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고(Ak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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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중에 하나인 악고는 처음으로 성서에 에셀족 속의 마을로 언급되었다(삿 1:31). 가나안인 다음에 포니시안의 항구였으며 이즈르엘 평야로 가는 길을 컨트롤하였다. 주전 3세기에 헬라인들이 이름을 돌레마이로 바꾸었으며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들렀던 지명이다(행 21:7). 악고는 그 긴 역사동안 많은 정복자들이 있었으나 가장 중요한 도시의 역사는 십자군 때이다. 1104년에 발드윈 장군이 항구를 차지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정복한 도시이다.

 요새화시킨 후 악고는 팔레스타인 땅의 라틴 왕국의 방어벽으로 중요한 역할를 하였다. 악고는 다시 성지를 방문 또는 전쟁하러 오는 모든 유럽인들의 항구가 되었다. 시틴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악고는 살라딘에게 정복되었다. 2년후에 십자군은 치열한 전쟁후 악고를 탈환하였다.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한 십자군은 악고를 수도로 삼았다.

 악고는 1291년까지 100년 동안 크게 발전하였다. 술탄 알 아휘라프는 20만 명의 군대로 악고를 점령하였다. 술탄의 군대는 불로써 도시를 완전히 멸하였고 조금의 자비도 없이 모든 사람들을 무참히 죽였다.

 1291년 악고의 점령은 약 200년(1099~1291) 동안 지속된 십자군 왕국의 마지막이었다. 악고는 다시는 서양인들이 정착 못하도록 파괴되었다.

 1775년 악고는 그 악독함으로 "도살자"라 불리우는 알베니안 군인 아메드 알 자자에 의해 재건되고 요새화되었다.

 1799년에 악고에 침입한 나폴레온은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패배하여 동유럽 정복의 꿈을 버리고 이집트로 쫓겨갔다.

 1832년에 이집트의 이브라임 파사가 터어키로부터 빼앗아 터어키의 유럽 연합군을 대항하기 전까지 8년 동안 통치하였다. 그 후로 악고는 계속 쇠퇴하여 근처의 하이파 도시의 그늘에 가려지게 되었다.

 오늘날 악고는 새로이 온 많은 유대인들이 소수의 모슬렘과 크리스찬과 함께 살고 있다. 기록된 17번 침략과 수난의 악고 역사에서 남은 유적은 십자군과 터어키의 유적이다. 가장 중요한 십자군 시대의 유적은 당시 무사들의 식당으로 여겨지는 성 요한의 방이다. 터어키 시대의 유적으로 알 자자가 지은 상태가 있다. 회교 사원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크고 훌륭한 것으로 십자군 때의 교회 유적위에 지은 것이다. 사원 근처에는 쌍둥이 돔으로 된 건물이 있는데 사원을 지은 아메드 알 자자와 그의 후계자 술레이만 파사의 무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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