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성에 위치한 중국 4대 불교 명산 구화산(九華山 = 지우화샨)

 

 구화산(九華山)은 안휘성 청양현 서남쪽에 위치.

 산봉우리가 99개, 면적이 100여만㎢이다.

 

 원명은 구자산인데 후에 시성 이백이 멀리 뭇봉우리들을 바라보며 "妙有二分氣, 靈山開九華"(묘유이분기, 영산개구화)라는 명구를 써서 구화산으로 고쳤다.

 

 산에는 계곡폭포, 기암괴석, 오래된 동굴, 푸른 소나무와 대나무가 많아 산수 경치가 독특하고 아름다우며 명승고지들이 도처에 분포되어 있어 예로부터 동남 제일 산으로 불리고 있다.

 

 구화산(九華山)의 불사활동은 동진 융안 5년(서기 401년)에 천축의 승려 회도(懷渡)가 이곳에 사원을 건조하고 전도를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당나라 개원시대 신라국 승려 김교각(金喬覺: 697~794)이 이곳에 와 도를 닦았는데 그가 입적한 후 승려들이 그를 지장보살 화신으로 받들어 지장왕 도량으로 개척하였다. 그후부터 이곳에 사찰이 수풀처럼 일어서게 되었다.

 구화산 유람객들은 늘 화성사, 육신보전, 천대사, 상선당을 참배한다. 화성사는 구화산이 개산사원으로서 장엄하고 고박하며 기세가 웅장하다. 현재 사원에는 명나라의 유지, 역대 황제가 하사한 금인과 명나라 판본의 장경 6,000여권 및 청나라 법문 패엽경등 진귀한 문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육신보전은 김교각이 99세를 일기로 이곳에서 입적한 후 얼굴이 산 사람 같아 명나라 신존황제가 "호국육신 보탑"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여 얻어진 명칭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천대사는 김지장이 거주하던 고찰이라고 한다. 산세를 따라 지은 5층 누각으로 법당내의 대들보와 벽체 사이에는 작은 목불들이 걸려 있다.

 

 육신전 아래에 있는 상선당에는 진기한 금사천, 금전수가 있는데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백의 고주전(沽酒錢)이 변해서 생겼다고 한다. 구화산의 유명한 사원에는 많은 승려들이 매일 염불을 하고 아침, 저녁으로 수행을 하고 있는데 불교 분위기가 매우 농후하다.

 

 음력 7월 30일은 지장보살의 탄신일로서 많은 사원에서 불사활동을 행하여 전통적인 구화산제회로 형성되었다. 승려와 참배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향을 피우고 참배를 하며 민간에서는 등불놀이, 죽마놀이, 꽃불올리기, 고대극 공연을 하고 시장에서는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불사활동은 한달동안 게속된다.

 

 구화산은 교통이 매우 불편하다. 상해에서 합비를 통하여 안경을 거쳐 가는 길은 6시간이 걸리며, 상해에서는 황산을 거쳐 가는 길은 역시 5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화성사, 십왕사, 육신보전, 봉황송, 박세궁, 저원사등을 관광한다.

 

 

구화산(九華山)의 역사

 구화산(九華山)에는 수많은 사찰이 구름 가운데 산재해 있다. 불국선경(佛國仙境)의 아름다움이 있는 구화산은 많은 불교 사찰과 어우러진 멋진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이 산은 중국인들이 손꼽는 문화유산 중의 하나이다. 정말로 빼어난 명주(明珠)라 할만 하다. 구화산은 신생대 말기에 형성되었으며, 여기서 불교가 터전을 잡은 시기는 남북조 시기이다.

 사료에 의하면 남조 양무제 천감 2년(503)에 복호라는 승려가 사보암이라는 곳에 복호앙을 세워 수행하였다. 개원 천보 년간(713-755)에 신라 왕실 귀족인 김교각이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그는 바다를 건너 구화산에 이르러 수행 하였으며, 동애봉의 바위 동굴에서 주석하였다. 이에 많은 신도들이 감동하였으며, 그 지방의 유지 제갈절등이 추렴하여 김교각 스님을 위해 사찰을 건립하였다. 건중 2년(781) 지주태수 장암주가 조정에 청하여 "화성(化城)" 이라는 절의 사액을 받았다.

 

 김교각 스님이 입적할 때에는 산이 울고 골짜기가 떨었으며, 뭇 새들이 슬피 울었고, 땅에서는 화광(火光)이 솟구쳤다고 한다. 시신은 3년이 지나도 생시와 다름없어 승중들은 지장보살로 여겼고, 육신탑(肉身塔)을 세워 이를 기렸다고 한다. 이때부터 구화산은 지장보살 도량을 이루었고 많은 사람들이 구화산을 찾았다. 천여년 이래로 구화산 불교는 성쇠를 거듭하였는데, 이를 5시기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가 당(唐) 중기로, 처음으로 절을 창건한 때이고, 둘째는 당 후기에서 오대(五代) 쇠퇴기, 셋째는 송(宋)의 발전기, 넷째가 원(元)의 발전기, 다섯째가 명청(明淸)의 전성기이다.

 

 명조(明朝) 홍무(洪武) 선덕(宣德) 만력(万歷) 년간에 누차에 금을 내려 화성사(化城寺)를 중수하였고 만력 년간에 두 번에 걸쳐 구화산 화성사에 『藏經』 이라고 사액하였다. 명대(明代) 이래로 구화산은 날로 번창하여 사찰과 암자의 수가 100개을 넘었고 승려의 수가 많아, 오대산, 아미산, 보타산과 더불어 중국 불교 4대명산으로 불린다. 청조(淸朝) 강희(康熙), 건륭(乾隆) 황제는 강남을 시찰하던 중 구화산에 들러, 친히 "구화성경(九華聖境)"라고 친히 사액하였고, 금을 내려 화성사(化城寺)를 중수하게 하였다. 구화산의 불교는 더욱더 진일보 발전하였으며 화성사 총림 외에 백세궁, 감로사, 동애사, 기원사의 4대총림이 형성되었다. 청조(淸朝) 말에 이르러서 구화산의 사찰과 암자는 모두 150여 군데로 늘었으며 승려는 삼사천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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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 명소

대웅보전(大雄寶殿)

 기원사의 대웅보전은 평지에서 전의 지붕까지가 13장(丈)이나 된다. 대웅전의 문은 유명한 서예가인 우우임(于右任) 선생이 쓴 "大雄寶殿(대웅보전)"의 금자 현판이 있다. 전의 정중앙에는 연화대 위에 2장(丈)이나 되는 높이의 삼존불이 모셔져 있으며 가운데가 "여래"이고 좌측에 "아미타불", 우측이 "약사불"이다. 삼존불은 구화산 사원 불상의 으뜸이다. 대불의 양 옆에는 조각한 일장(丈) 높이의 나한상이 있다.

 

 

구화산의 제일 큰 사원, 기원사(園寺)

 기원사는 기원선사(祗园禪寺)라고도 불리며 옛날 이름은 기원, 기수암이었고 구화산 4대총림 중의 하나이다. 기원은 원래 인도불교의 성지로 석가모니 부처가 20여년 불교를 선양한 곳이다. 구화산 기원사는 이러한 것에서 얻어온 이름이다. 사원은 명대(明代) 가정 년간에 처음으로 세워졌고 청대(淸代) 년간에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구화산 3대 사원 중에서 규모가 제일 큰 사원으로 화성사의 동쪽에 있는 동암사 산록에 위치해 있고, 구화가두를 향하고 있다.

 명대초에 건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원 앞에는 봉화와 금선도안이 새겨진 포석판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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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내의 정전인 대웅전은 13척의 높이로 황금색의 유리기와가 황금색과 푸른빛으로 휘황찬란한 멋을 뽐낸다. 대웅전안에 모셔져 있는 삼존대불은 연화대위에 놓여져 있는데, 길이가 2척에 달하며, 대웅전 뒷편에는 관음상이 진흙으로 조각되어 있다.

 또 원내에는 가옥이 많아서 마치 미궁처럼 되어 있고, 그 밖에 주방에 있는 8개의 커다란 가마중에서 입구의 넓이가 1척에 달하는 솥이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이 사원의 규모를 말해주고 있다.

 

 

화성사(化城寺, 화청스)

 화성사는 구화개산사(九華開山寺)이다.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고 또한, 지장보살 도량이기도 하며 구화산의 총총림이다. 동진(東晉) 응안 5년(401)에 승인이 암자를 지었으며 당 지덕(至德) 년간(756-758)에 다시 세워 화성사라 칭하였으며, "화성"이라는 말은 법화경(法華經) 중의 불교 고사이다.화성사는 구화거리(九華街)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나의 원형광장을 마주하고 있다. 이 광장 중간에는 월아형(月牙形)의 연꽃 월아지(月牙池)라는 연못이 있으며, 이는 지장(地藏) 방생지(放生池)이다.

 

 사전(寺殿) 앞뒤로 4채가 있는데 분문청, 대응보전, 장경루이다. 이 네채는 지세를 따라 점점 높아지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내에는 강희(康熙) 황제의 친필인 "구화선경(九華聖境)"의 횡서와 건릉(乾隆) 황제의 친필인 "분타보교(芬陀普敎)"의 횡서가 있다. 뒷전에는 명대 숭정 황제의 친필인 "위선최락(爲善最樂: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의 횡서가 있다.

 

 

구화산 10대 풍경구 중 하나인 동암사(東岩寺)

 동암사(東岩寺)는 화성사, 기원사와 함께 구화산의 3대 사원으로 화성사의 동쪽 150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산위와 산아래에 각각 나뉘어 있으며 1933년 화재로 지금의 모습인 5층의 건물은 중건된 것이다.

 이곳 내부의 조각은 화려한 편이고, 지금은 이곳에 구화빈관을 열었다. 주변에 지강동, 안좌암, 청대종루, 천지, 용화천, 태백서당유지 등의 명승고적과 명대 옥수인이 쓴 "운심처(雲深處)"라는 글의 석각이 있다. 그 중에서 안좌암은 구화산 10대 풍경구 중의 하나로 오른쪽에는 천주, 오로제봉을 두고 왼쪽으로 고선, 남으로 천대, 십왕양봉, 북으로 장강여대를 두고 있다.

 

 

백세궁(百歲宮)

 백세궁은 명나라 만력황제 이전에는 '제성암'으로 불렀는데, 후에 혜옥스님의 도량으로 변하면서 백세궁을 고쳤다. 혜옥스님은 28년을 들여 혀혈과 금분으로 '대방광불화엄경' 81권을 쓰시고 100세로 입적했다. 열반 3년후의 모습이 생전과 같았기에 활불로 모셔지고 전신 개금하여 백세궁에 안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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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보전(肉身寶殿, 로우션바오디엔)

 육신전(肉身殿)이라고 하며, 신라 왕족인 김교각스님이 구화산에서 75년가 수행하다가 794년 열반하셨는데, 열반 3년후에도 생전 모습과 꼭 같고 몸에서 쇳소리가 들려 지장보살로 인정받고 석탑은 호국육신보탑으로 불려졌다.

 육신전 앞에는 99계단이 있고 정상에는 천교가 있는데 남북으로 '반석상안(常安)'과 '신광이채(神光异彩)'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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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봉(天台峰)

 천태봉(天台峰)은 해발 높이가 1,325m이며 봉우리에는 저명한 지장사(地藏寺)가 있으며 또 천태사(天台寺)라고도 한다.

 절의 앞에는 봉일정(捧日亭)이 있는데 구화산에서 일출을 보는 최적의  지점이다. 주위에는 또 금선동(金仙洞), 일선천(一線天), 용주석주경(龍株石諸景) 등이 있다.

 이 절의 건축면적은 1540㎡이며 전국의 중점사원이다.

 

 

중국 4대 불교 명산

① 사천성의 峨眉山(아미산) : 보현보살 - 실천의 상징

② 산서성의 五台山(오대산) : 문수보살 - 지혜의 상징

③ 절강성의 普陀山(보타산) : 관음보살 - 자비의 상징

④ 안휘성의 九華山(구화산) : 지장보살 - 구원의 상징

 

 

김교각(金喬覺: 697~794) 스님 - 구원의 상징

 김교각(金喬覺: 697~794) 스님은 신라의 승려이다.

 신라 성덕왕의 첫째 아들로 속명은 중경(重慶)이다. 24세에 당나라에서 출가하여 교각(喬覺)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안휘성 구화산에서 화엄경을 설파하며,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의 화신으로 평가받았다.

 

그의 행적은 813년 중국 당나라 비경관(費冠卿)이 쓴 구화산 화성기(九華山化城寺記), 이용(李庸)이 편찬한 구화산지(九華山志) 등에 기록되어 있으며, 동 시대를 살았으며, 입적 후 19년 뒤에 쓰인 당나라 비경관(費冠卿)의 저서가 가장 정확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비경관은 구화산이 있는 지주 청양현 사람으로 학문이 뛰어났으며, 구화산 소미봉에 은거한 것으로 나타나 가장 객관적으로 구화산과 김교각을 관찰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중국의 기록에는 신라의 왕자란 기록만 있을 뿐, 신라 어느 왕의 자손이라는 기록은 없다. 따라서 비경관의 기록에 있는 출생 연대로 유추하여 삼국사기의 기록을 참조해 볼 때, 김교각은 서기 697년 신라 제32대 효소왕 4년 서라벌 궁궐에서 태어난 김중경으로 파악된다. 그의 아버지는 후에 제33대 성덕왕이 된 신문왕의 둘째 아들 흥광대군 효명이다.

 701년 김중경의 나이 4세 때 32대 효소왕을 대신하여 섭정을 하던 심목태후가 암살되고, 몇 년 후 효소왕이 후사없이 세상을 떠나자 흥광대군 효명이 왕위에 오르니 33대 성덕왕이다.

 

 이후 김중경이 화랑이 되었을 때 친모 성정왕후와 성덕왕 사이에 후궁 문제로 갈등이 일어나 세속의 생활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719년 당 고종 영회4년(653년) 24세의 나이로 신라를 떠나 당나라 건너가 출가하여 불교에 귀의하였다.

 

 이후 구화산에 자리를 잡고, 구도 활동을 하다가, 구화산에서 75년을 수련하여 99세에 열반에 들었다. 794년 제자들을 모아놓고 고별인사를 한 뒤 입적하였는데, 자신의 시신을 석함에 넣고 3년 후에도 썩지 않으면 등신불로 만들라는 유언을 남겼다. 열반에 든 후 산이 울면서 허물어 졌고 하늘에서는 천둥소리가 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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