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루수스(Tarsus)

클레오파트라의 문(Cleopatra's Gate)

 터키 남부의 아다나에서 서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타루수스(Tarsus, 다소)는 사도 바울의 고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인데 이 다소에는 또 하나의 알려진 곳이 바로 '클레오파트라의 문(Cleopatra's Gate)'이다.

 도시의 중심 광장에 서 있는 허물어진 성문이 바로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로마 집정관 안토니우스를 영접한 역사적인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고대의 다소는 12m 간격으로 3개의 분리된 성벽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를 영접한 키드누스 강가에 세웠다고 전해지는 문이 바로 '클레오파트라의 문'인데 혹은 '암캐의 문'이라고도 한다.

 후에 기독교 국가가 된 비잔틴 제국은 이 문을 '바울의 문'이라고 불렀다.

 문이 서있던 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지금은 강이 훨씬 더 멀리 물러나가 버려 시내 한 복판에 위치해 있다.

 

 

클레오파트라(Cleopatra, BC 69 ~ BC 30)

 이집트의 여왕.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최후의 왕(재위 : BC 51~BC 30).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딸.

 

 아버지의 사(B.C. 52)후 그 유언에 따라 9세이던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공동 통치하였다. 그녀의 가계는 원래 이집트 인이 아니라 그리스 인과 마케도니아 왕통의 혼혈이었으나 높은 교양과 미성(美聲)을 자랑하고, 특히 미녀로서뿐만 아니라 그 지성과 수완으로 이집트의 종교에 깊이 관심을 보여 태양신 라(Ra)의 딸처럼 행세, 이집트 인들의 깊은 신뢰를 얻었으며 강대한 로마의 세력 앞에서 기울어져가는 이집트의 국세를 만회하려고 노력한 비극의 제왕이기도 했다.

 

 BC 51년에 클레오파트라가 파라오 율법에 따라 남동생과 결혼을 하고 남편이자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 권력투쟁을 하여 왕좌에 오른 후 마케도니아의 마지막 여왕이 되었다. 궁정 안의 권력 다툼으로 한때 동생에게 쫓겨났다.

 

 BC 38년 이집트에 원정 온 케사르의 힘을 빌어 동생과 그 일파를 패사(敗死)시키고 케사르의 애인이 되어 그를 따라 로마에 왔는데 케사르가 부르투스에게 암살되자 44년 귀국, 그 해 전 남편의 동생과 결혼했다.

 

 그 후 암살범 부르투스를 추격하여 이집트에 온 안토니우스가 이집트의 배신 행위를 문책코자 그녀를 만났으나 그녀의 유혹에 매혹, 재입국하여 서로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며 이에 노한 황제 옥타비아누스의 정벌군과 아르메니아에서 싸워 이겼으나 '악티움 해전'에서 패전, 안토니우스는 자살하고, 그녀는 포로가 되어 로마에 연행되었다. 그녀는 안토니우스의 묘지를 참배하고는 틈을 보아 태양신 라(Ra)의 사자라고 믿어온 독사를 풀어 자살을 감행, 옥타비아누스의 감복을 받아 여왕의 예우로서 안토니우스와 합장되었다.

 

 그녀는 소문처럼 뛰어난 미녀는 아니었으나, 비범한 화술, 풍부한 결단력, 겁을 모르는 용기와 뛰어난 재기 등이 그 미모와 어울려 파란 많은 그녀의 생애와 함께 많은 문학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클레오파트라의 진주

 BC 41년 면세 헤택을 베풀기 위해 타르수스(다소)를 내방중이었던 로마의 집정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이집트 여왕 프톨레미테(클레오파트라)를 소아시아 지방의 타르수스로 소환하게 된다.

 안토니우스는 시저가 암살된 후 옥타비아누스, 레피두스와 함께 제2차 삼두정치를 이루어 로마를 다스리고 있는 최고의 권력자였는데 그는 삼두정치 반대파 카시우스를 도와준 프톨레미테(클레오파트라)를 문책할 생각이었다. 당시 이집트는 로마의 동맹국이긴 하지만 사실상 속국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는 소환에 선뜻 응하지 않고 몇 번이나 독촉을 받은 끝에 타르수스로 향하는데 키드누스 강에서의 선상 파티에 안토니우스를 초대하게 된다.

 

 그 날 저녁 클레오파트라의 배에 오른 안토니우스는 눈이 휘둥그레지는데 금은 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배 안에는 온통 꽃들이 깔려있고 금접시와 보석 박힌 금술잔이 빛을 발하는 가운데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로 치장해 아름다움의 절정을 이루는 29살의 클레오파트라가 감미로운 선율이 흘러나오는 금빛 차양 안에 비스듬이 누워 안토니우스를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토니우스가 "이런 화려한 파티에는 많은 비용이 들겠군요"라고 말하자

 클레오파트라는 "지금까지 파티에 쓴 비용은 하잘 것 없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시녀에게 식초를 잔에 담아 오라고 명령하였다.

 

 그 때 클레오파트라는 온 몸에 값비싼 보석을 많이 달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는 양 쪽 귀에 늘어뜨린 커다란 진주 귀걸이가 가장 눈에 뜨였다.

 식초잔을 받아 든 클레오파트라는 한 쪽 귀걸이를 떼내어 식초잔에 담구어 버리는데 안토니우스는 흥미롭게 이를 지켜보게 되고 식초 술잔에 들어간 진주는 서서히 녹아 버리고 만다.

 진주가 다 녹자 클레오파트라는 술잔을 들어 단숨에 마셔 버리고 다시 귀걸이 한 쪽을 술잔에 마져 담그려 하자 안토니우스는 그 진주의 귀함과 클레오파트라의 대범함에 문책할 마음을 철회하고 클레오파트라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이 '클레오파트라의 진주' 이야기는 로마의 학자 플리니우스가 쓴 책 '박물지'에 기록된 내용이다.

 시저를 사로잡아 이집트를 지켰던 클레오파트라는 이번에도 지혜와 미모로 안토니우스를 사로잡아 BC 36년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를 이집트, 키프로스, 시리아, 리비아의 통치자로 선언하고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자식에게 각각 땅을 나누어 줌으로써 로마제국의 상당 부분을 넘겨주게 된다.

 이 사건을 '알렉산드리아의 증여'라고 하고 클레오파트라에게는 '왕중의 여왕'이라는 칭호가 주어져 클레오파트라의 꿈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나 꿈은 오래 가지 못하는 것, BC 31년, 옥타비아누스가 이끄는 로마군과 클레오파트라, 안토니우스 연합군간의 전쟁인 '악티움 해전'에서 참패하게 되고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클레오파트라의 진주에 숨은 비밀

 로마의 실력가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가 자신의 적을 도와 주었다는 일로 항의하기 위해 이집트를 방문한다. 클레오파트라는 이를 해명하기 위해 안토니우스의 마음을 돌릴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이때 진주를 활용하게 된다. 단순한 진주가 아닌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유일한 진주 귀걸이를 이용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녀는 성대한 연회 중에 시종에게 식초를 담은 술잔을 가져오게 하고 진주 귀걸이 한쪽을 술잔에 담근다.

 안토니우스는 흥미롭게 이를 지켜보게 되고 술잔에 들어간 진주는 서서히 녹아버리고 만다. 클레오파트라는 진주가 녹은 이 식초를 마셔버리고 귀걸이 한쪽을 다시 술잔에 담그려 하자 안토니우스는 그 진주의 귀함과 클레오파트라의 대범함에 결국 자신의 항의를 철회하고 클레오파트라에게 마음을 뺏기게 된다. 이것이 바로 '클레오파트라의 진주'에 관한 이야기다.

 

 클레오파트라는 어떤 생각으로 이런 행동을 취했을까.

 진주의 주 성분은 석회석이다. 따라서 식초를 포함한 모든 산에 잘 녹는다. 이때의 화학 변화는 다음과 같은 반응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석회석(CaCO3) + 아세트산(2CH3COOH) = 아세트산칼슘((CH3COO)2Ca) + 물(H2O) + 이산화탄소(CO2)

 

 식초는 아세트산을 포함하고 있고, 아세트산은 석회석으로 된 바위를 녹여 아세트산칼슘이라는 염을 만드는 성질이 있다. 클레오파트라의 진주 역시 석회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산을 이용해 진주를 녹인 사실 자체는 과학적으로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다.

 

 그러나 과연 클레오파트라가 진주를 곧바로 녹여 마실 수 있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녀가 마신 식초는 당연히 몸에 해를 주지 않을 정도의 약한 산성을 띠었을 것이다. 따라서 진주 알갱이가 녹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연회 당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가지 해석은 당시의 화학 지식을 많이 갖춘 클레오파트라가 진주를 녹일 수 있는 어떤 물질을 연회가 시작하기 전 미리 식초에 타놓았다는 것이다. 한편 클레오파트라가 흰색의 석회로 된 가짜 진주를 귀에 걸고 있다가 교묘하게 속였다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당대 최대의 부자이자 위대한 이집트의 여왕이 상대방을 속이는 행동을 보였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또하나의 가능성은 여왕이 식초와 함께 진주를 통채로 삼킨 상황이다. 클레오파트라가 들고 있던 잔이 금속잔이었다면 진주가 실제로 녹았는지 아무도 확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클레오파트라가 인기를 끈 이유는 미모뿐 아니라 뛰어난 지략도 한몫 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따라 잡기- 클레오파트라(Cleopatra)

감독 : 조셉 L. 맨키위즈(Joseph L. Mankiewicz, 1909~1993)

주연 :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 1932~2011),

         리처드 버튼(Richard Burton, 1925~1984)

         로디 맥도웰(Roddy McDowall, 1928~1998)

         렉스 해리슨(Rex Harrison, 1908~1990)

개봉 : 1963년

상영시간 : 256분

 

 로마의 세력권 아래 있던 이집트에는 클레오파트라와 그녀의 동생이 함께 통치하고 있었다. 한편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며 전세계를 지배해가던 로마의 실권자 시저는 이집트의 내전을 해결하기 위해 이집트로 입성하고 그곳에서 클레오파트라를 만난다. 그녀의 도도하고도 아름다운 매력에 이끌린 시저는 내전을 해결하고 클레오파트라를 여왕의 자리에 오르게 도와준다.

 그러나 그녀의 야심은 그칠 줄 모르고 시저의 힘을 얻어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꿈꾼다. 클레오파트라의 유혹에 빠진 시저는 로마에 부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하고 둘 사이에는 아들까지 생긴다. 오랫동안 이집트에 머물렀던 시저는 다시 전쟁을 치르고 드디어 로마에 입성한다.

 국민들의 시저에 대한 신뢰는 뜨겁지만 원로원의 몇몇 무리는 시저의 집권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 시저의 초대로 클레오파트라가 로마에 오지만 시저는 결국 그를 시기하는 무리들에 의해 살해된다. 시저를 황제의 자리에 앉히고 세계를 지배하려던 클레오파트라의 야심은 물거품이 되지만 그녀는 시저의 신임을 받던 안토니우스와 다시 사랑에 빠지는데…

 그러나 적국의 공격과 계속되는 간신들의 모반 속에 안토니우스 역시 혼란에 빠지고 클레오파트라는 자결을 결심한다.

 

 

 

이스탄불(ISTANBUL)

갑바도기아(Kapadokia)(괴뢰메 = Gor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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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솜으로 이루어진 듯한 파묵깔레(Pamukkale)

11세기 셀주크 터키의 수도 콘야 (Kon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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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의 고향! 이즈미르 (IZM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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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과 경고를 받은 베르가마(Bergama)

안타키아(Antak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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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해의 휴양도시 아이발릭(Ayvalk)

차나칼레(Canakkale)

푸른 부루사(Bur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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