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

포토 갤러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유럽 동남부와 발칸반도 서부에 위치하며, 수도는 사라예보이다.

 

 면적: 51,209㎢

 인구: 330(2022년)

 

 국민 구성은 이슬람교도(48%), 세르비아인(37%), 크로아티아인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 종교 또한 이슬람교(40%), 세르비아정교(31%), 로마가톨릭이다.

 

 동쪽으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 경계를 이루며, 3면을 크로아티아가 둘러싸고 있다.

 

 주요 도시 모스타르를 비롯해 남단의 삼각형 모양의 지역을 차지하는 남부와 남서부의 헤르체고비나와 사라예보를 비롯해 넓은 중·북부 지역을 차지하는 보스니아로 이루어져 있다. 헤르체고비나는 역사상 대부분 보스니아에 종속되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동쪽으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 경계를 이루며, 북쪽·서쪽·남쪽 등 3면을 크로아티아가 둘러싸고 있다. 헤르체고비나는 좁은 회랑을 통해 아드리아 해의 네레트바 해협에 있는 네웅에서 바다와 맞닿아 있으며, 이 회랑이 크로아티아 달마치야 해안 가운데 두브로브니크 북서쪽 약 40km 가량의 지역을 크로아티아 본토로부터 갈라놓았다.

 

 이 지역은 오랫동안 지역 지배권을 둘러싸고 경쟁해왔던 강력한 지역세력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 이러한 영향들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유달리 풍부한 인종적·문화적 혼합 지역으로 만들었다. 이슬람교·동방정교·로마가톨릭교가 공존하고, 이 3개 신앙들은 3가지 주요한 인종 그룹인 보스니아 이슬람계,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에 각각 상응한다.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사이의 역사적·지리적 위치뿐만 아니라 여러 인종으로 이루어진 국민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오랫동안 민족주의의 영토 확장 열망에 불붙기 쉽게 만들었다.

 

 1918년 새롭게 건국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에 통합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분리 이후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독립을 얻었다. 하지만 나라는 바로 더욱 확대된 유고슬라비아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대부분 산악지대로 고도가 보통 해발 1,800m 이상에 이르지만 아드리아 해에 닿은 남쪽으로 향할수록 고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사바 강과 드리나 강, 네레트바 강을 비롯해서 그 지류들이 흐른다. 디나르알프스 산맥을 비롯해 남서부 지방은 카르스트 지형(틈· 돌리네· 동굴 등이 있는 석회암 지대)이 특징이다.

 

 보스니아 지방과 헤르체고비나 지방의 기후는 상당히 다르다. 헤르체고비나는 남서쪽에서 올라오는 시로코의 영향을 받는 반면 보스니아는 디나르알프스 산맥의 측면 골짜기로 불어내리는 북동풍인 보라의 영향을 받는다. 강설량은 매우 적은 편이다. 보스니아는 대체로 온화한 편이지만 겨울에는 몹시 춥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헤르체고비나는 10∼1월에 많은 비가 내리며 여름이 숨막히게 더운 것이 특징이다. 겨울에 카르스트 지역에 비가 내려 이 지역이 아열대 기후대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인구성장률은 1970년대부터 꾸준히 1%대를 유지해오다가 1990년에 –3.76%로 급락한 이후 1990년대 후반에 다시 증가하기 시작해 1%미만을 유지하고 있다. 인구수는 1970년 376만 명에서 꾸준히 증가하여 1990년 447만 명까지 늘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후반까지 꾸준히 360만 명 선을 유지해오고 있다. 2020년 기준 인구수는 330만 1,000명이다. 15세 미만 인구수는 전체 인구의 14%이며, 전체 인구의 약 44%가 도시에서 생활한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는 많은 민족이 거주하지만 주요 집단으로는 인구의 절반가량을 이루는 보스니아인과, 1/3 가량의 세르비아인, 1/5 가량의 크로아티아인과 나머지는 기타 소수민족으로 구분된다.

 

 이 3개 민족들은 세르보크로아티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인종적으로 뚜렷한 구별이 없지만 세르비아인들은 대부분 정교회 교도로 키릴 문자를, 크로아티아인들은 로마 가톨릭교도로 라틴 문자를 사용한다. 이슬람교도들의 선조는 오랜 투르크(오스만 제국)의 지배 기간동안 이슬람교로 개종한 슬라브인이다. 역사상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민족들은 혼재된 양식 속에서 서로 뒤섞여 살아 왔는데, 이러한 혼재된 양식은 평화시에는 세계시민주의적 분위기를 부여했지만 또한 수많은 전쟁이라는 해악을 불러오기도 했다. 사라예보에는 이슬람교 대표들이 있으며 세르비아 정교회 수도 대주교관과 로마 가톨릭교 대주교관이 있다. 이밖의 주요도시로 세르비아 정교회의 주교관구이자 로마 가톨릭교 주교관구인 모스타르와 바냐루카, 세르비아 정교회의 주교관구가 있는 투즐라, 로마 가톨릭 주교관구인 트라브니크 등을 들 수 있다.

 

 공식 언어는 보스니아어, 크로아티아어, 영어 및 세르비아어이다. 2013년 인구 조사에서 인구의 53%는 보스니아어, 31%는 세르비아어, 15%는 크로아티아를 사용하며 나머지 1%는 기타 언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는 세르비아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을 합한 그리스도교 인구가 절반을 차지하고, 이슬람교도가 약 45%, 그밖에 소수의 힌두교도와 토착신앙의 분포를 이룬다.

 

 전체 면적의 약 15% 정도가 경작이 가능하며, 주로 북부지방의 토양이 비옥한 편이다. 곡물, 특히 옥수수와 밀 재배에 적당한 토양이다. 콩·평지씨·올리브·포도·오디·무화과·석류·멜론·오렌지·레몬·쌀·담배 등이 헤르체고비나와 혹한이 없는 보스니아 지방에서 재배된다. 농작물 재배는 대개 가축 사육과 함께 이루어지는데, 이 나라는 주요 양사육 지역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철·보크사이트·석탄 등을 비롯해 다양한 광물자원이 있으며, 또한 이 나라 강들은 수력발전의 잠재력이 크다. 현대 광업과 산업은 오스트리아 지배하에서 시작되었다. 유고슬라비아 공화국 시절에는 산업, 특히 야금 부문이 장려되었지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유고슬라비아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이었다.

 

 다민족 국가적 성격은 오랫동안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정치를 특징지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이루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이슬람계-크로아티아계 연방)과 스르프스카 공화국(세르비아계 공화국)은 각각 입법부와 대통령을 가지고 있다. 중앙정부 의회는 양원제로서 하원 의석의 2/3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이, 1/3은 스르프스카 공화국이 구성하며, 상원은 3개 민족이 각각 5석씩 배분하고 있다. 이슬람계·세르비아계·크로아티아계 각각 1명씩으로 채워지는 3인 공동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 개요

o 공식명칭: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Bosnia and Herzegovina)

o 수도: 사라예보

o 면적: 51,197.0㎢(세계 125위)

o 인구: 약 328만 명(2022년)

o GDP: 약 219억$(2022년. 세계 114위)

o 언어: 세르보크로아트어

o 주요민족: 이슬람교도(48%), 세르비아인(37%), 크로아티아인

o 기후: 서안해양성기후, 온난습윤성기후, 지중해성기후

o 정부/의회형태: 연방공화제 / 다당제&양원제

o 종교: 이슬람교(40%), 세르비아정교(31%), 로마가톨릭

o 화폐: 마르카 (KM)

o 국화: 연꽃

o 국가번호: 386

o 전압: 220V / 50Hz

o 도메인: .ba

 

 

정 치

➀ 국가성립 : 1992년 3월 2일 구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선언

➁ 정부형태 : 대통령제

- 대통령 위원회(3인) : 티히치(Sulejman Tihic), 사로비치(Mirko Sarovic), 코비치(Dragan Covic)

- 총리 : 테르지치(Adnan Terzic)

- 외무장관 : 이바니치(Mladen Ivanic)

➂ 의회 : 양원제[하원(42석), 상원(15석)]

➃ 주요정당 : 사회민주당(SDP), 민주행동당(SDA), 크로아티아 민주연합(HDZ BiH), 세르비아 민주당(SDS),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당(SBiH), 민주진보당(PDP)

➄ 국제기구가입 : UN(1992년 5월 22일)

 

경 제

- GDP : 56억달러

- 1인당 GDP : 약 1,463달러

- 수출 : 10억달러

- 수입 : 39억달러

- 물가상승률 : -0.7%(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합), 2.4%(스르프스카 공화국)

- 경제성장률 : 10.94%

- 화폐단위 : 컨버터블 마르크(Convertible Mark) : 1KM = 0.51EUR

 

사 회

 보스니아의 언어는 남슬라브어군으로 유고, 크로아티아와 같이 세르보-크로아티아어를 사용하고 로마 및 키릴문자를 병용하고 있으며, 중세 이후 주변국의 지배를 받아온 역사적 이유로 이슬람화된 보스니아인, 세르비아 정교를 신봉하는 세르비아인 및 카톨릭의 크로아티아인이 공존하여 문화적 다양성 보유하고 있다.

 다민족, 다종교 사회로 민족간 다양한 문화적 전통이 상호 복잡하게 얽혀 있어 통일된 국민성을 찾기가 어려우며, 1992~1995년간 내전에서 각계파간 '인종청소'를 자행, 민족간 거주지가 뚜렷이 구별되는 등 상호갈등이 남아 있기도 하다.

 

한국과의 관계

 보스니아 내전종식과 함께 1995년 12월 15일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

- 유엔주재 양측 대사간 수교 협정 서명

- 현재 주헝가리 대사가 겸임

- Raspudic 주한대사(일본상주) 신임장제정(2003년 12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여권 및 비자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인의 한국방문 : 2000년 11월 1일부터 30일간의 관광, 통과목적의 무사증 입국을 허가하였으나 2002년 11월 1일부터 다시 사증 취득 필요하다.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우리나라 사이에는 비자면제협정이 체결되어 있기 때문에 비자 없이도 90일간 체류할 수 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 역사

 고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는 일리리아인이 살았으며 기원전 1세기에는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6세기 후반부터 슬라브족이 정착했고 중세 시대에는 왕국을 형성했다. 12세기 후반부터는 보스니아 왕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15세기 후반부터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를 계기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는 오스만 제국 양식의 건축물을 비롯한 도시 건설이 진행되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16세기, 17세기에 합스부르크 군주국, 베네치아 공화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던 오스만 제국의 전초 기지로 여겨졌다. 하지만 19세기에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면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저항하는 봉기가 일어났다. 1878년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전한 이후에 열린 베를린 회의를 계기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향권에 편입되었다.

 

 190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합병한 보스니아 위기를 계기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이웃한 세르비아에서는 대세르비아주의, 범슬라브주의가 확산되었다. 특히 1914년에 일어난 사라예보 사건은 제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된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종전 이후에 체결된 생제르맹 조약에 따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해체되었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왕국(나중에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이름을 바꿈)의 지배를 받게 된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대부분은 추축국 진영에 있던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의 괴뢰 국가인 크로아티아 독립국의 지배를 받았다. 크로아티아의 파시스트 조직이었던 우스타샤는 세르비아인들, 유대인들, 롬인들,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대량 학살을 자행하는 한편 이들을 강제 수용소로 보내서 살해했다. 세르비아의 민족주의 조직이었던 체트니크는 우스타샤에 대한 보복으로 크로아티아인들, 보스니아인들에 대한 대량 학살을 자행했다. 우스타샤와 체트니크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던 보스니아인들, 크로아티아인들, 세르비아인들은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을 결성하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각지에서 활동했다.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주도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 수립된 이후에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었지만 1989년 혁명을 계기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는 각 민족을 대표하는 정당들이 형성되었다. 1991년에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이후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도 독립 요구가 높아지게 된다. 그러나 동방 정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세르비아인들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잔류하기를 원한 반면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하는 보스니아인들, 로마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크로아티아인들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하기를 원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거주하던 보스니아인들, 크로아티아인들, 세르비아인들 간의 분쟁은 1992년에 일어난 보스니아 전쟁을 계기로 폭발하게 된다. 1992년 3월에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정부가 국민투표를 통해 유고슬라비아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을 수립했지만 세르비아인들은 이를 거부했다. 세르비아인들이 스릅스카 공화국을, 크로아티아인들이 헤르체그보스니아 크로아티아인 공화국을 수립했고 보스니아인들, 크로아티아인들, 세르비아인들 사이에서는 상대 민족들을 상대로 한 학살 행위가 벌어졌다.

 

 1994년 3월에는 보스니아계 중앙 정부와 크로아티아계 무장 조직 간의 분쟁이 종식되었고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을 수립하게 된다.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분쟁에 개입하면서 세르비아계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다. 1995년 데이턴 협정이 체결되면서 보스니아 전쟁이 종식되었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보스니아계·크로아티아계가 중심이 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 세르비아계가 중심이 된 스릅스카 공화국으로 구성된 연합 국가가 되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

 터키의 지배하에 놓였다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지원으로 영토를 탈환하고, 1918년 유고슬라비아의 주가 되었으며, 1946년 북부의 보스니아와 남부의 헤르체고비나지방이 합쳐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의 일원이 되었다.

 

 1991년 공화국 국민투표에서 독립이 가결되어 1992년 3월 3일 독립을 선포하였으나 공화국 거주 이슬람교도와 크로아티아계, 세르비아계 세력 간 유혈 민족분규가 발생하여 내전으로 발전하였다. 내전기간 동안 20만 명 이상의 사망자와 100만 명의 이상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1995년 11월 내전 3개 당사국 대통령들이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 공군기지에 모여 내전종식을 위한 평화협정에 가조인한 뒤, 1995년 12월 14일 파리에서 보스니아평화 협정에 공식 조인함으로써 43개월 여에 걸친 인류최악의 민족분규가 종식되었다.

 

 협정에 따라 이슬람-크로아티아연방(The Moslem-Croat Federation)과 스르프스카공화국(Republika Srpska)이 국가연합의 형태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공화국을 구성하였다.

 

 1996년 9월에 치러진 총선 결과, 29개 정당에서 3000명의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이슬람계의 민주행동당(SDA)과 세르비아계의 세르비아민주당(SDS), 크로아티아계의 민주동맹(HDZ) 등 3개 민족의 중심 정당후보들이 압승하였다.

 

 중앙정부의 대통령단 선거에서도 각각 이들 정당의 지도자인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Alija Izetbegovi○)와 몸칠로 크라이스니크(Mom○ilo Kraji○nik), 크레시미르 주박(Kresimir Zubak)이 당선되었다. 이 가운데 최다 득표를 한 이제트베고비치가 1998년 선거 때까지 2년간 수석대통령으로서 중앙정부의 집단지도체제를 이끌었다.

 

 3인의 공동 대통령은 8개월씩 윤번제로 정권을 담당하며, 그 아래 총리는 내각을 이끌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중도를 표방하고 있으며, 1992년 유엔에 가입하였다.

 

 

기후 - 기온-℃ / 강수량-mm

지 역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사라예보

(Sarajevo)

최고평균

2.7

5.9

10.4

15.1

20.3

23.1

25.5

25.7

22.0

16.5

9.7

3.5

최저평균

-4.4

-2.3

0.7

4.4

8.5

11.4

12.8

12.6

9.7

5.7

1.6

-2.8

평 균

-0.9

1.8

5.6

9.8

14.4

17.3

1.2

19.2

15.9

11.1

5.7

0.4

강우량mm

71

67

70

74

82

91

79

71

70

77

94

85

 

모스타르

(Mostar)

최고평균

8.4

10.8

14.6

19.0

24.0

27.6

31.1

30.8

26.9

21.0

14.5

9.7

최저평균

1.9

3.2

5.4

8.4

12.5

15.8

18.6

18.4

15.3

11.2

6.7

3.3

평 균

5.2

7.0

10.0

13.7

18.3

21.7

24.9

24.6

21.1

16.1

10.6

6.5

강우량mm

165

151

150

127

102

78

43

74

96

151

200

179

 

 

 관광 명소

사라예보(Sarajevo)

 전쟁 전의 사라예보는 모스크와 시장 아름다운 전경을 가진 터키식 바자르가 있는 풍부한 역사의 장으로 유럽에서 가장 동양적인 도시였다.

 도시의 강가는 여전히 1914년 오-헝 황태자(Archduke Francis Ferdinand, 1863~1914)가 여기에서 삶을 마치는 그 운명적인 날 이래로 크게 변하지 않고 유지되어 왔다.

 70년이 지난 후에 사라예보가 다시 1984년 동계 올림픽의 개최지로 주목받기 시작할 때, 당신은 그 경쟁무대에 설수 있었을 것이다.

 100년 동안 사라예보는 이슬람과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터키인과 유대인과 또 다른 이민족이 평화적으로 공존했지만, 관용의 전통은 세르비아인의 대포에 의해서 파편속에 부서졌다.

 최근의 전쟁동안 1만여명의 사람이 죽었고, 5천여명이 부상당했다.

 3년의 잔인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사라예보는 다시 안정상태에 도달한다.

 트램이 움직이고 많은 카페와 호텔들이 다시 문을 열고, 여행객들이 조금씩 도시를 채우기 시작했다. 최초의 방문객들은 인류의 종말과도 같은 전쟁의 그 엄청난 폐해를 보여주는 장소를 최초로 보고자 하는 '전쟁그룹'들이었다. 행운과 시간을 두고 사라예보는 다시 찬란한 대도시로 태어날 것이다.

 

 

 

모스타르(Mostar)

 '오래된 다리'라는 뜻을 가진 모스타르는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였으며, 네레트바강이 흐르고 있다.

 로마시대의 건축물과 터키 식민지 시대의 흔적들이 남아있으며, 1993년 보스니아 내전으로 시내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지만 2004년 다시 재건되었다.

 현재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모스타르(Mostar)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있는 도시이자 자치제이며, 헤르체고비나 지역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도시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을 구성하는 주 가운데 하나인 헤르체고비나네레트바 주의 주도이다.

 

 모스타르는 헤르체고비나 지역의 가장 큰 도시로 네레트바 강을 끼고 있으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는 사라예보 다음으로 잘 알려진 주요 관광지이다.

 

 모스타르는 네레트바 강을 중심으로 보스니아인이 거주하는 지역과 크로아티아인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세르비아인도 상당히 거주하고 있었으나 전쟁 이후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으며 지금은 보스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이 도시를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

 

 모스타르는 네레트바 강에 자리잡고 있으며 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이다. 모스타르는 네레트바 강 바로 위 다리를 지켰던 "다리 파수꾼들"을 뜻하는 'mostari'로 이름이 지어졌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동안에 다리가 건설되었고 모스타의 상징들 중 하나가 되었다. 다리는 1993년 11월 9일 10시 15분 보스니아 전쟁 기간 동안 크로아티아 방위 평의회 부대에 의해 파괴되었다. 당시 크로아티아 군대의 사령관이었던 슬로보단 프랄랴크(Slobodan Praljak)는 다리의 파괴를 명령한 것에 대해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았다.

 

 인종적으로 나뉜 도시의 정치적인 지배는 동등하게 크로아티아인과 보스니아인들 사이로 분배되었다. 전쟁의 끝 이래로, 도시는 국가적인 평등 정책 아래 다스려진 상태이다.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인종 커뮤니티들은 각각 주요 거리의 한 쪽을 요구했으며 심지어 이곳을 연고로 하는 지역 축구 클럽인 FK 벨레주 모스타르와 즈린스키 모스타르의 서포터조차 인종 경계를 따라서 나뉜 상태이다. 한 보스니아의 정치인은 RTV 슬로베니아 인터뷰에서 모스타르가 "크로아티아인과 보스니아인 사이 벽에 의해 분리되었다"라고 얘기했다.

 모스타르에 남아 있는 세르비아인들은 거의 없다.

 

 

◈ 모스타르(Mostar)의 상징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 모스트 다리)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 모스트 다리)'는 오래된 다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모스타르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로 관광객들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오스만 투르크가 이 지역을 점령한 뒤 네레트바 강을 건너기 위한 다리로 1557년 건설을 시작했으며, 9년의 건축 기간을 거쳐 1566년 완공되었다. 당시에는 아치 하나로 세계에서 가장 긴 단일 구간의 거리를 연결하는 다리였으며, 석재만 이용해 만들어진 거대한 아치는 당시 오스만 투르크의 건축 기술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다리의 폭은 4m, 길이는 30m이며, 네레트바 강에서 다리의 높이는 약 24m이다.

 

 유럽을 휩쓴 여러 번의 전쟁 속에서도 건재했던 스타리 모스트는 1993년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크로아티아의 포격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후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복구되었으며,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스타리 모스트의 명물 중 하나는 매년 7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벌어지는 다이빙 대회이다. 네레트바 강은 유속이 빠르고 수온이 상당히 찬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숙련된 다이버가 아니면 스타리 모스트에서 쉽게 다이빙을 하기 어렵다.

 

 다리를 건너면 무슬림들이 살았던 지역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터키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라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돌로 장식된 바닥과 기념품 가게들이 상당히 인상적이므로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둘러보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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