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1600연대 동양으로 향하는 인도양의 희망봉 항로가 개척되면서 불란서의 루이 14세를 위시한 많은
서구의 열강들과 아랍의 지도자들은 새로운 항로가 필요하게 되었고
그 결과 고대 이집트 왕들의 꿈이었던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운하를
추진하게 되었던 것이다.
1798년 나폴레옹이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공사를 시작하였다가 수석 기사(Lepere)의 계산 착오로 양쪽 해면의 엄청난
해표면차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공사가 중단 되었다. 그 후 몇십년이
지난후 주 카이로 불란서 영사 페르디난드가 경제성을 확신하여 이집트
정부를 설득하여서 1859년에 기공하게 되었다. 그리고 10년후인 1869년
11월에 총 연장 161km를 전세계의 찬사와 부러움 속에 개통하게 되었다.
당시 이집트의 캐다브 이스마일(Khedive Ismail)이 운하 공사비의 1/3을
출자하였는데 이것이 캐디브의 재정난을 초래하게 되었고
결국 1875년 도산 직전에 캐드브가 소유한 운하 지분 44%를 영국 정부에 매도하여 운하 회사가 설립되어 운하를 공동 관리하게 되었다.
이것이 차후 오랜기간 이집트 독립의 커다란 방해물이
되었다. 그러다가 1952년 군사혁명과 더불어 1956년 7월 압델나스르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 스에즈 운하 회사를 국유화하였고 그로부터 3개월 후에
영국, 불란서, 연합군이 무력으로 운하를 강점하였다가 세계의 여러 나라들로부터
불법 침략이란 강력한 비난을 받고 철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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