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Spain)

  

 

그라나다(GRANADA) 마드리드(MADRID)바르셀로나(BARCELONA) 톨레도(TOLEDO)

살라망까(Salamanca)세고비아(SEGOVIA) 세비야(SEVILLA) 코르도바(CORDOBA)

말라가(MALAGA) 론다(Ronda) 팜플로나(Pamplona) 빌바오(Bilbao) 몬세라트(Montserrat)

사라고사(Zaragoza) 카나리아 제도 (Canary Islands, Islas Canarias)

영국령 지브롤터(Gibraltar)

 

 집시와 투우를 연상시키는 나라, 한때 무적함대를 휘몰아 세계의 대양들을 제패하며 신대륙과 미개지를 개척하던 나라 스페인, 그 격렬한 정렬과 죽음의 향기는 거칠고 광활한 황야와 거의 사면을 대양과 접하고 있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유럽대륙이면서도 중세에까지 회교도의 영향권하에 있어서그 황량한 평원에 펼쳐진 이슬람 스타일의 이국적인 풍취는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화의 점이적 특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나라들 중의 하나로 이베리아 반도에 있으며 발레아레스 제도 및 카나리아 제도가 포함된다.

☞ 지형 지도

 

 수도는 마드리드(Madrid)이다. 국민은 다양한 인종집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역 자치권을 가진 여러 지역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고유한 관습과 문화를 갖고 있다. 공동체 중 카탈루냐, 갈리시아, 바스크 세 지역은 고유한 공식 언어를 갖고 있다. 스페인어로 히타노라 불리는 집시 인종 집단들도 국민의 소수를 차지한다. 공용어는 스페인어이다. 그 외에 카탈루냐어, 갈리시아어, 바스크어도 널리 사용된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로마 가톨릭교를 믿는다.

 화폐 단위는 유로(€)이다.

 

 스페인의 커다란 중앙 고원은 에브로 강 유역과 카탈루냐 산악지역, 발렌시아 지중해 해안 지역, 과달키비르 강 유역, 그리고 피레네 산맥에서 대서양까지 뻗어 있는 산악 지역으로 둘러싸여 있다. 스페인은 서비스 산업과 경· 중공업 및 농업을 기반으로 한 시장 경제가 발달했다. 광물자원은 철광석, 수은, 석탄이 생산된다. 주요 농업은 여러 종류의 곡물 생산과 축산업이다. 스페인은 포도주와 올리브유의 세계적인 생산국이다. 관광업 또한 주요 산업인데, 특히 남부의 코스타 델 솔 지역이 유명하다. 스페인은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입헌군주제로 국가 원수는 왕이고, 정부 수반은 수상이다.

 

 약 35,000년 전 석기시대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유적이 스페인 전역에서 발견된다. 켈트계 사람들이 기원전 9세기 경에 이주해왔다. 기원전 200년경부터 로마인들이 이 지역을 지배했으나, 약 5세기 초에 침입한 서고트족에게 지배권을 빼앗겼다. 8세기 초 북아프리카로부터 온 이슬람교도인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을 점령했다. 그리고 카스티야, 아라곤, 포르투갈과 같은 기독교도 왕국들이 점차로 이 지역을 다시 정복할 때까지 이슬람교도 통치가 이어졌다.

 

 스페인은 1479년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1세의 결혼으로 통합을 이루었다. 마지막 이슬람 왕국이었던 그라나다 왕국이 1492년에 함락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아메리카 대륙에 거대한 식민지를 건설했다. 1516년에는 합스부르크 왕가로 왕위가 넘어갔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는 1700년 부르봉 왕가의 펠리페 5세가 최초의 스페인 왕으로 즉위하면서 막을 내렸다. 펠리페 5세의 왕위 계승으로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이 유발되었고, 유럽의 많은 영토를 잃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 대부분의 스페인 식민지에서 혁명에 불이 붙었다. 1898년 스페인은 미국과의 전쟁으로 해외 식민지의 대부분을 잃었다.

 

 1931년 스페인은 공화국이 되었다. 스페인 내란(1936~39)은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이끄는 국가주의자(내셔널리스트)들의 승리로 끝났다. 1975년 프랑코 사망 후 그의 계승자인 후안 카를로스 1세가 국가 원수로 즉위함으로써 군주정이 부활했고, 1978년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여 입헌군주국을 세웠다.

 

 16세기에는 식민지의 재화로 황금시대를 이루었지만 몰락 후에는 근대화가 뒤졌다.

 

 1982년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NATO), 1986년 유럽공동체(European Community/EC)에 가입했다. 1992년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첫번째 항해 500주년을 기념하여 세비야 국제박람회와 바르셀로나 올림픽경기대회를 개최했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로 들어오면서 일부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은 독립을 요구하면서 테러 활동을 계속했다. 하지만 2004년 3월 11일 마드리드에서 있었던 폭탄 테러는 호전적인 이슬람교도에 의한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유럽에서 발생한 가장 최악의 테러 행위였다.

 

 

 반도의 대부분은 평균고도가 800m인 메세타라는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메세타센트랄). 고원은 북부가 남부보다 약간 높은 가운데 칸타브리카 산맥, 이베리코 산맥, 모레나 산맥, 포르투갈 접경의 낮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스페인은 지형적으로 중앙고원을 중심으로 5개 지역, 즉 북동부의 에브로 강 유역, 남부의 과달키비르 강 유역, 동부의 발렌시아 해안지역, 북동부 구석의 카탈루냐 산악지역, 피레네 산맥에서 서부 산지에 이르는 북부 지역 등으로 구분된다.

 

 

개 요

ㅇ 정식국명 : 스페인왕국 ( Reino de Espana, Kingdom of Spain)

ㅇ 수 도 : 마드리드(650만 명)

ㅇ 면 적 : 약 50만㎢(세계 52위. 한반도의 약 2.3배)

ㅇ 인 구 : 4,800만 명(2016년)

ㅇ 화 폐 : 유로 (EUR)

ㅇ GDP : 12,302억$(2015년. 세계 14위)

ㅇ 국가형태 : 입헌군주제(국왕 : Juan Carlos Ⅰ세)

ㅇ 정부형태 : 내각책임제

ㅇ 내 각 : 수상 및 14개 부처 장관으로 구성(‘96.5 국민당(PP) 정부 출범)

ㅇ 신헌법제정 : 1978.12.6(동년 12.29 발효)

ㅇ 언 어 : 까스티야어(표준 스페인어 74%), 까딸란 17%, 갈리시아어 7%, 바스크어 2%

ㅇ 민 족 : 라틴족

ㅇ 종 교 : 카톨릭(90%)

ㅇ 병역제도: 직업군인제(2002년말 의무복무제에서 전환)

시 차 : 우리나라보다 8시간 늦음. (SUMMER TIME 실시할 경우 7시간)

쇼 핑 : 가죽제품, 수공예, 은제품

전 압 : 220 V

 

마드리드 기후()

지  역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마드리드

(Madrid)

최고평균

10

12

15

17

23

27

31

32

27

20

10

8

최저평균

3

3

5

8

11

15

18

19

16

12

3

0

평   균

4.4

6.1

9.2

12.2

15.8

20.3

23.6

23.4

19.2

13.9

8.3

5.3

 강수량mm

33

32

40

42

42

44

10

12

37

46

51

40

강우일수

10

5

19

10

10

6

0

0

6

11

10

8

 

 

바르셀로나 (Barcelona) 기후()

지  역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바르셀로나

최고평균

13.4

14.6

15.9

17.6

20.5

24.2

27.5

28.0

25.5

21.5

17.0

14.3

최저평균

4.4

5.3

6.7

8.5

12.0

15.7

18.6

19.3

16.7

12.6

8.1

5.7

평   균

8.9

10.0

11.3

13.1

16.3

20.0

23.1

23.7

21.1

17.1

12.6

10.0

강수량mm

41

29

42

49

59

42

20

61

85

91

58

51

 

 

스페인 역사

 2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거주했으나 빙하기 마지막 시기에 사라졌다.

 

 그후 1만 5,000년전 호모사피엔스들이 반도에 살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알타미라 동굴에 벽화를 남겼다. 엘 아르가르 농경문화가 시작된 BC 2000년경부터는 야금기술이 발달하여 청동·은·금 등을 제련했다. 이베리아 반도는 BC 1000년경 해상무역문화를 꽃피웠던 타르테소스족들과 교류를 가졌다. BC 9∼8세기에 피레네 산맥을 통해 이주해온 중앙 유럽의 켈트계 부족들이 원주민들과 혼혈족인 켈트이베리아족을 형성했다.

 

제2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한 BC 218년 로마인들의 이베리아 반도에 대한 공략이 시작되어 그후 2세기에 걸쳐 진행되다가 결국 로마인들이 반도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했다.

 

 그후 AD 5세기에 게르만계 부족들이 침략해왔으며, 그중 서고트족이 가장 강한 세력으로 부상하여 반도 전역에 걸친 왕국을 세우고 7세기초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다. 8세기초에는 이슬람교도들이 반도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그후 그리스도교 세력인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이 재정복을 시도해 13세기말에는 이슬람교도들이 통치했던 대부분의 지역을 탈환했다.

 

 1479년 아라곤의 페르난도 3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가 결혼함으로써 두 왕국은 하나가 되었고 1492년 이슬람교도들의 마지막 보루였던 그라나다 왕국마저 함락시켰다. 14세기말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들을 거느린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1516년 네덜란드의 통치자였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로스 1세가 페르난도에 이어 왕위를 승계했다. 그후 카를로스 1세는 1519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선출되어 카를 5세라고도 불렸다.

 

 1555∼56년에 카를로스는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왕위를 자신의 아들 펠리페 2세에게 넘겨주었다. 합스부르크가 출신의 스페인 왕들 가운데 가장 스페인적이라는 평을 받은 펠리페 2세는 종교광으로 로마 가톨릭교를 수호하고 프로테스탄트를 말소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스페인은 희생이 큰 전쟁들을 치러야 했고 모험적인 군사행위에 휩쓸리게 되었으며 재정은 바닥이 났다. 펠리페 2세 이후 3명의 합스부르크가 왕들은 모두 성격이 유약하여 스페인이 급격히 쇠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700년 카를 2세가 후손 없이 사망하고 부르봉 왕가의 앙주 공(公)이 스페인의 펠리페 5세로 등극함으로써 합스부르크 시대는 막을 내렸다.

 펠리페의 등극으로 스페인 왕위계승전쟁(1701∼14)이 유발되었고 전쟁 결과 스페인은 벨기에·룩셈부르크·밀라노·사르데냐·나폴리를 잃었다. 1808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자신의 형인 조제프를 왕좌에 앉혔다. 그러나 영국과 스페인 군대가 나폴레옹의 군대를 물리쳐 1814년 부르봉 왕가는 복위되었다.

 이 전쟁에서의 승리로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들의 혁명을 크게 부채질했으며, 스페인은 1898년 미국과의 전쟁을 끝으로 해외식민지의 대부분을 잃었다.

 

 1931년 공화제에 대한 압도적인 찬성으로 끝난 선거 결과에 승복하여 알폰세 8세가 퇴위한 후 스페인은 공화국이 되었다. 그후 1936년 공화파와 국가주의자(파시스트)들의 대립이 스페인 내란으로 확대되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이끄는 국가주의자들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로부터 군대를 지원받았으며, 공화파는 국내외의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 그리고 자유주의적 경향을 가진 사람들의 지원과 소련의 도움을 받았다.

 내란은 결국 1939년 3월 마드리드를 장악한 국가주의자들의 승리로 끝났다.

 

 프랑코 장군 정부의 초기 10년은 매우 참혹했다. 내전 결과 약 100만 명의 스페인인들이 죽거나 이민을 떠났으며, 스페인은 혹독한 정치탄압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프랑코는 헌법을 대신해 일련의 기본법으로 40여 년간 스페인을 자의적으로 통치했으며, 국가원수·총리·군총사령관과 유일한 합법정당인 팔랑헤당의 당수직을 겸임함으로써 절대권력을 행사했다.

 

 1945년 이후 서방 강대국들로부터 노골적으로 적대시당한 스페인은 UN에서 추방당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프랑코는 교회와 결탁하고 UN으로부터의 추방을 민족단결이라는 미명하에 지지세력을 결집하는 계기로 이용했다. 그러나 냉전체제하에서 미국은 스페인에 대한 적대관계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으며, 1953년 스페인은 미국과 협정을 맺고 군사기지를 제공하는 대신 재정지원을 받았다. 이무렵 스페인은 비교적 안정된 상태를 누렸다. 1960년대에 시작된 경제기적은 1973년까지 계속되어 스페인은 전통적인 농업국가에서 신흥공업국으로 변모했다.

 특히 기간산업·자동차산업·조선업·장비제조업 등의 분야에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고, 외국자본이 투자되어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다.

 

 새로운 경제 기적으로 스페인은 어느 정도 활력을 되찾았다. 그러나 만족감을 느끼는 중산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곤한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팔랑헤당 주도의 노동조합을 불신하기 시작한 노동자들은 기존의 체계와는 별도의 노동위원회를 자체적으로 설립해 법으로 금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격렬한 파업투쟁을 벌였다.

 

 한편 교회 내에서도 젊은 사제들을 중심으로 주교단의 친정권적인 성향을 비판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1975년은 스페인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한 해였다. 1975년 4월 바스크의 극단적인 조직들이 이끄는 테러 행위가 극에 달해 기푸스코아 주와 비스카야 주 등지는 비상국면을 맞이했다(테러리즘). 이에 1975년 8월에 반테러리즘 법이 제정되었고, 1975년 9월 27일 세계적인 항의에도 불구하고 5명의 테러리스트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1975년 11월 20일 프랑코가 사망하고 이틀 후에 후안 카를로스가 왕위에 오르면서 군주제가 부활되었다. 카를로스는 스페인의 민주화에 크게 힘썼다.

 

 1977년에 실시된 선거로 새로 구성된 의회는 정치·경제의 민주화에 착수하여 로마 가톨릭교의 공식적인 지위를 박탈했으며, 자유기업제도와 인권을 보장했다. 또한 여러지방에 제한적 자치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바스크분리주의집단(ETA)의 테러 할동은 계속되었다(에테아). 1978년 입헌군주제를 표방한 헌법이 제정되었으며 1982년 선거에서 사회 노동당이 승리해 펠리페 곤살레스 마르케스를 총리로 한 사회주의 정권이 등장했다.

 

 스페인은 한때 서유럽에서 상대적으로 이질적인 국가였지만 차츰 여타 유럽 국가들에 적절히 동화되었으며, 1986년에는 EEC의 일원이 되었다.

 

 1989년 10월 사회노동당이 재집권에 성공했다. 1990년대 들어서도 중앙정부와 에우스카르디·카탈루냐 등 자치정부와의 사이에 긴장관계가 계속되었다. ETA가 정치적 지원세력을 상실하긴 했지만 옛 소련 지역에서 급속도로 성장한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스페인 국내의 분리주의 움직임이 촉발되었다.

 

 스페인 정부는 주요 무역 파트너인 유럽공동체(EC)와의 보다 긴밀한 정치적 연대와 대외적인 국가신임도의 제고를 위해 힘을 쏟았다.

 

 1992년 스페인은 세비야 국제박람회를 비롯해 바르셀로나 올림픽경기대회, 그리고 콜럼버스 신대륙발견 500주년 기념행사 등을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약 사

ㅇ 약 2만 5천년전 알타미라 동굴에서 크레마뇽인 벽화 발견

 BC 3세기, 이베로족이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 정복

 BC 264-146, 로마가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격파하여 지중해 제패

ㅇ BC 2세기-AD 5세기초, 로마제국의 지배

ㅇ 5세기, 서고트 왕국(419-711) 건설

ㅇ 8세기, 무어족이 이베리아반도 점령(711)

ㅇ 722년 Covadonga 전투승리를 기점으로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국토 재탈환 시작

※ 기독교 세력이 13세기 중엽까지 남부 Andalucia 지방 일부를 제외한 이베리아 반도 전역 탈환

ㅇ 1492년 이슬람 세력을 추방하여 통일스페인 왕국 건설, 미주대륙 발견, 카톨릭을 국교로 정함

ㅇ 16세기에는 브라질을 제외한 중남미 대부분을 정복하고 지중해도 제패하여 대제국 건설

ㅇ 1588년 무적함대가 영국에 패배한 이후 국력 쇠퇴

ㅇ 1808-11간 나폴레옹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19세기 중엽까지 중남미 식민지 대부분 독립

ㅇ 1898년 미/서 전쟁에서 패배, 잔여 식민지인 쿠바/필리핀 및 푸에르토리코를 미국에 양도

ㅇ 1931년 총선에서 공화파 승리하고 Alfonso 13세가 폐위와 함께 공화국이 선포됨.

ㅇ 1936. 7 프랑코 장군의 쿠테타로 인민전선(Frente Popular) 정부와 내전 돌입

ㅇ 1939년 프랑코가 3년간의 내전에서 승리하여 독재체제 확립

ㅇ 1975. 11.20 프랑코 총통사망, Juan Carlos 왕세자 국왕 즉위

ㅇ 1977. 6.   실시된 총선에서 승리한 중도우파 Suarez 수상 취임

ㅇ 1978. 12.  서구식 의회민주주의에 기초한 신헌법 국민투표  통과

ㅇ 1979. 3.   신헌법에 따른 총선 실시, Suarez 수상 재집권

ㅇ 1981. 2.   군부 쿠테타 실패

ㅇ 1982. 5.   NATO 가입

ㅇ 1982. 10.   실시된 조기 총선에서 사회당(PSOE) 승리로 Gonzalez 수상 집권(1982-1996)

ㅇ 1986. 1.   EC 가입

ㅇ 1996.3.3.   총선에서 국민당이 제1당이 됨.

ㅇ 1996.5.6.   정당연합으로 국민당 정부구성, Aznar 수상 취임

ㅇ 2000.3.12  총선에서 국민당이 승리, 하원과반수를 확보하여  재집권

ㅇ 2000.4.25  Aznar 수상 재취임, 국민당 2기정부 구성  

 

 

플라맹고(Flamenco)

 플라맹고는 인도의 북부지방으로부터 외침을 받아 이주한 몇몇 부족들의 영향으로 생겨난 음악인데, 이때 쫓겨난 집시들이 첫 정착지는 이집트와 그리고 체코슬로바키아로 쫓겨왔고 다시 각자 흩어진 부류중에 집시가 스페인 남부에 정착하게 된다. 이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내는데 일상의 소리를 담아 만든 노래들이고 화려하고 즉흥적이며 기교적 성향을 가지면서 아랍문화와 카톨릭과 유대문화와의 융합으로 인해서 스페인 남부지방인 안달루시아 지방에 정착하게 된다.

 

 800년 동안의 스페인 남부지방은 아랍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플라맹고 발전하게 된다. 플라맹고의 어원은 아랍어인 'felag(농부)'나 'mengu(도망자 또는 피난민)'이라는 단어의 잘못된 발음에서 온것으로 여겨지며 18세기에 '안달루시아의 집시'를 지칭하는 단어로 쓰여지기 시작한다.

 

 스페인들의 국토탈환운동의 일환으로 그라나다(Granada) 지방의 탈환으로 가톨릭 영주들과 교회의 핍박으로 쫒겨난 수많은 집시들은 쫓겨다니게 되었고 이들이 부르는 노래에는 당시 지배계충에 대한 불만을 담은 내용이 많이 담겨져 있었다.

 

 당시의 플라맹고 악보는 이탈리아 오페라("The lucky Mask"-Neri, 18세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플라맹고는 그 시초로부터 즉흥적 연주로 말미암아 확립된 음악이라고 볼 수 없다. 플라맹고 연주는 노래, 춤, 기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최초에는 노래와 손뼉치기(박수, palmas)가 주요 연주수단이고 기타는 그 이후에 추가되었고 발구르기도 이 시기에 시작된 것이다.

 

 현대의 플라맹고 베이스 기타와 카혼(Cajon)이라는 북처럼 생긴 눕혀놓고 올라앉아 연주하는 타악기등의 악기가 추가되었다. 최근에는 플롯, 섹스폰이나 종종 오케스트라에서 사용하는 현악기는 물론 희귀한 악기인 시타르(Citar, 중동의 현악기), 다부카(Darbuka), 젬베(Djembe, 인도의 타악기), 봉고, 콩가(Conga, 남아메리카의 타악기)같은 악기도 사용하고 있다.

 

 전형적인 악기로 연주하는 플라맹고는 대표적으로 기타연주를 꼽을 수 있다. 한대의 기타와 춤 그리고 노래가 등장하는데 기타는 춤이나 노래의 반주역할을 한다. 리듬을 이해해야 한다. 플라맹고의 리듬은 여러 개의 마디를 단위로 하는 12박자 이상의 진행속에 몇 개의 강박을 가진 구조로 리듬을 이해해야 한다. 플라맹고에서는 특정한 부분의 강세를 가진 마디들로 이루어진 악구들이 연주자간의 주고 받는 형식으로 도약 및 전개를 이루며, 연주의 종결부는 대체로 매우 강하게 연주된다. 플라맹고의 선율은 항상 리듬을 가진 악구와 결합되어 진행한다.

 

 

살 사

 스페인어의 소금이라는 sal + 소스인 salsa에서 유래된 푸에르토리코인들이 발전시킨 리듬댄스이다. 스페인과 아프리카 문화와 섞인 라틴문화와 미국문화인 재즈와 락, 솔과 합쳐져서 만들어진 음악이 살사이다.

 살사는 60년대 뉴욕에 거주하는 푸에르토리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으며 이윽고 남미전역에 걸쳐서 상당한 영향을 주었고 각나라별로 그 나라 특유의 살사로 발전하게 되었다. 살사는 건전하고 율동감이 넘치는 춤이며, 남미에서 마을축제나 파티에서 자유롭게 즐기고 남미에서 마을축제나 파티, 대중적이고 공개적인 춤으로 기본동작은 남녀가 마주서서 손을 잡고 밀고 당기는 기본스텝과 손을 엇갈려 잡은 후 복잡한 회전을 섞은 응용동작으로 구성된다.

 

살사의 역사

 남미에서 노예로 일하던 아프리카 흑인들은 그들말로 노래와 춤을 추는 동안 그들의 문화와 스페인 문화가 융합되어 가기 시작했고 이들의 문화는 카리브 특유의 문화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20세기 초에 쿠바와 푸에르토리코는 스페인의 마지막 식민지였으나 미국과의 전쟁을 패하게 된 이후에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자치령으로 쿠바는 미국의 지배하로 들어가게 된다. 쿠바의 도시 하바나는 미국인들의 환락가로 번영을 하게되고 여기에서 나오는 쿠바음악은 인기를 끌게 된다. 60년대 쿠바와의 미국과의 국교단절로 인해서 쿠바의 최신음악은 미국에 들어가지 못했고 뉴욕에 남아있는 푸에르토리카인들은 독자적으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70년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라틴팝을 중심으로 로맨틱 살사나 에로틱 살사등이 나오게 된다.

 글로리아 에스테판은 스페인어 앨범인 카리브적인 라틴앨범을 발표하여 화제를 보이기도 했다. 90년대 말은 라틴리듬과 여러가지 댄스뮤직이 복잡하게 융합하기 시작했고, 문화는 어디서든지 변한다. 앞으로도 살사는 많은 변화를 보일것이다.

 

 

전통축제

 매년 스페인의 여러 마을에서 행해지는 아름답고 전통적인 기념축제는 오래되고 풍부한 스페인의 문화적 전통, 지역적 다양성을 갖추고 있다. 200가지가 넘는 축제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도 있는데, 2월에는 스페인 전역에서 카니발이 열린다. 그중 가장 재미있는 것은 까디스(CADIZ)와 테네리페(TENERIFE)에서 열리는 것으로서 음악이 울려 퍼지며 축제 분위기로 가득 차기 때문에 일상생활이 마비될 정도로 이곳사람들은 그들만의 축제를 즐긴다. 2월에 이곳 스페인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3월은 VALENCIA의 LAS FALLAS에서 조형물을 태우는 축제를 벌인다. 이 조형물은 현 세태를 풍자하는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3월 19일에 완전히 태워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성주간은 가장 아름답고 종교 행사와 관련이 깊은 축제로 봄에 열린다.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것으로는 VALLADOLID, CUENCA, CASTILLA 지방의 ZAMORA와 ANDALUCIA 지방의 SEVILLA, MALAGA등이 있다.

 

 4월에는 세비야 봄의 축제(FERIA DE SEVILLA)가 열린다. 해마다 새롭게 만들어 축제를 준비하는 이 행사는 이 행사장 자체가 작은 세비야(SEVILLA)시의 모습으로 변해 각 천막(CASETAK)에서는 술을 마시며 고유의 노래와 춤인 세비야나(SEVILLANA)를 밤과 낮 구별없이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5월은 전형적인 안달루시아( ANDALUCIA)의 행사인 엘 로치오(EL ROCIO)축제가 있다. 이 행사는 안달루시아의 전역에서 사람들이 말이나 마차를 타고 종교적인 행렬을 벌이며 우엘바( HUELVA) 지방의 도 아나(DO ANA) 국립공원 옆 아야몬테(AYAMONTE)에 있는 엘 비르헨 로시오(EL VIRGEN ROCIO) 교회로 모이게 되는데, 팜플로나(PAMPLONA)에서는 7월 6일에서 14일까지 "산 페르민(SAN FERMINES)" 축제를 한다. 이 축제에서는 이 지방의 청년들이 가축장에서 투우장까지 도시의 거리를 따라 소와 함께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토마토 축제(La Tomatina)와 성페르민 축제

<토마토 축제(La Tomatina(라 또마띠나))>

 1944년에 시작된 이 축제는 이 마을의 주민들이 시의회 의원들에게 화가나서 지방 축제 때 그들에게 토마토를 던진 것에 유래한다고 한다. 그 결과가 너무 좋아 마을 주민들은 매년 토마토 던지기 놀이를 반복하기로 결정했다. 프랑코 장군의 독재기간동안에는 정부는 이 축제가 종교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금지하기도 했단다. 비록 축제가 시청에 항거하여 시작되었으나 요즘은 시청이 축제비용을 지불한다고 한다. 부뇰(Bunol) 마을 사람들, 휴양객들, 관광객들이 축제에 참가하고 즐기도록, 시청은 여러 지방에서 도착하는 약 5만kg의 토마토를 구입한다.

 토마토 전투일에는 아침 11시경에 군중들이 마을 중앙에 있는 대광장(Plaza Mayor)과 주변거리에 모여든다. 사람들은 가장 좋은 의복을 입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가장 오래된 옷을 입는다. 왜냐면 전투 후에는 입은 옷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지경이므로. 광장 중앙에는 그리스 기름을 바른 큰 기둥 하나를 심어놓는다. 그 기둥 꼭대기엔 햄이 달려 있다. 누군가 고생해서 마침내 햄을 땄을 때, 사람들은 그를 격려하면서 토마토!토마토!라고 외친다. 그러면 폭죽이 울린다. 그것을 신호로 축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몇 분 후에 잘 익은 토마토를 실은 화물 트럭들이 길 양 옆에 도착한다. 토마토들은 주변 마을에서 재배된 것이고 요리용이 아닌 탄환으로 쓰이도록 재배된 것들이다. 트럭 위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사람들을 향해서 아무 거리낌없이 토마토를 던지기 시작한다. 광장은 붉은 색깔로 바뀌고 거리는 백만개의 피자에 쓸 수 있을 정도의 토마토 케찹으로 뒤덮인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토마토가 동원되는 괴상한 축제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웃음이 절로 나는 재미난 축제이기도 하다. 2시간 정도 지나면 토마토를 던지는 놀이가 폭죽 소리와 함께 끝난다. 이젠 아무도 토마토를 던지지 못한다. 만약 토마토를 이때 던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한다. 축제가 끝나면 마을의 청소차들이 말끔하게 토마토의 잔재들을 청소해 놓는다. 모든 닫혔던 가게 문들이 열리고 점심시간이 시작된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토마토 전투! 그야말로 피한방울 흘리지 않는 코믹한 전투가 스페인 어느 한 작은 마을에서 매년 열리는 것이다.

 매년 8월 마지막 수요일 마다 '토마토 전쟁'이 벌어진다.

 

 

<바르크지방의 성페르민 축제(Festival of San Fermin)>

 빌리크리스탈 주연의 뉴욕카우보이(City Slickers)란 영화에서 본적이 있는 낯설지 않은 장면... 첫장면에서 어떤 도시의 좁은 길에 소들을 풀어 놓고 하얀 옷에 빨간 모자를 쓴 사람들이 미친듯이 마구 뛰어가는 장면... 이 장면이 바로 성페르민 축제 장면이다.

 이 광란의 위험한 축제는 헤밍웨이 첫 장편소설 '해는 또 다시 뜬다(The sun also rises)'에서 잘 표현되어 있기도 한 스페인의 축제이면서도 세계적인 축제이다.

 사실 길에다 소를 풀어 놓고 달리는 축제는 프랑스 남부에서부터 스페인 전역에서 행해지는 행위인데 제일 알려진 것은 이곳 팜플로나의 소풀이다. 이 소들은 정신없이 풀려져서 달리다가 자신의 생을 마칠 투우경기장에 닿게 되는데, 그리고 나서 그날의 투우 경기에 출연(?)하게 된다. 사실 투우경기를 보려면 돈이 없는 여행객들에게는 약간의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이 축제에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 외에도 더욱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이 축제는 매년 스페인의 팜플로나에서 7월 6일 하오에서 14일까지 열려지고 있는데, 기원은 팜플로나의 성인 Fermin 을 기원하며 바스크전통을 살린 축제를 종합해서 더운 7월 여름 한 열흘 노는 것이다.

 이 축제를 제대로 볼려면 일단 7월 6일 축제 시작시의 거대한 군중들의 함성과 또한 그 다음날 오전 대성당에서 시작하는 성 페르민像의 행렬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이 축제의 스케줄은 다음과 같다.(기간은 7월 6일에서 7월 14일까지)

7월 6일 12시: 축제 개막식(콘스시토리알 광장)

18시 30분: 어린 소들 풀기

23시: 폭죽놀이(이후 매일 같은 시간)

24시: 카스틸로광장의 댄스파티

7월 7일 8시: 첫 소몰이(이후 14일 까지)

10시: 성 페르민 상 행렬

12시: 팡파레 출발

18시 30분: 첫 투우 경기(이후에 계속 있음)

밤부터 새벽: 갖가지 댄스파티

7월 8일 9시 30분: 첫 거인 행렬 시작(이후에 계속 있음)

7월14일 폐막식 및 폐막 미사

 

 

투 우

 스페인 신문들은 투우 기사를 스포츠면에서 다루지 않고 문화면에서 다룬다. 투우는 스페인 사람들에겐 놀이가 아닌 인생의 철학을 담은 하나의 의식이다. 투우는 목축업의 풍요를 기원하면서 신에게 숫소의 죽음을 바치는 의식에서 기원한다.

 투우사가 숫소를 향하여 사력과 기술을 다하는 모습은 발레의 2인 무도와 비슷하다고 하며, 투우에서 살해가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긴 하지만 그것이 최고의 구경거리는 아니며, 투우사와 숫소의 솜씨 즉 파세(pase)가 최고라고 하겠다.

 투우의 공식적인 행사는 3월에 발렌시아의 '불축제'로 시작되며 10월 사라고사의 피랄축제로 막을 내린다.

 

투우하는 법

 투우에 쓸 소는 투우가 열리는 당일 이른 아침에 고르고, 푸른초원에서 방목된 몸무게가 450~650kg인 3~4년생을 사용한다. 보통 한번의 투우에 3명의 투우사가 등장한다. 시간이 되면 투우사는 붉은색 천 물레따를 흔들며 거품을 뿜으며 달려오는 소와 접전을 시작한다.

 잠시 후 투우사는 소를 삐까돌이라고 부르는 보조 투우사 가까이 유인해 가고, 온몸에 방패를 두른 말을 타고 나온 삐까돌은 큰 창으로 소의 등과 복부를 찔러 피를 흘리게 만든다.

 소가 피를 많이 흘려 힘이 빠지기 시작하면 또 다른 보조 투우사 반데리레로가 나와서 오색으로 수놓인 깃발 달린 창을 소의 등에 꽂고 이어서 힘찬 나팔소리에 맞춰 본 투우사가 재등장한다.

 투우사는 모자를 벗어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어깨 넘어로 던진다. 이때 모자가 바로 떨어지면 행운이 따른다고 한다. 투우를 시작하기 전에 소가 다리를 절거나 힘이 없어 보이면 관중의 항의가 대단하다. 만일 관중들이 푸에라, 푸에라(나가라)를 외치면 암소 여러마리가 나와 싸움소를 이끌어 우리로 데려가 버리고, 관중이 올래, 올래를 외치면 투우를 시작한다. 투우시간은 너무 짧아도 길어도 안된다. 피를 많이 흘린 소가 긴 혀를 땅에 끌며 거친 숨을 내쉬면 투우사는 에스파다라는 칼로 등급소를 깊숙히 찔러 숨통을 끊는다.

 투우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투우사가 단칼에 소의 숨통을 끊어놓지 못하면 상품인 소의 귀를 받지 못한다. 반대로 투우사가 잘했다고 생각되면 소의 양쪽 귀를 상으로 받고, 더 잘하면 두귀와 꼬리까지 상으로 받는다.

 

 

◈ 스페인에서 대중적으로 발달한 요리 '하몽'

 하몽은 돼지를 잡아 피를 뺀 후 절여 곰팡이가 피도록 그늘에 말린 고기를 말한다. 하몽 전문식당에 들어서면 그런 돼지를 진열해 두는데, 그 모습이 마치 목욕탕에서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사람을 보는 듯하다. 이 요리는 특히 주로 다리 부분을 잘라 파는데, 그 맛이 아주 독특하고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빠에야 -고기와 해물을 넣은 철판볶음밥 서민음식

 빠에야는 밑이 널고 깊이가 얕은 뚜껑없는 팬을 의미함.

* 만드는법

➀ 빠에야 팬에 올리브 기름을 두르고 양파와 마늘을 볶아 향을 낸 뒤 미리 볶아 놓은 파프리카, 줄콩 등의 야채와 돼지고기, 닭고기(경우에 따라 토끼고기, 달팽 이도 넣는다)를 넣고 함께 볶는다.

➁ ➀ 번에 쌀을 넣고 토마토와 오징어를 납작납작 썰어 올리고, 노란색의 향기짙은 향료 사프란으로 맛을 낸 생선 국물을 부어 약한 불로 밥을 짓는다. 새우, 씨갈라(작은 바닷가재의 일종), 홍합, 모시조개로 모양을 내기도 한다.

 

 

 <스페인 여행 도우미>

 주의사항

 공원이나 광장 등에 공중화장실이 있기는 하나 시간에 따라 닫혀 있기도 하며, 불결할 뿐만 아니라 여성용이 없는 곳이 많으므로 백화점이나 카페테리아 등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남성용은 카바예로스(Caballeros), 여성용은 세뇨라스(Senoras)로 표기된다.

 스페인에는 시에스타(Siesta)라는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낮잠을 자는 관습이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상점이나 사무실의 업무를 중단하고 잠을 잔다. 관광지에서도 그 시간에는 문을 닫는 경우가 있으니 사전에 미리 알아보아야 한다.

 동양인들은 많은 현금을 소지하고 있다는 것이 이곳 범죄인들의 인식임으로 외출시 과도한 현금 지참은 피하고 숙소에 비치되어 있는 금고나 호텔에 보관하며, 부득이한 경우 여러곳에 분산하여 휴대하도록 한다.(강탈당하기 쉬운 소형 가방보다도 큰 가방에도 나누어서 휴대)

 여권의 경우도 현금의 경우와 같이 취급하며, 반드시 여권사본(2매 이상)을 별도로 준비 및 외출시 사본 휴대하는 것이 좋다.

 호텔 또는 식당에서 정산시 주위를 잘 살피고 지불은 신용카드를 사용한다.

 숙소에 머물면서 관광을 할 때에는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처럼 일상적인 복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혼자서 외출은 자제하고 낯선 사람의 접근 또는 과도한 친절과 호의를 경계(길을 물어 보는 등 대상자를 산만하게 한 후 소매치기를 하거나, 길을 안내해 주겠다고도 함)

 경찰관을 사칭하는 사람 유의(유사한 경찰 복장차림으로 접근,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면서 현금 및 신용카드 절도를 시도)

 여행지에 대한 사전 정보 및 유의사항, 재외공관 주소를 사전에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한다.

 마드리드시내에서는 수돗물을 직접 마셔도 문제없으나, 바르셀로나는 경수이므로 가급적 생수를 구입해서를 마시는 것이 바람직하며 카나리아 제도의 라스팔마스에서도 수도물에 염분이 포함되어 있어 음료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생수를 마시는 것이 바람직하다.

 카나리아 제도에서는 때때로 사하라사막의 모래열풍이 불어오며, 이로 인해 특히 아이들이 기관지천식이나 인후계통의 병에 걸리는 예가 많으므로 주의가 요구된다.

 의료사정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으나, 의약분업으로 인해, 의사의 처방전이 없으면, 원칙적으로 약국에서 약을 구입할 수 없으므로 상비약은 한국에서 가져가는 것이 좋다.

 

<긴급 연락처>

* 경찰(전국 공통):☎: 091(국가 경찰), 092(시경찰·교통 사안)

* 소방( 〃  ):☎: 080

* 주 스페인 대한민국 대사관

☎: 91 353 2000.   Fax: 91 353 2001

 

여행 시기

 스페인은 지역적으로 다양한 기후를 나타내므로 각 계절에 따라 적합한 여행지를 선택할 수 있다.

 봄에는 레반테 산악지구와 안달루시아 지방이 좋으며, 여름에는 스페인 중부 및 세비야의 더위는 극심하므로 이곳은 피하는 것이 좋다.

 가을에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스페인 전지역이 여행하기에 적합한 기후를 나타내며, 남부 지중해와 접하고 있는 알리칸테, 나라가는 온화한 기후로 수영을 즐길 수도 있다.

 마드리드의 경우 4-5월과 10월이 여행 시즌이며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은 축제가 많은 4-5월이 최적기이다.

 

여행 제안

투우

 코리다 데토로스(Corrida de Toros)라 불리우는 스페인의 국민적 행사로 3월 중순 발렌시아 불꽃축제부터 10월 중순까지 매주 일요일과 공휴일에 개최된다. 특히 성 이시도로 축제(5월 15일)를 전후한 2주 사이에는 매일 개최되며, 남부지역의 경우에는 겨울에도 투우경기가 열린다. 경기의 개막은 빛과 어둠이 교차되는 때인 저녁 5시에서 6시사이로 계절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경기장의 좌석은 햇빛을 받는 위치에 따라 Sombra석, Soly Sombra석, Sol석으로 구분되며 가격에서도 차이가 난다. 투우 경기는 하루에 3명의 정 투우사인 마타도르가 6마리의 소를 죽이는데, 소요시간은 1마리당 약 20분 정도이다. 투우경기의 절정은 마타도르가 얼마나 화려한 솜씨로 소를 즉사시키는가에 달려 있으며, 열광하는 스페인 관중들과 하나가 되는 것 또한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투우 경기에대한 자료는 마요르 광장의 여행안내소나 호텔에 문의 하면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플라맹고

 안달루시아의 집시예술로 노래와 춤, 반주의 3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라나다, 세비야 지방이 2대 중심지이며, 아랍과 인도의 영향을 찾아 볼 수 있다. 타블라오라 불리우는 극장식 레스토랑에서 관람할 수 있으며, 음료수나 식사와 더불어 즐길 수 있다.

 식사를 곁들이면 요금 부담이 크므로 경제적으로 플라멩고를 즐기려면 저녁 9시 이후에 입장하여 간단한 음료수를 마시며 관람하는 것이 좋다.

 

 

낮잠을 자는 습관 시에스타(Siesta)

 스페인에는 시에스타(Siesta)라는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낮잠을 자는 관습이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상점이나 사무실의 업무를 중단하고 잠을 잔다. 관광지에서도 그 시간에는 문을 닫는 경우가 있으니 사전에 미리 알아보아야 한다.

 

 

스페인 여행회화

안녕하세요? 아침-Buenos dias 부에노스 디아스

                 점심-Buenas tardes 부에나스 타르데스

                 저녁-Buenas noches 부에나스 노체스

감사합니다. - Gracias - 그라시아스

부탁합니다. - Por favor - 포르 화보르

미안합니다. - Perdon - 페르돈

안녕히 가십시오. - Adios - 아디오스

또 만납시다. - Hasta la vista - 아스탈 라 비스타

 

 

 관광명소

 

 

 

 

 

아빌라(Avila)

 세고비아에서 한시간, 마드리드에서는 1시간 20분이면 갈 수 있다. 아빌라는 성벽의 도시답게 구시가가 완전히 성벽에 둘러싸여 있다. 성벽의 높이는 12m이며 전체 성벽의 둘레는 2,526m이다.

 그레도스 산맥의 기슭에서 펼쳐지는 고원지대의 완만한 언덕의 사면에 중세의 시벽에 둘러싸인 아빌라가 있다. 해발 1,130m로 스페인의 주요 도시 중 가장 높다. 성녀 대 테레사의 탄생지인 아빌라시를 '성인의 도시'라고 부른다.

 아빌라는 해발 1,131m의 높은 위치로 옛날부터 군사적인 요충지로서(높은 성벽이 시가지를 빙 둘러싸고 있음) 회교도와 그리스도교도 간의 300년 동안이나 공방전을 계속한 곳이며 파괴와 수리를 되풀이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개축된 것이 1099년이다.

 멀리 떨어져서 보는 성벽과 구시가지 전체는 중세모습 그대로 인데 밤이 되면 성벽들이 조명을 받아 더욱 더 아름답다. 만일 일요일에 이곳을 방문했다면 성당의 미사 시간에 참석하면 예배도 보고 성가대의 아름다운 성가도 들을 수 있다.

 역사상 아빌라가 낳은 인물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은 성녀 테레사(1515~1582)가 있다. 아빌라 대성당(Avila Catedral)과 산타 데레사 수도원(Convento Santa Theresa), 엔카르나시온 수도원(Convento la Encarnacion) 등에는 데레사 수녀의 유품등이 모두 간직되어 있다. 아빌라의 중앙광장(성녀 테레사 광장)은 양쪽 길을 따라 바르(Bar)와 레스타우란테(Restaurante)가 많아 밤거리를 즐기는데는 그만이다. 아빌라의 성벽도 꼭 올라가 봐야한다. 성벽은 동쪽과 서쪽이 있는데 4유로를 지불하면 양쪽 성벽 모두를 볼 수 있다.

 저녁 5시 30분이면 문을 닫는다.

 

 

성녀테레사의 생가 성당

 성벽내의 남쪽에 있으며, 그녀가 태어난 생가에 세워진 성당이다. 태어난 방은 바로크 양식이며 예배당으로 되어 있다.

 

 

아빌라 대성당(Avila Cathedral)

 아빌라 대성당은 1090년 아빌라 시벽 건설과 함께 알바르 가르시아의 설계로 착공하였다. 공사는 16세기에 들어서서 필역하였으나, 완공되지는 못했다. 건축양식은 로마네스코에서 고딕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적 양식이 채택되었다. 오랜기간에 걸쳐 축조된 성당 벽은 한눈에 구별되는 여러종류의 벽돌이 사용되었고, 좌측량의 소성당은 후년에 증축된 것으로 르네상스 양식이 완연하다.

 정면 출입문 왼쪽에 우람한 종각과 쌍종각 위에 왕관탑이 씌워져 있고 오른쪽에는 종탑 부분이 미완성인채로 있다. 산 안드레드 소성당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 이 탑은 아빌라 도시 전부를 전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시벽 안팎을 살펴보기에 안성맞춤이다.

 

 

 

 

산타 테레사 수도원(Convento Santa Theresa)

 성녀 대 테레사는 1515년 3월 28일 탄생하여 12세 때에 어머니를 잃고 수녀원에서 위탁교육을 받은 뒤 19세 때 길멜 수녀원에 들어가 완덕의 길을 닦기 시작하였다. 성녀는 어느날 성당에서 기도를 하다가 예수께서 매질을 당하시는 장면을 그린 상본을 쳐다보고 또 성 아우구스띠토의 고백록에서 받은 감명으로 수녀원에서 크게 각성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그때까지 나의 생활은 나 자신의 것이었으나 그 후부터는 나의 생활은 내 안에 계시는 예수의 생활이었다"고 자서전에 적고 있음을 본다.

 

 

 

 

자라고자

삘라르 성모 교회

 이 교회는 1세기에 성모 마리아가 출현한데서 유래된 교회이지만 건축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17세기이다. 화려하고 장엄한 실내는 한 번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천장화는 고야와 그 제자의 작품이다.

 

 

 

 

카타드랄

 아라곤 고딕의 걸작이다. 플라테레스코, 쿠데하르, 바로크 등의 각 양식이 혼합된 인상적인 건물이다.

 

고딕 시가지

 구시가 중에서도 까떼드랄을 중심으로 한 이 일대를 특히 고딕 지구라고 하며, 13~15세기경에는 자치 지구로 번영하였다.

 

 

 

 

풍차의 도시, 꼰수에그라(Consuegra)

 올리브 나무와 백포도주 생산이 많은 탓에 길가에 가득한 포도나무를 지나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가면 큰 풍차 11개가 있는 꼰수에그라(Consuegra)에 도착한다.

 꼰수에그라(Consuegra)는 라 만차(La Mancah)로 알려져 있는 스페인의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꼰수에그라'라는 이름은 '마른 땅(dry soil)'이라는 아랍어에서 유래되었다.

 

 이곳에는 총 11개의 엄청난 규모의 풍차가 언덕 등성이 위에 세워져 있고, 여기서 라 만차 평원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모든 풍차는 시(市)의 소유이며 더 이상 동력을 생산하는 기능보다는 관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중 한 개의 풍차에만 작동 시스템이 돌아가는데 이 지방 축제기간에만 운행하게 되어 있다.

 

 이곳의 풍차가 유명한 이유는 바로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와 관련이 있다. 소설속에서 돈키호테가 이곳을 지나다가 풍차가 거인인줄 알고 대항해 싸우는 이야기와 결부되어 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페인 사람들이 말하는 돈키호테의 풍차는 꼰수에그라의 풍차가 아니고, 꼰수에그라에서 멀지 않은 캄포 데 크리프타나(Campo de Criptana)에 있는 10개의 풍차라고 한다. 다만, 꼰수에그라의 풍차들도 캄포 데 크리프타나의 풍차와 크게 틀리지 않고 감흥도 유사하므로 두 지역 중 아무 곳에서나 풍차를 감상해도 좋다.

 

 늘어서 있는 풍차 저 멀리에 우나 카스틸랴(una castilla)라는 성이 함께 있다. 이러한 성들은 중부 스페인에 점점히 세워져 있는데, 이런 성들의 존재가 바로 이 지방 이름을 카스틸랴-라 만차(Castilla-La Mancha)로 부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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