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成 都 = Chengdu = 청두 = C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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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의 진수, 사천요리의 고향 - 사천성(四川省 쓰촨셩)

 중국에서 손꼽히는 볼거리가 많은 지역 중 하나다. 장강(長江) 상류에 위치해 있으면서 4가지의 강, 즉 양자강, 민장강, 퉈장강, 자링강의 4가지 강이 흐르는 곳으로 사천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뿐만 아니라 산지와 평원이 물과 한 대 어우러져 풍부한 자원과 많은 볼거리들을 제공하는데 아미산, 장강삼협, 도강언, 구채구 등은 이미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한족과 더불어 이족(彛族), 창족(藏族), 묘족(苗族), 회족(回族) 등의 소수민족들이 거주하고 있고 광동요리(澳菜), 호남요리(湘菜), 산동요리 등과 더불어 중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대표요리인 사천요리의 고향이다. 사천고추의 매운맛과 독특한 향신료가 어우러져 잊지 못할 자극적인 맛을 내는데, 매운 맛이 한국인들 입맛에도 잘 맞는다.

 주요 도시로는 성도, 중경, 난충, 완현(萬縣), 도구(渡口), 네이장, 루저우[濾州], 이빈, 다현(達縣) 등이 있다.

 

◈ 삼국지(三國志演義)의 배경, 2000년 역사의 도시 - 성도(成都 청두)

 천부지국(天府之國)이라 불리며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천연자원 및 식량을 소유한 성도평원의 중부에 위치한 사천성의 성도이다.

 분지지형으로 4계절 온화한 기후여서 연평균온도 16.3℃로 혹한과 혹서가 없고, 겨울에도 따뜻하고 강우량이 풍부해 땅이 기름져 농사 짓기에도 최적의 조건이다. 1992년에 개방도시로 지정되어 서남부 지역의 과학, 기술, 상업, 경제, 교통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총인구는 980만 명이며, 전체 면적은 12,400㎢이다.

 

 또한 성도는 전국시대부터 있어온 2000년 역사의 문화도시로 춘추전국시대에는 촉(蜀)의 도읍지였고 진(秦)·전한(前漢) 때는 촉군(蜀郡)이 관할하는 청두현(成都縣)이 설치되었으며, 삼국시대 때 촉한을 통일한 유비(劉備)가 수도로 삼았던 곳이다. 또 당(唐)의 현종(玄宗)이 안사의 난 때에 이곳으로 피신하였고, 수당(隨唐) 시대 때는 장안(長安), 양주(揚州), 둔황(敦煌)과 더불어 4대 도시였다. 이렇게 많은 역사를 겪어온 도시인만큼 많은 사적과 유적지가 있다.

 그 중 제갈 량(諸葛亮)을 모시는 무후사(武侯祠)를 비롯하여 두보가 '안사의 난'을 피해 피난을 와서 시를 짓던 두보초당(杜甫草堂)· 망강루(望江樓), 그리고 불교의 성지에서 피서지와 휴양지로 즐겨찾는 아미산(峨眉山:3,099m)과 노자를 모시던 청양궁, 전촉을 세운 왕건묘 등은 이미 유명하다.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성도에서 오래된 것이 있다면 음식과 술이다. 지금이야 중국 전역에서 사천요리를 맛볼 수 있지만 정말 사천요리의 진수를 맛보고 싶다면 반드시 성도를 찾아야 할 정도로 성도 도시전체가 사천요리의 맛과 향으로 가득 차 있다. 성도는 사시사철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지만, 봄에 여행하기가 가장 좋고 2001년 4월부터 아시아나항공이 직접 취항을 하게 되면서부터 그 동안 다소 불편했던 교통문제를 극복하고 우리에게 훨씬 더 가까워져 관광지로서 더 많은 각광을 받고 있다.

 

 기후는 대체로 온화한 편으로 겨울에도 비교적 따뜻하며 강우량이 풍부하여 땅이 기름지다. 사천 분지의 동서북 덕양시와 동남 방향에 내강시와 남으로 낙산시, 서남으로 아인 지구와 서북으로 아파장족 자치구와 인접해 있다. 면적은 1.24만㎢이고 인구는 9,500만 명이고 7개 시할구와 12개의 현으로 구성된다. 주요 산업은 기계, 전자, 화학, 군사이며, 주요 자원은 대리석, 아연, 연, 철광, 천연 가스이다. 외국과 우호 합작 도시는 7개시이다. 성도는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문화의 고성으로 삼국시대에는 촉한의 도읍지였고 오대 십국 때에는 전촉, 후촉의 수부였지만 그들이 망한 후에 정복자들이 도읍지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 버렸다. 동한시대에는 비단 직조가 발달해서 금관이 설치되어 이 산업을 관리했으므로,『금관성(金官城)』혹은 다른 말로 『금성』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오대 십국 무렵에는 성내에 부용꽃이 심어져 있었기 때문화계(浣花溪)라는 작은 시냇가에 있는 것으로 당대의 유명한 시인 두보가 살았던 곳이다. 두보는 47세 때 이곳에 초당을 짓고 4년 동안 거주하면서 240여수의 시를 지었다. 지금 보존되고 있는 초당의 넓이는 20㏊가 조금 넘지만, 당초에는 이렇게 큰 것이 아니었고 1500년과 1811년 에 확장공사를 했다. 경내에는 대해(大懈), 시사당(詩史堂), 공부사(工部祠), 사능초당(沙陵草堂)의 석비 등의 건축과 다름 문화재가 있다.

 

 

맵고도 담백한 사천요리

 사천요리는 송대에 형성된 유파로서 중국의 양쯔강(揚子江) 상류 지역, 특히 운남과 사천지방을 중심으로 발달한 요리로 기름지지 않고 매워서 우리의 입맛에 거부감이 없다.

 이러한 요리가 발달하게 된 것은 바다가 먼 내륙에서 더위와 추위가 심하여 이러한 악천후를 이겨내기 위해 마늘과 파, 고추같은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천후로 인해 악천후에도 잘 상하지 않는 절임과 건량 등의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식품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사천요리의 음식재료는 산이나 들에서 나는 채소와 가축 및 강에서 잡은 어패류 등을 사용하며 요리방식은 소초(少炒 : 짧은 시간에 볶는 방법)와 건소(乾燒 : 조림), 포(泡 : 데치기), 건편(재료를 볶아서 말리는 방법), 회(전골) 등이 있으며 맛의 종류 또한 다양하고 복잡하다. 또 사천요리는 독특한 향료를 사용하는데 어향(魚香 : 생선요리에 쓰이는 양념), 홍유(紅油 : 붉은 고추기름), 괴미(怪味 : 이상한 맛), 마라(산초의 매운맛) 등의 다양한 향료를 사용해 맛의 변화를 준다.

 보통 촨차이(川菜)하고 부르며, 채소요리가 뛰어나 자차이(搾菜)와 같은 특산물과 마파두부(麻婆豆腐), 양고기 요리 등은 반드시 체험할 만하다. 그밖에 대표적인 요리로는 궁보계정(宮保鷄丁), 마파두부(麻婆豆腐), 개수백채(開水白菜) 등이 있으며 음식맛이 소박하고 참신하면서도 자극적이다.

 사천지역을 여행할 때에 고량주에 곁들여 사천요리를 맛보는 일은 사천여행 중에 잊지 말아야 할 필수코스다.

 

 

대표적인 사천요리 마파두부(麻婆豆腐)

 마파두부는 중국의 두부요리 중에서도 가장 지방특색을 풍부하게 살린 요리 중 하나로 이미 사천의 대표적 요리로 널리 알려졌다. 1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이 요리는 청나라 동치(同治)시대에 성도시 북쪽의 만복교 근처 한 조그만 요리집 주인 진림부(진부춘 이라고도 불렸다)의 부인인 유씨부인이 처음 만들었다. 유씨부인은 얼굴에 마마자국이 있어 사람들은 그녀를 진마파(옛날 중국에서는 결혼 후에는 남편의 성을 따랐다. 마마자국이 있는 진씨 노파라는 뜻.)라고 불렀고, 후에 그 음식점도 "진마파 두부점"이라 이름 붙여졌다.

 1909년 출판된 <성도통감>에는 22개의 그 시대 최고 요리집을 열거해 놓았는데, 이 중에는 진마파의 두부와 진마파 두부점도 있다.

 마파두부의 특색은 "烧"(샤오: 먼저 익힌 다음에 기름으로 볶는 조리법)를 사용하여, 설백의 보드라운 두부 위에 붉은 색의 소고기와 청색 마늘종으로 장식하고 겉에는 투명한 홍유를 뿌려 매운면서도 부드럽고, 화끈거리면서도 신선한 그러면서도 바삭함이 있는 독특한 맛을 낸다는 것이다.

 

 

화려한 불빛들의 잔치 사천 자공연등회(四川自贡燃燈會)

 사천의 남쪽, 성도와 중경의 남동쪽에 위치한 자공시라는 곳에서 매년 2월초에서 3월초 사이에 열리는 연등행사다.

 이 행사는 당대부터 춘절을 전후에 등불을 장식하는 풍속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으로, 각양각색의 화려한 불빛으로 도시전체가 물든다.

 행사 기간중에는 사기로 만든 용, 유리로 제작한 공작새, 대오리로 만든 죽견등, 실크등, 종이등 등 형과 색, 빛과 움직임, 소리를 일체화시킨 크고 작은 등불이 전시된다.

 또한 이 기간에 맞춰 상품전시판매회, 상품주문 및 경제무역상담회도 개최한다.

 

 자공시(自贡市)는 성도와 중경에서 열차와 장거리 버스를 이용하면 되고, 주변 관광지로는 대산포공룡화석유적기, 대공정유적지, 서진회관, 자공공룡박물관, 자공등롱박물관 등이 있다.

 

 

성도의 기후(℃)

도시명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성 도

(成都)

최고평균

9.6

11.6

16.6

22.0

26.3

28.2

30.1

30.1

25.5

20.7

15.7

11.0

최저평균

2.6

4.6

8.5

13.0

17.3

20.4

22.3

21.8

18.6

14.4

9.4

4.5

평   균

6.1

8.1

12.6

17.5

21.8

24.3

26.3

26.0

22.1

17.6

12.6

7.7

강수량mm

6.6

11.5

20.3

47.4

86.3

109.9

241.5

253.3

123.9

45.0

15.5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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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 명소

대나무 숲속의 금성죽원(錦城竹園) 망강루(望江樓:왕쟝로우)

 망강루(望江樓)는 성도시 동문의 바깥쪽을 흐르는 금강(錦江) 줄기의 한자락에 대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진 숲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숲은 현재 약 13만㎡에 이르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 누각은 당나라 시기의 유명한 여류 시인 설도(薛濤)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고적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숭려각(崇麗閣)"이고 불리우며 현재는 사천성 주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설도는 기녀였지만 일생동안 대나무를 자신의 지조에 견주어 너무 사랑하여 시를 통해 대나무의 미덕을 찬미하였고, 이곳에서 약 500여 수의 시작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 현재까지도 88수의 그녀의 시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후세의 사람들은 이곳에 대나무를 심어 경의를 표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이 대나무 숲에는 150여종의 대나무가 자라고 있다. 공원의 대나무수가 80% 이상이어서 이곳을 "죽자공원(竹子公園)", "금성죽원(錦城竹園)"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르고 있다. 원내에 망강루, 탁금구, 음시루 등 5채의 건물이 남아 있는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망강루이다.

 망강루는 높이가 30m로 위의 2층이 8각이고, 아래의 2층이 사각모양의 청나라 후기 건축물이다. 또 공원 안에는 설도가 물을 길었다 전해지는 설도정(薛濤井)과 그녀의 동상이 있다.

o 위치 : 성도시 남동쪽 교외

o 교통 : 2, 3, 27번 버스, 구안교역

 

 

제갈량(諸葛亮, 181~234)을 모신 사당, 무후사(武侯祠 : 우호우츠)

 무후사는 중국 3세기를 풍미한 유비와 장비, 관우 등 촉나라의 여러 명장을 거느린 전설의 전략가, 제갈공명, 그 제갈량을 기리기 위해 서진 영안 원년에 만들어진 사당이다. 무후사의 이름은 제갈량이 죽은 후의 시호인 충무후(忠無候)에서 유래되었다.

 경내로 들어가면 유비전과 제갈량전, 촉한의 문·무관 28위의 동상 및 '제갈고(諸葛鼓)'라 칭해지는 북, 동고(銅鼓) 등의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다. 유비전은 정문으로 들어가 최초의 건물인데 황금의 유비상이 안치되어 있고 벽에는 공명의 정치·군사상의 전략사항으로 유명한 융중대(隆中對)의 액자가 걸려있다.

 

 관우, 장비 등의 문·무관 28인의 상은 옆 동(棟)에 있고 벽에는 그들의 문장과 업적을 기리는 액자와 연(聯)이 전시되어 있다. 제갈고는 공명이 남쪽을 정벌하면서 만든 것으로 낮에는 그것으로 밥을 짓고 밤에는 경보를 발했다고 한다.

 또 무후사 뒤편에는 유비의 묘인 혜릉(惠陵)과 문장, 서법, 석각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로 꼽힌 당비(唐碑)가 있다.

 무후사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삼국시대의 사당으로 여겨지며 1961년 국무원에 의해서 전국 중요 문물 보호단위로 정해졌다. 무후사가 정확하게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략 6세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존재하는 무후사는 청대 강희 11년(1672년)에 옛 터 위에 중건된 것이다.

o 위치 : 성도시 남부 교외

o 교통편 : 1, 10번 버스, 무후사역

o 개방시간 : 08시~18시

 

제갈량(諸葛亮)

출생-사망: 181~234

: 공명(孔明)

시호: 충무후(忠武候)

별칭: 와룡선생(臥龍先生)

시대: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

활동분야 : 정치·군사

출생지: 중국 산둥성

성도-무후사-諸葛亮.jpg

 낭야군 양도현(琅句郡 陽都縣: 山東省 沂水縣) 출생으로 자는 공명(孔明),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후한 말, 관직에 오르지 않았을 때도 명성이 높아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 일컬어졌고, 207년 유비(劉備)로부터 초빙되어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진언(進言)하고 군신수어지교(君臣水魚之交)를 맺었다. 이듬해 오(吳)의 손권(孫權)과 연합하여 남하하는 조조를 대파하는 등의 수많은 전공(戰功)을 세워 221년 한(漢)의 멸망을 계기로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재상이 되었다. 유비가 죽은 후에는 어린 후주(後主) 유선(劉禪)을 보필하여 재차 오(吳)와 연합, 위(魏)와 항쟁하였으며 위와 싸우기 위하여 출진할 때 올린<전출사표(前出師表)>, <후출사표(後出師表)>는 이것을 읽고 울지않는 자는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일컬어질 정도로 천고(千古)의 명문으로 여겨진다.

 또 제갈량은 유비가 그를 초빙하기 위해 보잘 것 없는 초가에 세 번 갔다는 삼고초려(三顧草廬)와 "신은 본래 포의로서 몸소 남양에서 밭갈이하며 구차이 어지러운 세상에 목숨을 보존하려 했을 뿐..."으로 시작하는 출사표(出師表), 그의 용병, 용인술을 대표하는 읍참마속(泣斬馬謖), 칠종칠금(七縱七擒) 등의 우리에게 친숙한 고사성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금리(錦里) 거리

 삼국시대의 거리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서 만들어놓은 전통의 거리로 여러가지의 골목들 사이사이로 전통기념품을 판매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삼국지의 유명한 인물 제갈공명을 모신 사당인 무후사의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입구부터 중국의 옛 시대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 사천의 현존하는 유일한 불교사원 문수원(文殊園)

 사천성 대부분 절이 문화혁명 때 파괴된 탓에 문수원은 현재 성도에 남아 있는 유일한 절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성도시 서북쪽에 위치한 저명한 불교사원이다.

 이곳의 전신은 당대의 묘원탑원(妙圓塔院)으로 송나라 때 신상사(信相寺)로 불리웠던 곳이다. 전쟁중에 불타 없어졌으나,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서 청나라 때 어떤 사람이 밤에 붉은 빛을 보고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니 붉은 기운속에서 문수보살을 보았다고 하여 청대 강희 36년에 문수원으로 다시 개명 재건하였다.

 문수원의 건축면적은 11,600㎡로, 절입구를 통과하면 천왕전(天王殿), 삼대사전(三大士殿), 대웅전(大雄殿), 설법당(說法堂), 장경누장엄숙목(藏經樓庄嚴肅穆)등 전형적인 청대 건축양식을 볼 수가 있다. 특히 삼대사전 안에는 관세음 문수 보현보살등의 불상이 있으며,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의 본존불이 안치되어 있고, 양옆 벽에는 16존자의 상이 있다.

성도-문수원-01.JPG

 

 그 중, 관음대사상(觀音大士像)은 청동으로 만든 것으로 정교함이 돋보이며, 청도 9년에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또한 광희제가 말한 공림의 8가지 볼거리 중 하나로 여겨지는 옥불은 1922년경에 만들어진 것이다. 또 이 밖에 문수원에는 300여개의 많은 귀중한 문화재와 경전이 있는데, 그 중 승려당증의 두개골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1942년 남경에서 3조각이 발견되어 현재 한조각은 남경에 있고 다른 한조각은 서안에 있으며 마지막 한조각은 당증이 출가하게 된 곳이 성도이기에 성도 문수원에서 소장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문수원의 차실에서 사천의 특유한 차를 마셔볼 수 있는데, 차와 함께 손으로 만든 다기들을 구경하면서 중국민간의 전통악기인 비파소리를 감상하는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o 교통 : 청두북역에서 1번(路) 트롤리버스 승차, 문수원에서 하차.

 

 

◈ 당대의 대시인, 두보가 시를 읊던 두보초당(杜甫草堂 : 두푸차오탕)

 한평생 벼슬할 뜻을 품고서도 저버려야 했던 당대의 대시인 두보가 성도에 있을 때 기거하던 곳으로 성도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759년 겨울, 두보는 안사의 난(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이 정권찬탈을 위해 일으켰던 반란)을 피해 현종(玄宗)을 따라 촉으로 피난을 왔는데, 친한 친구 엄무(嚴武)의 도움으로 서쪽 교외의 경치가 아름다운 호숫가에 초가집을 짓고 살았다. 이듬 해 봄에 초가집이 완공되자 사람들은 성도초당(成都草堂)이라고 불렀다. 또 완화계(浣花溪)에 있기 때문에 완화초당이라고도 한다.

 두보는 이곳에서 4년여 동안 살았는데, 이 때 지은 시중에서 현재까지 전해지는 시는 240여 수가 된다.

 대표적으로 복거(卜居), 춘야희우(春夜喜雨), 강촌(江村) 등의 시는 초당에서 지내던 그의 시름없는 한가로운 심경을 읽을 수 있다. 현재 보존되고 있는 초당은 1500년과 1811년 두 차례의 확장공사로 인해 넓이가 20ha가 조금 넘으며 경내에는 대해(大懈), 시사당(侍史堂), 공부사(工部祠), 사능초당(沙陵草堂)의 석비 등 건축과 다른 많은 문화재가 있다. 정문에 들어서면 시사당과 두보의 소상(塑像)이 있고, 양쪽의 진열실에는 두보의 시집과 연구서 등이 전시되어 있다.

o 위치 : 성도시 서쪽 교외 완화계

o 교통 : 4번, 17번, 35번 버스 통혜문(通惠門), 초당사 역

o 개방시간 : 07시-20시

 

두보 (杜甫 : 712∼770)

 중국 당(唐)나라 시인.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少陵). 소릉이라고 불리는 것은, 장안(長安) 남쪽 근교의 소릉(小陵)이 선조의 출신지인 데서 유래한다.

 중국 당(唐)나라 시인.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少陵). 소릉이라고 불리는 것은, 장안(長安) 남쪽 근교의 소릉(小陵)이 선조의 출신지인 데서 유래한다. 허난성[河南省] 궁현[鞏縣]을 본거지로 하는 소호족(小豪族) 출신. 중국 최고의 시인이라는 뜻에서 <시성(詩聖)>, 이백(李白)과 아울러 일컬을 때는 <이두(李杜)>, 당나라 말기의 두목(杜牧)에 견줄 때는 <노두(老杜)·대두(大杜)>라 불린다. 먼 조상에 진(晉)나라 초기의 위인 두예(杜預)가 있고 당(唐)의 초기 시인 두심언(杜審言)은 조부이다.

 

》생애

 소년시절부터 시를 잘 지었지만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했다. 20대 전반은 장쑤[江蘇]·저장[浙江]에서,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는 허난[河南]· 산둥[山東]에서 방랑생활을 하고, 이백(李白)· 고적(高適)과 친교를 맺었다. 35세 때 장안으로 가서 현종(玄宗)에게 부(賦)를 바쳤으나, 관직에 오를 기회를 잡지 못해 궁핍하고 불우한 생활을 계속했다. 755년 44세 때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만나 적군(賊軍)에게 잡혀 장안에 연금된 지 1년쯤 뒤 탈출하여 새로 즉위한 숙종(肅宗)이 있던 펑샹[鳳翔: 장안 서쪽] 행재소(行在所)로 급히 달려가, 그 공으로 좌습유(左拾遺) 직책을 받았다. 그러나 임관되자마자 곧 실각된 재상 방관(房琯)의 죄를 변호하다 숙종의 미움을 사서 휴직처분을 받았다. 관군이 장안을 회복하면서 사면되어 조정에 다시 출사했으나 1년 뒤 화저우[華州;장안 서쪽] 지방관으로 좌천된 뒤 다음 해에 관직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간쑤[甘肅]의 친저우[秦州: 天水市]로 갔다.  

 54세에 귀향하기 위해 청두를 떠나 장[長江]을 따라 내려오면서 여러 곳을 전전한 뒤, 쓰촨 동쪽 끝의 쿠이저우[夔州: 奉節縣]에 이르러 강 연안의 서각(西閣)에 거주했는데, 얼마 뒤 도독(都督) 백무림(栢茂林)의 도움으로 교외의 양서· 동둔(東屯)에서 관전(官田)을 빌려 농원을 경영했다.

 57세에 처음으로 양쓰강에 배를 띄워 싼샤[三峽]를 따라 내려가면서 2년 동안 후베이[湖北]· 후난[湖南] 등의 물 위를 떠돌다 후난의 뇌양에서 59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쇠고기와 술에 의한 중독이 사인(死因)이라는 것은 후대에 만들어 낸 이야기로 신빙성이 낮다. 또한 일설에 의하면, 둥팅호(洞庭湖)에서 숨졌다고도 한다.

 

시풍의 변화성장

 두보 자신의 말에 따르면, 이미 소년시절에 1000여 편의 시를 썼다고 하나,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것은 30세 이후에 쓴 1400여 편의 시와 몇몇 산문뿐이다. 30세 이후의 시는 뚜렷한 시풍의 변화성장에 따라 4시기로 나뉜다. 제1기는 44세까지로, 이 시기의 두보는 외부세계로 눈을 돌려 대상의 충실한 묘사와 여러 가지 사회악 고발에 열중했다. 제2기는 48세까지로, 이 시기에는 안녹산의 난 동안 겪었던 여러 가지 경험으로 종래의 외부세계로 향하던 눈길을 내부로 돌려 마음속의 우수(憂愁)를 노래함과 동시에 자신의 우수를 다른 사람들의 우수와 일치시켜 다루었다. 제3기는 54세까지 청두에 살던 몇 년 동안으로 또 한번의 전환을 이룬다. 이 때 그의 시풍은 자연이 인간에게 보여주는 선의(善意)로 향한다. 제4기는 죽기 전인 59세까지의 시기로서, 특히 쿠이저우에 머문 2년 동안은 원숙의 경지에 이른 작품을 많이 썼다. <추흥팔수(秋興八首)>, <영회고적오수(詠懷古跡五首)> 등 칠언율시의 명작을 남겼다. 이 시기의 시세계는 많은 모순을 포함하면서도 영원히 지속한다는 새로운 철학을 확립한 진지함과 따스함이 스며 있다.

 

두시(杜詩)의 특색

  후대의 영향

 그의 시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9세기 당나라 사람 원진으로, 그는 두보를 위해 묘지명을 썼다. 백거이(白居易)도 두보의 숭배자로, 그의 사회비판적 시는 두보에게 배운 것이다. 두보에 대한 평가가 시단에서 확정된 것은 11세기 북송(北宋)의 왕안석(王安石)·소식(蘇軾)·황정견(黃庭堅) 등의 칭송에 의해서이다. 시성(詩聖)이란 말도 이즈음 생긴 듯하며, 그 뒤 계속해서 중국시의 전형으로 평가되었다. 중국에서 문화혁명 이후 직접적인 조술(祖述)은 사라졌으나, 중국 최고 시인으로서의 위치는 문화대혁명 한 시기를 제외하고는 오늘날 중국에서도 확고하다. <구당서(舊唐書)>에서 말하는 집(集) 60권은 전해지지 않고, 후세에 두집(杜集)의 원전이 된 것은 11세기 북송의 왕수(王洙)가 편집한 <두공부집(杜工部集, 20권)>으로 그것의 남송간행본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주석서(註釋書) 가운데 송나라 곽지달(郭知達)의 <구가집주(九家集註)>는 훈고에 뛰어나고, 청(淸)나라 전겸익(錢謙益)의 <두시전주(杜詩箋註)>는 사실(史實)에 정통하며, 구조오(仇兆鰲)의 <두시상주(杜詩詳註)>는 집대성된 것으로서 편리하다. 전집색인으로는 연경(燕京)대학이 편찬한 <두시인득(杜詩引得)>이 있고, 전기로는 타이완 원이둬[聞一多]의 <두소릉선생연보회전(杜少陵先生年譜會箋)>이 뛰어나다. 

 

 <강촌(江村)>

 淸江一曲抱村流(청강일곡포촌류)   맑은 강 한 굽이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데

 長夏江村事事幽(장하강촌사사유)   기나긴 여름 강촌은 만사가 한가롭다

 自去自來梁上燕(자거자래양상연)   제비는 마음대로 처마를 들고나고

 相親相近水中鷗(상친상근수중구)   수중의 갈매기는 가까이 가도 날아갈 줄 모른다

 老妻畵紙爲棋局(노처화지위기국)   늙은 아내는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稚子敲針作釣鉤(치자고침작조구)   어린 아들은 바늘을 두드려 낚싯바늘을 만드는구나

 多病所須唯藥物(다병소수유약물)   다병한 몸에 필요한 것이란 오직 약물뿐

 微軀此外更何求(미구차외갱하구)   미천한 이내 몸이 달리 또 무엇을 바라리오

 

 

팬더 사육기지

 성도시 북쪽 교외의 도끼 산에 위치해 있다.

 중국 최초로 건립된 야생 팬더 생태 환경을 재연한 연구기지로 현재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에 있는 희귀동물 팬더를 보호하고, 번식연구를 한다. 1993년 세계에서 유일한 멸종 위기의 진귀한 야생동물 테마 박물관으로 팬더 박물관이 설립되어 있으며 현재 팬더의 실제 모습을 관람할 수 있다.

 아름다운 조경으로 이루어진 연구기지는 기지라기보다 팬더 동물원에 가까우며 한국에서 보기 힘든 팬더의 생활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어 인기가 아주 높은 지역이다.

 대나무 잎를 맛있게 먹고 있는 팬더, 조금은 위태로워 보이지만 나름대로 중심을 잘 잡고 나뭇가지에 올라가 있는 팬더, 단잠을 자고 있는 팬더 등 재미난 구경거리가 많을 뿐 아니라 갓 태어났을 때의 모습부터 이들을 키우고 번식시키려는 연구원들의 노력까지 엿볼 수 있어 어린 아이들에게는 교육효과도 매우 높다.

 2006년 이곳에서 유례없는 자이언트 팬더 베이비붐이 있어 10월까지 무려 31마리의 아기팬더가 태어나 28마리가 생존하는 성과를 거두어 최근 메스컴에 많이 소개되기도 했는데 팬더용 성교육 DVD가 유효했다는 재미있는 후담이 있다.

 참고로, 2000년 9마리, 2005년에는 12마리의 아기 팬더가 태어났다.

 

자이언트 팬더

- 학명: Ailuropoda melanoleuca(Giant panda)

- 분류: 팬더과

- 분포지역: 중국북서부, 남부, 티베트 동부, 히말라야, 미얀마, 아삼

- 크기: 몸길이 120-150cm, 몸무게 70-160kg

 주로 야행성이어서 낮에는 나무 위에서 몸을 움추리고 잠을 자며 밤에는 땅에 내려와서 먹이를 찾는다. 조릿대의 잎, 대나무 죽순, 과일,나무열매 등의 식물을 즐겨먹고, 성질은 조용하고 온순하며 많이 움직이지 않는다. 습지와 나무 위를 좋아한다. 생김새와 동작이 귀여워서 전세계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암컷이 임신 가능한 기간은 1년에 2~3일 정도로 짧고, 한 번에 1-2마리를 낳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에 있다. 현재 야생상태의 자이언트 팬더는 1,600마리에서 3천마리 정도로 추산된다.

 

 

너구리팬더(레서팬더)

- 학명: Ailurus fulgens(Lesser panda)

- 분류: 팬더과

- 분포지역: 중국남부,히말라야, 미얀마 북부

- 수명: 8-10년

- 크기: 몸길이 약 60cm, 꼬리길이 약 50cm, 몸무게 3~5kg

 몸전체가 붉은빛의 긴 털로 덮이며 머리는 둥글고 귀는 크고, 곧게 서며 끝은 삼각모양이다. 대나무, 풀, 과일, 곤충, 작은 설치류 등을 즐겨 먹는데 앞발로 잡고 먹는 것이 특이하다. 야행성으로 주로 새벽과 밤에 활동하며 나무를 잘 타고, 대부분의 시간을 나무 위에서 보낸다.

 번식기는 봄이고, 임신기간은 110-160(평균 134일)이며 한 배에 새끼 1~4마리(보통 2마리)를 낳는다. 새끼는 어미가 돌보며 약 1년이 지나면 다 자라고, 약 18개월이면 성적으로 성숙한다.

 

 

왕건묘(王建墓 : 왕지엔무)

 전촉(前蜀)은 5대 10국의 혼란기(903~925)에 민중들의 지지로 왕건이 성도를 도읍으로 세운 나라이다. 왕건의 묘는 역사적으로 '영릉(永陵)'이라 불리며 적사암으로 만들어진 묘실은 전실, 중실, 후실로 나뉘고 관좌 양측에는 12위의 역사상(力士象)이 세겨져 있고 동, 서, 남의 3방에는 24위의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기생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악기를 연주하는 동작의 특징을 보면, 각각의 그림이 각기 다른 자태와 조형의 미를 보여주며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왕건의 묘는 1942년에 발굴이 되었고, 1961년 국무원에 의해 전국중점 문물보호 단위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현재 그의 무덤은 길이 80m 정도에 15m 높이로 묘실이 남아있고, 전반적인 건축구조가 매우 뛰어나게 설계되어 있다. 왕건 묘는 유적지나 관광지로서 뿐만 아니라 당시의 무용, 음악 등 예술분야를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청성산(靑城山)

 성도에서 약 66km 떨어진 거리에 70여개의 도교 사원이 있었던 청성산은 도강언에서 서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청성산은 푸른 나무들이 성벽처럼 둘러싸인 모양을 하고 있으며, 해발 1,600m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중국 도교 발상지의 하나로 동한의 말기, 도교의 창시자 장도능이 여기에서 포교를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원래 산 전체에 도교 사원이 70개나 되었지만 현재에는 건복궁(建福宮), 천연도화(天然圖畵), 천사궁(天師宮), 조양동(朝陽洞), 상청궁(上淸宮) 등 38개의 사원이 남아 있다.

 천연도화(天然圖畵)는 청 광서(光緖)년간에 지어진 누각으로 건복궁에서 서쪽으로 1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푸른 암벽이 벽을 두르듯 서있고 운무가 피어오르는 사이에 푸른 나무들이 서로 어우러져 있어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마치 그림 속으로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느껴 옛부터 천연도화(天然圖畵)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천연도화(天然圖畵)에서 서쪽으로 2km 떨어진 곳에 있는 도교사당인 천사동(天師洞)에는 천사도를 창시한 장도릉과 그의 30대 손인 허정(虛靖)의 상이 가운데 서 있다. 천사동의 현존하고 있는 사당은 청말에 지어진 것으로 규모가 웅장하며 건축물의 조각들이 정교하다. 주전(主殿)인 삼황전(三皇殿)에는 당나라 때의 삼황(三皇: 중국 고전 중의 세 임금. 복희. 신농. 여와를 이르는 말) 석각이 있으며 전내에는 현존하는 역대 석목비각(石木碑刻) 중 가장 유명한 당 현종의 명을 적은 비(碑)와 악비(岳飛)가 직접 쓴 제갈량 전후출사표 등이 있다.

 상청궁은 진(晉)대에 처음 지어졌으며 현재의 사당건물은 청(淸) 동치(同治) 년간에 세워진 건축물이다. 마애석각이 여럿 남아 있다.

 또 이곳의 천연적인 아름다움이 표현되어 있는 금편암의 '석순봉', '장인산'등이 있다. 건복궁은 당나라 때에 건립된 것으로 산의 입구에 있고, 사방에 다섯 봉우리가 둘러있는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윗쪽에는 귀성한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귀신이 살던 곳이라 한다. 청성산의 산허리에 위치한 청사궁은 수나라 때 지어진 것으로 근처의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한데, 자연경관만큼이나 아름다운 전설을 많이 지니고 있는 곳이다. 또한 상청궁은 진대부터 건립된 것으로, 궁 뒤쪽의 노소정에 호응정을 지어서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가 되어 돌아 오듯 산들을 서로 바라보게 했다. 이곳에서는 일출과 운해, 성광의 삼대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o 위치: 도강언시 서남쪽

o 교통: 성도 기차역 광장과 서문버스역 앞에서 매일 도강언과 청성산을 오가는 관광전용버스가 있다. 배차간격은 10분이다.

o 입장료(변경가능): 전산(前山)- 60위안,  후산(後山)- 20위안,  케이블카 편도 30위안, 왕복 50위안

 

 

와룡(臥龍) 자연보호구역

 성도의 서북지구에서 사천분지와 청장고원으로 이어지는 자연보호구로 성도에서 서쪽으로 100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중심지는 사만(沙灣)이고 면적이 20만㎢에 달하며 온난습윤한 기후로 인해 많은 동물과 생물이 자라고 있다. 그중에서도 야생 팬더곰이 살고 있어서 팬더곰의 고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외에도 금색털원숭이, 공동 등의 희귀동물과 400여종의 야생동물, 아열대식물부터 한대식물에 이르기까지 약 4000여종의 수목의 보고로도 유명하다.

 1963년에는 중국 최초로 야생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1980년에 연합국교재의 생물보호구역으로 등록되었으며 같은 해에 세계 야생생물기금연합회가 중국팬더연구센터를 설립해 지금까지도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도강언(都江堰 : 도우장옌)

 세계에서 유명한 약 2,200년의 역사를 가진 고대 수리시설 중의 하나다. 성도에서 57km에 떨어진 곳에 있는 도강언은 사천성 서북의 민강(岷江) 중상류와 타강(陀江)의 줄기가 갈라지는 곳에 있는데, 근교의 도교 성지인 청성산(靑城山)과 더불어 국가중점풍경구로 정해져 있다.

 이 수리 시설의 배공, 관계 등을 통해 사천성이 얻은 이익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며 천부(天府)의 나라라는 사천성의 풍부한 농작물의 생산을 받혀주는 기초가 되었다.

 때문에 사천의 서북이 높고, 동남이 낮은 지리적 조건을 이용해 이 대수리 시설을 만든 촉나라 군수 이빙과 그의 아들 이랑은 사천성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왔다. 중국인들은 쉬지않고 끊임없이 그들에게 맑은 물을 주는 도강언(都江堰)이 없었더라면 삼국지에서의 유비와 제갈량의 지략은 꽃 필을 수 없을 것이고 중국 최고의 시인이 이백과 두보의 주옥같은 시들도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곳을 여행할 때 도강언 근처의 산 위 전망대에서 도강언 전체를 내려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천부광장(天府廣場, 티엔푸광창)

 88,368㎡ 면적의 천부광장(天府廣場)은 성도시 중심에 위치해 있다. 녹색의 초목과, 원색의 꽃들이 빽빽히 만발해 있는 이곳은 도심 한 가운데서 독특한 풍경을 뽐낸다. 광장 서쪽에 있는 황성청진사(皇城淸眞寺)는 천부광장의 전신이라고도 하는데, 명태조 주원장의 주춘(朱椿)인 촉왕부(蜀王府)가 있었던 곳이다. 1644년 이곳에서 대서국(大西國)이 건립되었고, 청조 초기에는 원촉왕부의 공원(貢院)을 다시 세웠는데 이것을 황성(皇城)이라 불렀다. 이곳은 새로운 것이면서도 오래된 것이라 할 수가 있는데, 왜냐하면 광장이 다시 만들어 지기 전에 수백 년간을 보존되어 왔기 때문이다.

 광장 북쪽의 사천미술관은 종종 예술품들이 전시되는 곳이고, 정북 방향의 성전람관에는 일년 내내 중국 실업계의 신상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또 광장 동쪽의 예술관은 일찍이 서남 최대의 예술전당이며, 인접해 있는 인민상점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유명한 상점 중의 하나다. 천부광장이 워낙 시 중심에 있다보니 주변에 크고 작은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앞서 말한 인민상점외에도 천좌상점과 지하상점, 성도백화점, 천부상점 등이 있다. 천부광장은 시 중심의 동서남북이 통하는 곳에 있어서 성도의 어느 유명한 관광지를 가더라도 이곳을 거쳐가는 경우가 많은데, 문수원, 무후사, 청양궁, 망강공원 등에서 천부광장으로 향하는 교통편이 많아서 성도 여행 중에 이곳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하며 중국 서민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여유있게 바라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보광사(寶光寺 : 바오광스)

 보광사는 9세기 동한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소실되었던 것을 17세기에 재건하였으며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다. 당나라 말, 황소의 난으로 장안이 함락되자 황제가 이곳으로 피신을 하였는데 그때 황제가 절의 복구를 명하였다. 원래 당대에는 대석사(大石寺)라 했지만 그 이후부터 보광사라 불렸으며 그 이름은 보광사의 현존하는, 당대에 건립된 탑에 석가모니의 사리가 수납되어 아름다운 빛을 발하여 보광사라 이름지어지게 된 것이다. 사천성 정부는 1956년 보광사를 성급 문물 보호단위 중 하나로 지정하고 대외에 개방했다.

 보광사는 30m의 사리탑과 5전(殿), 16원(院)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 당, 정, 원의 웅대한 모습과 문, 창의 정교한 아름다움은 고대의 건축과 정교한 예술기교의 높은 수준을 반영한다.

 그 중에서 금색의 빛을 발하며 서 있는 30m 높이를 자랑하는 13층의 사리탑과 2m 전후의 크기로 서로 다르게 조각된 500여개의 나한상이 있는 나한당(羅漢堂), 양나라 무제때 세운 천불비(千佛碑) 등이 볼 만하다.

 

 

이왕묘(二王廟)

 도강언을 만든 이빙부자를 모신 곳으로 원래의 이름은 숭덕묘(崇德廟)이며 남북조 시대에 건설되었다. 이곳에서는 이빙 부자에 대해 신앙하는 당시 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묘내에는 중국고대 노동민들이 자연을 정복하여 과학적으로 수리건설을 이룩한 치수경험과 논술이 새겨져 있다. 또 곳곳에서 명대에 주조된 철화병, 철촛대, 비각 등을 볼 수 있다. 강가의 출입구를 통해 이와묘를 나와서 안란교(安瀾橋)라는 조교를 건너며 아래쪽을 보면 복룡관(伏龍觀)이 있다.

 복룡관에는 이빙의 상과 머리부분이 없는 3m나 되는 석상이 놓여 있다. 이것에는 동한 때 만들어졌다는 명(銘)이 새겨져 있어 이빙 부자에 대한 신앙을 아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것은 1974년 도강언의 흐름을 일시적으로 막고 정비할 때 강바닥에서 발견한 것이라고 한다.

 

 

릉운사(凌雲寺)

 대불과 이웃하고 있는 대불사라 불리는 릉운사는 릉운산 산정에 위치하고 있다. 능선을 따라 만들어 놓은 붉은 빛을 띄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릉운사 경내에 도착하게 된다. 처음 건설된 것은 당나라 때이지만, 그 때의 건축물은 모두 사라지고, 지금 남아있는 건축물은 명나라 시기에 재건된 것이다. 사원 경내에는 천왕전(天王殿), 대웅전, 장경전(藏經殿)과 일찍이 송나라 제1의 시인이며 문장에 있어서도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소동파(蘇東坡)가 책을 읽었던 곳으로 전해 내려오는 동파루(東坡樓)가 있다.

성도-凌雲寺.jpg

 또 동파루 아래의 벽에는 소동파가 그렸다고 하는 매화와 국화의 그림이 석각으로 남아있다. 릉운사의 뒷편의 봉우리에는 높이 35m의 13층 석탑인 령보탑(靈寶塔)이 있다. 령보탑은 중앙은 비어있고, 매층마다 구멍이 뚫려 있어 안에서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청양궁(靑羊宮)

 노자(老子)를 기리는 역사가 오래된 도교 사당으로 현재는 문화공원이라고 불린다. 당대에 창건되어 청대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경내에는 령조루(靈祖樓), 석조정자인 팔괘정(八卦停), 무극전(無極殿) 등의 주요 건축물 외에 올려다 볼 만큼 큰 삼존상을 안치한 삼청전(三淸殿), 융생대(隆生臺) 등이 있다. 또 청양전(靑羊殿)에는 청양(靑羊)이라 불리는 청대에 만들어진 동양(銅羊)이 있는데, 12가지의 띠를 나타내는 동물들이 하나의 몸에 조형되어 있는 기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것은 청대에 한 대학사(大學士)가 송대 재상의 유물이었던 것을 북경에서 사와 청양궁에 기증한 것이라 한다.

 전하는 말로는 병에 걸린 사람이 이 청양을 한번 만지면, 그 병이 곧 치료된다고 한다. 매년 1월에는 다채로운 등롱(燈籠)이 걸리는 등회(燈會)가 열리고, 당대부터 계속되었다고 하는 노자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잿날(화회, 花會)이 매년 3, 4월에 약 1개월에 걸쳐 벌어진다. 이는 노자의 탄생일인 음력 2월 15일을 백화(百花)의 탄생일로 삼아 꽃신에게 제사지내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옛 전쟁의 흔적이 남겨진 곳 '루딩교(瀘定橋)'

 해라구에서 버스로 약 40분 이동하면 루딩이라는 작은 도시가 나타나는데 이곳은 티벳구역으로 가기전 마지막 한인(汉人)구역이다. 대도하가 루딩을 흘러지나는데 그 위에 큰 쇠사슬로 만들어진 루딩교라고 부르는 다리가 있다.

 루딩교는 일찍 청나라 강희년간(1705)에 만들어졌으며 루딩교 앞에 루딩교(泸定桥)라고 강희황제의 친필이 적혀져 있다. 이 다리의 길이는 103m이고 넓이는 3m 모두 13개의 쇠사슬로 만들어졌으며 다리의 총 무게는 40t이 넘는다.

 1935년 5월 29일 모택동이 거느린 홍군이 루딩교를 건느다 국민당군대의 강력한 저항을 받았다. 국민당군은 홍군이 다리를 건너 못오게 다리 위의 널판자를 불로 태워 없앴고 맞은 편 보루에서 기관총으로 저항하였다. 홍군은 22명의 투사로 묶은 선봉대가 쇠사슬 위에 매달려 국민당군들이 쏘는 총알을 맞받아 공격했는데 끝끝내는 루딩교를 정복하고 대도하를 건넜다.

 현재 루딩교에 가면 혁명박물관과 홍군기념비가 세워져 그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루딩은 루딩교로 유명해지며 루딩교는 공산당과 국민당의 옛 전쟁터로서 오늘도 가면 옛 전쟁터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빌딩 신세기 글로벌센터(新世紀環球中心)

 세계에서 가장 큰 빌딩이 중국 서부 청두에 들어섰다.

 중국 서부 대개발 중심지인 청두에 위치한 이 건물은 '신세기 글로벌센터(新世紀環球中心)'다.

 3년 만에 완공돼 2013년 06월 28일에 개장한 글로벌센터는 가로 500m, 세로 400m, 높이는 100m에 면적 176만㎡(약 51만평)를 자랑하며 사무실, 5성급 호텔, 극장, 쇼핑센터, 테마파크, 수영장, 아이스 스케이트장 등을 겸비했다.

 이 센터에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20개도 들어갈 수 있으며 면적은 미국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 3배에 달한다. 바티칸시티 4개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중국 쯔진청(紫禁城· 면적 73만m²) 또는 한국 경복궁(43만2703m²)의 대지보다도 훨씬 넓다.

 단일 건물로는 기존 1위였던 두바이 국제공항(면적 171만m²)을 간발의 차로 따돌리고 세계에서 가장 크다.

 제일재경일보는 부동산개발회사인 청두 ETG가 주도한 이 공사에 120억위안(약 2조원)이 소요됐을 것으로 추산했다. 청두시는 글로벌센터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지하철을 짓고 있으며 신공항 건설은 2020년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동방의 알프스 쓰꾸냥산(四故孃山 - 625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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