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華山-2,154.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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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華山-2154.9m)은 에전에는 태화산(太華山)이라 불렀다.

 화산은 중국 오악(五岳) 중 서악(西岳)이다.

 서안 동쪽으로 약 120 km, 서안(西安)과 정주(鄭州)의 중간인 '화양시(华阴市)'에 위치하고 있는데, 고속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서안에서 1시간 3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높이 2,154.9m의 험준한 바위산으로 조양봉(朝陽峰, 동봉, 2,096.2m), 낙안봉(落雁峰, 남봉, 2154.6m), 연화봉(蓮花峰, 서봉, 2,082.6m), 운대봉(雲臺峰, 북봉, 1,614m), 옥녀봉(玉女峰)의 다섯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으며, 험준한 산길과 가파른 계단길, 철난간이 걸려 있는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곳을 지나 산정에 이르면 위하평원(渭河平原)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화산이란 이름은 산봉우리의 자연배열이 꽃 모양 같아서 얻어진 것이다. 화산은 북으로 황하, 남으로 진령(秦嶺)에 의지해 화산여립(華山如立)이라 불린다. 전반산체의 능선이 매끈하고 깍아지는 듯한 모습에 기이한 산봉우리들이 두드러져 웅장하고 장관이다. 그래서 화산은 기이하고 험준한 천하제일산(奇險天下第一山)으로 불리운다. 

 화산의 기이함은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옹근 화강암으로 구성된 데 있다. <산해경(山海經)>에 <태화산은 사방에 솟고 그 높이 5,000길에 이르며 10리에 뻗어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 오악(岳) :

 東岳(동악)인 산동성의 泰山(태산)

 西岳(서악)인 섬서성의 華山(화산)

 中岳(중악)인 하남성의 崇山(숭산)

 南岳(남악)인 호남성의 衡山(형산)

 北岳(북악)인 산서성의 山(항산)

 

 화산은 5개의 주봉(主峰)이 있다. 그 중 중동, 서, 남 세 봉우리가 제일 높다. 남쪽봉우리 <낙안(落雁)>은 태화산의 정상으로 해발 2154.6m이다. <낙안>과 서쪽봉우리 <련화(蓮花)>, 동쪽봉우리<조양(朝陽)>이 세면에 우뚝 솟아 기세 흰 구름위에 솟고 , 그 그림자 황하 물에 비껴 천외삼봉(天外三峰)으로 불린다. 운대봉(雲臺峰), 옥녀봉(玉女峰)이 그 곁에, 그리고 36개의 작은 봉우리가 그 앞에 솟아 천만가지 기상을 자랑한다. 

 화산은 험준하다. 그 능선이 창공에 난 오솔길 같고 세면이 하늘에 닿을 듯 우뚝하고 절벽에 난 천척동(千尺洞), 백척협(百尺峽), 노군리(老君犁)골짜기, 하늘다리(上天梯), 창룡령(蒼龍嶺) 모두가 더없이 험준한 모습들이다. 자고로 화산은 외길이라고 했다. 과연 산중에는 남북으로 난 한 갈래 길밖에 없다. 10km되는 이 길은 암석을 따라 꼬불꼬불 나있고 험난하다. 가끔가다 한사람이 막아 서면 사람이 지날 수 없는 비좁고 가파른 길목들이 나타난다.

 

 화산은 중화민족문화 발상지의 하나이다. 청나라 유명 학자 장태염(章太炎)선생의 고증에 따르면 <中華>, <華夏>라는 이름은 화산으로부터 얻어진 것이라 한다. <상서(尙書)>, <사기(史記)>에도 화산에 관한 기재가 있다.

 화산은 도교의 성지로 제4동천(第四洞天)이다. 옛날 주(周)나라 말기부터 도교신자들이 찾아들어 운대관(雲臺觀)에 도장(道場)을 설치했고 금나라, 원나라 때에 이르러 도교 전진파(全眞派)의 발상지 도장(道場)으로 되었다. 화산에는 동굴 72개, 도관(道觀) 20여개가 있다. 그 중 옥천원(玉泉院), 동도원(東道院), 진악궁(鎭岳宮)은 중국의 중점보호 도교장소로 되고 있다. 진한(秦漢) 이후 도교와 화산의 신화전설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남아 내려오는 것이 200여 편인데 그중 <거령경산(巨靈擎山)>(거대한 산신령이 산을 떠받들다), <벽산구모(劈山救母)>(산을 갈라 어머니를 구하다), <취소인봉(吹簫引鳳)>(퉁소불어 봉황 불러오다)이 유명하다. 이런 신화·전설들은 화산의 품위를 한결 더해주고 있다.

 화산은 동봉, 서봉, 남봉, 북봉, 중봉으로 모두 5개의 봉(峰)이 하늘을 향하여 피어있는 연꽃과 비슷한 형세를 하고 있으며 우아한 자태로 황하를 응시하고 있다. 동봉과 서봉이 서로 마주보고 있고, 그 가운데 중봉과 화산의 최고봉인 남봉이 솟아 있다. 이른 아침과 저녁 무렵에는 신이 입김을 불어 봉우리를 감싸는 것처럼 안개 구름이 주변에 깔리며, 다섯 봉우리는 모두 여행객에게 개방되어 있다.

 산 틈새와 봉우리마다 연꽃동굴, 폭포동굴, 청용봉, 비어봉, 사자봉, 흑호봉등 이름들이 붙어져 있다. 그리고 아홉 개의 벼랑(부위애, 찰이애, 충소애, 사신애...)과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여덟 개의 조망대(삼황대, 취선대, 자기대...)가 주위의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아름다운 산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산 가운데는 실계천이 산의 동맥처럼 바위를 안고 흐르는데, 여러 줄기의 실계천이 골짜기에서 약 10km 떨어진 곳에 있는 청가평 폭포로 모인다.

 

 화산을 오르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1996년에 준공된 총 1550m의 케이블카를 타고 바로 북봉까지 오르는 방법과 또 하나는 등산로의 계단을 따라 직접 올라가는 방법이다. 최근에 만들어진 서봉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방법이 있다.

 

 기후는 주로 온화하고 아열대 기후의 경계 상에 위치하고 있어 평균 6℃, 최고기온 27℃, 최저기온 -27℃ 정도이며, 등산하기에 적합한 계절은 4월-10월이다.

 

 일단 북봉까지만 올라가면 다른 봉우리로 편하게 갈 수 있다.

 북봉은 구름이 봉우리 주변을 감싸고 돌기 때문에 일명 운대봉(云台峰)이라고도 한다.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길이 좁게 나있으며 남쪽에는 찰이애 절벽을 바라 볼 수 있다.

 

 해발 1,614m 높이인 북봉에 직접 걸어서 오르려면 6km까지는 아주 험난하며, 그 다음에는 약 3,000개로 이루어진 계단을 오르면 된다. 계단은 매우 가파롭지만 바위를 일일이 정으로 쪼아 계단을 만들었기 때문에 워킹으로 등반이 가능하며, 난간은 보호 쇠사슬로 묶여있어 위험하지는 않다. 서봉 앞에는 상천제, 일월애, 거대한 용의 모습을 한 창룡령 등이 있다. 창룡령을 지나면 선장암(仙掌巖)에 닿을 수 있는데, 황백색의 화강암 석을 발견할 수 있으며 거대한 손바닥 같이 생겼다 하여 화악선장(華岳仙掌)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관문중 가장 유명한 경관이다.

 

 500계단을 오른 후에는 조망대가 하나가 있는데, 태양이 비치는 날에 이곳에는 밝은 빛과 암석에 가리워지는 그늘이 보기 좋은 대조를 이룬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나무가 무성한 숲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물결이 잔잔한 시내를 건너기도 한다. 약 1,000개 계단을 오른 쯤에는 여러 동굴이 이어지고, 계곡에는 폭포가 떨어진다.

 

 약 1,500개의 계단을 오르면 거북등 같이 생긴 암석인 구배석이 기다리고 있다. 트로피처럼 빛이 나는 케이블카 정류장이 보이는 곳이 바로 구암석이며, 이곳 위로는 케이블카도 더 이상 사람들을 산으로 데리고 가지 못한다.

 

유교와 도교의 신도들이 이곳으로 찾아 들어와 명상을 했다는 기록은 이곳에 와본 사람이면 그저 자연스럽기만 하다. 산은 경이롭고 엄숙하기 때문이다. 저녁놀 속에 빠지는 일몰을 본다면 어려운 등산길도 충분한 보상이 될 것이다.

 

 동봉(東峰)은 화산에서 제1봉우리 중 하나이며 산정의 전망대에서 일출(日出)과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옛날에는 해를 맞이하는 봉우리라는 뜻의 조양봉(朝陽峰)이라 불리웠다.

 

 남봉(南峰)은 화산의 주봉으로 2,160m에 달하며 낙안봉이 근접한 곳에 있다. 뭉게구름이 사람들의 발밑에 융단처럼 깔아준다. 별다른 등산로나 편의 시설이 없다.

 

 서봉(西峰) 역시 절경을 자랑하는 봉우리 중 하나로 산정에는 취운궁(翠云宮)이있으며 그 앞으로 거대한 돌이 세워져 있는데 그 생김새가 마치 연꽃과 같다하여 연화봉(蓮花峰)이라고도 불려진다.

 

 사원 옆에는 깊게 금이간 부벽석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션샹이라는 한 청년이 산에서 떨어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서 큰 도끼를 사용해서 암석을 깨뜨렸다고 한다. 그때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서 바위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천척장의 가파로운 돌계단은 한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공간에 370개의 돌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옆에 있는 쇠사슬을 잡지 않고서는 등반할 수 없다. 천척장을 몇 백자 지나면 <노군리구>에 도착하는데, 가파로운 석벽 사이로 난 한 갈래로 좁은 길은 모두 570여개의 돌계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제일 끝은 <호손수(猢猻愁)>이며, 이 이름의 의미는 '산이 험악하고 가파로워 원숭이 마저 다니기 골치 아파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옥천원(玉泉院)은 화산 북쪽 기슭에 위치한 입구로, 화산의 산문(山門)에 속하며, 등산객들은 이곳을 통해 화산으로 진입하게 된다.

 

 오리관(五里關)은 화산에서 제일가는 험준한 관문으로 산의 입구에서 약 2km에 달하는데 서쪽으로는 절벽과 접해있고 동쪽으로는 깊은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섬뜩함을 느낄 정도로 그 지세가 험하다.

 

 

옥천원(玉泉院)

 화산 북쪽 계곡입구에 위치해 있는 화산의 문이다. 여행객들은 반드시 이길을 지나야만 한다.

 

오리관(五里關)

 화산의 제일 관문으로 화산계곡에서 2km를 가면 요새가 매우 험난해 돌을 이용해 담을 쌓아 놓았는데, 서쪽으로는 절벽과 동쪽으로는 깊은 계곡에 접해 있다.

 

청가평(靑柯坪)

 등산하는 사람들 모두 잠시 휴식을 취하는 기점이다.

 

회심석(回心石)

 회심석앞에는 만장(万丈) 높이의 절벽이 구름을 뚫고 서 있는데 여행객들은 이곳에 이르러, 오르자니 너무 위험해 보이고 내려가자니 아쉬움이 남아 망설이는 곳으로 옛부터 그이름을 "회심석(回心石)"이라 하였다.

 

천척동(千尺崠)

 화산의 제일 난코스로 구멍뚫린 섬돌이 370여개나 있다. 여행객들은 철로 만들어진 로프를 잡고 계단을 올라야만 한다. 하늘의 끝을 바라보며, 발아래로의 깊은 계곡들을 내려다볼 수 있다. 돌계단의 정상은 마치 우물모양처럼 되어 있어, 그 모양이 마치 화산의 요새같아 사람들은 "태화의 요충지"라고도 부른다.

 

백척협(百尺峽)

 협곡속에 큰 거석이 있는데 모양이 마치 물고기 등과 같아,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이루고 있어, 철 로프를 잡고 등반해야만 한다.

 

북봉(北峰)

 운태봉이라고 부르며, 삼면이 절벽으로 한쪽 산맥은 남쪽으로 통하는데 매우 험요하다. 봉우리 정상에는 호손수(猢猻愁)와 군선관(群仙觀)등이 있다.

 

창용령(蒼龍岭)

 북쪽봉우리는 모든 봉우리들과 길이 통하는데 그 모양이 창용(蒼龍)과 비슷하고, 길이는 약 1,500m, 넓이가 1m 정도인 246개의 계단이 있다. 산등성이의 경사는 약 40° 정도인데, 그곳에 오르면 아찔하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당대문학가 한유가 화산 창룡령에 오를 때, 높이 솟은 산과 양측의 유심한 계곡을 보는데 안개가 일고 구름이 가득찼다. 이를 본 한유는 너무 놀라 떨며 양퇴진난에 빠져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마음을 진정시킨 한유는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절명서(絶命書: 목숨을 끊기 전에 남기는 유서)와 구원의 편지를 써 산아래로 던졌다. 산아래의 사람이 이를 발견하고 그를 구했다고 한다. 지금 이곳에 '한유가 투서한 곳(韓退之投書處)'이라는 여섯글자가 석벽에 세겨져 있다.

 

선장애(仙掌崖)

 창룡령을 지나 오운봉 남쪽을 경유해 동쪽 봉우리를 바라보면 황백색 사이에 화강암이 보이는데 그 모양이 마치 손바닥 같아 '화악선장(華岳仙掌)'이라고 불리우는데 유명한 화산 팔경중 하나이다. 고대의 황하로 나가는 수로에 홍수가 나 만민들 구하기 위해 신선이 손을 밀 때 찍힌 수인이라고 한다. 손바닥의 반륜(半輪)이 달과 같아 석월이라고도 불리운다.

 

중봉(中峰)

 옥녀봉이라고 하는데 동서남 삼봉이 모두 통하는 요충지 이다. 춘추시대 소사(蕭史)라 하는 옥피리를 잘 부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진목공의 딸인 농옥이 그를 사모해 궁궐의 생활을 버리고 이곳에서 소사와 함께 살았다는 전설이 있어 옥녀봉이라고도 불리운다. 초여름 햇빛과 운무로 덮힌 옥녀봉은 일곱색깔의 광채를 내며 기이한 모습을 나타내 화산의 불광(佛光)이라고 불리운다.

 

동봉(東峰)

 낙안봉(落雁峰)이라고도 하며은 화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해발 2,200m이다. 산정상 노군동(老君洞)이 있는데, 노빙(老聘)이 이곳에서 은둔하였다. 동굴 북쪽의 샘이 매우 푸르고 사계절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은 철로프를 잡고 등반해야만 하는 매우 험준한 곳이다. 산정상에는 련단로(鍊丹爐)와 팔괘지(八卦池)등의 유적이 있고 봉우리 남쪽에는 남천문이 있다.

 

서봉(西峰) - 연화봉(蓮花峰, 2,082.6m)

 연화봉(蓮花峰)이라고도 하며 산정상에 취운궁(翠云宮) 앞쪽에 있는 거석의 모양이 마치 연꽃과 같아 연화봉이라고 불리운다. 옆쪽에 긴 모양의 거석이 있는데, 거석에 큰 갈라진 금이 마치 도끼로 팬 모양과 같다. 옛말에 심향이 산을 허물어 어머니를 구한 곳이라고 한다.

 고대 서생 유안창이 북경으로 가는 길에 화산을 지나게 되었는데 화산에서 아름다운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게 되어 아들을 낳아 심향이라 하였다 한다. 그 여인은 옥황상제의 딸이었는데, 여인의 형제인 나쁜 신이 동생이 평범한 인간이 되어 신선의 몸을 잃었다고 여겨 여인을 서쪽 큰 돌속에 넣었다고 한다. 심향이 성인된 후 어렵게 학문과 무예를 익혀 마침내 그 나쁜 신을 물리치고 도끼로 화산을 내리쳐 어머니를 구해냈다는 전설이 있다.

 

 

 

화산(華山-2,154.9m)

 '기험천하제일산(奇險天下第一山)', 서악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오는 문구다. 중국 오악 중에서 가장 기이하고 험하며 천하제일의 명산이라는 의미다. 중국 속담에 '西岳華山之險(서악화산지험)'도 있다. 비슷한 뜻이다. 청나라 위원(魏源)'화산여립(華山如立)'이라 했다. 마치 서 있는 듯하다는 말이다. 화산이 섰다는 의미는 기암절벽으로 가득하다는 의미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화산의 ''는 꽃을 상징한다. 실제로 꽃이 많아서 ''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우뚝 솟은 바위들이 마치 꽃과 같아서 나타냈다.

 

 이와 같이 험한 바위봉들이 꽃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것이 화산의 가장 큰 특징이다. 풍수학자들은 화산의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뤄진 통바위산으로, 강력한 기(氣)가 흘러나와 남성적 강인함을 느끼게 한다고 즐겨 찾는다. 산에 바위가 많은 형상이라기보다는 통바위산에 나무 몇 그루가 기이하게 자란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중국 역사에서 화산을 중심으로 주변 300리가 삼황오제(三皇五帝)의 거주지였다. 삼황오제는 중국 고대의 전설적 제왕을 말하며, 이들로부터 중국역사가 시작됐다고 전한다. 3황은 복희씨, 신농씨, 여와씨를 말하며, 천황·지황·인황으로 기록하기도 한다. 삼황 가운데 여와씨는 여신이다. 복희씨는 사람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전수했으며, 신농씨는 농사법을, 여와씨는 인간을 창조했다고 한다. 5제는 황제헌원, 전욱고양, 제곡고신, 제요방훈, 제순중화를 말한다. 중국을 통일한 시황제의 황제도 여기서 따온 것이다. 삼황오제가 모두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화산이 중화민족의 뿌리라는 말이 그래서 탄생한 것이다.

 

 오악은 고대 중국의 영토범위를 상징하지만 국경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다. 고대 문명과 영토를 상정할 때 오악과 마찬가지로 주요 고려대상이 된 건 4갈래 강이었다. 바로 황허(황하), 창장(장강이라 하며, 양자강의 다른 이름), 화이허(흑룡강 또는 헤이룽강, 러시아에서는 아무르강), 치수이(기수)이다. 이를 사독(四瀆)이라 한다. 오악사독은 중국의 고대 산천강하를 대표하는 개념이다. 오악사독 가운데 화산이 고대 문명 발상지 황허강과 제일 가깝다. 뿐만 아니라 뤄허강(황하강의 지류인 洛河), 웨이허강(황하강의 지류인 渭河)이 황허강과 합류한다. 악과 독이 서로 마주하고 있는 것이 화산의 큰 특징이기도 하다. 마치 한반도의 한양이 조선의 도읍으로 정해질 때 풍수적으로 산의 남쪽, 강의 북쪽이 양()을 상징하는 이유와 비슷한 입지적 조건이다.

 

 중화라는 말도 화산에서 나왔다. 삼국지의 조조는 "중원을 지배하는 자, 천하를 얻는다(得中原者得天下)"고 했다. 그 중원의 중()과 화산의 화()가 합쳐져 지금의 '중화(中華)'가 된 것이다. 고대국가에서 화산은 그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중원 천하를 통일한 황제는 반드시 화산에 오르거나 화산을 향해 제사를 지냈다. 고대 역사에서 56명의 황제가 화산을 순유하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정상에 오른 황제는 한 명도 없었다. 화강암 덩어리인 통바위산으로 된 화산을 오른다는 건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 칼날 같은 암벽 능선 위로 등산로 조성

 화산을 오르다 보면 양쪽으로 천길, 아니 만길 낭떠러지인 아슬아슬한 바위 능선 위에 등산로가 있다. 쳐다보고 있으면 신기할 뿐이다. 누가 그 길을 조성했으며, 누가 그 길로 갔을까. 쳐다만 봐도 현기증이 날 정도인데... 화산과 관련해서 예부터 전하는 말이 있다. '화산에는 오로지 한 길만 있다'고. 그 한 길도 절벽의 틈새나 능선 위 불과 1m도 채 안 되는 좁은 길로 조성돼 있다. 양쪽은 그냥 낭떠러지다. 그 길을 건너는 사람은 거의 곡예사 수준인 셈이다.

 왜 그런 길이 조성됐는지, 산 위에 올라가서야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이는 도교와 관련 있는 듯했다. 남봉 입구에 남천문(南天門, 난텐먼)이 있다. 남천문 앞에 방이 하나 있는데, 총천일문(總天一門)이라 부른다. 동서남북 4곳의 하늘이라는 뜻으로, 한데 합쳐 총천일문이다.

 

 이 문이 바로 텐제(天界)의 경계다. 도교 전문용어로 하늘과 인간세상의 분계선이라는 뜻이다. 이 텐제를 지나면 바로 천상의 세계로 연결된다. 중악을 소개할 때 항상 언급되는 말이 '천지지중(天地之中)'이다. 하늘과 땅의 중심이자 중원이고 대륙의 중앙이라는 말이다. 반면 서악은 하늘로 통하는 문이 있는 산이다. 도교의 성지가 아닐 수 없는 이유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 빨간색이다. 이것도 화산에서 나왔다. 화산 가는 길에 '紫氣東來(자기동래)'라는 문구가 자주 눈에 띈다. '자줏빛 상서로운 기운이 동쪽에서 온다'는 의미다. 이 말의 유래는 중국 고대 주나라 관리(함곡관) 윤희에서 비롯된다. 그는 천문역법에 매우 밝았다. 어느 날 그가 누각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니 동쪽에서 안개 같은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더니 서서히 서쪽으로 왔다. 그 모습이 마치 하늘을 나는 용과 같았다. 그는 동쪽에서 훌륭한 성인이 이쪽으로 올 것이라고 직감했다. 목욕재계하고 맞을 채비를 했다. 몇 달 뒤 과연 노자가 동쪽에서 푸른 소를 타고 왔다. 윤희가 마중 나가서 맞아 그의 가르침을 받들었다고 전한다.

 

 옛날 천문 풍수학자들은 하늘의 구름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길흉의 징조를 예견했고, 후대 사람들은 이를 두고 자기동래라는 말로 상서로움을 나타냈다. 나아가 자주색이 상서러운 기운을 준다고 해서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로 굳어진 것이다. 지금도 어느 곳을 가든지 자줏빛은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중국인 나름대로 복()을 부르는 한 형태로 고착됐다.

 

 중원의 역사를 대표하는 화산이 언제 서악으로 정착됐는지도 화산을 살펴보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중국 오악기행 두 번째 시리즈 중악 숭산에서 중국 유교 경전 <爾雅(이아)>에 전국시대(BC 4~3세기) 오행사상의 영향으로 오악의 개념이 생겼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국가 봉선제는 한() 무제 들어서 시작했고, 한 선제가 확정됐다고 했다.

 

 여기서 잠시 중국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나라는 전한(前漢)과 후한(後漢)으로 나뉜다. 전한은 수도가 장안(長安)이었고, 후한은 낙양이다. 전한은 BC 202~AD 9년이고, 후한은 25~220년으로 이어진다. 각각 15황제와 14황제가 중원을 통치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선제는 전한시대 황제였고, 전한의 수도는 장안(長安)이라는 사실이다. 장안은 지금의 서안이고, 낙양으로 천도했을 때 서쪽을 견고히 지키라는 의미로 서안(西安)으로 바꿨다. 문제는 화산이 서안의 동쪽, 낙양의 서쪽에 있다는 사실이다. 즉 화산이 서안과 낙양의 중앙에 있다.

 

 서악 화산은 기본적으로 서쪽에 있어야 한다. 오악을 정할 때 지리적 위치뿐만 아니라 수도 간의 방위관계도 대단히 중요하게 작용했다. 서안이 도읍일 때 오악을 정했다면 화산은 서안의 동쪽에 있는, 뿐만 아니라 오악이 모두 동쪽에 있게 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한다. 과연 서안이 도읍지로 있을 때 화산을 서악으로 지정했을까 하는 핵심적인 의문점이 남는다. 따라서 후한 시절 서기 100년 전후 어느 황제가 지정했던지, 아니면 전한 시절 한 선제가 오행사상과 더불어 오악을 지정했을 당시 서안 못지않게 낙양이 도읍지로서 기능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다.

 

■ 도교 동굴 72개와 도관 20여 곳 화산에 있어

 마지막 관전 포인트는 도교의 승지(勝地)로서 볼 필요가 있다. 화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동굴 72개와 교회와 사찰 같은 도교사원인 도관이 20여 개 있다. 특히 옥천원, 동도원, 진악궁 등은 도교의 중점 활동장소였다. 그래서 도교 발상지라 불린다. 지금까지 전해 오는 화산과 관련된 도교의 신화와 전설만 해도 200여 편 된다고 한다. 전설 한 토막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거령이라는 초능력자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황하 가운데를 가로막고 있던 화산을 손발로 뒤흔들어 두 동강을 내버렸다. 화산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황하가 흐르게 됐다고 한다. 믿거나말거나 같은 전설이지만 이와 관련된 내용은 많다. 그중 거령벽산(巨靈劈山 - 거대한 산신령이 산을 쪼개다), 벽산구모(劈山救母 - 산을 갈라 어머니를 구하다), 취소인봉(吹蕭引鳳 - 퉁소를 불러 봉황을 불러오다) 등은 이와 관련된 전설을 담은 비슷한 장면을 화산에서 엿볼 수 있다. 바위에 글씨를 새긴 석각도 1,000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이 외에 사람이 올라갈 수 없는 악산인 만큼 시공간을 초월해 날아다니는 무협소설의 주무대가 바로 화산이기도 하다. 무협소설 '영웅문(英雄門)'의 주무대다.

 

 이제 제대로 화산을 향해 올라가보자. 걸어서 올라갈 수는 없다. 1m도 채 안 되는 칼날능선 위를 수km 가야 하는 곡예사 수준의 담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시간도 엄청나게 걸리기 때문이다. 현지 가이드는 실제로 신년 일출을 보기 위해 밑에서부터 걸어서 동봉 조양대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14시간 걸렸다고 한다. 올라갈 수 있기는 한가보다. 그가 덧붙인 말이 있다.

 

 "다시는 걸어서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서봉 연화봉(蓮花峰)까지 가는 케이블카를 타고 남봉 낙안봉(落雁峰)을 거쳐 동봉(朝陽峰 혹은 朝陽臺)~중봉 옥녀봉(玉女峰)~북봉 운대봉(雲臺峰)을 밟은 뒤 북봉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하기로 한다. 화산은 이 다섯 개 봉우리가 연꽃 모양으로 생겼다. 그중 가장 심하게 깎아지르고 바깥을 감싸고 있는 서봉을 연화봉이라 한다. 서봉 정상 앞에 있는 바위가 연꽃을 닮아 연화봉이라 했다고도 한다. 정상에서 다섯 봉우리를 트레킹하는 데 약 4시간 걸린다.

 

 서봉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서 화산으로 출발했다. 장엄한 중원 역사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설렌다. 방문객을 맞이하는 화산 입구의 문 위에 '天威咫尺(천위지척)'이 보인다. 하늘의 위엄이 눈앞에 있다는 의미쯤 되겠다. 바로 그 위에는 '勅建(칙건)'이라 적혀 있다. 황제의 명으로 건립했다고 한다. 걸 수 있는 곳마다 자줏빛 리본이 묶여 있다. 문이나 줄이나 할 것 없이 온통 자줏빛이다.

 

 케이블카 입구에 도착했다. 케이블카 총 길이는 4,211m, 높이차는 894m, 받침대는 28, 총 객실은 84, 객실 1개당 8명 탑승 등 1시간당 총 1,500명 수송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다. 중국 당국에서 무려 5억 위안(한화 약 900억 원)을 투자해서 건립했다. 프랑스 푸마사에서 도입한 기기와 설계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강조한다.

 케이블카를 탄 공중에서 바라본 화산은 정말 화강암 통바위 그 자체다. 우리의 인수봉 같은 바위들이 한두 개가 아닌 첩첩봉봉으로 에워싸고 있다. 거령이라는 신이 화산을 잘라 황하를 흐르게 했다는 말이 실감난다.

 

 

■ 화산 전체가 하나의 통바위로 이뤄져

 화산의 수십 개 봉우리는 모두 '하나의 바위'로 이뤄졌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00만 년 전에 화산지역에 암장이 침투했다. 지각 깊은 곳의 암장이 상승하면서 거대한 화강암체가 형성됐다. 2,000만 년 전에는 이 거대한 암석이 강렬한 지질 작용으로 지표 위로 그대로 노출했다. 화강암이 형성되고 융기되면서 3개의 절리 현상이 발생했다. 두 개는 수직절리, 하나는 수평절리로 이뤄졌다. 빠르게 융기되면서 3개의 절리는 칼처럼 두부 모양으로 잘라냈다.

 

 그리고 화산(火山)이 상승하는 속도가 매우 빨랐기 때문에 중력은 마치 예리한 도끼로 잘린 듯 네모난 화산 지형을 갖게 됐다. 현지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어쨌든 이 거대한 화산의 첩첩봉봉이 하나의 바위로 이뤄졌다고 하니 믿기지 않는다.

 

 케이블카는 통바위 안으로 들어간다. 그 거대한 통바위를 뚫어 케이블카를 연결시켰다. 정말 거대 작업이다. 간혹 통바위 봉우리마다 동굴이 하나씩 보인다. 도교의 72개 동굴이 있다고 하더니 그 동굴 같다. 도저히 사람이 올라갈 수 없는 곳이다. 너무 신기해서 기가 막힐 지경이다. 칼날 같은 능선 위로 난 등산로도 보인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저 길로 어떻게 사람이 지나간다는 말인지...

 

 이윽고 서봉 아래 내려, 서봉 정상을 향해서 올라간다. 바위를 깎아 계단으로 길을 만들었다. 철 난간을 만들어 위험을 방지하고 있다. 철 난간에는 자줏빛 리본이 수없이 걸려 있다. 철 난간 밖으로는 까마득히 바닥이 안 보인다.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긴다.

 

 암벽 석각들이 서서히 나온다. '人間天上(인간천상)', '蓮華洞(연화동)', '華頂靑松(화정청송)', '蓮華世界(연화세계)' 등 많은 글씨들이 새겨져 있다. '臥薪嘗膽(와신상담)' 글자도 보인다. 누군가 패전의 아픔을 이곳에서 삼켰다 말인가.

 

 취운궁을 지나고 '斧劈石(부벽석)'이 있다. 마치 도끼로 두 동강 낸 듯한 바위다. 많은 사람들이 도끼나 칼을 들고 자기가 바위를 두 동강 낸 듯 기념사진을 찍는다. 부벽석 옆에 전설 속의 '벽산구모(劈山救母 - 산을 갈라 어머니를 구하다.)'도 새겨져 있다.

 

 이윽고 서봉 정상 연화봉(2,086.6m)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상 비석을 에워싸고 있어 발 디딜 틈이 없다. 여기도 자줏빛 리본과 자물쇠가 부지기수로 걸려 있다. 석각도 예외 아니다. 발에 밟히는 게 석각이다. '天下壯觀(천하장관)'이란 글씨가 유달리 눈에 들어온다. 희뿌연 구름 때문에 시계는 좋지 않지만 확 트인 사방에 솟은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글자 그대로 장관이다.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듯한 봉우리에 정자 한 채가 우뚝 솟아 있다. 신기할 뿐이다.

 

 고사목 같은 노거수가 바위를 뚫고 올라와 수백 년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휜 가지에도 자줏빛 리본은 어김없이 걸려 있다. 자줏빛 리본 거는 것이 중국인들에게는 마치 신앙과 같아 보인다.

 

 서봉에서 남봉으로 가는 길에 힐끗 서봉을 뒤돌아봤다. 정말 절묘한 등산로에, 절묘한 도관 위치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화산 가는 길은 조금 가파르다. 가는 중간 절벽에 장공전도(長空栓道)가 있다. 절벽 옆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이 다니게 만들었다. 딱 한 사람 가기도 좁은데 오고가는 사람이 옆으로 비켜서 지나친다. 아찔하다. 화산에 이런 전도가 몇 군데 있다.

 

 서봉 가는 길은 조금 가파르지만 의외로 소나무와 잣나무 등 나무들이 많다. 남봉에도 예외 없이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있다. 더욱이 남봉은 화산 최정상이다. 정상 비석에는 2,154.9m를 표시한다. '화산극정'이라고도 하며, 기러기들이 남방으로 날아가면서 자주 쉬어간다고 해서 일명 낙안봉(落雁峰)이라고도 한다. 중국의 한 시인은 이곳에서 "하늘만 위에 있고 높이를 겨룰 수 있는 산이 없으며, 고개를 들면 태양이 가까이 있고, 고개를 숙이면 구름이 아래에 있다"고 노래했다.

 

 비석 바로 옆에 부산 금정산의 금샘 같은 바위 속 연못이 있다. 앙천지(仰天池)라고 한다. 음양조화를 이루기 위해 하늘에서 조성한 연못이라 전한다. 화산에는 특히 정상 바위 위에 연못이 실제로 많다. 앙천지는 위로는 천택(天澤)을 이어가고, 아래로는 지맥을 받들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홍수에도 넘치지 않는다고 한다. 앙천지 주변에는 '태화봉두', '목욕일월', '등봉조극', '수불천성' 등 석각들이 가득하다. 정상 기념사진 찍으려고 대기하는 사람이 많아 사진 한 장 찍기도 한참 걸린다.

 

 동봉 가는 길 중간쯤 남천문이 나온다. 천상의 세계로 연결된다는 바로 그 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역으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길이다. 천계에서 속계로 환속하고 있는 셈이다.

 

 지나가는 길 저쪽에 하기정(下棋亭)이 벼랑 끝 봉우리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곳에 정자를 지을 수 있단 말인지, 정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하기정 가는 길은 화산에서 가장 험한 길이다. 올라가려면 쇠밧줄을 잡고 발로는 구멍을 찾아야 한다. 언감생심 포기다. 마치 신선이 사는 정자 같다. 멀찌감치 바라만 보다 지나친다.

 

 동봉 조망대다. 화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2,096.2m. 널찍하니 일출을 보기에 안성맞춤이다. 신비로운 운해도 감상할 수 있다. 동봉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중봉이 있다. 그 중간쯤 '운제(雲梯)'가 있다. 일명 구름사다리쯤 된다. 거의 수직으로 된 계단이다. 지금은 우회로 계단이 있지만 옛날엔 운제로 다녔다고 한다.

 

 중봉 가기 전 중간쯤 인봉정(引鳳亭)이 있다. 봉황을 불러들였다는 운치 있는 정자다. 발걸음을 그대로 옮겨 옥녀사를 지나 곧바로 중봉 옥녀봉에 이른다. 전설에 따르면 춘추시기에 진목공 딸 농옥과 정랑 소사가 이곳에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 퉁소를 불었는데, 그 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봉황이 날아들었다 한다. 그래서 용과 봉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됐다고 전한다. 옥녀봉의 유래다.

 

 중봉에서 북봉 가는 길은 제법 길다. 창룡령을 지나 도룡묘, 왕모궁을 거쳐 일월애에서 천제(하늘계단)로 내려와 운대산장을 거쳐 북봉에 도착한다. 창룡령과 도룡묘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창룡령은 많은 산봉우리들이 연결된 칼 모양의 산마루로, 530개의 돌계단을 만들어 등산객들이 오르내린다.

 

 고개가 짙은 회색이고, 꿈틀거리는 용과 같아 창룡령(蒼龍)이라 부르게 됐다. 옛날에는 돌계단이 없어 기다시피 올라갔다고 한다.

 

 창룡령 입구에 도룡묘라는 도교사원이 있다. 창룡령은 산서성의 풍수에 용맥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따라서 수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오르려고 한다. 화산의 신성한 기운도 이곳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도룡묘에 와서 향을 피우며, 일이 잘 되고 많은 재물이 들어오고 미래가 발전하며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이유다.

 

 마지막 봉우리 북봉에 마침내 도착했다. 1,614.9m로 다른 봉우리에 비해 그리 높지 않지만 삼면이 모두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산세가 험하다. 위로는 구름이 덮여 있고, 아래로는 지맥을 통과해 홀로 우뚝 서있는 모습이 마치 운대와 비슷하다고 해서 운대봉(雲臺峰)이라 한다. 북봉에서는 바로 아래 북봉 케이블카로 연결된다. 5개 봉우리를 모두 둘러보면 12남짓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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