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Nepal)

 

카트만두(Kathmandu - 네팔 수도)

 

 

 네팔(Nepal)은 북쪽으로는 중국의 시짱 자치구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히말라야 산맥 정상이 공동 국경으로 되어 있고, 동쪽· 남쪽· 서쪽 경계는 인도 국경과 접해 있는 내륙 국가이다. 지형조건에서 빚어진 고립성과 폐쇄성으로 세계에서 가장 개발이 안 된 나라로 손꼽힌다.

 

 네팔은 1950년까지 외부 세계와 단절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1950년 왕권 회복을 위한 혁명이 일어나 51년 왕정복고에 성공했다. 91년 네팔 왕조는 다당제 의회 제도를 수립했다.

☞ 다른 지도1     ☞ 지형지도2

 하지만 강력한 마오쩌둥주의 반군세력과의 10년에 걸친 교섭 끝에, 2008년 왕정이 종식되고 민주공화국을 선언했다.

 

 네팔(Nepal)은 인도 북부와 중국에 걸쳐있는 히말라야 산맥의 고립된 지역에 위치한 세계 최빈국중 하나이다.

 

 면적 147,181.0㎢

 인구 약 2,900만 명중 80%가 농업에 종사

 인구중 87%가 힌두교, 8%는 불교신자다.

 수도는 카트만두(Kathmandu)

 

 입헌군주제를 택하고 있어 왕은 명목상 국가원수직과 군 통수권을 갖고 있으며 총리가 국정 전반의 실권을 갖고 있다. 외교면에서는 비동맹·중립을 기본으로 하여 '네팔평화지대 구상'을 이루기 위해 인접한 인도·중국 및 미국·영국·러시아 등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네팔 남부지방에 위치한 룸비니는 석가모니가 탄생한 성지이기도 하다. 또한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마나슬루등 8,000m가 넘는 고봉들을 8개나 보유하고 있어 많은 산악인들이 즐겨 찾고 있는 곳이다.

 

 한국과 네팔은 1974년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네팔은 입헌군주제 채택 이후 헌법과 여타 법률에 의해 카스트제도가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내 카스트 의식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 결혼 상대자 선택 및 장례 등 중요한 가정 의례시 카스트를 엄격히 따진다. 또한 힌두교 정신에 입각, 국왕을 신과 같이 존경하고 숭배한다.

 

 

 네팔의 지형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4개의 지대로 나누어진다. 인도 국경을 따라 펼쳐져 있는 타라이 평원, 산림으로 덮인 추리아 산기슭과 북쪽의 내(內)타라이 지대, 산간지역, 대(大)히말라야 산맥이 여기에 속한다. 타라이 평원은 고도가 낮고(해발 180∼360m), 평평하고 기름진 곳으로 너비 26∼32km 가량 되는 갠지스 평원 북쪽과 연결되어 있다.

 

 남쪽은 농업지역인데 산과 만나는 지점은 숲이 우거진 습지이다. 추리아 구릉과 내(內)타라이 지대는 사람이 얼마 살지 않으며 험준한 마하바라트 산맥을 중심으로 해발고도가 600∼9,100m까지 이른다. 산간 분지에는 숲이 우거져 있다. 마하바라트 산맥과 대히말라야 산맥의 사이에 있는 산간지역은 해발 2,400∼4,300m에 이르는 산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이다. 바하마티 강이 흘러드는 카트만두 강과 세타 강이 흘러드는 포카라 강 유역의 평평한 지대는 이들 산계에 둘러싸여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카트만두 강 유역은 네팔의 정치·문화 중심지이다. 해발고도 4,300∼8,800m인 대히말라야 산지에는 8,040m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들(에베레스트, 칸첸중가 1봉, 마칼루 1봉, 초오요, 다울라기리 1봉, 마나슬루 1봉, 안나푸르나 1봉)이 있으며 에베레스트 산(8,848m)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코시 강, 나라야니(간다크) 강, 카르날리 강이 히말라야 산줄기를 가로지르는 골짜기를 따라 남쪽으로 흐른다. 이 강들은 네팔의 주요 강으로 발전량이 높다.

 

 네팔의 기후는 타라이 지역의 아열대 몬순기후에서부터 대히말라야 산맥의 고산기후까지 여러 층이다. 연강수량은 타라이 동쪽이 1,800∼1,900㎜, 네팔 서부가 760∼890㎜이다. 몬순계절(7∼10월 중순) 동안 타라이 평원의 낮은 지대에서는 홍수가 심각한 문제이다.

 

 겨울(11∼3월) 평균기온은 타라이 지역 남쪽이 19℃, 산간분지는 13℃이며 여름(4∼6월) 평균기온은 각각 28℃와 21℃이다.

 

 네팔의 가장 중요한 천연자원 가운데 하나는 국토의 약 1/6을 덮고 있는 넓은 숲으로 목재와 땔감, 의약용 약초를 제공해 준다. 가장 고도가 낮은 지역은 습기가 많은 열대성 기후의 영향으로 낙엽수림이 우거져 호랑이·표범·사슴·원숭이와 얼마 되지 않는 인도 코뿔소의 은신처가 되고 있다. 해발고도가 1,200m 이상 되는 지대에는 상록수와 낙엽수(참나무·단풍나무·목련)가 자라며 히말라야 산맥 중앙 비탈면에서는 표범과 곰 종류도 가끔 나타난다.

 

 3,050∼3,650m 되는 곳은 침엽수림 지대로 토끼·사슴·영양 등과 작은 육식동물들이 산다. 진달래속 식물이나 향나무 따위가 자라고 여기보다 고도가 높은 아(亞)고산 및 고산초원지대에는 사향노루와 야생양이 서식한다.

 

 

 1951년 라나 체제가 무너진 후 검열이 완화되자 예술적·지적 활동이 다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네팔어로 쓴 문학 작품들은 문예부흥과 애국심을 강조하고 있다. 시인이었던 마헨드라 왕은 문학·예술의 부흥을 위해 힘썼는데, 네팔어로 쓴 그의 서정시는 그의 이름 첫머리를 딴 'M. B. B. 샤'라는 필명으로 영역되어 출판되기도 했다.

 

 네팔의 문화유산, 특히 카트만두 계곡의 네와르족의 조각과 회화, 건축물은 네팔의 큰 자랑거리이다.

 

 네와르족 장인들의 예술혼의 바탕에는 힌두교·불교의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으며, 종교가 전통적 주제이다. 이들의 조각·건축·연극에는 신과 성인·영웅들의 생애, 인간과 사회·우주와의 관계가 묘사되어 있다. 카트만두 계곡에 있는 약 2,500개의 사원·신전들은 네와르족 장인들의 빼어난 솜씨와 미적 감각을 잘 보여 준다.

 

 네팔인들이 가장 즐기는 소일거리는 음악과 춤이다. 종교의식을 거행할 때 먼 옛날부터 사용해 온 북과 관악기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거의 모든 종교 행사와 가족 행사에서 중요한 요소는 찬가인데, 찬가가 고전음악과 민속음악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어 일부 전통문화 부흥론자들은 찬가를 통해 고전음악과 민속음악의 간극을 메우려고 시도해 왔다.

 

 

네팔 지리

위   치

서남아시아, 인도와 중국 사이에 위치

지리학적 좌표

28 00 N, 84 00 E

면   적

총면적: 140,800㎢(세계 94위)

화   폐

네팔 루피 (NPR)

GDP

217억$(2015년. 세계 103위)

국경선

총길이: 2,926km.        인접국가: 중국 1,236km, 인도 1690km

기   후

북부는 시원한 여름날씨에서 추운 겨울날씨까지,

남부는 아열대기후부터 온화한 겨울날씨까지 그 분포가 다양

지   형

중부 언덕 지역과 남부 갠지스강 일대는 평평한 평원지역이며 북부 히말라야지역은 굴곡이 심한편

천연자원

수정, 광천수, 입목, 수력, 자연경치, 갈탄, 구리, 코볼트, 철광석

면적 활용

경작지: 17%.    영구경작지: 0% .  영구목초지: 15%.  숲과 삼림지: 42%.  기타: 26%

 

 

네팔 정부

국가명

정식명칭: 네팔왕국

통치형태

의회민주주의와 입헌군주제

수   도

카투만두(Kathmandu)

행정구역

14지역-바그마띠, 베리, 다왈라기리, 간다끼, 자나끄뿌르, 까르날리, 꼬시, 룸비니, 마하깔리, 메치, 나라야니, 라쁘띠, 사가르마타, 세티)

독   립

1768년(쁘리트비 나라얀 샤흐에 의해 통일)

국경일

갸넨드라 왕의 생일, 7월 7일 (1946년)

헌   법

1990년 11월 9일 제정됨

법체계

힌두와 영국법에 근거해서 정비

선거권

18세이상 남녀, 보통선거권

행정부

국가수상: 갸넨드라 비르 비끄람 샤흐 국왕(그의 조카 디뻰드라 비르 비끄람 샤흐 사후 2001년 6월 4일 즉위)

정부수반: 기리자 브라싸드 꼬이랄라 수상(2000년 3월 22일부터)

내각: 수상의 추천에 따라 군주가 지명

선거: 없음. 세습군주제라 입법선거시 군주에 의해 다수당 당수가 수상으로 임명됨

 

 

네팔 민족

인   구

2,800만 명(2016년)

인구증가율

2.32%

평균수명

전체 평균: 58.22세.     남성: 58.65세.      여성: 57.77세

인종구성

브라흐만, 체뜨리, 누와르, 구룽, 마가르, 라이, 림부, 셰르파, 타루, 기타

종   교

힌두교 86.2%, 불교 7.8%, 회교 3.8%, 기타 2.2%

※ 참고 : 공식적으로 세계에서 유일한 힌두국가

언   어

네팔리(공식언어, 인구의 90%가 사용), 그외 12개의 언어, 30여개의 방언

※ 참고 : 정부기관과 업계에서는 영어로 의사소통 가능

 

 

정 보

시 차 : 인도보다 15분 빠르고 한국보다 3시간 15분 늦습니다.

 

통화와 환률 : 루피(RS)와 파이사(P) 100P=1RS,

                      환율은 1US$=75RS, 1RS=0.01332US$(100루피=1.33달러) 정도. 2001년 5월 현재

                      1루피=17.167원(100루피=1716원정도) 2001년 5월 현재

                      지폐는 1, 2, 5, 10, 50, 500, 1000RS.

                      동전은 5, 10, 25, 50P, 1RS가 있으나 25P, 50P, 1R만이 주로 사용되고,

                      동전의 디자인이 같고 숫자표기가 없어 대, 중, 소의 크기로 구분됩니다.

                      관광객이 많은 지역외엔 100RS 이상의 고액을 사용할 경우 거스름돈이 없는 일도 종종

                      있으므로 되도록 소액권을 준비하도록 합니다.

환 전

 공항에 도착하면 비자를 받은뒤 적당량을 환전하고 카트만두나 포카라 시내에 은행, 합법 환전소를 이용.

 환전 후 반드시 영수증을 보관하는데 이는 환전증명서 (Foreign Exchange Form)로서 네팔 출국시 재환전 할 때(주재국 출발시 남은 주재국 화폐를 달러로 다시 교환하기 위해서는)꼭 필요하며, 영수증에 기재된 금액의 15%까지 인정해 준다. 호텔, 게스트하우스, 외국인 상대 식당등에서도 환전은 가능한데 사기당할 위험이 있으니 조심하여야 한다.

 

* BLACK MARKET :

 좋은 환율을 가지고 거리에서 환전을 요구하는 현지인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간혹 사악한 무리들로부터 속는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이를 매우 조심해야 하며 괜한 모험을 하는 것 보다는 가능한 암시장을 이용하지 않은 것이 현명하다.

 

* 여행자 수표와 신용카드:

 여행자 수표와 신용카드는 거의 호텔이나 일부 상점에서만 가능하고 일반 시장이나, 상점, 게스트하우스에서는 현금이 유용하다. 신용카드에 경우 비자, 마스터등을 받는데 때로는 3-4%의 카드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다이너스티 카드는 사용 불가).

 

전화와 전보

 공중전화는 없으나 시내 곳곳에 사설 전화 연락소가 마련되어 있어 국제전화 및 인터넷 이용이 얼마던지 가능하다. 그냥 전화를 이용하는 것 보다는 인터넷 카페의 인터넷을 이용한 다이얼패드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며 통화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요즘은 부쩍 늘어난 한국여행자들에 영향으로 한국어 폰트를 사용해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곳도 많이 있다. 한국어로 마음껏 친구들에게 메일을 띄울 수 있다.

 

우 편

 분명 보낸사람은 있는데 막상 받을 물건이 사라지고...

 다행히 물건이 있다면 내용물이 줄고...

 이것은 네팔의 우편시스템의 문제점에 관한 이야기이다.

 네팔에서는 현지에서 외국으로, 또는 외국에서 현지로 수발신되는 우편물이 중도 분실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보통 현지에서 발송한 우편물이 외국에 도달하는 데에는 10~20여일 소요되며 외국에서 현지로 우편물 발송시는 P.O.Box를 이용해야 한다.

 

전 압 : 220V

 

공휴일

 주재국 공휴일에는 매년 10월 및 11월의 다사인(1주일 정도)과 티할(3일)을 비롯, 각종 힌두신을 경배하는 축제일 등이 있으나, 그 기준이 네팔력이기 때문에 양력 기준으로는 매년 조금씩 다르다.

 

영업시간

 토요일은 우리의 일요일에 해당, 학교, 사무실, 관공서 등은 모두 휴무이고 일요일이 우리의 월요일에 해당한다.

 일-목요일 : 10:00 - 17:00, 금요일 : 10:00 - 15:00, 토요일 : 휴무

 (11월 중순 ~ 2월 중순 16:00)

 

생필품 가격

 네팔은 워낙 물가가 싼 곳이다. 그러나 가공식품등은 제3국에서 수입한 것이 대부분이므로 제 3국보다 비싼 편이며 구입시 유효기간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쇼 핑

 네팔 민속 수제품등이 싼 가격에 많이 거래되고 있다. 예를 들어 티벳산 카페트, 양모 제품들(스웨터, 장갑, 모자등...), 탕화(불교 그림), 파쉬미나 쇼울, 스카프, 전통악기, 목공예품, 전통 차(tea), 향과 항꽂이등 아기자기한 악세사리...

 그밖에 엽서, 포스터...타멜이나 포카라 레이크 사이드에 가면 수많은 티셔츠 가계에서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모양등을 티셔츠, 배낭, 모자등에 수를 놓아 준다. 트레킹 기념으로 하나 구입것도 좋다.

 

비 자

 비자는 단수비자이고 관광목적으로 입국하여 네팔공항(국경)출입국 관리소에서 받을 수 있는 비자의 종류는 유효기간에 따라 아래와 같다.

 가. Single Visa :

 한번의 입국만이 가능함. US$ 30(기본), 비자 받은후 네팔을 잠시 떠난뒤 60일 이내에 돌아와도 비자를 재발급 받아야 함.

 나. Single Re-Entry  : 2회 입국. US$ 25 추가

 다. Double Re-Entry : 3회 입국. US$ 40 추가

 라. Multiple : 여러회 입국. US$ 60 추가

 마. Transit  : 통과비자. US$ 5

 즉 네팔에서 관광비자로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150일로 처음 두달은 30불, 그리고 나머지 3달은 1달에 50불씩이다.

 

항공기 이용시 주의 사항

 카트만두에서 비행기를 타고 나갈 경우 조심할 것이 몇가지 있다. 우선 적어도 3일전에 Confirm(예약확인)을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카트만두에서 방콕구간을 로얄 네팔 항공으로 이용하다면 출발 3일전까지 반드시 카트만두 시내에 있는 로얄 네팔 항공사에 직접 찾아가서 도장을 받고 확인을 받아야 한다(대한 항공을 비롯한 다른 항공사도 마찬 가지이다. 이용 항공사 사무실에 가서 확인 도장 받아야한다.). 또한 네팔공항 공항세로 1100루피가 필요하니 쇼핑하는 할때 루피 다 사용하지 말고 꼭 남겨 두는 것이 좋다.

 

 

네팔 세르파(Sherpa)

 '세르파'란 티베트어로 '동쪽 사람'이란 뜻이다. 세르파족은 산지에 사는 티베트계의 네팔인이다.

 세르파족은 주로 네팔의 동부에 사는 히말라야 부족이다. 그러나, 그들의 일부는 인도의 시킴주의 국경 산악지역과 서부 벵갈주의 좀 더 큰 고지마을에 살고 있다. 세르파의 언어는 티벳어의 한 방언으로, 티벳-버마 어계에 속한다. 세르파어에는 문자가 없지만, 많은 세르파인들이 티벳어나 네팔어, 힌디어, 영어로 읽고 쓸 수 있다.

 

 세르파족은 대 라마나 티벳불교 승려가 통치하는 티벳의 캄 지역에서 이주해 온 티벳족 중 한 작은 무리의 후손들이다. 세르파인 텐징 노게이(Tenzing Norgay)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에베레스트산을 다른 한 사람과 더불어 최초로 등정했던 1953년에, 세르파족은 세계의 관심을 끌었었다. 그때 이후로, 그들은 높은 히말라야 산맥에서의 운반인으로서 유명해졌다. 관광과 등반은 세르파의 경제를 이끄는 주요 산업이 되었다.

 

 관광 이외에, 세르파인들의 중요한 산업은 농업이다.

 무역은 세르파인의 또다른 중요한 수입 원천이다. 남자들은 한번에 몇 달씩 걸리는 무역 여행을 곧잘 떠나며, 여자들은 집에 남아 집안을 돌본다.

 

 세르파인의 결혼은 이족결혼(혈족이 아닌 사람들과의 결혼)이다. 결혼은 전통적으로 가족들에 의해 결정되지만, 오늘날에는 이 전통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결혼은 약혼과 선물 교환의 많은 과정을 포함하는 긴 과정이다. 이혼은 아주 흔히 있으며 전체 결혼의 30%가 이혼하고 있다. 아버지들은 그들의 아이들을 아주 잘 다루긴 하지만, 잦은 무역 여행으로 집을 오랜 기간 비운다. 결과적으로, 자녀를 기르는 것은 주로 어머니나 언니(누나)에 의하여 주로 이루어진다.

 세르파의 주요 축제에는 봄의 첫 과일 축제인 둠제(Dumje)와 가을이나 겨울에 열리는 승려 가면무도 의식인 (Cham)이 있다. 조금 작은 규모의 축제로는 마을 푸닥거리와 출생, 사망, 성년 입문과 같은 때에 자주 치루는 정화 의식들이 있다.

 

 세르파인의 대다수는 대승불교의 분파인 티벳불교를 따른다. 불교도들은 윤회에 대한 교리를 믿으며 죽음 후에 영혼이 다른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다. 세르파인들은 영혼이 이 세상을 초월하여 열반(nirvana)이라고 부르는 극락의 상태로 들어갈 때까지 수없이 윤회한다고도 믿는다. 그러나, 열반의 경지에 들어가려면 사람이 세상의 소욕과 습관들을 정복해야 하며, 이것이 불교에서 명한 것을 준수함으로써 얻어지는 목표이다. 티벳불교는 불교의 주류와 기본적인 신앙을 함께 하지만, 티벳불교는 사람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신과 악령, 영혼에 대한 믿음과 같이 비불교적인 요소들도 많이 가지고 있다.

 

 20세기에 많은 세르파인들이 불교 승려가 되거나 티벳에서 들어온 의식인 라마(lamas)가 되었다. 이러한 라마들은 은둔된 라마교 사원(티벳불교의 수도원)에서 속세 생활과 격리된 독신생활을 한다.

 

 

구르카(Gurkha) 용병

 구르카(Gurkha)는 히말라야 산맥이 바라다보이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이 지역의 수호신인 고라크나트 신전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힌두교의 여신 바바니를 섬기는 사원도 있다.

 

 네팔의 지배 가문이 시작된 곳으로, 1559년까지 람중 왕의 작은 아들인 드라비아 샤가 점령하여 왕국을 세웠다. 그 후손인 프리트비 나라얀 샤는 여러 종족을 모아 군대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구르카군이다. 프리트비는 이 군대를 이끌고 말라 왕국을 정복하고 여러 제후국들을 네팔에 합병했다.

 

 

 구부러진 모양의 네팔 전통 칼인 쿠크리를 사용하는 구르카군은 그 용맹함으로 점차 전 세계에 알려졌다. 1800년대 초 네팔과 군사적으로 대립했던 영국은 쿠크리로 무장한 구르카군의 전투력을 발견하고, 19세기 중반부터 구르카 군대를 고용하여 현지의 부족한 군사력을 보충하기 시작했다. 구르카 용병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의 일부로 일본군과의 전투에 파병된 이래, 그리스와 시리아 등 영국의 해외 전선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47년 이후로 구르카 용병이 인도 군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높아졌다. 외국의 용병으로 근무했던 구르카 군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오면 교사나 지역사회 지도자로서 서구 사상이나 기술을 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2개 대대 규모의 구르카 용병을 운영하고 있는 영국과 대규모의 구르카 용병 부대를 운영하는 인도에 이어 싱가포르 경찰도 구르카 부대를 고용, 운영하고 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 경호를 구르카 용병이 담당한다고 보도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구르카족은 네팔 북부 히말라야 산맥에 살고 잇는 종족으로 아리안 민족의 일부이며 힌두교를 숭배하여 이슬람 교도들에게 쫒겨 북부 깊은 산속에 들어가 살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가파른 산을 뛰어다니며 체력을 기르며 엄청난 폐할량을 자랑하는 용감한 용사들로 길러진다.

 

 탄생 배경은 1814년 영국이 인도를 점령후 네팔로 진격하여 전쟁이 시작됐는대 이곳에서 영국은 승리를 거두나 쿠르카족에 의해 1만5천명이라는 1개 사단이 회복불능에 상태에 빠질 정도의 피해를 입은 후 이부족을 없애기 보다는 자기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기로 하여 양쪽이 합의하에 구르카족이 영국군 용병으로 나서게 되었다다.

 

 이들은 현재도 약 5천 명의 병력을 유지하며 영국을 위해 200년 가까이 봉사를 하였으며 현재도 영국외의 지역인 이라크,아프칸에서 영국군을 위해 싸우고 있으며 한국전쟁과 포틀랜드 전투에도 참전하였다.

 

 이들이 영국을 위해 싸우는 주요 목적은 역시 봉급이며 자신들이 생명을 걸고 싸워서 버는 돈으로 가족들을 봉양하며, 네팔 경제에도 도움을 주고 잇으며 영국정부 역시 일부 사람들은 시민권을 준다고 알고 잇으나 시민권은 아니고 거주권을 주고 연금및 의료 해택도 주고 있으나 뭔지 모자라는 부분이 있어 가끔 제대한 구르타 노장들이 영국에 살수 있게 하여 달라고 데모도 하고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무기로는 '쿠크리(kukri)'라는 한쪽날이 날카로운 굽어진 칼이 유명하다.

 

 

 

 구르카족은 네팔 북부 히말라야 산맥에 살고 잇는 종족으로 아리안 민족의 일부이며 힌두교를 숭배하여 이슬람 교도들에게 쫒겨 북부 깊은 산속에 들어가 살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가파른 산을 뛰어다니며 체력을 기르며 엄청난 폐할량을 자랑하는 용감한 용사들로 길러진다.

 

 탄생 배경은 1814년 영국이 인도를 점령후 네팔로 진격하여 전쟁이 시작됐는대 이곳에서 영국은 승리를 거두나 쿠르카족에 의해 1만5천명이라는 1개 사단이 회복불능에 상태에 빠질 정도의 피해를 입은 후 이부족을 없애기 보다는 자기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기로 하여 양쪽이 합의하에 구르카족이 영국군 용병으로 나서게 되었다다.

 

 이들은 현재도 약 5천 명의 병력을 유지하며 영국을 위해 200년 가까이 봉사를 하였으며 현재도 영국외의 지역인 이라크,아프칸에서 영국군을 위해 싸우고 있으며 한국전쟁과 포틀랜드 전투에도 참전하였다.

 

 이들이 영국을 위해 싸우는 주요 목적은 역시 봉급이며 자신들이 생명을 걸고 싸워서 버는 돈으로 가족들을 봉양하며, 네팔 경제에도 도움을 주고 잇으며 영국정부 역시 일부 사람들은 시민권을 준다고 알고 잇으나 시민권은 아니고 거주권을 주고 연금및 의료 해택도 주고 있으나 뭔지 모자라는 부분이 있어 가끔 제대한 구르타 노장들이 영국에 살수 있게 하여 달라고 데모도 하고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무기로는 쿠크리라는 한쪽날이 날카로운 굽어진 칼이 유명하다.

 

 

 인류의 직업 가운데 용병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것도 드물다. 기원전 13세기 이집트 고대 왕국의 람세스 2세는 1만여명의 용병을 고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대 그리스나 페르시아 왕들도 전쟁에 용병들을 활용했다는 기록들이 나온다. 고대 로마에서는 용병 출신들이 중앙정치에 개입하기도 했다. 로마제국이 몰락한 원인 중 하나로 용병들의 발호를 꼽는 역사학자들도 있다. 

 

 중세와 근세에서도 용병이 있었다. 르네상스시대의 전쟁은 용병들에 의해 치러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스위스 용병대는 수많은 전투에서 이름을 떨쳤다. 스위스는 국토 대부분이 산지로, 가난해서 일찍부터 용병업으로 생계를 꾸렸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1527년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가 군대를 이끌고 바티칸을 침공했을 때 스위스 용병들이 보여준 용맹함은 초인적이었다. 처음부터 중과부적이었지만 바티칸을 지키기 위해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았다. 189명의 용병 대부분이 장렬하게 전사했다. 그사이 교황 클레멘스 7세는 비밀통로로 바티칸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지금도 교황청 근위대는 스위스 용병들이 맡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식민지 개척에 용병을 활용했다.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이다. 그 시기에 용맹을 떨친 용병은 네팔의 구르카족이었다.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통해 구르카족을 고용, 식민지 경영에 활용했다. 1814년 네팔을 침공했을 때 구르카족 전사들은 영국군을 공포에 떨게 했다. 영국군은 신식 화학무기로 무장했음에도 구크리라는 단검 하나를 지닌 구르카족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전쟁이 끝난 뒤 영국군은 이들의 용맹을 높이 평가해 용병으로 고용하기 시작했다. 프랑스도 루이 필리프 1세 때인 1831년 알제리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외인부대를 창설했다. 5년간 의무복무를 마치면 시민권을 주었다.

 

 구르카 용병은 현존하는 수많은 용병 가운데서도 가장 용감한 용병으로 꼽힌다.

 

 구르카(Gurkha)족은 네팔 중서부 산악지대에 사는 소수민족으로 영국, 인도, 싱가포르 등에서 수천명이 용병으로 활동하고 있다. 싱가포르 경찰이 오는 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 기간에 현장 경비와 보안을 위해 이들을 투입하기로 했다. 용병의 역사도 길지만 쓰임새도 다양하다.

 

 

네팔인 생활 풍습

 네팔인은 동부 파하리(Pahari)로 잘 알려진 인종으로 네팔지역에 주로 많이 살고있다. 이들은 국가의 공식언어인 네팔어를 사용한다. 네팔인들은 북부 인도인들과 비슷한 문화를 지니고 있으며 그들의 종교적인 관습 또한 인도의 힌두 카스트 제도를 모방하여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네팔인들은 구릉지대에 마을을 형성하여 살고 있으며,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민족의 특징대로 긴 여정의 여행에 있어서 걸어다니는 것에 익숙하다. 그들의 성격은 활동적이며 유머가 있고 재치가 있으며, 자부심이 강한 민족으로 잘 알려져 있다.

 

 네팔인들은 열심히 일하여 산등성이의 계단식 농지를 경작하는 농부들이다. 논벼가 몬순 기간 동안 재배되는 반면 밭벼, 옥수수, 수수, 밀은 여름과 겨울기간 동안 마른 땅에 재배한다. 그들은 또한 가족들의 식사에 사용하기 위하여 야채도 재배하며, 대부분의 농부들은 고기를 얻기 위해서 버팔로와 염소를 키우며 우유를 위하여 젖소를 사육한다.

 

 네팔인들의 마을은 농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마을은 일반적으로 강이나 시내가 있는 구릉지대에 위치하며, 집들은 좁은 길로 연결되어 있다. 때때로 이 여러갈래의 길들은 여행자들이 쉬는 장소나 마을 사람들의 회의 장소로 사용되는 큰 나무 근처에서 함께 만난다. 또한, 중요한 사원이나 수도원이 있는 좀 더 큰 마을들도 많이 있다.

 

 가옥의 지붕 재료로는 일반적으로 함석이나 마른 풀을 이용하고 벽은 진흙 벽돌을 사용한다. 집의 바닥부분은 붉은 점토로 칠하고 벽의 윗부분은 흰 칠을 주로 한다. 가옥은 일반적으로 2층 이상으로 지어진다. 부엌과 거실의 위치는 집 주변을 돌아다니는 길 잃은 동물들로부터 나온 오물을 피하기 위해 2층에 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베를 짜는 일과 함께 가족의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앞마당이 갖추워지는 것을 선호한다.

 

 네팔은 왕을 힌두신, 즉 창조의 신인 비쉬누(Vishnu)신의 화신으로서 추앙하는 힌두 왕국이다. 대부분의 네팔인들이 힌두신을 믿는 힌두교도이지만 그 외에 많은 수의 무슬림 그리고 불교도들이 있다.

 

 

네팔 기후

 네팔은 북위 27도~30도로 기후의 큰 특징은 6월~9월의 우기와 10월~ 5월의 건기로 나뉘어지며, 여행하기에 적합한 계절은 건기로 특히 히말라야 파노라마의 장관을 볼 수 있는 최고의 시기는 11월~2월이다.

 

 우기 때는 연 강수량의 약 80%의 비가 내리며 열대와 아열대의 기후와는 달리 많은 양의 비가 지속적으로 오는 것이아니라, 하루  한 두차례 적당량이 내리므로 잠시 비를 피하였다가 트레킹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년설의 파노라마는 5일 중 하루 정도 밖에 볼 수 없고, 특히 해발 1,000m~2,000m 사이의 정글 지대에서는 거머리(네팔어로 주가)에 주의해야 한다. 안나푸르나 산군에서는 우기라도 강우량이 적은 편이다.

 

 

 건기에는 연 강수량의 약 20%의 비가 내리고 3일 중 이틀 정도 맑은 날을 기대할 수 있다.

 카투만두시는 해발 1,300m-1,400m 고지대의 분지로 이루어져 있어 4월~9월에는 연평균 최고 기온이 약 27°C~28°C이고, 12~2월은 약 17°C~19°C 정도이다. 가장 추운 1월에는 최저 기온이 2°C 정도이다.

 

 포카라는 네팔의 중앙에 위치하며, 해발 850m의 도시이다. 포카라는 1월을 제외하고는 평균기온이 20°C 이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고, 4~9월은 평균 28°C 정도이다.

 

 

네팔 역사

 현재의 카트만두 분지에는 본래 호수물이 괴어 있어서 네팔계곡이라고도 불려 왔는데, 네팔이란 국명은 그 계곡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1769년 구르카 왕조의 나라얀 왕이 네와르족을 정복, 통일 국가를 수립했으며 1814년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배, 영토를 할양했다가 1923년 되찾았다.

 

 1846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라나 가문이 전제정치를 계속하다 1951년 루부반 왕이 인도의 지원으로 왕정을 회복했다.

 

 1955년에 루부반 국왕이 사망하자 마헨드라국왕이 계승하여 부족장 중심의 봉건정치를 개혁하고, 59년 신헌법을 공포, 최초의 총선거를 시행하는 등 입헌왕정이 실현되었다. 그러나 60년 말 왕권의 축소를 두려워한 국왕은 갑자기 각료를 체포하고 의회를 해산하여 헌법을 정지시킨 뒤 국왕이 직접 다스렸다.

 

 1962년 다시 신헌법을 제정하여 '판차야트 제도(Panchayat system: 평의회제도)'라 일컬어지는 대의제도를 기반으로 국왕에게 권한을 집중하였다. 마헨드라왕이 72년에 죽자, 그의 아들 비렌드라왕이 왕위를 계승해 75년 대관식을 올렸다.

 

 1990년 2월 이래 민주화운동이 격화되어 판차야트 제도가 폐지되고, 복수정당제가 부활하였다. 1990년 11월 비렌드라왕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굴복하고 신헌법을 공포하였으며 1991년 다당제 총선을 실시해 네팔의 민주주의 정착에 물꼬를 텄다.

 

 그러나 2001년 5월 왕세자 디펜드라의 총기난사 사건으로 비렌드라 국왕과 아이스와랴 왕비 등 왕족 8명이 숨졌으며, 디펜드라 왕세자도 자살을 시도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비렌드라 국왕의 사망에 따라 그해 6월 갸넨드라 왕자가 국왕에 즉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오주의 반군

 네팔에서는 군주제 타도와 공산국가 건설을 목표로 마오쩌둥(毛澤東) 노선을 따르는 반군이 1996년부터 정부측과 무력충돌을 벌여왔으며 이 기간동안 9,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양측은 2001년과 2003년 2차례에 걸쳐 평화협상을 시도했으나 군주제에 대한 입장을 좁히지 못해 협상이 결렬됐다.

 반군은 현재 국토의 40%를 장악한 채 수도 카트만두를 압박하고 있으며 정부군은 미국·인도 등의 지원을 받으며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여행자 안전(치안 상태)

카투만두, 포카라 등 대도시는 비교적 치안이 양호한 편이나, 특히 중서부 지역 등 지방은 지하 공산당 조직인 마오이스트(Maoist)의 준동으로 치안이 불안한 상태임

- 특히 최근들어 마오이스트(Maoist)t들의 폭력이 외국인도 상대로 하는 등 극렬화되고 있어, 가급적 지방으로의 여행은 삼가함이 바람직

 

트레킹시에도 단체 트레킹을 권장하며 개인 또는 여성들만의 트레킹은 위험함

 

대도시의 경우에도 야간 외출 시에는 조심해야 하며 사고 발생시 주재국 경찰의조력을 크게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스스로 신변 안전에 주의하여야 함.

 

주재국에는 북한대사관이 상주하고 있어 아국 대사관과 혼동할 수 있으므로 주의 요함.

 

지방 또는 인근국(인도) 여행시 장거리 버스를 이용할 경우 및 값싼 유숙소에 투숙할 경우 소매치기 또는 절도범이 가끔 있으니 주의를 요함

 

 

 

 

주재국 항공(네팔항공) 또는 국내선을 이용할 경우, 사전 예고 없이 결항, 지연 등 항공일정 변경이 잦으니 손해배상, 타항공으로의 교체가능 여부등을 필히 사전에 확인 후 항공권 구매

 

최근 미국의 대아프칸 공습 및 인도 의사당 테러사건 발생 이후 인도, 파키스탄 등 서남아지역의 치안이 다소 불안하므로, 가급적 이들 지역으로의 여행을 자제하고, 네팔 여행시 미국, 영국, 인도, 파키스탄 등 금번사건과 연관이 많은 국가의 네팔내 시설물로의 접근을 삼가하는 등 최대한 안전에 유의 필요

 

01. 7월 정부측과 마오이스트(Maoist) 측과의 휴전이후 계속되어온 3차례의 양측간 회담이 결국 결렬됨에 따라, 마오이스트(Maoist) 측은 정부와의 휴전 파기를 선언하고 중.서부지역 등의 경찰서, 은행 등을 습격하는 등 대공세를 펼침에 따라 01.11.26 네팔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

 

02.8.28 비상사태 종료되었으며 2003.1.1 정부측과 마오이스트(Maoist)측은 03.1.30 제2차 휴전, 8.17 제3차 협상이 개시되었으나, 8.27 마오이스트(Maoist) 반군측이 일방적으로 휴전상태 및 협상종결을 선언함에 따라 양측간 교전상태 악화

 

 

카트만두의 기후(℃)

도시명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카트만두

최고평균

22

15

17

21

25

26

26

26

25

23

20

16

최저평균

4

6

10

13

17

20

21

21

19

15

9

5

평   균

10

12

15

19

21

23

23

23

22

19

15

11

강우량mm

17

55

2

10

15

30

28

101

200

375

325

187

 

 

 관광 명소

 

 

나가르코트(Nagarkot)

 해발 2,164m의 이 고지는 원래 군사시설을 위해 개발된 곳이나 교통이 좋아지고 뛰어난 풍경이 알려지면서 히말라야의 전망대 관광지가 되었다. 여기서는 랑탕에서 가우리 상카르까지 볼 수 있고 만약 날씨가 좋다면 안나푸르나 남봉부터 에베레스트까지 세계의 가장 높은 봉 우리 10개중에 5개를 한눈에 감삼할 수 있다.

 

 나가르코트는 여행자에게 카트만두에서의 1박 관광 코스로 많이 알려져 있다. 아침의 해돋이나 저녁의 일몰이 인상적이고 밥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정말로 밤에는 별이 아주 가깝게 보여 손만 내밀면 닿을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다.

 카트만두에서 나가르코트까지는 약 30km 떨어져 있다.

 

 이 길은 네팔에서도 가장 괜찮은 도로중 하나로 산악자전거에 흥미가 있는 여행자에게는 추천하고 싶은 길이다.

 짧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려면 아침에 박타풀에 가서 관광을 마치고, 거기서 나가르코트로 가서 일몰을 본 다음 숙박을 하고, 아침 에 일출을 보고 카트만두로 돌아오는 것이 좋다.

단, 이때는 교통편을 자세히 알아보고 출발해야 한다. 잘못하면 박타푸르에서 나갈코트 로 가는 버스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포카라 (Pokhara)

 카트만두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인구 95,000명의 작은 도시인 포카라는 카트만두 서쪽 200km, 해발 고도 900m에 자리하고 있다. 도심의 소란과 번잡함을 피해 이곳의 페와(Pewa), 베그나(begna)와 루파(Rupa)의 호숫가 바나나 나무에 등을 기대고 물속에 비친 안나푸르나와 다울라기리의 거봉을 감상하며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물속에 비친 네팔의 마터호른인 마차푸차레(물고기의 꼬리 형상을 하고 있는 산)의 장관은 특히 인상적이다.

 

포카라 박물관(Pokhara Museum)

 포카라 박물관은 공항과 마헨드라 풀(Mahendra Pul) 중간에 위치하며, 서부 네팔의 토속적인 모자이크를 볼 수 있다. 구릉(Gurung), 타칼리(Thakali), 타루(Tharu) 등의 토속민들의 생활방식과 역사가 선명하게 전시되어 있다. 화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개장을 하며, 10:00~16:00까지 문을 연다.

입장료는 5루피이고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면 10루피를 추가로 받는다.

☎ : 0612041 3

 

 

히말라야 전망대, 사랑코트(Sarangkot - 1,592m)

 사랑코트는 포카라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 전망대이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그림같은 히말라야산이 펼쳐진다. 이곳 사랑코트에서 보이는 계곡과 호수의 전망도 일품이며, 시원하게 불어오는 미풍이 기분을 좋게 한다.

 

 

세계 평화 파고다(World Peace Pagoda)

 일본인이 만들었다고 알려진 거대한 부처의 파고다로, 페와 호수 남쪽 언덕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 안나푸르나 산맥의 웅장함을 배경으로 흰색 건물의 사리탑이 들어서 있어, 그 감동이 배가 된다. 또한 이곳에서 페와 호수와 포카라 도시가 내려다 보여 네팔의 뛰어난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일본 불교기금으로 15년 전에 만들기 시작하여 몇 해 전에 완성된 곰파(수도원)이자, 파고다(돔형태)이다. 페와호 수의 남서쪽과 포카라 타운의 대부분을 볼 수 있는 1,100m의 언덕 위에 지어졌다.

 이곳에 올려면 보트를 타고 호수를 지나, 언덕을 올라야 하며,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어 산책로로도 손색이 없다. 파고다로 오르는 3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중 데비폭포 1km 아래, 샨가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초레파탄에서 걸어 올라가는 방법이 가장 손쉽다. 돌다리를 올라 이 길을 따라 약 45분 정도 가다보면 파고다가 있는 산등성이에 도착할 수 있다.

 또다른 방법은 호수 댐을 가로질러, 논과 울창한 숲사이에 나있는 길을 따라 올라 갈 수 있다. 약 1시간 남짓 소요되는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쿠라인 바타라이 사원라는 작은 사원을 볼 수 있는데 오르는 동안 지루하지 않는 길이다.

 

 

빈다바시니 사원(Bindabasini Temple)

 여신 두르가를 모시는 사원으로 포카라 도시의 주요 지역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작은 언덕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 사원은 새로운 건축양식에 수공예로 장식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바그와티의 돌은 원래 인도의 빈디지역에 있었던 것을 옮겨온 것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돌위에서 쉬었는데, 그 이후로 돌이 들리지가 않아, 그곳에 빈다바시니 사원을 만들어서야 돌을 옮길 수 있었다고 한다.

 재래시장으로 둘러싸인 사원은 종교활동의 중심으로 화요일과 토요일에 사람들이 찾아와 자신의 소원을 빈다.

- 두르가(Durga) : "접근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의미의 불법수호의 선신

 

 

재래시장

 포카라의 전통 재래시장으로 다양한 소수민족의 다양성으로 다채로움을 연출하는 곳이다. 호수가에서 4km 거리에 있고, 시장 자체의 생동적이고, 시끌벅적한 모습을 잘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포카라 시장은 가장 중요한 사원들이 집중되어 있는 곳 중의 하나이다. 시장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사원이나 기념비는 카트만드 계곡의 네와르 건축양식의 동질감을 확인할 수 있다.

 

 

구테스와르 동굴(Gupteswar Gupha)

 포카라 공항에서 싯다르타 고속도로를 따라 남서쪽으로 2km 정도 가다 보면 인공 동굴인 구테스와르 구파가 있다. 데비폭포에서 오른쪽으로 가로질러 입구가 있고, 동굴길이는 약 3km에 달한다. 몇개의 커다란 홀크기의 방과 기어서 들어갈수 있는 네개의 통로가 나 있다. 이 동굴은 힌두신앙의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시바신의 남근상이 발견되어서 발견 당시 모습으로 이곳에 보존되고 있다.

 동굴 입장은 유료이며, 내부 사진 촬영은 금지 되어 있다.

 

 

페와 호수(Phewa Lake)

 포카라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페와호수는 바이담과 파르디구역을 따라 위치하고 있는데 길이가 5km 정도이고 폭이 좁은 곳은 100m, 넓은 곳은 2km 정도이다. 호수에서 수영도 가능하지만 현지인들은 생활 용수로 쓰고 있으므로 조심하는 것이 좋다. 이곳의 가장 큰 볼거리인, 손에 잡힐 듯이 들어오는 거대한 산봉우리가 만들어 내는 히말라야의 실루엣은 장관을 이룬다. 호수 남쪽에 있는 인공 댐은 수년 전에 수력발전 용으로 건설되었다.

 

 

마헨드라 구파 동굴(Mahendra Gupha Cave)

 포카라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자연의 경이이다. 이 큰 석회암 동굴은 현지인들에게는 박쥐의 집으로 알려져 있다. 포카라에서 북쪽으로 걸어서 약 2시간의 거리에 있는데, 동굴 안의 종유석과 석순을 보기 위해서는 현지인 뿐만 아니라 손전등도 준비하는 게 좋다.

 

 

레이크 사이드(Lake Side)

 호반의 잔디밭을 한가롭게 거니는 것도 좋고, 노점을 구경하거나, 쥬스 바에서 열대 생과일 쥬스를 마시는 것도 좋다. 페와 호수의 동쪽 해안에 걸쳐 있으며, 관광객을 겨냥한 호텔, 레스토랑, 토산물 가게 등이 줄지어 있는 가장 번화한 곳이다.

 

 

데비드 폴(David Fall)

 포카라의 서남쪽 탄센으로 가는 고속도로로 약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티벳 난민촌 입구 100m 앞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있다. 이 폭포의 이름은 데비드(David)라는 사람이 떨어졌다고 '데비드 폴(David Fall)'이라 불리고 있다고 한다. 폭포 입구에는 찻집이 있고, 쉘파족과 티벳인의 노점도 있다. 페와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파르디 콜라에 세워진 다리 바로 상류에 있는 폭포로서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은 암벽을 형성하고 있는 큰 굴에서 땅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괴한 장소이다.

 

 

르카(Gorkha)

 네팔 중앙에 있는 도시.

 카트만두 북서쪽 80km지점, 히말출리산() 남쪽 기슭에 위치.

 네팔 왕가(王家)의 출신지로 알려져 있다.

 1559년 드라비아샤가 이곳에 소왕국을 건설하였다.

 그후 1768년 그의 자손인 프리트비 나라얀샤가 카트만두의 말라 왕조를 정복하고, 모든 왕국을 통일해서 수도를 카트만두로 옮긴 이후에는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현재는 조용한 지방도시로 명맥을 잇고 있다.

 이곳에는 구르카왕조의 선조를 모시는 고라크나트 묘()를 비롯하여 수많은 힌두교 사원들이 있다.

 구왕궁을 비롯한 많은 사원들이 있는 카트만두와 포카라의 중간에 위치한 한가로운 산촌으로 현국왕의 선조에 해당하는 고르카 왕조가 그 거점으로 하고 있던 역사적인 토지이다.

 카트만두와 포카라에서 각각 직통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룸비니 (Lumbini)

 룸비니는 불교 4대 성지 중의 하나로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곳이다. 지금은 네팔의 영토에 속하며, 흰 눈을 잇는 히말라야 봉이 성스럽게 보이는 곳으로 인도와의 국경에서 약 20km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약 2600년전 석가족의 왕국이 이 지방에 있었고 국왕 정반왕의 부인 마야데비 왕비가 산달이 가까워지자 친정을 향해 길을 가던 중 그 일행이 카필라성과 콜리성 경계 부근의 룸비니 동산에 이르러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이때 백화가 만발한 꽃동산을 거닐던 성모 마야데비 부인이 꽃이 만발한 무우수 나뭇가지를 잡는 순간 오른쪽 옆구리로 아기가 탄생하였다는 부처님 탄신 설화의 고장으로 불교성지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다. 또한 신라승 혜초는 8세기에 '방향을 잡기 어렵도록 숲이 무성하여 헤매기 일쑤인데다, 도적들마저 출몰하는'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이곳을 방문 했다고 한다.

 

 이 룸비니라는 명칭은 마야 부인의 친정 어머니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룸비니는 석존이 탄생했던 장소라는 것 외엔 그 어느 때도 번창하였던 적이 없었던 듯, 이곳에 미치는 불교의 영향력이 줄어들 때마다 밀림으로 덮여버리곤 하였다. 1896년 발굴 당시 이곳을 룸비니로 확인시켜 줄 수 있었던 유일한 흔적은 아쇼카왕이 세운 석주뿐이었다고 한다.

 

 미얀마 출신의 우 탄트(U Tant)가 U.N 사무총장직을 수행하던 1967년에 이곳을 순례한 후, 그 보존 상태에 충격을 받고 각국에 호소하여 기금을 모으며 유적지를 중심으로 한 인근 일대의 정비 작업과 개발 계획을 만들었다. 이 계획에 따라 네팔 측에 전달된 기부금의 상당 액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려 개발 계획은 지리멸렬한 상태였다. 그러나 현재 네팔 당국과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개발 사업이 진행 중에 있다. 세계적인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이 공사가 완성될 즈음엔 아름다운 룸비니를 볼 수 있게 될것이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20km 지점에 석가족의 거성이었던 카필라바스투(카필라성)가 있다. 지금은 마야데비 부인을 기념하는 사당과 연못만이 룸비니를 지키고 있으며, B.C 249년경 아쇼카 대왕이 이 성지를 기념 하기 위하여 세운 아쇼카대왕 석주가 성지 임을 입증하고 있다.

 

 

마야부인 사당(Maya Devi Temple)

 원래 마야 부인 사당에 탄생상이 모셔져 있었으나, 현재 공사 중인 관계로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건물에 보관 중이다. 이 탄생상은 '태자의 어머니 마야 부인이 바른 손을 들어 무우수 가지를 잡았을 때 바른쪽 옆구리에서 태자가 태어난 순간'을 새긴 것이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파손되어 있어 그 곁에 새로 만든 탄생상이 함께 모셔져 있다.

 

 

싯다르타 연못(또는 푸스카르니(Phuskarni))

 마야데비 사원의 남쪽으로 잘 단장되어 있는 연못이 보인다. 이 연못이 싯다르타 연못이다. 물론 현재의 연못은 1933-1936 사이에 그 윤곽이 완성된 것이다.

 이 연못은 마야부인이 출산 후 목욕을 했던 장소라 믿어지는 곳이다. 현재의 연못을 통해 그 옛날 연못의 모습을 연상하기는 힘들지만, 이곳은 찾은 법현과 현장 역시 그 연못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법현은 '부인이 목욕한 그 못은 지금도 많은 스님들이 그 물을 마신다'고 기록했다.

 현장은 '이곳에는 샤카족이 목욕하는 연못이 있다. 물은 맑아 거울과 같으며, 갖가지 꽃이 다투어 피고 있다'고 적었다.

 이들 구법승의 기록으로는 당시 연못의 형태와 크기는 알 수 없지만, 당시 연못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싯다르타 연못가에는 아주 큰 보리수(무우수?)나무가 보인다. 아난다가 부처님 사후에 보드가야에서 옮겨 심었다고 믿어지는 나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보리수나무가 꽤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서 뿌리내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2500년이나 된 것이라는 말은 단지 신앙인들의 바램일 뿐이다. 5대째 나무란다.

 마야데비 사원 주변에는 많은 승원터와 스투파 유적이 보인다. 이 유적지 역시 과거 스승이 태어나신 곳을 찾아 자신의 삶을 걸고 수행했던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다.

 

 

아쇼카 석주(Ashoka Pillar)

 BC 245년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왕이 이곳을 찾아 석가모니를 찬미하며 네 개의 불탑과 꼭대기에 말의 형상을 가진 석주 하나를 세웠다고 한다. 룸비니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기념물이다.

 전체 높이 7.2m(땅속 3m), 지름 70cm, 지상 높이 4.11m

 내용은 "많은 신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빠야다시왕(아소카왕의 다른 이름)은 즉위 20년이 지나 이곳을 친히 참배하였다. 이곳에서 '붓다 석카모니'께서 탄생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로 말을 형상을 만들고 돌기둥을 세우도록 하였다.

 이곳에 위대한 분이 탄생했을음 경배하기 위한 것이며, 룸비니 마을은 세금을 면제하고, 추수세는 생산물의 1/8만 거둔다"라고 새겨져 있다.

 그리고 석주의 꼭대기 부분에는 '옴 마니 반메 홈'이라는 만다라가 티벳 문자로 새겨져 있다.

 

 아쇼카 왕의 석주는 룸비니가 부처님의 탄생지임을 말하고 있으며, 그러한 사실에 대한 믿음이 꽤 오래된 것임을 알려준다. 7세기 경, 이곳을 찾은 현장 역시 아쇼카 왕의 석주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사천왕이 싯다르타를 받았던 스투파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돌기둥이 있다. 그 석주 위에는 말의 상이 올려져 있는데, 아쇼카 왕이 세운 것이다. 그것은 나중에 부러져 땅으로 넘어졌다.'

 현재의 석주에는 말의 상이 놓인 흔적을 찾을 길 없다. 그러나 1976~1978년의 발굴 과정에서, 말갈기로 추정되는 석재 파편을 발견함으로써, 이 석주가 기록에서 말하는 아쇼카 왕의 석주인 것으로 믿어진다.

 

 

 

 

 

치트완 국립공원(Chitwan National Park)

 원래 나라가(家)의 사냥터로 개발되었다가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 공원은 932km²의 면적으로 네팔에선 가장 큰 야생동물 보호구역이다.

 

 1911년 영국왕 조지5세와 그 일행들이 단 한번의 사냥으로 39마리의 호랑이와 18마리의 코뿔소를 잡았을 만큼 1950년대 이전에는 많은 동물들이 서식했으나 계속된 영국인과 네팔 귀족들의 무분별한 사냥과 밀렵, 그리고 히말라야 산지에서 내려온 이주민들에 의해 주위의 밀림이 농토로 개발되어 대부분의 야생동물이 멸종되어 버렸다.

 

 지금은 약 80마리의 호랑이와 400마리의 코뿔소 그리고 여러 아열대의 동식물이 정부의 보호 아래 살고 있다. 치트완 공원에 외국인이 찾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1980년대 까지는 공원 주위에 숙박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아 많은 관광객이 찾지 않았으나 가격대가 다양한 숙소들이 지어지고 위락시설들이 생기고 또 정글 사파리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여행상품이 개발되면서 단체 관광객 뿐만 아니라 일반 배낭여행자들도 2박 3일 정도의 짧은 일정으로 이곳을 찾고 있다.

 

 

 

 

 

네팔 트레킹

 네팔에서 트레킹 코스는 일반적으로 히말라야 산군마다 잘 발달되어 있으나 국내에 많이 알려져 있는 지역은 에베레스트의 쿰부지역, 안나푸르나, 랑탕 히말의 헬람부이다.

 

 안나푸르나 지역은 카트만두에서 경 비행기로 포크라(850m)에 도착하면 쾌청한 날씨에 안나푸르나 산군이 보이며 페와호수를 좌측으로 세티강의 서쪽지류인 얌디강을 따라 베레탄티에서 시작하여 고라파니(3,000m)를 지나 푼할언덕(3,200m)에 오르면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 산군 북서쪽의 다올라기리 산군 등이 일출의 빛에 깃들여 아름다운 장관을 담을 수 있다. 고파니에서 내려가는 길은 다른 트레킹 코스와는 달리 올라오던 길과 다른 데오날리 언덕을 넘어 간드렁, 난드렁으로 이어지는 코스로 정글지대이며 울창하게 우거진 대 자연의의 장엄함을 느낄 것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온화하고 강우량도 적은 편으로 아름다운 히말라야의 파노라마를 볼 수 있는 코스로 트레커들에게는 가장 인기있는 코스이다.

 

 에베레스트 지역은 카트만두에서 경비행기를 이용하여 루크라(2,000m)에 도착하면 비로서 트레킹이 시작되며 왕복 6일간에 걸쳐 3,800m의 당포체에 도착해야 만이 에베레스트 산군의 파노라마를 볼 수 있다. 남체바잘에 올라서야 흰눈을 바라볼 수 있고, 좌우로 웅장한 7해발 7,000m급 산들의 모습들로 단순한 면이 있고, 현지 주민들은 매우 순박한 편이다.

 

 랑탕히말은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알려져 있고 카트만두에서 북쪽으로 8시간(차량) 소요되며, 트리슬리 바자르를  지나 트리슬리 강을 따라 북쪽으로 둔체마을에서부터 시작하여 4일간의 트레킹은 좌우로 랑탕리룽(7,246m)이 있는 랑탕히말과 쥬갈히말의 6,000m~7,000m급 산들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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