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Armenia)

 

 

 정식 명칭은 아르메니아공화국(Republic of Armenia)으로, 독립국가연합(CIS)을 구성한 공화국의 하나이다.

 

 면적은 2만 9743㎢

 인구는 약 300만 명(2022년), 수도는 예레반(Yerevan)이다.

 

 주민은 아르메니아인 97.9%, 쿠르드인 1.3%, 러시아인 0.5%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용어는 아르메니아어

 

 종교는 아르메니아정교 94%, 기독교 4%, 조로아스터교 등 기타 2%이다.

 

 고산지대에는 목축업이 발달되어 있으며, 아락스 계곡과 예레반 주변지대에는 목화와 포도· 올리브 등 과수업이 성하다. 또한, 구리· 아연· 알루미늄 등이 풍부하여 광공업도 발달되어 있는 편이다.

 

 2015년 국민총생산은 107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3,547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임기 5년의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이며, 의회는 임기 4년의 단원제(131석)이다. 주요 정당은 공화당, 국민민주연합, 공산당, 인민당 등이다.

 

 

 

 소련을 구성했던 공화국 가운데 하나로 서남아시아에 있는 국가이다. 자카프카지예 지역 남쪽 부분에 위치하며 평균고도가 해발 1,800m에 이르는 산악지대이다. 역사적으로 국경선의 변화가 상당히 심했던 지역으로 고대 아르메니아가 지금의 아르메니아와 터키 북동부 지방에 걸쳐 있었던 반면, 오늘날의 아르메니아는 자카프카지예 지역의 3개 국가(조지아·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가운데 가장 좁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농업이 주요산업이지만 공업화가 급속히 추진되고 있다.

 

 소련을 구성했던 공화국 가운데 하나이며 서남아시아의 유서깊은 지역에 위치한 국가이다.

 

 역사적으로 국경선의 변화가 상당히 심했던 지역으로 고대 아르메니아가 지금의 아르메니아와 터키 북동부 지방에 걸쳐 있었던 반면 오늘날의 아르메니아는 자카프카지예 지역의 3개 국가(조지아·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가운데 가장 좁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터키령 아르메니아는 아르메니아와 달리 정치적으로 독립하지 못했고 대부분의 아르메니아인들은 아르메니아에 거주하는데 터키령 아르메니아에는 소수만이 살고 있다. 아르메니아의 수도는 예레반이다. 

 

 

 아직도 이슬람의 아제르바이잔과는 영토분쟁이 있어 국경이 닫혀있고, 제노사이드의 아픔이 치유되지 않은 터키와도 앙숙이다.

 바다가 없는 내륙국인 아르메니아는 그래서 오로지 조지아를 통해서만 세상과 연결되고,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오로지 아르메니아인 1000만 명만이 믿고 있어 종교적으로도 고립되어 있다.

 

 

자연환경

 아르메니아는 북쪽과 동쪽으로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 서쪽으로 터키, 남쪽으로 이란과 접해 있다. 자카프카지예 지역 남쪽 부분에 위치하며 평균고도가 해발 1,800m에 이르는 산악지대이다.

 북부를 소카프카스 산맥이 가로지르고 중동부에 세반 호가 있다.

 고도에 따라 심하게 변하는 건조한 대륙성기후가 나타나는 반사막지대로 향나무· 알로에· 찔레꽃· 인동덩굴 등의 내한성 식물이 자라며 비교적 낮은 지역에는 내한성 풀로 뒤덮인 광대한 스텝 지대가 펼쳐져 있다.

 따뜻한 평원과 구릉지대에서 무화과· 석류· 복숭아· 포도 등이 재배되며 좀더 높은 곳에서는 담배· 곡물류· 과일류가, 해발 2,400m 이상 되는 지점에서는 곡식· 감자· 사료식물 등이 재배된다.

 산비탈마다 가시덤불과 향나무가 울창하며 고지대 초원에서는 여름철 방목이 이루어진다.

 남동부와 북동부에는 국토 면적의 거의 10%를 차지하는 산림대가 있다.

 야생동물로는 살쾡이가 도처에 살고 반사막지대에는 멧돼지· 재칼 및 다양한 종류의 뱀들이, 산림지대에는 시리아 곰이 서식한다.

 

 

국민

 국민의 90%는 아르메니아인이고 그밖에 아제르바이잔인·러시아인·쿠르드족·우크라이나인 등도 소수 거주한다. 주변의 다른 공화국들과 마찬가지로 점차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다.

 

 

경제

 아직까지 농업이 주요산업이지만 공업화가 급속히 추진되고 있다. 예전에는 농작물·구리·브랜디의 생산지였으나 오늘날에는 화학제품·비철금속·기계·정밀기계·직물·의류·포도주·통조림제품 등의 공급지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여전히 농업에 종사하여 주요작물인 양조용 포도 외에 과일·채소·담배·목화·사탕무 등을 재배하고 소·양을 사육한다. 산악지대의 불편한 교통을 철도와 조밀한 도로망을 통해 해결하는 한편 산록의 급류로 일으킨 수력발전이 산업화에 큰 몫을 담당했다.

 

 

정치 사회

 소련 시절의 헌법(1978)을 대체한 새 헌법(1995)에 따라 입법부·행정부·사법부가 분리되고 행정부의 권한이 강화되었으며 기본권과 시민권이 구체적으로 열거되었다. 단원제인 의회는 4년 임기의 의원 131명으로 이루어지고 예산 승인, 조약 비준, 전쟁 선포 등의 권한을 갖는다.

 

 직접선거로 선출되는 대통령은 5년 임기로 1회 연임이 가능하다.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의회의 승인을 얻어 각료와 고등법원 판사를 임명하며 대통령령를 발할 수 있다. 사법부에는 예심법원·상소법원·파기원(최고상소법원) 및 9명의 판사로 이루어진 헌법재판소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법령의 위헌여부를 결정한다.

 

 아르메니아는 여러 주(州 : '오블라스트'라고 함)로 나뉘는데 지역공동체 단위의 지방정부는 시장이나 마을의 연장자가 통치한다. 소련하에서는 소련공산당의 통제를 받던 아르메니아공산당(Communist Party of Armenia)이 실질적으로 독재를 했지만 현재는 다당제로 바뀌었다. 독립 이후 아르메니아를 통치해온 온건 민족주의 정당인 아르메니아국민운동(Armenian National Movement), 1922년 소련에 흡수되기 전 잠시 아르메니아를 통치한 아르메니아혁명연맹(Armenian Revolutionary Federation : 다슈나크), 공산당을 승계한 아르메니아민주당(Democratic Party of Armenia) 등이 주요 정당이다.

 

 전국적으로 8년제로 정착된 학제를 기준으로 무상 의무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교육은 일반학교·직업학교·중등학교에서 이루어지며 예레반국립대학교를 비롯한 고등교육기관도 있다. 의료시술은 병원과 진료소에서 모든 시민들에게 무상으로 제공된다.

 

 

문화예술

 문헌화된 아르메니아 문학의 역사는 AD 5세기부터 시작된다. 사야트 노바(1712∼1795)의 연가가 아직도 애송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작곡가 아람 하차투리안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고 아르메니아 태생의 화가 아르실레 고르키의 그림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문화기관으로는 국립 오페라· 발레 학술극장과 몇 개의 연극 공연장, 어린이와 교향악단 전용극장, 예레반영화사 등이 있다.

 

 양탄자 제조와 전통민속공예도 활발하다.

 

 

아르메니아(Armenia) 개요

o 위치: 아시아 서남부

o 수도: 예레반

o 면적: 29,743

o 공식명칭: 아르메니아 공화국 (Republic of Armenia)

o 인구: 약 300만 명(2022년)

o GDP: 122$(2022년. 세계 136위)

o 기후: 온대건조성기후, 온대성기후

o 민족 구성: 아르메니아인(98%), 쿠르드족(1%), 러시아인

o 언어: 아르메니아어

o 정부/의회형태: 중앙집권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o 종교: 아르메니아 사도교회(95%), 그리스도교(4%)

o 화폐: 드람 (AMD)

o 국화: 아네모네

o 국가번호: 374

o 인구밀도: 103/

o 전압: 220~230V / 50Hz

o 도메인: .am

 

 

아르메니아(Armenia) 역사

 고대 아르메니아는 한때 로마 제국에 대항할 정도로 강성했으나 이후의 역사는 많은 외국세력의 지배와 이에 대항한 독립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아르메니아 문화의 기초는 우라르투가 멸망한 BC 6세기에 성립되기 시작했다. 우라르투는 강력한 동맹국이던 아시리아가 바빌로니아와 메디아에 정복되자 그 여파로 스키타이인과 킴메리인에게 정복되었던 고대왕국이다. 스스로를 하이크인이라 부르던 아르메니아인들이 이주해왔을 때 우라르투의 발달된 농업기술은 아르메니아인들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 이주해온 아르메니아인들은 곧 메디아 제국에 흡수되었고 메디아가 BC 550년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영토로 편입되면서 이 지역의 통치는 페르시아 왕에게 공물을 바치는 각 마을 관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BC 331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르메니아를 정복한 후 BC 301년 셀레우코스 제국에 편입되었다.

 

 로마가 BC 190∼189년 셀레우코스 왕조를 정복한 후에는 대(大)아르메니아와 소페네 두 지역으로 분할되었다가 아르메니아의 대왕 티그라네스 2세(BC 95∼55 재위)에 의해 통일되었다.

 

 아르메니아는 그가 다스리는 동안 최고로 번성하여 인접 지역인 이베리아, 알바니아, 아트로파테네, 시리아, 파르티아의 일부 지역까지 세력을 뻗쳤다. 로마 제국 동쪽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급속히 부상했으나 BC 66년 강제로 영토를 할양하고 로마와 동맹을 맺은 후로는 AD 3세기까지 로마와 페르시아 파르티아 왕조의 각축 지역이 되었다.

 

 성 그레고리우스가 아르사크 왕조의 티리다테스 3세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킴에 따라 페르시아 및 동양 세계로부터 영원히 분리되었으며, AD 300년에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390년 비잔틴 아르메니아와 페르시아 아르메니아로 분할되어 전자는 곧 비잔틴 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후자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페르시아의 세력이 쇠퇴하자 비잔틴 세력권으로 들어갔다. 653년 아랍의 지배 아래 들어갔으나 실질적으로는 자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11세기 잠시 부흥했던 비잔틴 제국에 병합되었지만 곧 셀주크인들의 침략을 받아 11세기말에 이르러서는 나라의 대부분이 셀주크 투르크의 수중에 들어갔으며, 영토의 대부분이 조지아에 편입되어 있었던 13세기에는 몽골의 침략을 받기도 했다.

 

 셀주크에 점령된 후 실리시아 지방으로 이주한 아르메니아인들은 소(小)아르메니아를 세워 십자군 전쟁기에 유럽과 굳게 동맹을 맺고 유럽 문화를 많이 수용했다. 13세기 시리아를 통한 이집트 맘루크 왕조의 침입을 막기 위해 몽골 군대를 고용하기도 했으나 1375년 수도가 함락되면서 독립을 상실했다.

 

 16세기 초반 다시 적대관계에 있던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 사이의 각축장이 되어 짧은 독립기간(1722∼1730)을 제외하고는 18세기까지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아르메니아는 동양과 서양을 잇는 교역로가 되었다.

 

 아르메니아는 19세기초 러시아가 카프카스 지방으로 진출하면서 문화적으로 재건되었다.

 

 해외에서는 투르크 제국 통치하에 있는 이들의 상황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1877∼1878년 러시아-투르크 전쟁으로 산스테파노 조약이 체결된 뒤 '아르메니아 문제'가 부각되었으나 개혁을 일으키려는 시도는 아르메니아 민중에 대한 투르크와 러시아의 대량 학살만을 야기시켰다. 1915년에는 오스만 정부에 의해 약 175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로 추방되었는데 도중에 60만 명 가량이 사막에서 죽었다.

 

 1916년 러시아에 정복당한 후에는 조지아·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자카프카지예 동맹을 형성했으나 몇 달 지나지 않아 해체되었다.

 

 1920년 아르메니아 공화국으로 잠시 독립했던 것을 비롯한 여러 차례의 정치적 격동 끝에 조지아·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자카프카지예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으로 재통합되었으며, 1922년 소련에 흡수되었다. 1936년 새로 개정된 소련 헌법에 따라 독자적인 소비에트 공화국이 되었다. 1980년대말 주민 대부분이 아르메니아인임에도 불구하고 아제르바이잔의 관할권에 속해 있던 이웃 산악지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정치적 지위문제를 둘러싸고 심각한 소요사태가 일어났다.

 

 1988년부터 수년간 아제르바이잔과 벌인 분쟁으로 수많은 아르메니아인이 사망했다.

 

 1988년 12월 7일에는 큰 지진이 일어나 레니나칸과 스피타크 시가 파괴되고 2만 5천여 명이 죽었다. 1989년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공급되던 전력이 끊겨 대부분의 산업시설이 가동을 못하는 등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경제가 매우 어려워졌고 주변국들과의 관계도 악화되었다. 아르메니아는 그후 1990년 8월 23일 주권을 선언하고 1991년 12월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했다. 1992년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자치를 주장하며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 승인을 아르메니아에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출입국 정보

 2018년 3월 19일부터 한국 국적 여권 소지자는 무비자 방문 가능

 최대 180일 체류 가능

 

 

아르메니아 여행 최적기

 3월~6월, 10월~12월 초

 

 

예레반(Yerevan) 기후()

지 역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예레반

Yerevan

최고평균

1

4

11

19

24

29

33

32

28

 21

12

4

최저평균

-8

-6

0

6

10

14

17

17

12

 7

1

-4

평 균

-3.4

0.9

5.4

12.4

17.4

21.6

25.6

25.4

20.4

13.5

6.5

0

강수량mm

22

25

30

37

44

21

9

8

8

27

23

23

강우일수

9

9

8

11

13

8

5

3

4

7

7

8

 

 

관광 명소

예레반(Yerevan)

 아르메니아의 수도

 Erevan, Jerevan이라고도 씀

 

 예레반(Yerevan)은 라잔 강 유역에 있으며, 터키와의 국경에서 23㎞ 떨어져 있다. 역사적으로 첫 기록을 남긴 것은 AD 607년이지만 BC 6000~3000년경 이곳에 정착촌이 있었고, 그뒤 BC 783년에는 예르부니 요새가 있었음이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었다. BC 6세기에 아르메니아 왕국에 합병되었다.

 

 무역 중심지로서 그 중요성이 점점 증가하는 가운데 로마(당시 요새의 잔해가 남아 있음)·파르티아·아랍·몽골·투르크·페르시아·조지아·러시아 등 여러 나라의 침입을 받고 이들에게 지배당하는 수난의 역사를 거쳤다. 1582년에는 투르크로, 1604년에는 페르시아로, 그리고 1827년에는 러시아로 넘어갔으며, 1920년 아르메니아의 수도가 되었다.

 

 라잔 강의 깊은 해구에서 산기슭 위로 펼쳐져 있는 예레반은 천연경관이 아름다운 매력적인 도시로 북쪽은 사화산들인 아라가츠 산 및 아주다크 산으로, 남쪽은 터키와의 국경을 가로지르고 있는 아라라트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가로수 길을 따라 아르메니아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현대 건물들이 많은데, 이것은 다양한 색상의 지역산 돌로 건축되었다. 문화 중심지인 예레반에는 1920년에 설립된 대학교를 비롯하여 많은 고등교육기관들이 있다. 1943년에 발족한 아르메니아 과학 아카데미가 이 도시의 많은 연구기관 중 가장 대표적이다. 마테나다란 고문서국에는 887년의 〈라자로 복음서〉를 비롯한 아르메니아의 고대 필사본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 그밖에 극장과 박물관도 많이 있다.

 

 1914년에는 인구 3만 명의 작은 도시에 불과했으나, 공업이 발달하고 라잔 강에 수력발전소들(그중 하나는 예레반에 있음)이 건설되면서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다. 화학공업의 발달로, 아세틸렌·플라스틱·합성고무·타이어 등이 생산되며 알루미늄 제련공업 및 자동차·터빈·전기기계·압축기·케이블·기계장비 등의 제조업이 이루어진다.

 

 

아라랏산 꼬냑 박물관(Ararat Cognac Museum)

 아르메니아 아라랏산 인근에서 수확한 포도를 가지고 제조한 아르메니아 대표 술인 아라랏 꼬냑은 깊고 진한 맛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 박물관은 꼬냑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실제 저장고, 시음 등 현장에서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예레반 공화국 광장(Republic Square of Yerevan)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 있는 거대한 중앙 타운 광장으로 광장 전체가 타원형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돌로 만든 타원형 모양의 무늬가 있다. 아르메니아의 전통 러그가 내려 온것같은 느낌을 내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아르메니아의 건축가 알렉산더 타마니안이 설계하고 건축한 광장이다. 공화구 광장은 1949년 완공되고 난 후에도 1952년까지 점차적으로 개발 및 확장되었다.

 아르메니아가 구 소련의 지배를 받던 시기 구소련의 지도자였던 레닌의 이름을 딴 '레닌 광장'으로 불렸으나 독립 후 그의 동상도 철거되고 이름도 '예레반 공화국 광장'으로 바뀌게 되었다.

 

 

아르메니아 어머니상(Mother Armenia)

 빅토리아 공원은 아르메니아의 2차대전 참전 기념탑이 있는 공원이다.

 이 공원에는 있는 거대한 칼을 들고있는 아르메니아 어머니상은 '힘을 통한 평화'를 상징하고 있다. 동상 옆에는 탱크와 제트기 등 여러 전쟁 무기들이 있어 전형적인 소련 광장의 느낌을 준다. 본래 자리엔 스탈린의 동상이 자리하였으나 아르메니아 병사들에 의해 파괴되고 새로 새워진 동상이 '아르메니아 어머니 동상'이다. 방어하는 자세로 도시너머 터키 국경을 향하고 있다.

 

 

케스케이드 전망대(Cascade Observatory)

 예레반 중심가에 자리한 조각공원.

 소비에트연방 50주년을 기념해 만든 복합 에술단지이다. 지진으로 중단되었다가 해외의 이주 국민들의 성금으로 완성되었다.

 예레반의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케스케이드 전망대는 길게 늘어선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전망대 밑에는 전세계 조각가들이 만든 작품들과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아름다운 분수대와 정원이 함께하고 있다.

 

 

▣ 예레반 광장에 위치한 예레반 역사 박물관(Yerevan Historical Museum)

 예레반 공화국 광장에 있는 역사박물관으로, 1919년 9월 9일 설립되었으며, 약 100만 년 전 선사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아르메니아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이집트, 미타니, 히타이트 왕국, 아시리아, 이란, 로마 등 아르메니아 고원 동쪽에 있는 국가들과 상호 문화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어 그 역사적인 가치가 높다.

 

 

 

◈ 코카스의 최대 호수 세반 호(Lake Sevan)

 세반 호(Lake Sevan)는 아르메니아 게가르쿠니크 주에 있으며, 아르메니아 최대이자 캅카스 최대의 호수이다.

 호수면은 해발(海拔) 1900m에 위치하여, 민물 호수(淡水湖)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것 중 하나이다.(백두산 천지의 수면은 해발 2,189.1m). 호수의 면적은 1,243㎢이다. 잘록한 부분이 있어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남쪽의 대(大) 세반(Major Sevan)은 916km², 북쪽의 소(小) 세반(Minor Sevan)은 328㎢ 면적이다. 주변으로부터 28개의 강과 하천이 흘러든다.

 세반 호는 반 호우르미아 호와 함께, 고대 아르메니아 왕국 세 호수 중 하나로 여겨지며 이 호수들은 아르메니아의 바다들로 일컬어진다. 세반 호는 이들 중 유일하게 아르메니아 국경 안에 남아있다.

 세반은 "검은 반"이라는 뜻으로, 검은 반 호(湖)라는 의미이다. 오래전, 아르메니아인들은 반 호 주변으로부터 세반 호로 왔다고 한다. 그 때 그들은 호수가 어두운 색을 띄어 검은색에 가까운 것에서부터 세반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 호수의 수면은 해발 1915.9m, 수심은 95m, 면적은 1,360㎢(아르메니아 국토의 5%에 해당)였다. 그러나 소비에트 연방시대 들어 인공적 수단에 의해 세반 호수는 극적으로 바뀌었다. 스탈린 시대 이후 일련의 공사로, 호수의 수면은 19.01m 내려가 1896.86m가 되었고 면적은 1,238.1㎢로 줄었다. 다행히 스탈린 사후 이러한 건설계획들이 재검토되었던 때문에 아랄 해와 같은 재앙은 피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이후 호수를 원래 규모에 가깝게 되돌리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2012년 3월 2일 '세반 호에 대한 대통령위원회' 의장은, 2001년 이래 시행되어 온 법률에 따라 호수의 수면이 380cm 상승하였으며, 그 결과 수면은 1900.19m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아르메니아에서는 2014년부터 5개년 계획으로, 수량을 1억 7천만㎥에서 2억 4천만㎥로 늘릴 예정이며, 2030년까지 호수의 수면을 1903.5m로 올릴 계획이다.

호수 주변에는 여러 곳의 호수욕장(湖水浴場)이 위치한다. 북쪽 호안에 있는 세바나반크 반도(20세기 이전에는 섬이었다)는 역사지구로 유명하다.

 

o 세반 수도원

 호수 안에 있는 섬에 세워진 세반 수도원은 1950년대 근처 수력발전소가 생기면서 이전보다 약 20m 정도 수면이 낮아졌고 그로 인하여 육지와 연결되었습니다.

 

 

 

알라베르디(Alaverdi)

 알라베르디()는 아르메니아 북동부 로리 주(Lori Province)에 위치한 도시로 면적은 18㎢, 높이는 1,000m, 인구는 1만 5천명, 인구 밀도는 740명/㎢이다.

 조지아 국경과 가까운 지점에 위치하며 예레반-귬리-트빌리시 사이를 연결하는 철도가 지나간다.

 

데베드 협곡(Debed Canyon)

 깊고 깊은 산중에 자리 잡은 데베드 협곡은 진귀한 경관으로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협곡이다.

 데베드 협곡은 그 어느 곳보다도 더 많은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데벳강을 따라 있는 거의 모든 마을에는 교회, 예배당, 오래된 요새, 그리고 근처 어딘가에 십자가들이 널려 있다.

 데베드 협곡 위쪽으로 아흐파트 수도원이 자리잡고 있다.

 

 

아흐파트 수도원(Haghpat Monastery)

 아흐파트 수도원은 아르메니아 북부 로리 지방의 아흐파트 마을에 있는 요새화된 큰 규모의 수도원 복합건물이다.

 데베드 협곡 위에 있는 아흐파트 수도원은 비잔틴 양식의 수도원이며, 10~13세기 번성했던 키우리크 왕조의 중요 교육기관이었다.

 지금 남아 있는 가장 오랜된 건물은 코스로비누쉬(Khosrovanush) 왕비의 후원으로 966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991년에 완공된 성 니산 교회이다. 비잔틴 양식과 아르매니아 전통 양식이 혼합된 건축양식으로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12세기 일부 복원작업을 통해 초기의 형태를 완벽하게 지니고 있다.

 1245년 거대한 종탑이 건립되고, 1257년에는 성 아스트밧사친 교회(성모 교회)가 세워졌다.

 1120년에 지진으로 일부 파괴되었으나 복구되었고, 12세기 초에는 셀주크의 침입, 13세기에는 몽골의 침략으로 파괴와 약탈이 있었다.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사다클로(Sadaklo)

❋ 아르메니아 종교 건축의 절정기를 대표하는 아흐파트, 사나힌 수도원(Monastery of Haghpat and Sanahin)

 2000년부터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사나힌 수도원은 10세기에 비잔틴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당시 아르메니아의 독특한 종교 건축 문화를 보존하고 있어 역사, 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다.

 

 데베드 협곡 위에 있는 아흐파트 수도원은 비잔틴 양식의 수도원이며, 10~13세기 번성했던 키우리크 왕조의 중요 교육기관이었다. 966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991년에 완공 되었으며 12세기 일부 복원작업을 통해 초기의 형태를 완벽하게 지니고 있다.

 

 아르메니아의 로리 지방(Lorri Region) 아흐파트와 사나힌 마을(Villages of Haghpat and Sanahin)에 위치하며, 비잔틴 양식의 수도원으로서 10~13세기에 번성했던 키우리크 왕조(Kiurikian dynasty)의 중요 교육 기관이었다.

 사나힌 수도원은 역사적으로 장식가와 서예가의 학교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아르메니아 종교 건축의 절정기를 대표하는 두 수도원은 비잔틴 교회 건축 양식과 캅카스(Kavkaz) 지역의 전통적인 토속 건축 양식이 결합하여 독특한 양식으로 발달한 것이다.

 

 

 투마냔(Tumanian) 지방에 있는 아흐파트와 사나힌 수도원은 비잔틴 양식의 수도원으로서 10~13세기에 번성했던 키우리크 왕조의 중요 교육 기관이었다. 특히 사나힌은 역사적으로 장식가와 서예가의 학교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 수도원들은 10~13세기 아르메니아의 비잔틴 양식 교회 건축 요소와 전통적 고유의 건축 양식을 혼합하여 건축한 교회 건축의 독특한 사례이다. 아흐파트 수도원은 요새화된 대규모 수도원 단지로서 주 성당과 성 그리고리 교회(Church of Sourb Grigor)로 구성되어 있다. 성 십자가를 봉헌하기 위해 지어진 주 성당은 수도원을 구성하는 건축물 가운데 최대 규모이며, 966~967년에 건축되기 시작하여 991년에 완성되었다.

 

 측면 벽에 세워진 거대한 4개의 기둥이 중앙 돔을 지탱하고 있으며, 바깥쪽 벽은 삼각형 벽감으로 덮여 있다. 교회 동쪽 끝에 있는 반원형 부분에는 우주의 지배자로서 그리스도를 묘사한 벽화가 있다. 11, 12세기에 교회로 들어가는 큰 규모의 서쪽 입구를 포함해 일부 복원 작업이 행해졌으나 초기의 형태를 완벽하게 지니고 있다.

 

 1220년대에 건축된 게하르트(Geghard) 수도원의 가비트(gavit)의 평면 계획은 스타일면에서 주 성당과 뚜렷한 차이가 있다. 커다란 본당 입구 앞의 넓은 홀에서는 회의와 교습, 장례 의식이 행해졌다. 이 건물은 토착 건축 양식에 근거하여 나무로 지어졌으며, 구조물 중앙에 있는 4개의 기둥이 지붕을 지탱하고 있다. 둥근 천장은 지붕 내부를 9개로 나누며, 그 한가운데에 있는 예르디크(yerdik; 연기가 나가도록 지붕에 낸 구멍)가 가장 높고 내부 공간을 압도하면서 밝혀 준다. 교회는 둥근 지붕이 있는 통로에 의해 가비트와 똑같은 양식으로 13세기에 세워진 대규모 자마툰(jamatoun; 참사회 회당)으로 이어진다. 교회에 연결된 또 하나의 소형 정사각형 건물은 12세기에 지어진 도서관이다.

 

 알라베르디(Alaverdi) 지방에 있는 사나힌 수도원은 데베(Debet) 협곡 고원에 여러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아름다운 산의 경관과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는 이 수도원은 2개의 직사각형 축 위에 건물이 배치되어 있으며, 전면은 서쪽을 향해 있다. 이 수도원은 다음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주 예배당인 '구세주의 대성당(Cathedral of the Redeemer)'은 10세기에 건조되었다. 사나힌 수도원의 중핵을 이루며, 돔 건축을 특징으로 한다. 십자가 모양의 내부에서 가장 강조된 부분은 중앙의 핵심부 및 정사각형 기단과 원형 돔 사이의 조화이다. 여기에 있는 중앙의 돔은 2층으로 된 성구 보관실 4개와 예배당으로 둘러싸여 있다. 4개의 기둥이 설치된 회당은 회의와 교육, 종교적인 의식에 이용되었다.

 

 1181년에 구세주의 대성당 서쪽에 건조되었다. 이 회당은 정사각형에 십자가를 새긴 형태로 설계되었으며, 조명은 돔 중앙의 구멍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건축 형태의 기원은 아르메니아 농부의 가옥에서 유래했다. 그들 가옥은 정사각형 방에 4개의 기둥이 지붕을 떠받치고, 지붕 중앙의 구멍으로 연기가 배출되었다. 이 건물은 이러한 형태의 구조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성당 북쪽에 위치한 신의 어머니 교회, 곧 아스트밧사스틴(Astvatzatzin)은 양 끝이 열린 아치형 복도를 통해 대성당과 연결되어 있다. 이 교회는 비잔틴에서 피신해 온 수도승들이 934년에 건조한 것으로 사나힌 수도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대성당의 북동쪽에 있는 대도서관(Scriptorium)은 1063년에 지어졌다. 사각형 건물로 둥근 천장이 있고, 다양한 크기의 벽감 10곳에 고서와 책들이 보관되어 있다.

 

 이 외에 도서관의 남동쪽 코너에는 문자 장식가 성 그레고리에게 봉헌된 자그마한 교회가 있으며, 그 옆에 11세기의 그레고리 마지스트로스 학술원(Academy of Gregory Magistros)이 있다. 학술원은 벽을 따라 깊은 벽감이 있으며 채광이 풍부한 특별한 공간이다. 주 건물의 남동쪽에는 공동묘지가 있으며, 그곳에는 자카리안(Zakarian) 왕자들의 무덤이 있다. 

 

 

 

코르 비랍(Khor Virap)

❋ 노아의 방주가 표착했다고 알려진 터키의 최고봉 아라랏산(Mount Ararat, 5,137m)

 해발고도 5,137m에 달하는 아라랏 산은 터키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특히 도우베야즛 근처에 있는 봉우리가 아라랏 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아으르 다으'라고 부른다.

 '아으르 다으'는 터키어로 '아픔의 산'이라는 뜻이다. 시내에서 아라랏 산을 바라보면 두 개의 봉우리가 보이는데 오른쪽이 해발고도가 3,896m에 달하는 큐축 아라랏 산(작은 아라랏 산)이고, 왼편의 봉우리가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뷔윅 아라랏 산(큰 아라랏 산)이다. 아라랏 산 정상에는 언제나 만년설이 덮여 있어서 더운 여름에는 보기만 해도 시원함을 안겨 준다.

 아라랏 산은 《구약성서》에서 대홍수가 끝난 후 노아의 방주가 표착했다고 알려진 곳이다.

 

 

코비랍 수도원(Khor Virap Monastery)

 코비랍 수도원은 '깊은 우물'이라는 뜻으로 4세기 경에 성 그레고리오가 13년간 수감되어 있던 지하 감옥 위에 지어졌다.

 7세기에 교회가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17세기에 완공되었다.

 '노아의 방주'가 멈추었다고 알려진 아라랏산이 보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에치미아진(Echmiadzin)

 예레반에서 서쪽으로 20㎞ 떨어져 있으며 아락스 강이 흐르는 평원에 자리잡고 있다. 이 도시는 아르메니아 가톨릭교의 총대주교관구이다. BC 7세기경 바르트케사반이라는 이름의 부락으로 세워졌으며 140년경 파르티아의 왕 볼로가세스 3세가 이곳을 수도로 정하고 바가르샤파트(Vagarshapat)로 개명했다.

 아르메니아가 300년경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면서 이곳은 아르메니아의 총대주교관구가 되었다. 344년 아르메니아의 수도는 바뀌었고 453년 대주교관구도 타지로 옮겨졌다.

 1441년 총대주교 키라코스가 대주교좌를 에치미아진으로 되돌려놓았으며 그뒤 이 도시는 '전(全)아르메니아의 총대주교관구'로서의 지위를 이어왔다.

 6세기에 설립되어 10세기 이래로 에치미아진이라 불려온 수도원은 여러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10m 높이의 벽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금은 대학과 신학교가 이 수도원에 설립되었다. 이 도시의 첫 교회 자리에 오늘날의 대성당이 7세기에 세워졌으며 1441년 이후 많은 부분이 개조되었다. 이 성당의 보관실에는 성 그레고리우스의 성해 가운데 손 부분이 있다.

 이 도시는 과수원과 포도밭으로 이루어진 풍요로운 지역의 중심지이며 플라스틱· 포도주· 통조림 등을 생산한다.

인구는 약 6만 명

 

에치미아진 대성당(Etchmiadzin Cathedral)

 아르메니아 에치미아진에 있는 성당으로, 아르메니아 그레고리 정교회의 본산이다.

 4세기에 건립되었으며, 국가가 합법적으로 공인하여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성당이다.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로마 병사의 롱기누스의 창과 노아의 방주에서 떼어왔다는 돌판 위의 십자가가 소장되어 있다.

 

 

❋ 천사들의 성당 즈바르트노츠(Zvartnots Cathedral)

 즈바르트노츠'는 '천상의 천사들'이란 뜻이다.

 이 교회는 서기 643년 아르메니아 대주교 네르네스 3세(Nerses III)가 성 조지(St. George, 성 그레고리우스)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했다.

 659년  네르네스 3세는 교회본부를 '드빈'에서 이곳으로 이전시켰다.

 930년에 지진으로 무너졌던 게 최근 발굴 후 일부 복원이 되어, 프레스코화 장식과 3개의 기둥이 있는 그리스 식 건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이 성당으로 인해 주변 지역의 교회 설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1901~1907년의 발굴을 통해, 교회당, 대주교 관사, 포도원 건물까지 확인했다.

 모자이크가 깔린 교회당은 이 지역의 현무암을 사용했고, 내부 구조는 네 개의 십자 기둥으로 이루어진 테트라콘치 양식이며, 원형건물로 보이나, 실제로는 정교한 32각형 건물이다.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예레반의 공항 이름이 '즈바르트노츠 공항'이다.

 

 

 

아라가츠 산(Gora Aragats- 4,090m)

 예레반의 북서쪽, 아라라트 평원의 북쪽에 있다. 아르메니아 및 소카프카스 산맥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 이 산(4,090m)은 용암과 응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둥근 방패 모양을 하고 있다.

 아주 오래된 암석의 꼭대기에 지질연대가 최근인 원추형 화산이 있다. 화산 분화구가 가파르게 팬 빙하분지, 즉 권곡으로 변했으며, 그밖에도 작은 빙하들이 여러 개 있다.

 들쭉날쭉한 정상 가까이에는 고산초원과 낙석들이 있다.

 경사지에는 스텝 식물과 건생식물(건조한 기후에서 자라는 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남쪽 경사면에는 중세의 요새인 안베르트의 흔적이 남아 있다.

 

 

 

게그하드(Geghard)

❋ 신성 샘이 있었던 게그하드 수도원(Geghard Monastery)

 아르메니아는 최초의 기독교 국가답게 수도원과 교회가 많다. 게하르트 수도원도 아르메니아를 대표하는 곳이다.

 중세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며 교회의 일부는 주변을 둘러싼 아자계곡(Azat Valley)의 바위를 깎아 만들었다.

 2000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초기 기독교 시대 13세기에 세워진 수도원이다.

 코비랍 수도원 (Khor Virap Monastery)에 감금됐던 성(聖) 그레고리우스가 동굴 안에 성스러운 샘이 솟아난 자리에 건물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수도원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창(槍)이 발견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게하르트(Geghard)는 the monastery of the Spear(창: 槍)의 수도원이라는 게르하타방크(Geghardavank)에서 유래된 말인데, 이 창이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Crucifixion) 또는 예수 그리스도를 찌른 로마군대의 창을 말한다. 당시 로마병사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창을 12사도의 한 사람인 타데우스 (Jude Thaddeus)가 이곳으로 가져와 보관하였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 창은 현세기까지 절대 권력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도 이 롱기누스의 창을 누가 소장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바위를 파서 깎아 만든 훌륭한 교회와 묘지는 중세 아르메니아의 수도원 건축과 장식예술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다. 이 수도원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찌른 창, 12세기에 기증받은 사도 안드레아와 사도 요한의 유물, 여러 세기 동안 독실한 방문객들이 기증한 토지, 금전, 필사본 등 보관된 성물로 유명하다.

 게하르트 수도원 성가대의 동굴수도원 안에서 듣는 성가는 특별한 울림이 있다.

 

 

가르니 신전(Garni Temple)

 가르니 신전은 아르메니아가 로마의 지배를 받았던 BC 1세기에 네로 황제의 후원을 받아 태양신 미트라에게 바치는 신전으로 건축했다.

 현재 아르메니아에 남아있는 헬레니즘건축물로는 유일하며, 신전을 포함한 건축물은 삼각형 토대 위에 서있다. 가르니의 고전적인 스타일의 사원은 그리스 아테나의 사원과 매우 유사하다.

 가장 높은 현무암의 연단과 전면에 위치한 넓은 계단을 통해 교회의 기본 형태를 알 수 있고 고대 아르메니아 조각의 높은 수준을 나타내는 고급스러운 마감을 통해 성전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신전을 오르는 계단은 경사가 매우 가파른데 이는 신전에 가는 사람이 절로 고개를 숙여 경배하는 자세를 만들려는 의도라고 한다. 이곳에 요새가 세워진 건 기원전 3세기경. 1세기에는 아르메니아왕의 별궁이 있었다.

 

 기원전 1세기에 만든 왕의 별장과 목욕탕도 발굴됐다. 사원 건너편에 목욕탕 유적지가 있다. 입구에는 불을 지펴 물을 끓였을 아궁이가 있으며, 칸칸이 만들어진 방은 온돌의 흔적이 보인다. 맨 안쪽에는 다른 곳보다 한결 넓은 방이 있다. 다른 방에서는 볼 수 없는 색색의 모자이크 타일이 깔려 있다. 반 정도 남아 있는 타일 한가운데에 알 수 없는 글자들이 적혀 있다. '우리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일했다'는 의미라고 한다.

 신전을 세울 당시의 아르메니아는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받아들이던 때였다. 신전은 「태양의 신전」이라 하였고, 이교신인 태양신 「미트라(미트라스)」에게 바쳤다. 17세기의 지진으로 파괴되었으나, 1970년대에 재건하였다.

 이 신전은 6km 떨어져 있는 게하르트 수도원과 더불어 2000년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가르니 주상절리(Garni Columnar Joint)

 용암이 분출하며 생긴 협곡으로, 세계 자연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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