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투어

http://www.startour.pe.kr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7길 33. 남도빌딩 505호

Star Tour   -

즐거운 여행. 아름다운 추억

☎ : (02)723-6360       FAX : (02)720-1264

 

심양 백두산 고구려 역사 탐방 5일 -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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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역 :

인천심양-통화(1)-백두산-송강하(1)-통화-집안(1)-단동(1)-심양인천

출 발 일 :

매 일

요    금 :

스타투어(Star Tour) ☎:(02)723-6360

 

일 자

여 행 지

교 통 편

시 간

세         부         일         정

제 1일

 

 

 

 

 

 

 

 

 

 

 

 

 

 

 

 

인     천

 

 

 

심     양

 

 

 

 

 

 

 

 

 

 

통     화

 

 

 

CZ 682

 

전용버스

 

 

 

 

 

 

 

 

 

 

 

10:30

 

12:45

 

13:30

 

 

 

 

 

 

 

 

 

 

19:00

 

인천 국제공항 3층 E 체크인 카운터 앞 만남

 

인천 국제공항 출발

(비행시간- 01:45분.  기내식 1회.  시차: -1) 

요령성의 성도 심양(沈陽) 도선(桃仙)국제공항 도착

입국수속을 마치고 시내로 이동

 

❋ 청나라 초창기인 태조 누르하치와 2대 태종 때의 황궁으로 북경의 자금성 다음으로 큰 황궁인 고궁(古宮) 관람

❋ 심양의 번화가 중에 하나이며 조선족 거리로 유명한 서탑가(西塔街) 관광

 

통화(通化)로 이동

(심양-통화: 약 341km.  소요시간 - 약 4:00분)

 

통화 도착 후 현지식으로 석식

호텔 투숙

HOTEL: 通化喜來登大酒店

또는 동급 (☎:86-435-577-8585)

 

 

중:기내식

 

석:현지식

제 2일

 

 

 

 

 

 

 

 

 

 

 

 

 

 

 

 

 

 

 

 

 

 

통     화

 

 

 

백 두 산

북     파

(北  坡)

 

 

 

 

 

 

 

 

 

 

 

 

무     송

 

 

 

 

전용버스

 

 

 

 

 

  

 

 

 

 

 

 

 

 

 

 

 

 

 

 

 

07:00

 

 

 

 

 

 

 

 

 

 

 

 

 

 

 

 

 

 

 

 

19:00

 

호텔 조식 후

이도백하(二道白河)로 이동

(통화-백두산: 약 280km.  소요시간 - 약 4:30분 정도)

 

 민족의 영봉 백두산(白頭山) 관광

- 한 민족의 영봉 백두산 천문봉 등반 - 천지(天池 - 2,680m) 관광

  (지프로 등정(20여분 정도 올라감) - 6명이 함께 승차)

  (백두산 천지에서는 관광 시간이 40여분만 주어집니다.)

 

❋ 높이 68m의 장엄한 폭포 줄기가 천지를 뒤흔드는 우람한 장백폭포(長白瀑布 또는 비룡폭포라고 함) 관광(약 1시간 소요)

 

❋ 장백폭포 주변의 위치한 최고 82℃에서 최저 37℃의 다양한 온천군 관광 및 ♨ 온천욕(약 1:00 소요)

 

무송((霧淞)로 이동(소요시간 - 약 2:30분)

 

현지식으로 석식후

호텔 투숙

HOTEL: 明珠賓館

or 동급  (☎:86-439-633-5555)

조:호텔식

 

중:현지식

 

석:현지식

제 3일

 

 

 

 

 

 

 

 

 

 

 

 

 

 

 

 

 

 

 

 

 

 

 

 

 

 

 

무     송

 

 

 

집     안

 

 

 

 

 

 

 

 

 

 

 

 

 

 

 

 

 

 

 

 

 

 

 

 

전용버스

 

 

 

  

 

 

 

 

 

 

 

 

 

 

 

 

 

 

 

 

 

 

 

 

 

 

06:30

 

 

 

13:00

  

 

 

 

 

 

 

 

 

 

 

 

 

 

 

 

 

 

 

 

 

18:00

 

호텔 조식후

주몽이 건국한 고구려 두 번째 수도인 집안(集安)으로 이동

(소요시간 - 05:30분정도)

 

집안 도착 - 현지식으로 중식

 

고구려 문화유적 탐방

고구려 20대 장수왕이 부왕인 광개토대왕 재위 22년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광개토대왕 무덤 관광

동양의 피라미드라고 불리우는 고구려의 대표적 적석묘인 장군총(將軍塚) 관광(유적지 보존을 위하여 왕릉 내부관광은 불가능하여 조망으로 대체함)

집안시에 있는 20여기의 고분중 유일하게 개방된 벽화고분인 5회분 5호묘(盔墳 五號墓) 관광

(*5회분 5호묘 : 5개의 봉토중 5번째에 해당하는 분묘라는 뜻)

❋ 고구려 유리왕21년에 축조한 성으로 산봉우리와 주위능선을 이용하여 돌로쌓은 난공불락의 천연요새 환도산성(丸都山城) 관광(현재 흔적을 알수있는 터만 남아있는 상태임)

 

❋ 한반도에서 가장 긴 강(약 800km)이며 강건너 북한의 만포시를 감상할수 있는 압록강(鴨綠江) (유람선-스피드 보트 탑승) 관광

 

한식으로 석식 후

호텥 투숙

HOTEL: 香港城假日

또는 동급 (☎:86-435-6655-888)

조:호텔식

 

중:현지식

 

석:한   식

제 4일

 

 

 

 

 

 

 

 

  

 

 

 

집     안

 

 

 

단     동

 

 

 

 

 

 

 

 

 

 

전용버스

  

 

 

 

 

 

 

 

 

 

07:00

 

 

 

 

 

 

 

 

 

 

18:00

 

호텔 조식후

 

단동(丹東)으로 이동(소요시간 - 집안-단동 : 약 5시간)

 

단동 도착 후- 한식으로 중식

❋ 신의주 위화도 월량도등 북한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압록강 공원

❋ 우리나라 아픔의 현장 6.25당시 폭격으로 끊어진 다리 압록강 단교

❋ 고구려가 세운 천리장성의 일부 박작성으로 추정되는 성곽인 호산장성(虎山長城)

❋ 북한과 가장 가까운 접경지역인 일보과(一步跨) 등 관광

 

한식으로 석식 후

호텔 투숙

HOTEL: 丹東皇冠假日酒店

또는 동급 (☎:86-415-318-9999)

조:호텔식

 

중:한   식

 

석:한   식

제 5일

 

 

   

 

 

 

 

 

 

 

 

단     동

 

 

 

심     양

 

 

 

 

인     천

 

 

 

전용버스

 

  

 

 

 

CZ 671

 

 

 

08:00

 

 

  

13:00

 

 

17:00

 

19:30

 

 

호텔 조식 후

심양으로 이동

(단동-심양 : 280km. 심단고속도로. 약 4시간 소요)

 

한식으로 중식 후

공항으로 이동

 

심양(沈陽) 도선(桃仙)국제공항 출발

(비행시간- 01:30분.  기내식 1회)

인천 국제공항 1층 도착 후 해산

 

♡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요.

※ 상기 일정은 항공 및 현지 사정에 따라 다소 변경될 수 있습니다.

   여권 유효기간이 6개월 이상 남아 있어아 합니다.

   호텔은 예정 호텔이므로 변동될 수 있습니다.

 

 

포함사항 :

왕복 항공권, 숙박비, 식사비, 차량비, 관광지 입장료

인천공항세, 관광 진흥개발 기금, 현지 공항세

1억원 해외 여행자보험, 전쟁 보험료

유류할증료 포함

 

포함사항 :

➀ 물값 등 기타개인경비, 객실등의 매너팁

➁ 중국비자비(₩35,000)가 불포함 되어 있습니다. 소요기간 4일정도

- 중국비자서류 - 여권. 사진 1장. 주민증록증 사본

- 단체인 경우는 여권 사본만 있으면 됩니다.

➂ 인솔자, 현지 가이드, 운전기사 및 각종 팁 불포함(1인당 1일 $10 정도)

- 매너팁은 소비자의 자율적 선택사항으로 지불 여부에 따른 불이익이 없습니다.

 

 

※ 환   전  : 환률 : 1위안(1¥) = ₩180 정도.    U$1 = ¥7 정도

- 한국돈으로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 우리가 방문하는 쇼핑점에서는 한국돈을 받습니다.

  (각종 팁이나 물건을 구입하는데 천원짜리 필요하므로 1인당 20장을 준비하십시오)

- 중국 돈을 환전하실 경우에는 적당하게 해야합니다. 중국돈이 남았을 경우에는 매도시 손해가 많습니다.

- U$ 가 관광지에서는 통용 할 수 있습니다.

 

 

공항 이용시 유의사항

 2007년 3월을 기하여 국제선을 이용하는 승객을 대상으로 액체류에 대한 검색이 강화되었습니다.

 용기당 100ml를 초과하는 화장품, 치약류, 헤어젤 등 기타 액체류 물품은 기내반입이 제한되며 총 1리터(1인당)가 넘는 경우 공항압수 등의 조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단, 탁송수하물은 제한사항 없음)

 또한 이로 인하여 출국수속시간이 지연될 수 있사오니 미팅시간을 엄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수하물 탁송의 경우 카메라, 핸드폰, 귀중품등은 보상불가로 직접 휴대하셔야 합니다.

 탑승전 해당항공사(선박, 운송업체등)로 필히 사전신고된 일정액 만 보상되므로, 수하물 탁송시 주의가 요구됩니다.

 

 

백두산 관광

① 백두산 관광은 6월 중순에서 9월 중순까지만 관광할수 있습니다.

② 백두산 관광은 90%이상이 한국인이고 4개월동안만 한국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관광이기 때문에 물가가 우리와 비슷합니다. 따라서 잣, 깨등은 모든 물품은 연길 공항에서 구입하는것이 저렴하고 양이 많습니다.)

③ 백두산 천지 천왕봉에서는 약 40여분 밖에 관광을 할수 없습니다.(지프 대기시간)

④ 백두산 천지에는 wild camera(어안랜즈 카메라)로 촬영해 주는 사진기사가 있습니다. 일반 카메라로는 백두산 천지를 다 담을수 없기 때문에 wild camera를 이용하는 것도 좋습니다.(12판에 약 \40,000입니다.)

⑤ 백두산에서 온천욕이 가능합니다. 비용은 별도로 \20,000정도입니다.(수건과 칫솔 치약 제공)

⑥ 북한상점(북한산 안궁환($200)과 우황청심환($100)), 곰사육장(웅담), 상황버섯 판매점등을 방문합니다.

⑦ 백두산 천지물을 직접만질수 있는 코스가 있는데 같은 단체에 한하여 별도로 사전 예약을 해야합니다.

   (걸어서 왕복 약 2시간 정도 걸립니다. 기후 조건이 나쁠땐 개방하질 않습니다.)

 

 

중국여행 기본 준비물

※ 상기 일정은 걷는 구간이 많습니다. - 편안한 운동화를 꼭 준비해 주십시오.

① 손목시계 - 중국과는 시차가 -1시간 차이가 있고 호텔방에는 시계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② 커피믹스 - 중국 식당에는 커피서비스가 없습니다. 차(茶) 문화 발달로 뜨거운 물은 많으니 티백이나 커피믹스를 준비하면 좋습니다.

③ 밑반찬 - 중국음식은 대부분 기름진 음식으로 우리 입맛에 맞지않습니다. 몇가지 밑반찬과 고추장 등을 준비하면 좋습니다.

④ 상비약 - 두통약. 소화제. 지사제. 파스등등 준비

 

 

쇼핑안내

- 보석, 진주, 찻집, 실크, 라텍스, 잡화

고객님께서 구입하신 물품의 교환 및 환불 처리는 고객님과 쇼핑센터간의 계약사항으로 이루어집니다.

② 본상품은 행사일정중 여러곳의 쇼핑센타를 방문합니다.

일정 중 쇼핑센터에서 구입한 물품 중 특히 보석 경우 환불이 안될 수 있으니 과도한 쇼핑은 피해주시기 바랍니다.

중국에서 카드결재시 할부결재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구입하신 물품은 한달이내에 환불(영수증 반드시첨부)하셔야 하며, 환불시 10%의 환불수수료가 부과됩니다. 단, 한약재의 경우 복용분에 대해서는 환불이 안됩니다.

한약은 원래 중국으로부터 기원하였지만 중국위생부와 한국 식약청의 기준이 다르고, 개개인의 체질에 따라 약효가 다르게 나타날수 있으므로 현지에서 한약관련 물품 구입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보석류(루비, 사파이어, 금, 옥등)는 성분함량이 미달되는것들이 많으니 고가의 상품들은 구입을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해외여행시 구입한 물품은 US$600 초과금액에 대해 입국시 관세가 부과될 수 있사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약, 건강보조식품 등의 구입시에는 고객님의 체질과 특성을 고려하여 신중한 선택을 당부드립니다.

 

 

표준 약관

<예약금 규정>

- 예약후 3일 이내에 1인당 20%의 예약금을 입금하셔야 합니다. 예약금을 입금하지 않으실 경우, 예약이 확정되지 않습니다.

 

<취소료 규정>

 여행 취소시 국외여행표준약관 제 15조 소비자분쟁해결규정에 따라 아래의 비율로 취소료가 부과됩니다. (단, 당사의 귀책사유로 여행출발 취소 경우에도 동일한 규정이 적용됩니다.)

o 여행개시 30일전(~30)까지 통보시 : 계약금환급

o 여행개시 20일전(29~20)까지 통보시 : 상품가격의 10% 배상

o 여행개시 10일전(19~10)까지 통보시 : 상품가격의 15% 배상

o 여행개시 8일전(9~8)까지 통보시 : 상품가격의 20% 배상

o 여행개시 1일전(7~1)까지 통보시 : 상품가격의 30% 배상

o 여행당일 통보시 : 상품가격의 50% 배상

 

o 여행출발일 이전 상해, 질병, 입원, 사망등으로 여행을 취소하는 경우 '진단서'등 증빙에 근거하여 환불이 가능하며 출발일 기준 7일이내 증빙서류를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여권 구비서류 -(일주일정도 소요)

   전자여권 발급관계로 본인 직접 구청에 가 서류를 접수해야 합니다.

   주민등록증 원본. 주민등록등본 1통. 여권용 사진 2장.  

   비용: \55,000

 

 

입금구좌

 

- 외환은행   029-19-08669-9   이성전

- 예약금 1인당 20%

- 나머지 잔금은 출발 15일전까지 완납해주세요.

- 현금 결재만 받습니다.

 

 

중국어 열마디

① 만날 때 안녕하세요 - 你好 (니 하오)

② 헤어질 때 또만나요  - 再見 (짜이 지엔)

③ 고맙습니다 - 謝謝 (씨에 씨에)

④ 필요없습니다 - 不要 (부 야오)

⑤ 미안합니다 - 對不起 (뚜이 부 치)

⑥ 괜찮습니다 - 没關係 (메이 꽌 시)

⑦ 수고했습니다 - 辛苦了 (씬 쿨 러)

⑧ 이거 얼마입니까? - 这个多少钱? (저 거 뚜오 샤 오첸?)

⑨ 예쁘네요 - 漂亮 (피아오 량)

⑩ 화장실이 어디입니까? - 洗手间 在哪里? (시소우지엔 짜이 날리?) / 화장실 卫生间 (웨이 성 지앤)

 

 

 

집안(集安)

 중국 집안의 고구려 유적 가운데서 가장 경이로운 것은 1,2000여 기가 넘는 무덤떼이다. 고구려 후기의 수도인 평양 근방에도 1,000기밖에 없는데 그 보다 10배가 훨씬 넘는 무덤들이 한 곳에 몰려 있다는 것은 전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일이다.

 집안시 안에 있는 고구려시대의 무덤떼는 모두 32개 지역에서 발견되었는데, 1962년 봄 집안시 전체의 문화유물을 전면적으로 조사할 때 파악한 숫자에 따르면 모두 12,358기나 된다고 한다. 일본의 한 학자가 "고구려인들은 땅의 절반은 주거지로 절반은 무덤으로 사용하였다"고 했는데 실감나는 이야기다.

 

 

고구려 20대 장수왕이 414년 부왕인 19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인 광개토왕비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輯安縣] 퉁거우[通溝] 지방에 있는 고구려 19대 광개토왕의 비석. 414년(장수왕 2) 광개토왕의 훈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아들인 장수왕이 건립하였다. 높이 6.39m, 나비 1.5m, 두께 1.53m의 사면석비(四面石碑)로, 한국에서 가장 큰 비석이다. 묘호(廟號)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의 마지막 3글자를 본떠서 일명 호태왕비라고도 한다. 받침돌이 없이 비신(碑身)만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문자의 크기와 간격을 고르게 하기 위하여 각 면의 위와 아래에는 가로선을 긋고 매행은 약 13㎝ 간격으로 가는 세로선을 그었다. 필체는 한예(漢隸)의 팔분서(八分書)에 가까운 고구려 특유의 웅혼한 필체로 14∼15㎝ 정도 크기의 문자가 4면에 총 44행(제 1 면 11행, 제 2 면 10행, 제 3 면 14행, 제 4 면 9행), 1775자가 새겨져 있다. 이 가운데 현재 알아볼 수 있는 글자는 1534자이며 상고사(上古史) 중 특히 삼국의 정세와 일본과의 관계를 적었다.

 능비는 1880년경에 재발견되었는데 재발견된 초기에는 비면의 상태불량과 탁본여건의 미비로 단편적인 탁본이나 쌍구가묵본(雙鉤加墨本)이 유행하였을 뿐 정교한 원탁은 87년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1882년경에 만주를 여행하던 일본군 참모본부의 밀정인 중위 사카와 가게노부에 의해 비문의 일부 문자가 변조되었다.

 또 99년경부터는 일본·청나라 양국에서 비문변조를 합리화하거나 고가매매를 하기 위해 보다 선명한 탁본을 얻고자 비면에 석회칠을 감행함으로써, 비면이 마멸되고, 일부 문자가 오독되었다.

 현재는 쌍구본이나 석회부도(石灰付塗) 후의 탁본이 주류를 이루고 있을 뿐, 90년대 이전의 원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능비연구에 난점을 안겨주고 있다. 비문의 내용은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부분은 추모왕(鄒牟王;주몽)의 건국신화를 비롯하여 대주류왕(大朱留王;대무신왕)으로부터 광개토왕에 이르는 대왕의 세계(世系)와 약력 및 비의 건립경위가 기술되어 있고, 둘째 부분은 대왕의 정복활동과 토경순수(土境巡狩)기사가 연대순으로 기술되어 있으며, 셋째 부분은 능을 지키는 수묘인연호(守墓人烟戶)의 명단과 수묘지침 및 수묘인관리규정이 기술되어 있다. 이 비문에 실려 있는 글은 고구려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는데, 제 2 부의 정복기사는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형식상 8개 기년기사(紀年記事)와 2개의 종합기사로 구분할 수 있는데, 특히 신묘년기사에는 다른 기년기사와는 형식을 달리하는 <백제와 신라는 옛 속민으로 조공을 바쳐 왔는데, 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와 신라 등을 공파하여 신민으로 삼았다(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渡海 破百殘△△新羅以爲臣民>라고 하는 <신묘년기사>가 있어 능비연구의 최대 쟁점이 되어왔다.

 이것은 신묘년(391)에 일어난 구체적 사건을 적은 기사라기보다는, 대체로 영락 6년의 백제정벌 및 8년의 신라정토의 명분을 나타내는 전제문인 동시에 영락 6년에서 17년에 걸쳐 진행된 고구려의 남진정책을 집약기술한 집약문일 것으로 추정되며, 해(海)자를 비롯한 일부 문자가 변조 내지 오독(誤讀)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여, 아직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광개토대왕묘→

 능비가 재발견된 이래 지금까지 근 100여년간 한국·중국·일본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어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는데, 주로 신묘년기사를 비롯한 고대 한일관계가 능비연구의 주류를 이루어 왔다. 능비를 재발견한 중국에서는 주로 비의 건립연대 고증, 재발견 경위에 대한 보고, 비문의 해독, 비문 서체의 가치 등에 대한 금석학적 연구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역사학적 연구로서의 진전은 보지 못했다. 일본의 비에 대한 연구는 초기의 탁본 과정에서 변조 또는 오독된 자료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였는데, 이것은 능비의 신묘년기사를 고대 일본의 한반도 진출의 근거로 제시하기 위하여 <왜가 한반도를 침략하여 백제와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는 당시 동아시아의 역사적 상황과는 모순된 견해를 일본학계의 통설로 받아들이고 있어, 고대 동아시아 교섭사에 있어서 왜를 주도적으로 보려는 기본적 인식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00년대 한말에 비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일반적인 능비연구는 정인보(鄭寅普)의 《광개토경평안호태왕릉비문석략》에서 일본학설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그 연구사적 출발을 가진다.

 그 뒤 정인보(鄭寅普)의 학설을 토대로 박시형(朴時亨)·김석형(金錫亨)의 수정·보완된 새로운 학설이 제시되었으며, 이진희(李進熙)의 비문변조설(碑文變造說)은 일본이 주장한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의 허구를 비롯한 고대 한일관계사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80년대 이후에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고구려사의 내재적 발전과정을 해명하고자 하는 능비 본연의 연구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375-413))

 고구려의 제19대 왕인 광개토대왕은 열 일곱 살에 왕위에 올라 서른 아홉 살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백성들의 평안과 영토확장에 힘썼다.  그리하여 한강이북으로부터 만주 전역에 이르는 드넓은 영토를 확보함으로써  고구려의 기상을 중국 땅에 까지 널리 떨쳤다.  특히 영락이라는 연호를 최초로 사용함으로써 민족의 독자성을 내외에 알린 훌륭한 왕이다.

연 대

나 이

생애와  업적

375

 

 고구려 국내성에서 태어남.

384

10세

 아버지 고국양왕이 고구려 18대 왕위에 오름.

386

12세

 태자의 자리에 오름.

391

17세

 고구려 19대 왕위에 오름. 처음으로 '영락'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여 독립국가임을 선포함.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음.

392

18세

 군사훈련으로 국력을 키우는데 힘씀. 9개의 큰 절을 짓고 불교를 널리 폄. 태학의 문을 넓혀 교육을 장려함. 5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쳐서 석현, 관미성 등 10여개의 성을 함락시킴.

393

19세

 관미성을 되찾으려고 쳐들어온 백제를 물리침.

394

20세

 침입해 온 백제군과 수곡성에서 싸워 이김.

395

21세

 패수에서 백제와 싸워 크게 이김. 송화국 유역에 비려국을 침.

396

22세

 수군을 이끌고 백제를 쳐서 58개 성을 함락시키고 한강 유역을 점령함. 백제 아신왕의 아우를 인질로 삼고 조공을 받침.

400

26세

 5만의 원군을 신라에 보내어 왜군을 몰아 내 줌. 연나라의 침입을 받아 신성, 남소성 등과 700여 리의 땅을 빼앗겼으나 두 성과 평주를 되찾음.

401

27세

 신라로부터 인질로 데려왔던 실성을 돌려 보냄.

402

28세

 연나라의 숙군성을 침.

404

30세

 연나라를 쳐서 고국양왕 때 빼앗긴 현도성,요동성을 되찾음.

405

31세

 고구려의 요동성을 되찾으려고 연나라가 쳐들어왔으나 패하고 돌아감.

406

32세

 연나라가 목저성으로 쳐들어왔으나 크게 패하고 돌아감.

408

34세

 고운과 국교를 맺어 북방한계선을 확보함.

410

36세

 동부여를 속국으로 만듬.

413

39세

 한강근처에서 서쪽으로 요하강, 북쪽으로 송화강, 북동쪽으로 연해주에 이르는 막강한 왕국을 이름. 가을에 세상을 떠남.

 4~5세기의 동아시아는 격동과 활력의 시대였으며 삼국의 정립이 국제적 교섭을 배경으로 본격화되는 시기였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정세속에서 위대한 정복군주가 탄생하였으니 바로 고구려 제19대 임금인 광개토대왕이었다. 광개토대왕은 역사상에서 두 번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즉, 자연인으로서의 출생과 대왕의 훈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능비가 19세기 말 재발견 됨으로써 대왕의 훈적이 보다 뚜렷한 실체로서 우리에게 다가온 사실이 바로 그 것이다. 대왕은 소수림왕 4년 (374년) 왕제 고국양왕의 아드님으로 태어났으니, 바로 백제의 정복군주인 근초고왕의 몰년에 해당된다. 이는 당시 동아시아의 축을 이루었던 고구려와 백제의 대립에 있어 명암이 엇갈리는 숙명적 사건이라 하여도 좋을 것이다.

 대왕의 인간적인 면모를 담은 기록은 희소하지만 대체로 태어나실 때부터 체격이 웅위하고 기상이 늠름하였으며 성인의 풍모를 지녔다고 한다. 이는 물론 고대의 영웅사관에 기인하는 기술이라 할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대왕의 성품을 반영한 표현이라 할 것이다.

 고국양왕 3년 13세에 태자로 봉해졌다가 18세의 나이로 즉위하니 바로 신묘년(391년)의 일이었다. 대왕은 이후 22년간 짧은 재위기간 동안이었지만 남정 북벌하여 고구려사에 있어서나 한국민족사에 있어 한 시대를 구획하는 문자 그대로 '광개토경' 위업을 이룩하였다. 즉, 대왕은 위대한 정복군주로 서쪽으로는 풍부한 철산지인 요동을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요하를 넘어 대능하 유역으로부터 멀리 흥안령 산록의 시라무렌강 유역을 원정하고, 동쪽으로는 목단강유역으로부터 연해주 일원에까지 영역을 확대하였으며, 북으로는 송화강유역의 북만주일원으로 통치영역을 넓히고 남으로는 곡창지대인 한강유역을 획득하는 한편 멀리 낙동강 유역에까지 정복전쟁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대왕은 백제, 북연, 동부여, 신라, 가라제국을 조공국으로 복속시키는 한편 태왕호와 영락 년호를 사용하여 중국과 대등한 동방의 패자임을 사해에 알리니, 이는 당시의 고구려가 팽창된 국력을 바탕으로 전제왕권을 완성하고 제국질서로 이행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위업을 이룩한뒤 39세의 아까운 나이로 임자년(412년)에 죽었다.

 대왕의 본명은 담덕(중국문헌에는 안이라 하였다.)이나 생전에는 호태왕 또는 영락대왕으로 불리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능비문에 의하면 년호는 영락, 시호는 호우총(:국강상광개토지평안호태왕, 모두루묘지 : 국강상광개토지호태성왕)으로 대왕의 생전 업적이 잘 나타나 있다.

  

 

◈ 고구려 20대 왕인 장수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 장군총

 413-490년 사이에 축조된 고구려의 대표적인 적석묘로 고구려 20대 왕인 장수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이다.

 집안의 고구려 고분 중 가장 웅장한 형태의 능으로 집안시 북쪽 5km 떨어진 통구고분군에 있다. 고구려의 비약을 상징하므로 '동방의 금자탑' 혹은 '동방의 피라미드'라고도 불린다. 장방형 화강암 벽돌을 매단 안쪽으로 쌓아 높이 12.4m, 각변 길이 31.6m의 7단 계단식 사각형 피라미드 형태로 만든 능이다.

장군총을 쌓은 화강암은 집안에서 8km 떨어진 고대 채석장에서 겨울에 얼음을 얼려 미끄러지게 하여 운송한 것이다. 능에 이용된 1,100개의 장방형 화강암은 장대석으로 정확한 규격으로 정교하게 잘라 축성하였으며 능 우측에는 철제계단이 설치되어 능 제5단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묘지 내 현실과 능 꼭대기인 상부의 관람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장군총은 발굴전 이미 도굴꾼들에 의해 도난당한 상태로 출토되어 유물이 전무한 상태이다.

 무덤 사방에는 굉장히 큰 돌을 3개씩 기대어 세워놓았는데 북쪽 가운데것이 없어져 지금은 11개만서 있다. 한 개가 없어진 북쪽벽은 현재 조금씩 밀려나오고 있다.

 이런 세운돌들은 '밑 기단 돌이 밀려나지 않게 하기 위한 것(호분석)'이라는 현지 학자들의 주장이다.

 또한 한 면에 3개식 12개를 세워 12지처럼 보호신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장군총 위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오른쪽, 그러니까 동북쪽을 보면 마치 고인돌 비슷한 돌더미가 보이는데 이것이 딸린무덤이란 것이다.

 원래 장군총에는 5기의 딸린무덤이 있었는데 지금은 1기밖에 남지 않다.

 장군총과는 모양도 판이하게 다르고 크기도 대단히 작다. 남은 한 기의 딸린무덤도 일찍이 도굴당하고 파괴되어 지금은 밑부분 3계단만 남아 있다. 밑변 길이 9.2m, 계단 높이 1.9m이다.

 이러한 딸린무덤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에도 3개가 있다고 한다. 딸린 무덤은 왕의 첩들이라는 설이 있으나 아직도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o 장군총은 누구의 무덤인가?

 장군총은 건축규모나 딸린무덤의 수를 볼 때 고구려 때의 왕능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부장품이 모두 도난당해 누구의 무덤인지 분명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일찍이 일본 학자들이 장군총은 광개토대왕의 묘라는 설을 내 놓았다. 그러나 중국 현지 학자들은 장수왕의 묘라고 주장한다.

 "장수왕은 수도를 집안에서 평양으로 옮긴 장본인이고, 또 평양에서 세상을 떴는데 어떻게 이곳까지 와서 묻히게 되었는가?" 라는 나의 질문에 중국 현지의 학자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고구려 왕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무덤을 준비해간다. 그렇기 때문에 장수왕도 수도를 옮기기 전에 이미 국내성에 무덤을 준비해 놓았고, 관례에 따라 시신을 옮겨 이곳에 장사지냈던 것이다."

 

 

서기 3년부터 427년까지 약 400여년동안 고구려의 수도가 자리했던 곳 국내성터

 유리왕 22년, 서기 3년부터 장수왕이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기 전인 427년까지 약 400여년동안 고구려의 수도가 자리했던 곳이다.

 졸본성에 이은 고구려 제2의 수도였던 국내성은 사각형 방형으로 북쪽 우산과 서쪽 칠성산에 에워싸인 배산임수의 천연요새이다. 압록강 서쪽에 위치한 국내성은 총면적 13,000평, 성길이 2,686m, 높이 1~5m로 총6개의 성문과 해자가 갖춰져 있었다. 그러나 1921년 중국정부에서 성을 개수하면서 옹성의 모습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

연변-집안-국내성.JPG

 또한 동서남북에 각각 세워져 있던 성문마저 1947년 중국공산당과 국민당의 전투 때 소실되었다. 원래 성벽의 높이는 7m였으나 거의 훼손되어 없고 현재 민가가 있는 남서쪽 성벽 3~4m 와 아파트 건물 사이에 위치한 벽 4~5단만이 겨우 남아있을 뿐이다.

 

 

◈ 우산하 고분군 남쪽에 자리한 7세기 고구려분묘 5회분 5호묘(盔墳 五號墓)

 5회분 4호묘는 중국 길림성 집안시 퉁구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무덤이다.

 6세기 중반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 무덤이 특히 중요시되는 이유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신도와 함께 풍부한 설화적 내용이 담겨있는 신선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1950년대에 발견되어 보존 상태도 좋아 고구려의 풍부한 문화와 생활상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고분의 크기는 높이가 8m, 둘레가 160m 정도로 꽤 크며 안에 들어가보면 방이 하나인 단실분이다.

연변-집안-5회분 5호묘.JPG

 네 벽면에 3각 고임 돌을 모서리에 평행하게 얹어서 1층 기단을 만들고, 다시그 모서리에 3각 고임돌을 얹어서 2층 기단을 만든 후, 평평한 4각 돌을 얹어서 천정을 마무리 하였다. 이러한 것을 평행삼각고임이라고 하며 후기 단실묘에 주로 나타난다.

 먼저 고분에 들어가면 4벽면에는 북쪽의 현무, 동쪽의 청룡, 남쪽의 주작, 서쪽의 백호가 그려져 있다. 고분 바닥에는 남북에 평행하게 3개의 관상이 놓여져 있고, 4벽면의 위에는 용이 서로 꼬여 길게 무늬를 이룬 띠가 그려져 있다.천정에 그려진 신선도는 영혼불사(靈魂不死)를 믿는 고구려인들의 내세관과 관련이 있다.

 고구려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하늘을 날아 사후세계(死後世界)로 간다고 믿었는데, 여기에서 비행(飛行)의 능력을 가진 조류(鳥類)가 매개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신앙은 사후에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는 내세관을 형성시켜 벽화고분의 천정 부분에 다양한 모습의 신선도(神仙圖)를 그려놓았다. 1층 기단을 보면, 동쪽에는 우수인(소머리 신), 불의 신, 남쪽에는 야철신, 제륜신, 서쪽에는 연마신, 용탄신, 북쪽에는 일신, 월신이 그려져 있다. 2층의 기단에는 북쪽에 3명의 비천이 있고 동쪽에는 깃발 든 신선과 봉황을 탄 신선. 남쪽에는 공작을 탄 신선과 비천, 서쪽에는 용 탄 신선과 학 탄 신선이 그려져 있다. 맨 위 천정에는 황룡이 꿈틀거리면서 이 고분의 주인공이 심상치 않은 인물임을 보여 준다.

 

 

길림성 집안시(集安市)에 위치하고 있는 단층건물의 고구려 역사 박물관 집안박물관

 집안시(集安市) 북쪽에 자리한 단층건물의 고구려 역사박물관으로 주요 역사유적지인 것에 비해 박물관내부가 초라한 곳이다. 박물관 내부는 고구려 고분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들과 사진자료들을 제1전시실 동청, 제2전시실 정청, 제3전시실 서청의 3개관으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o 제1전시실: 고구력분과 산성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지안에 산재해 있는 고구려고분 분포도와 형태, 주요 고구려산성들의 발굴전 모습들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연변-집안-집안박물관.JPG

 또한 각 고분 내부에 그려진 벽화묘사본이 전시되어 눈길을 끈다.

o 제2전시실: 광개토대왕릉비문 자료실로 광개토대왕릉 비문탁본 4장이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길게 드리워져 있는 곳이다.

o 제3전시실: 고구려유물전시관으로 각종 토기와 청동화살촉과 칼, 기와막새, 와당, 말안장들이 진열되어 있다. 특히 광개토대왕릉에서 출토된 폭 40cm의 쟁기에 달아 땅을 가는 농기구인 쇠보습이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데 이는 그당시 고구려 농업기술이 얼마나 발달했던가를 시사하는 것으로 소를 이용한 우경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환도산성(丸都山城)과 통구무덤떼

 유리왕 21년 국내성으로 이전한후 676m의 반원형 산봉우리와 주위 능선을 이용해 만든 총둘레 7km의 산성이다. 환도산성은 집안시 북쪽 통구강을 따라 약 2.5km 떨어진 환도성 중턱 해발 700m에 자리하고 있다. 국내성이 평성인 도성인 반면 환도산성은 유사시 적군과 대치하기 위해 쌓은 군사적 위성으로 '산성자산성' 혹은 '위나암산성'이라고도 불린다. 발말굽 모양의 불규칙한 타원형 형태의 돌로 쌓아롤린 산성 입구에는 현재 석각으로 된 안내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환도산성에는 현재 약 5m 높이의 북쪽 화강암 성벽과 말에게 물을 먹이던 음마지, 전투를 지휘하던 점장대를 비롯해 병영터와 궁전터 흔적들이 일부 남아있다.

 음마지(飮馬池)는 음마만(飮馬灣), 연화지(蓮花池)라고도 부르는데 고구려 군사들이 말에 물을 먹이던 곳이다.

 

 

 

 

압록강(鴨綠江)

 압록강의 명칭은 <당서 新唐書>에 "물빛이 오리 머리색과 같다 해 압록수(鴨綠水)로 불린다"는 기록에서 유래한다.

 길이 925.502km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강이다. 국경하천으로서의 길이는 806.503km이며, 유역면적은 6만 3,160㎢인데,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 속하는 유역면적은 3만 1,226㎢, 중국에 속하는 유역면적은 3만 1,934㎢이다. 양강도 김형권군의 남쪽에 솟은 명당봉(明堂峰:1,800m) 북동계곡에서 발원해 지경천(地境川)·웅이강(熊耳江)을 합치면서 북류한다.

연변-집안-압록강.JPG

 혜산시 강구동에 이르러 백두산 장군봉 남서계곡(지금까지 알려진 압록강의 발원지)에서 발원한 보혜천(普惠川)과 합류해 서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감입곡류하며, 삼수천· 장진강· 후주천· 후창강을 합류한다.

 다시 자강도 중강군 중강읍 부근에서 유로를 남서쪽으로 바꾸어 중강천· 호내강· 자성강· 삼풍천· 장자강· 위원강· 초산천· 충만강· 동천 ·남천 ·영주천· 구곡천 ·합수천 ·당목천· 삼교천을 차례로 합한 뒤 평안북도 용천군 진흥노동자구 남쪽에서 서해로 흘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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