5월 9일

- 카자흐스탄 헌법선포일 : 8월 30일

- 공화국 창립일 : 10월 25일

- 12월 16일 : 독립기념일

 

 

 역 사

 카자흐인은 BC 1세기경 이 지역에 거주하던 몽골과 터키족의 후손임. 카자흐스탄 지역은 카자흐족(터키유목인)들의 방목지로 사용되어 오다, 18세기 중반 이후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었으며, 19세기 후반 카자흐스탄 북부 지역에 러시아인들이 대규모로 거주하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카자흐는 러시아 혁명후 1920년 러시아 공화국내 키르키즈 자치공화국으로 되었다. 1925년 거대한 투르크메니스탄 공화국을 분리할 목적으로 행해진 중앙 아시아의 국경정리 결과 카자흐 자치 공화국으로 개명되었고, 1930년대 카자흐스탄 공화국은 소연방의 가장 커다란 수용소가 되었다.

 2차 대전 중 스탈린에 충성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 많은 소수 민족(한인 포함)들이 이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었고, 그 결과 카자흐스탄 공화국은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인구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카자흐스탄 공화국은 1936년 12월 5일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구소련의 일원이 되었고, 구소련 붕괴과정에서 여러 공화국들의 연방 이탈이 계속되자 1991년 12월 10일 국명을 카자흐스탄 공화국으로 변경하고 12월 16일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12월 21일 CIS창설 협정에 조인 하였다.

 

 

아스타나 기후 (℃)

지 역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아스타나

최고평균

-13

-12

-6

8

18

24

26

23

18

8

-4

-11

최저평균

-23

-23

-16

-2

5

11

13

10

4

-3

-12

-19

평균기온

-18

-17.5

-11.0

3.0

11.5

17.5

18.5

16.5

11.0

2.5

8.0

-15.0

강우량mm

15

10

10

20

35

30

50

30

20

30

2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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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 명소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Astana)

 1997년부터 현재까지 카자흐스탄의 수도로, 도시인구는 약 40만 명이다. 수도 이전은 지리적으로 카자흐스탄의 중심에 있으며, 잘 발달된 교통시스템과 균형있는 자연환경 등등의 경제적, 생태학, 지리학적 편의성을 고려하여 이루어졌다. 아스타나로의 수도 이전은 카자흐스탄 북부, 중앙, 동부 지역의 경제적 발전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됨으로써. 카자흐스탄의 균형있는 경제 발달을 이루게 되었다.

 아스타나는 1824년 "아크몰라(Akmola)"라는 요새로 만들어졌다. 1862년부터 도시로써의 형태를 갖추게 된 후, 1868년 행정상 중심지로 발돋움하게 된다. 19세기, 아크몰라는 거대한 교역과 경제중심으로 활발한 도시로 형성하여, 풍요의 상징으로, 도시에서는 다양한 생산품이 매일 쏟아졌다.

 1950년대 크루시체브가 250,000㎢의 카자흐스탄의 대초원을 밀밭으로 개간하는 버진랜드 계획을 발표하게 된다. 아스타나는 프로젝트의 중심으로, '첼리노그라드(Tselinograd)'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게 된다. 이 시기가 곡물생산 성장시기의 중요한 계기가 된다. 당시 다양한 연구소, 고등 교육기관(교사 양성, 농업, 의료, 기술학, 건축학)이 아스타나에 세워지게 되었다.

 1992년 카자흐스탄의 독립 이후, "아크몰라(Aqmola)"로 도시이름을 바꾼다. 1994년 카자크 정부는 알마티에서 아크몰라로 수도 이전을 결정하게 되어 1997년에 수도 이전을 마무리하게 된다. 수도 이전의 마무리에 이르러, 새로운 상징적 의미를 지니기 위해, 도시이름을 '수도'라는 뜻에 "아스타나(Astana)"로 바꾸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사과의 도시, 알마티(Almaty)

 알마티의 인구 150만 명의 카자흐스탄에서는 가장 큰 도시이자 공화국의 이전 수도였다. 알마티는 다양한 국적과 인종을 가진 국민족 도시로서 카자흐인이 51%, 러시아인이 37%, 기타 국적이 12%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알마티의 사람들은 카자흐어나 러시아로서 의사소통을 하며, 때로는 토속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외부세계로의 갑작스런 노출로 인해 알마티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로 쇼핑점, 레스토랑, 호텔, 카지노 등이 들어서 1990년 이전에 이곳을 본 사람들은 그 변화에 놀라고 있을 정도이다.

 

 알마티는 1997년 11월까지 카자흐스탄의 수도로서 역할을 해왔다. 현재 수도는 바뀌었지만, 남쪽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전통요리 샤슬릭(Shashlik)

 러시아의 동부지역 전통음식으로, 숯불로 구운 일종의 바베큐이다. 샤슬릭의 본고장은 이란, 이라크, 레바논, 카프카스 산맥 일대이다. 단순히 고기를 꼬챙이에 꽂아 불에 구운것이 아니라, 샤슬릭의 전체 요리과정은 전통 관례와 금제를 지닌 의식의 의미를 지닌다.

 카프카스식 전통요리법은 양고기에 신선한 토마토, 갈은 야채, 양파, 치즈, 와인 등의 재료를 이용하여 요리한다. 최근에는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을 위해, 요리를 주문할 때, 육류과 생선을 선택할 수 있으며, 육류에는 얼리지 않는 신선한 고기로, 양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철갑상어, 닭, 오리, 거위 등까지 요리 재료로 하고 있다.

 

 

❋ 양 샤슬릭

 전통요리술에 의해 요리되어진다. 양은 살찌지 않은 8kg 이하의 어린 양고기를 이용한다. 작은 조각으로 같은 크기로 고기를 잘라, 그 고기를 양파를 갈아 만든 즙에 담근다. 맛을 내기 위해 소금과 후추도 넣는다. 마지막으로 토마토, 파프리카와 다른 양념에 버물러 하루 정도 매리네이드에 담근다. 신선한 고기의 맛을 죽이는 식초와 와인은 요리에 사용되지 않는다. 4~5개의 고기덩어리와 야채를 사이사이에 넣어 꼬챙이에 끼워 핑크빛의 윤택이 날때까지 불에 쬐어 굽는다.

 

 

 쇼 핑

 알마티에서 카펫은 가장 큰 유혹 중 하나이다. 페르시아 카펫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힘있는 디자인과 일반 크기가 150달러 정도부터 시작되는 비교적 싼 가격이 매력이다. 저렴한 가격덕에 카펫의 판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푸르마노바에 있는 파란지붕의 중앙 박물관에서는 고급 가펫을 판매하고 있다. 넓게 자리잡고 있는 카펫이 깔린 중앙 로비에는 3개의 카펫상가가 있다. 위구르, 카프카스, 투르크맨의 카펫도 이곳에서 구입할 수 있다.

 

 

 여행길잡이

❋ 의료 시설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외국을 방문하기 전에 의료시설을 확인하고 여행을 계획하는 것이 좋다. 현지에서는 약을 구하기가 싶지 않으므로 여행시 특히 배낭여행에 있어서는 필수적으로 상비약을 미리 챙기는 것이 좋다.

 응급 의료 요청은 알마티에서는 무료이다. '03'번으로 전화를 해서, 주소를 불러주면 앰블런스가 달려온다. 의료 서비스는 지역관공서의 기금으로 운영되고 수준은 다소 낮은 편이다. 알마티에서는 국적을 상실한 사람들의 경우, SOS국제의료시설(전화: 913030, 642656, 주소: 11 Lugansky St.)을 선호한다.

 그외 믿을 만한 의료시설로는 외국인과 현지의사로 운영되는 자선의료시설(Charity Clinic Grace: 159a Abay avenue, corner Rozybakiev St. Tel.: 469448)가 있다.

 의료 상담은 927055번으로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러시아어를 사용함).

 

 

 국립과학대학 고고학 박물관

   (Archeological Museum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 of Kazakhstan)

 1973년에 건립된 박물관으로 4개의 전시관이 있다. 고대에서 중세말까지의 카자흐스탄에서 일어난 시민혁명을 테마로 전시되어 있다. 안드로노보와 베가지-단디배보 문화가 깃든 가라쿤구르의 동굴을 전시하고 있어 독특한 관심을 끈다.

 전시물의 일품은 "황금 전사"이다. 이 동상은 금으로 장례복을 힙힌 스키티안 전사로서, 이식(Issyk) 유적군을 발굴하다 발견되었다. 4,000여개에 이르는 동물형상으로 장식된 황금 조각이 발견됨으로써, 이를 "동물 양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자연박물관(Nature Museum)

 자연박물관은 과학 대학 동물학 연구기구중 하나이다. 고생물학과 동물학등 두가지를 테마로 전시관이 운영되고 있다.

 고생물학부문은 초기 지질연대로 거슬러 카자흐스탄에서 발견된 동물유골 화석과 나무 화석이 전시되고 있다. 공룡의 원형 화석, 거대한 코뿔소, 마스토돈, 매머드, 코끼리 등의 다양한 종의 장비류와 고대 거대 돼지, 거북화석 등을 전시하고 있어, 주라기 공원을 연상케 한다. 또한 카자흐스탄에 서식하고 있는 다양한 조류, 포유류, 나비류, 곤충, 파충류 등도 전시되고 있다.

 박물관은 짧은 알마티 역사에 비해, 침공, 지진, 진흙사태, 폭동, 시민전쟁, 수도로서의 정상적인 운영이 되지 않는 등 수많은 도시의 아픈 역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중앙 박물관(Central Museum)

 카자흐스탄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19세기부터 소장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하여 구석기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카작과 과거의 현재를 한 눈에 조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박물관이다.

 

 

 

 대지진에도 견뎌낸 목조 건물  젠코바 성당(Zenkov Cathedral)

 1903년~1906년사이에 티엔샨산 목재로 만들어져, 1907년 7월 30일에 그 모습을 일반인에 공개되었다. 높이 54m의 세계에서 2번째로 높은 목재 건축물이다. 젠코바성당은 목조건물로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건축되었지만, 1911년 러시아의 제정시대, 도시내의 2,000여개의 건물이 파괴되는 대지진에도 견뎌 지금까지 남아 있는 몇개 안되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성당은 무게 중심을 안정하게 하기위해, 무겁고도 낮게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탑을 세웠다.

 혁명 이후, 역사박물관, 문화센터 등으로 사용되다가 1990년에야 성당 본연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오늘날 도시의 중앙성당으로 러시아 정교회 크리스찬의 안식처가 되는 운영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

 

 

 TV 송신타워(Television Tower)

 도시에서 두드러지는 건축물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TV 송신 타워이다. 콕튜브 산 언덕에 지어진 TV 타워는 높이 327m로 해발 1,000m에 자리잡고 있다. 5개의 TV 채널과 4개의 라디오 채널을 271KW로 인근 80km에서 190km까지 송신한다. 3개 층의 기초 위에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 세워졌다. 114m 높이에 원형 철골 구조물이 만들어져 있고, 타워내에는 2개의 고속 엘리베이터가 운영된다. 강도 10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하게 설계되었다.

 

 

 대통령궁(The President's Residence)

 도시 중심에서 남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남쪽궁으로 1980년에 만들어졌다. 건물주변은 소련시절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광장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대조적으로 대통령궁은 14m 높이로 서 있다. 건물 정면과 양쪽은 수직 반원 기둥이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궁의 양쪽에는 분수, 연못, 꽃 등으로 꾸며진 녹색광장이 있다.

 

 

 판팔로바 28인 전사공원(Panfilov Park)

 고골리아와 똘레비사이의 푸쉬키나 거리에 위치한다. 이 공원에는 4가지 볼 것이 있다.

 첫째는 이 공원 그 자체이다. 울창한 나무들과 꽃들로 조화된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면 정말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둘째는 공원 중앙에 위치한 젠코브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다. 이 성당은 1904년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건축된 것으로 유명하다. 높이는 50m 정도이고, 1911년의 리히터 규모 10의 대지진에도 부서지지 않고 견딘 것으로 유명하다.

 소비에트 시대에는 예배가 진행되지 않다가, 1995년 러시아 정교회로 반환된 후 1997년부터 다시 예배가 드려진다고 한다.

 세번째 볼 것으로는 2차 세계대전 순몰용사를 위한 꺼지지 않는 불꽃과 28인의 청동조각상이다. 결혼식 후 신랑 신부가 이 꺼지지 않는 불꽃 앞에 와서 꽃을 헌화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콕튜브(Koktyube-푸른 정상)

 콕튜브은 해발 1,070m로 자이리이스키 알타우 산맥의 마지막을 형성하고 있는 녹음과 수풀로 뒤덮인 언덕지역으로, 도시의 남동쪽 끝에 다달아 있다.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어, 알마티 도시의 전경을 볼 수 있다. 특히 무수한 불빛이 수놓는 도시 야경을 보는데 이곳보다 좋은 데는 없다. 언덕은 전망대를 제외하고 보존되고 있어, 중앙아시아에서 자생하는 고산식물이 자연 그대로 자라고 있다.

 

 

 

 공화 광장(Republic Square)

 1980년 이후, 아마티에서의 경제, 정치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이 광장은 근대 건물이 들어선 가장 큰 도시광장 중 하나이다. 1986년에 12월 폭동이 있었던 곳으로, 광장의 남쪽에는 대통령궁, 구 정부청사, 국영TV 건물이 있으며 광장 서쪽에는 5성 아카라 호텔이 자리잡고 있고, 광장 북쪽으로 동양 양식의 착색유리로 이어진 두개의 고층 주택건물이 서 있다. 건물 사이로 나있는 바이세이토바 거리에는 광장과 알라타우산과 잘 어울어진 2개의 분수가 있다. 광장의 동쪽에는 알마티 국군병원과 중앙 박물관이 있다.

 광장 중앙에는 건축가 쇼타 발리카노브가 만든 독립기념탑이 서 있는데, 대리석 기념탑의 꼭대기에 날개달린 표범과 전사의 동상이 놓여 있다. 1986년 모스크바 통치에 대항한 폭동을 기념하기 위해 광장 중앙에 세워졌다.

 이 기념탑은 광장에서 가장 최근에 건립된 건축물이다.

 

 

 알마티 거대 호수(Big Almaty Lake)

 8,000년 전 엄청난 지진으로 만들어진 알마티 호수는 트랜스일리 아라토산(알마티 남쪽 15km 지점, 해발 2,510m)의 보배 중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 웅장한 산들이 둘러싸인 알마티호수는 호수면에 주변의 아름다운 산들을 청록색으로 비춘다. 겨울에는 호수면이 얼어 붙어 청록색의 호수를 보기 어려우나, 여름이 되면 흰눈으로 뒤덮인 산봉우리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호수의 진면모를 볼 수 있다. 호수면이 얼어붙은 겨울에는 호수의 길이가 1,5km, 폭 1km, 수심이 35m까지 된다.

 

 

 세계 두번째로 큰 산정호수, 이식쿨 호수(Lake Issyk-Kul)

 지리적으로는 카자흐스탄이 아닌 키르키즈스탄에 속하는 이식쿨 호수(Lake Issyk-Kul)는 알마티에서 출발하는 여행자들도 많이 방문하는 곳이기에 소개한다.

 카자흐스탄의 이식쿨 호수(Lake Issyk-Kul)는 "뜨거운 호수"라는 뜻의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산정 호수이자, 남미의 티티카카 호수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곳에 있는 호수이다. 호수는 대류현상과 강한 바람, 깊은 수심이 호수전체를 독특한 기후를 형성하여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해발 1,600m에 자리잡은 이식쿨 호수는 길이 180km, 폭 70km로 수심 700m로 흐르지 않는 호수로 약간 짠맛을 낸다. 바다보다 5배 정도 약한 소금기는 호수를 청정하게 유지하게 하고, 수영하기에도 적합하다.

 "중앙아시아의 보배"로 일컫는 이식쿨 호수(Lake Issyk-Kul)는 태양의 위치에 따라 약한 녹색에서 푸른색까지 하루에도 여러가지 빛깔을 내며, 흰눈으로 뒤덮인 산을 비춘다. 또한 카자흐스탄과 러시아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식쿨 호수변에 만들어진 자연 모래사장을 많이 찾고 있다. 대부분의 리조트와 호텔은 호수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알마티와 이식쿨 호수 사이가 트렉킹 지역으로 가장 유명하다. 호수의 남동쪽으로 수많은 계곡이 있어 트레킹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메데오(Medeo)

 알마티에서 15km 떨어진 사진처럼 아름다운 계곡이다. 알마티의 젊은이들의 주말을 즐기는 곳으로도 인기있는 곳이다. 소련시절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큰 아이스 스케이트링크가 있다. 해발 1,700m(5,577피트)에 자리잡고 있는 세계에서 2개뿐인 고지대 스케이트 링크 중 하나로, 70년대 야외에 만들어졌으며 구소련의 자긍심이 스며있는 곳이다.

 좀더 올라가면 제방이 있는데, 진흙사태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고자 만들어진 이 제방은 그 기능외에도 제방을 둘러싸고 있는 산맥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을 불러 들이고 있다.

 둘러싸인 산들이 지닌 환상적인 경관은 등산하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계곡의 정상(2,200m)에는 여러개의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는 스키리조트 '침불락'이 자리잡고 있다.

 

 

 최고 수준의 스키 리조트 침블락(Chimbulak)

 최고 수준의 리조트인 침블락 리조트는 100% 천연설로 만들어진 천연 스키장으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스키산정리조트로 인정받고 있다. 카자흐스탄을 목적으로 하는 관광보다 침블락에서의 스키와 관광을 목적으로 카자흐스탄을 찾는 스키 애호가와 관광객들이 많다. 자연과 안락하고도 안전한 휴식처로서 향상된 서비스와 뛰어난 기후를 만끽할 수 있다.

 침블락에 오르기 위해서는 알마티에 물을 공급하는 댐에서 고산지에 있는 침블락역까지 약 4km를 올라가야 한다.

 메데오까지는 버스가 운영되나, 이후부터 나있는 지그재그 모양의 길은 택시나 밴을 이용해야 한다. 자주 버스가 지연되고, 알마티에서 산아래까지 1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비용이 50텡게(약 50센트)에 한나절 리프트 티켓이 약 20불에 이르러 현지인에게 매우 부담스러운 비용이므로 버스를 이용하는 층은 주로 젊은 사람들로 스키를 타기위해 침블락을 찾기보다는 피크닉이나 하이킹을 위해 오거나 메데오 야외 스케이트 링크에서 스케이트를 타러 오는 경우가 많다. 스키를 타러 오는 사람들은 주로 고급 4륜 자동차나 벤츠를 타고 침블락 리조트까지 오르는데, 이때는 브레즈네프시대에 만들어진 거대한 댐을 지나 올라야 한다. 댐을 지나 산 중턱에 올라서면 좁은 계곡에서의 집중홍수를 예방코저 거대한 구멍을 볼 수 있다.

 침블락에 이르면 워낙에 고산지대라 겨울 안개는 리조트 아래로 형성되어, 밝은 햇살과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

 침블락에는 스키어를 위한 호텔과 1,500m의 케이블이 볼쇼이 탈가 스키장(해발 3,000m에서 시작된 길이 3,200m 활강코스)까지 이어져 있다. 침블락 스키 리조트는 원래 일반인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소비에트 연방 운동선수를 위해 만들어졌다. 최근 리조트가 개인소유로 넘어가면서 편의시설 확충과 개보수로 일반인들이 많이 찾게 되었다. 리프트가 2인승 3개가 추가 건축되면서 스키어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그러나, 해발 3,000m까지의 리프트는 예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1인승이다.

 

- 코스: 8개의 활강코스

- 식당: 3개

- 빠: 1개

- 정상높이: 3,163m

- 탑 리프트: 3,163m

- 스키가능지역: 99 에이크

- 수직 높이: 943m

- 주변 공항: 알마티 국제 공항

- 리프트: 5개(체어 리프트 2개, 서페이스 리프트 3개)

 

 

 뚜리겐 계곡(Turgen Gorge)

 알마티에서 90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일레-아우토 국립공원내에 위치하고 있는 투르겐 계곡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킥하기에 이상적인 장소이다. 계곡주변에는 연어농장과 폭포, 무성한 수풀이 우거진 수풀림이 있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암석과 숲사이에서 30m 아래로 쏟아진다. 투르겐 계곡은 7개의 폭포로 유명하다. 계곡의 절벽은 지진의 피해를 입었지만, 빙하시대 이전의 흔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환경의 변화로 한정된 지역에 살아남은 친-투르겐 이끼 종이 이루는 숲은 이곳의 또다른 구경거리으로, 땅과 나무를 두툼한 카펫처럼 뒤덮고 있다. 투르겐계곡에서 가장 인기있는 곳은 보탄이다. 보탄은 사냥이 허용된 지역이다.

 

 

 "그랜드 캐년"의 축소판 챠린 계곡(Charyn Canyon)

 알마티로부터 193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챠린 캐년은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이색적이고, 아름다운 계곡으로, 챠린 강(티엔샨 북부에서 가장 깊은 강)을 따라, 남동쪽에서 남서쪽으로 154km 뻗어 있다. 계곡은 3,000여년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미국의 "그랜드 캐년"의 축소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계곡의 깊이는 150~300m에 이르고, 날씨에 의해 형상된 독특한 모습은 바람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사암 형상이 계곡을 성곽으로 조각해 놓은 듯 둘러 싸여 있다.

 돌리나 잠코브에 챠린캐년의 암벽은 서로 다른 시대와 서로 다른 원형이 돌계단형태로 남아 있다. 계곡의 바닥부분과 도릴나 잠코브의 낮은 부분의 검은 바위는 화산암석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위로 올라갈 수록 암석의 연령이 짧아진다. 도리나 잠코브 암벽의 붉은 절벽들은 흘러운 잔해가 침전되어 생긴 사력층으로 형성되어 있다. 챠린캐년의 평지는 강물에 밀려온 회색 사력층으로 뒤덮여 있으며, 풍화작용은 자갈을 먼지로 잘게 부수었다. 챠린캐년의 바닥은 챠린강의 옛모습을 고스라니 보여주고 있다.

 챠린 캐년의 고지대에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식물군을 형성하여 자라고 있다. 80km의 계곡은 래프팅, 하이킹의 최적의 장소로 알마티과 중국에서 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챠린 캐년의 높은 지역의 래프팅은 매우 험난하여 전문장비를 준비하고 전문가와 동행해야 한다. 손쉽게 돌리나 잠코브 주변의 트렉킹과 하이킹을 즐길 수 있고, 다른 길을 가려면 전문 가이드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알마키에서 하루 관광이 가능하다. 돌리나 잠코브에서 야영은 금지되어 있다.

 

 

 기원전 4,000년의 생활상이 바위에 남겨진 탐갈리 암면 각화(Tamgaly Petroglyphs)

 암반에 그려진 암면각화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카자흐스탄의 자랑이다.

 알마티에서 170km 떨어진 곳에 있는 탐갈리 암면상들은 유네스코가 세계유적지로 등록하여 보존되고 있다. 탐갈리 암면각화들은 신전과 함께 1950년대 말에 안라카이(Anrakhai)산에서 발견되어, 70,80년대에 비로소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됨으로써, 탐갈리의 고대 흔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코크수(Koksu)의 에스키올메스신전은 1980년대에 발견되게 되었고, 점점 더 많은 암면각화이 세미레치(Semirechie)지역에서 발견되어, 지금까지 발굴되어 보존되고 있는 암면각화은 50여군데에 이르게 되었다.

 4,000년 전 청동기시대에 사카족의 조상이 새겨 놓은 것으로, 동물과 사람, 사슴, 낙타, 사냥꾼, 천막집 등의 당시 생활상을 그대로 바위에 그렸다. 또한 그곳에는 사카족의 조상인 스키타이인의 고분이 남아 있다. 탐갈리는 수세기 동안 종교적 의식처로 이용되었다. 대부분의 각화은 사슴과 사냥의 모습을 새겨 놓았다. 또한 8세기로 추정되는 부처의 모습도 새겨져 있다. 그림의 일부는 중세시대에 새로 그려졌으며, 11세기까지 이곳은 의식을 행해졌다.

 탐갈리 암면각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코크수강 계곡의 소라크, 킨디크타스, 안라카이, 바얀 주렉으로 이곳에는 수천개의 암면 그림이 보존되어 있다. 이외에도 캐년암벽, 언덕, 돌무더미에는 수백개 이상의 암면그림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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