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칼 (PORTUGAL)

리스본(Lisbon) ∥ 리스본 근교 ∥ 파티마(Fatima) ∥ 마데이라(Madeira)

 포르투갈은 이베리아 반도 서단에 위치한 공화국으로, 스페인에 등을 대고 전면은 대서양에 인접하고 있다. 국토 면적이 92,008㎢ 밖에 안되는 소국이지만, 일찍부터 해외에 진출하여 광대한 식민지를 획득, 지금도 세계 여러나라의 지탄을 받아 가면서 계속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다.

 BC 700년경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한 켈트족을 시작으로 8세기에 무어인들이 장기간 점령하면서 문화, 건축, 농업 기술이 도입되었으나 무어인에 대한 저항은 12세기에 그들을 몰아낼때까지 계속되었다.

 포르투갈은 15세기에 주앙 1세의 아들 엔리케 항해 왕자의 영도 아래 발견과 정복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16세기 말에 스페인에 의해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1640년 다시 독립을 쟁취했으나 이미 쇠퇴 일로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어 17세기 포르투갈 경제는 파탄에 직면하고 거듭되는 내란과 정치적 혼란에 휘말리다 1910년에 왕정이 무너진후 민주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민주 공화국체제는 1926년에 일어난 군사쿠데타로 단명하고 오랜 독재정치가 시작되었다. 1968년 살라자르가 사망하자 마침내 1974년 반세기에 가까운 독재 정치는 막을 내렸다.

 그 이후 많은 시련을 겪었으나 1986년 EU가입과 1992년 유럽 통화제도의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등 국제적 지위가 크게 향상되었다.

 경제적으로는 농업과 광업을 주 상업으로 하는 나라이며 스페인과 더불어 유럽에서는 후진국에 머물러 있다. 인구는 1,016만명(인구밀도 110명/㎢)이며 수도는 리스본, 국체는 조합 국가를 표방하고 있다. 사회의 성격과 관습은 스페인과 비슷한 점이 많으나 기질면에서는 스페인 사람들과 비교하면 온화하다. 남북한 동시 수교국의 하나이며 우리나라와는 1961년 4월, 북한과는 1975년 2월 국교를 맺었다.

 

개  요

o 정식국명 : 포르투갈공화국(The Portugese Republic)

o 수 도 : 리스본(Lisbon)

o 면 적 : 92,090㎢(세계 111위. 한반도의 약 2/5)

o 인 구 : 1,100만 명(2016) (해외이주자 : 약 480만 명)

o 화 폐 : 유로(Euro)

o GDP : 2,010억$(2015년. 세계 47위)

o 민 족 : 이베리아족, 켈트족, 라틴족, 게르만족, 무어족등의 혼혈

o 언 어 : 포르투갈어

o 종 교 : 카톨릭(90% 이상)

o 기 후 : 대양성, 지중해성 및 대륙성 기후의 혼합형

o 정치형태 : 내각 책임제

o 전  압 : 220 V

 

지  리

 지형적으로 동쪽은 스페인과 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대서양과 접한 남북으로 긴 나라이다. 총면적은 92,090㎢로 남한과 비슷한 크기이다. 북에서 남으로 560km, 동에서 서로는 220km로 유럽 국가들 중에서 매우 작은 편에 속한다.

 북부와 중부 지방은 인구 밀도가 높으며 산악지대로 강, 계곡, 숲, 산이 많다. 가장 높은 산맥은 토레(Torre)의 꼭대기인 세라 다 에스트렐라(Serra da Estrela, 1993m)이다. 그에 비해 남부는 북부에 비해 인구 밀도가 낮으며 올리브, 코르크 등이 많이 나는 평지로 되어 있다.

 숲이 우거진 북부에는 많은 포도재배지역이 있고 옥수수, 감자, 호밀 등이 재배된다. 남부 지방에는 숲은 적지만 올리브, 포도재배지, 오렌지와 무화과 나무가 풍부하고 봄에는 아몬드가 만발한다.

 

사회 문화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지만 관광지나 호텔 또는 레스토랑에서는 영어와 불어도 통하는 편이다.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는 형제어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스페인어도 사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포루투갈인은 카톨릭을 믿고 있다. 포르투갈에는 전통있고 웅장한 성당들이 많으며 아직도 강한 카톨릭적 전통이 남아 있어서 많은 지역사회의 활동은 다양한 종교적 행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종교적인 큰 축제일은 휴일로 정해져 있다.

 가장 중요한 축제인 카니발과 부활절 기간동안 포르투갈을 여행하는 것 또한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여행 성수기는 6월 중순부터 9월까지이다.

 켈트족, 이베리아족, 게르만족 및 무어족등 여러 민족이 있다. 국민성격은 온순, 소박, 단순, 자기 분수를 잘 지킨다. 범죄율은 낮으며 치안상태도 양호하다.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이며 책임감이 높지 않다. 공중도덕을 잘 지키지 않고 업무처리 및 행정처리 지연사례가 빈발하다. 운전자들의 난폭운전으로 사고율이 높다. 축구를 열광적으로 좋아한다. 남녀차별이 심하지 않고, 가정생활을 중시하며 자녀는 많이 두지않고 나이든 부모를 모시고 사는 풍속이 있다.

 

기  후

 대서양에서 부는 바람의 영향으로 해안 지방의 기후는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에 서늘한 온난한 기후를 보인다. 본토의 중앙을 흐르는 테주강을 경계로 북부의 산악지방은 강우량이 많고 습도도 높은데 비해 남부 대서양 쪽은 화창하고 건조하여 지내기 좋다. 유럽에서 가장 햇볕을 많이 쬘 수 있는 나라로 손꼽힌다.

 일반적으로 4월부터 10월까지는 따뜻하다. 보통 눈은 산악지역에 내린다. 스키시즌은 1월부터 3월까지 이어지는데 그 중 2월이 가장 적당하다.

 

리스본 기후(℃)

지   역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리스본

(Lisbon)

최고평균

12

13

15

17

19

25

24

24

23

20

16

14

최저평균

8

8

11

12

14

17

18

19 

18

14

12

8

평   균

10.8

11.6

13.6

15.6

17.2

20.1

22.2

22.5

21.2

18.2

14.4

11.5

강우일수

13

12

14

12

9

5

2

2

6

11

13

14

 

 

역  사

1. 포르투갈 백작령. 포르투갈 왕국

 포르투갈은 독립국가로서 8세기의 역사를 갖고 있다. 국명은 도우루(Douro) 강 하구에 위치한 뽀르뚜깔르 (Portucale)라는 옛 지방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미 7세기 이 지역에 대한 역사 기록이 남아있다. 11세기 초엽 십자군 전쟁 당시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기독교 왕국들과 이슬람 왕국들이 서로 전쟁을 치르는 양상이 지속되고 있었다.

 레아웅(Leao)과 까스뗄라(Castela)의 왕이 이끄는 서십자군 전쟁은 뽀르뚜깔렌스 백작령의 형성에 시발점이 되었는데 이 영토는 밍유(Minho) 강과 떼주(Tejo) 강 사이를 포함하였다. 이 지역의 첫 통치자는 십자군의 임무를 수행키 위해 이베리아 반도에 오게 된 상속권과 가신의 의무를 갖는 프랑스 귀족으로 그곳에서 레아웅과 까스뗄라의 국왕 아퐁수 6세(Afonso VI )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눌러앉게 되었다.

 이 백작령에는 무수한 변화가 일어나 자주 독립에 대한 기운이 감돌았고 최초로 뽀르뚜깔렌스 백작의 아들 아퐁수 엔리끄스(Afonso Henriques)는 자주권을 갖고자 실행에 옮겼다. 그의 아버지의 죽음 이후 아퐁수 엔리끄스는 그의 어머니의 섭정에 반대하는 세력을 이끌어 전투(1128)에서 승리한다. 그는 이베리아 반도로부터 이슬람 세력을 추방하고자 전쟁을 계속하면서 백작령을 확대해 갔고 가신국의 신분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까스뗄라와 전쟁을 치렀다. 1140년에는 스스로 왕의 칭호를 사용하여 최초로 포르투갈의 왕이 탄생하였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왕이란 칭호는 레아웅과 가스뗄라의 왕 그리고 교황청에 의해 인정을 받았다. (1179)

  • 1095 - 싼따렝과 리스본이 무어족에 의해 정복당함. 레아웅과 까스뗄라의 왕인 아퐁수 6세는 그의 딸 떼레자를 무어족과의 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프랑스 보르공야(Borgonha)의 귀족과 결혼을 시킨다. 아퐁수 6세는 그의 사위에게 백작작위를 수여하고 그에게 뽀르뚜깔렌스 백작령을 인도한다.  
  • 1109 - 뽀르뚜깔렌스 백작령은 레아웅과 까스뗄라 왕국에 가신국으로서 충성을 바쳐야 하는 처지에 있으나 행정적 자주권을 획득한다.
  • 1111 - 보르공야의 동 엔리끄와 도나 떼레자 사이에서 아퐁수 엔리끄스가 탄생하는데 그는 후에 포르투갈 초대왕이 된다.
  • 1112 - 동 엔리끄 사망. 도나 떼레자의 섭정은 호응을 얻지 못했다.
  • 1128 - 아들 동 아퐁수 엔리끄스는 그의 어머니의 섭정에 반발하여 성 마메드 전투에서 어머니의 군대와 대적하여 군을 지휘해 승리로 이끈다.
  • 1140 - 아퐁수 엔리끄스는 포르투갈을 레아웅과 까스뗄라 왕국으로부터 독립된 국가로 선포하고 아퐁수 1세란 칭호로 포르투갈 초대왕임을 선언한다.
  • 1143 - 레아웅의 왕은 포르투갈의 독립을 자모라 조약(Tratado de Zamora)에서 인정한다.
  • 1147 - 동 아퐁수 1세는 무어족을 뽀르뚜로부터 몰아내고자 군사적으로 대대적인 반격을 가해 떼주강 남쪽까지 그들을 몰아낸다.
  • 1179 - 포르투갈의 독립이 교황청과 레아웅과 까스뗄라의 왕에 의해 인정받는다.
  • 1249 - 포르투갈의 아퐁수 3세는 알가르브(Algarve : 포르투갈 남부)까지 전 국토를 재정복하여 포르투갈로부터 무어족을 축출한다.
  • 1256 - 리스본에서 공식적으로 포르투갈 왕국이 탄생한다.
  • 1279~1325 - '시인'으로도 알려져 있는 동 디니스 왕은 포르투갈의 군사력을 강화하여 국가 경계선을 따라 50개의 요새를 구축하고 농업, 상업, 조선업의 발전을 추구하였다. 문화면에서는 1288년 최초의 대학을 설립하고 사회적 정치적으로 상업과 숙련공들과 연계되는 부르조아 계급을 활성화한다.

 

2. 신대륙 발견시대

 동 훼르난두는 포르투갈의 제1왕조인 보르공야 왕조의 마지막 왕이다. 동 훼르난두가 사망하자 레오노르 뗄르스(Leonor Teles) 왕비는 이미 그 당시 레아웅 왕국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던 까스뗄라의 동 조앙 1세와 외동딸을 결혼시키게 된다. 이 결혼은 국민들로부터 환영 받지 못하였는데 왜냐하면 포르투갈의 독립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민은 이에 반대하여 동 뻬드루 1세의 서자인 메스뜨르 드 아비스를 왕국의 섭정자로 추대하였다.(1357). 이 때의 포르투갈의 위기는 1383~1385 기간의 위기로도 알려지게 되었다.

  • 1385 - 동 조앙이 포르투갈의 동 조앙 1세로서 왕위에 오르고 아비스 왕조가 시작된다. 1385년 8월에는 알주바호따(Aljubarrotta) 대전투에서 까스뗄라군을 대파하여 포르투갈의 주권을 확립한다.
  • 1386- 포르투갈과 영국 양국간에 최초로 윈저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양국간의 불가침, 영원 불변의 우정'을 확인하고 있다.
  • 1387 - 동 조앙 1세는 영국 렝까스뜨르 공작의 딸인 도나 필리빠 드 렝까스뜨르와 결혼함으로써 영국과의 우호관계를 더욱 굳히게 된다.
  • 1394 - 뽀르뚜에서 포르투갈의 동 조앙 1세와 필리빠 드 렝까스뜨르 사이에 셋째 아들 - 항해자란 별명의 왕자 동 엔리끄 - 이 탄생한다.
  • 1415 -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북단에 위치한 도시인 쎄우따(Ceuta) 를 정복하여 포르투갈 영토 확장의 시초를 알리는 역사적인 시대를 맞이한다.
  • 1419 - 동 엔리끄 왕자는 포르투갈 남단의 싸그레스(Sagres)에 해양학교를 설립한다.
  • 1418~1427 - 포르투갈의 마데이라섬과 아쏘레스 군도 등 대서양의 무인도를 식민화하기 시작한다.  
  • 1437 - 항해사 질 이아네스(Gil Eanes)는 아프리카 연안의 까부 보쟈도르(Cabo Bojador)를 항해한다.
  • 1444 - 포르투갈 항해사들이 까부 베르드에 도착하여 흑인 노예 교역의 시대가 시작된다.
  • 1460 - 동 엔리끄 왕자가 66세를 나이로 사망한다.
  • 1469 - 바스코 다 가마가 탄생한다.
  • 1482 - 포르투갈 항해사들이 자이르강을 통해 아프리카로 진입한다.
  • 1484 - 동 조앙 2세는 포르투갈의 서쪽으로 항해 하여 동양까지 갈 수 있으리란 계획을 세웠던 끄리스또바웅 꼴룸부(Ccristovao Columbo)를 지원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 1494 - 포르투갈과 까스뗄라가 또르데질냐스조약을 체결하여 스페인이 아프리카 까부 베르드 섬의 서쪽으로 370레구아스 떨어진 자오선의 서쪽에 위치한 모든 지역에 대한 탐험의 권리를 갖고 포르투갈은 자오선 동쪽의 탐험지역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는 데 동의를 한다. 바로 이렇게 해서 포르투갈인들에게 할당된 동부 지역에 브라질이 속하게 된 것이다. 많은 사학자들은 포르투갈이 이미 남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이 조약의 체결 이전에 미리 알고 있었으리라고 추정한다.
  • 1496 - 1492년 스페인에서의 유대인 추방에 이어 포르투갈도 자국 영토 내에서 유태인을 추방한다.  
  • 1497~1498 - 바스코 다 가마는 리스본 항구를 출발하여 인도로 향한다. 희망봉을 돌아 모잠비크를 지나 마침내 인도로 항해한다.
  • 1500 - 뻬드루 알바르스 까브랄이 브라질에 도착한다(공식적인 브라질 발견).
  • 1510 - 포르투갈은 인도 남서쪽의 고아를 합병한다.
  • 1515 - 포르투갈이 인도양의 해상권을 장악한다.  
  • 1519 - 훼르나웅 드 마갈양이스는 스페인 국왕의 명령으로 세계를 최초로 횡단 항해하고, 1522년 필리핀에서 사망한다.
  • 1521~1557 - 포르투갈의 동 조앙 3세 통치시대로 부분적으로는 대륙발견을 위한 지출 경비로 인해 포르투갈이 쇠퇴기를 맞게 되는 시기이다.
  • 1536~ 1558 - 종교재판이 활발히 이루어진 시기이다.
  • 1557 - 포르투갈인들이 마카오로 진출하기 시작한다.
  • 1572 - 루이스 드 까몽이스의 서사시 <우스 루지 아다스 designtimesp=31410>(Os Lusiadas)가 리스본에서 출간된다. 이 서사시는 포르투갈인들의 항해를 영원불멸의 공적으로 승화시킨다.

 

3. 공위기간(1580~1640)

 포르투갈 국왕 동 쎄바스띠아웅이 아프리카 북부의 알까세르 끼비르 전투에서 사망하고(1578), 왕위를 계승할 자가 없게 되자 포르투갈은 왕위 계승으로 인해 큰 위기를 맞게 되고, 스페인의 필립 2세 왕이 포르투갈 왕으로서 추대되기에 이른다. 60년동안 필립 왕조가 포르투갈을 지배하는데 1640년 국가 복원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 1640~1656 - 브라간싸 공작 동 조앙은 동 조앙 4세의 이름으로 통치한다. 스페인과의 격렬한 전쟁이 계속되었고 포르투갈 독립의 명분으로 영국의 지원이 이루어 진다.
  • 1706~1750 - 동 조앙 5세의 통치 기간이다. 포르투갈은 다시 한번 브라질로부터 유입된 금으로 인해 부강해진다. 수많은 대형 건물과 궁전이 건축되고, 포르투갈은 현대화되어 간다. 산업과 상업분야(섬유, 유리, 포도주 그리고 도자기 부문) 에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다.
  • 1755 - 리스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한다. 대지진과 화재로 리스본이 폐허로 변하게 되고 3만명 이상이 사망한다.
  • 1755~1777 - 뽕발 후작에게 왕국의 통치권을 위임한 동 주제 1세의 재위기간이다. 뽕발 후작은 포르투갈내에서의 영국인들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국가의 경제적인 독립을 강화하고자 노력한다. 마찬가지로 포르투갈에서 막강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던 예수회 신부들도 추방된다. 뽕발 후작은 1755년 대지진 이후의 리스본 재건에도 큰 노력을 기울인다.
  • 1756 - 포르투갈이 프랑스보다 100년 앞서서 뽀르뚜 와인 생산지를 설정함으로 세계에서 처음으로 포르투갈이 '포도주 전용 생산지' 개념을 도입했다.

 

4. 나폴레옹의 침공

 1386년 포르투갈과 영국간에 우호조약 때문에 포르투갈은 영국을 적국으로 간주하고 전쟁을 하는 프랑스에 맞서 어쩔 수 없는 전쟁을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포르투갈 전국은 초토화되는 전쟁터로 전락되고 만다.

  • 1793 - 포르투갈은 나폴레옹을 상대로 싸우는 전쟁에 합류한다.
  • 1801 - 포르투갈은 스페인에게 올리벵싸를 빼앗긴다.
  • 1807 - 주노(Junot) 장군이 지휘하는 프랑스 군대가 포르투갈을 침공한다. 포르투갈 왕족은 브라질로 피난한다.
  • 1808 - 웰링턴(Wellington) 장군의 지휘하에 영국군대는 포르투갈 군을 지원하기 위해 포르투갈에 도착한다.
  • 1810 - 포르투갈과 영국 연합군은 꼬잉브라의 북부지역 부사꾸(Bucaco)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결정적으로 대파한다.

 

5. 왕정의 쇠퇴와 종말

  • 1811 - 프랑스 군대를 격퇴시킨 후 브라질로 왕족이 피난간 상황에서 영국의 윌리엄 가트 브레스포드 지휘관은 실질적으로 포르투갈의 지배권을 장악한다.
  • 1817~1820 - 포르투갈의 자유주의 운동이 포르투갈 내 영국 세력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 1820~1822 - 자유주의 신헌법이 왕실에 의해 공인된다. 포르투갈 국왕 동 조앙 6세는 도나 까를로따 왕비와 막내아들과 함께 브라질로부터 들어온다. 동 뻬드루 왕세자는 브라질에 남는다. 국왕이 신헌법을 승인하게 되어, 도나 까를로따 왕비와 아들 동 미구엘은 유배 당하지 않게 된다.
  • 1822 - 동 뻬드루는 브라질에서 브라질의 독립을 선포한다.
  • 1825~1834 - 동 조앙 6세가 사망하자 브라질의 국왕 동 뻬드루 왕자는 동시에 포르투갈의 국왕으로 선포된다. 새로운 헌법을 선포한 이후에 동 뻬드루는 포르투갈의 왕위를 거절하고 그의 딸 마리아 다 글로리아(Maria da Gloria)가 이 왕위를 맡을 충분한 나이가 될 때까지 나라의 섭정을 그의 동생에게 맡긴다. 동 미구엘은 수락하기는 하나 곧 자유주의 헌법을 무효화하고 절대왕정주의로 복귀한다. 이에 동 뻬드루는 브라질의 왕위를 포기하고 동생을 왕위에서 몰아내고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포르투갈로 돌아온다. 두 군대가 벌인 전쟁은 동 뻬드루의 승리로 막을 내리고 그는 얼마 후 포르투갈 역사상 마리아 2세로 알려진 딸 도나 마리아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사망하게 된다.
  • 1861~1869 - 루이스 1세의 통치기간에는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이 번갈아 권력을 쥐게 된다.
  • 1908 - 동 까를루스 1세 왕은 그의 아들 루이스 필리쁘 왕자와 함께 살해당한다. 그의 둘째 아들 동 까를루스가 동 마누엘 2세의 이름으로 왕위에 오른다.
  • 1910 - 포르투갈을 내전으로부터 구원하고자 동 마누엘 2세 왕은 권력에서 물러나 영국으로 망명하여 1932년 그곳에서 사망한다. 포르투갈에서는 공화국이 1910년 10월 5일에 출범하게 된다.

 

6. 포르투갈 공화국

 혁명을 통해서 1910년에 공화국이 수립되고 이어서 1911년에 신헌법이 공포된다.

  • 1916 - 포르투갈은 연합군측에 합류하여 제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하며 아프리카 앙골라와 모잠비크를 공격했던 독일 군대와 전쟁을 치른다.
  • 1917~1922 - 전쟁은 포르투갈의 경제적, 재정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악화시킨다.
  • 1926 - 군사 반란이 일어나 정부를 전복시킨다.
  • 1928 - 꼬잉브라 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안또니우 드 올리베이라 쌀라자르(Antonio de Oliveira Salazar)가 재무장관으로 임명된다. 그는 긴축 정책과 엄격한 재정정치를 펴서 성과를 거둔다.
  • 1932~1968 - 쌀라자르는 수상으로 임명되어 신국가(Estado Novo)를 이끌게 된다. 이 정부는 군사 독재적 권력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 1939~1945 - 포르투갈은 영국과 미국에게 포르투갈령 아쏘레스섬을 그들의 공군 기지로 사용하도록 허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중립을 지켰다.
  • 1949 - 포르투갈은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의 창설멤버 국가이다.
  • 1961 - 포르투갈은 인도의 고아, 다마웅, 디우를 상실한다.
  • 1968 - 쌀라자르는 뇌에 부상을 입은 후 정권에서 물러난다. 마르쎌루 까에따누(Marcelo Caetano)는 쌀라자르의 정치를 승낙하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 1970 - 쌀라자르가 사망한다.
  • 1974 - 4월 25일 혁명이 발생한다. 군인들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려 (상징적으로 국민들이 군인들의 무기에 붉은 카네이션을 달아 줌) 다수당 민주정부가 들어선다.
  • 1974~1975 - 포르투갈은 앙골라, 모잠비크, 기네 비싸우, 성 또메 이 쁘린씨쁘 그리고 까부 베르드등의 식민지를 포기한다. 식민지에서 거주했던 인구중 50만명 이상이 포르투갈로 귀환한다.
  • 1975 - 티모르의 탈 식민지화 과정은 인도네시아의 영토침략으로 인해 중단된다.
  • 1986 - 포르투갈은 마리우 쏘아레스가 포르투갈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재임할 때 유럽 공동체에 가입한다.
  • 1992 - 포르투갈은 유럽연합의 회장직을 맡는다.
  • 1994 - 리스본은 유럽의 문화 수도로 지정된다.
  • 1998 - 포르투갈은 유로화 - 유럽화폐 - 의 창시 그룹멤버 국가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포르투칼 약사

o BC 7세기경 켈트족의 진출 및 정착

o BC 2세기경 로마의 정복(약 600년간)

o 711년 회교도 무어족의 지배

o 1139년 독립왕조 창건(Alfonso 1세)

o 1249년 무어족 완전 축출

o 1488 Bartolomeu Dias 희망봉 발견

o 1494년 스페인과 남미대륙 분할협정(Tordesillas 조약) 체결

 

o 1498년 Vasco da Gama 인도항로 발견(Manuel 1세 치하)

o 1518년 Magellan 세계 일주

o 1580-1640년 스페인의 지배

o 1624년 브라질 점령

o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발생(Marques de Pombal 백작 통치하 도시 재건)

o 1793-1810년 프랑스 나폴레옹군의 침공(3차례)

o 1910년 군사혁명 발생 및 Manuel 왕정 붕괴, 공화정 선포(10.5)

o 1910-26년 45차례 정부교체

o 1926년 군부쿠데타 발생 및 Salazar 재무장관 등장

o 1932-74년 Salazar 총리 집권 및 조합국가(Corporatist Republic) 독재

o 1974년 군부 구데타 발생, Salazar 독재 종식(4.25)

o 1986년 EU 가입 및 60년만에 최초의 민간인 대통령(Mario Soares) 당선(86. 2)

* 포르투갈의 해외진출(1415-1570년): Madeira섬(1419년), Azores 제도(1427년), Cape Verde(1460년), Brazil(1500년), Goa(1510년), Malacca(1511년), Hormuz(1515년), Maccau(1557년)

* 포르투갈의 동방진출: 중국(1514년), 일본(1541년), 한국(1577년)

 

 

여행 도우미

<주의사항>

 지리적으로 외국인과의 접촉이 많지 않아 외국인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으며 과거 식민지였던 민족에 대해서는 우월감이 있다.

 상담 전 포르투갈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축구나 포르투갈의 아름다운 경관, 전통음악인 파두, 전통음식 등 부드러운 화제를 준비해두면 좋다.

 해안이나 산장 지역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내려가기 때문에 스웨터 하나쯤은 가지고 가는 것이 좋다. 겨울철 여행 때도 추위가 심하지 않으므로 얇은 내복과 코트 정도를 준비하면 된다. 시간약속을 할 때 경우 정오에서 오후 3시사이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연중 따뜻한 기후로 아무 때나 여행해도 좋지만, 특히 맑은 날씨가 계속되고 별로 덥지 않은 5-9월이 가장 적합하다. 여름 바캉스 철에는 호텔 투숙이 힘들고 11-12월에는 비가 많고 산간지방에서는 눈이 오지만, 리스본 부근은 우리 나라의 초봄과 같은 날씨이다.

 

 

 관광 명소

 

 

리스본(Lisbon) ∥ 리스본 근교 ∥ 파티마(Fatima) ∥ 마데이라(Madeira)

 

 

bullet11_redspot.gif 포르토(Porto)

 포트와인의 본고장으로 포루투갈 제 2의 도시다. 도우르 강의 노바데가이아(Nova de Gaia)쪽에 늘어서 있는 80여 채의 술 창고에서 무료로 구경도 하면서 와인을 맛볼 수 있다. 포르토에서 가장 매력적인 곳은 리베이라(Ribeira)로 유럽에서 가장 우아한 3개의 다리가 협곡에 놓여 있으며, 타일로 된 집들이 도로에 가득 차 있다. 끌레리구스 탑(Torre da Igreja dos Clerigos)도 놓치지 말기 바란다. 포르토까지는 리스본에서 코임브라를 거쳐 가는 기차가 수시로 있다.

 가는 길에 포루투갈 제 1의 학문도시인 코임브라에 들러 구 대학과 마카도 드 카스트로 박물관, 산타 크루즈 수도원 등을 관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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