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Ukra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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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유럽과 러시아의 경계에 위치한 우크라이나는 흑해와 인접해 있으며 아름답게 보존되어 있는 자연환경과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유럽의 여러나라들로 부터 지배를 받았고 소련이라는 70년이 넘게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결국은 독립하여 지금의 우크라이나가 되었다.

 

개 요

o 수 도 : 키예프(260만 명)

o 인 구 : 약 4,600만 명(2016년)

o 면 적 : 603,700㎢(세계 46위)

o GDP : 854억$(2015년. 세계 62위)

o 화 폐 : 흐리브나 (UAH)

o 기 후 : 온화한 대륙성 기후

o 주요민족 : 우크라이나인 73%, 러시아인 22%

o 주요언어 : 우크라이나어(러시아어는 공식언어는 아니나 일상생활에 널리 사용)

o 종교 : 우크라이나 정교, 러시아 정교, 카톨릭교

 

 

정 치

o 정부형태 : 공화제(대통령제)

o 의회 : 최고회의(Verkhovna Rada)

o 정부주요인사 : 국가원수 : 쿠츠마(Leonid KUCHMA) 대통령, 총리 : 야누코비치 (Viktor Yanukovich), 외무장관 : 즐렌코(Anatoliy M. ZLENKO)

o 최근 정치정세

- 98.3 총선에서 공산당사회당 등 좌파계열이 의회내 다수 형성

- 99.11 쿠츠마 대통령 재선

- 2000.4 의회내 반정부세력 견제를 위한 국민투표 실시하여 압도적 찬성 획득· 대통령에 대한 국회해산권 부여, 국회의원 감축, 면책특권 축소, 양원제 실시

- 2000.9 언론인 실종사건에 대한 쿠츠마 대통령 연루설 등 계속되는 정치 스캔들에 의해 정국불안 심화·반정부 시위 증가

- 2001.4 유쉔코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이 공산당과 올리가키 세력주도로 우크라이나 최고회의 통과

- 2001. 5 키나흐 신임 총리 임명

- 2001.10 러시아 민항기가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오발로 격추

- 2002.3 총선 실시

- 2002.11 키나흐 총리 해임 및 야누코비치 도네츠크 주지사 총리 임명

 

 

경 제

- GDP : 854억$(2015년. 세계 62위)

- 화폐 : 흐리브나 (UAH)

- 주요자원 : 우라늄, 철광석, 천연가스

 

 

시 차

 우리보다 7시간 느리다.(GMT + 2시간)

 

전 압

- 220V, 50Hz

 

 

현지 연락처

➀ 시내 및 시외 통화는 우체국에서 판매하는 카드를 구입, 시내 공중전화를 이용(카드 1장에 US$3)

➁ 국제 전화는 전화국에서 신청하며 요금은 1분에 US$3(키예프에서 한국 통화시)

- 화 재 01

- 경 찰 02

- 응급환자 03

- 보리스폴 국제공항 295-2252

- 쥴리아니 공항 242-2308

- 열차정보 005

- 택시 서비스 058

 

 

약 사 

기원전 3,500년경부터 기원전후에 이르는 기간 중에는 킴메리, 스키타이, 사르마티아인들이, 기원후 1,000년 동안에는 고트족, 훈족, 불가리아인, 아바르, 하바르, 마자르, 페체네그 민족 등이 현 우크라이나 영토내에서 출현, 명멸함.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에는 기원전 수세기 동안 타우리,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이, 기원후 중세까지 아르메니아, 슬로박, 제노아, 투르크, 타타르인들이 거주, 현재도 크림에는 이들의 후손과 문화가 남아 있음.

 

 카르파티야(Carpathia) 산맥 북부지역이 본거지로 추정되는 슬라브 민족이 7세기초 사방으로 분산, 이동하면서 드니프로(Dnipro)강 서안에 동슬라브 민족으로 정착함.

 

 8~9세기 동슬라브민족의 최초 봉건국가인 키예프 루시(Kyiv Rus)가 키예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북부 발틱해에서 남부 흑해까지, 동부 볼가(Volga) 강에서 서부 티사(Tisa)강에 이르는 지역을 영토로 삼음.

- 키예프는 1500년전 설립되었으며 10~12세기경 인구는 약 15만 명

 

 9세기 후반부터 12세기 초반까지 200여년간 키예프 루시는 봉건국가로서 발전을 거듭하였으며 특히 볼로디미르 대공(Volodymyr the Great)치세(980~1015)에는 기독교 수용(988년) 및 비잔틴 문화 도입 등 문화적으로도 크게 융성함.

 

 1132년 므스티슬라프(Mstyslav)왕 사후, 왕자들간의 후계 다툼으로 키예프 루시는 여러 공국으로 분할되고 쇠퇴의 길로 들어섬. 

 

 1223년부터 3차례에 걸친 몽고족의 침입을 받고 1240년 키예프가 몽고족에 의해 폐허로 변하면서 키예프 루시는 멸망함. 이후 2세기에 걸친 몽고족(바투 칸)의 지배하에서 현 우크라이나 영토의 대부분은 13~14세기 중 Halytsian-Volynian 공국(후에는 왕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14세기 중반 이후에는 점차 리투아니아, 폴란드, 터키, 몰도바에 의해 분할, 예속됨.

 

 1569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합병에 따라 드니프로강 서안은 폴란드에 귀속됨.

 

 동슬라브 민족이 확장, 분화되면서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지역 내에는 몽고 지배기간,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합왕국 지배기간을 거쳐 오면서 러시아인, 벨라루스인과 구별되는 우크라이나인의 독자적 정체성이 형성되어 나가기 시작함.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코작(Cossacks) 집단이 16세기 초부터 형성되었으며, 동 무장조직인 자뽀로지아 코작 시크(Zaporogian Cossacks Sich) 주도하에 1648-1654년간 독립투쟁을 수행함.

* 우크라이나 민족과 코작 집단은 상호 깊은 연관은 있으나 동일 개념은 아님, 우크라이나 민족은 민족(ethnicity) 개념이며 코작 집단은 사회 계층적 성격의 개념임. 코작 집단은 제정러시아 시절 러시아 변방 지역 수비 임무를 수행하는 대가로 러시아 정부로부터 자치 및 조세 면제 등의 혜택을 부여받은 사회집단으로 대부분 범법자나 도망 농노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오늘날 우크라이나 지역에는 자뽀로지아 코작, 러시아 지역에는 돈 코작· 쿠반 코작 등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코작 집단이 존재했었음. 제정러시아 시절 오늘날 우크라이나 지역 내에는 우크라이나인이 코작집단(자뽀로지아 코작)의 주류를 형성하였고 대폴란드 독립투쟁도 이들 우크라이나인 코작 집단에 의해 주도됨.

 

 1632년 동 슬라브 최초의 대학교인 Kyiv-Mohyla Collegium이 설립됨.

 

 드니프로 강 동안은(비폴란드 점령지역) 1654년 잠시 러시아의 보호령이 되었다가 코작 지도자 흐멜니츠키(Khmelnitsky)와 러시아 차르간의 페레야슬라브 협정을 체결함

 

 1772년 폴란드의 해체에 따라 드니프로 강 서쪽 폴란드 점령지역의 대부분도 러시아에 편입되고, 갈리치야, 볼리니아, 이바노프랑콥스크 등 일부 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로 귀속됨.

 

 1905년 이후 제정 러시아에서의 반황제 혁명 움직임이 확산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에서도 노동자, 농민들의 대규모 봉기가 빈발함.

 

 1917년 볼쉐비키 혁명시 우크라이나 인민대표 회의가 결성되었으며 1917.12.25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수도 : 하리코프)이 선포됨.

 

 제1차 세계대전 말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패퇴에 따라 동 지배하에  있던 서부 우크라이나지역(볼리니아 및 갈리시아)은 1918.11월 서부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으나, 동 지역 거주 폴란드 민족의 봉기 및 신생 폴란드 정부의 무력 개입으로 1919. 7월 폴란드의 영토로 귀속됨.

- 이바노프랑콥스크 지역은 신생 헝가리의 영토로 귀속됨.

 

 동부 우크라이나 지역(Greater Ukraine)에서는 1917~1921년간 독립을 추구하는 세력과 볼쉐비키파 등 6개 정파간의 내란이 발생한 바, 독립쟁취에는 실패함.

-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중심으로 러시아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우크라이나 공화국이 1917년 선포되어 활동하였으나 수개월 후 볼쉐비키 세력에 패해 소멸함.

 

내란 과정에서 일반 국민들의 반러시아, 민족의식이 크게 확산됨에 따라 모스크바 볼쉐비키 정부의 전략적 양보하에 제한적 외교 주권(조약체결, 영사 관할권 등)을 갖는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1921년 선포됨.

 

 1922.12월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창설 조약에 서명, 창립 회원국이 됨.(제한적 외교주권 상실)

 

 소련방 가입이후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민족의식은 꾸준히 지속되었으며 모스크바 중앙정부는 이러한 민족의식 말살을 위해 강력한 억압정책을 폄.

- 스탈린의 1932~33년 집단농장 추진 과정에서의 인위적 기아 정책에 의해 우크라이나 농민 800만 명이 아사하고 전쟁, 기근 등으로 많은 국민들이 해외로 이주하여 1939년 당시 41백만의 인구가 1945년에는 27백만 명으로 대폭 감소

 

 1934년 키예프는 소련방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소련방 당시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다음의 제 3의 도시로 성장함.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2차 대전을 계기로 소련은 폴란드에 귀속된 서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벳사라비아, 북부 부코비나를 병합

- 1941년 당시 소련방낸 우크라이나 영토는 56만㎢

 

 1941~44년 우크라이나 전역이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됨.

 

 1945년 유엔 창설 회원국이 됨

- 소련방내 러시아, 벨라루스와 함께 회원국으로 참여

 

 1954년 소련방 정부는 우크라이나 합병 300주년 기념 선물로 크림 반도를 우크라이나에 이양함.

- 1953년 스탈린 사후 우크라이나에 로켓트, 전자, 화학, 조선산업 등 중화학 시설을 건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 이후 소련 중앙정부의 장악력이 약화 됨에 따라 1991.8.24 우크라이나 최고회의는 독립 선언법을 채택하여 1991.12.1 국민투표에 의해 최종 확정

 

 1991.12.5  레오니드 크라프축(Leonid Kravchuk)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며, 1991.12.8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라루스 3개국 정상간에 소련방 탈퇴 문서에 정식 서명됨.

 

 독립 후 94. 3월, 98. 3월, 2002. 3월, 2006. 3월 각각 제 2, 3, 4, 5대 총선이 있었음.

 

 1994. 5월, 제2대 대통령으로 레오니드 쿠츠마(Leonid Kuchma)가 당선, 1999. 10월 제3대 대통령으로 재선됨.

 

 2004. 11월 제4대 대통령 선거부정으로 오렌지 혁명 발발, 2005. 1월 빅토르 유쉔코(Viktor YUSHCHENKO) 야당후보가 제4대 대통령으로 취임함.

 

의원내각제 요소가 일부 채택된 신헌법이 2006.1.1부터 발효되었으며 2007.9월 총선을 실시하여 2007.12월에 티모센코(TYMOSHENKO)총리 임명

 

 2010.1.17 차기 대통령 선거 실시 예정

 

 

출입국 정보  

통 관

<입국시>

➀ 반입 가능 품목(세관 신고 불필요): 양주 1병, 담배 10갑, 기타 US$500 이하의 선물 용품

➁ 반입 금지 품목 : 총기류, 무전기, 마약, 위해 약품등

➂ 카메라 및 귀금속, 보석류(반출 전제) : 여행을 마치고 출국시 반출 편의를 위해 반드시 신고 요망(신고하지 않으면 반출 불가)

➃ 반출을 전제로 하지 않는 기타 전자 제품, 고급 의류, 악기 등 고가품목은 물품에 따라 20~50% 이상 과세

 

<출국시>

➀ 규정상으로는 US$100 이상의 물품을 구입(외화 환전증명서 및 영수증 소지)하여 반출할 경우 초과금액의 50% 과세(그러나 실제로는 선물 용품이거나 고가품이 아니면 비과세 또는 소액의 세금 징수)

➁ 골동품(그림 포함)은 시청 문화국의 허가 취득 후 반출 가능한 바,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감정 전문가 위원회(연락처 229-5647, 229-5340)로부터의 감정이 필요하며 1945년 이전 골동품은 반출 불가

➂ 1945년 이후의 골동품은 세관 감정원에 의한 평가 금액의 50% 과세

➃ 금.보석 반출 금지

➄ 입국시 반출을 전제로 신고한 물품(카메라, 보석류 등)들은 출국시 반출에 문제 없음. 그러나 입국시 반출을 전제로 세관 신고하였으나 출국시 실제 반출하지 않을 경우 사유 해명과 함께 과세

 

 

입국심사 및 외환신고

➀ 여객기가 몰리지 않는 오전 또는 오후 늦은 시각에는 입국 심사에 약 10~20분 소요 여객기가 몰리는 오후 1시~5시까지는 30분~1시간 가량 소요

 

➁ 입국 절차는 입국 심사, 수화물 회수, 세관 순서

 

- 외환 신고- 입국시

➀ 현금 US$500 이하 소지하고 입국할 경우 세관원 면전에서 소지 금액을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없고 세관 신고서만 제출

 

➁ 현금 US$500 이상일 경우 돈을 꺼내어 세관원 면전에서 세관신고서와 대조하여 소지금액을 정확히 확인

 

➂ US$10,000 이상 반입할 경우 특별 신고서 추가 작성 필요

 

➃ 1회 입국시 US$50,000 이상은 반입 불가

 

 

출국심사 및 외환신고

➀ 출국 심사에는 세관 신고 등 약 30분 소요(비행기 출발 1시간 전 공항 도착 요)

➁ 출국 절차는 세관 신고, 수화물 발송 및 탑승권 발급, 출국심사 순

➂ 출국 세관 신고시, 입국시 확인받은 세관 신고서를 반드시 제출

 

- 외환 신고-출국시

➀ 세관 신고 없이 반출할 수 있는 금액은 US$1,000 이하 또는 동상당액의 기타 화폐임(이는 입국시 US$500 이하 소지하여 세관 신고가 면제된 경우)

➁ 입국시 반입한 외화 금액 이상의 외환 반출 불가(입국시 US$3,000을 신고하고 출국시 US$5,000을 소지하고 출국할 경우 반출 가능 금액은 US$3,000이고 잔여액 US$2,000은 반출 불가)

➂ 출국시 세관 신고서에 입국시 소지한 외화 금액만을 신고하고 실제로는 그 이상의 외화 금액을 반출하려다 적발될 경우 주재국 법에 따라 사법 처리될 수도 있으니 반드시 신고 금액과 입출국시 소지 외화 금액이 일치하도록 하여야 함.

 

 

사증 발급 신청

- 우크라이나 입국 사증은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발급(전화 : 578-6910, 팩스 : 578-5514)

- 입국 사증 발급 서류는 초청장(원본), 신청서(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 비치), 사진 2매

- 통상 사증 발급 소요 기간은 1주일이며 사증 발급 수수료는 US$30임(급행료는 US$60, 사증 발급 소요기간은 2~3일)

* 과거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 미개설시에는 주재국 키예프 보리스플 공항 영사처에서 입국 사증을 발급하였으나 현재에는 공항에서 아국인에 대해 입국 사증을 발급하지 않고 있음. 따라서 우크라이나 입국시 입국 사증이 없으면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하므로 입국 전 반드시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입국 사증을 발급받아야 함.

 

 

현지 교통

 

- 도시별 이동시

 여행자들이 우크라이나의 도시에서 이동하는데 있어서는 기차가 일반적이다. 구소련시대에 지역간의 이동의 편리를 위해 철도노선이 잘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버스는 아직 도로사정이 좋지 않고, 주로 상인들이 타고 이동하며, 시간도 오래 걸려 장거리에서는 여행객들이 이용하기에는 불편하다.

 

- 도시내 교통수단

 현지교통은 구소련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트램과 트롤리 버스, 버스가 운행되고 있으며, 지하철도 3개노선으로 운행되고 있다.

 공식적인 택시와 일반승용차도 택시영업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빈차가 있으면 손을 들어 멈추고, 멈추가 나면 먼저 가격을 흥정한 후 탑승한다.

 

 

쇼 핑

 

<생필품 요금>

➀ 현지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육류, 과일, 야채류, 빵 등의 가격은 비교적 저렴한 편임

➁ 수입품 판매점(슈퍼마켓)에서 식수, 음료, 과일류 등을 구입할 경우 현지 시장 가격의 2~3배 정도로 비싼 편이나 품질은 양호함.

 

<호텔, 식당 요금>

➀ 현지 식당 이용시 중식은 1인당 US$5~10, 석식은 US$10 내외

➁ 외국 식당(한국, 일본, 미국, 불란서, 이태리, 영국등)에서의 1인당 중식은 음식점 수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략 US$20-40, 석식은 US$40-60 정도임.

➂ 키예프 호텔 요금은 외국인 투숙시 보통 싱글 1실 1박 기준 US$135~175이고, 더블 1실은 US$180~200 수준임(내국인과 외국인 숙박요금 차등 적용)

➃ 기타 오뎃사, 드네프로페트롭스크, 얄타, 류보브 등 지방 도시의 호텔 요금은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싱글 1실 기준 US$40~80(LUX는 US$150~200) 정도이며, 시설 및 서비스는 중하위급 수준

➄ 음식점, 호텔등에서의 봉사료는 계산서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으나 관행상 청구서상 금액의 5% 정도임.

 

 

여행 도우미

 

사증에 관한 유의사항

 과거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 미개설시에는 주재국 키예프 보리스플 공항 영사처에서 입국 사증을 발급하였으나 현재에는 공항에서 아국인에 대해 입국 사증을 발급하지 않고 있음. 따라서 우크라이나 입국시 입국 사증이 없으면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하므로 입국 전 반드시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입국 사증을 발급받아야 함.

 

여행중 유의 사항

<여행 지역별 범죄 유형, 마약, 조직 범죄 등>

➀ 우크라이나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으나 치안 상태는 CIS국가중 양호한 편임(Kuchma 대통령은 조직적 범죄의 근절을 위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바 있음). 다만, 느슨한 사회적 분위기를 이용 소규모 범죄 조직이 도시를 중심으로 여행자 등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금품 강탈등의 범행이 종종 발생(야간 시내 외출 삼가 바람직).

➁ 우크라이나 국내선 열차는 비교적 안전하나 모스크바-키예프 국제선 열차에서는 최면성 약품 또는 개스 등을 이용한 강도사건이 발생한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 요망

➂ 크리미아 반도 남부 지역은 최근 범죄가 성행하고 있는 바, 이 지역 여행시 특별히 주의가 요망되며 남의 눈에 띄는 요란하고 사치스런 복장은 가급적 자제 요망

 

<조직 범죄 및 마약>

➀ 우크라이나 중동부지역인 하리코프, 드네프로페트롭스크는 조직 범죄 활동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음.

➁ 사업 관계로 주재국을 방문하는 여행객은 이들의 접근을 경계하여야 함(대개 조직 범죄단은 BMW, 벤츠등 고급 승용차로 수명씩 몰려다니며 머리가 짧은 것이 특징)

➂ 주재국은 마약 범죄가 성행하고 있어 정부는 마약 퇴치에 강력히 대처하고 있으며 마약 밀매 또는 마약 복용 등 마약 범죄에 연루되는 일이 절대로 없도록 해야 함.

 

<여행 제한>

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해 누출된 방사능 오염으로 체르노빌과 북부 쥐따미르 일부 지역은 여행이 제한됨.

➁ 핵미사일 관련 시설, 흑해 함대가 위치한 세바스토폴 등 크리미아 지역의 군사 시설 지역내에서는 사진 촬영 제한

➂ 입국 전 사증 발급 신청시 방문코자 하는 지역명을 신청서에 기입해야 희망하는 지역을 여행할 수 있음.

 

 

키예프 기후(℃)

지  역

구분/월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키예프

최고평균

-2

-1

3

12

20

22

23

23

18

11

3

0

최저평균

-9

-8

-3

2

8

12

13

12

8

2

-2

-5

평   균

-6

-4

0

7

14

17

18

17

13

7

1

-2

강우량mm

37.7

34.4

38.9

44.8

51.8

69.1

77.1

64.4

46.7

43.3

45.4

4.35

 

 

 관광 명소

키예프(Kiev)

 구 소련에서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인 키예프는 11~12세기 경에는 키예반러스라는 이름의 강대한 슬라브 국가였다.

 이 시기에는 발틱해와 지중해 사이의 무역의 중심이 되기도 하였지만 1240년 몽골의 침입으로 키예반러스는 지금의 폴란드, 리투아니나, 러시아의 형태로 분리되었다.

 한때 유럽에 있어서 강력한 힘을 과시하였던 우크라이나의 운명은 현재는 그 힘을 많이 잃었고, 지속적으로 외세침입에 의해 숱한 질곡의 역사를 거쳐왔다. 

 키예프는 우크라이나 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드니프로 강이 도시를 통과하여 남쪽으로 흘러 흑해에 이른다.

 뻬쩨르스끄는 구시가로 도시 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명한 라브라 묘지가 위치해 있는 둑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더불어 도시 중심에서 서쪽에는 국가기관들과 대사관, 극장가들이 몰려 있다. 강동쪽에는 여러개의 주거지역들이 형성되어 있고, 보리스필 공항이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다. 키예프에는 3개의 지하철 라인이 존재하며 버스, 트램, 트롤리버스등이 넓게 이용되고 있다.

 도시중심에 위치한 흐레스차틱은 교통수단이 여러모로 유용하며 키예프내에서 도보로 이동하는 관광객들을 위해 5월에는 스프링페스티발이 펼쳐진다.

 

 

 

 체르니히브(Chernihiv

 체르니히브 역사서에 따르면 7세기 후반, 원초연대기에 따르면 907년에 처음 역사에 등장한다. 짧게는 키예프 루시 블라지미르 대공의 세례 이후 주교의 거주를 위해 992년 건설되었다고 한다. 이 도시는 11세기 초반에 정치 문화적 중심지가 되었다.

 야로슬라프 현공과 그의 형제가 체르니히브 요새 중심부에 구세주 변모 대성당(Cathedral of Our Saviour's Transfiguration)을 지었다. 고대 대성당은 도시의 중심이되어 그 주위에 요새가 지어졌다. 1357년 체르니히브는 리투아니아 공국에, 1503년엔 모스크바공국, 1618년엔 폴란드에 합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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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흐단 흐멜니쯔키의 독립 운동으로 체르니히브는 모스크바 공국에 속하게 됐다.

 체르니히브는 국경지대였기 때문에 요새가 강했고 그리하여 체르니히브 연대 본부의 거주지가 되었다. 요새엔 종루가 있는 체르니히브 신학교가 세워졌다. 신학교 옆의 성 보리스와 흘립 대성당(Cathedral of Sts Boris and Hlib)은 고대 루시의 왕자인 보리스와 흡립을 존경하는 뜻에서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1799년 요새는 파괴되었지만 요새를 따라 나있는 대로를 통해 옛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또한 그곳에선 16~18세기의 12개의 대포가 일렬로 늘어서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체르니히브엔 고대 수녀원 두개가 소재하고 있다. 성 엘레츠키 영면 수녀원(The Holy Dormition Yeletsky Nunnery) 은 스뱌또슬라프 공후에 의해 설치됐다. 수녀원의 서정적인 앙상블의 백미는 장엄한 성모 영면교회(11~12세기)라 할 수 있다.

 엘레츠키 동굴(Yeletsky Caves)은 끼예프와 동시대적인 것이다. 1069년 체르니히브에 온 성자 안토니가 파내어 만들었다. 그가 처음에 그곳에서 살았지만 후엔 볼로지노산 근처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3년을 보내며 굴을 팠고 후에 수도원 지하에서 안토니의 동굴이 발견됐다고 한다. 성 엘리자 교회는 12세기 이후에 지어졌고 장엄한 성 트리니 대성당은 1679~1695년에 지어졌다.

 

 

 

페레야 슬라브 흐멜니츠키(Pereiaslav-Khmelnytskyi

 트루비즈강 기슭에 위치한 마을은 907년 처음 역사에 등장한다. 키예프공국 블라지미르 대공이 요새를 세웠고 이곳은 공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장엄한 유적은 성 미카엘 대성당(1090)이다. 현재의 모습은 1646~1666년에 지어진 것이고 종루와 함께, 주교가 거주하던 곳이었다.

 16세기 페레야슬라프는 코작크군의 거점이 되었고, 1648년~1654년 폴란드엔 대항하여 독립운동이 발생한다.

 페레야슬라프 라다(의회)가 1654년 1월 요새 근처 광장에서 열린다. 코자크들은 러시아의 일부가 되겠다는 투표를 하고 헤트만과 코작 귀족들은 러시아 짜르에게 맹세를 했다.

 1894년 석조로 바뀌게 되는 목조 건축물 영면 교회(Dormition Church)에서 그러한 사건이 일어났다.

 

 승천 수도원(17~18세기)의 앙상블은 우크라이나 바로크 양식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이곳에는 드니프르강에서의 소비에트군과 전설적 조우 그리고 부크린 교두보에서의 전쟁과 같은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투시화 박물관 '드니프로 전쟁'이 헌정 기념으로 세워졌다.

 페레야슬라프에는 26개의 박물관이 있지만 그중 백미는 고대 정착지(2세기 에기~5세기 고대 루시)가 보존되어 있는 타타르 언덕에 있는 드니프로 민속 건축과 생활양식 박물관이다.

 박물관에는 185점의 물품들(그중 104점이 17~19세기 것), 일터, 농부와 지주의 가옥, 5개의 교회, 종루, 16개의 물레방아와 풍차, 선술집, 18세기 코자크 캠프가 1977년 발견되었다.

 수송, 자수 수건, 도자기, 성화, 양봉, 의식과 풍습 심지어 우주비행 박물관 같은 몇몇 집 박물관이 있다.

 숄롬알레이햄 박물관(Sholom Aleichem Museum) 또한 주목할 만한 곳이다. 모든 독특한 건축물들은 공원에 둘러싸여 있다.

 

 

 

로맨틱한 녹색공간 우크라이나 사랑의 터널(Tunnel of Love)

 우크라이나 리우네주 클레반(Klevan) 마을 인근에 있는 철로이자 천연기념물.

 

 연인과 함께 손을 잡고 거닐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로맨틱한 공간은 인도의 타지마할도 낭만의 도시 파리도 아닌 우크라이나의 작은 마을 클레벤에 위치한 사랑의 터널이다.

 

 터널 주변을 아치형태로 감싼 울창한 숲속에서 퍼지는 프레쉬한 향기가 모든 연인들을 감미롭게 유혹한다.

 

 열차가 운행하며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적으로 형성된 터널의 길이는 3km이며 연인들이 터널을 걸으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 진다는 소문이 돌며 데이트 명소로 유명해 졌다고 한다.

 

 아름다운 녹색터널은 하루에 3회 정도 목재를 수송하는 열차가 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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