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산(崇山)

 중악(中岳) 숭산은 일명 태실산(太實山)이라 하는데 하남성(河南省) 등봉시(登峰市)경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 60km의 숭산에는 72개의 산봉이 있고 해발 1,492m의 주봉인 준극봉(峻極峰)은 웅장하고 험준하고 장려하고 우아하다. 산봉 많고 사찰도 많아 "산위에는 72봉이 있고 산아래에는 70사찰이 있다"는 설이 있다. 숭산은 역대 제왕장상들이 신선에게 제를 지내는 곳이며 문인들이 유학하던 곳이고 불교, 도교, 유교를 전수하던 중요한 장소이다. 명승고적이 별처럼 널려 있어 3교의 집합지로 심오함으로 내외에 이름이 자자하다.

 

 숭산경관구는 소림사(少林寺), 중악묘(中岳廟), 숭양서원(嵩陽書院), 관성대(觀星臺), 삼황채(三皇寨), 백사호(白沙湖) 등 6대 명소로 구성된다. 각 명소는 각자의 특색을 가지고 각자의 오묘함을 지닌다.

 

 청(淸)나라 건륭제(乾隆)의 말처럼 "숭산의 좋은 경치 오랜 세월 자랑하고 비바람 날리고 시내물 흐르네. 저 멀리 3천리 남해 바라보이고 가까이로는 서호의 8백주 보이네. 만리 장강은 옥띠런 듯 둥근 명월은 수놓은 공이라. 이 좋은 경치 다 못보니 다음에 인연 닿으면 다시 오리."라는 시와 같다.

 

 그 중 소림사 명소는 중국 불교 선종(禪宗)과 소림무술의 발상지이다. 소림사는 "천하 제일 명사찰"이라는 미명을 가진다. 현존 건물은 7겹, 면적 30,000㎡, 건물은 명(明)나라와 청나라 때 건물로 주로 산문(山門), 천왕전(天王殿), 대웅보전(大雄寶殿), 장경각(藏經閣), 방장실(方丈室), 달마정(達摩亭), 비로전(毘盧殿) 등으로 구성된다. 문위의 액자에는 "소림사(少林寺)"라는 청나라 강희(康熙)제의 친필글자가 새겨져 있다.

 

중악묘(中岳廟)  

 중악묘는 역대 봉건통치자들이 보호하고 제를 올리는 '山神'의 장소이다. 숭산의 타이쉬샨(太室山) 기슭에 세워진 도교사원인 중악묘(중웨이먀오)의 규모는 대단히 방대한데 2,000여 년을 거치면서 역대의 끊임없는 증축을 거쳐 지금까지 보존해 왔다.

 중악묘는 진(秦)대에 시작하였는데 원명은 태실사로서 태실산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곳이였다.  묘 안으로는 중화먼(中華門)서부터 북쪽방향 일적선으로 야오찬팅(遙參亭), 쥔지띠엔(峻極殿), 구석의 위슈뤄(御書樓)까지 1.3㎞에 걸친 다수의 불각·전·문 등이 즐비하며, 샤오꾸궁(小故宮)이라고 할 정도이다.

 묘 앞에는 높이 3m의 철인상(鐵人像) 4개가 서 있다. 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북송 때 치평(治平) 원년(1964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사원내의 청록색은 하늘을 덮을 듯 하며, 고대의 건축 군림과 더불어 그 장관이 눈부시고 화려하다.

 

 

소림사(小林寺)

 소림사는 덩핑(登封)현의 북서쪽, 숭산의 하나인 샤오쉬샨(小室山) 북쪽 기슭에 세워진 선사로 북위 태화 20년인 495년에 만들어져, 북위 효창 3년인 527년에 인도승 달마대사(達磨大師)가 9년간 면벽좌선을 하여, 선종(禪宗)을 부흥시킨 '천하제일 명찰(名刹)'이다. 소림사는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하며 고승이 청수(淸修)하는 대단히 아름다운 곳이어서 끊임없이 불경에 정통한 고승이 출현하였다.

 그래서 이곳은 중국불교단종의 발원지로 당대에부터 모든 승려들이 수련해 온 권법인 소림사권법으로도 일찍부터 유명한 곳이다.

 소림사의 산문을 들어서면 천왕전터, 대웅전터가 있으며, 소림사 정문 앞에는 돌사자가 있다. 오른쪽은 숫사자, 왼쪽은 암사자로서 소림사가 전란 중에 소실되어 증축되었지만 이 돌사자만은 당시의 것이 그대로 전래되어 오고 있다. 소림사 내에서 볼 만한 것으로는 달마가 9년 동안 면박수도를 했다는 다마통(達磨洞)과 역대 화상들의 묘지와 석탑이 빽빽이 서있는 탑린(塔林)이 있다.

 소림사 서쪽 300m 산기슭 아래에 있는 탑린은 소림사 역대 주지승의 장지(葬地)로 중국 최대의 탑린이라고 할 수 있는데 크고 작은 250개의 탑신은 크기가 서로 다르고 형태로 서로 달라 대부분 조각과 서두(책의 머리말)로 각 시대의 다른 건축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탑린은 그야말로 중국고대 벽돌건축과 조각예술을 연구하는 보고이다. 또한 소림사 내에는 소림사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묘사해 놓은 벽화 등 적지 않은 진귀한 문물이 보존되어 있다.

 숭산을 말하면 사람들은 곧 소림사를 생각하게 되고 소림사의 신공절기를 생각하게 된다. 선종수행법은 면벽이라 불리는데 벽을 마주보고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다. 장시간 책상다리를 하고 수도를 했기 때문에 쉽게 피로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무술을 연습하고 단련하여 신체의 피로와 졸음을 해결하였다. 소림사는 인도의 유명한 승려인 보리달마가 소림사에 와서 선종을 전수한 이후 사원이 점점 넓어지고 승려의 수도 나날이 많아져 소림사의 명성이 널리 퍼져 나갔다. 달마는 중국불교 선종의 초조(初祖)라 불려지고 소림사는 선종의 조정(祖庭)이라 불린다. 이 때문에 소림권법을 달마가 창조했다고 한다. 소림사는 당대 초기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소림사 승려 혜장, 담종, 지결등 13인은 이세민이 왕세충을 토벌하려는 싸움에서 전쟁을 도와서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전쟁에서 큰 공로를 세웠다. 당 태종 이세민은 후에 담종화상을 대장군으로 봉하고 소림승려가 승병을 훈련하고, 살계(생물을 죽이지 말라는 계율)를 열며, 술과 고기를 먹는 것을 특별히 허락해 주었다. 高內에 있는 <당태종사소림사주교비(唐太宗賜少林寺主敎碑)>에는 이 역사가 기술되어 있다. 조정의 전폭적인 지지로 소림사는 국내외에 대불사로 널리 이름을 떨쳤고, 천하제일 명찰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송대에 소림사 무술은 또 크게 발전하여 사찰에 승려가 2,000여 명이 넘었다. 명대에 소림사는 절정기에 도달하였으나 청대 때부터 쇠락하기 시작했다.

 

 

숭양서원(嵩陽書院)

 숭양서원(쑹양쑤위엔)은 중국 고대 4대 서원중의 하나로 타 지역과는 다른 문화의 분위기가 감돈다. 이 지방이 무(武)가 아니고 문(文)의 지방으로서 이 서원은 그야말로 책을 읽는 곳이다.

 서원내에는 "장군수(將軍樹)"이라 불리우는 두 그루의 거대한 측백나무가 있는데, 다섯명이 그 나무를 에워잡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며, 현재까지 청록색의 빛을 띄며 우뚝 솟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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