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京(남경 = Nanjing = 난징)

 

南京(남경 = Nanjing = 난징)

 (南京)은 중국의 유명한 역사 문화도시로서 3,0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삼국시기 오나라가 229년에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건업이라 불렀다. 서진(279년)이 중국을 통일한 후 282년에 건업을 건강으로 개칭했다. 317년 사마예가 건강에서 동진을 세웠다. 그 후의 송· 제· 양· 진도 모두 이곳에 도읍을 정하였다. 이 시기 남경은 전국의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로 부상했다.

 

 기후는 무한(無漢), 중경(中經)과 함께 중국의 3대 더운 지역으로 꼽힐 정도로 여름 기온이 40℃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겨울에는 때에 따라 영하의 기온으로 내려가기도 하며, 가을은 건조하다.

 

 

 아열대 습윤 기후에 속하여 사계절이 분명하고 비가 많이 내린다. 연평균 기온은 15.6℃이며, 연평균 강수량은 1106㎜이다. 매년 6월과 7월 사이는 장마철이다. 면적은 6516㎢ 이고, 총인구는 530만 명이다. 그 중 농업인구가 260만 명, 비농업인구는 270만 명이다.

 

 남경을 지나가는 장강의 길이는 약 95㎞로, 넓고 수심이 깊어서 만톤의 큰 배도 능히 지나갈 수 있다.

 

 남경역에서 상해역까지는 기차 특급으로 4시간 정도가 거린다.

 

 남경은 사투리도 심하지 않고, 물가도 저렴한 편이다.

 

 남경은 역사적인 고도이지만, 근대에 들어오면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더 유명하다. 1842년 1차 아편전쟁에 패한 청나라가 영국과 조약을 체결하여 외국에 중국 본토를 개방한 곳이며, 1937년에는 남경을 점령한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이 자행됐던 곳이다. 이 중에서 남경대학살은 약 30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에는 군인, 민간인 부녀자, 어린 학생, 심지어 유아까지 처참하게 살해했던 것으로 밝혀져 남경대학살은 중국이 당한 이민족의 침략 중에서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1912년 손문은 이곳을 중화민국 임시정부의 수도로 정했으며, 중일전쟁 때에는 국민당 정부의 소재지이기도 했다.

 

 

남경의 대표적인 연등 축제 금릉연등회(金陵燃燈會)

 남경에서는 뚜렷할만한 대규모의 축제는 없지만, 부자묘를 중심으로 작은 축제가 열리곤 한다.

 매년 4월~10월 약 5개월간 전통상가지역으로 변모한 부자묘 주변에서는 작은 축제들이 벌어지는데, 야시장을 오랜 시간 벌여놓고 등불전시, 가무출연, 공예품 현장제작 및 전통음식 맛보기 등 특색있는 활동을 벌인다.

 또 매년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동안은 금릉연등회를 열어,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 밖에 공자를 공양하는 곳이니만큼 모의과거시험장소를 차려 그때의 모습을 재현하고 관광객들도 참가시켜 색다를 재미를 주고 있다.

 

 

음 식

남경의 음식점

- 남경에도 고급호텔과 고급식당이 많이 있지만, 그것보다도 샤오차이(小菜)라 불리는 간식거리들을 맛보는 것이 재미있을 것이다.

 

- 남경은 그런 것들이 풍부한 도시이기 때문에, 길거리의 포장마차를 그냥 지나치지 말고 조금씩 맛보는 것도 좋다. 포장마차가 많은 곳은 남경의 번화가 두 곳인데, 한군데는 골동품상가로 번화한 부자묘에서 진회하로 이어지는 남쪽 일대인데, 야시장 등의 자유시장이 자주 열리는 곳이니만큼 간식거리도 풍부하다. 또 하나는 신가구 주변인데, 중국 10대 백화점의 하나로 꼽히는 인민상점이나 식료품, 의류, 책 등의 대형점포가 줄지어 이어져 있다.

 

- 또 좀 비싸지만 고급스럽고 운치있는 곳을 찾으려면 신가구로에 있는 승리반점이나 금릉반점에 가면 되는데, 승리반점에서는 중국풍 케익과 커피를 맛볼 수 있으며, 금릉반점에는 회전 레스토랑이 있어서 시내를 한눈에 바라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남경기후(℃)

도시명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남  경

(南 京)

최고평균

7.1

8.9

13.4

20.1

25.5

28.8

32.0

31.9

27.4

22.2

16.0

9.8

최저평균

-1.3

0.4

4.5

10.4

15.9

20.5

24.6

24.1

19.2

12.6

6.1

0.3

평 균

2.9

4.6

8.9

15.2

20.7

24.6

28.3

28.0

23.3

17.4

11.0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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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 명소

강남 원림과 민국시대의 유럽풍 건축이 한곳에 - 난징 총통부(总统府)

 원래는 명나라 제3대 황제인 영락제의 차남 주고후(朱高煦, 1380~1426)의 저택이었다. 청나라 때 강희(康熙)와 건륭제(乾隆帝)가 강남 순방 시 행궁으로 사용했고, 1851년 태평천국을 이끈 홍수전이 이곳에 천왕부(天王府)를 지으면서 '중국 근현대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 훗날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의 임시 대총통이 된 쑨원과 국민당의 장제스도 공산당에 쫓겨 타이완으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이곳을 공관으로 사용했다.

 파란만장한 중국 근대사에 관심 있다면, 난징에서 제일 먼저 가 봐야 할 곳이 여기이다. 1998년에 '난징 중국 근대사 박물관(南京中国近代史博物馆)'이 되었다. 총통부(总统府)라고 적힌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오면 크게 3구역으로 나뉜다. 중축선을 따라 국민당의 총통부가 이어지고, 서쪽에는 쑨원이 임시 총통 시절 업무를 보던 사무실과 비서실 등이, 동쪽에는 행정원 등이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천하위공(天下为公)' 편액이 걸린 중국풍 장랑이다. 장랑을 따라 홍수전의 체취가 짙은 동쪽 구역부터 관람한다. 태평천국 운동으로 난징을 점령한 홍수전이 신하를 접견하고 예식을 거행했던 천왕보좌(天王宝座)가 흥미롭다. 또 눈여겨볼 곳은 중축선 맨 끝에 있는 자초루와 서쪽 구역에 있는 후원이다.

 

* 자초루(子超楼)

 중화민국 총통부의 주요 건축물로 1934년에 건설했다. 엘리베이터를 갖춘 서양식 5층 건물 외관이 웅장하다. 2층에는 총통과 부총통의 사무실이, 3층에는 회의실이 있다. 자초루에서 서쪽 구역으로 가는 길에는 아이보리색 서구식 장랑이 멋지게 이어진다.

 

* 후원(煦园)

 명나라의 사가 원림을 복원했다. 원래 주인이었던 주고후의 이름에서 ‘후’를 따와 후원이 되었다. 예쁜 호수와 중국풍 정자가 고층 빌딩에 둘러싸인 풍경이 매우 이채롭다. 호수는 홍수전이 천왕부를 지을 때 판 것이라고 한다. 직사각형으로 판 호수는 강남의 원림에서 보기 드문 형식이다. 여기에는 태평천국군의 '천하태평 인인평등(天下太平, 人人平等)'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o 위치: 南京市 白下区 东长江路 292号

o 요금: ¥40

☎: (025)8457-8718

o 가는 법:

- 지하철 2, 3호선 다싱궁(大行宫) 역 하차, 1번 또는 5번 출구로 나와서 오른쪽길 따라 쭉 걸으면 횡단보도 건너에 스타벅스가 있다. 스타벅스에서 오른쪽 건물이 총통부.

- 201, 202번 버스 타고 쭝퉁푸(总统府) 정류장 하차.

o 이용시간: 3~10월 07:30~18:00, 11월 07:30~17:30, 12~2월 08:00~17:00

o www.njztf.cn

 

 

중화민국 시절의 난징을 재현한 거리 난징 1912(南京1912)

 '1912'는 중화민국이 수립된 해를 의미한다. 당시는 서구 열강이 대거 중국에 진출하면서 유럽풍 건축 양식이 유행했다. 거리에 회색 벽돌로 지은 이국적인 건축물이 밀집해 있다. 상하이의 신천지처럼 건물마다 분위기 좋은 카페와 레스토랑, 바가 입점해 있다.

 총통부와 이웃해 있어서 총통부를 관람하고 나오는 길에 식사하기 좋다. 한국, 홍콩, 프랑스, 이탈리아 요리를 비롯해 인기 훠궈 체인점인 더우라오팡(豆捞坊, Dolarshop), KFC, 피자헛 등이 입점해 있다.

 마구간 건물을 개조한 스타벅스가 이 거리의 명물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영화세트장처럼 다소 인위적이지만, 난징에 온 기념사진을 찍기에 적당하다.

 

* 위치: 총통부와 동일

 

 

남경의 자랑 중산릉(中山陵, 중산링)

 남경의 동쪽, 환중산에 위치한 손중산(孫中山, 孫文, 1866~1925)선생이 묻혀 있는 곳이다.

 흔히 혁명의 아버지라 불리는 손문의 호인 중산(中山)이라는 이름을 붙여 지은 곳으로, 위대한 민주혁명의 선두자 손중산선생이 이곳에 잠들어 있으며, 중산릉은 그로써 중요한 역사적, 정치적 지위를 갖게 되었다. 이곳은 1926년부터 1929년의 약 3년에 걸쳐 완성되었는데, 넓이가 6.6km, 길이가 7km, 총 면적이 20여㎢에 이른다. 지리적으로는 아열대북온대에 속해 있어서 사계절이 분명하고 기온이 적당하다. 연평균 강수량은 900~1000mm, 평균기온은 15.7℃ 이상으로 강소성에서 제일 큰 삼림공원이기도 하다.

 또 이곳은 한 사람의 묘라는 것을 잊게 할 만큼 주변 자연조건과 경관이 뛰어나 200여 군데의 볼거리들이 있고, 600여종의 자연식물들과 어울러져 자연미와 인공미가 조화된 여행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중산릉의 앞에는 커다란 반월형의 광장이 있고, 광장에 손중산의 동상에 서있다. 또 중산릉으로 오르는 참배로의 계단은 392계나 되고, 계단 도중에는 금빛의 단지가 장식되어 있다.

 

 계단을 다 오르면 제당이 있고 그 뒤에 묘실이 있다. 묘실에는 손문의 와상이 안치되어 있고, 지하에는 관이 안치되어 있다.

 1925년 3월, 국민혁명이 한창일 때 북경에서 손문이 객사한 뒤인 1927년 6월, 손문의 장례가 국민정부 치하의 남경에서 국장으로 행하여지고, 이곳 남경 교외 자금산록에 그 유체를 매장하였다. 국민정권은 대만으로 옮긴 뒤, 대북에 중산릉을 만들었으나 그곳은 물론 진짜가 아니며, 이곳 남경중산릉이 진짜 손문선생의 묘이다.

 또한 손문선생과 이곳 중산릉, 손문기념관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http://www.sunyat-sen.org이나 http://www.zhongshan.org.cn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영곡사(靈谷寺)

 중산릉 동쪽에 있는 자금산풍경구에 속한 작은 절이다.

 원래 이름은 개산사(開善寺)이고, 514년 남조 양무제(梁 高祖 武皇帝 蕭衍, 464~549, 재위: 502~549) 때 건설되었다. 그때 처음 건설되었을 때는 지금의 명효릉((明孝陵))이 있는 자리에 지어졌으나, 명나라의 창업자 홍무제(洪武帝) 주원장(朱元璋) 14년(1318) 때 명효릉을 만드는 바람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면서 이름도 개산사에서 영곡사로 바뀌었다.

 

 영곡사는 수려한 산세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 종산풍경중에 제일로 꼽히며, 그 중에서도 무량전(无梁殿)과 영곡탑(灵谷塔)은 이곳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무량전은 1381년에 이곳으로 사원 전체가 옮겨졌을 때 같이 옮겨온 것으로 높이가 22m, 넓이가 53.8m이다.

 

 다른 사원에도 무량전이 많이 있지만 이것은 중국에 현존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큰 무량전이다.

 

 

 또한 영곡탑은 영곡사 뒷쪽에 있는 높이 60m, 9층 8면의 동탑이다. 1929년 중산릉의 주요한 공정이 완공된 후에 영곡사 뒷편에 개혁기념탑을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의 영곡탑이다. 또 탑속에 계단이 있어서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o 위치: 南京市 玄武区 灵谷寺 2号

o 요금: ¥35

☎: (025)8444-6443

o 가는 법: 중산릉 입구에서 영곡사까지 전동차(¥5) 탑승.

o 이용시간: 06:30~18:30

 

 

▲ 현대 7대 불가사의 - 영곡탑(灵谷塔)

 영곡탑(灵谷塔) 혹은 자기탑은 난징에 있는 탑으로, 대보은사의 일부였다. 중국 난징에 위치해 있으며, 15세기 명나라 시대에 건축되었다. 하지만 19세기 태평천국의 난 때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현재 그 복제품이 난징에 복원되어 있다.

 2010년에 한 중국 사업가가 난징시에 영곡탑을 복원하기 위해 1억 5600만 달러를 기부하였다. 이는 중국 역사상 개인이 낸 기부금 중 가장 많은 액수이며, 2015년에 복원된 영곡탑과 그 주변 일대가 대중들에게 개방되었다.

 영곡탑은 15세기 영락제(永樂帝, 1360~1424, 명 제3대 황제, 재위: 1402~1424) 시기에 건축되기 시작되었다. 간간이 난징을 찾는 유럽의 여행자들에 이 영곡탑이 외부 세계에 알려지게 되자, 이 탑은 세계의 불가사의에도 종종 선정되었으며, 이런 소문이 확산되자 중국인과 외부인들 모두에게 중요한 보물로 여겨졌다. 1428년에 명나라 황제는 관리 '정혜'에게 대보은사의 복구를 명했고, 1431년에 대보은사의 복구가 완료되었다.

 

 1801년에 영곡탑은 낙뢰를 맞고 맨 위 4층이 불타 버렸으나, 곧 복구되었다. 1843년에 유럽 모험가에 의해 발간된 책 속 내용에는 19세기 아름다운 영곡탑의 모습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을 정도로 이 영곡탑의 명성은 잘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후에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났고, 반란군들이 난징을 점령한 후 이 탑은 망가뜨려졌다. 그들은 절의 불화들을 부수었고, 청 황실을 부정하기 위해 탑 내부의 계단을 모두 헐어 버렸다. 2년 후, 반란군들은 청나라 군대가 이 탑을 점령하여 그들을 감시하지 못하도록 이 탑을 완전히 불태워버렸다. 이후 탑과 사찰에 쓰였던 자재들은 모두 다른 곳에 쓰기 위해 헐려 나갔고, 최근까지 빈 터로 남아 있었다.

 

 탑은 팔각형의 모양을 하고 있었고, 그 직경은 약 30m였다. 완공되었을 때, 탑은 79m의 높이를 자랑하며 당시 중국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들 중 하나였다. 탑은 9층이었고, 속에는 계단이 있어 오를 수 있었다. 탑의 꼭대기는 금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1852년에 난징을 방문한 미국 선원들에 따르면, 원래는 9층보다 더 층을 올릴려고 했다고 하나 무산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곡탑의 높이를 넘는 탑은 중국에도 별로 많지 않았다.

 

 탑은 백색 벽돌로 만들어졌고, 이로 인해 낮에는 햇빛을 찬란하게 반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밤에는 140개가 넘는 풍등으로 탑을 빛냈다. 벽돌 속에는 다양한 색의 유리와 돌가루들을 섞어, 다양한 색조의 벽돌들을 만들어 탑의 외벽에 동물, 꽃과 같은 무늬들을 구성했다고 한다. 또한 탑은 수없이 많은 불화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명태조의 무덤 명효릉(明孝陵, 밍샤오링)

 효릉(孝陵, 샤오링)은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朱元璋)과 황후 마(马) 씨의 무덤이다. 황후의 시호였던 '효자(孝慈)'에서 이름을 따와 효릉이 되었다. 난징의 동부 외곽에 숲이 울창한 쯔진 산(紫金山) 아래 5만㎡를 차지하고 있다. 황후가 세상을 뜨자 1381년부터 능원을 조성하기 시작해 1413년에 완공했다. 무려 32년에 걸쳐 완성된 효릉은 명나라 초대 황릉이란점, 뒤이어 베이징에 조성된 명13릉과 청나라 황릉의 표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규모가 워낙 방대해 명효릉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5개나 된다. 체계적으로 돌아보는 방법은 지하철 2호선 하마방(下马坊) 역에서 여행을 시작하는 거다. 먼저 명나라 문무관이 말을 타고 와 내렸던 하마방 공원(下马坊公园)을 둘러본다. 말을 묶고 여물을 먹었던 장소가 잘 보존돼 있다. 계속해서 명효릉 표지판을 따라 걷다 보면, 효릉을 둘러싼 외곽 성의 정문 격인 대금문(大金门)이 나온다. 문을 통과하면 사방성 안에 주원장의 평생 업적을 기록한 신공성덕비루(神功圣德碑楼)가 웅장하다. 뒤이어 효릉에서 주목해야 할 신도(神道)가 등장한다. 

 

 

 

석상로 신도(石象路神道)

 신도 양 옆에 각각 일렬로 석상이 늘어서 있다. 실물 크기의 코끼리, 말, 상상 속 동물인 기린(麒麟), 낙타 등 총 12쌍의 동물이 있다. 이 중 특히 주목할 것은 낙타 석상이다. 명효릉에서 최초로 황제의 능 앞에 낙타 석상이 등장했다. 당시 낙타는 국력의 굳건함과 서역의 안녕을 상징했다고 한다. 뒤이어 옹중로(翁仲路) 신도에는 4쌍의 문무관 석상이 이어진다. 석상 위로 우람하게 자란 나무들이 꽃을 피우는 봄, 울긋불긋 낙엽이 물드는 가을에 낭만적인 산책로로 변신한다.

 

효릉(孝陵)

 옹중로에서 200m쯤 걸으면 릉의 입구로 가는 금수교(金水桥)가 있다. 다리 건너서 효릉의 첫 번째 문인 문무방문(文武方门)을 통과하면, 비전(碑殿)을 지나 주원장과 황후의 위폐를 모신 향전(享殿)이 있다. 아담한 향전보다는 건축을 떠받치고 있는 3단 대리석 기단이 아주 운치 있다.

 뒤로 내홍문(内红门)을 지나면 명효릉에서 가장 높은 곳에 지은 명루(明楼)가 이어지고,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육중한 회색 벽에 ‘이 산이 명태조의 무덤입니다(此山明太祖之墓)’라고 적혀 있다. 벽 뒤의 산 아래 주원장과 마황후의 지하 궁전이 있다. 명루에 올라가면 원형의 산과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명효릉에 지어진 건축들은 태평천국 운동 중에 대부분 훼손되었다. 효릉도 상당부분을 1998년과 2008년에 복원한 것이다.

 

Travel Tip: 명효릉→중산릉→영곡사 순서로 둘러보자.

 명효릉, 중산릉, 영곡사는 서로 이웃해 있다. 중산릉은 무료관람이고, 명효릉(明孝陵, ¥70)+영곡사(灵谷寺, ¥35)+음악대(音乐台, ¥10)+미령궁(美龄宫)이 포함된 패키지 티켓을 판매한다. 음악대와 미령궁은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시간이 있으면 보고 없으면 패스.

 여행자들은 대개 명효릉과 중산릉과 영곡사를 하루 동안 둘러본다. 세 곳을 연결해주는 전동차가 있어서 편리하게 돌아볼 수 있다.

 순서는 명효릉→중산릉→영곡사 순으로 보는게 효율적이다. 명효릉을 보고 다시 금수교를 지나 왼편으로 걸어가면 출구가 있다. 출구 밖에 파란색 전동차(¥5)가 중산릉으로 간다. 금수교 바로 옆에 서 있는 흰색 전동차는 요금이 ¥10이나 하고, 인원이 찰 때까지 오래 기다려야 한다.

 

o 위치: 南京市 东郊 紫金山 南麓 独龙阜玩珠峰下

o 요금: ¥70, 패키지 티켓(套票) ¥100

☎: (025)8444-6111

o 가는 법: 지하철 2호선 샤마팡(下马坊) 역 하차, 2번 출구에서 도보 3분.

o 이용시간: 06:30~18:00

 

 

현무호공원(玄武湖公園)

 남경 동북부에 위치한 호수공원이다. 공원 안에 현무호라는 호수가 위치해 있는데, 총 공원면적의 1/9을 차지한다. 호수 안에는 5개의 작은 주(洲)가 있는데, 그래서 이곳의 옛이름은 오주공원(五洲公園)이다.

 각 주간에는 작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공원안에 놀이공원, 음식점, 식품점 등이 구비되어 있어서 남경시민들의 종합위락공원으로서 이용되고 있다.

 이곳 현무호의 물은 4계절이 푸르르고, 각주의 초목과 꽃들이 만발해 있어서 한폭의 그림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현무호는 기록에 의하면 역사가 아주 오래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진나라 원제 3년 때부터 송, 명조를 거쳐 수군의 훈련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현무호라는 이름은 송대에 호수에서 검은용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붙여졌고, 1911년에 공원으로 정해졌다.

 

o 위치: 南京市 玄武区 玄武巷 1号(近洞庭路)

o 요금: 무료, 현무문 ¥30

☎: (025)8361-4286

o 가는 법: 지하철 1호선 타고 쉬안우먼(玄武门) 역 하차, 3번 출구에서 도보 5분.

o 이용시간: 06:00~21:00, 현무문 08:30~17:00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중의 하나인 남경부자묘(夫子廟, 푸즈미야오)

 중국 각 도시에 퍼져있는 크고 작은 공묘(孔廟)중의 하나로 규모는 곡부(曲阜)의 공묘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강남을 대표하는 고건축물이면서 남경의 대표적인 관광성지다.

 중국어 '푸쯔(夫子)'는 공자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남경시 중심, 진회 강변에 위치한 남경부자묘는 중국 고대 저명한 대 사상가이면서 교육자인 공자를 공양하고 제사지내기 위한 곳이다. 간단히 '문묘'라고도 불리며, 달리는 '문선왕묘'라고도 불린다.

 부자묘라는 이름은 공자가 옛부터 사람들에게 존경의 의미로 '공부자'라 불리웠는데, 그 이름에서 따와 붙인 것이다.

 이곳 부자묘는 1034년에 만들어졌고, 동진학궁을 넓혀 세운것으로 넓은 규모이며 명청의 건축을 대표하는 대성전을 비롯한 고건축물들의 집합체다. 전쟁과 화재로 몇차례 불에 타서 1869년, 1984년에 걸쳐 중건되었다. 마지막으로 중건된 1984년에는 시, 구의 인민정부가 이곳을 고도문화유산중 하나로 지정했고 전문역사가들에 의해 역사적으로도 다시 보정, 재건되었다. '중국의 4대 공자 사당'으로 꼽힌다.

 지금의 부자묘는 남경의 명성고적중 하나로서 고성 남경의 특색있는 풍경구로 자리잡고 있으며, 외국에 알려져 1991년에는 국가의 '40대 중국여행성지'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특히 1984년 복건된 이후에 8천여만 명이 이곳을 방문했고, 평균적으로 매일 십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또한 매 음력 5월 초에서 보름간, 금릉등회라는 행사가 이곳에서 열리기도 하는데, 기간동안 등불로 장식된 진회강을 볼 수 있으며, 부자묘를 거닐면서 금릉서화와, 무술기공, 민간공예, 전통풍속 놀이등 중국 고대 풍습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행사들을 감상할 수 있다.

 한편 부자묘 주위의 진회강은 남경의 주요 하류로, 옛부터 6조의 금분(金粉)이라 불리는 옛스러움이 가득한 곳이다. 그러한 분위기에 맞는 상점들이 부자묘 근처에 많이 있어서 국내외 관광객들이 쇼핑을 하러 자주 들리는 곳이기도 한다.

 

부자묘 일대는 난징 제1의 번화가

 부자묘에는 들어가지 않아도, 부자묘 일대는 꼭 가 보자. 진시황이 '난징에서 천자가 나올 기운이 있다'는 경고를 듣고 물길을 바꿨다는 친화이허(秦淮河)가 부자묘 앞으로 흐른다. 강을 중심으로 강남의 수향 마을에서 봄직한 예쁜 수로와 고풍스런 건축들이 이어진다. 강변을 따라 펼쳐진 노천 카페, 부자묘 미식거리(夫子庙美食街)는 낮부터 밤까지 인파로 북적인다.

 저녁이면 홍등을 밝혀서 낮보다 더 화려하고 운치 있다.

 다만 초입에서부터 난징의 명물인 처우더우푸(臭豆腐) 냄새가 진동한다. 부자묘 등회가 열리는 기간은 1년 중 가장 아름답다.

 

o 위치: 南京市 秦淮区 秦淮河北岸 中华路(近贡院街)

o 요금: ¥30

☎: (025)8662-0123

o 가는 법:

- 지하철 1호선 싼산제(三山街) 역 하차, 3번 출구로 나와서 오른쪽 길 따라 쭉 걸으면 사거리가 나온다. 횡단보도 건너서 직진하면 남경 부자묘(南京夫子庙) 패방이 나온다.

- 지하철 3호선 푸쯔먀오(夫子庙) 역 하차, 3번 출구.

- 난징 역 남광장에서 44번 버스 타고 젠캉루 · 푸쯔먀오(健康路·夫子庙) 정류장 하차.

o 이용시간: 09:00~22:00

o www.njfzm.net

 

 

강남의 4대 명원 중 하나인 첨원(瞻园)

  강남을 대표하는 원림 중 하나로, 명나라의 개국 공신인 서달(徐达)의 자택이었다. 첨원은 청나라 때부터 태평천국(太平天國)이 무너지기까지 관료들이 사용했었다. 부자묘에서 걸어서 5~7분이면 갈 수 있고, 원림과 그 내부에 있는 태평천국 역사 박물관(太平天国历史博物馆)이 볼 만하다.

대개 남문을 통해 입장한다.

문 위에 걸린 첨원(瞻园)편액은 건륭이 방문했을 때 쓴 것이다.

 아름다운 원림이 펼쳐지기 전에 중국 태평천국 역사연구회(中国太平天国历史研究会) 건물이 먼저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태평천국 역사 박물관이다. 실내 중앙에 태평천국 운동을 이끌었던 홍수전(洪秀全)의 흉상이 서 있다. 1835년 전국에 200만 명이 아편에 중독됐다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태평천국 운동 소개를 비롯해, 홍수전이 입었던 곤룡포, 태평천국의 옥새, 무기, 화폐 등이 풍성하게 전시돼 있다. 마지막은 태평천국 운동 실패에 대한 교훈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홍수전이 스스로 고백하는 10가지 잘못이 인상 깊다.

 박물관 출구에서 나오면 곧바로 원림으로 이어진다. 누창이 이어지는 회랑을 걸어 정자에 이르면 정원과 연못이 펼쳐진다. 전란으로 파괴된 것을 1980년대 새로 복원해서 예스러운 멋은 덜하지만, 태호석 1,800t을 사용해 꾸민 가산이 아름답다. 가산에서 흘러 내리는 폭포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예쁜 풍경을 바라보고 새소리 들으며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담장 밖은 떠들썩한 도심인데, 나무에 둘러싸인 원림 안은 고요하고 공기마저 다르다. 자신만의 한적한 공간을 찾아 원림을 감상해 보자.

 

o 위치: 南京市 秦淮区 瞻园路 128号

o 요금: ¥30

☎: (025)8662-3024

o 가는 법:

- 지하철 1호선 싼산제(三山街) 역 하차, 3번 출구로 나와서 오른쪽 길을 따라 쭉 걸으면 사거리가 나타난다. 횡단보도를 건너 직진하다 오른쪽으로 잔위안루(瞻园路)가 나오면 꺾어서 도보 2분. 지하철 출구에서부터 도보 10분 이내.

- 난징 역에서 44번, 영곡사에서 202번 버스 타고 중화루· 잔위안루(中华路· 瞻园路) 정류장 하차.

o 이용시간: 08:30~17:00

 

 

태평천국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곳 태평천국역사박물관

 남경성 부자묘 서쪽에 있는 중국에 있는 유일한 태평천국역사박물관으로 1850년 금전의 봉기부터 1864년 천경 함락에 이르기까지의 온갖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명시대의 이 건물은 원래 명을 건국한 주원장이 황제가 되기 전에 사용했던 오왕부(吳王府)였는데, 그 이후 개국공신 서달(徐達)에게 주어져 정원으로 바뀌었다. 또 청대에는 건륭제가 이곳을 첨원이라 명명했고, 태평천국 시대에는 양수청(楊秀淸)이 왕부로 삼았던 곳이기도 하다.

 태평천국박물관 옆의 섬원(贍園)은 남경의 유명한 정원중의 하나로, '선인봉(仙人峰)'이라는 석산을 볼 수가 있다. 산앞에는 연못이 거울처럼 빛나고, 산북쪽에는 인공폭포가 있어서 그 안의 정자에 앉아 시원하게 자연을 즐길 수 있다.

 

 

고대 남경성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남경성벽(南京城墙)

 남경 성벽은 1366년에 건설되기 시작해, 명나라 홍무 29년(1386년)에 완성된 고대 도성벽이다.

 총 길이가 33.676km로 규모면에 있어서 세계 제일이며, 중화민족및 전인류의 진귀한 역사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남경은 중국 6대고도중의 하나로 저명한 역사문화도시다. 2400년전에 이미 도시가 건국되었고, 열개의 고대 왕조가 이곳에서 세워졌다가 사라졌다. 명도성이라는 것을 보면 명대 남경성의 규모와 격조를 알 수가 있는데, 그때의 유적들이 지금까지도 남아 남경의 주요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명도성은 600년이라는 시간동안 전쟁과 인류의 파괴로 많이 파손되어 지금은 3.743km 길이의 규모만이 남아 있다.

 그때 남경성에는 13개의 문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취보문(지금의 중화문), 석성문(지금의 한서문), 청량문, 신책문(지금의 화평문) 등의 네 개다.

 그 중에서 제일 규모가 큰 것은 중화문(中華門)이다. 남경성의 정문으로서 길이가 128m, 폭이 118.5m, 총 면적이 15000㎡다.

 또 청말 이후에 만들어진 문도 지금까지 남아 있는데, 현무문, 해방문,중산문 등이 그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특히 개방개혁이후에 남경 명 고성벽에 대한 대규모의 수리공사가 진행되었는데, 지금도 5년에서 7년의 시간에 걸쳐 전부 수리복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연자기(燕子磯)

 장강대교에서 장강을 바라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다리 완성 전 장강의 옛 모습을 바라보는데는 이곳이 좋다. 건륭 16년인 신미년(1751년) 늦은 봄, 강남으로 순행하던 황제가 이곳에서 느낀 감개를 기록한 것이다. 기두에 멈춰서면 장강은 도도히 동쪽으로 흘러가고 건너편 물가는 저 멀리로 아련하게 흐려 보인다.

 새삼 장강의 웅대함에 놀라고 발 아래로 부딪쳐 부서지는 파도는 장강 물살의 빠름을 알게 해준다. 이곳에도 남경 대학살 기념비가 있다. 

 

 

난징 박물원(南京博物院)

 1922년 중화민국의 국민당 정부는 수도 난징에 국립 중앙 박물원을 설립하기로 했다. 10년 뒤 만주사변이 발발하자 베이징에 있던 유물들도 이곳 난징으로 옮겨와 보관하고 있었다. 1948년 국민당은 타이완으로 퇴각하는 과정에 국보급 유물 대부분을 가지고 갔다. 이로써 국립 중앙 박물원 건립은 물거품되었지만, 난징 박물원은 중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박물관이다. 총 40만 점의 문물이 전시돼 있고, 그중 10여 점이 국보급이다.

 총 6개 테마인 역사관(历史馆), 기획전시관(特展馆), 예술관(艺术馆), 디지털관(数字馆), 민국관(民国馆), 무형문화관(非遗馆)으로 나뉘어 있다. 전부 돌아보려면 하루가 모자랄 정도다. 2~3시간 안에 돌아본다면 역사관과 민국관을 추천한다. 역사관은 장쑤 성 일대에서 발굴된 선사시대부터 청대까지의 문물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중앙에 있는 역사관(历史馆)은 2층으로 입장해서 1층으로 관람하는 구조다.

 공룡과 매머드 화석부터 토기와 청동기 유물을 볼 수 있다. 전국시대의 착금은립조기하문호(错金银立鸟几何纹壶)가 국보급 유물이다. 남조의 죽림칠현(竹林七贤) 역시 수작이다. 16세기 쑤저우 일대에서 시작하여 경극의 토대가 된 곤곡(昆曲), 이싱(宜兴)에서 제작된 자사호(紫砂壶)를 눈여겨볼 만하다.

 민국관은 중화민국 시절의 난징 거리를 생생하게 재현해 놓았다. 기차 플랫폼, 우체국, 옛 상점 등이 즐비해서 기념사진을 찍기 좋다. 우체국에서는 실제로 엽서를 붙일 수 있다. 그 밖에 매 분기 특별전이 열리는 기획 전시관도 볼만한다.

 

o 위치: 南京市 玄武区 中山东路 321号

o 요금: 무료(여권 지참)

☎: (025)8480-7923

o 가는 법: 지하철 2호선 밍구궁(明故宫) 역 하차, 1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o 이용시간: 09:00~17:00, 매주 월요일 휴관

o www.njmuseum.com

 

 

중국이 독자적으로 건설한 남경대장교(南京大長橋)

 남경하면 떠오르는 남경의 상징이다. 북경에서 남경으로 오는 길에 이 다리가 보임으로써 남경에 도착한 것을 알린다.

 남경시 하관과 포구 사이의 누렇고 드넓은 장강에 길게 놓인 6,772m 길이의 다리로 중경, 무한, 남경의 세 도시에 걸쳐져 있다. 이곳은 2층으로 되어 있어서 2층이 도로이고 아래층이 철도다.

 이 다리는 90년대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가장 긴 철로 및 공로였다. 아래의 철로는 총 길이가 1,577m고, 남북 양안을 이어주고 있는데 전체 총길이를 합하면 6,772m다. 동시에 두대의 열차가 통과할 수 있고, 윗층의 도로에는 4차선으로 되어있다.

 남경장강대교는 1960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968년에는 열차와 자동차가 통과하기 시작했는데, 이곳은 중국이 독자적으로 건설한 것으로서 공인, 학생, 군대 등 각층의 중국 시민이 참가해 완성시킨 것으로 중국 건축기술의 현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다리로 인해 화물과 여객운송에 있어서 편리를 가져오고 남북의 교통을 더욱 원할하게 해주었다.

 

 

우화대열사 능원(雨花臺烈士陵園)

 육조의 왕인 光法師(광법사)가 경을 읽을 때 감동한 하느님이 꽃을 비처럼 내려 주었다는 전설에서 공원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당이 지배했던 시대, 이곳은 형장(刑場)으로 1927년부터 22년간에 10만 명 이상의 공산당원과 반국민당 세력이 처형되었다.

 거대한 열사상 뒤쪽으로 가면 열사의 기념관이 건설되었는데 형장에서 죽은 열사들의 사진과 유품, 당시의 감옥과 고문 기구 등이 전시되고 있다.

 

 공원에는 물에 들어가면 빨갛게 된다고 전해지는 우화석이 선물용품으로 팔리고 있다.

 

 

완벽하게 보존돼 있는 명나라의 옹성(饔城) 중화문(中華門)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난징을 도읍으로 정한 후 21년에 걸쳐 성을 축조했다. 난징의 지형에 따라 성벽이 산과 물에 인접하여 구불구불 연결된 것이 특징이다. 그 길이가 자그마치 35km이다. 성에는 총 13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중화문이 바로 정문이었다. 동서 길이가 118.5m, 남북 길이가 128m로 매우 웅장하다. 성문을 중심으로 옹성을 세 겹으로 쌓았다. 위에서 옹성을 내려다보면 '눈 목(目)'자를 닮았다. 성루에 오르면 난징 시가지와 눈목자 형태의 옹성(饔城)이 한눈에 들어온다.

 중화문이 특별한 이유는 가장 바깥쪽 옹성에 병사들이 몸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상하 두 층에 걸쳐 총 23개의 거대한 동굴(洞)이 있다. 벽돌을 튼실하게 쌓아 만든 동굴 하나에 100명 이상의 병사가 숨을 수 있어, 총 3,000명의 병사를 잠복시킬 수 있는 규모다.

 석두성(石頭城)에는 기념비가 쓸쓸하게 서 있고 주위는 일반 가정의 주택지가 늘어서 있다.

 그러나 성문 외에 다른 볼거리는 없다.

 

o 위치: 南京市 秦淮区 解放门 8号

o 요금: ¥50

☎: (025)8321-7200

o 가는 법: 지하철 1호선 타고 중화먼(中华门) 역 하차, 2번 출구로 나와서 2, 16번 버스로 갈아탄다. 중화먼청바오(中华门城堡) 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

o 이용시간: 08:00~17:30

o www.njcitywall.com

 

 

남경 대학살(The Rape of NanJing) 기념관

 1. 남경 대학살이란?

 1937년 7월 일본은 노구교(盧溝橋)사변을 빌미로 중일 전쟁을 시작한다. 먼저 천진을 점령한 일본은 이어서 계속 남하하기 시작하였고, 3개월만인 그해 11월 12일 상해를 점령한다. 남경에 있던 장개석 정부는 11월 20일 사천성 중경(重慶)으로 피난을 하게된다. 남경에 남아있던 15만 명의 중국군대는 남경을 수비하게 되었고, 일본군은 10만의 병력으로 이를 공격하게 된다. 12월 초에 일본군은 남경의 외곽을 점령하게 되고, 남경 시내에 대해 선무활동을 펴서 투항을 권유하나, 중국 수비대는 대포로써 대답하여 결사항전의 의지를 보인다.

 12월 10일 새벽 3시에 일본군은 남경시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재차 남경의 수비대에 투항을 권유하나 굽히지 않자 드디어 12시에 남경 총공격 명령을 내린다. 12월 12일 오후, 남경수비대장 당생지(唐生智)는 장개석의 명령을 받아 "본대는 포위망을 뚫고, 일부는 장강을 건너 탈출하라"는 지시를 수비대에 내린다. 이 명령은 결국 가장 중요한 도시전투에서 조직적인 저항도 못하는 동시에 안전한 후퇴도 못하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와서, 결국 대부분이 일본군에 포로가 되어 집단처형을 당하였다. 12월 13일 오전, 일본군은 남경시내에 부대별로 입성하였고, 대학살의 서막을 올리게 되었다.

 일본군의 남경대학살이라는 만행은 이미 치밀한 사전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중국 수도에서의 대학살을 통해 공포감을 조성하여 일본군을 두려워하게 한다'는 심리적인 우위를 차지하고자 한 것이었다. 당시의 일본군 화중총사령관은 "남경은 중국의 수도로 남경을 점령한 것은 국제적인 사건이다. 따라서 필히 상세한 계획을 세워 행동에 옮김으로써 일본군의 위상을 높이고 중국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이 지침에 따라서 남경의 13여 군데에서 거의 동시에 학살이 저질러졌으며, 사망자수가 30만에 달하는 전대미문의 만행이었다.

 

 일본군은 난징을 점령하자마자 항복한 중국군인들부터 패잔병을 처리한다는 명목으로 한꺼번에 사살했다. 나중에는 총알이 아까워서 칼로 난도질하거나 생매장했으며 민간인들도 마치 오락거리인양 닥치는대로 학살했다.

 끔찍한 광기 속에, 당시 일본의 도쿄니치니치(東京日日新聞)신문은 1937년 12월13일자에 난징에서 두 일본군 소위가 일본도(日本刀)로 누가 먼저 100인을 참수하는지 겨뤘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 등장한 참수경쟁의 주동자들은 무카이 도시아키(向井敏明) 소위와 노다 쓰요시(野田毅) 소위로 일본 언론들은 이 끔찍한 참상을 마치 스포츠 중계하듯이 보도했었다. 이들 외에 300명 참수에 도전한다는 군인들도 있었을 정도로 민간인 학살은 놀이처럼 자행됐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훨씬 끔찍한 일을 당했다. 강간과 학살은 다반사였고 임산부부터 어린아이, 노인까지 피할 수 없었다. 강간 후 살해당한 여성들의 숫자만 8만명을 넘을 것이라 추산된다. 6주간의 끔찍한 대학살이 끝난 이후에도 일본군의 가혹한 민간인 학살은 계속 자행됐고, 1939년부터는 의학연구기관이란 명목하에 들어선 생체실험 연구실이 수많은 민간인들을 실험대상으로 삼고 생체실험을 벌였다.

 중국계 미국인 작가인 아이리스 장(Iris Chang)이 난징대학살에 관해 논픽션으로 쓴 책인 '난징의 강간(The Rape of Nanking)'에는 학살 현장에 있었던 한 일본군인이 쓴 일기의 내용이 등장한다. 그 일기내용에는 "심심하던 중 중국인을 죽이는 것으로 무료함을 달랜다"는 끔찍한 내용이 담겨있다. 당시 일본군은 난징은 물론 주변지역에서 중국인은 눈에 보이는대로 학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따라 난징대학살 희생 규모를 40만명 이상으로 보는 학설들도 있다.

 

 

 그럼에도 이 모든 대학살 정황에 대해 일본정부는 발뺌하느라 바쁘다. 1937년 당시부터 대학살을 은폐하기 위한 시도는 이어졌다. 지난 2011년, 중국 장쑤(江蘇)성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가 출간한 '난징 대학살 사료집'에 따르면, 당시 일본은 난징대학살 은폐를 목적으로 서방 외교관들을 불러 매수를 시도했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 외무대신인 히로다 고키(廣田弘毅)가 주미 일본대사관에 보낸 비밀전문에서도 30만명의 민간인이 살육됐다는 내용이 나와있지만, 일본에서는 여전히 사망자를 2만~20만명 수준으로 추산하고 우익들은 아예 중국측의 조작이라는 억지주장을 펴고 있다.

 

 당시 참상에 대한 관련 기록물들은 지난 2015년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등재 당시에도 일본은 유네스코 측이 자국 의견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력 반발하기도 했다.

 

2. 남경대학살 기념관

 중국은 1949년 중화인민 공화국 설립 이후, 남경대학살의 만행을 기억하기 위해서 남경에 기념관을 만들었으며, 매년 12월 13일 남경대학살에 대한 언론홍보를 통해 전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남경대학살 기념관은 남경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3개의 위령비가 기념관 마당에 있고, 강동문(江東門) 학살지의 유골을 모아놓은 기념실, 일본군국주의 침략사 전시실 및 최근에 지은 일본군 만행 전시실등 3개의 전시실이 설치되어 있다.

 특히 일본군 만행 전시실은 상세한 역사적 증거물(사진, 일본군 출신들의 일기, 당시 남경거주 외국인들의 기록)을 분류, 전시해 놓아서 중국정부가 남경 대학살에 대해 철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경대학살 기념관 전시실에서는 중국정부의 이같은 입장을 다음과 같이 "結語-맺는말"로써 나타내고 있다. "다시는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 하지말자. 나라가 약해지면 또다시 치욕을 당할 수 밖에 없으니 절대로 과거와 같이 낙후되지 말고,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하자."

 

3. 노구교(盧溝橋) 사건

 노구교는 북경의 서남쪽 15㎞에 위치한 다리로서 일본 군국주의의 중국침략에 구실을 제공해 주는 역사적인 곳이다. 여기서 일본군은 자신의 군인 1명이 실종되었다는 억지를 주장하면서 중일전쟁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o 위치: 南京市 建邺区 水西门大街 418号(近云锦路)

o 요금: 무료(여권 지참)

☎: (025)8661-2230

o 가는 법: 지하철 2호선 윈진루(云锦路) 역 하차, 2번 출구에서 도보 3분.

o 이용시간: 08:30~16:30(매주 월요일 휴관)

o www.nj1937.org

 

 

화룡점정(畵龍點睛)

 畵: 그림 화.    龍: 용 룡.    點: 점 찍을 점.    睛: 눈동자 정.

 용을 그리는데 눈동자도 그려 넣는다는 뜻.

 ① 사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완성시켜 끝손질을 함.

 ② 사소한 것으로 전체가 돋보이고 활기를 띠며 살아남의 비유.

 

<출전>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 장승요(張僧繇)

 

 장승요(張僧繇)는 남북조(南北朝) 시대, 남조인 양(梁: 502~557)나라의 아주 유명한 화가로 용을 매우 잘 그렸다.

 전하는 말에 다르면 장승요는 일찍이 금릉(金陵), 즉 오늘날 난징(南京)의 어느 사원에서 용을 그린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사원은 안락사(安樂寺)라고 하는 절이었다. 장승요의 용은 안락사 담벼락에 그려졌고, 모두 네 마리가 있었다. 그 용들은 대단히 생동적으로 그려진 것이 정말이지 살아 움직이듯 마치 진짜 같았고, 용 비늘 하나 용 발톱 하나조차 매우 신기했다. 그런데 그림 속의 용은 눈알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모두 옥에 티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은 바로 절에 재회(齋會)가 있어 장이 서는 날이었다. 장승요는 안락사 재회에 물건을 사러 왔다.

 한 사람이 그를 알아보고는 그에게 왜 용의 눈을 그리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장승요가 말했다.

 "그릴 수가 없었소. 만약 용의 눈을 그렸다가는 용이 날아가 버렸을 거요."

 사람들은 당연히 믿지 않았고 그가 허풍을 떨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그에게 용그림에 눈을 그려 넣으라고 부추겼다. 장승요는 할 수 없이 붓을 들어 용의 눈을 그렸다.

 그가 그림을 그리면서 말했다.

 "용이 모두 날아가버리지 않도록 내가 용 두 마리에만 눈을 그리겠소. 용이 날아갈 때 다칠 수도 있으니 모두들 좀 물러나 있으시오."

 그는 재빠르게 용 두 마리의 눈을 완성했다.

 갑자기 번개가 치고 우레가 울리면서 큰 비가 억수같이 내렸고 바람소리가 거세졌다. 눈알이 그려진 두 마리 용은 하늘로 올라갔다. 오래지 않아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성어는 바로 여기에서 생겨난 것이다.

 

<예> 글 말미의 그 문장은 화룡점정 역할을 한다.

 

 

 

난징(南京) 먹거리

 장쑤 성을 대표하는 화이양차이(淮扬菜, 회양채)는 중국의 4대 요리 중 하나다. 역대 중국 황실의 요리를 책임지던 주방장 중에 이 지역 출신이 많았던 것만으로도 화이양차이에 산해진미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관광지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당은 광둥과 쓰촨요리 전문점이다.

 난징 특색의 음식을 찾는다면 부자묘 일대에서 흔히 파는 오리선지 국수 야쉐 펀쓰탕(鸭血粉丝汤), 소금에 절인 오리 옌수이야(盐水鸭)를 맛보자.  

 

소양 생전(小杨生煎)

 부자묘 보행 거리 맞은편에 있는 대형 쇼핑몰 '수이핑팡' 지하 2층에 있는 상하이식 군만두 전문점이다. 1인분에 4개인 군만두와 우리의 당면 같은 쫄깃한 면발이 가득 든 펀(粉) 한 그릇이면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군만두는 탱글탱글 새우살이 씹히는 다샤성젠(大虾生煎), 양념된 돼지고기 속이 맛있는 샤오양성젠(小杨生煎), 혹은 두 종류의 만두를 반씩 담아 주는 솽핀성젠(双拼生煎)을 주문하면 된다.

 

• 위치: 南京市 秦淮区 建康路3号 水平方 B2楼

• ☎: (025)5805-9327

• 이용시간 : 10:00~22:00

• 요금 : 1인 ¥20~

• 가는 법 : 지하철 1호선 싼산제(三山街) 역 하차, 3번 출구로 나와서 오른쪽 길을 따라 걸으면 사거리가 나온다. 횡단보도 건너서 직진하면 남경부자묘(南京夫子庙) 패방이 있다. 패방의 맞은 편 길 건너에 있다.

 

 

함형 주가(咸亨酒店)

 부자묘에서 가까운 장쑤성 요리 전문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청국장을 즐겨 먹는 것처럼 장쑤성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발효시킨 두부다. 이 식당의 대표 메뉴 역시 발효시킨 두부튀김 셴헝처우더우푸(咸亨臭豆腐) 그리고 말린 나물과 동파육 메이간차이커우러우(梅干菜扣肉)가 유명하다.

 

• 위치: 南京市 秦淮区 夫子庙 大石坝街 138号

• ☎: (025)5231-7979

• 이용시간: 11:00~21:30

• 요금: 2인 ¥160~

• 가는 법: 부자묘에서 도보 5분.   지하철 3호선 푸쯔먀오(夫子庙) 역 하차, 2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난징 대패당(南京大牌档)

 난징을 찾은 여행객들 사이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천장에 홍등 대신 황등을 잔뜩 걸어 놓은 인테리어가 예쁘다. 난징을 대표하는 음식인 야쉐펀쓰탕(鸭血粉丝汤), 옌수이야(盐水鸭)를 맛볼 수 있다. 옌수이야는 많이 짜니까 밥반찬으로 먹는게 좋다. 군만두 진파이젠자오(金牌煎饺), 딤섬의 대표 메뉴인 새우만두 수이징샤자오(水晶虾饺), 말린 버섯을 맛있게 조리한 간샹차수구(干香茶树菇)를 추천한다.

 

• 위치: 南京市 秦淮区 建康路3号 水平方 6楼

• ☎: (025)6817-6777

• 이용시간: 평일 11:00~14:00, 17:00~22:00, 토~일 11:00~22:00

• 요금: 2인 ¥120~

• 가는 법: 지하철 1호선 싼산제(三山街) 역 하차, 3번 출구로 나와서 오른쪽 길을 따라 걸으면 사거리가 나온다. 횡단보도 건너서 직진하면 남경부자묘(南京夫子庙) 패방이 있다. 패방의 맞은편 길 건너에 있다.

 

 

 외파가(外婆家)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중국 외식계를 평정한 체인점이다. 테이블마다 올라와 있는 쏸룽펀쓰샤(蒜蓉粉丝虾)는 새우와 가는 당면을 마늘에 요리한 것으로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전기구이와 삼계탕의 중간 버전 느낌으로, 차 향기가 나는 닭요리 차샹지(茶香鸡), 겉을 바삭하게 구운 삼겹살 와이포카오러우(外婆烤肉)가 맛있다.

 

• 위치: 南京市 秦淮区 建康路3号 水平方7楼

• ☎: (025)5805-9153

• 이용시간: 10:30~14:00,16:30~21:00

• 요금: 2인 ¥100~

• 가는 법: 지하철 1호선 싼산제(三山街) 역 하차 3번 출구 나와서 오른쪽 길 따라 걸으면 사거리가 나온다. 횡단보도 건너서 직진하면 남경부자묘(南京夫子庙) 패방이 있다. 패방의 맞은편 길 건너에 있다.

 

 

민국 홍공관(民国红公馆)

 중국 4대 요리로 꼽히는 장쑤성 요리 전문점이다. 민국시대 인테리어가 고풍스럽고 요리 플레이팅이 정갈해서 현지인들이 손님 접대 레스토랑으로 즐겨 찾는다. 동파육과 맛이 비슷한 훙샤오러우(红烧肉), 부드러운 소고기 요리 뉴옌리(牛眼粒)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맛이다.

 

• 위치: 南京市 玄武区 太平北路 56号 1912商业区 红公馆 3号楼

• ☎: (025)8431-1912

• 이용시간: 11:00~22:00

• 요금: 2인 ¥350~

• 가는 법: 지하철 2, 3호선 다싱궁(大行宫) 역 하차, 5번 출구에서 도보 5분.

 

 

다객노참(茶客老站)

 중식, 서양식, 한식뿐만 아니라 각종 차와 함께 중국식 스낵을 판매한다. 메뉴판에 사진이 있어서 주문이 쉽고, 중국인들은 식사 후에 차를 마시며 오래 쉬다 간다. 돌솥비빔밥, 스파게티, 덮밥, 국수류 등 대부분 단품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메뉴가 많다.

 

• 위치: 南京市 玄武区 太平北路 58号 南京 1912商业区 A4-1号(近总统府)

• ☎: (025)8451-3303

• 이용시간: 10:00~02:00

• 요금: 2인 ¥100~

• 가는 법: 지하철 2호선 다싱궁(大行宫) 역 하차, 1번 출구로 나와서 오른쪽 길을 따라 쭉 걷다가 횡단보도 건너에서 직진 2분.

 

 

황기황 삼즙민과(黄记煌三汁焖锅)

 먼궈(焖锅)는 중국식 찜 요리다. 메뉴판에 사진을 보고 재료를 주문하면 테이블 위에서 모든 재료를 한번 쪄낸다. 얼추 재료가 익으면 소스를 넣고 뒤적뒤적 익혀 먹는다. 마지막에 탕을 부우면 훠궈가 되는데, 여기에 연근, 배추, 국수 등을 익혀 먹으면 환상적이다.

 

• 위치: 南京市 秦淮区 中山东路288号 新世纪广场 4楼

• ☎: (025)8446-3199

• 이용시간: 10:30~21:30

• 요금: 2인 ¥150~

• 가는 법: 지하철 2호선 다싱궁(大行宫) 역 하차, 3번 출구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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