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기산(天下第一奇山) 황산(黃山, 1,864m)                   ☞ 황산 여행상품

포토 갤러리

당월패방군(棠越牌坊群)

삼청산(三淸山 - 1,819.9m)

 

 중국의 산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산이 이 황산(黃山)이다.

 

 중국 안후이성 후이저우(黴州) 지구 서북쪽 4개의 현에 걸쳐 있으며 면적이 154㎢, 둘레가 약 120㎞ 되는 산이다.

 해발 1,000m 이상 봉만 72봉에 이르며 24개의 계류(溪流, 산골짜기에 흐르는 시냇물)을 가진 산이다. 면적이 133㎢인 우리나라 한라산국립공원보다 약간 넓다.

 

 황산은 중국 10대 관광지 중 하나로 꼽히며, 1990년 12월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자연유산으로 인정되었다.

 

 진나라 때 황산은 이산(黟)이라고 불렀으며, 이후 당나라 현종 때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산 전체가 붉은색 화강암으로 이뤄져 있다. 산이 누렇다고 해서 황산(黃山)이라고 한 것이 아니다. 중국 고대 전설상의 시조 삼황(三皇) 중, 중국인에게 물건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황제(黃帝)가 이 산에서 선단(仙丹)을 만들며 신선으로 살았다는 전설에 따라 당나라 때부터 황제의 '황(黃)'자를 따서 황산(黃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다른 지도 02   ☞ 다른 지도 03

 

 봉우리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 중심부에 3대 주봉인 연화봉(蓮華峰, 1,864m)· 광명정(光明頂, 1,840m)· 천도봉(天都峰, 1,829m)이 솟아 있으며 연화봉이 황산의 최고봉이다.

 

 중국 남부의 안휘성 동쪽에 자리잡은 이 산은 중국에서의 명성만큼이나 아름답고 수려한 산세로 중국인들에게 제일의 명산으로 꼽히고 있다. 중국의 고대 시인들은 황산을 칭송하면서 '황산을 보고 나면 그 어떤 곳도 눈에 차지 않는다'라고 했을 정도다.

 

 명나라 지리학자 서하객(徐霞客)은 일생 중국 천하를 다녀본 후 "오악(五岳: 泰山, 華山, 衡山, 恒山, 嵩山)을 보고 나면 다른 산이 보이지 않고, 황산(黃山)을 보고 나면 오악(五岳)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칭송했다.

 五岳歸來不看山(오악귀래불간산)

 黃山歸來不看岳(황산귀래불간악)

 

 황산(黃山)은 크게 위로 오르면서 온천구(溫泉區)-옥병루(玉屛樓)-연화봉(蓮花峰)으로 나뉘는데, 온천은 황산의 입구에 있어 주로 이곳에 숙박시설이 몰려있다. 옥병루는 해발 1,680m에 위치한 곳으로 원래는 문수원의 유적이었다. 이곳에서부터 정상의 연화봉에 이르는 코스에서 망망대해의 운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제일 높은 곳의 연화봉은 정상이 1,860m로 황산의 모든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황산(黃山)에 오르는 코스는 보통 크게 2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전산(前山, 황산의 가장 큰 입구)에서 곧장 천도봉(天都峰)으로 올라가 옥병루(玉屛樓)를 거쳐, 연화봉으로 올라 광명정으로, 그곳에서 다시 서해, 북해를 지나 후산(後山)으로 내려오는 코스이다. 이 코스는 체력소모가 매우 큰 데다, 올라갈 때는 매우 힘들고, 내려올 때는 위험해서 등산을 오랫동안 해오지 않은 사람들은 피하는 것이 좋다.

 

 나머지 하나는 후산(後山)의 운곡사(雲谷寺)에서 시작해 백아령(白鵝嶺)까지, 시신봉(始信峰)을 거쳐 북해까지 가는 코스로 실제로 첫번째 소개했던 코스를 반대로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코스의 경우는 비교적 수월하며, 숙식을 편리하게 해결할 수 있는 데다, 점입가경으로 뒤로 가면갈수록 풍경이 더욱 아름다워져 등산의 피로를 잊을 수 있다.

 

 

 황산(黃山)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황산이 5악, 즉 태산(泰山), 화산(華山), 숭산(嵩山), 항산(恒山), 형산(衡山)에 포함되지 않은 이유는 심산유곡에 있어 당시에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은 많이 가까워졌다. 중국 상하이에서 황산까지 고속도로가 나 있고. 항주에서는 2시간 거리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황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려면 반드시 멈춰 서서 구경해야 한다. 그 아름다움에 빠져 걷다가 자칫 계단을 헛디딜 경우,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로 직행한다. 사진을 찍을 때도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천둥 번개에 위험한 우산보다 비옷이나 방수가 되는 긴소매 재킷과 미끄럼 방지 기능이 있는 신발을 준비하면 좋다.

 

 계단은 모두 20만 개가 넘는다. 지금도 그 수가 늘고 있다. 그래서 황산을 오르내리는 길은 일반적인 등산로라고 하기엔 좀 넘친다. 등산화가 따로 필요 없다. 기능성 등산복도 양손의 스틱도 어색하다. 대부분 계단길이라 그냥 평상복으로 걷기에 충분하다.

 

 

<황산시 정보>

 옛부터 다무도회(茶務都會)라 불릴 만큼 차 거래가 왕성했던 둔계시와 서셴, 슈닝셴, 이셴, 황산풍경구 등과 함께 황산시로 편입이 되었다. 따라서 둔계역은 황산역으로, 둔계공항은 황산공항(황산둔계공항)으로 그 명칭이 모두 바뀌었다.

 황산시는 황산을 가기 위해 방문한 관광객들이 머무는 숙소와 음식점, 상점이 위치한 곳으로 북경, 남경, 상해, 항주 등의 도시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비행기나 열차, 장거리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황산으로 가기 위한 관문이라 할 수 있다.

 

 

안휘성(安徽省)

 중국 중앙부 양자강(揚子江) 하류에 있는 성으로 북동으로는 강소성과 남동으로는 절강성과 접해 있다. 성도(省都)는 허페이(合肥)이며, 전체면적이 13만 9900㎢, 인구가 약 6천만 명으로 중국의 23개성 가운데 면적이 적은 편에 속한다.

 성 안에는 양자강과 회하, 2개의 하천이 흐르고 이 두개의 하천으로 인해 중앙부에는 광대한 전원지대를 이루며, 이 두 하천의 연안지대에는 소택지가 널리 분포한다.

 기후는 온난습윤하여 4계절의 구별이 뚜렷하고, 평균기온은 1월 2.7℃, 7월 27.9℃ 정도다. 북부지역에서는 강수가 여름철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종종 범람하고, 봄에는 가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규모의 회하강 치수공사로 피해가 현저하게 줄어 들었다.

 안회성은 화중(華中)의 중요한 농업지대로서 인구의 90%가 농업에 종사하며, 남부의 양자강 차오후호(巢湖)의 평야에서는 쌀·보리 2모작이, 또 북부의 회하강 유역에서는 밀·참깨·수수·옥수수 등 밭작물이 성하다. 그 밖에 강 남쪽에서는 차가 많이 산출된다. 광산자원으로는 회남(淮南)의 석탄, 구리 등이 산출되며 공업으로는 경공업을 주로 하여 종이·먹 등의 전통공업도 이루어진다.

 교통은 양자강· 회하강 등의 수운 외에 천진, 회남, 남경에서 출발하는 철도와, 7,000여km에 이르는 자동차도로가 있다.

 안휘성을 대표하는 것은 당연 황산(黃山)과 구화산(九華山)이다. "천하의 명경(明景)은 황산에 모인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황산은 그 아름다움이 유명하며 구화산은 오대산, 보타산, 아미산과 더불어 4대 불산 중의 하나로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안휘성이 차의 명산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산지와 구릉에서는 산꼭대기까지 계단을 형성하며 올라가는 차밭을 많이 볼 수 있다.

 

 

▲ 黃山(황산)

 황산은 安徽(안휘성) 남부에 있는 1,860m의 運花峰(운화봉)을 비롯한 72峰(봉)이 연이어 있는 山塊(산괴)를 말한다. 이 황산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수많은 시인들이 찬미하였다.

 明(명)나라 때의 지리학자이며 여행가였던 徐霞客(서하객)은 30년에 걸쳐서 중국의 산하를 두루 여행한 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五岳(오악)' <泰山(태산), 華山(화산), 衡山(형산),  恒山(항산),  嵩山(숭산)>을  보고 온 사람은 평범한 산은 눈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黃山(황산)은 보고 돌아온 사람은 그 五岳(오악)도 눈에 차지 않는다."

 옛날부터 유명한 시인, 화가, 여행인들이 이 산을 그토록 칭송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흔히들 황산의 삼기(三奇)라고 하면 奇松(기송), 奇岩(기암), 雲海(운해)를 든다. 거기에 溫泉(온천)을 추가하여 四絶(사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절묘하기 이를 데 없는 기암절벽에 어느 별천지 선경에나 있을 법한 기묘하기 이를 데 없는 소나무들이 서 있는 사이로 상서로운 구름의 무리들이 시시각각 움직이며 가지가지 오묘한 형상을 구현해 낸다.

 

 이를 보고 중국에서 나온 한 여행 안내 책자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松(송), 岩(암), 雲(운) 셋이 힘을 모아 靑空(청공)과 大地(대지)를 영상화하여 수없이 많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장면 장면을 우리들의 눈앞에 전개한다."

 

 황산으로 가는 버스는 모두 등산기지인 黃山瑥泉(황산 온천)까지 간다. 거기서 목표인 北海(북해)를 향해 가는 길은 天都峰(천도봉)을 지나 玉屛樓(옥병루)가 있는 연화봉을 경유하여 가는 루트와 雲谷寺(운곡사)로 통해가는 루트가 있다. 운곡사 루트는 로프웨이가 있어서 거리는 짧지만 옥병루 루트에 비해 가파르기 때문에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야 한다. 내려올 때는 대부분 운곡사 루트를 택하는데 올라갈 때는 옥병루 루트를 택하는 게 좋다.

 

 옥병루 루트를 택하는 경우에는 우선 황산 72봉 중 세번째로 높다는 천도봉에 오를 수 있다. 여기서부터 체인에 의지하여 가파른 계단을 조심스럽게 오르면 연화봉 가는 중간쯤에 옥병루가 있다. 도중에 「小心坡(소심파)」(정신차려야 하는 비탈)를 보면 오싹해 진다. 옥병루에서 연화봉까지 오르는 길은 비교적 수월하다.

 

 

황산(黃山)의 옛이름 이산()과 전설

 황산(黃山)은 이미 1억 2천만 년 전부터 그곳에 있었지만 서기 747년까지는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 현재 황산이 있는 안후이성은 중국에서도 발전한 지역인 동부에 있지만, 수많은 왕조의 도읍지로 중국 역사의 중심지였던 중원지역이나 장안에 비해 오지에 불과했다. 고대 중국인에게 중원지역 밖의 땅은 관심을 둘 여유가 없는 변방에 불과했기에 여행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때문에 황산이 아무리 아름답워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중국 명산의 대명사 오악(五岳)이 모두 중원지역과 장안 근처에 위치해 있는 것도, 황산이 오악보다 수백 년 늦게 알려진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황산의 옛이름 이산(黟).

 어떤 이는 검푸른 봉우리를 지녀서 그렇게 불렀다고 하지만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화강암 봉우리인 황산에서 검푸른 봉우리는 찾아 볼 수 없다. 사실 근교 마을 이현이 검푸른 대리석 산지로 유멸했고, 황산은 그 마을의 유명세를 빌려 이산(黟)이라 불렸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당시 오름 사람이 거의 없는 황산은 이름만으로 보면 그저 동네 뒷동산이었을 뿐이다. 적어도 서기 747년까지는.

 

 이산이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데에는 한 가지 전설이 있다. 서기 747년, 양귀비에 빠져 정사는 뒷전이었던 당 현종. 명석함을 상실한 현종에게 권력에 기생하려는 한 도사가 실제 존재여부조차 밝혀지지 않은 서시 '주서기이'에 '헌원황제(軒轅黃帝)가 어느 날 시종들과 이산에 와서 연단술(煉丹術, 불로장생의 약으로 믿었던 금단(金丹))을 만드는 기술의 하나)을 익혀 마침내 연단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7알을 먹고 하늘을 날났고, 42알을 먹자 머리가 하얘지고 피부가 쭈글쭈글해졌다. 이에 이산에 있는 온천수에 3일 밤낮 몸을 담그자 다시 검은 머리가 돋아나고 피부가 팽팽해지고 젊어졌다.'고 전하여 현종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황제의 전설이 서린 비범함에 혹했는지, 양귀비가 좋아하는 영험한 온천에 혹했는는 알 수 없지만 현종은 다음과 같이 명을 내린다.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의 이름을 따서 황산(黃山)이라 명하고, 6월 17일을 황산의 명명일로 정한다.'

 이리하여 747년 6월 17일 이산(黟)이 황산으로 다시 태어났다.

 

 만약에 안사의 난이 없었다면 현종과 양귀비는 황산에 올라 황제를 기리는 의식을 치르고 온천수에 몸을 담갔을 테지만, 그뜻을 이루지 못했다. 어쩌면 거짓으로 지어낸 전설로 인해 황산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그 이야기가 다시 전설이 되었을 볼 수 있다.

 

 그리고 8년 뒤에 이백(李白)이 황산에 다녀갔다. 이백은 두 차례 더 황산을 찾아 몇 편의 시를 남겼고, 황산의 봉우리 '몽필생화(夢筆生花)'의 전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백이 왜 수많은 명산을 두고 알려지지 않은 황산을 찾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로 인해 황산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79년 7월 등소평(鄧小平)이 5박 6일의 일정으로 황산에 왔었는데, 황산을 등정한 등소평은 황산의 가치를 알고 이곳 사람들에게 황산의 경제성을 이야기하면서 남녀노소 누구나 오를 수 있도록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후 황산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반 바지를 입고 황산에 오른 그때 등소평의 나이가 75세였다.

 20여 년간 돌계단을 만들어 남녀노소 누구나 험준하고 아름다운 황산을 볼 수 있도록 했던 황산이 2002년 개방되면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사랑을 받고있다.

 

 

◐ 황산 기후

 황산의 기후는 4게절이 뚜렷한 아열대 몬순 기후이다.

 강수량이 풍부한데 연간 강수량이 2,348mm이고, 1년의 183일은 비가 오고, 49일은 눈이 내린다.

 또한 황산은 240일 이상 안개가 끼고 습기와 구름을 낀 날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황산의 여행 최적기가 1년 내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황산의 봄과 가을은 짧고, 여름과 겨울은 길다.

 황산의 가장 인기있는 여행시기는 4월~10월이다.

 황산을 오를 때는 주변보다 더 기온이 떨어지므로 참고해야 한다.

 

o 황산의 봄(3월말~5월)

 평균 기온이 10℃ 정도이다. 흐드러지게 피는 꽃들과 신선한 공기는 황산의 봄을 특징 짓는다. 이 시기는 대체로 비가 오고 안개가 많이 낀다.

* 옷차림 : 황산을 오를 때는 기온이 더 떨어지므로 긴팔에(한벌 더) 봄 잠바를 준비해야 한다. 쉽게 벗고 입을 수 있는 옷차림이 좋다.

 

o 황산의 여름(6월~9월)

 관광 성수기로 황산의 폭포와 푸르름을 만끽하게 된다. 황산의 여름은 시원하고 구름 속에서 고요함을 느끼게 한다. 신선이 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황산의 5월~8월에 비가 월 300mm 이상씩 내리곤 한다. 그래서 황산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구름바다의 절경을 만날 수 있다. 황산의 4대 특징奇松(기송), 奇岩(기암), 雲海(운해), 溫泉(온천)이다.

* 옷차림 : 모자, 선그라스, 선크림 등 준비. 밤에는 기온이 내려가므로 보통 잠바 준비. 여름철에는 비바람이 강하고 번개가 치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우산보다는 우비를 준비하는게 좋다.

 중국의 학교는 7월 초부터 8월 중순(또는 말)까지 방학이므로 황산이 붐빈다는 것을 참고하자.(유명 관광지는 모두 붐빔)

 

o 황산의 가을(10월~11월)

 붉게 물든 단품의 계절이다. 이 시기는 황산 여행에 가장 적절한 날씨를 나타낸다. 황산의 가을 단풍과 푸른 소나무, 파란 하늘을 만끽할 수 있다.

* 옷차림 : 긴팔 옷에(한벌 더) 등산용 가을 잠바. 보온이 잘 될 수 있는 옷으로 준비하자.

 

o 황산의 겨울(12~3월)

 나무의 서리꽃과 눈꽃의 장엄한 설경을 감상할 수 있다.

 겨울이래서 관광객이 적어 좋으나 다소 추위를 감수햐야 한다.

* 옷차림 : 조석으로 영하로 떨어지므로 겨울용 등산복으로 준비. 신발도 등산화가 좋다.

 

 

황산의 기후(℃) - 산 위

도시명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황 산

(黃山)

평 균

-3.1

-1.7

2.7

7.9

11.7

14.9

17.7

17.3

13.7

8.9

3.9

-0.5

 

 

황산의 기후(℃) - 산 아래

도시명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황 산

(黃山)

최고평균

5.5

7.6

11.9

17.4

22.0

25.6

28.6

29.0

25.2

18.6

13.4

7.5

최저평균

2.0

2.7

8.7

15.0

19.5

23.4

26.7

26.0

21.7

15.9

9.8

4.0

평 균

4.0

6.1

10.4

16.2

20.8

24.3

28.2

27.8

23.5

17.5

11.6

6.0

 

 

 

camera.gif

관광 명소

황산국제관광제

 매년 가을(10월)에는 황산을 국외에 알리는 축제로 황산을 관광하면서 축제도 즐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다.

 가을은 황산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계절로, 국내외 관광객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붐비는 때다. 전통연등회, 민속쇼관람, 황산유람, 휘주고건축 참관 등의 행사와 관광업무상담회, 상인투자유치상담회, 상품전시판매회 등도 개최된다.

 1991년부터 시작된 이 축제는 황산국제관광제에서 비롯되었고, 그때 참석한 국가는 미국, 일본, 태국, 프랑스, 독일, 싱가폴 등이며 인원수는 50만 명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때의 성공으로 황산의 영향이 크게 확대되었고, 황산관광업의 발전도 촉진시켰다.

 

 

◈ 옛 상점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노가(老街 : 라오지에)

 황산시 인민정부가 있는 황산시내에 자리한, 말 그대로의 옛거리로 동서의 길이가 약 1.5km 정도다. 옛 둔계는 명, 청 때에 상업의 흥하던 곳으로 그 명성을 유지하듯 이곳은 그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거리가 모두 상점으로 되어있는 상점가이며, 명대부터 이곳은 상점가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건물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고건축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옛날 상점의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동인당, 호개문묵점, 정법성 등 40여개의 상점에는 문방사우, 서화골동, 한약, 차나 도자기 등의 다양한 중국전통물건들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선물을 사는 것도 저렴하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또한 이곳은 자주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20여개의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되었고, '둔록'이라는 차와 문방사우 중 묵의 생산지로서도 유명하여 신흥 관광도시로서 각광받고 있다.

 

 

잠구명대민거박물관(潛口明代民居博物館, 첸커우밍다이민쥐보우관)

 황산시내에서 북으로 40분 거리에 있는 잠구(潛口, 치엔커우)라는 마을에 있다. 이 마을은 황산 등산을 하기에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마두정(馬頭精)이라는 독특한 지붕양식을 가진 민가와 잘 정돈된 논이 있는 작은 마을이다.

 잠구민택 박물관은 대도시의 박물관처럼 현대식의 건축물이 아닌, 마을 주변의 전형적인 명대 민가 10여동을 이축해 만든 것이다. 이곳의 건축물은 역사적으로나 미술적으로 고유한 중요 건축물로 이 지방의 독특한 생활양식과 건축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총 면적이 16000㎡에 달하며, 음수교(蔭秀橋), 우리나라의 열녀문과 같은 의미의 석패들을 모아둔 곳인 당월패방군(棠越牌坊群), 선화정(善化亭), 조문청(曹門廳), 방관전택(方觀田宅) 등이 이곳에 모여있다. 또, 나오는 길에 근처에 있는 골동품판매소가 있는데 재미있는 물건들이 많다.

 

 

지방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곳, 정씨삼택(程氏三宅)

 명대의 건물로, 정씨성을 가진 이 지방의 호상(豪商)의 주택으로 477.6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세개의 동이 처마를 잇대고 있는 모양이어서 삼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전체적으로 이곳은 삼합원(三合院, 2층 건물이 안뜰을 둘러싸고 있는 모양)이라는 이 지방의 건축양식으로 되어 있으며, 들보나 창문, 2층 베란다 등의 조각이 빼어나다.

 특별한 역사적인 의미는 없지만, 이 지방의 독특한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라 할 수 있겠다.

 원래의 정식 명칭은 둔계박물관이고, 눈에 띄게 알려진 곳이 아니어서 찾기가 수월하지 않을 것이다.

o 개관시간 : 8시 30분 - 11시 30분 / 14시 - 18시

o 입장요금 : 10元

 

 

온천구(溫泉區)

 온천은 황산을 오르는 입구에 있는데, 호텔이나 매점, 온천, 풀장 이 모여 있고, 주위에는 볼거리도 많다. 볼거리로는 온천구의 옛유적인 익연정(翼然亭), 흐름의 갈래가 인(人)자의 모양을 한 폭포를 바라볼 수 있는 관폭루(館瀑樓), 관폭루에 걸려 있으며 용의 등 모양을 한 백용교(白龍橋), 백용교를 넘어서 있는 취석(醉石)과 호두암(虎頭岩), 도화계(桃花溪) 부근, 황산을 올려다보는 장소인 도원정(桃源亭) 등이 있다.

 

 

온천(溫泉)

 전설에 중국의 헌원(軒轅)황제가 이 온천에서 49일 동안 목욕하고 젊음을 되찾았다고 한다. 온천에서는 매일 약 400t에 달하는 물이 일년 내내 쉼 없이 흘러나오고 수온은 42℃ 정도를 유지한다.  황산의 온천은 소화, 신경, 심혈관, 신진대사, 운동 등 계통의 병, 특히 피부병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반산사(半山寺)

 해발 1340m의 봉우리로, 노인봉(老人峰)과 주사봉(朱砂峰) 사이에 위치해 있다. 절 앞에서 위를 쳐다보면 바위가 보이는데, 마치 황금닭이 하늘을 향해 우는 것 같아 보인다.

 

 

北海(북해)

 망망대해처럼 펼쳐지는 흰 구름바다가 펼쳐져 있는 곳. 

 황산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북해(北海)라고 부른다.

 北海賓館(북해빈관)에서 아침 일찍 떠나 淸凉臺(청량대)에 오르면 수평선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운곡사까지는 내리막길이다. 아래쪽으로 펼쳐지는 경치도 장관이다.

 

황산-북해.JPG

 

 

◈ 망망대해의 운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 옥병루(玉屛樓-1680m)

 천도봉에서 돌계단을 오르면 일선천(一線天)과 영객송(迎客松)을 지나 옥병루에 도달한다. 옥병루는 해발 1,680m에 있는 곳으로 원래는 문수원의 유적이다.

 옥병루를 중심으로 황산의 삼대 주봉인 광명정, 천도봉, 연화봉이 모두 이곳 옥병루풍경구에 있다. 이 옥병루풍경구는 황산의 중심 풍경중 하나로 광명정을 중심으로 나뉘는 앞산은 웅장하고, 뒷산은 수려하다.

 좌측에는 사석, 영각송이 있고 오른쪽에는 상석, 송각송, 뒷편에는 금귀망월, 앞에는 진해운해가 있다.

황산-옥병루.JPG

 이곳에는 볼 만한 명승이 많아 옛부터 "문수원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황산의 모습을 알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곳 옥병루에서부터 천도봉과 연화봉으로 오르는 길에서는 망망대해의 운해(雲海)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길이 가파르고 높아서 가장 조심을 해서 올라야 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영객송(迎客松)

 영객송은 옥병루(玉屛樓) 왼편에 있는 고송으로 기사석(奇獅石)의 깨진 파편에서 자라고 있다. 높이 10m에 둘레 0.64m로 수령이 적어도 800년 정도 되며, 한쪽 나뭇가지의 가장귀가 밖으로 뻗어나와 마치 사람이 팔을 벌려 손님을 환영하는 듯한 모습이 의젓하면서 자태가 아름다워 황산의 상징적 경관이기도 하다.

 북경 인민대회당의 안휘청 안에 이 황산 영객송의 거대한 철화가 걸려있는데, 당과 중국의 지도자들이 여러차례 이 그림 앞에서 외국 국빈들과 사진을 찍어 영객송은 황산의 상징이면서 한편으로는 중국의 손님을 환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황산-영객송.JPG

 

 

 

◈ 절경을 조망할 수 있는 천도봉(天都峰-1810m)

 황산의 동남부에 있으며 서쪽으로 연화봉을 마주하고 있다.

 1340m 위치에 있고, 찻집이 있어서 휴식하기 좋은 반산사에서 2.5km 정도 오르면 1810m 높이에 있는 천도봉의 입구에 도착한다. 여기서 다시 우측에 있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 '붕어의 등'이라 불리는 곳을 지나면 세개의 석굴을 지나고, 정상으로 오르는데 여기서의 조망이 절경이다.

 이곳의 전망이 황산 최고라고도 할 수 있으며, 옛사람들은 이곳을 신선이 모여 살던 곳이라 했다.

 봉정에는 천연석실이 있어서 십여명을 수용할 수 있고, 실외에는 거석이 있는데, 술취한 신선이 누워있는 것 같다 하여 "선인장동문"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붕어의 등'외에도 '선도석', '하늘의 계단' 등의 기암이 있다.

 

 

연화봉(連花峰-1860m)

 해발 1860m로, 황산의 최고봉이다. 주위에 여러 산들이 둘러싸여 있어서 마치 연꽃같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연화령(蓮花嶺)과 연화봉(蓮花峰)에 이어진 길은 1.5㎞ 길이의 뱀처럼 구불구불하며, 정상에 이르기까지 네 개의 동굴을 지나게 된다. 연화봉에는 비룡같은 소나무와 유명한 황산 두견화가 있다. 옥병루에서 보면 연꽃 같이 보인다고 해서 연화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일출이나 일몰을 보려면 청량대(淸凉臺)나 사자봉(獅子峰)으로 가는 것이 좋기 때문에 정상이라는 것 외에는 별매력이 없다.

황산-연화봉.JPG

 

 

◈ 일출이 가장 아름다운 곳 광명정(光明頂-1840m)

 황산에서 연화봉 다음으로 높은 곳이다. 황산 중부의 해발 1840m에 있으며 서쪽으로 돌이 하늘에서 떨어져 꽂힌 듯한 모양의 비래석(飛來石)이 보인다.

 황산의 두번째 고봉이기는 하나, 36개 봉우리에는 들지 못한다. 봉우리 정상은 평탄하고 높으며, 일조시간이 길고 양광이 찬란하다. 등정을 하고 나면 동해의 기이한 경관과 서해의 무리져 있는 봉우리, 천도, 연화, 옥병 등을 바라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볼 수 있으니, 서해의 연화봉 보다도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의 광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황산-광명정.JPG

 

 또 봉정에는 화동지구 해발 최고의 황산기상대가 설치되어 있다.

 

 

청량대(淸凉臺-1640m)

 1690m 높이의 사자봉 중턱에 있으며, 운해와 일출 모두가 아름다운 곳이다.

 통법대(通法臺), 법석대(法石臺)라고 불리기도 하고, 황산 사자봉의 허리부분에 위치해 있다. 청량대 한쪽에는 파석이 돌출해 있는데, 파석송(破石松)이라 불리는 바위다.

 그 밖에도 이곳에는 재미있는 이름의 바위가 있는데, '저팔계 수박을 먹다', '원숭이 바다를 보다' 등으로 이름만큼이나 바위의 모양도 기묘하다.

황산-청량대.JPG

 청량대 아래로는 봉운절색의 북해가 있고, 부근의 볼거리로 망선대, 사자관해 등이 있고, 바위에는 "청량세계", "천연도화" 등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사자석이라고도 불리는 사자관해는 황산의 유명한 바위로서 황산 북해사자봉 앞에 있는 평정산상에 있다.

 

 

사자봉(獅子峰-1690m)

 청량대(淸凉臺-1640m)에서 계속 위로 올라가면 사자봉(獅子峰)이다. 이곳은 일몰을 보기에 좋은 장소이다(일출, 일몰시간은 호텔의 프런트에 문의한다).

 이곳에는 마치 원숭이가 먼 곳을 바라보는 것 같은 기묘한 모양의 바위인 후자관해(狐子觀海)를 볼 수 있다.

 

 

◈ 황산 24협곡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서해대협곡(西海大峽谷)

 등소평이 1979년 76세의 나이로 황산에 올라 절경에 탄복을 하며 "남여노소을 막론하고 누구든 황산을 구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라"는 말 한마디에 중국인들은 묵묵하게 21여년간 14만여개에 계단을 쪼아내고 잔도를 걸고 수 없는 인명손실을 감내하며 마침내 2001년 완공을 하였다.

 

 태고의 비경을 간직한 깊은 협곡은 황산 안내지도에 조차 등산로가 표시돼 있지 않은 처녀지이다. 서해 대협곡의 봉오리들은 아직 이름을 가지지 못했다. 사람들이 접하지 않아서 이름을 얻지못했던 거다. 그만큼 깊고 깊은 심산유곡이라는 징표이다. 이때문에 황산을 보고 왔어도 서해대협곡을 돌아보지 않고는 황산을 다녀왔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서해대협곡의 잔도는 3.3km이다.

 서해대협곡은 마환경구(魔幻景區)라고도 한다. "도취되여 마치 천국에 와 있는 것 같고, 꿈인지 생시인지 마환세계에 온것 같다. '황산지'에는 황산은 자고로부터 남쪽은 웅장하고 북쪽은 수려하며 동쪽은 기이하고 서쪽은 환상적이다"라고 했다.

 

 서해대협곡은 황산 태평케이블카 아래의 서해군봉 사이에 있다. 황산풍경구 중에서 제일 수려하고 제일 깊은 골짜기이다. 대협곡개발공정은 인간과 자연을 완미하게 결합시켜 만든 위대한 공정이다.

 

 경구 면적은 25㎢이며 등산코스인데, 등산로는 아슬아슬하게 가파른 절벽옆으로 길을 빼여 만들었다. 도끼로 깍아 내린듯한 절벽과 절벽틈 사이에서 자라나는 소나무가 가관이다. 헤아릴 수 없는 기이한 돌들도 많다.

황산-서해대협곡-01.JPG

 

황산-서해대협곡-02.JPG

 

황산-서해대협곡-03.JPG

 

 배운정에서서 보면 신선이 벗어놓은 버선도 찾아 볼 수 있고 선녀가 수를 놓고 있는 모습, 하늘개가 달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 무송이 범을 때려 잡고 있는 것 같은 괴석들도 찾아 볼 수 있다. 경구에는 쌍순봉, 구룡봉, 석상봉, 석주봉, 가위봉, 패방봉, 송림봉등 봉우리가 있다.

 

 서해대협곡에 길을 만들었기에 서해-백운-천해-광명정-서해를 이어놓았고 더 많은 관광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놓았다.

 

 2018년 7월 모노레일이 완공되면서 일반인들도 즐길 수 있게 됐다. 서해대협곡을 종주하려면 5시간 정도 걸리는데 모노레일을 사용하면 1시간 30분 정도면 가능하다.

 

 

황산송(黃山松)

 황산의 소나무는 황산의 독특한 지형과 기후로 인해 생긴 소나무의 변형이다. 사람들은 "황산에 돌이 없으면 소나무가 아니고, 소나무가 없으면 기이하지 않다(無石不松, 無松不奇)."라고 말한다. 황산의 소나무는 일반적으로 해발 800m 이상의 곳에서 자란다. 가장 유명한 황산의 소나무는 영객송(迎客松), 송객송(送客松), 포단송(浦團松), 봉황송(鳳凰松), 흑호송(黑虎松) 등으로, 이것은 황산의 십대 명송(名松)에 속한다.

 황산의 소나무는 비록 자태가 강인하고 꿋꿋하지만, 생존을 위해 자연과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속에서 황산 소나무는 강인하게 암석 위에서 비바람을 견디며 자라고 있다. 황산 도처에서 화강암을 볼 수 있다. 소나무씨는 바람에 실려 화강암 틈에 들어가 싹트고 뿌리를 내려 자라기 시작한다. 이런 끈질긴 생명력 또한 기이하다. 황산의 소나무들은 생장 환경이 힘들고 어려운 것만큼 성장 속도가 매우 느리다. 뿌리는 나무줄기보다 몇배~수십배 더 길다. 3m에도 이르지 못하는 소나무도 몇 백년, 심지어 수 백년 자란 것들이다. 그 중 유명한 영객송(迎客松)은 연륜이 800여년이나 된다.

 

 

운해(雲海: 구름바다)

 "황산은 자고로 구름이 바다를 이룬다"는 말이 있다.

 구름바다는 "인간 선경"을 디자인하는 신기한 "디자이너"이다.

 운해(雲海)는 황산의 손꼽히는 경관 중 하나로 예로부터 '황해(黃海)'라고 불리기도 한다.

 운해(雲海)란 일정한 기상 조건에서 형성되는 구름층으로 구름 꼭대기의 고도가 산 꼭대기의 고도보다 낮고 사람들이 산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면 끝없이 펼쳐진 구름만이 보인다. 이 모습은 바닷가에서 물결이 솟아 오르고 물보라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성난 파도가 해안을 때리는 장관을 보는 듯하다.

 황산은 매년 평균 255.9일 안개에 덮여 있는데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는 황산의 운해(雲海)를 감상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특히 비나 눈이 내린 뒤의 일출이나 일몰 때의 운해(雲海)는 제일 가관이라 할 수 있다. 

 

 

괴석(怪石: 괴상한 돌)

 황산 곳곳에는 괴상하게 생긴 돌들로 가득하다. 관세음을 배알하는 동자, 날아온 돌(飛來石), 바다를 바라보는 원숭이, 수박 먹는 저팔계 등등으로 이름이 지어진 돌만 1200여개나 된다고 한다.

 그 생김새로 인해 많은 이름들로 불리워지고 있으며  황산의 대표적인 볼거리 중 하나이다.

 

비래석(飛來石)

 광명정(光明頂)에서 서쪽으로 혹은, 배운정(排雲亭)에서 남쪽으로 가면 "비래석(飛來石)"이 있다. 높이 12m, 600톤 무게의 거석으로돌 밑바닥과 산 봉우리가 확 트여 서로 갈라져 있어 마치 거석이 하늘을 나는 듯한 형태라 비래석이라 이름 붙여졌다 한다. 중국의 유명한 고전소설인 <홍루몽(紅樓夢)>의 영화에 나오기도 한다.

황산-비래석.JPG

 

 

 

몽필생화(夢筆生花)

 황산의 동북부에 위치하는 몽필생화(夢筆生花)는 북해빈관(北海賓館) 앞의 산화오(散花塢)내에 자리잡고 있으며, 필가봉(筆架峰)과 가까이 있다.

 뾰족하게 솟은 석봉 가운데 구불구불 굽은 한 그루의 기묘한 형태의 고송이 나무그늘을 길게 드리우고 자라고 있으며, 봉우리 아래에는 누워서 잠자고 있는 사람의 모습 같은 기이한 돌이 있어, 관광객들이 이 봉우리를 가리켜 몽필생화(夢必生花)라 이름 붙이면서 황산의 유명한 풍경이 되었다.

 안타깝게 70년대 초에 소나무는 고사(枯死)했고, 현재 봉우리 가운데에 서 있는 소나무는 다시 심은 소나무이다.

 

 

 

운곡산(雲谷山-890m)

 운곡산은 높이가 890m이며, 나한봉(羅漢峰)과 향호봉(香爐峰) 사이에 위치한다. 북해에서 온천로에 가는 중간 지점에 있으며, 케이블카를 타고 북해로 향하는 시작지점이기도 하다. 운곡산을 따라 왼쪽으로 돌아가면 죽림을 지나면 4㎞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구룡폭포가 보인다.

 

 

◈ 이름만 남아있는 사찰, 운곡사(雲谷寺 : 윈구스)

 남송 1226년에 창건된 명사찰이다. 황산동부의 북해빈관에서 7.5km, 890m 높이에 위치해 있다.

 사원 주변에 봉우리가 무리져 있고, 맑은 대나무가 바다처럼 펼쳐져 있으며 푸르른 소나무가 울창하여 그림과 같은 풍경을 두고 있는데, 정작 이 절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오래 전에 이곳에 호텔이 지어졌고, 1984년에 운곡산장과 등산객 케이블카가 설치되었다.

 이곳 운곡사가 있는 곳은 황산의 6개 풍경유람구 중의 하나로서 황산 동쪽의 필히 거쳐가야하는 길목이기도 하다.

 

 

비취계곡(翡翠谷)

 황산(黃山)은 1,000m을 기점으로 위로는 소나무, 아래로는 대나무가 자라고 있다. 비취색의 물빛을 띤 비취계곡과 대나무 숲은 영화 '와호장룡(卧虎藏龙)'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비취계곡은 황산의 동쪽에 위치하는 풍경구로 "정인곡(情人谷)"이라 불리기도한다. 연단봉(煉丹峰)과 시신봉(始信峰)이 계곡의 발원지이며 계곡의 길이는 6,000m 정도이다. 계곡에는 크고 작은 채지(彩池: 색채가 아름다운 연못)가 수백개 있는데 그중 40여개는 면적이 100㎡를 초과하고, 가장 큰 채지의 면적은 1000㎡에 달한다.

 비취계곡 채지군은 크기도 모두 다르지만 모양 역시 매우 다양하다.

 이 아름다운 채지들의 맑고 투명함, 옥빛과 같은 우아한 푸르름 그리고 연못 아래에 깔려있는 암석들의 오색 빛깔이 화려하게 빛나면서 연못의 깊고 얕음의 차이에 따라 색채 역시 변화하는 모습은 매우 환상적인 광경이다.

 유명한 채지로는 용봉지(龍鳳池)와 화경지(花鏡池), 녹주지(綠珠池), 옥환지(玉環池) ,천지(天池 )등이 있으며, 그 중 화경지(花鏡池)는 영화 <와호장룡(卧虎藏龙)>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울울창창한 수풀림과 부드럽게 흔들리는 대나무 가지는 청량한 기분을 저절로 느끼게 한다.

 

 비취계고을 시로 표현한 왕유(王維, 당나라, 699?~759)의 시를 감상해 보자.

 明月松間照(명월송간조)   밝은 달이 소나무 사이로 비추고

 淸泉石上流(청천석상류)   맑은 물이 돌 위로 흘러간다.

 

 

명,청대의 전통적 민가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마을 굉촌(宏村)

 황산시내에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이현(黟县)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송대 소희년간(1131년)에 지어져 약 8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황산 풍경구에 속해 있으면서 황산의 맥양잔령과 뇌강산을 기대고 있으며 비교적 높은 지세로 구름이 피어오르고 놀이 비끼는 모습이 마치, 수묵화의 발묵중채를 보는 듯하다. 마을의 건물들은 모두가 명,청대 지어진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기에 자연경관과 인문경관의 뛰어난 조화로 "중국화에 그려진 마을"이라는 예찬을 듣는 곳이다.

황산-굉촌.JPG

 특히, 마을 전체가 소의 형태를 한 독특한 구조로 배치되어 있어 세계 역사문화유산의 기적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동쪽부터 서쪽까지 들쑥날쑥 세워진 집들이 소의 몸과 같다면, 마을의 서북쪽에서 시작하여 집 사이 구불구불 감싸며 흐르는 용수로는 마을의 중간에 천연 샘을 모이게 하여 달모양의 제방을 이루고 이것은 소의 위장으로 여긴다. 용수로는 마지막으로 마을 남쪽의 호수로 유입되며 이는 소의 복부를 나타내고, 용수로의 걸쳐진 네개의 교량은 소의 다리를 의미한다. 이러한 구조의 과학적인 촌락 수계 디자인은 마을의 소방용수를 해결해 줄 뿐아니라 온도를 조절해 주고 농업 생산활동과 생활용수 공급을 편리하게 함으로써 생활에 있어 가장 적합하고 좋은 환경을 조성한다.

 굉촌은 원래 월나라의 후손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송대부터 지어진 흰벽의 청기와 집들이 백채 남아 비늘같이 늘어서 있다. 촌락에는 흩뿌린 금박의 장식이 섬세하면서도 정교하여 "민간고궁(民間故宮)"이라 불리는 승지당(承志堂)과 경수당(敬修堂) 그리고 웅대한 기새를 느낄 수 있는 동현당(東賢堂)과 삼립당(三立堂) 등이 있으며 푸른물결이 찰랑이는 남호와 뇌강산에 있는 하늘을 찌를 듯한 고목들과 오래된 민가들, 담장의 푸른 등나무 등이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굉촌의 모습은 도화원 속의 기이한 우(牛, 소)형 촌락, 산림 속 전원의 향취, 수향(水鄕)의 풍모로 많은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다.

 

 

흡현(翕縣)

 황산 남쪽에 위치하는 흡현이다. 흡현은 5,000년 전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한 곳으로 유명하며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한 후 이곳에 행정구역을 세웠다. 흡현의 독특한 휘주문화는 중국의 역사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서장문화, 서양문화와 함께 중국 3개지역의 대표가 되는 문화로 발돋움했다. 황산과 항주 사이의 흡현의 문화유적은 600여 곳 이상이며 그중 당월패방군(棠越牌坊群)과 허국석방(许国石坊)은 중점적으로 보호해야 할 문화재이다.

 

 그 외에 택백루(太白樓), 장경사탑(長慶寺塔), 신안비원(新安碑園) 등이 있다.

 

 

포씨(鮑氏)가족이 모여 살던 곳 당월패방군(棠越牌坊群)

 당월 패방군은 포씨 가족이 모여 살던 곳으로 유명하며 남송 때부터 여기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약 800년의 역사가 되며 마을어귀에는 포씨(鮑氏)가문의 영예를 보여주는 7개의 의패방, 사당, 민가가 있다.

 패방은 남에게 모범이 되거나 공로룰 세운 사람을 기념하는 기념물이며 황제에게 허락을 받아야지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명나라 것이 세개, 청나라 것이 네개 있어 합해서 일곱개이다. 충, 효, 절, 의, 절, 효, 충의 순서로 곧고 견고하게 세워져 있다.

 

 

허국석방(許國石坊)

 허국석방(许国石坊)은 흡현시내에 위치하며 중국내에서 보기힘든 전형적인 명대 석방형식의 건물이다.

 1584년도에 처음 지어졌으며 8개의 기둥이 口자의 형태로 되어있다. 그래서 "八脚牌楼(팔각패루)"라고 명명 되기도 한다.

 남북으로 길이 11.54m, 동서로 넓이 6.77m, 높이 11.4m, 면적은 78.13㎡이다.

 

 

신안비원(新安碑園)

 신안비원(新安碑園)은 안훼이성 흡현에 위치하고, 세 개의 부분으로 돼 있는 건축물이다.

 첫 번째는 200여m 길이의 "비랑(碑廊)- 비석을 전시해 둔 복도"으로서 이 복도는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있어 여행객에게 깊숙하고 그윽한 느낌이 들게 한다. 비랑의 길게 뻗어 있는 모습에 고대의 모습을 간직한 기둥의 난간도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두번째는 "피운소축(披云小筑)- 구름을 가르는 작은 건물"로서 3칸으로 나뉜 명청시대의 단층집을 연상케 하는 건물이다. 방 내부에는 거실이 있고, 방 뒤쪽에는 정원이 있다. 내부의 문과 창문은 벽돌로 여러 가지 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후이저우의 고대 건축의 독특한 양식을 보여준다.

 세번째는 "량청당(两清堂)"으로서 두군데에 유명한 비첩이 간직되어 있는데 하나는 <여청재첩-余清斋帖>, 다른 하나는 <청감당첩-请鉴堂帖>이다. 이 두개의 비첩이 있어서 이곳이 량청당이라고 이름 붙어진 이유이다. 그 외에 가산(假山), 수지(水池), 정사(亭榭) 등도 흡현의 명승고지이다.

 

 

화산미굴(花山謎窟)

 화산미굴은 인공석굴로서 지금까지 발견된 석굴만 36개이며 규모가 엄청나다. 인공 석굴이라면 사람이 만들었다는 말인데 이 인공석굴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원래의 이름은 화산석굴이었으나 아직 밝혀지지 않은 동굴도 있어 화산미굴이라고 이름을 바꿨다.

 

 

제운산(齊雲山)

 황산시 즉 屯溪(둔계)에서 33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기봉이 연이어진 道敎(도교)의 산, 강서성의 龍虎山(용호산) 호북성의 武富山(무부산), 사천성의 雀嗚山(작오산)과 더불어 중국 4대 도교 聖山(성산)으로 꼽힌다. 도교의 산답게 一天門(일천문), 二天門(이천문), 三天門(삼천문)을 지나 太書宮(태서궁) 유적지 앞 長生樓(장생루)가 있는 곳까지 오르면 香爐峰(향로봉) 너머로 절경이 전개된다.

황산-齊雲山-香爐峰.jpg

 758~760년 당 때에 도사 배서하가 숨어 산 것을 시작으로 송대에는 당우(堂宇)가 건설되었다. 그 뒤로 각지의 사람들이 이 산에 참배하러 왔고, 지금도 참배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당대에 석문사가 건설된 후부터 지금까지 이 산에 있는 도교건축물이 108곳에 이른다.

 명대 건축물인 천궁부를 비롯한 여러 전당과 정자, 향로봉이나 낙타봉의 기이한 전경 등의 불거리들이 많이 있으며 도교식의 다도도 체험할 수 있다.

 황산과 구화산에 가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도교산이라는 특색과 나름의 특유한 경관과 아름다움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있다.

 

 

구화산(九華山)

 구화산은 청양현(靑陽縣)경내에 위치하고 황산과 마주하고 있다. 구화산은 절강의 보타산, 산서의 오대산, 사천의 아미산과 함께 중국 불교의 사대명산으로 불린다. 사방 120여km의 산간에는 맑은 샘이 쉼 없이 솟아나고 깊고 고요한 죽림이 94개의 절과 어우러져 있다. 음력 7월 15일과 7월 30일이면 구화묘회(九華廟會)가 어김없이 열린다. 각 절에는 많은 불교 문물들이 수장되어 있다. 산내에는 74개의 불각이 있으며, 산 전체를 합하면 6,400체의 불상이 있다.

 절의 건립은 당대에 시작해서 전성기에는 300채 남짓의 절이 있었다고 전하지만, 현재는 82개의 사찰, 6천여 개의 불상, 3백여 명의 비구와 비구니들이 있다.

 

 

 

특기사항

황산차(黃山茶)

 안개가 짙은 황산에서는 잎이 두꺼운 毛峰茶(모봉차)가 생산되는데 이것을 雲霧葉(운무엽)이라고 한다. 차농장은 운곡사와 羊山寺(양산사) 주변에 많이 있다. 들꽃이 막 다투어 피기 시작할 무렵이 차잎을 따는 최적기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차잎에 꽃향기가 배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지에서 황산의 향긋한 샘물에 끊인 차를 마셔보는 것도 좋다.

 

케이블카

 미니버스가 황산 입구에서 케이블카 승차장으로 데려다준다. 여기서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동로 케이블카는 황산의 雲谷寺(해발 890m)에서 북해 동단의 백아령(白鵝嶺) 사이를 운행하고, 그 운행길이는 2,803m이다.

 

 

◈ 부드러운 은빛털이 빛나는 황산모봉차(黃山毛峰茶)

유래

① 명나라 천개년(天啓年)에 강남다현 신임현관웅개원이 책을 가지고 황산에 봄놀이를 나갔다가 길을  잃었는데 우연히 그곳에서 한 늙은 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웅개원은 그편에 절에서 하루를 지내게 되었는데 그 스님은 그에게 차를 대접하였다. 웅개원이 자세히 보니 이 차잎의 색이 다른 차잎과는 다른 엷은 색이었고 형상은 작설같고, 몸은 흰털로 덮혀있으며 끓는 물을 넣자열기가 사발을 감싸고 한바퀴 도는 것이 었다.

 그가 다시 사발중심을 돌아보니 바로 차잎이 직선으로 위로 떠오르기를 약 한 척 높이인 것이었다.

 그런 후에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며, 한 송이의 백련화 같이 변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 백련화는 또 천천히 상승하여 한 무리의 운무로 변하였고, 최후엔 흩어져 아지랑이처럼 열기가 피어올라 그 향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웅개원은 그 차의 이름이 황산모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② 황산은 중국 동부(안휘성남부)에 위치한 제일 높은 산봉우리로써 이름 있는 유람지구이며 전통차  생산지이기도 하다. 차 이름은 산 이름을 따서 지었다.

 황산모봉차는 청나라 광서(光緖)년간에 사유진(謝裕秦) 찻집에서 만들어낸 차 제품이다. 1875년 전후로 이 찻집에서는 청명이 되면 황산탕구(黃山湯口), 충천(充川) 등지의 고산 차순을 사들이고 정성껏 덖어 쬐어 말린 후 완성품을 동북, 화북일대로운송 판매하여 큰 호평을 받았다.

 1986년에는 중국외교부에 의해 외교행사 선물 차의 칭호를 받았다. 중국에서도 북방지역에 전래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닌 지금부터 60∼70년전 이라고 한다. 그렇게 전래된  황산모봉차가 그곳 사람들의 극찬을 받으면서 오늘날 중국의 십대 명차의 하나가 되었다.

 

산지

 황산모봉 생산지는 중국 안휘성 황산풍경구 구아산일대에 위치해 있다. 안휘성(安徽省) 황산(黃山)의 해발 900∼1,000m 사이에 황산모봉차의 다원(茶園)이 자리잡고 있는데, 연 평균 온도는 14∼17℃이고 강우량은 2,000mm 이상이다.

 이 지역은 아열대 계절풍기후에 속하고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으며 일년에 비가 오고 안개가 있는 날씨가 많으며 평균기온이 비교적 낮고 기온차가 작다. 토양은 유기질 및 인, 칼륨이 풍부한 적황색 토양, 황색 토양, 짙은 황갈색 토양, 산성 갈색 토양이 위주이다.

 차나무 종류에는 주요하게 황산 대엽종(大葉種)이 있는데 중국에서 중점적으로 선전하는 품질이 우수한 차나무이다. 그 외 기문저엽종(祁門葉種) 등 군체가 있다.

- 황산: 우리나라의 설악산과 유사하다.

- 안휘성: 차의 재배지로 가장 이상적이다.

 

특징

① 외형 : 작고 흰 은빛털이 온몸에 감고 있어, 마치 여우털이나 밍크를 온몸에 감고 있는 귀부인을 연상시킨다.

② 황산모봉차는 향기가 매우 높고 맛이 신선하고 부드러우며(강한차에 속한다)

③ 형태는 참새의 혓바닥과같고  잎이 도톰하며 크기가 일정하고 작고 어린 잎이 많은 백호를 가지고 있다.

④ 찻잎의 빛깔은 황록색이고 우려낸 탕색은 맑고 투명하다.

⑤ 어린 황산모봉차의 찻잎을 차호에 넣고 더운 물을 부으면 차호 안에서 찻잎이 물위에 둥둥 뜨다가, 계속해서 물을 부으면 천천히 차호에서 가라앉는다. 차를 우려낸 잎도 선명한 황록색을 띠고 있는데, 우려낸 찻잎 또한 아름답다.

o 강한차이면서 맛이 부드럽고 순하다 - 유념이 약하고 고온처리를 안하니 성분이 살아 있으니 차의 기운이 강하다는  뜻이다.

⑥ 차잎에 상처가 적어 금방 차가 우러나지 않는다.(열처리가 약해 차를 많이  넣어도 맛이 진하지 않고 연하고 순하다)

⑦ 차를 우려낸 다음의 찻잎도 엷은 황색에 도툼한데 마치 꽃봉오리 형상을 나타낸다.

 

제다

① 청명에서 입하시기에 잎을 따서 만들어지는데 입하 이후에 따서 만든 것은 모봉차로 분류하지 않는다.

② 모봉차를 만드는 방법은 청차와 녹차를 만드는 방법과 거의 같다.

③ 먼저 푸른 빛을 죽이는 살청을 하고 찻잎을 비빈다.(홍청녹차)

- 살청: 유념을 아주 약하게 한다.

④ 여기서 특급과 일급의 모봉차는 이 비비는 과정을 하지 않는다. 이 과정이 지나 다음 차를 건조시키면 모봉차가 된다.

④ 황산모봉은 수제차로 산지에서 수백가지가 있다.

 

 

 

스타투어(Star Tour)

☎:(02)723-6360

http://www.startour.pe.kr

블로그 : 스타투어

E-mail: startour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