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기자 피라밋(Pyramids of Giza)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세계 최대의 건조물인 피라미드는 고 왕국의 전성기인 기원전 2700년 경에 만들어졌다.

 이집트 전체에서 94개의 피라미드가 발견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기자 지역의 피라미드로서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쿠프왕의 피라미드의 경우 2,352,000개에서 268만 여개 정도의 각 2.5t 내지 10t의 화강암으로 구성되었다. 석회암은 모깔담과 기자 남동쪽 15km 지점의 엘뚜르 등에서 캐내어 이용하였다.

 

 화강암의 경우는 카이로 남쪽 850km 떨어진 아스완에서 나일강을 통하여 운반 해 왔다.

 

 돌을 쌓은 단층의 수는 원래 210계단 이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것은 203계단이다. 하루 10만여명이 1년에 3,4 개월씩 20여년(총 2천여일) 동안, 연인원 2~3억명이 동원된 대규모 공사로서 용도는 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밑변의 길이 230.3m, 겉표면에 있었던 돌의 17만여개는 아랍과 터키 점령하에서 건축자재로 재활용 되느라 벗겨 졌다. 칼리프 알마문이 뚫은 구멍을 통해 내부로 들어 갈 수 있으며 원래의 입구는 이보다 위쪽 10m 지점에 있다.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따르면 50년간 통치한 쿠프왕은 모든 신전을 폐쇄하고 제사를 금지시키고 자기만을 숭배토록 했다. 피라미드를 건축하기 위하여 돌을 옮길 둑길을 만드는데 만도 10년이 소모되었는데 전체 길이가 1km, 폭이 18m, 가장 높은 곳의 높이가 14.4m였다. 이 길에 여러가지 동물의 모습을 새겨 장식하였고, 다듬은 돌로 축조하였다. 돌길이는 90cm 이하가 없었다. 피라미드에는 상형 문자로 이일에 동원된 일꾼들이 먹어치운 무, 양파, 마늘의 양이 기록되어 있다. 그 액수는 은 1,600달란트에 해당된다. 이것이 맞는 기록이라면 공사용 철제품과 노무자들의 주,부식 옷가지등을 지급하는데 따른 비용은 도대체 얼마나 되었을까, 상상이 안간다. 돌을 잘라 나르고 지하 수로를 파는 데만도 적잖은 시간이 소모되었다. 지하의 쿠프왕의 현실은 나일강의 물을 운하로 끌어드린 물로 마치 섬처럼 만들어졌다.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의 기초를 쌓은 대는 이디오피아 산의 다양한 색깔의 돌을 사용하였다. 그는 쿠프왕의 동생으로 56년간 통치하였다. 쿠푸, 카프레 왕은 106년간을 통치하였다. 카프레 왕의 아들인 멘카우레 왕은 신전을 다시 열고, 노역에서 해방시켜 생업에 종사토록 하였으며, 종교적인 관습을 실행하도록 허용하였다.

 

 피라미드의 가장 경이로운 점은 아마도 그 거대한 구조물의 방향일 것이다. 각 능선은 거의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 그 각도의 오차는 진북(眞北)에서 5분 밖에 벗어나 있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미미한 것이어서, 우연의 배열의 결과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또한 현대 20세기의 건축물로도 따라갈 수 없는 정확성은 도저히 인간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이다. 105m 높이의 '상승통로'는 완벽한 배열에서 1cm도 벗어나지 않았으며, 이 피라미드가 건조될 당시 천구(天球)의 북극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던 용 자리의 알파 별을 지표로 삼아 이 통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런 놀라운 배열로 미루어 보아, 피라미드는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해시계이고, 달력이고, 동시에 천문대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원래의 높이는 147m지만 이 피라미드는 동지무렵에는 80m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봄에는 그 길이가 거의 0으로 줄어든다. 따라서 그림자의 길이를 이용하여 하루의 시간을 재고, 계절을 식별하고, 한해의 정확한 길이를 측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쿠푸(Gheops)왕의 피라밋

 높이 : 137m(원래:146m)

 축조기간 : 20년

 밑변 : 230m(한변)

 소요석재 : 250만개

 경사도 : 51도

 평균중량 : 2500kg 개당

 연인원 : 10만명

 용적 : 13ac

 

 

◇ 스핑크스(Sphink)

- 높이 : 136m(원래:145m)   밑변 : 295m

 그 기원은 이집트이며,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동체를 가지고 있다. 왕자(王者)의 권력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표현된 것인데, 이집트와 아시리아의 신전이나 왕궁 ·분묘 등에서 그 훌륭한 조각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이집트의 기제에 있는 제4왕조(BC 2650년경) 카프레왕(王)의 피라미드에 딸린 스핑크스가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자연암석을 이용하여 조각한 것인데, 군데군데 보수(補修)한 흔적이 있다. 전체의 길이 약 70m, 높이 약 20m, 얼굴 너비 약 4m나 되는 거상(巨像)으로, 그 얼굴은 상당히 파손되어 있으나 카프레왕의 생전의 얼굴이라고 한다. 앞으로 뻗은 앞다리 사이에는 투트모세 4세의 석비(石碑)가 있다. 이 스핑크스는 '지평선상의 매'를 나타내는, 태양신의 상징이라고 한다.

 

 스핑크스는 이집트 외에 시리아 ·페니키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등지에도 일찍부터 알려져 있다. 특히 그리스 신화에서는 에키드나와 오로토로스의 아들, 또는 라이오스의 딸이라는 등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그 중에서도 테베의 암산(岩山) 부근에 살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침에는 네 다리로, 낮에는 두 다리로,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라는, 이른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내어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전설은 유명하다. 그러나 오이디푸스가 "그것은 사람이다.(사람은 어렸을 때 네 다리로 기고, 자라서는 두 발로 걷고, 늙어서는 지팡이를 짚어 세 다리로 걷기 때문에)"라고 대답하자, 스핑크스는 물속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한편, 그리스에서는 BC 1600년경의 미케네의 수혈묘(竪穴墓)나 크레타섬에서 발견된 인영(印影)에 처음으로 나타나는데, 여기서는 날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스핑크스는 원래 동물의 왕 사자에 대한 주물(呪物)숭배(페티시즘)에서 비롯된 것으로,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이나 성격이 달라진다. 즉, 매나 숫양의 머리를 한 것, 서 있거나 앞다리만 가진 것, 또는 왕으로서의 권력을 상징하는 것, 신전(神殿)의 장식에 쓰인 것 등이 있다. 카르나크 신전(Karnak Temple)이나 사카라의 세라페이온에는 길 양쪽에 서로 마주보면서 수십 개의 스핑크스가 나란히 서서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 미서리누스(Mycerinus)

 기자 언덕의 피라밋군에서 가장 작은 것으로서 높이가 불과 66m 밖에 되지 않으며 밑부분의 일부만 빨간 화강암으로 덥게를 하였기 때문에 일명 미완성 피라밋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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