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강(九江, Jiujiang)

여동빈(呂洞賓)

 

 구강(九江)시는 중국에서 손꼽히는 명산 중 하나인 여산(廬山)과 대륙의 젖줄인 장강(長江), 그리고 파양호(鄱阳湖) 등 산, 강, 호수가 어우러져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무려 2200년이라는 유서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강남문화의 중심도시이며 자국 내에서는 이미 이름난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130년 전부터 외국 상인들과 교류가 이뤄졌던 국제외항이었으며 1992년부터 정부 국무원에서 장강 연안의 개방도시로 지정하여 개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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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서 가장 긴 동서 수상교통로인 장강과 대륙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중국에서 가장 긴 철도인 경구(京九)철로가 모두 지나가, 동서, 남북, 육로, 수로가 고르게 발달되어 있는 교통의 요지로 중국 정부의 승동개서(承東啓西: "발전된 동부해안의 재력을 이용해 서부 지역을 개척하자") 정책의 핵심도시로 꼽힌다.

 

 여러 관광명소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여산은 1996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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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명소

화경(花徑 : 화징)

 여산 안에 자리잡고 있는 공원으로 이백(李白), 두보(杜甫), 한유(韓愈)와 더불어 이두한백(李杜韓白)으로 불리는 당나라때의 대문장가, 백거이가 시를 남긴 곳으로 유명하다.

 815년에 강주(江州, 현재의 구강) 사마(司馬)로 좌천되어 온 백거이는 여산을 특히 좋아하였는데 어느해 늦봄 여산 대림사(大林寺)에 왔다가 작은 오솔길을 발견했다. 이 오솔길을 따라가 보니 복사꽃이 만발하여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졌고, 선경에 감동한 나머지 즉석에서 대림사도화 (大林寺桃花)라는 시를 지었고, 돌 위에 "화경(花徑: 꽃길)"이라는 두 글자를 새겼다고 전해진다.

 후에 사람들이 백거이를 기려서 이곳을 백사마화경(白司馬花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930년 "화경(花徑)" 석각이 발견되었고, 고증학자들이 백거이의 친필이라고 밝혔으며 공원으로 조성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지금은 본래의 옛터를 찾을 수 없는 백거이의 초당도 공원 안에 복원되어 백거이와 중국 당대문학에 관심이 많다면 꼭 들려볼 만한 명소이다.

 

大林寺桃花 대림사도화

人間四月芳菲盡  인간 세계에서는 4월에 꽃이 모두 지는데

山寺桃花始盛開  산사에는 이제 막 복사꽃이 만발했네

長恨春歸無覓處  봄철이 지나감에 찾을 곳이 없어 아쉬웠는데

不知轉入此中來  이런 곳에 오게 될 줄은 알지 못했네

 

백거이와 여산

 백거이(白居易, 樂天, 772-846)는 30세 무렵에 장한가(長恨歌)를 지어 유명해졌는데, 815년 당나라 수도인 장안(長安)에서 재상 무원형(武元衡)이 암살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의분을 못이겨 황제에게 엄격히 살인범을 찾아 처벌할 것을 진언하였다가 권세가의 미움을 받아 7월에 강주(江州) 사마(司馬)로 좌천, 현재의 구강에 오게된다.

 사마란 벼슬은 자사를 보좌하는 직책으로 특별히 정해진 일이 없는 한직이었기에 815년 7월에 강주에 온 백낙천은 818년 겨울에 충주자사(忠州刺史)로 갈 때까지 4년 동안 여산의 구석구석을 유람했고, 여산에 은거한 문인 학자 승려들을 만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여산의 빼어남을 표현한 "광려산의 빼어난 경치는 천하의 으뜸"(匡廬奇秀甲天下)이란 말은 후세에 여산을 소개할 때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명구이다.

 

 

여산(廬山, 루산)

 여산(廬山)은 강서성(江西省) 이남에 위치한 수려한 경관의 명산으로 광산(匡山) 또는 광려(匡廬)라고도 불리운다. 은(殷)나라 시대에 광씨 성을 가진 일곱 형제가 이곳에 오두막을 짓고 은거했는데 형제가 신선이 되어 승천하면서 남기고 간 오두막이 바로 지금의 여산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구강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36km 떨어져 있으며 북으로 장강(長江), 남으로 파양호(鄱陽湖)에 접하고 있어 산수가 어우러진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안성맞춤이다.

 

 대부분의 산봉우리는 해발 1000m 이상이며, 주봉인 한양봉은 1474m에 달하고, 운중산성이라 불리는 고령진 마을은 1167m 높이에 자리하고 있다.

 

 여산에는 널리 알려진 명승지가 곳곳에 즐비한데 기암괴석과 폭포, 구름과 안개 등 명소마다 독특한 특색을 지니고 있다.

 

 예로부터 "광려기수갑천하(匡廬奇秀甲天下: 여산의 신비로움과 수려함이 천하 제일이다.)"라고 극찬을 들어왔으며 사마천이 '사기(史記)'에서 여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 이래로 도연명(陶淵明, 365~427 (62세)), 이백(李白, 701~762), 백거이(白居易, 772~846 (74세)), 왕안석, 소식(蘇軾, 1036~1101 (65세)), 곽말약에 이르기까지 약 1500여 명의 시인과 문사들이 이곳을 찾아 매혹적인 경관에 취해 작품을 남겼다.

 

 그 중 특히 소식(蘇軾)이 남긴

 橫看成嶺側成峰 (횡간성령측성봉)   가로 보면 산마루요 옆에서 보면 봉우리라

 遠近高低各不同 (원근고저각부동)   멀리서 가까이서 높은데서 낮은데서 보는데 따라 다르구나

 不識廬山眞面目 (불식여산진면목)   여산의 참모습은 알지도 못하고

 只緣身在此山中 (지연신재차산중)   이 몸은 아직도 산중에서 헤매고 있네

 

 이 구절은 중국인들 사이에 흔히 회자되며 일종의 속담처럼 쓰이기도 한다.

 

 여산은 7월에서 9월까지 평균 기온이 16.9℃이며, 가장 더울 때도 32℃를 넘지않아 근대에 들어서 장개석, 모택동, 주은래 등 많은 정치계 인사들이 여산에 별장을 짓고 여름철 시원하게 부는 산바람을 즐겼으며 일반인들도 즐겨찾는 관광지로 자리잡고 있다.

 

 1996년에는 유네스코가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미려(美廬: 메이루) 산장

 여산의 시원한 계곡 옆에 자리하고 있는 영국식 별장 미려산장은 장개석(蔣介石)과 송미령(宋美齡) 부부가 살던 곳으로 돌담으로 둘러싸인 정원에 샘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 본채와 별채로 꾸며져 있으며 송미령과 친분이 있던 영국 건축가가 지어 1934년 송미령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별장의 이름은 장개석이 아내인 송미령의 이름의 가운데 글자를 따서 "미려(美廬)"라고 지었고, 정원 중앙에 놓인 돌에 "미려(美廬)"라는 글을 남겼다.

 아름다운 주변 풍경이 매력적인 이 별장은 중국 현대사에서 의미 있는 장소이기도한데 바로 국공합작(國共合作)을 위해 주은래가 장개석을 여러 차례 찾아 온 곳이면서 1950년대 여산 회의 기간에는 모택동도 거주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의 지도자가 모두 거주했던 유일한 별장이란 점이 흥미롭다.

 

 

펄벅의 별장(珍珠故居)

 미국의 여류소설가 펄벅(Pearl Sydenstricker Buck,1892.6.26~1973.3.6)이 부모님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별장이다.

 

 펄벅은 웨스트 버지니아주에서 출생하여 장로회 선교사였던 부모님을 따라 태어난지 4개월 만에 중국으로 건너왔고, 미국 메이컨 대학에 진학하기까지의 성장기를 가족과 함께 보냈으며 특히 여름이면 산수가 아름다운 이곳 여산의 별장에서 지냈다. 또한 그의 아버지(Absalom Sydenstricker)는 1931년 8월 31일 이 집에서 소천, 여산에 묻혔다. 

 

 펄벅은 대학 졸업 후 다시 중국으로 건너와 남경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기도 했으며, 1934년 이후 미국에 정착하여 중국을 배경으로 많은 소설작품을 남겼는데 대표작인 '대지'를 출판, 31년 퓰리처상과 3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연인 서태후', '어머니', '자라지 않는 아이', '나의 가지가지 세계' 등의 작품이 잘 알려져 있으며 6.25이후 한국의 수난사를 그린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 한국 혼혈아를 소재로 한 '새해' 등의 소설도 화제작이다.

 

 한편 그녀는 펄 벅 재단을 설립하여 사회사업도 활발하게 펼쳤다.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

 숭양서원(崇陽書院), 악록서원(岳麓書院), 응천서원(應天書院)과 함께 중국 4대서원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940년 당나라시대에 이발(李渤)이 그 형 이섭(李涉)과 함께 이곳에 은거하며 독서를 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는데 하얀 사슴, 즉 백록(白鹿)을 길렀다.

 그런데 이 사슴이 예사롭지 않아 10리 밖의 시내로 나가 주인이 필요로하는 서적과 문방사우를 구해 돌아올 정도로 영민하였기에 사람들이 이발을 백록선생이라 부르고, 그 거처를 백록동(白鹿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5대 10국시대에 서원의 전신인 여산국학(廬山國學)이 설립되었고, 송대에 지방자제를 교육하는 서원이 되었다. 그리고, 남송(南宋)시기에 이르러 주희(朱熹)가 부흥시켜 명성을 떨치게 된다.

 한국 서원의 효시가 되는 경북 영주시 순흥면의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紹修書院)이 바로 이 백록동서원을 본떠 만든 것이라 한다.

 

백록동 서원 안의 명소

- 사현대(思賢臺)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누각으로 아래의 동굴에 흰 사슴상이 있다.

 

- 단계정(丹桂亭)

 주희사당 앞에 있는 정자로, 중앙에 "주희가 직접 붉은 계수나무를 심음(紫陽手稙丹桂)"라는 글씨가 있다. 여기서 자양은 바로 주희의 호이다.

 

- 명륜당(明倫堂)

 서원 내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장소로, 명륜당이라는 명판은 주희의 친필이다. 이 안에 서원의 규정이 적혀 있고, 서원을 통해 급제한 인물이 기록되어 있다.

 

- 문회당(文會堂)

 "이문회우(以文會友)" 글을 통해 벗을 사귄다는 논어의 구절에서 따온 이름이다. 송대 주돈이의 동상이 있으며 현재 학자들 사이 교류의 장소로 쓰인다.

 

 

여금호(如琴湖 : 루친후)

 호수의 모양이 거문고와 비슷하다고 하여 여금호(如琴湖: 같을 여/거문고 금,호수 호)라고 불리는 여산의 명소 중 하나이다.

 1961년에 만들어진 인공호수이며 부근에 대림사(大林寺)가 있었다.

 지금은 바로 옆에 화경공원(花徑公園)이 있어 화경호(花徑湖)라 하기도 한다.

 단풍과 설경이 특히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한 산 속의 호수이다.

 

 

 

선인동(仙人洞 : 시엔런둥)

 선인동은 중국 도교에서 8대 신선의 하나로 추앙받는 여동빈(呂洞賓)이 수련했다는 전설이 있는 신비로운 동굴이다. 여산에서 수려한 경관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금수곡(金繡谷) 남단에 자리하고 있으며 자연적으로 바위가 앞으로 튀어나와 생성된 동굴로, 그 바위의 모습이 부처님의 손바닥 같이 보인다 하여 불수암(佛手岩)이라고도 불렸다. 동굴밖으로 종종 구름이 맴돌고, 오른쪽으로는 정자가 있는데 바위가 밖으로 돌출되어 있어 조금 위험하지만 금수곡의 전경을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다.

 선인동의 높이와 깊이는 모두 10m 정도로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천장에서 맑은 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 이것을 "일적천(一滴泉)"이라고 부른다. 동굴벽에 싯구절이 새겨져 있기도하고, 여동빈의 동상 등이 있어 볼거리도 적지 않다.

 구름과 안개가 홀연히 피어올라 동굴을 감쌀 때 동굴 안에 있으면 신선이 된다는 흥미로운 전설도 전해온다.

 

여동빈(呂洞賓) : 당(唐)나라 사람으로 속성이 이(李)씨이고 이름은 경(璟), 자는 백옥(白玉)이며 호는 순양자(純陽子)이다. 본래는 관직에 나갔다가 심양(尋陽)현령을 버리고 출가했으며 여산에 와서 불수암에서 수련하여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천둔검법(天遁劍法)에 능해 악귀들을 많이 쫓았다고 전해지며 신선도에서도 주로 등에 검을 둘러멘 모습으로 그려진다.

 

 

삼첩천(三疊泉 : 싼디에취엔)

 삼첩천은 총 낙차가 155m에 이르는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운 3단폭포로 "不到三疊泉) 不算廬山客(불도삼첩천 불산여산객: 삼첩천에 가보지 않으면 여산의 손님으로 쳐주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이다.

 

 오로봉(五老峰) 아래로 3층의 단을 이루고 있는 산벽을 타고 쏟아져 내려오는 폭포수의 모습은 단마다 독특한 매력을 지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중국인들은 가장 높은 첫번째 단의 폭포수는 마치 눈발이 휘날리는 듯하고, 두번째 단의 폭포수는 옥이 부서지고 얼음이 깨어져 쏟아져 내리는 듯하며, 마지막 세번째 단에서는 옥룡이 연못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형상이 연상된다고 한다.

 

 중국인이 종종 과장된 비유과 미사여구로 꾸미기를 즐겨한다지만 삼첩천을 실제로 다녀온 사람들은 이런 비유가 빈말처럼 들리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삼첩천은 사계절 모두 특유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자랑하지만 특별히 봄에서 여름으로 접어드는 장마시기에 눈과 귀가 모두 확 트이는 색다른 체험을 선물한다. 성난 용처럼 우레와 같은 소리를 발하며 아래로 곤두박칠쳐 내려오는 폭포의 장대함에 누구라도 탄성을 지르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금수곡(錦繡谷: 찐시우구)

 여산에서 천교(天橋)의 좁은 길을 따라 걸어가면 발 아래에 매력적인 계곡이 펼쳐지는 데 그곳이 바로 세계적으로 이름난 계곡, 금수곡(錦繡谷)이다.

 

 봄이 되면 수백 가지 오색찬란한 꽃의 향연이 벌어지며 초겨울이 될 때까지 녹음이 푸르름을 잃지 않고, 경관이 아름다워 금수곡이라는 미칭(美稱)이 붙었다.

 

 동진(東晉)시대 혜원(慧遠)대사가 동림사(東林寺)에 거하며 자주 이곳을 찾아와 약초를 캐었다고 전해지며 이곳에서 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꽃 중에 산 벚꽃, 매화, 진달래, 그리고 서향화(瑞香花)의 향기가 유명하다.

 

 명(明)대 의학자 이시진(李時珍)이 지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본초강목(本草綱目)'을 보면 한 승려가 금수곡의 큰 바위에 기대어 낮잠을 자다 꿈결에 코를 자극하는 매혹적인 향기에 잠이 깨어, 그 향기 짙은 꽃을 "수향화(睡香花: 자면서도 맡을 수 있는 향기의 꽃)"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는데 후대에 사람들이 이 꽃을 길하고 상서롭다고 여겨 서향화라고 바꾸어 불렀다.

 

 화려하고 향기로운 꽃 외에도 온갖 다채로운 기암괴석이 많은 금수곡은 주변 산세가 매우 험난하고 가파른 곳으로 본래 찾아가기 수월치 않던 것을 1980년 작은 길이 만들어져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계곡을 바라보면 마치 진경산수화가 입체적으로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한 경이로움을 맛볼 수 있으며, 두 마리 사자가 사납게 싸우는 모습, 독수리가 창공을 가르며 매섭게 날아가는 모습, 신선이 좌선하는 모습 등 다양한 형상의 바위가 많아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는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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