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五台山 = Wu Tai Shan 우타이산) - 중국 불교 제일의 성지

 우타이산(五台山)은 중국 산서성 오대현 동북부에 위치한 사방 500리에 걸쳐 뻗어있는 거대한 산이다. 해발 2,000m 이상 되는 취암봉(翠岩峰), 망해봉(望海峰), 금수봉, 게월봉, 엽두봉 등 5개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다고 해서 "우타이산"이라고 부른다.

 특히 다섯 개 봉우리 정상은 평평하고 수목이 없어 마치 형상이 흙으로 된 평원 같아 예부터 '오대(五台)'로 불려졌다.

 금수봉은 중대(中台. 해발 2,936m), 망해봉은 동대(東台. 해발 2,880m), 취암봉은 남대(南台. 해발 2,757m), 게월봉은 서대(西台. 해발 2,860m), 엽두봉은 북대(北台. 해발 3,056m)에 해당된다.

 중대 금수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하나의 봉우리가 솟아있는 형상이다.

 그 중 협두봉은 해발 3,058m로 "화북의 지붕"이라 불리운다.

 우타이산은 4대 불교명산 중에 사찰의 건립 시기가 가장 빨라 4대 불교명산 중의 으뜸이며 중국 불교 역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산중에는 100여 개의 사묘(寺廟)가 있으며, 그 중 특히 유명한 것은 라마계의 전하이사[鎭海寺]와 포광사[佛光寺]이다. 포광사의 본전(本殿)은 857년 건립된 것으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이다.

특히 신라의 혜초(慧超)가 이 산의 건원보리사(乾元菩提寺)에서 여생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우타이산은 불교명산 답게 많은 사찰들이 집중되어 있는 곳으로서 현통사(顯通寺), 탑원사(塔院寺), 수상사(殊像寺), 무후사(武侯祠), 보살정(菩薩頂)는 그중 규모가 가장 큰 사찰들이다.

 현통사는 오대산의 사찰들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가장 오래된 사찰로서 여러왕조를 거치며 흥성을 거듭하고 재건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현통사는 그 규모가 8만㎡이며 각종 건물 400여개가 자리잡고 있어 국가급보물들이 많이 있다.

 탑원사는 오대산의 상징인 "大白塔"이 있는 곳이다.

 대백탑은 높이가 56.4m이며 탑의 꼭대기에는 200여개의 동령(銅鈴,동으로 만든 종)이 달려 있어 바람이 흔들리는 소리가 청명하고 아름답다.

 

현통사(顯通寺)

 오대산 태환진 북측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대산 5대 사찰>중의 하나이다. 또한, 중국 최초의 양대 불사 중의 하나로 중국 주요 문물 보호 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규모가 비교적 큰편으로 불전이 400여칸 정도가 있으며, 가운데를 중심으로 대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분포 상태가 매우 엄숙하고 정렬되었으며 기세가 매우 비범하다.  맨앞에서부터 차례로 산문, 천왕전, 무량전, 대불전, 문수전, 동전, 후고전 등의 건축물이 서 있는데, 그 분포 상태가 매우 엄숙하고 정렬되었으며 기세가 매우 비범하다.

 맨 앞에서부터 차례로 산문, 천왕전, 무량전, 대불전, 문수전, 동전, 후고전 등의 건축물이 서 있는데, 가장 진귀한 건축과 문물은 동탑, 동전, 동중, 동과 무량전이다.

 맨 뒤쪽에는 장경루가 있는데, 장경루 진열실 안에는 옥불, 무측천동상, 오대산 각사의 인신, 오색의 나한상과 더불어 명인의 서체와 그림을 담은 공예품이 진열되어 있다.

 

 

보살정(菩薩頂)

 현통사 북측 영취봉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대산 5대 사찰>중의 하나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도장으로, 보살정은 문수의 주거처지로, 옛날에는 "진용원"과 "문수사"로 불리워졌다고도 한다.

 불전이 430여칸 정도 있고, 절 앞에는 108개의 돌계단이 있다. 절의 산문안에는 천왕전, 종고루, 보살정, 대웅보전 등의 주요 건축이 있고, 양측에는 배전이 있으며, 뒤쪽에는 사원, 위랑이 근엄하게 자리하고 있다.

 

 

나후사(羅侯寺)

 현통사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대산 5대 사찰> 중의 하나이다.  당대에 창건되었으며, 명흥치 5년 (서기1492년)에 재건되었다.

 천왕전, 문수전, 대불전, 장경각, 곁채, 배전, 랑실, 사원의 건축 장식에서 소조 조각에 이르기까지 보존 상태가 완전하다. 이것들은 오대산 가운데에서 건축 문물 중에는 보존 상태가 좋은 대사묘 중의 하나이다.

 

 

탑원사(塔院寺)

 현통사의 남측에 위치하고 있으며, 탑원사 역시 <오대산 5대 사찰>중의 하나이다. 원래는 현통사의 탑원이었는데, 명나라때 사리탑을 증건할 시기에 독립되어 하나의 절이 되었다. 원래는 현통사의 탑원이었는데, 명나라때 사리탑을 증건할 시기에 독립되어 하나의 절이 되었다.

 현재는 성급의 주요 문물 보호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진해사(鎭海寺)

 태환진 남쪽 산허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태환진에서 5km 거리이다. 절 부근에는 "혜처천"이라는 청정수가 끊임없이 솟아나고 있다. 이 샘물은 "해안-바다의 눈"이라고 전해 내려오는데, 용왕의 아홉째 아들 빈이 민간 세상의 여자를 사모하게 되었는데, 이런 방만한 행동이 넘쳐 큰 해가 되었는데, 문수보살이 이 사실을 안 이후에 대과진으로 내려보냈는데, 후인들이 이 자리에 절을 세워 <진해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다.

 현재는 산문, 종고루, 천왕전, 대불전, 선교전, 좌우배전 등의 건축물이 남아 있고, 절의 남쪽에는 "영락원"이 있다.

 

 

죽림사(竹林寺)

 태환진 서남쪽으로 6km 거리에 있는 죽림사촌 서쪽에 위치해 있다.  <청량산지>에 따르면, 당나라 고승인 법조가 이 죽림검사에서 탁발하여, 예부터 "죽림사"로 불렸다.

 

 

금각사(金閣寺)

 남태서북 일조사촌에 위치하고 있으며, 태환진에서 15km 거리에 있고 오대산의 유명한 절 중의 하나이다.  지붕을 도금하여 이 이름이 붙여졌다.

 

 

용천사(泉寺)

 태환진에서 남쪽으로 5km 거리에 위치한 구룡 강산의 산허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예전에는 "구룡강사"라고 불렸었다.

 

 

만불각(佛閣)

 태환진 탑원사 동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예전에는 탑원사에 소속된 사찰이었다. 명대에 창건하였으며, 청대에 재건하였다. 사찰 규모는 크지 않으나, 전반적인 사찰 모습이 매우 잘 정돈되어 있다.

 

 

벽산사(碧山寺. 보제사)

 오대산 북태산 록광명사촌에 위치하고 있다. 태환진에서 2km 떨어져 있으며, <보제사>라고도 부르고, 속칭 <광제서봉>이라고도 한다.  벽산사는 왜산 중 가장 큰 <십방 사찰>이다.  명나라 성화 시기 (서기1465~1487년)에 재건하였으며, 청나라 대승때 수리하였다.

 

 

광종사(廣宗)

 태환진 북쪽 영방촌 산허리에 위치하고 있고, 뒤쪽으로는 영취봉이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근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며,

명나라 정덕 초년(서기1506~1510년)에 세워졌으며, 청나라때 보수하였다.

 

수상사(殊像寺)

 오대산 태환진 양수거리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대산 5대 사찰>중의 하나이다.  전내에 문수상이 있어 이 이름이 붙여졌다.

 

 

남선사(南禪寺)- 건중 3년(782)이란 묵서명이 남아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조건축

 타이위안에서 타이화이전으로 가는 도중에 있다. 창건 연대는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당내에 재건되어 목조 건축으로서는 중국 최고인 정전이 지금도 남아있다. 안에 안치된 소상은 당대의 숨결이 가슴에 와닿을 듯하며, 그 빼어남에 한순간 넋을 잃고 말 정도이다. 교통은 불편하지만 그 덕분에 조용한 사찰이 유지되어 왔을 것이다.

 

 

광인사(仁寺)

 태환진 북쪽에 위치한 나후사의 동쪽에 위치한다. 예전에는 "십방당"이라했다.

 이곳은 몽고 장족인 참배자가 머물렀던 곳으로, 청대에 건축하였고, 건축물로는 산문·천왕전·종고루·중전·후대전·배전·곁채 등이 있는데,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관음동(音洞)

 태환진에서 남으로 3km에 위치한 서현곡구암의 주변에 위치한다.

 이곳은 달라이라마가 입산해서 참배하고 경전을 읽던 장소로, 몽고 장족의 승려들이 입산해서 모두 이곳에서 참배를 하였는데, 암동 가운데에 관음상을 조각하여 예전부터 "관음동"이라 불렀다. 사찰은 명대에 건축회었고, 청대에 재건되었다.

 

 

대나정(黛螺頂)

 태환진 동쪽 산 정상에 위치해 있고, 태환진에서 약 400m이다. 절 뒤쪽으로는동태 고봉을 의지하고 있고, 앞쪽으로는 태환분지를 두고 있다. 절 규모는 크지는 않지만, 내부 구조가 치밀하다.

 

 이 외에 비밀사, 연경사, 길상사, 영은사, 존생사(尊胜寺), 태평 흥국사, 망해사, 법뇌사, 청량사 등의 사찰이 있다.

 

 

보화사(普化寺)

 태환진 동우산록 중에 위치해 있고, 건축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명·청 시기에 재건한 바 있다. 민국 초년에 또한 옥황각이 증건되어, 예전에는 "옥황묘"라고도 불렀다. 사내 건축물로는 옥황각 이외에 천왕전·대웅보전·삼대사전·여조각·신당·곁채 등 스님들의 거처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천왕전은 5칸으로, 사방에 화훼, 인물과 불교 고사가 조각되어 있고,  안에는 <대토 미륵불> <베다>에서 <4대천왕>이 조각되어 있다.  전각내에는 석가모니, 문수, 보현 등의 <화엄삼경>이 있고, 앞쪽에는 호법금강, 뒤쪽에는 미륵·관음·대세지 등의 <서방삼경> 불상이 있다.

 

 

원조사(照寺)

 북쪽 현통사 좌측에 위치한다. 예전에는 "보우사"라고 불렸었고, 명대 영락 초기에 인도승 보리사자가 중국에 온 일이 있었는데, 그가 대선전에 들어와 불공을 들이다 좌화해서 돌아가셨는데, 분신후 2개의 사리가 남았다고 하는데, 사리 중 하나는 북경 서교로 보내져 절이 세워졌고 (이 절을 '진각사'라고 함), 다른 하나는 오대산에 남아 절이 세워졌는데, 이를 '원조사'라 한다.

 명날 정덕년 시기 (서기1506~1521년)에 재건되었고, 청나라때에 보수를 거쳤다. 전내에는 천왕전, 대불전, 탑원, 장경각 등이 있고, 전각 내에는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불타바리존자 사리탑

 문수동자의 유명한 게송 몇 개가 나온 곳, 그리고 불타바리 존자([불전존승다라니경]을 그곳에서 쓰심)의 사리탑이 남아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탑신의 삼분의 이는 아직도 땅 속에 묻혀있다고 한다.

 

 

금강굴

 보살정을 참배하면서 금강굴 폭파시에 먼지 속에서 문수보살님 형상이 나타나 그때 찍은 사진이 공개되어 있다.

 

금강굴에 얽힌 문수동자 설화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변함 없는 부처님 마음일세.)

 

 성낼 줄 모르는 얼굴에서 공양은 비롯된다

 화낼 줄 모르는 없는 입에선 향기만 쏟아진다.

 성 낼래야 성낼 수조차 없는 마음을 참 보배라 하고

 물들지 않고 걸림이 없음을 진여라고 한다.

 

 무착문희(無着文喜)선사는 종남산 운화사에서 화엄종의 제4조인 징관(澄觀)으로부터 화엄경을 배우고 대력2년(767년) 5월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하여 오대산 화엄사로 들어갔다. 오대산의 동대와 북대 사이에는 누관곡(樓觀谷)이라는 계곡이 있고 그 계곡에는 금강굴이 있는데 그 동굴에는 문수보살이 자주 출현하였다는 말이 내려오고 있었다.

 무착이 금강굴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이르자 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이 무착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묻자 무착은 이곳에 금강굴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노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노인은 손가락으로 멀리 한 사찰을 가리키면서 앞장 서서 길을 안내했다.

 노인의 뒤를 따라 절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니 동자가 나와 문을 열어 주었다. 경내의 법당은 모두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무착은 이곳에서 유리로 된 찻잔에 차를 대접받은 후 노인에게 하룻밤 묵고 갈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노인은 허락하지 않고 법당 앞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若人靜坐一須臾(약인정좌일수유)   만일 한순간이라도 조용히 앉아 마음을 닦는다면

 勝造恒沙七寶塔(승조항사칠보탑)   갠지스강 모래알보다 많은 칠보탑을 세우는 것보다 더 낫다.

 寶塔畢竟壞微塵(보탑필경괴미진)   칠보의 탑은 결국 무너져 먼지가 되지만 

 一念淨心成正覺(일념정심성정각)   한 생각 청정한 마음은 정각(正覺)을 이룬다.

 

 동자의 안내를 받아 다시 금강굴 입구로 나오자 동자는 조금 전에 본 절이  반야사라고 무착에게 일러 주었다. 헤어질 때가 되자 동자는 위의 게송을 읊었다. 무착은 동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절을 하였다. 그러자 동자의 모습도 반야사의 모습도 홀연히 사라져 버리고 오직 황량한 바위산만이 남아 있을 뿐, 노인을 만났던 곳에서는 흰구름이 솟아올라 계곡 전체를 순식간에 덮어 버렸다.

 그 때였다. 문수보살이 큰 사자를 타고 많은 권속들을 거느리고 있는 모습을  보이더니 갑자기 동쪽에서 검은 구름이 솟아올라 그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무착이 만났던 노인이 바로 문수보살의 화신이었다.(廣淸凉傳 卷中) 이후 무착선사의 수행은 더욱 깊어졌다. 어느 해 동짓날 무착은 팥죽을 끓이다  팥죽 솥 위로 무수히 솟아오르는 문수를 만나게 되었다. 문수를 만난 무착의 행동이 가관이다. 솟아오르는 문수들의 뺨을 국자로  찰싹 찰싹 때리며 말했다.

 '네 문수지, 내 문수냐' 

 

 문수게송은 이 외에도 하나가 더 있다.

 "쓸데없는 생각말고 부지런히 공부하라

  날마다 하루종일 누굴 위해 바쁠손가

  바쁜 가운데 한가로운 소식을 알면

  한 송이 연꽃이 끓는 물에 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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