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 국 (THAI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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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코사무이섬 ∥ 푸 껫파타야 후아힌 치앙마이 치앙라이 ∥ 수코타이

칸차나부리 아유타야 끄라비 매홍손

 

 태국은 동남 아시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인도차이나, 미얀마 그리고 중국 남부지역의 게이트웨이 역할을 하고 있다. 해안선이 2,614km에 달하고 동쪽으로는 태국만, 서쪽으로는 안다만(Andaman) 해를 끼고 있다.

 총면적은 약 513,115로 프랑스와 비슷하며 남한 면적의 5배에 달한다. 국토의 28%가 삼림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약 41% 가량은 경작지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는 대략 6천 2백만 명 정도로, 타이, 중국인이 대부분이고 그 밖에 말레이, 라오스, 인디언, 그리고 버마인들이 그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다. 공식어는 태국어지만 상업 영어도 통상적인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태국의 국교는 소승 불교(Theravada Buddhism)로, 태국인들의 불교에 대한 신앙심은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밖에 남쪽 지역민들이 믿는 이슬람교를 비롯해 힌두교와 기독교 등의 종교를 가진 소수의 사람들도 있다. 초기의 태국지역 사람들은 중국의 남부지역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타이(Thai)"라는 국명은 "자유"를 의미하는 태국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제껏 외세의 지배를 한번도 받은 적이 없는 태국은 국왕을 국가의 수반으로 하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개 요

 동남아 국가중 유일하게 외국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는 나라로 강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음

 

o 수 도 : 방콕, 인구 약 700만으로 과거와 현대가 병존함

o 면 적 : 51만4천㎢. (한반도의 2.3배. 세계 51위)

o 인 구 : 약 6,800만 명(2016년),

               90%의 타이족과 소수의 화교계,

               그외 소수민족

o 언 어 : 타이어

o 화 폐 : 밧 (THB)

o GDP : 3,863억$(2015년. 세계 29위)

o 정 체 : 입헌군주제

o 국가원수 : 푸미폰 국왕

                 (His Majesty King Bhumibol Adulyadej)

                  * 차크리왕조 제 9대왕 (1946. 즉위)

o 정치형태 : 내각책임제

o 의 회 : 양원제

o 종 교 : 94%가 불교이며 남성은 일생에 최저 3개월은

             탁발승이 되어야 함

o 시 차 : 서울보다 2시간 느림(한국 오전 11시 = 태국 오전 09시)

o 토산품 : 가오리, 악어가죽 제품, 보석류, 태국실크

o 전 압 : 220V 50HZ

o 기 후 : 열대몬순 기후로 5~10월 우기, 11~4월은 건기이며 일년내내 기온이 높다.

o 출입국 : 3개월 이내는 비자가 필요 없으며 외화 $10,000 이상은 신고 해야하며 태국 출국 시 태국통화 500바트 이상 반출 불가.

o 한국으로 전화 : 001 + 82 + 0을 뺀 지역번호 + 전화번호

o 긴급연락처 : 한국 대사관   (02) 247-7537∼45.

                    대한항공 지점 (02) 235-9221∼6

 

민 족

 태국은 인구의 80% 이상이 타이 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국계인 화교가 8%, 그 외 소수민족으로 남부 말레이시아 국경 근방의 말레이계와 크메르, 라오, 인도와 북부 산악지대의 소수민족인 고산 족들이 있다. 특히 태국은 여느 동남아의 다른 민족과 달리 민족간 갈등이 없이 거의 대부분 태국인으로 동화되어 있다.

 

종 교

 태국인의 95%가 불교를 신봉하는 대표적인 남방 불교국가이다. 그 외 남부지방의 핫야이를 중심으로 푸껫 등지에 대략 580만 명, 태국 전체인구의 4% 정도가 이슬람교도이다. 특히 남자의 경우 일생에 꼭 한번은 불문에 들어가 생활을 해야 한다. 태국에서 불교가 없는 생활은 존재하지가 않을 정도로 국민 생활에 깊게 뿌리 잡고 있으며, 이들의 신앙심 또한 대단하다. 극소수이지만 치앙라이 등의 북부지방에서는 교육열이 높은 사람들의 기독교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추세이다.

 

언 어

 공식언어는 타이어로 다섯 가지의 억양으로 이루어진 5성의 성조로 되어있다. 자음 44자, 모음 32자와 숫자를 표시하는 4개의 성조 부호를 갖고 있다. 타이어는 1292년 쑤코타이 왕국의 람캄행 왕이 만들었는데, 지금의 캄보디아에 해당하는 크메르족과 몬족의 언어를 혼합하여 창제하였다. 그 외 인근국인 라오어도 북동부 지방을 중심으로 일부 사용되며(현재 라오스는 태국의 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서로 간 그리 힘들지 않게 언어가 통용된다.) 화교를 중심으로 한 중국어도 소수이지만 이민 1세대에 의해 사용된다. 그리고 남부지방의 말레이 계통의 말레이어도 소수이지만 사용되며, 관광객이 많이 찾는 유명 관광지에서는 영어도 쉽게 통용된다.

 

기 후

 아열대 몬순기후로 남서풍이 부는 5∼10월의 우기와 북쪽에서 건조한 바람이 부는 11∼2월의 건기로 나뉘어진다. 연평균강우량은 1,650mm 이상이며, 방콕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과 치앙마이 중심의 북부지방, 그리고 나콘 랏차시마(코랏)을 둘러싼 북동부 이산지방과 핫야이 등의 남부해안을 중심으로 한 남부지방 등의 4개 지방에 따라 조금의 차이가 있기도 하다. 예로 북부지방의 경우 아침과 저녁으로 다소 쌀쌀한 기후를 보이는데 한국인이 느끼기에도 조금은 춥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여행의 시기는 1년을 기준으로 아무 시기나 상관이 없으나 건기인 11월~3월이 비가 가장 적게 내리기 때문에 많은 외래 관광객이 몰려 들어온다. 우기 때도 한국의 장마처럼 지루하게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 1~3차례 정도에 20여분 정도 한꺼번에 쏟아지고 금방 푸른 하늘이 보인다. 비가 내린 직후 거리는 지저분한 각종 오염물질을 제거한 후라서 상당히 상쾌하고 깨끗하게 변한다. 방콕의 경우 연평균 기온이 29℃ 정도이다.

 

방콕(Bangkok) 기후 (℃. mm)

지  역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방  콕

(Bangkok)

최고평균

33

34

35

36

35

34

33

33

33

33

32

32

최저평균

19

21

23

24

24

24

24

24

24

24

22

19

평   균

26.1

27.6

29.2

30.3

28.9

29.8

28.4

28.2

27.9

27.6

26.7

25.5

강수량mm

9

30

29

65

220

149

155

197

344

242

48

10

강우일수

1

3

4

6

17

18

19

19

21

17

7

3

 

 

태국의 관습

❋ 발로 사람이나 물건을 가리키는 행동은 무례한 것으로 여겨진다. 태국 사람들은 특히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친밀함을 표하는 행동이라도 삼가는 것이 좋다. 고의건 아니건 상대방의 머리를 건드리게 되었다면 즉시 사과를 해야 한다.

 

❋ 필요 이상으로 상대방을 오래 쳐다보는 것도 무례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때로는 싸움을 거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 태국사람의 집에 들어갈 때에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

 

❋ 모든 불상은 크든지 작든지, 오래된 것이든 새 것이든 신성한 것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사진을 찍기 위해 불상에 올라간다거나 불경스러운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 태국의 왕실은 태국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무심코 왕실을 모독하는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태국인들은 공공연한 장소에서 하찮은 입씨름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태국인들은 그런 행동을 가장 몰상식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 공공 장소에서 남녀간의 애정표현은 바람직하지 않다.

 

❋ 태국 사람들은 서로 인사를 할 때 악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자세와 같이 양 손바닥을 합장한 자세로 목례를 한다. "Wai"라는 말로 인사를 하며 일반적으로 손 아랫 사람이 윗사람에게 먼저 하고 손윗사람은 같은 자세로 이에 응답한다.

 

❋ 태국에선 '성'으로 타인을 호칭하는 대신 "Khun(Mr. Ms. Mrs.)의 뜻을 앞에 넣어 이름을 부르므로 본인의 이름으로 불리었을 때 상대방을 무례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 타인에게 물건을 건네줄 때 왼손은 사용하지 않는다.(태국에서 왼손은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손이므로)

 

❋ 태국 내에서 무게와 거리 측정의 단위로는 미터법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기억해 두어야 할 중요한 차이점이 몇가지 있다. 금, 은, 장신구의 무게를 측정하는 기본단위는 태국 화폐와 같이 바트이다.  1바트는 15g에 해당되고, 텔(tael)의 2/5이며, 4 쌀릉(salueng)으로 나뉜다.

 

❋ 태국은 고유의 면적 단위가 있다. 그 가장 기본 단위는 라이(rai)인데, 0.16ha나 1600㎡에 해당하는 것이다. 1라이는 400평방와(wa)이고, 1와는 2m이다. 

 

 

태국의 대표적인 축제

 첫 번째는 송크란(Songkran) 축제로 음력 4월 13일-15일경(태국인의 음력 설날)에 열린다. 축제 기간 중 사람들은 지나가는 시민이나 스님, 때로는 관광객에게까지 서슴지 않고 물을 뿌린다. 이 시기가 가뭄이 극심한 시기이기 때문에, 이런 행동에는 지난 해의 악운을 씻어 버리고 새해부터는 좋은 일만 생기라는 축복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특히 치앙마이 송크란 축제는 3일에 걸쳐 벌어지는데, 대다수 외국인 관광객도 즐겁게 참여하여 분위기를 즐긴다.

 두 번째는 수코타이 시대에 연원을 둔 로이크라송(Loi Krathhong) 축제로, 11월 중순 보름달이 뜨는 밤 여인들은 바나나 잎으로 만든 배를 꽃으로 장식한 뒤 촛불을 꽃아 강물에 띄워 보낸다. 이 때 로이크라송이라는 노래를 합창하며 기도를 하면 소원을 이를 수 있다고 한다.

 

◐ 축제의 나라 태국의 11월은 '러이 끄라통(Loi Krathong)'과 함께 시작된다.

 강에 연꽃 봉오리 모양의 초를 띄우며 소원을 비는 '러이 끄라통'은 지역축제가 활발한 태국에서는 흔치 않은 전국적인 규모의 축제이다.

 이 축제는 태국력 12월 보름에 행해지는데, '끄라통(Krathong)'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연꽃 모양의 바나나잎으로 만든 작은 배에 불을 밝힌 초와 향, 꽃, 동전 등을 실어서 강물이나 운하 또는 호수로 띄워(Loi) 보내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을 빈다. 이때 '끄라통'의 촛불이 꺼지지 않고 멀리 떠내려 가면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데, 밝은 보름달 아래 고요하고 잔잔하게 흐르는 물을 따라 촛불을 깜박이며 부드럽게 까딱까딱 흔들거리며 떠내려가는 많은 '끄라통'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이 '러이 끄라통' 축제의 기원은 어디일까? 대부분 이 축제는 고대 타이왕국의 수도였던 수코타이에서 기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수코타이의 '러이 끄라통' 축제는 민속춤 공연, 퍼레이드, 빛과 소리축제 등으로 더욱 화려하게 치뤄진다.

 이 축제의 기원에 대한 설은 세가지가 더 있는데, 그 하나는 해마다 물의 정령에게 제사를 지내며 다가오는 모든 죄를 씻고 고난을 물리치고자 끄라통을 물에 떠내려 보낸다는 설이다. 북부 치앙마이와 동북부인들은 커다란 '끄라통'을 만들어 횃불을 밝히고 그 안에 식량과 의복을 넣고 떠내려 보냈는데, 출발지에서 멀리 떨어진 하류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달됐으며 이를 통해 자신들이 지은 죄를 씻고자 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물의 여신에게 감사의 제를 올린다는 설이다. 경제적 삶의 원천이 되는 물의 풍요에 의존해 사는 농경민에 의한 감사의 축제라는 것이다. 3번째는 저녁시간을 밖에서 보내기 위한 축제라는 설로, 사람들은 어디든 물 가까운데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고 이를 위해 무엇인가를 떠내려 보내려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기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각 지역마다 축제의 형태가 다르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연꽃모양의 바나나 잎사귀 보트에 초 등을 강에 띄우는게 가장 보편적이지만, 치앙마이의 경우는 등불 풍선을 하늘에 날리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러이 끄라통 축제 기간에는 이외에는 민속놀이 공연이나 전시, 미인선발대회 등 여러가지 이벤트가 함께 준비되어 관광객들에게도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 러이 끄라통 촛불 축제 - 수코타이(Sukhothai)

  (Loi Krathong & Candle Festival)

 이 축제가 고대 타이왕국의 수도였던 수코타이에서 기원했다고 전하는 만큼 이곳의 러이끄라통 축제는 가장 화려하다. 축제 기간 동안은 촛불전시 및 불꽃놀이, 민속 무용 공연과 퍼레이드가 함께 펼쳐진다. 대부분의 공연은 수코타이 역사 공원에서 이루어지며, 특히 빛과 소리 쇼는 유명한 볼거리이다.

 

◐ 이뼁 러이끄라통 - 치앙마이(Chiang Mai)

  (Yipeng Loi Krathong)

 치앙마이에서는 촛불이 아닌 '컨'이라는 등불 풍선 축제로 유명하다. 축제의 하루를 마음껏 즐긴 사람들이 화려한 등불을 피운 종이 풍선을 하늘에 띄워 보내는데, 이렇게 하면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고 믿는다. 저녁에는 각 가정이나 상점마다 아름답게 장식한 제등을 달고 축하한다.

 

◐ 딱 러이끄라통(Tak Loi Krathong) - 딱(Tak)

 러이 끄라통은 해마다 11월 보름달이 뜨는 기간에 행해지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밤의 축제이다. 이곳에서는 코코넛 줄기 등으로 만든 끄라통을 한꺼번에 띄워 끄라통 경주를 한다.

 

 

◐ 방콕 러이끄라통 - 방콕(Bangkok)

  (Bangkok Loi Krathong)

 태국수도 방콕에서 이뤄지는 러이 끄라통은 전통적인 의식 외에도 다양한 부대행사가 곁들여져 보는 즐거움이 두 배이다. 미스 러이 끄라통 선발대회나 민속공연 등이 열린다.

 

◐ 방사이 러이끄라통 - 아유타야(Ayutthaya)

  (Bang Sai Loi Krathong)

 화려하게 장식된 끄라통을 띄우는 것 외에도 수공예품 전시회, 미인 선발대회 등도 함께 구경할 수 있다.

 

◐ 콰이강의 다리 주간 - 깐짜나부리(Kanchanaburi)

  (River Kwai Bridge Week)

 칸차나부리에 위치한 콰이강의 다리에서는 11월 26일부터 약 2주간 콰이강의 다리의 역사 전시회 및 2차 대전중의 역사를 재연하는 빛과 소리쇼를 개최한다.

 

◐ 실크 전시회(Silk Fair) - 콘켄(Khon Kaen)

 태국은 뛰어난 광택의 훌륭한 실크로도 유명한데, 콘켄은 바로 태국 내 주요 실크 생산지의 하나, 이 전시회에서는 각 상점의 가장 뛰어난 실크가 전시, 판매 되며 전통적인 푹세요(Phuk Si eo: 서로 친해지기) 의식, 축제행렬, 문화행사, 전통 시장도 함께 진행 된다.

 

 

태국 역사

 초기 태국지역 사람들은 중국의 남부지역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타이라는 국명은 자유를 의미하는 태국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이제껏 외세의 지배를 한번도 받은 적이 없는 나라가 태국이다. 왕을 국가의 수반으로 하는 입헌 군주제 국가이다. 태국인들 정착전의 태국 역사는 아직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어떤 역사가들은 몬족(버마人)들이 이 지역을 물려 받아서 거주해 태국이 처음으로 우통에 수도를 둔 수바나부미 몬 왕국에 의해 통치를 받았었다고 믿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고고학자들은 반치앙의 북동 쪽 작은 마을 근처에서 약 5천 6백년 전의 것으로 추측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청동기 문명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후 몬족, 크메르족, 타이족을 비롯한 많은 종족들의 이민 행렬이 이어지게 되었고 지금의 태국이라고 알려진 거대한 땅에 정착하게 되는데 대부분이 중국 남쪽으로부터 기름진 땅과 강, 계곡을 따라 천천히 이동해 온 무리들이었다. 약 11,12세기 경에는 크메르족이 앙코르로부터 대부분의 지역을 통치하기도 했다.

 

드라바티 몬왕국(550년-1253년)

 후난 황제가 3세기 후 지배해 나콘파톰이 수도였다. 675년 드라바티가 크메르 황제하에 총독의 임기를 행사했다(11세기). 차오프라야 유역의 수로를 이용할 수 있는 농업의 가능성에 매료되어 쌀을 경작했던 태국인 들은 11세기에 중국 남쪽에서 이주하기 시작했다. 12세기 초, 타이족은 북쪽의 란나, 파야오, 수코타이에 조그만 공국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1238년에 이르러서는 2명의 타이 지도자들이 크메르 영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켜 최초의 독립왕국인 수코타이(행복의 새벽이라는 의미)를 세웠다.

 

쑤코타이 왕국(1238-1419)

 향후 짜오프라야강 유역을 따라 발전하게 되는 타이 왕국의 기초가 되었다. 태국의 국교인 테라바다 불교(Tehravada Buddhism)를 확립하고, 태국 문자의 발명, 미술, 조각, 건축과 문학 등 태국 예술형성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이다. 쑤코타이 왕국은 치앙마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다. 1238년에 드라바티를 압도해 크메르를 병합해 통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1300년경에 쇠퇴일로를 걸으면서 결국에는 신흥 아유타야(Ayutthaya) 왕국의 종속국이 된다.

 

아유타야 태국왕조(1350-1767)

 수코타이 왕조의 세력이 차츰 약해지면서 우통(U Thong) 지방의 장관이었던 우통은 수코타이에서 남쪽으로 300km 거리에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 초대왕인 라마티보디(Ramatibodi 1. 1350~1369) 1세로 등극하여 야유타야 왕조가 열려진다.

 아유타야 왕조는 이후 417년간 33대에 이르며 화려한 문화의 역사를 창조하였지만 이웃나라 미얀마의 지속적인 침공으로 끝내 미얀마에 점령을 당한다. 아유타야 왕조를 건국한 라마티보디 1세는 타이 역사상 최초의 법전을 만드는 등, 나라의 기초를 잡고 차츰 주의로 세력을 뻗치기 시작하여 1378년에는 수코타이를 병합하고, 타이 전 국토를 통일하여 일약 동남아시아의 대국으로 뛰어 올랐다.

 보로마라자 2세(Boromaraja 2. 1424~1448)때는 캄푸차의 앙코르를 점령하는 등 아유타야의 국력은 극치에 달했다. 아유타야 시대는 태국 사회의 행정과 법률제도의 기초를 이룬 시대로 볼 수 있다.

 라마티보디 2세는(Ramatabodi 2. 1491~1529)는 1511년 포루투갈과 수교를 맺었다. 태국 역사상 최초의 서양국가와의 수교이다. 그러나 라마티보디 2세 사후 끊임 없는 미얀마의 침략을 받아오던 아유타야는 1569년 미얀마에 나라를 빼앗겼다.

 그러나 1590년 나레쑤안왕은 왕위를 계승하면서 캄푸차를 공격하고 영토를 되찾게 되는데 그 이후, 태국과 미얀마 간의 전쟁은 계속되어 지금까지도 양 국민간의 미묘한 갈등이 남아 있는 것이다.

 나라이(Narai 1656~1688) 대왕에 와서는 국제 관계에 힘을 썼다. 문호를 개방하여 외국의 문화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프랑스와의 관계를 돈독히 했다. 1662년에는 프랑스 카톨릭의 주교가 아유타야를 방문했고,1685년 루이 14세는 슈발리에 드 샤몽(Chevalier de Chaumont)을 초대 프랑스 대사로 파견했다.

 나라이 대왕은 그리스계 프랑스인 콘탄틴 폴콘(Constantine Phaulkon)을 재무부에서 일하게 했다. 폴콘은 여러 나라 언어에 능통하고 무역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름을 짜오프라야 위차엔(Chao Phraya Wichayen)이라는 태국식으로 바꾼 그는 지속적인 왕의 신임을 얻어 총리 자리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를 시기했던 태국 사람들은 1688년 나라이 왕이 병으로 죽자 폴콘을 반역죄를 씌어 사형시켰다. 미얀마의 공격을 계속 받아오던 야유타야 왕조는 1766년 미얀마의 망그라왕이 이끄는 버마군에 의하여 1767년 4월 끝내 항복하고 말았다.

 

방콕시대(1767-1932)→(짝끄리왕조 또는 랏따나꼬신왕조)

 부르만들은 1767년 아유타야의 수도를 함락시켜 새로운 지역, 즉 현재의 방콕으로부터 짜오프라야를 건넌 톤부리에 새 수도를 설립했다. 1782년에 이르러 짝끄리왕조의 초대 왕인 라마 1세가 차오프라야 강 유역의 방콕으로 천도하게 되었다. 현재의 왕궁은 이 기간에 2번째 왕이었던 짝끄리장군 때부터 내려온 것이다. 19세기에 완벽한 군주제 통치를 했던 몽꿋(라마 4세:1851~68년)왕이 태국을 근대화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서구방식의 표출은 1932년 입법부가 왕의 권력을 제한하고, 국가의 완벽한 군주대치를 요구하는 태국 지식인들의 무혈폭동을 야기시켰다. 혁명은 또한 군대와 오늘의 태국정치가 계속될 수 있도록 정부를 제재하는 시민단체 사이에 분쟁을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통치가 끝난 후 1945년과 1946년 사이에 쎄니 프라모지하의 시민정부가 국가를 다스렸다. 1947년에 무혈군대반란이 마샬 피분 쏭크람 전투를, 1957년 이와 유사한 폭동이 마샬 싸릿 타나랏 전투를 일으켰다. 싸릿은 1963년에 죽고 그의 후계자인 타놈 키티카촌(최후의 마샬 전투) 장군이 1968년에 적은 기간 동안 정치적인 시민통치를 주도했으나 1971년 쌓여있던 불안 때문에 군사통치가 이를 대신하게 되었다. 1973년 싸냐 다르마삭티가 임시 시민정부를 창설했다. 1975년에 치뤄진 선거는 다수당 창당에 실패해 쎄니 프라모지와 쿡크릿 파라 모지가 각각 연합정부를 만들었으나 분단된 국가를 통일하는데는 실패했다. 쎄니는 1976년 공직에 재선됐으나 나중에 그해 쌍가드 차롤유 장군이 지휘하는 군대반란으로 쫓겨났다. 타닌 크라이비치엔이 수상이 되었으나 1977년에 크리앙삭 초마난 장군 지휘하의 무혈반란으로 대치되었다. 1979년 선거는 크리앙삭을 선거로 선출된 정부의 수상으로 공직에 재임시켰으나 1980년에 사임했다.

 

<참고>

프렘 틴슐라논다 장군

 새 수상인 프렘 틴슐라논다 장군은 1981년과 1985년에 목숨을 빼앗고자 기도한 부대를 살려주었다. 이로인해 1981년과 1986년의 잇달은 선거에서 수상으로 계속 남아있을 수 있었다. 1988년 선거 후 프렘은 정부에 남아있기를 권유받았으나 강력히 거절했다. 그의 후계자인 차티차이 춘하벤은 쑨톤 콩쏨퐁 장군의 무혈반란으로 1991년 2월에 쫓겨났다. 선거를 하지 않고 임명된 군대수상은 1992년 3월 강력한 일반 여론의 항변에 의해 만들어져 새 입법하에 치뤄진 선거 후에 정식으로 취임되었다. 군대지배하의 잔혹한 진압이 수상이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왕이 과도기에 시민의 수상을 임명하게 했다. 구 민주당은 1992년 9월 선거에서 소수의 다수당을 이겨 추안 릭파이가 수상으로 있는 시민정부와 연합했다.

 

 현재의 태국은 입헌 군주제로 1932년 이래 현재의 국왕인 푸미폰 압둘야뎃 라마 9세에 이르기까지 태국의 국왕들은 국회를 통하여 입법권을, 수상이 이끄는 내각을 통하여 행정권을, 사법부를 통한 사법권을 행사해 오고 있다. 태국은 한국과 오랜 우방 관계를 지속해 온 국가로 1949년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 한국 전쟁 때에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군대를 파견하여 1972년까지 한국에 주둔하기도 했다. 1959년에 정식으로 양국간 외교 관계가 성립되었고 1981년 양국간 사증면제협정 체결로 한국인은 비자없이 90일간 태국에 체류할 수 있게 되었다.

 

 

푸미폰 국왕

 현재 태국의 국왕인 푸미폰 아둔야뎃(Phumiphon Adunyadej)은 1927년 12월 5일 미국 매사추세스주 캠브리지에서 라마 5세 출라롱콘 대왕의 손자이자, 송클라의 왕자 마히돈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1946년 친형인 라마 8세 마히돈왕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라마 9세에 등극했다. 당시는 이미 1932년의 쿠테타에 의해 절대군주국에서 입헌군주국으로 바뀐 상태였다. 이것은 국왕이 국가의 상징일 뿐 직접 통치가 불가능해졌다는 의미이다.

 현재 태국에는 국가를 이끌어 가는 3개의 힘이 있다. 국민의 자유를 사랑하는 정신, 불교 그리고 국왕이다. 태국 국민에게 국왕은 국가의 상징 그 이상이다. 푸미폰왕의 이미지는 항상 국민에게 봉사하는 왕의 모습이다. 그는 항상 국민과 함께 있는 것이다. 현장에 나가 국민들의 고충을 직접 듣고 그들을 격려했다. 비행기로, 기차로, 자동차로 그리고 두 발로 전국각지를 돌아다녔다.

 그는 항상 국민과 함께 있는 것이다. 현장에 나가 국민들의 고충을 직접 듣고 그들을 격려했다. 비행기로, 기차로, 자동차로 그리고 두 발로 전국각지를 돌아다녔다.

 

 푸미폰 왕의 스스로 실천하는 통치는 왕실 개발계획(RDP.Royal Development Project)에서 잘 볼 수 있다. 198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계획은 농업, 수자원, 환경 등 8개 분야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이 계획에 따라 태국은 산간 오지 마을까지 문명의 혜택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경제가 발전하는 나라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국왕은 국가가 위기에 처하게 되면 정확한 판단력으로 난국을 수습했다. 특히 1992년의 유혈 민주항쟁 당시, 군부의 수친다 총리와 야권의 잠롱 방콕시장을 불러들여 무릎을 꿇어앉히고 질책하는 모습은 국민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결국 수친다는 국외 망명길에 올랐으며 태국의 민주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되었다.

 

 2000년 5월 5일은 푸미폰 국왕의 즉위 5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현존하는 전세계 국가 지도자중 최장기 재임이다. 태국 보석협회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3만 캐럿짜리 블루 토파즈를 생일 선물로 바치면서 존경을 표시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 특히 이날은 전국의 사창가와 환락가는 영업을 하지 않는 것도 국왕에 대한 존경심에서 우러난 국민들의 진실된 마음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와 존경을 받고 있는 푸미폰국왕도 이제 팔순을 넘었다. 얼마전에 심장에 이상이 생겨 수술도 받았다.

 

 푸미폰 왕은 1950년 18세의 라지윙씨리낏(Rajawongse Sirikit)과 결혼하여 현재 모두 4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장녀 우본 라따나(Ubon Ratana.1951년생), 장남이자 황태자인 와찌라롱콘(Vajiralongkorn. 1952년생), 차녀 씨린돈(Sirindon. 1955년생), 삼녀 쭐라본(Chulabhorn. 1957년생) 있다.

 

 장녀 우본 라따나공주는 미국인과 결혼하여 왕위 계승권을 박탈 당했으나 현재는 복권한 상태이다. 왕실 근위대장이자 황태자인 와찌라롱콘 왕자는 결혼을 두번하는등 사생활이 문란하고, 복권조작에 연루되어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있다. 씨린돈 공주는 문학에 취미가 있고 조예가 있어 많은 시집을 펴기도 했다. 특히 산스킷어로 된 불교서적을 태국어로 번역한 시집 또는 도서도 여러권 있다. 이 씨린돈 공주의 시집은 한국인 작가 최혜자(현재 프랑스, 파리 거주)씨에 의하여 1986년 한국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작가 최혜자씨는 10여년 동안 태국에서 왕실 도서 번역가로 활동하였다.

 

 태국은 입헌군주국으로서 국왕이 정치에 전혀 간여하지 않고 있지만, 국가의 위기 또는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직접 나서며, 또 국왕이 임명한 국회의 상원의원은 국회에서 정부정책을 인준 혹은 거부행사를 한다. 푸미폰 국왕은 항상 국민들의 생활속에 뛰어드는 적극적인 인생관의 소유자로, 또한 탤렌트적인 재능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작곡가, 음악가, 화가, 항해사, 수학자, 사진작가, 조각가, 기술자 그리고 발명가로서도 그 수준은 상당하며 그래서 국민들은 그를 "르네상스 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그는 음악을 좋아하고 섹스폰을 즐겨분다. 지금도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섹스폰을 불며 낭만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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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 지역관광 명소

 

 

방콕 코사무이섬 ∥ 푸 껫파타야 후아힌 치앙마이 치앙라이 ∥ 수코타이

칸차나부리 아유타야 끄라비

 

 

▣ 차암, 후아힌

 차암과 후아힌은 방콕의 남서쪽, 태국만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족을 위한 휴양지로서 최적의 장소이다. 이들 지역은 지리적으로 남부에 속하나 행정 구역상으로는 중부에 속한다. 태국만을 가로질러 위치하고 있는 세계적 휴양지 파타야가 화려하고 다양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곳이라면 차암과 후아힌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평온한 휴식을 한껏 누리게끔 해주는 곳이다.

 

차암(Cha Am)

 후아힌보다 아담한 지역으로 내륙쪽으로 파인애플 농장이 장관이며 길게 뻗은 오염되지 안은 해변을 자랑하고 있다. 숙박시설 또한 다양하여 각종 오락과 여흥시설이 완비되어 있는 최고급 호텔에서 부터 가격이 저렴한 해변가 방갈로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또한 해변가의 정갈한 음식점에서는 신선한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후아힌(Hua Hin)

 바위지대로 가로막혀 어촌 마을로부터 떨어져 있으며 남쪽 절벽 끝에 있는 불교사원 방향으로 약 3km 정도 완만히 구부러져 있다. 그 너머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좀더 한적한 핫카오 타오라는 또 다른 해변이 있다.  후아힌은 라마 7세 국왕이 그곳에 여름 별장을  지은 1920연대  국왕으로부터 '클라이  캉원(Klai  Kangwon)'이라는  특별 칭호를  수여 받았는데, 이는 '걱정은 저멀리'라는 뜻으로 후아힌의 평화롭고 즐거운 분위기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또한 후아힌은 태국 전통 고유의 생활  양식을 유지하고 있어 고유 생황 양식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가장 태국적인 해변 휴양지이다.

 

 

오염되지 않은 해변

 차암은 후아힌보다 아담한 지역으로 내륙쪽으로는 파인애플 농장이 장관이며 길게 뻗은 오염되지 않은 해변을 자랑하고 있다. 숙박시설 또한 다양하여 각종 오락과 여흥시설이 완비되어 있는 최고급 호텔에서부터 저렴한 해변가 방갈로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또한 해변가의 정갈한 음식점에서는 신선한 해산물요리를 맛볼 수 있다.

 후아힌 또한 청결한 해변으로 유명한데, 바위지대로 가로 막혀 어촌마을로 부터 떨어져 있으며 남쪽 절벽 끝에 있는 불교사원 방향으로 약 3km 정도 완만히 구부러져 있다. 그 너머로는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좀더 한적한 핫카오 타오(Hot Khao Tao)라는 또 다른 해변이 있다.

 

 

가장 오래된 휴양지

 후아힌은 차암보다 큰 해변이면서 또한 태국에서 유명하다. 조용하고 아담한 항구는 라마7세 국왕이 그곳에 여름별장을 지은 1920년대에 국왕으로부터 '클라이캉원(Klai Kangwon)'이라는 특별칭호를 수여 받았는데, 이는 '걱정은 저 멀리'라는 뜻으로 후아힌의 평화롭고 즐거운 분위기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후아힌은 이렇게 명성을 얻으면서 방콕 사회에서 상류계층 사람들의 휴양지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으며 특히 18홀 골프코스가 완성되면서 더욱 인기를 끌게 되었다. 요즈음도 현 왕족일가가 1년중의 일정기간을 후아힌에서 지내고 있을 정도이며 태국인들뿐만 아니라 외국관광객들에게까지도 널리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후아힌에는 많은 호텔들이 개장하여 고급 숙박시설과 더불어 해양스포츠, 그밖의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는 각종 편의시설을 제공해 주고 있다. 최근에는 장엄하고 웅장한 1920년대 건축물들이 원형 그대로 복원되어 흘러간 과거의 중후한 분위기를 되살려주고 있으므로 향수를 그리워하는 이들에게는 가히 이상적인 장소라 할 만하다.

 규모가 적은 호텔이나 방갈로도 많이 있으므로 각자의 취향과 경비예산에 맞추어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태양, 바다 그리고 모래

 차암과 후아힌에서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복잡한 도시를 떠나 해변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곳에는 또한 품격높은 시설을 갖춘 리조트 호텔들이 많이 있으며 이들은 태양, 바다 그리고 모래와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자연의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관광객들은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도 있고 저녁에는 호텔에서 마련한 여흥을 즐길 수도 있다. 이러한 점들은 바로 편리한 현대시설과 더불어 순수한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지닌이 휴양지의 멋진 모습인 것이다.

 

 

크루즈 여행

 후아힌이나 차암에 머무르는 주목적이 휴식을 취하는데 있다고 하더라도, 부근의 해안가를 탐험 해 보는 것 또한 근사한 일이다. 후아힌 남쪽해안을 따라 프란부리(Pran Buri)를 거쳐 프라추압 키리칸(Prachuap Khiri Khan)으로 내려가다 보면 수많은 고요한 만과 작은 어촌들을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당일관광 코스로 추천할 만한 코스이다.

 또한 프란부리에서 조금 남쪽으로는 카오삼 로이욧(Khao Sam Roi Yot: 300개의 봉우리를 가진 산이라는 뜻) 국립공원이 있다. 면적이 60㎢에 달하는 이 공원에는 수많은 숲과 계곡, 폭포, 동굴, 해변, 늪과 만 등이 아름답게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울창한 열대식물군은 이 공원을 각종 야생동물과 조류들의 보금자리로 만들어 주고 있다. 좀더 남쪽으로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만에 자리잡은 어촌마을인 프라추압 키리칸이라는 지방 도시가 있으며 해변 전면에 위치한 '미러 마운트(Mirror Mount)'에서는 조그만 돌탑과 무리지어 노는 원숭이들의 모습이 해안와 바다정경에 생생함을 한층 더해주고 있다.

 

 

태국적인 해변 휴양지

 차암과 마찬가지로 후아힌도 외국의 명소를 전혀 모방하지 않으면서 태국 고유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 두 휴양지가 주는 즐거움이란 열대의 태양이 내려쬐는 해변가에 한가로이 누워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든지, 다양한 해양스포츠를 즐기고 신선한 해산물요리를 맛보는 기쁨 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해변 그 자체가 지닌 태국적인 요소가 후아힌이 지니고 있는 커다란 매력이다. 작은 어촌항구 아래쪽 길가를 거닐다 보면 그 고장의 전통 생활풍습을 그대로 볼 수가 있는데 지금도 여전히 거리는 활기에 넘치고 있고 마을 그 자체도 또한 매우 흥미롭다. 후아힌은 오늘날 유명한 해변휴양지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주거지역이 여전히 태국고유의 생활양식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곳 주민들은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살며 보람을 느끼는 순박함을 간직하고 있다.

 

 

건강 리조트

 치바솜(Chiva Som)은 동남아시아에서는 유일한 세계적 수준의 온천 휴양지이자 건강 리조트이다. 이곳에서의 휴양은 치바솜을 찾는 사람들에게 균형잡힌 건강한 육체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즐거움과 안락을 제공해 줄 것인데, 옛왕실의 휴양지였던 후아힌 가까이에 있는 태국만 서해안에 위치한 치바솜은 방콕에서 자동차로는 45분 걸리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다. 회원제 리조트인 치바솜에서 제공하는 주요 서비스에는 치바솜 관광, 호화숙소 제공, 치바솜 특유의 온천요리 제공 외에 지압 서비스, 건강, 미용상담, 라이프스타일 강의 및 워크샵 등 다양한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으며, 외국인의 경우 임시 회원 가입비(1천바트)를 내면 이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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