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드의 배경 트로이(Troy)

 

 트로이 유적은 에게해에서 6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스카만드로스강과 시모이스강이 있는 평야를 내려다 보는 히살리크 언덕위에 있다. 이러한 지리학적 위치는 바다와 너무 근접하여 침입의 위협을 받지도 않으며 너무 멀지도 않아 교역의 어려움도 없기 때문에 문명이 발달하기에는 매우 적합하다. 그래서 트로이는 기원전 4000년 전부터 인간이 살기 시작했다. 지금의 트로이는 호머의 일리아드로만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이 도시는 과거 여러 문명이 거쳐갔던 중요한 도시였던 것이다.

 

 이는 독일의 백만장자이자 고고학자였던 슐리만에 의해 파해쳐진 9개층에 이르는 유적에 의해서 증명된다. 슐리만은 독일에서 목사 아들로 태어나 빈곤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어릴적 아버지가 들려주시던 일리아드 이야기를 믿으며 언젠간 꼭 트로이를 찾겠다는 신념을 다지며 자수성가 하여 중년에 이르러서는 백만장자가 된다. 돈이 모이자 슐리만은 바로 트로이를 찾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

 

 1870년에 발굴에 들어가 슐리만은 1871년에 트로이 유적을 발견하게 된다. 3년에 걸친 발굴로 인해 슐리만은 엄청난 양의 유물을 발견한다. 그 때 보물상자도 발견하게 되는데(이 때 발견한 보물상자는 트로이보다 1000년전의 유물이다.) 이 상자에는 16000여개의 금붙이로 만든 왕관까지 있었다. 이 유물들은 슐리만이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독일로 가져와 그의 사후에 박물관에 기증하나 1945년 독일로 진주한 소련이 탈취하여 지금은 러시아에 있다. 초기 발굴에서 슐리만은 자신이 발견한 9개층에 달하는 유적 중 2번째 층이 트로이 유적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후에 밝혀지듯이 트로이 유적은 6번째 층이다. 밝혀진 트로이성은 일리아드에 나와 있듯이 견고하고 튼튼한 성이었다. 비록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그 당시의 무기체계로는 쉽게 공략 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성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트로이 유적들은 발굴해 본 결과 대규모 지진으로 뒤틀려 있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추론하길 트로이의 10년 전쟁은 지진으로 인한 성벽의 붕괴와 도시의 파괴에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 한다. 트로이 목마 이야기는 지진의 신인 포세이돈을 상징하는 것이 말인 연유에서 비롯된 전설일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트로이를 받치고 있는 평야에 서서 메넬라우스 군이 되보기도 하고 트로이 성곽 위에 서서 헬렌을 차지하기 위해 10년 전쟁을 한 파리스 왕자가 되보기도 할 수 있는 트로이는 199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리스· 로마의 트로이 전설

 트로이의 전설은 그리스· 라틴 문학에서 계속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가장 초기의 문학적 증거인 호메로스<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Odyssey)>에서 주요 이야기는 이미 골격을 갖추고 있다. <일리아스>에서 직접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일부는 분실된 연작시가 <키프리아(Cypria)>· <아이티오피스(Aethiopis)>· <소(小) 일리아스(Little Iliad)>· <일리오스의 약탈(Sack of Ilios)>에서 나타났으며 개개의 주제들이 나중에, 특히 그리스 희곡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트로이 출신의 용사 아이네아스 이야기는 로마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베르길리우스가 쓴 <아이네이스(Aeneid)>의 제2권에는 트로이 약탈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진 설명이 들어 있다. 마지막으로 딕티스 크레텐시스와 다레스 프리기우스라는 이름의 작가들이 쓴 것으로 통용되는 의사(擬似) 연대기들이 있다.

 

 그리스에서는 테우크로이와 다르다노이라는 이름들이 대체로 '트로이인들'과 같은 말로 사용된다.

 

 그래서 전설은 스카만데르 강의 아들 테우크로스를 트로아스의 첫번째 왕으로 만들었고, 제우스와 엘렉트라(아틀라스의 일곱 딸인 플레이아데스 중의 한 사람)의 아들인 다르다노스를 그의 사위이자 후계자로 삼았다. 다르다노스의 아들 에릭토니오스는 트로스의 아버지이며, 트로이인이라는 말의 기원이 된 트로스에게는 일로스· 아사라코스· 가니메데스(이다 산에서 제우스에게 납치됨) 등 3형제가 있었다. 일로스는 얼룩소가 알려준 지점에 일리움(트로이)을 건설했으나 이 도시는 그의 아들 라오메돈이 승계했을 당시에 아직 성벽이 세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라오메돈은 성벽을 쌓기 위해 포세이돈과 아폴론 신을 고용했으나 그들이 성벽을 다 쌓은 후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포세이돈은 트로이를 괴롭히기 위해 바다괴물을 보냈으며 헤라클레스는 라오메돈의 딸 헤시오네를 괴물로부터 구출해냈다. 그러나 라오메돈은 헤라클레스에게 약속했었던 말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헤라클레스와 그의 동료들이 트로이를 약탈하고 라오메돈과 그의 아들들을 살해했다.

 

 이때 막내아들 프리아모스만이 헤시오네가 지불한 보상금으로 석방되었다.

 

 부유하고 강한 왕인 프리아모스는 아내 헤카베와 첩들 사이에서 50명의 아들과 12명의 딸을 낳았다. 그러나 그의 아들 파리스는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자'를 위한 것이라고 표시해놓은 황금사과를 놓고 아프로디테·헤라·아테나 중에서 누가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심판하도록 요구받았다.

 

 아프로디테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주었고 그리스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만난 뒤 사랑에 빠져 그녀와 도주하고 말았다. 헬레네를 찾기 위해 그리스인들은 메넬라오스의 형인 아르고스·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총 지휘하에 대원정을 시작했다(트로이 전쟁). 트로이인들은 헬레네를 돌려줄 것을 거절했다.

 

 트로아스 내부와 근처의 작은 도시들이 그리스인에 의해 약탈당했으나 트로이는 소아시아와 트라키아 동맹군의 지원을 받아 10년 동안 포위공격을 견디어냈다. 신들 역시 편이 갈라져서 특히 헤라·아테나·포세이돈은 그리스 편을, 아프로디테(아사라코스의 손자인 트로이 용사 안키세스와의 사이에 아들 아이네아스를 두었음)· 아폴론· 아레스는 트로이 편을 들었다. 전쟁 10년째에 시작된 이야기인 <일리아스>는 아가멤논과 그리스의 가장 훌륭한 용사 아킬레우스 사이의 반목과, 그로 인한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와 프리아모스의 장자 헥토르의 전사를 기록하고 있다.

 

 헥토르가 죽은 뒤에는 두 외국 동맹군인 아마존의 여왕 펜테실레아와 에티오피아의 왕이자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아들 멤논이 트로이 편에 가세했다.

 

 아킬레우스가 이들 두 사람을 모두 죽였으나 파리스가 화살로 아킬레우스를 살해했다. 트로이를 함락시키기 전에 그리스인들은 성채로부터 팔라스 아테나의 목조상(팔라디움)을 훔치고, 렘노스로부터 헤라클레스의 화살과 병든 궁수 필록테테스를, 또 스키로스로부터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피로스)를 데려와야 했는데,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가 모두 성공적으로 해치웠다.

 

 마침내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에페이오스가 거대한 목마를 완성했다(트로이의 목마). 여러 명의 그리스 용사들이 목마 안에 숨고, 나머지는 포위공격을 포기한 척하면서 근처의 섬 테네도스로 빠져나갔다. 프리아모스의 딸 카산드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트로이인들은 탈주자임을 가장한 그리스인 시논의 말만을 믿고 그 목마를 아테나에게 바치는 공물로서 트로이 성벽 안으로 가져왔다.

 

 그 목마를 파괴하려고 애썼던 라오콘 신관(神官)은 바다뱀에게 죽음을 당했다. 밤이 되자 그리스인 함대가 돌아왔고 목마 속에서 나온 그리스인들이 트로이의 성문을 열었다. 뒤이은 철저한 약탈에서 프리아모스와 남아 있던 그의 아들들이 살해당했고, 트로이 여자들은 그리스의 여러 도시로 가서 노예로 전락했다. 그리스 지도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겪은 위험하고 종종 비참하기까지 했던 항해여행은 2개의 서사시 <귀향(Nostoi)>과 <오디세이아>에 그려져 있다.

 

 엘렉트라는 자신의 후손에 대한 슬픔 때문에 플레이아데스 성단 중 자신의 별을 가장 희미한 것으로 만들었다.

 

 

중세의 트로이 전설

 중세기 작가들은 호메로스 작품들을 직접 접한 적은 없었지만, 트로이 전설의 영웅적이고 로맨틱한 이야기를 자신들 시대의 궁정연애나 기사도적 사랑의 개념과 끼워 맞출 수 있었고 특히 프랑스·영국의 국가 기원을 설명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중세기 판(版)의 주요출처는 딕티스 크레텐시스와 다레스 프리기우스가 쓴 허구적인 전쟁담이었다.

 

 다레스는 서구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그가 쓴 의사연대기가 트로이 측에 유리하게 기록되었고 몇몇 서구 국가들의 기원이 트로이인 것으로 여겨져서 서구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엑시터 출신의 조지프, 슈타더의 알브레히트, 플릭세쿠르의 장, 워터퍼드의 조프루아, 세르베스 코팔 등이 다레스의 글을 작품의 소재로 이용했지만, 트로이 주제를 이용한 핵심적인 작품은 브누아 드 생트모르가 쓴 프랑스의 로맨스 <트로이 이야기(Roman de Troie)>(1154~60)이다.

 

 방대한 시(詩)로 구성된 이 작품은 이아손과 헤라클레스에 의한 최초의 트로이 파괴, 프리아모스에 의한 재건, 파리스의 헬레네 유괴, 트로이의 포위공격과 전쟁들, 영웅 오디세우스의 방랑을 포함한 전후 이야기 등을 그린 것이다. 여기에서는 특히 헬레네와 파리스, 아킬레우스와 플릭세나, 트로일로스와 브리세이다(크레시다) 간의 사랑이야기가 강조되었다. 후일 중세기 작가들은 <트로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시칠리아의 판사 구이도 델레 콜론네가 1287년경에 라틴어 산문 <트로이 파멸의 역사(Historia destructionis Troiae)>를 완성하고부터는 이것에서 소재를 얻었다.

 

 구이도의 산문은 오랫동안 독창적인 것으로 명성을 누렸지만 사실은 <트로이 이야기>의 축약판이었다.

 

 트로이의 전설은 15세기에 특히 부르고뉴 왕실의 총애를 받았던 것으로 보이며, 부르고뉴 공 도서실에는 트로이에 관한 필사본이 17개나 소장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구이도의 작품에 기반을 둔 라울 르 페브르의 <트로이 역사집 Recueil des histoires de Troye>(1464)은 윌리엄 캑스턴에 의해 영어로 번역·인쇄(1474경)된 최초의 책이 되었다.

 

 또한 구이도 작품의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덴마크어· 네덜란드어· 스웨덴어· 아이슬란드어· 체크어 판도 나왔다. 트로이 전설의 인기는 특히 프랑스 문학 같은 중세의 다른 문학에서 전설 자체와 전설 속의 인물· 주제가 많이 언급된 데서도 입증된다. 그 주제는 또한 필사본 채색과 태피스트리 등의 중세예술에서도 종종 사용되었다.

 

 트로이의 흩어진 영웅들이 몇몇 서구 국가들, 특히 영국과 프랑스를 세웠다는 문학적 또는 심지어 애국적인 전설이 수천 년간 지속되었다.

 

 7세기 중엽에 프랑크족 연대학자 프레데가리우스는 일단의 트로이인들이 트로이 시 파괴 이후 자신들의 왕 프란키오의 지휘 아래 라인 강, 도나우 강, 지중해 사이 지역에 어떻게 정착했는지를 설명했다. 프랑크족의 기원을 트로이인으로 보는 이 최초의 견해는 이후 계속해서 연대학자·계보학자·찬사가 간에 반추되었다. 16세기에도 여전히 끈질기게 남아 있던 이 신화는 장 르메르 드 벨주의 <갈리아의 삽화와 트로이의 진기함(Illustrations de Gaule et singularités de Troie)>(1510~1513)과 롱사르의 민족서사시 <라 프랑시아드(La Franciade)>(1572)에 영감을 주었다.

 

 영국에서는 영웅 아이네아스의 증손자이자 로마인의 전설적인 시조인 브루투스가 영국인의 시조이면서 트로이아노바(뉴트로이[런던])의 창건자라는 비슷한 전설이 일찍이(9세기 이전) 형성되었다. 저지의 웨이스(바스)가 자신의 작품 <브루트 이야기(Roman de Brut)>(1155)에서 맥을 이은 이 전설은 셰익스피어의 시대가 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 트로이의 목마 전설과 트로이목마 바이러스

 컴퓨터 바이러스중 트로이 목마라는 이름의 바이러스가 있는데 과연 트로이 목마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트로이 목마는 트로이와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그리스가 트로이의 성밖에 만든 큰 목마이다.

 전쟁은 두 나라사이의 비슷한 전투력과 트로이의 강력한 요새로 인해서 끝나지 않고 있었는데, 이때 즈음하여 그리스는 선물이나 되는 듯 큰 목마를 성문앞에 만들고 마치 후퇴하는 것처럼 트로이를 떠난다.

 트로이사람들은 이런 그리스의 반응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목마를 만든 이유를 알기위해 점술사를 불러 물어본 결과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으면 그리스에 재앙이 임하고 성밖에 방치해 두면 트로이에게 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해석때문에 트로이 사람들은 그리스군이 배를 철수한 후, 견고한 요새의 문을 열고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는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그리스의 작전이었다.

 큰 목마안에 그들의 군사를 잠입시켜두고 점술사를 매수하여 난공불락의 트로이의 성벽을 넘고자 하는 전술이었던 것이다.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고 승전의 축제를 벌이고 곤히 잠든 트로이 주민들에게 목마속에 잠입해 있던 그리스 군인들이 나와 성문을 모두 열고, 후퇴하던 그리스 군사들이 모두 돌아와 결국 트로이는 점령당하고 만다.

 마치 무슨 선물이라도 되는듯이 보이는 메일을 열어보면,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일들이 종종 있는데, 그래서 그런 종류의 바이러스를 우리는 이 전설에 빗대어 트로이 목마 바이러스라고 부르게 된것이다.

 

 

 

관광 명소

◈ 해상 교통의 요충지이자 트로이 유적지가 있는 곳- 차나칼레(Çanakkale)

 차나칼레는 마르마라 해와 에게 해가 만나는 다르다넬스 해협에 위치해 있다. 다르다넬스 해협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곳에 있기 때문에 예전부터 해상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했다. 그래서 언제나 이곳은 강국들의 각축장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겔리볼루(Gallibolu) 반도 상륙 작전을 통해 터키군과 연합군의 전쟁터였는데, 이때 치열한 공방전이 거듭되다 결국 터키군이 승리한 바 있다.

 트로이 목마로도 잘 알려진 트로이 유적을 방문하려는 관광객들이 많은 곳이다.

 차나칼레에 도착하는 버스는 대부분 중심가인 항구 앞 이스켈레 광장에서 정차한다.

 

 

◈ 차낙칼레 주변에서 출토된 유물을 만날 수 있는 곳- 차낙칼레 고고학 박물관(Canakkale Archaeology Museum, Arkeoloji Müzesi)

 고고학 박물관에는 트로이 유적과 앗소스 등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총 5개의 전시관과 1개의 야외 전시장에는 차낙칼레 인근에서 발견된 도자기나 로마 시대의 대리석 부조, 트로이에서 나온 토기와 장신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아폴론 신전에서 발굴된 유물과 어린 소녀의 석관 등도 볼 수 있다.

 고고학 박물관은 트로이 유적으로 가는 도로변에 있으며, 트로이에서 돌무쉬를 타고 돌아올 때 기사에게 미리 이야기하면 박물관 앞에서 내릴 수 있다.

 

 

◈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는 성채- 치멘릭 성채 & 군사 박물관(Çimenlik Kalesi & Çanakkale Deniz Müzesi)

 다르다넬스 해협의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던 술탄 메흐메트 2세가 1451년, 해협을 통과하는 적함을 격침시키기 위해 지었다. 성채 내부에 그려져 있는 겔리볼루 전투 장면 그림을 통해 당시 치열했던 전쟁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안뜰의 벽에는 적이 쏜 포탄 자국이 남아 있고, 당시 사용하던 무기와 문서, 지도 등도 볼 수 있다.

 군사 박물관은 치멘릭 성채 내부에 있다. 박물관 앞에는 치멘릭 공원이 있는데,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하던 지뢰 설치함 누스라트호와 대포가 곳곳에 놓여 있다. 

 

o 위치: 항구에서 도보 10

o 주소: Fevzipasa Mh., 17100 Canakkale

: 0286-213-1730

o 가격: 박물관: 3TL / 공원: 무료

o 휴관일: 월요일, 목요일, 공원은 연중무휴

o 개관: 박물관: ~, ~08:30~17:00

 

 

◈ 트로이 목마의 전설이 남아 있는 대규모 유적터- 트로이 유적(Archaeological Site of Troy, Truva, Troya)

 차낙칼레에서 약 30km 정도 떨어져 있는 트로이 유적은 우리에게 트로이 전쟁과 트로이 목마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고대 도시이다. 전설 속의 도시로만 알려져 있다가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이 그 실체를 발견했다. 슐리만은 어렸을 때 들었던 일리아드가 전설이 아닌 사실이라고 믿고 트로이를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다, 1873년 이곳을 발견했다. 그는 발굴 작업을 통해 발견한 금은보화 등의 유물들을 독일로 밀반출하여 베를린 박물관에 공개하였고, 이로써 트로이는 전설이 아닌 실존 도시임이 널리 알려졌다.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트로이 유적의 최하층은 무려 기원전 4000년대의 유적으로 밝혀졌다. 이 외에도 2층에서는 메가론식의 왕국으로 짐작되는 건물과 많은 금은보화가 발견되었다. 7층에는 호메로스 시대와 청기 시대 초기, 8층에는 아르카이크 시대, 맨 위의 9층에는 헬레니즘 시대 및 로마 시대의 유적이 있다. 첫 발굴 당시에는 2층을 트로이 유적이라고 여겼지만, 1930년대 미국의 재조사 결과 7층이 트로이 유적으로 판명되었다. 트로이 유적지의 발굴 작업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유적 입구에 들어서면 트로이 목마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다. 이는 트로이 전쟁을 기념해서 새롭게 만든 것이다. 트로이 목마를 지나 성벽 아래를 따라 한 바퀴를 돌면서 유적들을 감상할 수 있다. 성벽은 트로이 전쟁의 무대가 되었던 곳으로 여겨지며, 당시에는 이곳에서부터 바다가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한편 지진으로 인해 이 성벽과 도시가 무너지면서 트로이 전쟁이 끝났다는 설도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지진을 관장하는 신이 포세이돈인데, 말은 포세이돈을 상징하는 동물이므로 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해 트로이 목마가 탄생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시내에서는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다. 트로이 유적은 시내에서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돌무쉬를 이용해야 한다.

 

 

 

  트로이(Troy)

액션/로맨스/멜로

나라: 미국, 몰타, 영국

개봉 : 2004.05.21 개봉

영화시간: 163

타입: 15세이상관람가

감독: 볼프강 페터슨

주연: 브래드 피트, 올랜도 블룸

 

 유사 이래, 인간은 늘 전쟁을 해왔다.

 권력을 위해, 영광과 명예를 위해, 그리고 때로는 사랑을 위해...

 

* 금지된 사랑이 일으킨 거대한 10년 전쟁

 고대 그리스 시대, 가장 잔인하고 불운한 사랑에 빠지고 만 비련의 두 주인공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올란도 블룸)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다이앤 크루거). 사랑에 눈 먼 두 남녀는 트로이로 도주하고, 파리스에게 아내를 빼앗긴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브렌든 글리슨)는 치욕감에 미케네의 왕이자 자신의 형인 '아가멤논'(브라이언 콕스)에게 복수를 부탁한다. 이에 아가멤논은 모든 그리스 도시 국가들을 규합해 트로이로부터 헬레네를 되찾기 위한 전쟁을 일으킨다.그러나 전쟁의 명분은 동생의 복수였지만, 전쟁을 일으킨 진짜 이유는 모든 도시 국가들을 통합하여 거대한 그리스 제국을 건설하려는 야심이었다.

 

*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의 충돌

 그러나 '프리아모스'왕(피터 오툴)이 통치하고 용맹스러운 '헥토르'왕자(에릭 바나)가 지키고 있는 트로이는 그 어떤 군대도 정복한 적이 없는 철통 요새. 트로이 정복의 결정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바다의 여신 테티스(줄리 크리스티)와 인간인 펠레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불세출의 영웅, 위대한 전사 '아킬레스'(브래드 피트) 뿐. 어린 시절, 어머니 테티스가 그를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스틱스 강(황천)에 담궜을 때 손으로 붙잡고 있던 발뒤꿈치에는 강물이 묻질 않아 치명적인 급소가 되었지만, 인간 중에는 당할 자가 없을 만큼 초인적인 힘과 무예를 가진 아킬레스는 모든 적국 병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 마침내 현실이 된 불멸의 신화!

 그러나 아킬레스는 전리품으로 얻은 트로이의 여사제 브리세이스(로즈 번)를 아가멤논 왕이 빼앗아가자 몹시 분노해 더 이상 전쟁에 참가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고 칩거해버린다. 아킬레스가 전의를 상실하자 연합군은 힘을 잃고 계속 패하게 되고 트로이의 굳게 닫힌 성문은 열릴 줄을 모른다. 결말이 나지 않는 지루한 전쟁이 계속 이어지고 양쪽 병사들이 점차 지쳐갈 때쯤, 이타카의 왕인 지장 오디세우스(숀 빈)가 절묘한 계략을 내놓는다. 그것은 바로 거대한 목마를 이용해 트로이 성을 함락시키자는 것...

 

 금지된 사랑은 한 나라의 문명을 파괴시킬만큼 거대한 10년 간의 전쟁을 일으키고, 자존심을 건 양국의 싸움은 피바람 날리는 전쟁터에 불멸의 신화를 탄생시킨다.

 

 

 

이스탄불 (Istanbul)

갑바도기아 (Kapadokia) (괴뢰메 = Goreme)

터키의 수도 앙카라(Ankara)

하얀 솜으로 이루어진 듯한 파묵깔레(Pamukkale)

11세기 셀주크 터키의 수도 콘야(Konya)

천상의 도시 안탈리아(Antalya)

호머의 고향! 이즈미르(Izmir)

고대 해상 도시 에페소(Efes)

일리아드의 배경 트로이(Troy)

아름다운 항구도시 쿠사다시(Kusadasi)

아리스토텔레스와 바울의 발자취가 남은 고대도시 앗소(Assos)

하나님의 사랑과 경고를 받은 베르가마(Bergama)

안타키아(Antakya)

눈부신 해변의 도시 보드룸(Bodrum)

에게해의 휴양도시 아이발릭(Ayvalk)

차나칼레(Canakkale)

푸른 부르사(Bursa)

터키의 거대한 무덤 넴루트 다이(Nemrut Dag)

오브룩 한(Obruk Han)과 오브룩 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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