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泰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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泰山(태산· 타이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중국에서는 옛부터 5대 명산을 「五岳(오악)」이라 하였는데, 이 중에 東岳(동악)인 산동성의 泰山(태산)은 西岳(서악)인 섬서성의 華山(화산), 中岳(중악)인 하남성의 崇山(숭산), 南岳(남악)인 호남성의 衡山(형산), 北岳(북악)인 산서성의 桓山(항산)과 더불어 오악을 이룬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 태산은 「五岳之長(오악지장)」이니 「五岳獨尊(오악독존)」이니 하여 천하 제일의 명산으로 꼽았다.

 

 그 이유는 제왕이 이곳에서 하늘에 뜻을 받는 封禪(봉선)이라는 의식을 거행했기 때문이다. 일반 백성들에게도 이 산은 신령스런 산으로서 태산에 한번 오르면 지상에서 적어도 10년을 장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태산등정이 숙원이었다고 한다. 해발 1,532m의 산으로 등산이 시작되는  岱宗坊(대종방)으로부터 정상까지 약 9km이고 등산에는 5~6시간이 소요된다.

 

 

☮ 태산 등정

 4월부터 11월이 이곳을 여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때이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꼭 가보고 싶어하는 산이기 때문에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5월 1일 노동절과 10월 1일 국경절 이후로 10여일은 피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 비가 온 후에는 산 정상에서 운해를 쉽게 볼 수가 있는데, 그 모습이 또한 장관이다.

 태산의 등산 코스는 4가지가 있는데, 전통적이면서 일반적인 코스는 홍문로(紅門路)를 이용하는 두번째 코스로서 항상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이 홍문은 태산의 입구가 되는 곳으로 옛날에는 도교의 신상을 모셨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측백나무로 뒤덮힌 울창한 숲을 지나 가파른 돌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중턱의 중천문(中天門)에 다다르게 된다. 이곳 중천문은 천외촌(天外村)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올 수 있는 곳으로 걸어서 올라오는 사람들과 버스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이다. 또 이곳에는 식당과 상점이 많이 있으므로 이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다시 중천문에서 남천문(南天門)까지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다. 도보로 갈 경우 경사가 급한 돌계단을 오르면 약 2: 30분~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남천문을 정점으로 깍아지른 듯한 벼랑이 이어져 이 코스 중에서 가장 힘든 곳이다. 남천문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천국의 경계선이라고 하는 승선방(昇仙坊)이 있고, 여기서 20분 정도 오르면 태산의 정상인 옥황정(玉皇頂)에 도착한다.

 태산 등정은 2일의 일정이 가장 좋다. 밤 늦게 출발해 바로 일출을 보고 내려오거나, 오전에 출발해 산 위에서 하루를 머물고 일출을 보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산위에는 10여개의 호텔들이 있다.

 

 

중국 3대 건축물중의 하나인 岱廟(대묘)

 태산의 신을 모시는 사당.

 이곳에서 황제들이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泰安(태안) 기차역에서 동쪽으로 가다가 다리를 건너면 대묘가 있는데, 안에 있는 天皇殿(천황전)은 북경의 고궁이나 曲阜(곡부)의 大成殿(대성전)에 비길 수 있는 중국 3대 건축물 중의 하나로 꼽힌다.

 天皇殿(천황전)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산위에서 南天門(남천문)까지 올라가는 급경사 길이 가물가물 보인다.

 天皇殿(천황전)은 송의 대중상부(大中祥符) 2년(1009년)에 창건 되었다고 전해지는데 내부에는 가로 62m, 세로 3.3m의 거대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대묘는 9.6㎡ 정도의 크기로 정양문(正陽門), 배천문(配天門), 인안문(仁安門), 후재문(厚裁門), 동정(銅亭) 등의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또한 경내에는 2100여 년 전 한 무제가 심었다는 측백나무 고목이 있는데 앞에 세워진 한백(漢柏)이라는 비석이 그것을 기념하고 있다.

 이밖에도 역대의 문인, 묵객, 황제의 필적이 바위에 수없이 새겨져 있다.

태산-대묘-02.JPG

 

정양문(正陽門)

 석문을 지나면 회흑색 벽돌로 성곽의 누문 형식으로 건조한 정양문이다.

 누문 처마에 대묘라 편액이 있고 여장에 정양문이라 음각한 석판을 붙여 놓았다. 정양문을 지나면 대묘 사역이다.

 

패방(牌坊)

 석조 패방은 삼문형식으로 그 장식성과 공예성은 중국에서 제일이라 할만하다. 각 부재에 조각한 운룡문, 초화문, 지붕 공포, 용마루 끝에 치미가 아니라 용이 양쪽에서 물고 꼬리를 치켜든 모습, 용마루 가운데에 있는 보주, 기둥의 문침석에는 석사자를 올려놓았다. 이보다 더 장식성이 높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석사자의 대좌 구조가 재미있다. 호족을 한 타자 위에 북을 올리고 그 위에 삼각장식을 올린 사각 대좌를 놓고 석사자상이 있다.

 돌 북과 사각 대좌에는 서수가 장식되어 있고 삼각 장식에는 귀갑무늬 속에 화문을 넣었다.

 좌우로 2쌍 네 마리 모두 봉선의식을 행하러 온 황제를 호위하려는 듯 가운데 문을 향하여 머리를 돌리고 있다.

 

천황전(天皇殿)

 사역 맨 북쪽에 있다. 어도를 따라가면 화려한 답도와 월대가 나오고 중층 지붕에 황색기와를 올리고 송천황전(宋天皇殿, (줄황))이란 세로 편액을 단 전각이 있다. 곡부에 있는 공묘 대성전과 더불어 중국 3대 건축물이라 한다. 단청 기본 색조가 연한 녹색계열로 다른 곳과는 조금 다르지만 공포구조는 북경 고궁과 비슷하다. 천황전에 내부에 벽화가 있고 오른편에 석경(石鏡)이 있다. 석경은 사각 틀 안에 원형의 돌판을 붙였으며, 뒷 면에 "초공정내조요보경(草공 亭內照妖寶鏡)이라 쓰여 있다. 

 천장은 우물천정이며 금색을 주조로 한 용무늬를 장식하였다. 중앙에 감실을 짓고 '동악태산지신'을 조성하여 천선성모원군전하(天仙聖母元君殿下)라 쓴 위패 모시고 있다. 면류관을 쓰고 상호가 길며 인간의 풍모를 한 모습이 불상에만 익숙한 우리에게는 생소하다. 다른 산신들은 얼굴이 동글고 살지었다. 

 내부 벽면에 길이 62m, 폭 3.3m인 거대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한다.

 

드무 : 월대 좌우 양편에 있으며 아래부터 사자, 구름을 희롱하는 용, 당초문 속에 공작새, 명문과 목단문을 띠를 둘러 구분하여 조각하였다.

 

석비(공덕비)

 묘역 왼편에 거대한 비석을 비롯한 석조물이 있다. 경주에 있는 태종무열왕릉비의 귀부 머리를 보는 것 같다. 우리나라 석비는 크든 작든 귀부와 비좌, 비신의 크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중국 석비는 대석에 비하여 비신이 너무 크다. 비좌도 있는 듯 없는 듯 작고 얕은데 옆면의 장식을 높이기 위함인지 바닥에 가깝게 비좌를 내리고 조각을 하였다. 그리고 다리의 모양이 사실적이고 용두가 뿔 달린 규룡이 아니라 거북이 머리 형태이다.

 용의 종류에 비희(贔屭)라는 무거운 것을 지고 다니기 좋아하는 용이 있는데, 모습이 거북형태라 한다. 귀부는 비희를 조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청동기에서 볼 수 있는 기봉문(도안문)을 이수에 조각하였고 귀부 주연에 만자문 조각을 조각한 것이 이채롭다. 비신의 크기에 비하여 귀부가 작다.

 

 

중수비(重修碑)

 높은 돌 기단 위에 조성한 중수비는 1124년 조성한 것으로 두께 70cm, 높이 9.25m, 폭 2.1m로 매우 거대하다. 뒷면에 만대섬앙(萬代贍仰)이라 음각하였다. 

 개석은 이수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조각이 미미하며, 개석의 크기에 비하여 전액이 크다. 귀부의 비좌는 다른 귀부처럼 매우 낮고 비신보다 조금 넓게 사각대를 두고 용무늬를 조각하였다.

 앞뒤 허벅지 근육질이 현저하다. 우리나라 귀부의 발모양은 엎드려 발을 앞으로 뻗은 형태인데 중국의 것은 앞뒤 발을 세우고 앞가슴을 들고 정면을 응시하는 형태이다.

 

경당(經幢)

 오른편에 경당(經幢)이라는 팔각형을 모듈로 한 석조물이 있는데 이름으로 보아 경을 보관하거나 경을 보관한 함을 기념하는 것일 것이다. 높이 6.4m로 규모가 크고 3단의 팔각기단 위에 몸체가 있고 꼭대기에 보주가 있다. 운문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양으로 장엄하였는데 훼손이 심하여 잘 알아볼 수가 없고 쇠철사로 동여매 놓았다.

 

석함 : 옆에 수목 속에 마주 하고 있는 사슴이 조각된 장방형 석함과 팔각함이 있다.

 

 

시황제를 구한 五大夫松(오대부송)

 中天門(중천문)에서 200m만 가면 오른쪽 높은 곳에서 샘이 솟아나고 있다. 雲步橋(운보교)를 건너 돌계단을 올라가면 五松亭(오송정)에 닿는다. 이곳은 중천문에서 1.2km의 거리로 五大夫松(오대부송)이 있다. 옛날 진시황이 封禪(봉선)을 위해 산을 오르던 중, 큰 폭퐁우를 만나 이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고 한다. 이에 시황제는 소나무에 五大夫(오대부)의 직위를 주어 사의를 표했다. 五大夫(오대부)는 24작위 중 9번째의 작위이다.

 그러나 아무리 중국의 소나무일지라도 2천년 이상은 살 수 없으며, 지금 있는 3그루의 소나무는 청의 옹정(雍正) 황제 8년(1730년)에 보식된 것이다.

태산-五大夫松.JPG

 

 

 

一天門(일천문)에서 中天門(중천문)까지

 일천문은 태산에서 정식으로 등정을 시작하는 문으로 여기서부터 산꼭대기에 있는 신전인 碧霞祀(벽하사)까지 7,412의 돌계단이 이어져 있다. 9km나 되는 등산로 양쪽에는 역사상 유명한 명필들이 남긴 글씨가 새겨져 있는 비석들이 늘어서 있다. 일천문에서 1.5km쯤 가다가 계곡에서 물소리가 들리는 곳에 斗母宮(두모궁)이 나오는데, 여기서 동쪽으로 500m쯤 가면 1400년 전 바위에 세긴 金剛經(금강경)을 볼 수 있다.

 다시 돌아와서 2km를 더 오르면 廻馬嶺(회마령). 거기서 700m를 더 오르면 中天門(중천문)이다. 중천문에서 1.2km을 더 오르면 진시황이 封禪(봉선)을 올리기 위해 태산을 오르다가 폭풍우를 만나 피했다는 노송이 있는 五松亭(오송정)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없는 관광객은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된다.

 오송정에서 700rm를 더 전진해서 對松亭(대송정)에 오른 다음, 태산 등정의 가장 가파른 코스인 800m를 더 오르면 南天門(남천문)에 이른다.

 7,412개의 계단을 다 올라온 것인데 이곳에서 벽하사와 태산의 정상인 天柱峰(천주봉)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옥황정은 태산의 주봉이다. 정상에는 옥황 사원이 있고, 정전에는 옥황대제의 동상이 있다.

 

 

태산의 비석과 석각(石刻)

 태산 풍경구내에는 1,239개의 비석과 1,277개의 석각이 있다.

 정상인 옥황정 바로 밑에 눈에 띄는 비석이 하나 있다. 집채만한 높이의 비석에 글자가 하나도 없는 이른바 무자비(無字碑)이다. 높이가 5.2m나 되는 큰 비석인데, 한무제가 자신의 업적이 너무 많아서 글로 쓸 수 없어 무자비를 세웠다고 한다.

 당초 진시황이 썼다는 설과 한무제가 썼다는 두가지 설이 있었으나, 무자비 바로 앞에 있는 안내판에 "높이 5.2m로 한나라 무제가 세운 것이다"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한무제로 결론 난 것 같다.

 

 벽하사를 나와 옥황정 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거대한 바위 절벽이 나오는 데, 80여개의 석각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대관봉(大觀峰)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당(唐) 현종(玄宗)이 썼다는 황금색으로 쓰여진 '기태산명비(紀泰山銘碑)'다. 태산 봉선의식의 전 과정과 하늘에 비는 소원과 각오 등을 높이 13.3m, 폭 5.7m에 총 1008자의 예서체로 석각한 것인데 당마애(唐磨崖)라고 부른다.

 

 바로 옆에 있는 청나라 강희제가 쓴 '운봉(雲峰)'이라는 글귀가 있는 곳은 청마애(靑磨崖)라고 부른다.

 

 또 주변에는

 '벽립만인(璧立萬仞, 우뚝 솟은 절벽이 매우 많다.)'

 '치신소한(置身霄漢, 몸을 하늘의 은하수에 둔 것 같다.)' 등 많은 석각을 볼 수 있다.

 

 대관봉을 지나 고대 중국 신하에는 나오는 남신 복희(伏羲)를 모신 청제궁(靑帝宮)을 지나면, 태산이 중국 5악 중에서 최고임을 표하는 북ㄹ은 글씨의 '오악독존비(五岳獨尊碑)'가 있다. 중국 인민퍠 5元 지폐의 뒷면에 도안되어 있다.

 

 그외에도

 '산고만원(山高望遠, 높은 산에서 멀리 바라본다.)'

 '일근운저(日近雲低, 해는 가깝고 구름은 낮다.) 등 여러 가지 석각들이 있다.

 

 

석각마애비(石刻磨崖碑)

 옥황묘 올라가기 전에 낮은 단을 조성하고 거대한 절벽을 규형 비석 모양으로 얕게 파내어 이수에는 해서체로 천하대관(天下大觀), 예서기가 있는 해서체로 기태산명(紀泰山銘)이라 음각하고, 정면을 응시하는 운룡을 가늘게 음각하였다.

 비신에는 명문을 가득 음각하고 금분을 붙여놓았다. 안내 표석에 태산석각-당마애(泰山石刻-唐磨崖)라고 되어 있고 개원 14년(726, 개원은 성당문화를 꽃피었던 현종의 연호이다.)이라 새겨 있다.

 높이 13.2m, 폭 5.3m, 전문 24행, 만행(滿行) 51자 총 1008자, 명문의 주제 등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 외에도 몇 기의 마애석비와 음각한 글귀가 절벽 여기저기에 있다.

 

 

중천문(中天門)

 천외촌(태산 입구 마을)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중천문까지 갈 수 있다. 시간을 정해서 운행하는 것이 아니고 좌석이 꽉 차면 출발한다. 중천문까지는 구불구불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중천문 주차장에 내려서 태산 정상에 오르는 방법은 걸어서 올라가는 방법과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특기사항

 태산 정상에 있는 神憩賓館(신계빈관)에서 자고 다음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 해돋이를 보려면 천주봉보다는 거기서 700m  동쪽에 위치한 日觀峰(일관봉)이 더 좋다. 새벽에는 기온이 차기 때문에 옷을 든든히 입어야 한다. 일관봉에 오르면 구름 바다를 뚫고 나타나는 태양을 볼 수 있다. 이때의 해돋이는 우리가 흔히 바다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그 빛이 너무나 찬란해서 御來光(어래광)이라고 부른다.

 

 

태산 문학기행

望嶽(망악)

태산을 바라보며                                杜甫(두보)

岱宗夫如何(대종부여하)

태산은 과연 어떠한가?

齊魯靑未了(제노청미료)

제와 노나라에 걸친 그 푸르름 끝이 없구나.

造化鍾紳秀(조화종신수)

천지간에 신령스럽고 빼어난 것 모두 모았고,

陰陽割昏曉(음양할혼효)

산의 밝음과 어두움을 밤과 새벽으로 갈라놓았다.

胸生曾雲(탕흉생층운)

층층이 펼쳐진 운해 가슴 후련히 씻겨 내리고,

入歸鳥(결자입귀조)

눈 크게 뜨고 돌아가는 새를 바라본다.

會當凌絶頂(회당능절정) 

반드시 산 정상에 올라,

一覽衆山小(일람중산소)

뭇 산의 작음을 한번에 내려보리라.

주)

1. 岱宗(대종) : 대산(岱山), 즉 태산. 산동성에 있는 중국 5악(五嶽)중 동악.

2. 鍾紳秀(종신수) : 신령스럽고 빼어난 기운을 모으다. 種은 모은다는 뜻이다.

3. 割昏曉(할혼효) : 밤과 새벽을 가르다. 태산의 규모가 매우 큼을 나타냄. 산 앞쪽이 새벽이면 뒤쪽은 아직 밤이란 뜻이다.

4. 盪胸(탕흉) : 가슴을 후련히 씻다.

5. 曾雲(층운) : 曾=層과 통용된다.

6. 決眥(결자) : 눈가가 찢어질 듯 눈을 크게 뜬다.

 

 태산을 보고 느낀 시인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활연히 품에 안은 양, 젊은 시절 시인의 득의만만한 기상이 여실히 나타나는 장쾌한 시이다.

 1,2구는 멀리서 본 태산, 3,4구는 가까이에서 바라본 산, 5,6구는 산허리에서, 7,8구는 산 정상에서 뭇 산들을 굽어보겠노라는 시인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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