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廬山-1,484m)

 

 중국의 황산과 장가계에 버금가는 명산인 여산은 중국의 저명한 장강 중류의 남쪽 기슭 제일 큰 담수호인 파양호 주변에 위치해 있으며, 지형은 암층이 끊어져 갈라지면서 형성된 산이다.

 1996년 문화경관유산으로서 세계유산명록에 등록될 정도로 여산은 험준한 산봉우리와 기이한 자연풍광은 수려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최고 산봉우리 높이가 1,484m인데, 한 양봉으로 한개의 독특한 지루식 단절 덩어리 산이다.

 겉으로는 험준하고 속으로는 아름다워 원래부터 지질공원이란 이름이 있었다. 첩첩산중 높이 솟은 봉우리와 굽이쳐 흐르는 강물, 검푸른 호수는 옛 나무꾼이 선녀의 옷을 가로 채 한평생 같이 살았다는 옛 구전이 여기에서 나오지 않았냐는 설이 있을 정도다.

 2천여 년 전 중국의 첫 기전체역사책의 작자인 사마천이 여산에 올라 '사기'에 기록했고, 기원 756년 당나라의 저명한 시인인 '이백'은 여산의 3겹폭포를 묘사해 천고에 남을 유명한 시를 남기기도 했다.

 

  향로봉에 해가 비쳐 보랏빛 연기일고

  멀리 폭포가 비단처럼 걸렸구나

  삼천척을 날아 흐르는 저 은하수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가

 

 또한 '이태백'은 "내가 천하를 돌아다녀 유람해 본 산수는 매우 많은데 아름답고 웅위로우며 기이하고도 특별함은 이산을 초과하는 곳이 적드라, 정말 천하의 절승이로구나"라고 여산을 칭찬한바 있다.

 여산은 아열대계절풍으로 산지기후 특색을 가지고 있어 강수량이 연간 1,917mm에 달해 운무가 빈번, 연평균 안개낀 날짜가 190일이 넘어 여름에 시원하고 상쾌하다.

 

 여산의 볼 만한 관광특색은 풍경구내의 16개의 큰 기이한 자연풍광과 474개 경관지점이 있다.

 이들을 합치면 '봄은 꿈같고, 여름은 떨어진 물방울 같으며, 가을에는 취하는 것 같고, 겨울에는 옥 같다'며 오래전부터 '중국 전원시의 탄생지, 산수시의 발원지, 산수화의 발상지'로 알려졌다.

 

 이렇듯 여산은 2천년이래 도연명, 사영운, 이백, 백거역, 소시, 왕안석 등 1,500여 명에 달하는 유명한 문학가, 정치가, 예술가들이 생활, 유람하며 4,000여수의 여산을 찬양하는 시사가부와 많은 문장, 여행기, 그림들을 그렸다.

 

 지금까지도 중국문화역사상 명편명작 등 고대문화유적들이 보존돼 있는데 상고시기의 문화유적이 20여 곳, 중고시기의 문화유적이 600여곳 , 마애석각이 900여 곳, 글새긴 비석이 300여개가 남아 있다.

 

 여산을 중국남방의 불교중심으로 만든 불교수령 혜원은 기원 391년 여산에 동림사를 세우고 관상념불의 정토인 법문을 수립해 중국식 불교를 개척했다. 또한 중국본토종교인 도교의 선조 육수정도 여산에서 도교 남천사파를 개척했다. 이렇듯 기원 4세기부터 13세기까지 여산은 종교가 흥성하고 사묘가 500여개에 달했다.

 

 명나라와 청나라 이후 이슬람교와 기독교, 천주교도 여산에 교회당을 수립 선교하였으며, 한 산에 5개의 종교가 자라잡는 현상까지 빚어졌다.

 기원 940년에 창건한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은 중국고대 4대서원에서 첫번째로 가는데 송나라 교육가 주희가 제기한 교육사상과 교육규제는 중국 고대교육의 준칙 및 지금도 세계교육역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역사상 여산은 많은 중대한 사건들을 유발했는데 진나라때부터 청나라까지(기원전 221-1911), 무려 30여 명의 황제들이 여산의 문화 창조 발전에 참여했다.

 또한 국민정부의 여름수도로도 불리웠고, 1937년 중국공산당은 국공(國共)양당의 연합항일을 촉성하기도 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여산에서 세번이나 회의를 소집, 중국의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여산에는 근대별장들이 모여있는 고산도시 '고령진'이 있는데 세계적으로 서늘한 도시라는 뜻에서 쿨링(Kuling)으로 더 알려져 있고 지금까지도 완전하고 양호하게 보존돼 있고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 25개 국가의 가지각색 품격을 띈 별장들이 1,000여채 있다.

 

 그중 놓치지 말아야 할 명소중의 하나가 1903년에 지어진 '미여별장'으로 장개석과 그의 부인 송미령에게 선물로 주어진 곳이다. 곳곳에 페인트 칠이 벗겨지고 훼손됐지만 부부가 살던 흔적과 유품이 아직도 기념관에 많이 전시되어 있다. 화려하게 장식된 송미령의 침실에는 부부가 사이좋게 찍은 기념사진이 걸려 있다.

 오늘날에 여산회의회지로 더 잘 알려진 '인민극원'은 1959년부터 1970년 사이 지도자 모택동이 중국의 현대사를 바꾸던 곳으로 쓰여졌다.

 

 고령 옆에는 노림호가 있는데 '모택동의 옛집'과 '여산박물관'도 자리해 있다. 박물관의 동쪽에는 모택동 기념시비를 모아놓은 '모택동 시비원'이 있고 동쪽에는 여산과 그 주변에서 서식하고 있는 3,000여 동식물과 열대식물들의 표본이 전시되어 있는 '식물관'이 있다.

 

 또한 남송시대때 한 나무꾼이 발견했다는 그 유명한 '삼첩천(三疊泉) 폭포'가 있는데 일본에서 제작한 전동 모노레일을 타고가 2천800여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하나의 진주같은 폭포를 감추기 위해 여산은 겹겹히 감싸고 있었는가"라고 할 정도로 너무나 웅장하고 주변의 풍광과 잘 어우러진 '여산의 진면목'중 하나다.

 

 등반시간은 3시간 정도 걸리며 글자 그대로 세개로 겹쳐진 물살의 폭포가 시원하게 떨어지고 주변에는 안개구름이 폭포를 휘감고 있다.

 

 약 215m 높이에서 3층으로 떨어지는 폭포는 가을에 아름다움의 극치를 자랑한다.

 특히 이곳에서 일몰을 바라보는 것은 환상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여산 온천

 중국 호남성의 여산(廬山, 루산) 등지에 최신 시설을 갖춘 온천 리조트 단지가 새롭게 들어서서 휴양과 관광을 동시에 원하는 여행객들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여산 온천 리조트(龙湾温泉, 天沐温泉)에서 숙박을 하면서 여산과 무한 일대를 관광할 수 있다.

 여산에서 차량으로 1시간 떨어진 온천 특구에 위치한 천목온천 리조트는 동남아 리조트의 시설과 서비스를 능가하는 최신 리조트로서, 편안히 휴양을 원하는 여행객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리조트 내에는 녹차탕, 커피탕 등 30여개의 각각 특색 있는 온천탕은 물론, 온천파도와 310m의 온천슬라이드, 260m의 온천래프팅 등이 구비된 워터파크 '수상낙원'이 자리하고 있어 가족단위 여행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리조트 시설과 함께 여행객들에게 중국 여산의 별미인 '삼석요리'를 제공하는데, 고산 일급수에서 자라는 물고기 '석어', 개구리 '석계', 여산 특산물인 자연산 송이 버섯 '석리' 등 삼석을 맛볼 수 있는 요리로, 온천욕과 함께 웰빙요리로 최고의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

 천목온천 부근이 위치한 여산은 아직 한국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도원명, 이태백, 백거이 등이 詩를 지어 여산의 아름다움을 찬미할 정도로 중국 내에서는 황산과 함께 명산으로 손꼽히는 산으로 장개석, 모택동, 주은래, 펄벅 등 많은 유명 인사들이 별장을 지어놓고 휴가 때 즐겨찾던 곳이기도 하다.

 여산에는 수 많은 기암괴석과 폭포, 구름과 안개 등 명소마다 독특한 특색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1.5km의 아름다운 계곡인 '금수곡'과 '여산 속의 황산'이라 불리우는 오소봉, 파양호를 케이블카를 타고 조망하는 것은 여산 관광의 백미로 꼽힌다.

 

 

<여산진면(廬山眞面)>

 廬 : 오두막 려.   山 : 메 산.   眞 : 참 진.   面 : 얼굴 면

 여산(廬山)의 참모습. 여산(루산)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데다 늘 구름에 가려져 있어 좀처럼 본모습을 볼 수 없다고 해서 사물의 진상을 알기 어려움에 비유

 

 주(周)나라 무왕(武王)때 광속(匡俗)이라는 도사가 이 산 깊숙이 조그마한 오두막집을 지어 은거하면서 선도(仙道)를 닦고 있었다. 무왕이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그를 찾아 벼슬을 시키려고 했으나 그거 거처하던 오두막집만 찾아냈을 뿐 광속의 행방은 묘연했다. 사람들은 광속이 살던 오두막집이란 뜻으로 산이름을 광려산(匡廬山)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여산이 되었다.

 이 산 곳곳에는 명승과 고적들이 감추어져 있는데 특히 불교에 관련한 유적이 많은 걸로 유명하다. 한여름에도 서늘하여 중국에서 손꼽히는 피서지이기도 한다. 그러나 안타까운 대목은 이 산이 늘 구름에 싸여있어 좀처럼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곳 사람중에는 여산의 본모습을 본 사람은 얼마되지 않는다고 한다. 송(宋)나라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도 여산을 찾았다가 안타까운 마음을 칠언절구시 한 수에 남겼다.

 

橫看成嶺側成峰(횡간성령측성봉) 가로 보면 산마루요 옆에서 보면 봉우리라

遠近高低各不同(원근고저각부동) 멀리서 가까이서 높은데서 낮은데서 보는데 따라 다르구나

不識廬山眞面目(불식여산진면목) 여산의 참모습은 알지도 못하고

只緣身在此山中(지연신재차산중) 이 몸은 아직도 산중에서 헤매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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