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후에(H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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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갤러리  ∥  응우옌 왕조

 

 후에는 베트남 최후의 왕조인 원조(1802~1945년)의 도읍이 있었던 도시이다. 일찍이 유네스코의 한 관계자는 후에 시에 대하여 "극찬해야 할 전축상의 시(詩)이다." 라고 말한 일이 있었는데 이것은 후에를 아주 정확하게 나타내는 말인것 같다. 유유히 흐르는 후옹 강 주위에는 왕궁, 사원, 황제 묘와 품위있는 건축물들이 많은 차분한 분위기의 도시이다. 후에에는 다낭의 번화함이라든가 호치민과 같은 소음이 거의 없다. 조용한 성안을 걷고 있으면 마치 당시의 왕조 시대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경도 16°14'- 16°15', 107°02' - 108°11' 에 위치하고 있는 투아 티엔 후에는 길이 127km, 폭 60km에 70% 정도를 산과 숲으로 이뤄진 지역으로, 행정구역상 트아티엔(Thua Thien)에 위치하고 있는 후에(Hue)는 베트남의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하노이에서 660km, 사이공에서 1,080km 떨어져 있고, 베트남의 최대 쌀생산지인 붉은 빛을 띠는 델타강과 메콩 델타의 거점이 되고 있다. 강물은 후옹(Huong), 보(Bo), 트루오이(Truoi), 오라우(O Lau) 등을 지나 후에 경계선 동쪽방향으로 흐른다. 지리학적으로 투어 티엔 후에는 북쪽으로 쿠앙 트리(Quang Tri)의 경계이고, 남쪽으로 다낭(Da Nang), 서쪽으로 라오스 국경에 인접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120km 넘는 해변이 펼쳐져 있다. 투어 티엔 후에는 5,009㎢의 자연지형으로 펼쳐져 있으며, 105만 명의 인구(1997년 현재)가 전체의 1.5% 내지는 1.4% 지역에서 제각기 살고 있다. 후에는 아열대의 남쪽과 열대의 서쪽이 만나는 열대 계절풍의 영향을 받고 있다.

 

 폭풍우와 허리케인이 동반되는 우기는 9월에 시작하여 11월까지 이어진다. 5월에서 8월사이에는 건기이다.

 

 구엔왕조는 13대에 걸쳐 1802년부터 1945년까지 베트남의 수도로서 이곳 후에에 많은 것들을 이룩하였다. 유네스코는 1993년 후에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함으로써, 그 가치를 되새기고 보존을 지원하고 있다.

 

 후에라는 명칭은 투안 호아(Thuan Hoa)에서 "Hoa"를 프랑스인이 잘못된 발음함으로써 얻게된 베트남의 가장 잘 알려진 고대 수도의 이름이다. 16세기 이후, 티안 호아는 전략적인 지리때문에 매우 번창하여 왔다. 구엔(Nguyen)군주는 그들의 핵심지역으로 후에을 선택하였다. 구엔 안(Nguyen Anh)은 1802년에 베트남의 수도를 건립하였고, 후에 그는 테이 손(Tay Son)을 물리치고 지아 롱(Gia Long)이라는 이름으로 왕좌에 오르게 된다.

 

 지아 롱 왕(1762-1819)은 자신의 왕국의 거점으로서 건물과 요새화된 후에를 선택하게 된다. 이후, 구엔왕조의 계승자들은 지아 롱 왕을 이어받아 이곳 후에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 베트남 마지막 왕조 - 응우옌 왕조(Nguyen Dynasty , 阮王朝(완왕조), 1802~1945)

 창건자는 응우옌푹아인(阮福映)으로, 여왕조(黎王朝)를 멸망시킨 떠이선당(西山黨)의 내분을 틈타 국내를 통일하고, 황제가 되었다. 재위 중의 연호를 따서 가륭제(嘉隆帝)라고도 부르며, 세조(世祖)라는 시호를 사용하였다. 세조 가륭제는 국호를 베트남이라 정하고, 여왕조의 구제(舊制)를 존중하면서 새 질서의 건설에 힘썼으나, 2대 임금 성조 명명제(聖祖 明命帝:1820∼1841)는 이를 일소하고 청()나라 제도를 채택함과 동시에 유교사상에 입각한 중앙집권적 관료제(官僚制)를 확립, 베트남 역사상 최대의 판도를 갖는 전제군주국가를 이룩하고, 국호도 다이남(大南)으로 고쳤다.

 

 그 뒤를 이은 헌조 소치제(憲祖 紹治帝)· 익종 사덕제(翼宗 嗣德帝)도 성조의 정치를 그대로 계승하였으나, 그리스도교의 탄압과 양이정책(攘夷政策) 때문에 프랑스의 침략이 노골화되었다. 1858년 프랑스-스페인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1862년 체결한 제1차 사이공조약으로 프랑스령 식민지가 되는 단서가 되었다. 그후 1874년 제2차 사이공조약에 따라 남부 6개 성()을 프랑스에 식민지로 할양하였고, 1883년 및 1884년 후에(順化)조약으로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었다. 그러나 베트남에 대한 종주권(宗主權)문제로 청· 프랑스전쟁이 일어났고, 그 결과 베트남은 청나라의 보호를 벗어나 1887년 성립된 '프랑스령(領) 인도차이나연방'의 일부가 되었다.

 

 프랑스령 시대의 베트남은 3개의 지역으로 분할되어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는데, 응우옌 왕조는 그중 안남(安南)의 왕조정부로서 존속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1945년 베트남독립동맹(베트민)의 8월혁명 때 제13대 바오다이제()의 퇴위 선언으로 완전히 몰락하였다.

 

 

가는 방법

❋ 항공

 베트남 항공이 후에에서 하노이와 호치민 사이를 매일 운행한다.

 호치민까지는 약 1시간 30분, 하노이까지는 약 1시간 10분이 소요된다.

 

❋ 철도

 하노이와 호치민 사이의 철로가 놓여져 이용이 용이하다. 객실 내부의 불편함만 감수해야 한다.

 하노이에서 출발하면 최소 12시간 반에서 16시간 반까지 소요된다.

 호치민에서 출발하면 최소 19시간 반에서 25시간 반까지 소요된다.

 

❋ 버스

 신카페와 같은 여행사 버스가 주요 도시로 운행한다. 많은 여행자들은 불편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정부 운영 시외버스보다 여행사 버스를 주로 이용한다.

 주요도시인 하노이까지는 약 16시간, 호이안까지는 5시간, 나짱까지는 약 11시간이 소요된다.

 

❋ 라오스로 갈 때 주의사항

 이곳은 라오스로 향하는 국제버스가 운행하는 지역으로 라오스로 향하는 여행자들도 쉽게 볼 수 있다.

 라오바오 국경포인트를 거쳐 라오스의 사바나켓으로 향하며 국경 비자가 불가능한 지역이므로 미리 가고자 하는 국가의 비자를 받아둬야 한다.

 

 

 관광 명소

후에성

 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잘 보존이 되어 있는 후에성은 외각성인 경성과 내성인 황성, 황제의 거처인 황궁으로 나뉜다. 황궁에는 여러 개의 작은 궁과 사원 정원들이 있는데 궁정으로 들어가는데는 4개의 문이 있다. 동문은 인간의 문, 서문은 미덕의 문, 남문은 정오의 문, 북문은 평화의 문으로 불린다.

 남문을 지나 궁전으로 들어가다 보면 지상 37m의 높은 기사 탑이 있다. 이 탑은 1809년 지아롱 황제가 건설한 것으로 현재는 이 탑 꼭대기에 베트남 국기가 민족의 자존심을 자랑하며 휘날리고 있다.

 

 1904년 태풍으로 파손되었다가 다시 복구되었다고 한다.

 태화궁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있는 연못 위에 금수교가 놓여 있는데 옛날에는 황제만이 이 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내부의 기둥이나 천장은 금으로 장식돼 있어 화려하며 관체의 정자에는 철제로 만들어진 9개의 분향로가 나란히 놓여있는데 한 개의 무개가 무려 2톤이나 된다고 한다.

 

 

◈ 구엔왕조의 7명의 군주가 묻혀있는 왕릉(Royal Tombs)

 구엔왕조의 7명의 군주가 묻혀있는 왕릉은 페르푸메강(Perfume River)의 제방들을 따라 엄청난 규모로 자리잡고 있다. 대부분의 릉은 구엔왕조 그들이 살아 있을 때 계획되고 건축되었다. 불, 물, 흙, 철, 나무들의 5가지 요소와 인(yin)과 양(yang)의 최적의 결합으로 결정되어진 펭(feng), 슈이(shui)에 기초하게 되었다.

 건축과 디자인이 각각 독특함을 지니고 있으나, 대부분이 벽돌로 포장한 거대한 안마당에 말, 장벼, 관리, 코끼리 등의 조각상이 있고, 중심에 있는 별관에는 왕의 일대기를 새겨놓았다.

 밍만황제(Emperor Ming Manh), 뜨득황제(Emperor Tu Duc), 카이 딘왕(Emperor Khai Dinh)의 왕릉은 높은 예술성을 평가받고 있다.

 

 민망왕릉은 후에시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8km 정도 가면 볼 수가 있다. 구엔 왕조의 두 번째 왕이며 지아롱 황제의 넷째 아들인 민망황제는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왕이어서 릉이 상당히 크며 이 왕릉의 입구에는 Dai Hong Mon이라는 문이 있고 Trung Dao다리, Minh Lau사원 등이 있다. 또 뜨득 황제릉은 후에시에서 남서쪽으로 7km 정도에 있으며 이 릉은 1864년에 약 3,000여명의 군사가 동원돼 3년에 걸쳐 완공하였다.

 

 

고딕양식과 인도양식의 조화 카이딘 황제의 묘(Khai Dinh's Tomb)

 1920년부터 그가 죽은 지 6년이 되는 1931년까지 12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묘이다. 서구풍의 분위기가 느껴지고 예술적인 면에서도 뛰어난다는 점에서 다른 묘와는 다르다.

 돌계단의 난간에는 용이 새겨져 있고, 계단 위에는 말, 코끼리, 관리의 석상이 묘를 지키고 있다. 그 뒤로는 위업을 기리는 2층 구조로 팔각형의 작은 석당이 있고, 그 양쪽에는 높은 유럽풍의 탑이 서있다.

 묘 내부에는 금박을 입힌 청동으로 만든 카이딘 황제의 동상이 있고, 아래에 황제의 유체가 안치되어 있다. 벽과 천장은 자기와 유리를 사용하여 스텐인드글라스 같이 꾸며놓았다.

 

 

민망 황제 릉(Lang Minh Mang, 랑 민망)

 다른 왕들의 능에 비해 가장 장대하고 근엄한 느낌의 능이다. 1841년부터 3년에 걸쳐 지은 이 곳은 전체적인 조화와 장식 등이 매우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성의 정문인 다이홍몬(Dai Hong Mon 大紅門)은 폐쇄되어 있고 쪽문인 따홍몬(Ta Hong Mon 左紅門)이 현 출입문이다(참고로 정문의 다른편에 있는 문은 右紅門 흐우홍몬 Huu Hong Mon). 입구를 들어서면 먼저 인공호수가 눈에 뜨인다. 오른 편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그의 아들 티에우 찌 왕이 세운 민망 왕을 칭송하는 비석이 놓인 건물 좌 우로 코끼리, 말, 무관, 문관들의 석상들이 열 지어 지키고 있다. 그 뒤의 대문을 통하여 들어가면 디엔숭안 (Dien Sung An 崇恩殿:숭은전)이라 이름지어진 건물이 있는데, 이곳은 왕과 왕비의 위패가 놓여있다.

 뒤로 가보면 중앙의 문으로 통하여 계단으로 내려가게 되어있다. 아래쪽에는 연못이 있고 그 위에 다리가 중앙, 좌, 우로 세 개가 놓여 왕이 놀던 민라우(Minh Lau 明樓)라는 2층으로 된 붉은 건물로 연결되어있다. 중앙의 다리는 왕 전용, 좌우는 각각 문, 무관들이 이용하던 다리다. 민라우는 계단으로 오르게 되어있는데, 위에서 돌아보는 주변의 경관이 좋다.

 다시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초승달 모양의 연못 중앙에 돌다리로 연결되어있는 작은 언덕이 있다. 이곳이 민망 왕이 묻혀있는 곳인데, 담으로 둘러 쌓여있고 중앙에 나무로 된 문이 있다.

 

 

◈ 왕릉 중 가장 잘 보존되어고 있는 뜨득 황제 능(Tu Duc's Tomb)

 돌벽으로 에워싸여 소나무숲안에 자리잡고 있는 뜨둑황제의 왕릉은 구엔왕조의 유적중 가장 잘 보존되어지는 것중 하나이다. 225헥타르에 펼쳐있고, 50개의 건축물로 구성되어 있어, 무덤이라기보다는 대규모 공동묘지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호수주변의 부속건물은 나무 목재 기둥으로 만들어진 중국 양식의 단아한 모습의 건물이다.

 현재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으로, 1864년 2월부터 1867년 3월에 이르기까지 꼬박 만 3년 동안 건설된 곳이다.

 뜨득 황제는 프랑스에게 식민지화되어 가는 기간에 왕의 자리에 있었다. 당시 백성들은 매우 힘든 생활을 하던 시기였으나 그는 매우 호사스럽고 향락적인 생활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100여명의 후궁을 두었지만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조카인 동칸 황제를 후계자로 두었다.

 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에 커다란 연못이 있고, 그 주위에는 조전과 시원한 목조 건물이 있다. 연못 왼쪽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황제를 모신 절이 있고, 그 뒤에는 황제의 공적을 기리는 석비가 있다. 그 뒤쪽으로는 연꽃을 세겨놓은 2개의 탑이 서있다. 

 

 

동칸 황제 능(Lang Dong Khanh 랑 동칸)

 동 칸 환제는 불과 5년여 정도밖에 왕위에 올라있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능은 규모도 다른 곳에 비해 조금 작은 편이다. 계단을 올라 중앙의 문을 들어서면 단층의 단아한 노란 지붕건물이 나온다. 이곳은 동칸 황제와 그의 두 아내의 위패와 사진을 모신 곳이다.

 이곳에는 생전 사용하던 물건들과 선물 받은 자기 등을 진열해 놓았다. 주위의 다른 건물들은 베트남 전 당시 폭격을 당해 많이 부서져 있으나 복구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중앙 건물의 왼쪽으로 나 있는 쪽문으로 나가보면 야트막한 오르막 길이 조그맣게 나 있다. 이곳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 보면 동칸 황제의 능이 보인다. 다른 묘와 같은 방식으로 되어있지만, 왠지 좀 초라한 기분이 든다.

 

 

티엔 무 사원(Chua Thien Mu 쭈아 티엔 무)

 중부 베트남 불교의 중심 역할을 한 이 사원은 많은 베트남 불교계 대표들을 배출한 곳이다.  1601년에 세워진 절로, 후에 시내에서 서쪽으로 약 4km 떨어진 후옹 강가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린무 파고다는 높이 21.24m의 칠층 팔각형의 탑으로, 각층에는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 탑의 이름은 '행복과 하늘의 은총'을 의미한다.

 탑 뒤에는 한자로 이 탑과 관련된 역사가 기록된 석비가 있다. 그 옆에는 그 소리가 후에 시가지까지 들린다는 약 2톤의 무게의 커다란 종이 있다. 그 곳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절의 중심으로 석가를 모신 다이훈 사가 있다.

 이 곳의 청동불상은 타이손 당을 물리치고 자롱 황제를 도왔던 포르투갈인인 진 데 라 쿠로이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뒤뜰에는 1963년11월 사이공(현호치민시)에서 종교적 억압에 항거해 분신 자살한 승려의 이야기와 함께 그가 타고온 하늘색 자동차가 전시되 있다.

 1844년 티에우 트리(Thieu Tri)왕에 의해 건축된 티엔무 파고다는 비록 19세기때 건물이 지어졌지만, 1600년대 종교중심으로 티엔무는 시작되었다. 건축 당시에는 7층 각 층마다 금동불상을 안치놓았는데, 지금은 도난당하고 말았다. 파고다의 뒤부분에 수도승과 수녀들을 위해 건물을 만들었다.

 전쟁중에는 불교도들의 항거의 중심이 되었다. 티엔무파고다는 사이공에서 희생되었던 반체제 수도승 쿠앙 둑(Quang Duc)의 본거지가 되기도 했다. 훗날 그는 저항의 상징으로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은 티엔무에서 정치시위를 제한하므로,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국민적 지지가 약해진 지금은 파고다의 제정지원을 위해 구호활동을 하고 있다.

 

 

◈ 황제의 요새, 임페리얼 시타델(Imperial Citadel)

 황제의 요새는 베이징의 금단의 도시를 모델로하여 1804년에 만들어져, 왕과 그의 가족, 측근들만이 독점적으로 사용했다. 100개가 넘는 기념탑과 왕궁, 타워, 호수, 사원 등의 건축물들은 구내에 빈팀없이 대칭적으로 디자인되어 배열되어 있다.

 씨타델은 주황색 엔크로져(Yellow Enclosure), 전쟁때 많이 훼손된 금단의 자주빛 도시(Forbidden Purple City), 외곽 엔크로져 등 3부분이 서로다른 벽으로 봉인되어 총 10km 지형에 만들어졌다.

 각각의 엔크로져는 제각기 용도에 맞게 디자인된 건물이 있다. 공무 접견실은 타이호아 왕궁(Thai Hoa Palace), 도서관과 수행실은 만다린 홀(Hall of the Mandarins), 관저는 금단의 자줏빛도시로 등으로 구분되어 있는 3개의 엔크로져에 각각 자리잡고 있다. 금단의 자줏빛 도시는 1968년 텟(Tet)의 공격으로 파괴되었으나, 남은 건축물들은 보존되어 지고 있으며 복구가 이뤄지고 있다.

 

 

박물관

 후에시는 박물관이 여러 개 있다. 저명한 것은 호치민 박물관으로 어릴 때 후에 에서 초등 학교 과정의 국학을 공부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1979년에 설립되었고, 베트남의 민족영웅 호치민을 중심으로 한 혁명의 역사와 해방전선의 활약상이 각종 기록물로 전시되고 있다. 실물 전시품 중에 훈당 이외에 다른 것은 것의 진품이 아니다.

 2층 정면에는 호치민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벽면으 한 가득 메운 금박 부조 조각상은 전체적으로 박쥐 모양을 하고 있다. 박쥐는 중국 문화권에서 행복을 상징하는 동물로 중국 한자 박쥐의 '박'자가 한자 '복'자와 비슷해 박쥐는 행복을 가져오는 동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곳은 하노이 <호치민박물관>에 비해 전시자료나 충실도 면에서 뒤떨어진다.

 

 

후에 박물관(Hue Museum of Royal Fine Arts, 바오 땅 후에)

 주로 응웬 왕조때의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다. 궁정에서 사용되었던 물건과 외국에서 온 선물 등을 전시해 놓은 전통 가옥 모양의 본관과 철제, 석제 전시품들을 전시해 놓은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 넓지는 않고 화려하다는 느낌도 없지만 차분하고 여유롭게 둘러보면 좋은 곳이다.

 

 

티에우 찌 황제 능(Lang Thieu Tri, 랑 티에우 찌)

 민망황제의 뒤를 이은 왕으로, 능 역시 민망 황제의 것을 모방하여 지었으나 그 규모는 훨씬 작다. 입구 측에서 보면 어느 정도 위엄 있어 보이기는 하나 안쪽은 그다지 넓지 않다. 본관을 들어가면 역시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왕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왕의 묘는 개천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데, 보수를 하지 않은 탓인지 전체적으로 황폐하게 느껴진다.

 

 

쟈롱 황제 능(Lang Gia Long 랑 쟈롱)

 응웬왕조의 창시자인 쟈롱황제의 묘는 가장 먼 곳에 위치해 있고 배를 타고 들어가서 다시 차량을 이용해 들어가야 하는 등, 가는 방법이 좀 복잡하다. 그리고 상당히 파손되어 있고 복구도 되어있지 않아 일반 관광객들로서는 좀처럼 가지 않는 곳이다. 게다가 지뢰 제거작업은 끝났지만, 오토바이 기사 등들은 이를 이유로 좀처럼 가기를 꺼려한다.

 

 

혼쩬전(殿)(Dien Hon Chen 디엔 혼 쩬)

 후홍 강변 언덕배기에 있는 이 절은 자그마하지만 1832년에 지어진, 200년 가까운 역사가 깃든 곳이다. 원래는 "이아나"라고 하는 참족의 절로 지어졌지만, 후에 몇 번에 걸쳐 이름이 바뀌어 현재는 "디엔혼쩬"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전설에 의하면 냐짱의 참족 절에 있던 신의 유골 중 일부를 가져와 받쳐 지었다고 한다.

 

 

◈ 성인 반쑤옹을 추모하는 옥산사(Ngoc son Temple)

 하노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안 키엠(Hoan Kiem)호수는 북쪽, 섬에 자리잡고 있는 옥산사는 19세기초에 섬에 건축되었다. 성인 반쑤옹(Van Xuong)을 추모하는 목적으로 세운 이 사찰은 원래 옥산 파고다(Ngoc Son Pagoda)라 부르다가, 옥산사(Ngoc Son Temple)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베트남의 문학과 학문에 있어, 위대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는 반수옹(Van Suong)이 이 곳에서 참배하곤 함으로써, 그 가치를 평가받기도 했다.

 13세기때 원나라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여, 베트남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국가적인 영웅 쩐흥다오(진흥도: Tran Hung Dao)또한 옥산사에 와서 참배를 하였다고 한다.

 이 사원은 1864년 작가 구엔 반 시에우(Nguyen Van Sieu)에 의해 개보수된 모습 그대로 오늘날까지 보존되어지고 있다. 그는 또한 사원입구에 거대한 펜모양의 탑인 '탑붓(Thap But)'을 건립하였다. 탑붓을 지나, 3개의 중국 글자인 타(Ta), 탄(Thanh), 티엔(Thien)가 있다. 이 단어들은 진실하고 글자그대로 올바른사람의 결심과 의지를 담기위해 푸른하늘위에 있다. 다이니엔(Dai Nghien; Ink Stand)은 사원의 문꼭대기에 세마리의 개구리상의 등위에 복숭아를 닮은 돌에 새겨져 있다. 다이니엔를 지나면 , 방문객들은 훅(Huc)라고 부르는 목제 다리를 걷게 된다. 1885년에 만들어진 이다리의 이름인 '훅(Huc)'은 문자그대로 닿을 수 있는 아침햇살이 드는 곳이라는 뜻이다.

 

 

향수의 강

 베트남 역사의 주요 무대였던 후에의 여정은 홍강 호텔 앞에 위치한 유람선 선착장에서 시작된다. 이 곳에서 여정이 시작되는 것은 후에의 발자취들이 [향수의 강]을 끼고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향수의 강]의 유래는 구엔 왕조의 아름다운 공주였던 향수가 아름다운 강 풍경과 깨끗한 강물에 반해 강가에 나와서 세수를 하면서 공주의 이름을 따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쿽혹(Quoc Hoc)

 한때 호치민이 공부했던 학교로, 붉은 색 벽돌의 건물들이 차분한 분위기다. 호치민이 공부할 당시는 남자학교였으나 지금은 남녀공학으로 바뀌었다. 특별히 볼거리는 없지만, 시내에 있으므로 오다가다 한번쯤 들러봐도 좋을 것이다.

 

동바시장(Dong Ba Market 쩌 동바 Cho Dong Ba)

 구시가의 후옹 강변의 2층으로 지어진 상설 시장이다. 1층은 커피나 차, 과일, 전통 모자, 각종 전자제품 등의 식품/잡화를 판매하는 작은 매장들이 몰려있고, 2층은 주로 의류 등을 판매한다.

언제나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이 몰려들어 북적북적하여 혼잡하다.

 

 

바오궉 사원(Chua Bao Quoc 쭈아 바오 쿽)

 한자로는 報國寺, 즉 보국사이다. 이 절은 1670년 경 세워졌는데, 현재의 이름은 민망 황제가 1824년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입구부터 얼룩덜룩한 검은 이끼로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절 내부는 그리 넓지 않으나 차분하고 경건한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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