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India, )

뭄바이(Mumbai) ∥ 델리(Delhi) ∥ 바라나시(Varanasi) ∥ 아그라(Agra)자이푸르(Jaipur) 

카주라호(Khajuraho)-오르차 부다가야(Buddha Gaya)암리차르(Amritsar)

고아(Goa)마두라이(Madurai) ∥ 우다이푸르(Udaipur)

까르니마따 사원(쥐 사원) 코나라크의 태양신 사원(Sun Temple) 아잔타 석굴(Ajanta Caves).엘로나

아디나타 사원(Adinatha Jain Temple) 차이트야(Chaitya) 석굴

포토 갤러리

 

 

인도비자

 2018년 10월 01일부터 도착비자.-기내에서 신청서를 작성하면 됩니다.

 도착비자는 일본과 한국뿐입니다.

 

 

인도의 국기와 국가

 

인도의 UNESCO 세계유산

 

인도는 신의 나라 -

인도의 음식

 

 

 

 

 

엄격한 신분의 벽 - 카스트 제도

인도인의 성격

인도 거지의 세계

인도 사두의 세계

인도의 장례 제도

☞ 관광지도

 

인도 역사

후마윤악바르자한기르샤 자한아우랑제브 타고르

간디 타지마할 사원의 전설이야기

 

연도별 인도의 역사

 

인도의 종교 

 

인도의 축제

 

인도 국민 맥주 킹피셔(Kingfisher)

 

다르질링 홍차(Darjeeling Tea)    ∥   ◈ 인도의 홍차 짜이(Chai)

 

인도의 전통 스포츠 카바디(Kabaddi)   ∥   인도의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크리켓(Cricket)

 

인도 전통 의상 - 사리(Saree)   ∥   터번(Turban)  ∥  비운의 왕비 파드미니의 슬픈 사연

 

인도 여성의 이마에 찍는 작은 점, 빈디(Bindi)

 

인도 요가(Yoga)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단식, 결혼, 갠지스강, 소고기, 영국과 인도

 

인도 세계 최대 높이의 182m '파텔' 동상

 

인도에 대해 알아야 할 8가지 사실들- 간단하게  ∥  ◈ 인도하면 생각나는 10가지

 

인도를 알고 가자   ∥   ◈ 인도 사회와 문화   ∥   ◈ 인도의 사티(Sati) 풍습

 

 

 인도(India, )는 남아시아에 있는 커다란 삼각형 형태의 나라로, 북으로는 길게 뻗은 히말라야를 방벽으로 삼고 남으로는 인도양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다. 북서쪽으로는 파키스탄과, 북쪽으로는 중국, 네팔, 부탄과, 동쪽으로는 방글라데시 및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눈물방울 모양의 섬으로 인도 최남단에 매달려 있다. 인도는 3,287,263㎢(세계 7위, 한반도의 15배, 남한의 33배)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지만 파키스탄 및 중국과의 국경 분쟁으로 인해 정확한 면적이 다소 변동되는 경우도 있다. 인도는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큰 나라이다.

 

 인도 북부에는 히말라야의 눈으로 덮인 봉우리와 깊은 계곡이 있고 광대한 갠지즈강 평원이 펼쳐지는데, 이는 남부 반도와 히말라야 지역을 갈라놓고 있으며 아라비아 해에서 벵갈(Bengal) 만까지 뻗어 있다. 평원의 남부에는 땅이 융기하여 삼각형의 데칸(Deccan) 고원을 이루고 있는데, 데칸고원은 해발 300m에서 900m에 이른다. 고원은 동쪽과 서쪽의 산맥, 인도의 동부 및 서부 해안과 평행한 상태로 달리는 산들로 경계지어져 있고 비옥한 해안 지역과 내륙 사이를 갈라놓고 있다.

 

 인도의 정치 형태는 양원제를 운영하는 공화국이다. 국가의 수반은 대통령이고, 행정부의 수반은 수상이다. 인도 지역에는 수 천년 전부터 사람이 살아왔다. 인도에서의 농업은 BC 7000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인더스 강 유역의 도시 문명은 BC 2600년경에 이루어졌다.

 

 불교와 자이나교는 BC 6세기에 발생하였다. 그것은 베다교와 이를 계승한 힌두교에 의해 만들어진 카스트 기반 사회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이슬람교도의 침략은 대략 AD 1000년경에 시작되었다. 이들은 1206년의 장기간 유지되었던 델리 술탄국을 설립하였고 1526년 무굴제국을 세웠다. 1498년에 인도를 향한 바스코 다 가마의 항해는 수 세기에 걸쳐 계속된 포르투갈인, 네덜란드인, 영국인, 프랑스인들 간의 무역 경쟁을 가져왔다. 18~19세기에 걸친 영국의 지배는 영국 동인도 회사의 통치로 이어졌고, 1858년 대영제국에 의한 직접 통치가 시작되었다.

 

 마하트마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Gandhi, 1869~1948)가 1947년에 영국의 지배를 종식시키는 데 기여한 이후, 자와할랄 네루(Pandit Jawaharlal Nehru, 1889~1964)는 인도 최초의 수상이 되었다. 그리고 네루, 네루의 딸 인디라 간디, 그의 손자인 라지브 간디가 몇 해를 제외하고는 1991년까지 계속 국가의 운명을 이끌었다. 인도 대륙은 2개의 나라로 분열되었는데, 힌두교가 대다수인 인도와 이슬람교도가 대다수인 파키스탄이 되었다. 후에 파키스탄과의 분쟁은 1971년에 방글라데시의 건국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시크교도는 펀자브에 독립 국가를 세우고자 했다. 인종과 종교적 갈등은 인도 다른 지역에서도 발생했다. 서북쪽의 카시미르 지역은 끊임없는 긴장을 제공했다.

 

 

인도(India, ) 개요

o 국 명 : 인도공화국 (Republic of India)

o 수 도 : 뉴델리 (인구 약 30만 명)

- 주요도시 : 뭄바이(봄베이), 콜카타(캘커타), 첸나이(마드라스)

o 면 적 : 3,287,263㎢ (세계 7위, 한반도의 15배, 남한의 33배)

o 인 구 : 약 13억 9,340만 명 (2022년. 세계 2위)

o GDP : 약 3조 497억$(2022년. 세계 6위)

o 언 어 : 헌법상 힌디어(40%)를 포함한 14개 언어가 공용어로 인정됨. 제1공용어는 힌디어, 제2공용어는 영어임

o 인 종 : 인도 아리아족(72%), 드라비다아족(25%), 몽골족 등 등

o 기 후 : 인도의 최북단이 제주도와 위도가 같은 열대 몬순t성 기후로서 혹서기(3∼6월), 우기(7∼9월)

             및 건기(10∼2월)로 대별

o 종 교 : 힌두교(81.5%), 회교(11.2%), 기독교(2.7%), 시크교(2.4%), 불교(0.7%) 등

o 정 치 : 의원내각제

o 국 화 : 연꽃

o 화폐단위 : 루피 (INR)

o 국경일 : 1. 26 (Republic Day, 헌법 발효일)

o 시간대 : 협정 세계시에 5시간 30분이 더해짐.(우리나라 기준 시차 : -3:30분)

o 전 기 : 230-240V, 50 Hz

o 도량형 : 미터법(도량형 환산표)

 

 

뉴델리의 기후(℃)

도시명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뉴델리

최고평균

20.7

24.1

30.0

37.0

40.4

40.1

35.5

33.8

34.3

33.3

28.4

22.7

최저평균

6.7

9.4

14.3

20.7

25.3

27.6

26.6

25.7

24.0

18.9

12.7

7.9

평   균

13.7

16.8

22.2

28.9

32.9

33.9

31.1

29.8

29.2

26.1

20.6

15.3

강우일수

1

2

2

3

7

13

18

18

13

6

1

0

강수량mm

18.5

17.3

11.4

27.6

33.4

57.8

210.4

232.7

127.4

15.5

5.7

13.6

 

 

뭄바이의 기후(℃)

도시명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뭄바이

최고평균

30.6

31.3

32.7

33.1

33.3

31.9

29.8

29.3

30.1

32.9

33.4

32.0

최저평균

16.4

17.3

20.6

23.7

26.1

25.8

24.8

24.5

24.0

23.1

20.5

18.2

평   균

23.5

24.3

26.7

28.4

29.7

28.9

27.3

26.9

27.1

28.0

27.0

25.1

강우일수

0.1

0.1

0.0

0.1

1.0

14.9

24.0

22.0

13.7

3.2

1.1

0.4

강수량mm

0.6

1.5

0.1

0.6

13.2

574.1

868.3

553.0

306.4

62.9

14.9

5.6

 

 

인도의 역사

 BC 3000년 경, 세계 고대 문명중의 하나가 인도에서 발전했다. 북서 지역에서 나온 출토품은 모헨조다로, 하라파, 로달과 같은 잘 계획된 도시를 보여주고, 조선소의 흔적이 메소포타미아와 해상무역을 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BC 2000~1500년부터 인도 아리아 유목민들이 북 인도지역에 널리 퍼졌다. 그들은 말(馬) 이외에 불을 숭배하는 법식을 가져왔다. 유목민에서 정착 농민으로 바뀌면서 아리아인들은 마을을 형성했다. 힌두교는 발생 초기 단계였고 현대 많은 인도 언어들의 기원인 산스크리트어와 더불어, 드라비디안, 시노-티베티안, 문다 언어가 발달했다. 베다, 우프니샤드와 라마야나, 마하바르타와 같은 서사시가 고대의 주요 작품들이다.

 

 BC 6세기의 사회적 지적 번성은 마하비라, 고뜨마 부다와 같은 사상가들이 자이나교와 불교와 같은 또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게 이끌었다.

 

 그리스 대사 메가스테니스가 BC 3세기에 인도를 방문했을 때, 북 인도는 찬드라굽타 모리야의 통치권아래 하나의 큰 제국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그의 손자인 아쇼카대왕(BC 268~BC 231)은 전장에서의 대학살로 깊이 영향을 받고 인도와 해외에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불교철학을 전파하기로 했다.

 

 굽타시대(Gupta Dynasty, 380~606)의 황금기라 불리우는 AD 320~480년에, 인도의 예술, 문화 문학, 과학이 발전한다. 의학과 수학에서부터 천문학, 심지어 성(유명한 카마수트라(Kamasutra, 성애(性愛)에 관한 문헌))에 이르기 까지 주제별 학술 논문이 쓰여졌다.

 

 13세기에 쿠틉-우드-딘 애벡이 인도에서 이슬람교리의 기초를 마련했다. 툴랍스와 로디스가 애벡을 계승했다. 16세기에는, 바부르(Babur, 1483~1530)가 무굴제국을 세우고 그의 손자 악바르(Akbar, 1542~1602)에 이르기 까지 번성했다. 또 다른 통치자인 샤 자한(Shah Jahan, 1592~1666)은 타지마할의 건축으로 유명하다.

 

17세기에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유럽인들이 교역소를 세우며 인도로 진출했다. 정치적 야망이 결합된 상업적 관심은 곧 유럽인들 사이에서 권력다툼으로 이어졌다. 1757년 플라시 전투(Battle of Plassey)는 영국인들이 다른 유럽인들에 우위권을 갖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영국의 식민통치가 인도인의 민족의식을 불러일으켜 1857년 첫번째 독립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심하게 억압을 받았지만, 이는 1885년에 설립된 인도국민회의에 주도된 투쟁의 시작으로 기록된다. 마지막으로, 1947년 8월 15일, 인도는 독립을 얻게 되고, 1950년 1월 26일, 인도는 공화국이 되었다.

 

 

인도 국가의 상징

o 국기

정식 명칭은 간디 플래그(Gandhi Flag). 상단의 주황색은 용기와 희생, 흰색은 순수함과 진실, 녹색은 신념과 풍요를 상징한다. 가운데 있는 물레바퀴 형상은 독립을 의미한다.

 

o 국가의 상징

사르나트에서 발굴된 아쇼카 석주의 사자상. 국장에 새겨진 문구 '사야메바 자야테(Satyameva jayate)'는 '진실만이 승리한다.'라는 뜻이다.

 

o 국가의 꽃

연꽃

 

o 국가의 나무

반얀트리

 

o 국가의 과일

망고

 

o 국가의 동물

벵갈 호랑이

 

o 국가의 새

공작새

 

 

인도의 축제

o 2~3월 힌두교 - 쉬브라뜨리(Shivratri)

시바와 파르바티의 결혼을 축하하는 축제

 

o 3월 힌두교 - 홀리(Holi)

힌두교에서 가장 중요한 축제 중 하나로 힌두력 새해를 축하하는 날

 

o 3~4월 기독교 - 부활절(Good Friday & Easter Sunday)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축제

 

o 3~4월 힌두교 - 람나바미(Ramnavami)

힌두교의 신이자 영웅인 라마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

 

o 3~4월 자이나교 - 마하비르 자얀띠(Mahavir Jayanti)

자이나교의 창시자 바하비라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

 

o 4월 13일 시크교 - 바이사키(Baisakhi)

시크교의 신년 축제. 전국적으로 행사가 진행되나 펀잡 지역이 가장 화려하다.

 

o 5월 불교 - 붓다 자얀띠(Buddha Jayanti)

석가모니의 탄생, 득도, 열반을 기념하는 축제. 불교 성지인 비하르 주의 축제가 유명하다.

 

o 8월 이슬람교 - 이드 울 피트르(Id-ul-Fitr)

성스러운 달 라마단의 금식이 끝난 뒤 이를 기념하는 축제

 

o 8~9월 힌두교 - 잔마슈타미(Janmashtami)

비쉬누의 화신인 크리슈나 신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

 

o 9~10월 힌두교 - 두세라(Dussehra)

라마신의 라바나 격퇴를 기념하는 축제. 선이 악을 물리친다는 의미로 축제 마지막에 악마를 상징하는 인형을 불태운다.

 

o 10월 이슬람교 - 이둘주하(Id-ul-Zuha)

'Bakrid'로도 알려져 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즈마엘의 희생을 기리는 축제

 

o 10~11월 힌두교 - 디왈리(Diwali)

빛의 축제. 인도 최대의 축제 중 하나로 집집마다 등불을 밝히고 가족, 친구들과 선물을 교환하며 시간을 보낸다.

 

o 11월 시크교 - 구루 푸랍(Guru Purab)

시크교의 창시자인 구루나낙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

 

 

인도의 국경일 · 공휴일

o 1월 26일

공화국 창건일(Republic Day)

 

o 2월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생일(밀랏 울나비, Milad-ul-Nabi)

 

o 8월 15일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

 

o 10월 2일

마하트마 간디의 생일(Gandhi Jayanthi)

 

o 12월 25일

성탄절(Christmas)

 

* 공휴일은 각 주마다 종교에 따라 매년 날짜가 달라진다.

 

 

인도 사회 문화

1. 복합사회의 성격

 인도는 지역별로 풍토조건과 인종이 판이하고, 힌두교, 회교 등 다양하고 이질적인 종교, 심한 빈부격차와 높은 문맹율, 종교적 사회적 신분제도 등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이질성과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복합사회임.

 

2. 카스트 제도

 수천 년간 인도인의 생활을 규율해 온 카스트 제도는 법적으로 폐지되었고 근대화 및 교육의 영향으로 점차 붕괴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인도인의 생활저변에 깔려 있는 독특한 신분제도임. 그 근원은 역사적으로는 아리안 족이 인도를 침입 정복한 후 피지배 원주민과의 차등을 강조한데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되는 바, 피부색, 직업에 따라 승려계급인 브라만, 전사.통치 계급인 크샤트리아, 상인계급인 바이샤, 노예계급인 수드라로 크게 나뉨. 또한 각각의 카스트 안에는 다시 수많은 sub-caste가 있으며, 카스트에 속하지 않는 최하층계급으로 불가촉 천민(Untouchable)이 있음.

 최초에는 엄격하지 않았으나 역사의 흐름과 함께 다른 카스트와의 결혼 불허 등 많은 금기를 지닌 사회규범으로 굳어져 인도인의 생활은 자기가 속한 카스트에 의해 규율되었는데 예컨대 브라만은 반드시 해가 뜨거나 질 때에 기도를 해야 하고 경을 외어야 했음. 이러한 계급질서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인도사회를 안정시키고 결속시키는데 도움을 준 면도 없지 않으나, 사회를 정체시키고 활력을 잃게 하는 등 많은 폐단을 낳았음.

 이에 인도의 사회개혁가들, 특히 마하트마 간디는 불가촉천민 제도의 철폐를 평생의 과업으로 삼았으며 이들을 '신의 자녀'라는 뜻의 '하리잔(Harijan)'으로 부르면서 힌두사원에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천민보호에 앞장섰음. 오늘날 인도에는 1억이 넘는 하리잔이 있는데 정부에서는 입학, 취업시 일정비율을 이들에게 배정해 주는 등 혜택을 주고 있어 하리잔 출신의 장관도 배출되고 있으나, 농촌에서는 아직도 카스트 제도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 있음.

 

3. 힌두교의 전통과 관습

 수천년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힌두문화에 바탕을 둔 사회적 관습과 전통은 수세기 동안의 모슬렘, 영국 등 외세의 침입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외래문화를 수용하면서 이를 계승해 왔으며 이러한 오랜 전통사회의 생활양식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

 

4. 찬란한 문화전통

 인류 4대 문명의 하나인 인더스 문명을 탄생시킨 인도의 문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문화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오늘날까지 융성해 왔음. 힌두문명의 바탕위에 외래문화를 수용하여 독특하고 개성적인 문화를 창달해 온 인도는 자기문화에 대한 깊은 애착과 자부심을 가지고 미술, 조각, 문학, 음악 등 문화전반에 걸쳐 인류사에 찬란한 업적을 남겼음.

 

o 베다문화 (BC 1500~BC 600)

 아리안족의 침입 후 형성된 베다문화는 인도의 종교, 사회, 관습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힌두교를 탄생시켰으며 성전의 집대성과 대서사시 등 문학을 발전시켰음.  

 

o 불교문화 (BC 600~AD 1100)

 불교문화의 전성기는 아소카대왕 시대로서 산치, 녹야원의 석탑, 아잔타와 엘로라 동굴의 조각미술 및 건축예술에서 절정을 이루었음. 아울러 불교는 이 시기에 중국, 한국 등 북방으로 전파 되었음.

 

 

 

o 모슬렘문화 (AD 1100~1600)

 모슬렘 문화는 특히 건축에서 페르시아 및 힌두의 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룬 독특한 양식을 만들어냈으며, 종교적 관용으로 이슬람교, 힌두교를 통해 우르두어를 탄생시키는 등 언어, 문학,음악, 미술분야에서 많은 공헌을 했음.

 

o 서구문화의 영향 (AD 1700~1947)

 250년간 영국의 지배하에서 인도예술, 특히 전통회화 분야는 서구예술의 영향을 받아 많은 변화를 보임. 또한 영어의 도입과 함께 인도인의 생활양식에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났음. 그러나 인도인의 생활에 절대적인 요소인 종교면에서 힌두문화는 그대로 계승 되었음

 

 

인도 상식

인도 사람들은 손으로 밥을 먹는다.

 손으로 밥을 먹는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탈리(인도인의 주식: 밥과 갖가지 양념 소스)는 숟가락으로 제대로 섞어 맛을 낼 수가 없다. 인도 밥은 불면 날아갈 정도로 끈기가 없다. 그러니 숟가락으로 제대로 섞을 수가 없다.

 또다른 이유는 위생상의 이유에서다. 인도인들은 매우 지저분하게 보이고, 위생관념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위생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인도 사람들은 남이 한번 썼던 것은 아주 더럽게 생각하고 사용을 꺼려한다. 아무리 깨끗이 씻는다 하여도 남의 입에 들어 갔다 나온 것은 자기 손보다 깨끗하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보통의 인도 살림집엔 화장실이 없다.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전혀 부끄럼 없이(오히려 민망해 하는 여행객이 이상한 것임)누구나  아무곳에서 볼일을 보는 것을 볼 수 있다. 길을 가다가도 앉으면 그곳이 바로 화장실인 셈이다.

아침 일찍 마을 풍경을 보기 위해 숙소를 나서면  길거리 마다 동네 꼬마들이 줄지어 앉아 볼일을 보는 일을 쉽게 볼 수 있다.

 인도의 화장실 문화도 결국은 날씨와 위생상의 문제에서 비롯했다고 함. 더운 날씨에 습도까지 높아 온갖 병균들이 생기기 쉽다 보니 집 안에 화장실이 있다면 온갖 병균들의 발생처가 되는 것은 뻔한 일이다.

또 하나 더 인도인들이 화장실 문화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볼일 본 후에 물로 씻는 것이다. 이것도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전염병과 질병들을 경험했던 인도 사람들이 나름대로 개발해 낸 위생적인 처리방식이라 할 수 있다.

 

 

축제의 나라 인도

 인도에는 수많은 축제들이 있다. 대개 그들의 신의 이름을 딴 것들이 많은데, 농경문화권인 까닭에 농사와 관련된 축제들이 많고 시기도 씨 뿌리는 철, 열매가 영그는 철, 거두는 철에 몰려 있다. 이러한 힌두 축제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지극히 종교적인 것들이지만 내면 깊숙히 따지고 보면 놀이문화다.

 어떤 권위있는 사람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만약에 인도에 여러 축제가 없었다면 계급제도라는 구조적 모순이 가져다 주는 정신적 고통과, 배고픔이라는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 절대 다수의 가난하고 낮은 카스트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폭동과 반란을 일으켰을 것이다."

 

 

인도엔 거지가 많다.

 인도 하면 거지와 쓰레기다. 큰 도시에 도로변에 줄지어져 있는 거지들의 천막은 여행객들의 가슴을 한번쯤 아프게 하고 마는 풍경들이다. 대개의 인도인들은 거지에게 10파이샤나 20파이샤를 준다고 한다. 그런데 외국인들은 1루피나 최소한 50파이샤를 적선 하니까 외국인을 보면 기를 쓰고 달려든다. 적선할 때, 조심해서 해야한다. 잘못하다가는 수많은 거지 인파에 쌓여 버리는 수가 있다. 인도 거지는 적선한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적선에 대한 개념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너에게 선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으니 너가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라는 사고를 가지고 있다.

 

 

인도엔 소가 많다.

- 소에 대한 인도 사회의 태도는 종교적이라기 보다 사회적이다.

 힌두인들이 소고기를 먹지 않고, 소를 귀하게 생각하는 것은 종교상의 이유에서지만 뿌리를 더듬어 보면 사회적인 이유에서이다. 무거운 짐을 나르기도 하고 논밭을 갈기도 한다. 또 젖을 제공해 주고 소똥은 좋은 연료가 된다. 그러니 드넓은 농토와 많은 인구를 가진 인도에서 소의 멸망은 곧 사회의 멸망과 다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를 보호하기 위한 구실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가장 적합한 방편이 종교적 이유를 끌어 들이는 것이었다. 사회적인 이유에서 소를 보호해야 되는 이유를 아무리 논리를 갖추어 설명한다고 해도 절대적 배고픔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하지만 종교는 다르다. 더구나 인도 사람들의 종교적 열정은 어느 민족보다 강하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만약에 인도 사람들이 소고기를 먹기 시작했다면 몇 년 동안은(소가 남아 있는 동안) 배부르게 잘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인도는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 길에 다니는 소들은 대개가 쓸모없는 소들이다.

- 소값도 비싸다.

- 소고기를 먹는 힌두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복사 가게도 많다.

 인도를 복사기도 없는 나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아주 시골이 아닌 다음에는 복사도 쉽게 할 수 있다. 복사값은 시골보다 대도시로 나갈수록 싸고 우리나라 처럼 학교 근처가 더 싸다.

 

인도 사람들은 쓰레기를 마구 버린다.

 인도인들이 쓰레기를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버리는 습관은 아주 오래된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짐승의 먹이 준다는 뜻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나 지금의 쓰레기는 짐승이 먹을 수 없는 화학제품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고쳐질 수 없는 습관이고 보니 홍보를 통해 쓰레기 안 버리기 운동을 국가적으로 노력하나 별 성과가 없다고 한다.

 또 하나, 쓰레기 말고 가래침, '빤'(일종의 씹는 담배)을 씹고 난 뒤 그 입에 고이는 붉은 빛 침등을 아무데나 뱉기 때문에 온 길바닥이 벌건 흔적으로 가득하다.

 

일회용 문화의 시작은 인도였다?

 인도의 일회용 용기는 재미있다. 초벌 구이한 토기 잔, 생 바나나잎으로 만든 쟁반,  마른 나무 잎을 엮어 만든 다양한 크기의 접시들, 나무 가지 칫솔 등등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산업 쓰레기와는 다른 자연적인 것들로 만들어졌다.

 

호기심이 많은 인도 사람들

 인도인들은 호기심이 굉장히 많다. 개인적인 질문도 거리낌 없이 한다. 예컨데, 이름은 무엇이냐?  나이는 얼마냐?  결혼은 했느냐?  직업은 무엇이냐? 등등 귀찮을 정도로 많이, 반복해서 듣게 될 것이다.

 

그래도 인도인들은 순진하고 친절하다.

 길을 물어봐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삥둘러 싸 친절히 가르쳐주고 행여 영어를 못해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할 때는 손수 데려다 주는 사람들도 많다. 복잡한 역에서 타야할 기차를 제대로 못 찾아 헤매고 있으면 친절히 예약된 좌석까지 안내해 주는 사람도 있다.

 

인도 사람들은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 영화는 보통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인도 영화를 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 "말은 하나도 못 알아들어도 내용은 완전히 이해했다." 그만큼 단순한 구성의 영화다. 주제도 거의 권선징악이다.

 

- 인도 영화의 재미는 춤에 있다.

 인도 영화를 보다 보면 느닷없이 음악과 함께 요란한 춤이 나온다. 인도 영화의 매력은 바로 이 뮤지컬에 있다. 너무 슬픈 장면이라든지 너무 기쁜 장면, 혹은 너무 중요한 장면을 단순한 대사로 처리해서 그 맛을 오래 느끼게 한다. 뮤지컬이 재미있고, 주인공이 시원하게 춤을 잘 추면 그 영화는 흥행하고 영화 주제 음악 테잎도 불티나게 팔린다.(우리가 인도에서 듣게 되는 노래는 모두 영화 음악이다.)

 

- 극장안의 분위기는 더 재미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영화속의 인물들과 관객이 혼연일체가 된 것을 볼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악당이 나쁜 짓을 하면 이를 갈면서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도 있고, 착한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면 박수를 치면서 환호성을 지른다. 간혹 매우 점잖은 사람이 이런 분위기를 불평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인도 사람들은 느긋하기도 하고 때로는 성격이 급하기도 하다.

 인도 사람은 신기하리 만큼 태평스럽다. 길이 막혀 매연이 심한 도로에 버스가 1시간 정도 서 있어도, 이유없이 주차장에서 1시간 이상 주차를 해도 이유를 묻지도 불평을 하지도 않는다. 식당에 음식이 늦어도, 기차가 1시간 2시간 연착을 해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서너 시간 혹은 그 이상 연착된 기차를 오랫동안 전혀 불평 없이 기다리고 서는 기차가 플랫홈에 들어오면, 느긋했던 성격은 갑자기 사라지고 서로 기차에 먼저 올라 탈려고 덤비기 때문에 아수라장이 된다고 한다. 덩달아 여행객들은 멋모르고 큰 배낭을 지고 안고 뛴다고 하니 한번 상상을 해 보라.

 

물건을 살 때 혹은 택시나 릭사를 탈 때 반드시 값을 흥정하라.

 아무런 원칙도 없이 자기 멋대로 값을 부르는 인도 장사꾼들이 많다. 특히 순진해 보이는 외국 여행객들에게 심하다. 최소한 바가지를 덜 쓰는 방법은 필요한 것의 값을 미리미리 알아 두어야 한다. 여차하면 안 사고 갈 것같은 냄새를 풍겨야 한다. 인도에 대해 잘 모르는 표시를 해서는 안 된다.

 

도움이 필요하면 잘 생기고 부티나는 사람에게

 가난한 나라는 대부분이 그렇지만 인도도 겉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나 교육 정도를 바로 알 수 있다. 이것은 정확한데, 옷도 깨끗하게 차려 입고 생긴 것도 깔끔한 사람치고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없으며 여행자에게 무례하게 하는 사람도 없다.

 

 

불교의 4대 성지와 8대 성지

<불교 4대 성지>

1.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

2.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

3. 최초로 설법한 사르나트(녹야원)

4. 열반한 쿠시나가라

 

 4대 성지로 부처님의 일생과 직접 관계가 있는 곳들이며,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서 아난존자에게 언급한 말에 근거한다. 여기에 8대 성지를 말할 때는 부처의 활동이 있었던 곳과 기적이 일어났던 네곳은 추가하여 손꼽는다.

 

<불교 8대 성지>

5. 최초의 정사인 죽림정사가 있는 라즈기르

6. 진신사리탑과 아쇼카석주가 있는 바이샬리

7. 금강경의 무대 기원정사가 있는 쉬라바스티

8. 부처님이 천상에서 하강했다는 상카시아

 

 

인도 도착 비자

<준비서류>

➀ 여권(유효기간 6개월 이상)

➁ 왕복항공권

➂ 비자신청서

➃ 인도돈 2000루피 또는 미화 약 $30(달러 지불시 현지 기준으로 진행되어 증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진행방법>

➀ 작성된 도착비자 신청서를 제출

➁ 사증 담당관이 입국 목적 등을 확인 후 여권 스캔

➂ 도착비자폼에 Scrurinized(면밀한 조사) 도장 확인

➃ 수수료 납부

➄ 출국심사대로 이동하여 지문 등록 및 안면 촬영 후 수수료 납부 사실 확인 받음

➅ 출국심사대에서 여권에 도착비자 발급 완료

 

 

 

 관광 명소

 

뭄바이(Mumbai) ∥ 델리(Delhi) ∥ 바라나시(Varanasi) ∥ 아그라(Agra)자이푸르(Jaipur) 

카주라호(Khajuraho)-오르차 부다가야(Buddha Gaya)암리차르(Amritsar)

고아(Goa)마두라이(Madurai) ∥ 우다이푸르(Udaipur)

까르니마따 사원(쥐 사원) 코나라크의 태양신 사원(Sun Temple) 아잔타 석굴(Ajanta Caves).엘로나

아디나타 사원(Adinatha Jain Temple) 차이트야(Chaitya) 석굴

 

 

갠지스강(Ganges River) - 인도 북부를 동서로 가로질러 벵골만(灣)으로 흘러드는 강

 산스크리트나 힌디어로는 강가(Gaṅgā)라고 한다.

 길이 2,460km. 유역면적 약 173만㎢.

 힌두교도들은 '성스러운 강'으로 숭앙하고 있다.

 중부 히말라야산맥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델리 북쪽에 있는 하르드와르 부근에서 힌두스탄평야로 흘러들어간다.

 

☞ 다른 지도

 여기에서 본류는 남동으로 흘러 칸푸르 ·알라하바드· 바라나시(베나레스)를 지나는데, 알라하바드에서 야무나강(江), 파트나에서 고그라강(江) ·간다크강(江) 등의 큰 지류와 합류한다. 강은 다시 바갈푸르를 지나 남쪽으로 꺾여 벵골평야를 관류하고, 동쪽에서 흘러드는 브라마푸트라강(江)과 합류하면서 여러 갈래의 분류로 나뉘어 벵골만으로 흘러든다.

 갠지스강 유역에 펼쳐진 광대한 힌두스탄의 충적평야는 인도 북부의 곡창지대를 이루는 동시에, 인도 역사의 중요한 무대이며 힌두 문화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갠지스강의 상류와 중류 유역에 분포하는 인구만 9,000만에 이르며, 전유역의 70%가 농경지인데다가 기후관계로 거의 이기작(二期作)이 이루어지고 있다. 갠지스강에 의하여 퇴적된 충적토의 두께는 수백m에 이르므로, 유역에서는 거의 돌을 찾아볼 수가 없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는 돌 대신 점토를 구워서 만든 벽돌이 건축재로 이용되어 도처에 벽돌공장이 세워져 있다.

 

 또, 갠지스강 중류부터는 경사가 완만하여, 바라나시에서 캘커타까지는 1km에 대하여 6~8cm, 캘커타에서 하구(河口)까지는 3cm 정도의 경사를 보인다. 그러나 갠지스강은 홍수가 날 경우에는 방대한 양의 토사를 운반하므로, 강 유역에는 이따금 넓은 자연제방이 형성된다. 이 자연제방의 퇴적이 지나치게 커지면 강물이 막혀서 새로운 하도(河道)가 이루어지고, 때로는 구하도를 따라 호소(湖沼)가 형성되기도 한다.

 

 갠지스강은 남부인도의 하천과는 달리 연중 수량이 풍부하여, 관개와 수운에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특히 상부 갠지스 용수로(用水路)와 하부 갠지스 용수로는 야무나강에서 끌어가는 동부 야무나 용수로와 함께 유역의 중요한 관개수로를 이루고 있다. 또한, 하류지역에서는 범람으로 생기는 침전물에 의하여 토질이 갱신되어 높은 생산력을 유지할 수 있다.

 

 힌두교도 사이에서는 이 강물에 목욕재계하면 모든 죄를 면할 수 있으며, 죽은 뒤에 이 강물에 뼛가루를 흘려보내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갠지스강 유역에는 연간 100만 이상의 순례자가 찾아드는 유명한 바라나시를 비롯하여 하르드와르(Haridwar)· 알라하바드(Allahabad)등 수많은 힌두교 성지가 있다.

 

 

 

캘커타(Calcutta)

 캘커타(Calcutta)는 서부 벵갈의 수도로 후글리(Hooghly) 강의 동쪽 제방을 따라 질서없이 뻗어 있다. 한 때는 영국령 인도의 영광스러운 수도였던 이 도시의 악명높은 더러움과 궁핍함은 분할과 그로 인한 엄청난 피난민 행렬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용기있는 도시는 자신을 "기쁨의 도시(City of Joy)"로 끌어올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약간의 기회만 주어진다면 캘커타는 스스로가 인도 전체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도시이며, 인도의 지적 중심지이고 정치, 예술의 번영하는 장임을 보여줄 것이다.

 도시의 '광장'은 마이단(Maidan)이라 하며, 캘커타 주민들은 이곳에서 휴식, 크리켓(Cricket), 축구, 정치 회합, 요가 수업, 가축 방목까지 한다. 이 지역은 그 안에 거대한 윌리엄 요새(Fort William)를 포함하고 있을 만큼 넓은데, 이 요새는 오늘날도 사용되고 있지만 여행자들은 특별한 허가증이 없으면(거의 발급되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마이단의 남쪽 끝에는 흰 대리석으로 된 거대한 빅토리아 기념비가 서 있고 그 앞에는 빅토리아 여왕의 지저분한 조상이 세워져 있어 영국령 인도의 역사적 유물들을 보여주고 있다. 

 

 켈커타의 행정 중심부는 BBD 바흐(BBD Bagh, 달하우지 광장(Dalhousie Square))이다. 이 광장에는 별스러움과 잔인함이 공존한다. 광장 한쪽 끝에 있는 필기자 건물(Writers' Building)에서는 필기자(서기의 별스러운 완곡 어법)들이 카프카이스크(Kafkaesque) 미로같은 회랑과 거대한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벽을 따라 다섯 배의 서식과 카본지 사본이 쌓여 있다. 다른 끝에는 전설적인 "캘커타의 블랙홀" 지역에 지어진 GPO가 있다. 1756년 어느 습기찬 밤 140명 이상의 영국인들이 지하 대피소로 피난했다가 그중 많은 사람이 밤사이 질식해 죽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시바(Siva)신의 아내의 시신이 잘려질 때 손가락 하나가 지금 칼리(Kali) 신전이 있는 지점에 떨어졌다고 하며, 이 지역은 구경거리가 될 만큼 더럽지만 순례의 장소로 남아 있다. 아침이면 피에 굶주린 여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여기에서 염소 한 마리가 목잘려 도살된다. 캘커타에는 다른 관광지도 많다. 구경할 가치가 있는 인도 박물관(Indian Museum)은 인도에서 가장 크며 아마도 가장 뛰어난 박물관일 것이다(하지만 기금 부족으로 더럽고 낡았다). 보타니컬 가든(Botanical Gardens)에는 200년 묵은 벵갈 보리수가 있으며 뻗은 가지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다고 주장한다(가장 넓은 것은 안드라(Andhra) 프라데쉬에 있다). 전통 외팔보 양식의 호우라(Howrah) 다리는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다리일 것이다.

 

 배낭여행자 숙소나 싼 음식점과 술집은 호우라 다리 남쪽 차우링히(Chowringhee) 지역에 많다.  차우링히 로드 근처의 서더(Sedder) 스트리트는 배낭여행족들의 중심지이다. 이 지역에는 캘커타의 예술영화나 헐리우드 최신작, 아니면 볼리우드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이 많다. 캘거타는 쇼핑객들의 천국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데, 거리정화 캠페인으로 도보에서 노점상들을 다 몰아낸 탓이다. 그렇지만 서더 스트리트 북쪽의 뉴마켓(New Market)은 옷가지에서 등나무 제품까지 가격을 흥정하기에 좋은 곳이다. 캘커타는 국제운송의 중심지이며 차우링히 근처의 항공사 사무실에서 싼 항공권을 구입할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캘커타의 인디안 에어라인(Indian Airlines)는 델리, 방가로르(Bangalore), 체나이(Chennai), 뭄바이, 러크노우 등 인도 주요 도시로 가는 비행편을 자주 운행한다. 일반적으로 말해 버스보다는 기차로 여행하는 것이 낫지만 버스를 탈 경우 길가의 버스 정류장에서 "로켓 서비스(Rocket Service)"같은 의심스러운 회사명을 잘 확인하고 타야 한다. 시외로 가는 기차를 타고 싶으면 후글리 강의 서부 제방 위에 있는 호우라 역에 면 도시로 가는 기차를 운행하고, 반대편 실다(Sealdah) 역으로 가면 다질링(Darjeeling)이나 다른 북쪽 지역으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다.

 

 

 

심라(Shimla)

 영국령 인도의 "여름 수도"였던 이 도시는 남부 히마칼 프라데쉬의 해발 2100m가 넘는 초생달형 산봉우리를 끼고 뻗어 있다. 이곳은 독립 이전 인도에서 가장 중요한 고지 주둔지였으며 영국인들의 평원의 따가운 태양을 피해 몰려드는 여름 동안 심라의 사교 생활은 전설적인 것이었다. 무도회, 브리지 파티, 퍼레이드가 가쉽, 음모, 로맨스와 함께 펼쳐졌다.

 오늘날은 장교, 행정관료, 귀족 여인들의 자리를 행락객 무리가 메우고 있지만 심라에는 영국적 과거의 메아리가 강하게 남아있다.

 유명한 주거리인 몰(The Mall)은 여전히 산의 높은 부분을 따라 뻗어 있고 위풍당당한 영국풍 저택들이 늘어서 있다. 크라이스트 처치(Christ Church), 고톤 캐슬(Gorton Castle), 요새같은 전(前) 총독 관저(Viceroyal Lodge) 등이 영국적 향취를 더해준다. 키플링(Kipling), 버튼(Burton), 머천트-아이보리(Merchant-Ivory) 등을 생각하며 몰을 돌아다닐 때면 산꼭대기에서 화려한 시장까지 가파르게 이어져 있는 좁은 거리들도 탐험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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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숭이 신 하누만(Hanuman)에게 바쳐진 자쿠(Jakhu) 사원으로의 산책도 흥미롭다. 이 사원은 산봉우리의 가장 높은 지역 근처에 자리잡고 있어 계곡과 눈덮인 봉우리로 둘러싸인 마을의 아름다운 전경을 볼 수 있다. 근처의 또다른 경치 좋은 곳으로는 70m 높이의 채드윅 폭포(Chadwick Falls), 피크닉 장소인 프로스펙트 언덕(Prospect Hill), "조국은 당신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던 키치너(Kitchener)경의 저택이었던 와일드플라워 홀(Wildflower Hall) 등이 있다.

 쿠프리(Kufri)의 스키 리조트도 동쪽으로 15km(10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최근에 적설량이 너무 적어 관광객 상대의 운영을 중단할 계획이 있다. 눈이 좀 왔을 때의 슬로프는 초보자들이 스키를 타기에 좋고 두꺼운 바지와 적당한 비닐 봉지만 있다면 누구든 즐길 수 있다. 눈은 1월에서 2월 사이에 제일 많이 오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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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라는 히말라야의 다른 도시들처럼 항공 노선이 잘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두세개의 여행사가 비행편을 운행하고 있다. 부족한 항공 노선은 많은 기차와 버스 노선으로 보충된다. 국가 소속, 개인 소속, 히마칼 프라데쉬 관광 발전 회사(Himachal Pradesh Tourist Development Company, HPTDC) 소속 등 세 종류의 버스가 심라와 델리 사이를 잇고 있고 매일 여러 편이 운행된다. 심라의 소위 장난감 기차도 북쪽의 칼카(Kalka)까지 운행하는 것은 문제없고, 칼카에서 더 크고 편안한 뉴델리 퀸 호로 갈아타고 뉴델리까지 갈 수 있다.

 

 

 

우다이푸르(Udaipur)

라자스탄 구릉 요새

 우다이푸르는 라자스탄에서 가장 낭만적인 도시이며 아름다운 피콜라(Pichola) 호수 주변에 세워져 "동양의 베니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1568년 마하라나 우다이 싱(Maharana Udai Singh)에 의해 세워진 이 도시는 흰 건물, 대리석 궁전, 호숫가의 정원, 사원, 하벨리스(havelis, 전통저택) 등이 조화롭게 뒤섞여 있다. 우다이푸르는 부러움을 살 만한 예술적 유산, 예술 중심지로서의 명성, 상대적으로 풍부한 수자원 등을 자랑하며, 이로 인해 우다이푸르는 단조롭고 건조한 지역의 다채롭고 문화적인 오아시스 역할을 하게 되었다.

 

 피콜라 호수는 도시의 중심이다. 호수 안의 섬에는 아름다운 두 궁전, 자그니와스(Jagniwas)와 자그만디르(Jagmandir)가 있는데, 이 궁전들은 라지푸트 족의 취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그니와스 궁전은 현재에는 사치스러운 호텔이 되어 있다. 거대한 도시 궁전의 탑은 호수를 굽어보고 있으며 발코니, 탑, 둥근 지붕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궁전 안에는 박물관, 정원, 더욱 사치스러운 호텔 몇 개가 더 있다.

 

 또다른 관광지로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 시가로 통하는 문과 매력적인 골목길, 17세기 중반에 세워진 인도-아리안 풍의 훌륭한 자그디쉬(Jagdish) 사원, 한때는 왕가의 영빈관이었지만 지금은 문화센터가 되어 있는 호숫가의 바고르 키 하벨리(Bagore ki Haveli) 등이 있다. 이처럼 관광지와 볼거리가 많지만, 우다이푸르에서 맛볼 수 있는 진정한 즐거움은 호숫가의 쾌적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내 묵으면서 지붕으로 올라가 강층계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을 구경하고 빨래하는 여자들이 빨래를 두드리면서 내는 리듬있는 "퉁(thwomp)!"소리를 듣고 하루가 천천히 저물어갈 때 수면에 비치는 빛이 조금씩 스러져 가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인디안 에어라인(Indian Ailines)은 매일 델리, 자이푸르, 뭄바이, 아우랑가바드를 운행한다. 주(州) 버스도 우다이푸르에서 델리, 아흐메데바드(Ahmedebad) 및 다른 지역 중심지까지 자주 운행한다. 버스의 경우 직행을 타지 않으면 목적지에 닿는데 엄청나게 오래 걸린다. 우다이푸르로의 노선은 현재 미터 계량으로만 되어 있다. 장거리 계량으로 바뀔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언제 그렇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대부분의 경우 버스를 타는 것이 훨씬 빠르다. 가까운 거리는 택시를 타고 되지만 타기 전에 협상 기술을 발휘하여 가격을 깎아야만 한다.

 

 

 

마이소르(Mysore)

 마이소르는 매력이 넘치고 느긋한 도시로 규모가 적당하고 기후가 상쾌하며 과거의 유산을 포기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면서 발전시켰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마이소르는 비단으로 유명하고 백단나무가 잘 자라는 덕에 향의 중심지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이소르에서 다른 도시보다 더 좋은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독립 이전까지 마이소르는 오늘날 카르나타카의 1/3 정도를 차지하는 군주국이었던 마이소르 왕국 마하라자의 거주지였다.

 

 마하라자의 인도-사라센 풍 궁전은 스테인드 글라스 만화경, 장식 거울, 조각된 마호가니 천장, 모두 은으로 만들어진 문, 엄청나게 화려한 색감 등으로 마이소르의 주요 볼거리라 할 수 있다. 도시 중심부에 있는 데바자라(Devajara) 과일 야채 시장은 인도에서 가장 활기있는 시장에 속한다.

 

 또다른 관광지로는 차문디(Chamundi) 언덕 근처에 있는 1000개의 층계가 있는데, 이 층계 꼭대기에는 거대한 차문데스와리(Chamundeshwari) 사원이 있다. 층계는 유명한 5m(16ft) 높이의 난디(Nandi, 시바신의 소)가 새겨진 바위벽을 끼고 있다. 10월 초 열흘동안 계속되는 두세흐라 축제는 화려하게 장식한 코끼리, 제복을 입은 하인, 기사, 브래스밴드, 꽃으로 장식된 힌두 신상 등이늘어서는 장대한 행진으로 그 절정에 달한다.

 

 마이소르로 가는 비행기는 없으며 버스와 기차만이 유일한 교통편이다. 15분마다 방가로르로 가는 버스가 지옥에서 빠져나오는 박쥐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출발하며, 반디푸르(Bandipur) 국립 공원을 포함한 주변 지역으로 가는 버스도 많다. 개인 버스를 타면 한결 안정감 있는 속도로 뭄바이, 고아, 체나이, 하이드라바드(Hyderabad)로 갈 수 있다.

 

 마이소르 역에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줄이 늘어서는 경우가 별로 없으며 하루에 방가로르로 가는 급행열차가 네 편 출발한다. 에어컨이 달리고 속도가 빠른 샤탑디(Shatabi) 급행은 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후 2시 10분에 출발한다. 샤탑디는 체나이까지 운행한다.

 

 

 

코치(Kochi, 코친(Cochin))

 항구도시인 코치는 섬들이 밀집해 있고 좁은 반도가 펼쳐진 지역에 있다. 도시의 오래된 부분은 드물게도 중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시골 마을이 열대의 말라바르(Malabar) 해안에 펼쳐진 모양이다.

 이곳에서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500년전 세워진 포르투갈식 주택이 꽉 차 있는 구불구불한 거리, 외팔보식 중국 고기잡이 그물,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 분산)까지 그 근원이 올라가는 유대인 공동체, 16세기에 세워진 유대 교회,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벽화가 있는 궁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타칼리(Kathakali) 댄스-드라마 공연 등을 볼 수 있다.

 페리가 코치의 여러 지역 사이를 왕래하며 항구에서는 가끔 돌고래도 보인다. 역사 유적 대부분은 코친 요새나 마탄체리(Mattancherry)에 있다. 싼 숙소는 본토의 에르나쿨룸(Ernakulam)에서 찾을 수 있다.

 인디안 에어라인이 방가로르, 뭄바이, 델리, 고아, 체나이로 매일 운행한다. 비용 때문에 비행기를 탈 수 없다면 코치에서 바다쪽만 빼고 어디로든 이어지는 버스가 많다. 주(州) 버스이건 개인 버스이건 잡아타고 쉽게 다른 도시로 갈 수 있지만 예약 시스템은 없다. 버스에 올라타 스크럼 안으로 밀고 들어가 운좋게 자리가 있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싫다면 기차역으로 가 해안을 따라 달려 주요 목적지까지 가는 기차를 타면 된다. 매일 출발한다.

 

 

 

다질링(Darjeeling)

 서부 벵갈 북쪽 끝에 있는 고도 2100m(6890피트)가 넘는 산 위에 위치한 다질링은 1800년대 중반 군단을 위한 R 'n' R센터로 세워진 이래 영국인들이 선호했던 산악 기지였다. 다질링은 계속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다질링에 가면 불교사원을 방문하거나 차 재배농장을 구경하거나 부산한 시장에서 쇼핑을 하거나 북쪽의 산악지역을 트레킹 할 수도 있다. 히말라야의 다른 장소처럼, 다질링도 그곳에 가는 여행 자체가 재미이며 유명한 미니 기차가 사람들의 흥미를 끈다.

 평지에서 다질링까지 올라오는데 그을음과 연기를 내며 10시간 걸리는데 지그재그형 산악 도로를 통해 올라왔다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서부 벵갈 북쪽 끝에 있는 고도 2100m(6890피트)가 넘는 산 위에 위치한 다질링은 1800년대 중반 군단을 위한 R 'n' R센터로 세워진 이래 영국인들이 선호했던 산악 기지였다. 다질링은 계속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다질링에 가면 불교사원을 방문하거나 차 재배농장을 구경하거나 부산한 시장에서 쇼핑을 하거나 북쪽의 산악지역을 트레킹 할 수도 있다. 히말라야의 다른 장소처럼, 다질링도 그곳에 가는 여행 자체가 재미이며 유명한 미니 기차가 사람들의 흥미를 끈다. 평지에서 다질링까지 올라오는데 그을음과 연기를 내며 10시간 걸리는데 지그재그형 산악 도로를 통해 올라왔다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다질링의 하이라이트는 패신저 로프웨이(Passenger Ropeway)이다. 인도에 건설된 최초의 체어 리프트로 다질링과 훨씬 아래쪽에 있는 리틀 란지트 강(Little Ranjit River) 주변의 싱글라 시장(Singla Bazaar)을 잇는다. 아주 재미있는 여행이지만 현기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는 권하기 힘들다. 불행히도 로프웨이는 항상 운행되지 않으므로 언제 운행하는지 미리 전화로 확인하라. 근처에는 동물원이 있는데 시베리아 호랑이와 희귀한 붉은 팬더가 산다. 동물들에게 이상적인 환경이라고는 볼 수 없는데, 인도인 여행객들이 무자비하게 괴롭히고 침을 뱉기 때문이다. 귀중한 눈표범은 따로 떨어진 구역에 살아서 훨씬 나은 대우를 받고 있다. 복잡한 차(茶) 생산 과정을 알고 싶다면 해피 밸리 티 에스테이트(Happy Valley Tea Estate)로 연락해 보라. 인상적인 짐카나 클럽(Gymkhana Club)에서 지역 특산물들을 맛볼 수도 있는데, 이곳은 한때 왕의 오락장이었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20세기를 향해 가고 있다.

 

 비행기를 타는 것이 다질링에 가는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지만, 다질링에서 90km(55마일) 떨어진 곳에 내려야만 한다. 공항은 바그도라(Bagdogra) 시리구리(Siliguri) 근처의 평원에 위치하고 있지만 공항에서 다질링까지 연결되는 버스가 있다. 다질링에서 출발하는 버스 선도 많다.

 

 

 

자이살메르(Jaisalmer)

 파키스탄과 인접한 라자스탄 국경에 가까운 이 사막 요새는 아라비아의 요정 이야기에서 그대로 빠져나온 것 같다. 12세기에 인도와 중앙 아시아 사이 낙타 대상을 위한 경유지로 건설된 자이살메르는 총안이 있는 도시 성벽, 장대한 요새, 아주 정교하게 조각된 석재와 나무로 된 하벨리스 등이 늘어선 황금빛 사암 도시이다. 해질녘에 멀리서 바라보면 이 도시는 신기루 같은 빛깔로 빛난다. 자이살메르의 인상적인 요새는 80m(260ft) 높이의 언덕 꼭대기에 있으며 이 도시의 4만 시민 중 1/4가 요새 벽 안에 거주한다.

 여러 세기 동안 바뀐 것은 거의 없으며, 얼마나 많은 집, 사원, 궁전이 한정된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 세계 기록을 세우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요새는 구불구불한 골목길, 엄청나게 맡은 사잇길, 마하라자의 궁전, 의식이 거행되는 안뜰, 아름답게 조각된 자이나교 사원 등으로 가득차 벌집 모양을 이루고 있다. 자이살메르의 부유한 상인들이 지은 하벨리스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패트원 키 하벨리(Patwon ki Haveli), 살림 싱 키 하벨리(Salim Singh ki Haveli), 나트말 키 하벨리(Nathmal ki Haveli) 등이다.

 

 정경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지만, 자이살메르가 위험한 지경까지 망가지고 있음은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붕괴에 대처해 지역 주민, 정부, 여행자, 고고학자 등의 집단이 모두 뜻을 모았고 "위기에 처한 자이살메르(Jaisalmer in Jeopardy)"라는 이름의 캠페인이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낙타 트레킹은 자이살메르에서 큰 사업이며 사막을 체험하는 근사한 방법이다. 돈을 지불할 때는 어떤 조건인지를 확실하게 하라. 실망할 일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트레킹은 3~4일 정도 걸리며 가장 좋은 시기는 10월에서 2월 사이이다. 라자스탄에는 상당히 믿을 만한 버스 노선과 광대한 철도 노선이 있어 자이살메르에 가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를 더 빨리 연결하기 위한 철로 공사로 철도 노선이 불통되는 수가 있으니 각 지역에서 갱신된 최신의 열차 시간표를 확인하라. 부유한 사람들의 생활을 맛보고 싶다면, 왕의 노선에 따라 자이살메르를 지나가는 '바퀴 위의 궁전(Palace on Wheels)'을 예약하라. 이것은 움직이는 호텔로 전통적인 마하라자의 마차처럼 장식되어 있고 비싸지만 호화스럽다. 자이살메르는 델리에서 795km(490마일) 떨어져 있다.

 

 

 

(Leh)

 한때 중앙아시아로 여행하는 야크(Yak) 행렬의 출발점이었던 (Leh)는 인더스 계곡 바로 북쪽에 있는 작은 계곡에 위치해 있다. 오늘날 이 마을은 부분적으로는 군사적 전략지이고 부분적으로는 관광지이다. 레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레 궁전(Leh Palace)이다. 이 궁전은 16세기에 지어졌으며 현재는 버려진 상태이며 심하게 손상을 입었는데, 이는 지난 세기 카슈미르와의 라다크(Ladakh) 전쟁의 잔해이다. 궁전으로 올라가는 주된 이유는 지붕에서 바라보는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전경 때문이다.

 인더스 강을 넘어 잔스카르(Zanskar) 산맥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라다키(Ladakhi) 왕족은 이 궁전을 인도 고고학 연구소(Archaeological Survey of India)에 팔았으며 야심찬 개조 공사가 지금 진행중이다. 보존되고 있지만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중앙 기도실을 열어줄 수도승을 찾아보라.

 

 공예품 가게와 배낭여행자 음식점에서 벗어나 구시가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레에서 당일치기로 갈 수 있는 인기 있는 곳으로 20km 떨어진 틱세 곰파(Tikse Gompa)가 있다. 인더스 강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의 경치 좋은 장소로, 티벳 스타일의 책과 뛰어난 예술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 종교 의식을 구경할 수도 있다.

 

 레에서 45km 떨어진 헤미스 곰파(Hemis Gompa)는 라다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도시이다. 이 도시는 헤미스 축제로 유명한데, 매년 6월 하순이나 7월 초에 열린다. 정교한 가면무용이 이틀간 계속되며 열광한 관중들이 이를 지켜본다. 그냥 라다크에 가는 것만으로는 만족이 안되는 사람들은(교통편 및 현지 교통편 부분을 보라) 레에 있는 많은 여행사를 통해 인더스 강을 타고 내려가는 급류 래프팅에 참가할 수 있으며 마카와 인더스 계곡으로 트레킹도 갈 수 있다.

 

 레로 여행하는 것은 타이밍의 문제다. 6월에서 9월 사이에는 비행기로 여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겨울 동안은 이야기가 다르다. 날씨가 나쁘지 않으면 델리, 장무르(Jangmur), 스리나갈(Srinagar)에서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다. 레를 출발하는 버스 노선은 두 노선 밖에 없고 그나마 정해진 운행규칙이 없다. 버스가 나타나지 않아 출발하기 전 저녁 무렵까지 표를 사지 못할 수도 있다. 비행기가 뜨지 않고 버스가 다니지 않는 경우에는 장거리 지프나 택시라는 수단이 항상 있는데 버스보다 비싸지만 확실히 가 닿기는 한다.

 

 

 

케랄라 백워터(Kerala Backwaters)

 케랄라 해변 주위에 복합적으로 모여 있는 석호, 호수, 강, 운하는 이 지역의 색다른 생활양식의 근본이 되며, 이러한 백워터를 보트로 여행하는 것은 이 지역 방문의 하이라이트이다. 보트는 중국 그물이 처져 있는 종려가 우거진 얕은 호수를 지나 좁고 그늘진 운하를 따라가면서 코코넛 섬유(coir), 코코넛 말린 것(copra), 캐슈 등을 싣는다. 주민들이 조심스럽게 경작하고 있는, 몇 m밖에 안되는 작은 땅에 정박하기도 하며 돛이 크고 뱃머리가 용모양으로 구부러진 전통 배를 구경할 기회도 있다.

 

 가장 인기있는 백워터 여행은 8시간에 걸쳐 콜람(Kollam)과 알라푸자(Alappuzha) 사이를 오가는 여행이지만 이 루트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구인이다. 지역 주민들과 섞여보고 싶거나 더 짧은 코스가 좋다면 알라푸자에서 코타얌(Kottayam)과 창가나세리(Changanassery)로 가는 지역 보트를 타면 된다.

 

 콜람은 자주 운행되는 티루바난타푸람(Thiruvananthapuram)-에르나쿨룸(Ernakulum) 버스 노선 중간에 있고 기차도 4개 노선 이상이 지난다. 남부 주요 도시에서 콜람으로 가는 것은 아주 쉽지만 델리에서는 정말 멀다. 정확히 2,756km나 떨어져 있다.

 

 

 

안다만 니코바르 군도(Andaman & Nicobar Islands)

 숲이 우거진 300여개의 열대 섬이 이어진 이 군도는 인도와 미얀마 사이 벵갈 만에 펼쳐져 있으며 거의 수마트라 꼭대기까지 이어져 있다. 이 지역은 인종적으로는 인도에 속하지 않으며 상당히 최근까지도 토착 부족들만이 살았다. 안다만 니코바르 군도의 섬 중 다수는 무인도이며, 산호초로 둘러싸여 있고 흰 백사장과 놀랄 만큼 맑은 물이 있다. 이 지역은 스노클링이나 스쿠버다이빙을 하거나 해변에서 빈들거리기에 최상의 장소이다. 현지인 여행자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만 외국인에게는 30일간의 체류허가만이 발급되어 여행기간에 제한이 있다.

 캘커타와 체나이(마드라스)에서 남 안다만의 포트 블레어(Port Blair)로 정규 비행편이 있으며 체류 허가는 도착시 공항에서 발급된다. 캘커타와 체나이에서 드물게 배가 운행되는데 안다만 니코바르 군도까지 4일 걸린다. 배로 올 생각이라면 허가증을 미리 발급받아야 한다.

 

 

 

카흐나 국립공원(Kanha National Park)

 카흐나는 인도에서 가장 크고 외진 국립 공원으로, 숲과 나무가 좀 있는 목초지가 1,945㎢ 펼쳐져 있고 강과 시내가 많다. 키플링(Kipling)의 '정글 북(Jungle Book)'의 배경이었던 만큼 이 국립공원에는 아주 다양한 야생 동물이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표범, 치탈(chital), 사슴, 가장 유명한 호랑이 등이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는 코끼리 뒤를 따라 공원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지만, 밀렵꾼들 때문에 호랑이를 볼 기회는 많이 줄었다.

 연중 언제건 야생 동물들을 볼 수 있기는 하지만 3,4월의 더운 시기에 더 많이 볼 수 있는데 동물들이 나무 그늘에서 나와 물을 찾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공원은 6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는 문을 닫는다. 자발푸르(Jabalpur)에서 하루에 두 번 직행 주(州) 버스가 있다. 자리를 얻으려면 돈을 더 내야 하는 덜컥거리는 낡은 버스이니(적어도 만들라(Mandla) 이후는 그렇다) 짐을 많이 가지고 가지 않는 것이 좋다. 가장 가까운 기차역은 버스로 두 시간 정도 떨어져 있지만, 기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타 볼 만하다.

 

 

 

부처성지순례 여행 

 불교의 시조인 부처님이 탄생하고, 깨닫고, 설법하시다 돌아가신 땅. 부처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성지는 한번쯤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걸어야 할 성스러운 곳이다.

 

부처님이 성불한 땅 - 부다가야(Buddha Gaya)

 부다가야(Buddha Gaya)는 부처님이 보리수 밑에서 참선을 하시고 성불한 땅이며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이다. 그 보리수와 금광보좌(金剛寶座)를 모신 것이 마하보디 절이다. 기원전 3세기의 아쇼카왕 당시 처음으로 세워진 사당이며, 현재 모양으로 만든 것은 대략 4세기 이후의 것이다.

 부처님이 성불하신 후 전해 내려온 보리수와 기원전 1세기경의 대좌가 큰 탑 서쪽에 간직되어 있다. 큰 탑 둘레에 있는 난간 기둥 가운데는 기원 4세기 것이 가까운 고고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보리수 큰 절 동쪽에는 네란자라 강이 흐르고 있는데, 부처님은 그 강 건너에 있는 전정각산(覺山)의 산중에서 고행을 하셨다는 전설이 있다.

 불교의 4대성지 중에서도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각국의 사찰이 들어서 있으며 많은 순례자들이 찾고 있다.

 

 

부처님 시대의 마가타국(摩伽陀國)의 수도 왕사성(王舍城)- 라즈기르(Rajgir)

 라즈기르(Rajgir)는 5대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가 부처님 계신 당시의 마그타국의 수도 라지그리하(왕사성)의 옛도읍이다. 분지의 동남쪽 비탈에는 유명한 영취산이 하늘 높이 솟아 있고, 정상에는 부처님이 기거하셨다는 암굴과 설법하셨다는 자리가 있다. 옛 도읍의 북문 부근에는 줄림정사터 카란단 못, 핏파라 굴 등 부처님의 유적이 많으며, 제1집결이 행하여진 칠엽굴과 아자아타, 샤틀왕의 신 왕사성이 있다. 구 왕사성 내에는 자이바카 과수원터, 빈비사아라 왕이 갇혔던 감옥터 등이 있다.

 

 

고대 인도의 불교 대학자리- 나알란다(Nalanda)

 나알란다(Nalanda)는 부처님의 제자 샤아리프라(사리불)의 출생지이며, 부처님도 여러번 방문하였다고 문헌에 나온다. 현재 동서 2500m, 남북 600m의 광대한 대학터가 남아있다. 5세기에 창건되어 12세기에 마호메트 교도들이 파괴할 때까지 전 아시아 불교 연구의 중심지였다. 7세기에는 1만 명의 불교 학생들이 있었다고 한다. 11개의 절터와 14개의 사원터가 있다.

 

 

부처님을 보호한 릿차비족의 도읍- 바이샬리(Vaishali)

 바이샬리(Vaishali)는 간다카 강변에 있으며 부처님 생존 당시는 상업이 번성한 대도시였다. 부처님은 자주 이 도시를 방문하셨고 머무르셨다.

 비야리성(扉倻離城)의 암라원(庵羅園)은 물론 창녀(娼女) 암바팔리(Ampapali)가 부처님께 기증한 망고 숲과 원숭이 떼가 부처님 주발에다 꿀과 과일을 공양한 것으로 유명하며, 옛 도읍터와 마우리아 시대 이전에 만든 스투파와 아쇼카왕 돌기둥(사자상(獅子像), 아쇼카 석주)과 그 옆에 원숭이들이 파낸 넓은 못(목욕지, Ramakung) 등이 남아 있다. 또 이곳은 부처님 입멸 후 제2차 결집이 있었던 장소로서도 의의가 깊다.

 

 원숭이 연못은 아쇼카 석주 남쪽 20m 떨어진 곳에 있다. 이 연못은 원숭이 떼가 부처님께서 목욕을 하시도록 판 연못이다. 부처님 당시 바이샬리는 상업이 발달하여 살기가 넉넉하여, 부처님과 스님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탁발하지 않았다고 한다.

 발무를 어느 지역에 한 줄로 놓아두면 신도들이 음식을 가지고 와서 담아 주었다고 한다. 어느 날 부처님이 자신의 발무를 제자들 발무에 섞어 놓았는데, 원숭이가 그 많은 발무들 중에서 부처님 발무를 골라내어 근처 나무에 올라 꿀을 따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고 한다. 원후봉밀(猿猴奉蜜)의 이야기는 인도의 모든 불교미술 작품에 두루 나타나 있다.

 

 

기원정사와 코살라 왕국 수도 사위성-사헷트 마헷트(기원정사와 사위성)

 기원정사(祇園精舍, Jetavānā-vihāra)는 코살라 왕국의 스탓다 장자(급고 독장자)가  기타 태자의 동산을 사서 부처님께 기증한 정사이다. 여기서 부처님은 24회의 우안거를 지내셨고 많은 설법을 하셨다. 사헷트가 그 기원정사이며 부처님이 설법하셨다는 대좌와 후대에 생긴 많은 절터가 있다.

 

 거기서 북동으로 약 500m 지점에 성벽으로 둘러 싸인 일대가 사위성(舍衛城, 슈라바스티(Sravasti)) 터이며, 마헷트라고 한다. 앙글리 마아라의 개종, 사위성의 변화 등, 유명한 일화가 많은 곳이다.

 

 

부처님이 처음으로 설법하신 -사르나트 또는 녹야원(Sarnath, 鹿野園)

 초전 법륜의 장소로 불교 교단 발생을 기념하는 중요한 성지이며, 아름다운 유적공원과 박물관이 있다. 아쇼카왕 시대부터 12세기까지 이르는 많은 스투파와 절터가 있다. 거대한 다아멕 탑은 6세기경에 증축한 스투파이다. 공원 동쪽 끝에는 벽화로 유명한 무라간다, 구티 사원이 있다.  인도의 보물인 초전법륜상, 아쇼카왕 기둥 머리를 장식한 고고 박물관에서 남쪽으로 800m 지점에 있는 차우칸디. 스투파는 옛날에 고행을 함께한 5명의 수도자가 부처님을 영접한 장소라고 한다.

 

 

3도의 보계를 하강하였다는 전승의 땅- 상카시아(Sankasya)

 상카시아(Sankasya)는 부처님은  탄생하신지 7일만에 세상을 뜨신 어머니  마야 부인에게 설법하시기 위하여 33천(도리천)으로 올라가서, 3개월 후에, 3도의 보배계단을 내려와 하강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이전에는 많은 절이 있었던 도성이다. 현재 아쇼카왕의 돌 기둥머리, 큰 스투파 터가 있다.

 

 

카피라바스투로 밝혀진 - 피프라와(Piprahwa)

 네팔 국경 부근에 있는  피프라와(Piprahwa)의 스투파에서 항아리가 발견되었고, 또 최근에 오래된 사리 항아리와 도장이 발굴됨으로 그곳이 샤키족의 도읍인 '카피라바스투'라는 증거를 얻게 되었다. 약 1.5km 남쪽에 있느 강 와리아의 유적이 왕궁터로 짐작된다.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는 이곳에서 동쪽으로 약 14km 지점에 있다.

 

 

부처님이 입적하신 - 쿠시나가르(Kushinagar)

 쿠시나가르(Kushinagar)는 부처님의 제자 아난다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사라나무 사이에 누워 입적하신 곳이다. 미얀마의 불교도가 세운 날반당 앞에 2개의 사아라 묘목을 심었다. 주위에는 날반탑, 절터등 많은 유적이 있다. 동쪽으로 약 1km에 있는 마바르 흙무덤은 부처님의 유해가 다비(화장)된 터라고 한다. 높이가 46m 되는 벽돌탑이다. 라마바르 흙무덤의 서북에 있는 것이 히라니야 바티 강이며, 마지막으로 목욕하신 곳이라고 한다.

 

 

 

불교문화 여행

세계에서 자랑하는 인도 불교 예술의 보고 - 아잔타(Ajanta)

 데칸 고원의 숲을 헤치고 서서히 내려가는 와고라 강의 계곡에 있는 높이 70m의 암벽에 장장 1.5km에 달하는 지역에 29개의 불교 설굴암이 연속적으로 나온다. 1819년 호랑이를 잡으러 온 영국인에 의하여 1000년 동안 잠자던 이 장소가 처음으로 세계에 소개되었다. 중앙의 제8~11 석굴이 기원전 2세기기부터 기원후 1세기에 제 5~7, 12~20 석굴이 5세기경에제 1~5, 21~29 석굴이 7~8세기 경에 만들어졌다.

 아잔다를 세계의 보고로 만든 것은 특히 그 벽화이며 불전, 잔다카의 산이나  부처 보살상, 고대 인도의 풍속 등 풍부한 색채와 섬세한 필치로  암벽뿐 아니라 기둥이나 기둥머리, 천장등 넓은 공간의 구석구석까지 꽉 차 있는 그림들 때문이다.

 

 

위대한 신앙의 힘과 창조력의 집결- 엘로라(Ellora)

 데칸 고원밑 연도를 따라 가다가 바위산 비탈에 불교, 힌두교, 제인교의 석굴사원이 34개나 만들어졌다. 제일 장엄한 것이 힌두교의 카일라사 사원(Kailasa, 제16석굴)으로서 정교하게 조각한 거대한 사원을 밖으로부터 내부의 미세한 부분까지 암반을 통체로 뚫어서 만들었다. 또한 안뜰에 있는 장식한 기둥이나 거대한 코끼리상, 누각 행랑등을 파서 만들었는데 높이 30m 길이가 90m나 되는 대조각물들이다.

 불교 석굴은 오른쪽의 제1~12석굴을 3-7세기에 만들었고 제10석굴은 아름다운 전면이 차이트야 석굴이고 그 외는 암자들이다. 특히 제12석굴은 3층으로 되어 있으며 규모가 크다.

 

 

장엄한 불교조각과 신비를 자랑하는 - 서인도의 석굴사원들

 뭄바이, 동남 130km의 데칸 고원의 암벽에 있는 바자(Bhaja) 석굴암에는 기원전 2세기의 것으로, 목조 사원 건축을 본따서 만든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차이트야 석굴이 있다. 바자를 향하여 있는 카르라 석굴암의 차이트야 석굴은 소승불교 양식으로는 제일 먼저 완성된 최대의 것이다.

 

 몸바이 동북 18km의 국도 연변에 있는 나시크 석굴은 같은 소승불교 시대의 것으로 귀중한 비문이 많이 남아있다.  

 

 같은 몸바이 북방 42km의 카네리 석굴(Kanheri Caves)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109개의 석굴을 팠다. 이 석굴암은 3~8세기에 만든 것으로 소규모의 것이 많고 옛날 스님들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오란가바드 석굴은 같은 도시 북방 2km 지점에 있는 것을 암벽에 9개의 석굴이 있는데 대승 불교 시기의 것이며, 특히 제7석굴의 양각으로 된 미인군상은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

 

 

 

불교의 원점- 산찌(nchí)

 지상 낙원과도 같은 아름다운 전원풍경에 둘러싸인 언덕위에 유명한 스투파(Stupa)가 3개 있다. 큰탑(제1 스투파)은 아쇼카왕이 처음 세운 것으로 기원전 2세기에 증축한 것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큰탑 둘레로 난간에는 조각은 되어 있지 않으나 기원전 1세기에 세운 네모의 탑문(트라아나)은 전면이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주제는 불전이나 자아디카의 장면, 우아한 약시니이, 동식물과 꽃의 무늬등이다. 석가의 발자국, 보리수, 대좌, 법륜, 스투파 등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제2 스투파는 언덕 중턱에 있으며 그 주위에는 기원전 2세기의 양각이 있다.

 

 

남부 인도 불교의 2대 중심지- 아마라바티(Amaravati) 나가르주나콘다(Nagarjunakonda)

 남부 인도를 대표하는 이 두개의 불교 유적은 모두 크리스나 강의 유역에 있다. 아마라바티(Amaravati)는 강어귀에서 120km 정도 떨어진 사아타바아하나조 시대의 수도중 하나에 가까우며, 기원전 3세기에서 14세기에 이르기까지 남부인도 불교의 대중심이었다.

 기원전  2세기에 세워졌으며, 그 중에 증축된 대 스투파는 산찌의 것보다 크며, 기초단이나 돔 지붕이 화려한 양각 판넬로 덮여있고, 유물은 현재 마드라스 박물관에 있으며 당시의 모습을 잘 알려주고 있다.

 

 나가르주나콘다(Nagarjunakonda)는 거기서 상류 약 150km 지점에 있다.

 4세기경에 이크슈바아크조 시대의 수도이며 많은 유적과 녹색 대리석으로 만든 풍부한 양각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류 24km 지점에 큰 댐을 만들어 넓고 아름다운 원래의 유적은 호수 밑으로 들어가고 말았으나 중요한 유적과 유물은 현재 호수 가운데 있는 섬과 호수가로 옮겨 놓았다.

 

 

 

 

궁전열차여행

 7박 8일간의 궁전열차여행의 아름다운 추억은 인도를 더욱 가깝게 느끼도록 해 줄 것이다. 관광객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13륜 편성의 궁전열차는 마치 달리는 궁전 같다. 옛날 인도의 왕 마하라자와 인도총독이 실제로 탔던 차량을 이용해 그 옛날의 호화로운 분위기를 풍부하게 연출해 내고 있다. 궁전열차여행은 마하라자(Maharaja, 대왕)가 된 기분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는 꿈같은 8일 여행이다. 마하라자가 된 기분으로 인도의 밤을 느껴보자.

 

 궁전열차여행 주요 일정표(7박 8일)

o 방문도시 : 델리-자이푸르-치토르가르· 우다이푸르-사와이 마도르푸르-자이살메르-조드푸르-바라트푸르· 아그라-델리

 

델리(Delhi)

 궁전열차에 승차하여 열차에서 7일밤을 묵는다. 열차가 떠나자마자 바로 열차 내에서 저녁만찬을 갖고, 야간에 자이푸르로 이동한다.

 

자이푸르(Jaipur)

 오전에 도착하여, 조식을 한 후 자이푸르와 암베르성을 관람한다. 그리고 승리의 전당 또는 자이 마할과 작만드르(Jai Mahal and Jagmandir)라고 하는 칼리사원을 방문하고, 암베르성이 있는 언덕 끝까지 코끼리를 타고 색다른 여행을 한다.

 그리고 람바후궁전에서 중식을 하고 이날 오후에는 마하라자 도시궁전과 잔타르만타르 천문대, 그리고 바람의 궁전을 관람한 후 열차로 돌아온다.

 

치토르가르(Chittaurgarh), 우다이푸르(Udaipur)

 저녁에 치토르가르에 도착하기에 앞서 열차 내에서 조식을 한다. 그리고 치토르가르에 내려 멋진 도시를 돌아보고, 15세기 라나 쿰브하가 지은 전승비를 관람한다. 그리고 나서 다시 열차를 타고 우다이푸르로 이동, 우다이푸르에 도착하기 전 중간에 사스와 바후가 정교하게 조각한 사원들이 있는 나그다를 들린다. 레이크 팰레스(Lake Palace) 호텔에서 중식을 하고 이날 오후 시티투어에서 파테사가르 호수(Fateh Sagar Lake)와 자그디쉬 사원(Jagadish Temple), 그리고 마이덴스 화원과 마하라나(Maha Rana)의 도시궁전을 관람한다.

 

사와이 마도푸르(Sawai Madhopur)

 10세기에 지어진 아름다운 란탐브호르 성을 관람하고, 아바발리산맥에 있는 사와이 마도푸르 야생동물 보호구역을 돌아본다. 여기에서 호랑이, 표범, 닐가이, 친카라탈과 치탈등 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다. 열차에 돌아와 중식을 하고 다음 목적지인 자이살메르로 이동한다.

 

자이살메르(Jaisalmer)

 자이살메르에 도착하기에 앞서 오전에 열차에서 아침 만찬을 한다. 중식을 하기위해 열차로 돌아오기까지 파트와와 살림 싱 하벨리(Salim Singh Havelis)를 둘러보며 시티투어를 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낙타를 타고 세노타프스에 가서 해질녘에 돌아온다.

 

조드푸르(Jodhpur)

 오전에 도착하여 시티투어에 앞서 조식을 한다. 메란가르 성과 자스완스 테아다를 방문하고, 우메이드 팰러스((Umaid Palace) 호텔에서 중식을 하고 열차로 돌아온다. 저녁에 열차가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가운데 열차내에서 석식을 한다.

 

바라트푸르(Bharatpur), 아그라(Agra)

 오전 일찍 바라트푸르에 도착한 후 케오라데오 가나 조류 보호지역를 방문한다. 그리고 버스를 이용하여 사막도시인 파테푸르 시크리를 경유하여 아그라에 간다. 아그라 여행중에 여러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타지마할을 관람한다. 열차로 돌아오기 전에 악바르 황제가 지은 아그라성를 방문하고, 이날 저녁 일찍 열차에 타고 열차에서 석식을 한다.

 

델리(Delhi)

 델리에 도착 전 열차에서 조식을 하고, 이곳에서 7박 8일간의 멋진 열차여행을 마친다.

 

 

 

◈ '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인도 춤, 까탁 댄스(Kathak Dance)

 춤 자체가 언어일 수 있을까? 북인도 전통춤인 까탁 댄스라면 가능하다. 이슬람과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졌다는 까탁 댄스는 손동작으로 스토리를 표현한다. '까탁'이라는 뜻 역시 스토리텔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까탁 댄스는 여덟 개의 전통 인도 춤 중의 하나다. 인도 전통무용은 사원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댄스와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대중문화에 널리 퍼져 있는 춤은 오락적인 목적이 다분하다. 하지만 까탁 댄스는 오락적인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춤이라고 할 수 있다. 신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까탁댄스는 대체로 타블라(소북)와 시타르(현악기)에 맞춰서 춤을 춘다. 심장을 울리는 듯 한 맑은 타블라 소리와 경건하면서도 미묘한 소리를 내는 현악기는 빠른 템포로 진행된다. 무용수 양 발목에는 수백 개의 작은 종이 달려 있어서 타블라와 시타르의 템포에 맞춰 흥이 더해진다.

 

 무용수의 춤은 거의 손과 발동작으로 이뤄진다. 특히 손동작은 매우 화려하다. 손가락을 미묘하게 구부렸다가 피기도 하면서 현란하게 진행된다. 특히 손목도 자유자재로 움직여야 한다. 일부 무용수 중에는 발동작이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까탁의 경우 발레와는 정 반대다. 즉 발레가 발의 앞부분, 즉 발가락에 힘을 줘야 한다면 까탁은 항상 발뒤꿈치로 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발뒤꿈치가 잘 까진다는 고충이 있다.

 

 까탁 댄스는 빠른 템포로 진행된다. 하지만 까탁이 언어를 전하는 춤인 만큼 매우 다양한 동작과 속도로 진행된다. 반복되는 동작이지만 같은 동작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절제되고 느리게 진행되다가도 빠른 발 구름으로 스토리를 전달한다. 특히 손동작은 발레 동작 못지않게 부드럽지만 절제 있게 진행된다. 다섯 손가락을 모아 손목을 꼬면서 하늘 위로 뻗을 때면 마치 신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인도인의 정서가 느껴진다.

 

 처음 보면 난해하고 어려워 보일 수도 있지만 춤 속에 신을 위한 언어를 담은 까탁을 바라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 구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도 특산품 

 인도의 쇼핑에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과 같은 두근거리는 즐거움이 있다. 거리와 시장에는 색깔로 넘치고 상품은 산처럼 늘어 서 있으며, 모두가 놀라움과 매력에 넘치고 있다. 인도에서 쇼핑하는 것은 과거로 여행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지방에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에 접하고 그들의 관습과 예술과 기술을 아는 것이다. 쇼핑을 통해서 그들의 기술이 어떻게 멋진 불가결의 실용품으로 진화해 왔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인도에는 값을 깍는 것이 당연한 작은 상점이 무수히 있으며 여행자에게 인기가 있다. 베르를 감은 여성과 어깨를 부딪칠 것 같은 지방의 시장과 에어컨이 완비된 정가판매의 상점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 또 무엇에 사용할까 하고 생각에 빠지게 되어버리는 낙타 혹의 자수가 팔리기도 한다.

 거스름돈 대신에 한줌의 싼 보석을 건네 받기도 하고 수년 후에는 한 재산이 될 것 같은 금포도주 잔에 투자하기도 하는 즐거움도 있다.

 공예품은 인도의 특산의 하나이지만 눈이 고급스런 수집가부터 극히 일반의 쇼핑백까지 예산에 맞추어 폭넓게 갖추어져 있다. 얼핏 같은 것처럼 보이는 상품에도 가격이 크게 다른 경우가 자주 있지만 그것들은 기술도 품질도 재질도 완전히 다른 물건인 것이다. 선물을 사려는 사람은 싼 공예품으로도 좋겠지만 진짜를 고집하는 사람도 가짜에만 주의한다면 만족스런 쇼핑이 가능하다.

 

카펫(carpet)

 면과 비단으로 만든 카펫은 수세기 동안 인기있는 수출품목이었다. 무굴시대의 디자인 감각으로 완성된 플러시 비단 카펫은 오늘날까지 관광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제품이다. 인도산 수직 매듭 양탄자 두리(Durrie)와 투박한 깔개, 이슬람교 기도용 깔개 또는 라자스탄 산 칼림(Kilim, 보풀없이 평평하게 직조된 카펫) 역시 구입할 가치가 충분하다. 가벼운 두리(바닥 깔개)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종류가 있다.

 펀잡, 하르야나, 라자스탄(양모두리), 우타르 프라데시(기하학적 무늬) 및 타밀 나두(정형화된 무늬) 지역은 카펫의 중심지이다.

 

인도 면사

 잠다니는 최고급 모슬린의 일종이다. 이 모슬린은 샤브남(밤이슬)이나 말말 카스(국왕 전용 모슬린), 아브라완(흐르는 물)처럼 그 이름도 시적이다. 잠다니를 만드는데 필요한 기본 직물은 표백과정을 거치지 않은 면사지만 디자인을 할 때는 표백한 면사를 사용해야 확실한 음영효과를 낼 수 있다.벤카타기리는 잠다니 제조 기법에 정형화된 주제를 혼합하여 면과 금실을 반씩 섞어 만든 것이 바로 사리이다.

 카르나타카 산 이카트 사리와 안드라 프라데시 산 나라얀페트 섬유 또한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면직물이다. 가드왈과 와나파르티는 두꺼운 면 소재의 주요 산지로 이곳의 면사는 대부분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비단 테두리와 금박이 수놓인 팔루가 특징이며. 난데르는 비단 테두리에 금실로 엮은 양질의 면직사리로 유명하다.

 

도자기

 도자기가 인도에서 누리는 인기는 종류와 분야를 초월한다. 실용적이고 단순하지만 묘하게 매력적인 인도의 도자기는 품위있는 생김새를 중시하고 있다. 가장 보편적인 점토 도자기는 다목적 쿨러(Kuller, 컵 모양의 용기)로 물이나 차를 담을 때 사용되며 기하학적 무늬와 꽃무늬로 장식된 것들도 종종 눈에 띈다. 디왈리(Diwali, 11월 14일에 열리는 빛의 축제)용 램프, 두세라(Dusshera, 10월 라마신의 라바나 격퇴를 기념하는 축제)용 장난감, 산크란티(Sankranti, 1월 남인도의 수확제)용 항아리, 화려한 결혼식용 칼라시(단지)등 다채로운 축제용 도자기가 특별히 제작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도자기는 장식용으로도 쓰이며 선물용으로도 좋다. 보통 카리가리(디자인) 도자기, 재떨이, 꽃병, 찻잔, 문진, 장식용 동물인형등의 용도로 쓰이고 있다.

 

가죽

 가죽은 인도를 방문한 외국 여행자에게 상당히 인기있는 제품으로 그중에서도 가죽으로 만든 신발과 손가방은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다. 대도시에는 재킷과 장갑에서부터 여행가방과 사무용품까지 가죽 제품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상점들이 있다.

 현대적인 디자인을 원한다면 인도안의 프랑스라 일컫는 폰디셰리의 오로빌로 가보라. 신발은 다양한 전통자수, 문직 및 섬유 디자인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마하라슈트라의 실용적인 콜라뿌리 가죽 샌들은 밝은 색상이 눈에 띄는 제품이다. 자이푸르는 전통 신발 제조에 있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데 이곳에서 생산되는 모자디(Mojadi)라는 이름의 두툼한 신발은 비단, 금속 자수 및 구슬 장식이 특징이다.

 납결로 염색한 손가방은 벵골 산으로 대담한 곡선처리와 전통적인 주제가 두드러진 제품이다.

 

납결(蠟 )

 염색 방법의 하나. 수지와 밀랍을 섞어 녹인 것으로 천에 모양을 그려 식힌 다음, 눌러서 갈라진 무늬를 물들이고 뒤에 수지와 밀랍을 떼어 내어 무늬를 만든다.

 

가구

 인도의 가구는 특유의 민족적인 분위기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인도의 전통 목각사들은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운 전통 양식을 그대로 따르는 동시에 전통 공예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천직으로 알고 있다.

 하고 많은 지역 특산품 중에서도 라자스탄과 구자라트의 목공예품은 가히 최고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고풍스러운 외관과 정교한 솜씨는 인도의 가구가 국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국외에서도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원인이다. 상자, 의자, 요람, 낮은 탁자, 보조 의자 같은 장식용 조각가구는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제품들이다.

 황 동을 박아 넣었든, 춤추는 인형이나 사냥하는 장면을 그려 넣었든, 가구는 보는 자체로 즐거움을 선사한다.

 

귀금속

 인도의 각 지방에는 고유한 전통과 스타일이 존재하며, 보석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수세기 동안 가장 많은 인기를 누려온 스타일로는 오리사와 안드라 프라데시의 은 세공품, 자이뿌르의 에나멜 제품 미나카리, 니게르코일의 사원보석, 델리의 쿤단(금에 준보석 또는 보석을 박아 넣은 것)등이 있다.인도의 대도시에는 어디에나 금 시장이 있다. 예컨대, 뭄바이의 자베리 시장을 한가로이 거닐다 보면 인도 보석의 어제와 오늘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인도 차

 선물용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인도의 차는 많은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제품중에 하나이다. 인도인들은 아침을 따뜻한 차로 시작한다. 물론 짜이를 말하는 것이다. 짜이가루는 홍차의 일종으로 옛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의 홍차를 배로 무역을 하는 과정에 생긴 차로 전 인도인이 사랑하는 차이다.

 인도의 대표적인 홍차(맛면에서)는 다질링차, 아그라차, 아삼차가 있다. 다질링차는 1~5등급이 있는데 1등급이 100g이 200루피 정도, 아그라차는 20개 정도의 티백이 20루피 정도이다.

 다질링차는 물질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들이 먹는 편이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아그라산 차는 서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아삼차는 짜이를 만들 때 넣는 차이고 비싼 만큼 맛도 좋은 다질링차를 귀국할 때 선물용으로 구입하는 것이 좋다.

 참고로 타지마할 상표가 유명한데 그중 타지마할 상표중에 여러 도시의 차가 있는데 아그라산 차가 맛이 좋다고 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현지인들은 포장되지 않은 무게를 재서 파는 잎차를 사는 것이 좋다고 한다.

 참고로 과일차도 있다. 20개 정도의 티백에 25루피 정도 하는데 레몬, 포도, 사고, 복숭아, 오렌지, 파인애플맛이 현재 판매되고 있다. 구입할 곳은 어느 인도시장이라면 구입이 가능하다. 선물용케이스로 파는 것과 공항에서 파는 것은 다소 비싸기 때문에 현지 시장에서 구입하는 것이 좋다.

 

인도 은반지

 우리나라에서도 인도의 은반지는 많이 판매가 되고 있다. 가격은 5천원에서 1만원까지 다양하다. 우다이푸르에 가면 은으로 된 악세사를 파는 상점이 많이 모여 있다. 작디쉬템플 사이에 상점들이 있다.

 팔찌, 귀걸이, 브롯지, 반지등 여러 악세사리를 구입할 수 있는데 모든 모양이 비슷한 모양의 것만 있는 것 같지만 잘 살펴보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일 것 같은 특별한 것이 있다. 또한 같은 반지일지라도 여러가게에 있을 수 있는데 자세히 보면 세공수준도 다르고 박힌 보석의 질이 다르다.

 은반지는 50루피 이상이다. 기본 은반지는 100Rs에 구입하는 것이 적당하다. 물론 보석이 박힐수록 비싸다.

 

 

님트리(Neem Tree)

영 명: Neem Tree

학 명: Azadirachta indica

원산지: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님트리(Neem Tree)는 상록활엽교목(건조지대에서 낙엽교목)으로 작은 대추 크기의 열매가 열리며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이 원산지이며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멀구슬나무와 사촌지간에 있는 나무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멀구슬나무는 자체에 독이 있어 '고련자'와 '천련자'라는 이름의 한약재로 쓰이는 이외에는 사람들한테는 쓰여 지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반면 인도의 님트리는 이 멀구슬나무와 사촌이면서도 성격이 전혀 다른 나무로서 4~5천년 이전부터 인도의 생명의학인 '아유르베다'에서 아주 중요한 약재로써 쓰여져 왔다.

 

 키 15~30m, 근경 90cm까지 자라며 나이 들면 줄기에 두터운 회색의 바크가 형성되며 중간 중간 결절이 있고 세로로 갈라진다. 잎은 우상복엽으로 어긋나기도 하고 길이 20~40cm정도이고 소엽은 밝은 녹색이며 끝이 뾰족한 긴 타원형으로 털이 없으며 광택이 있고 8~20매의 소엽이 달리며 테두리에 결각의 거치가 있다. 초여름에 개화하는 꽃은 유백색으로 엽액에서 늘어지는 총상화서에 많은 소화가 달리고 꽃잎과 꽃받침은 5개이다. 열매는 핵과로 길이 1~2cm정도 이고 연노랑에서 자주색으로 익으며 올리브열매와 비슷하게 타원형이다.

 

 님트리(Neem Tree)의 학명인 '아자디 라크틴'은 살균, 해독해 주는 성분을 일컫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이 나무는 기충목 즉 벌레가 싫어하고, 인도, 파키스탄에서는 수천 년간 민간의료용으로 다방면에 이용하여 왔다. 님트리는 석가모니가 자주 명상하던 나무이다. 보리수 밑에서 7일간 명상하고 해탈, 그리고는 자주 님트리 아래에서 명상에 잠겼다고 한다. 임종 때에는 제자 아난에게 명하여 이 나무로 짠 관에 넣어 님트리(Neem tree) 가지와 잎을 향목으로 태우라고 유언했다 한다. 님트리는 'Miracle Neem(기적의 님)'이라고도 하여 인도에서는 '마을의 약국'이라고 칭하는 데, 갓난아기가 태어나면 님잎과 오일로 아기를 키운다고 한다. 말라리아, 회충, 뇌염 등을 예방하고 특히 옴이나 천연두, 외부기생충, 머리의 이, 비듬 같은 것은 님잎으로 만든 반죽을 문질러 치료한다. 님과 툴시(tulsi, 영명으로는 holy basil) 그리고 전분을 섞어 베이비파우더를 만들고 쓰고 또 이것을 성인용 뾰루지나 여드름 등을 치료하기도 한다.

 

 

 

 

 또 씨앗을 짜내어 만드는 님오일을 넣은 피부크림은 마른버짐(건선), 습진, 여드름 등 여러 가지 피부 트러블을 해결하는 데 사용해 왔다. 목욕용 파우더는 님잎, 허브 그리고 미네랄 소금으로, 비누는 님과 식물성 오일, 치약은 님 추출물에 그리셀린 등, 구강청결제는 님추출물과 물, 알코, 향기, 크림은 여러가지 크림과 님 오일, 얼굴팩은 님잎과 깻묵으로 만들어 외용치료에 쓰인다. 당뇨병과 혈액정화용으로 내복되고 있으며 님잎으로 만든 차는 아유르베다 구극의 허브로서 치료와 예방을 겸할 수 있다는 논문이 나와 있다. 님잎차는 두통, 감기, 인플루엔자, 관절염, 류마치스, 당뇨, 혈액정화에 유효하다고 알려져 있다.

 

 인도사람들은 인도요리의 쓴맛을 내는 향신료로 사용하기도 하고, 식후의 소화를 돕기 위해 님 씨앗을 1~2알 복용하기도 한다.

 

 님트리 잎으로 차를 마시며 크림과 스킨 같은 화장품을 만들고 님트리 가지로 칫솔로 대용한다. 또 님트리 추출물로 치약, 비누, 샴푸도 만들고 있으며, 의류나 서적, 농산물의 해충 피해를 막는 데에도 사용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님트리의 성분이 인체나 가축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안전함이다.

 

 인체에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확실한 항진균, 항염증, 진정효과를 가져오는 님비누나 님오일, 그리고 혈액을 정화시켜 주어 궁극적으로는 피부병 발병의 원인을 제거해 주는 님트리 잎차는 아토피 치료에 많은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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