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Islamic Republic of Pakistan)

 

 파키스탄은 남아시아에 있는 국가이다. 정식 명칭은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Islamic Republic of Pakistan)이다. 파키스탄의 인구는 2억 명으로, 전 세계에서 6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자 인도네시아에 이어 2번째로 무슬림이 많은 나라이다. 수도는 이슬라마바드이며, 주요 도시로는 카라치, 라호르, 라왈핀디가 있다.

 

 파키스탄이라는 이름은 우르두어와 페르시아어로 "신성한 땅"이라는 뜻으로, 파키스탄을 구성하는 5개 지역인 펀자브(Punjab), 아프간(Afghan), 카슈미르(Kashmir), 신드(Sindh), 발루치스탄(Baluchistan)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조어이다.

☞ 다른 지도

 

 

 파키스탄은 지형학적으로 대고원, 발루치스탄 고원, 인더스 평원, 사막지대의 4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최북단에 자리잡은 대고원은 히말라야 및 트랜스히말라야 산맥(카라코람 산맥파미르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발 8,611m의 K2와 해발 8,126m의 낭가파르바트와 같은 세계 최고봉들을 포함하고 있다.

 

 서부와 남서부를 이루는 발루치스탄 고원은 해발 약 300m의 중단된 고원으로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많은 산맥들이 가로지르고 있다.

 

 동쪽으로 펼쳐진 면적 52만㎢의 인더스 평원은 파키스탄에서 가장 번창하는 농업지역으로 파키스탄 북부 포트와르 고원 가장자리에서 남쪽으로 아라비아 해까지 1,000∼1,100km 뻗어 있다.

 

 남동부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탈·촐리스탄·타르 등의 사막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 3개 사막은 모두 인도 서부 타르 사막의 북쪽 또는 서쪽 연장지대이다.

주요강은 남서쪽으로 흐르는 인더스 강이며, 그 지류로는 체나브·젤룸·라비·수틀레지 강이 있다. 퀘타 지역과 북부지역에서는 강한 지진이 자주 일어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

 

 대륙성기후로 기온의 변화가 심한 것이 특징이다. 1월(겨울)기온은 인더스 평원의 14℃에서 연안지역의 20℃, 높은 산악지역(460m 이상)은 -20℃ 사이를 오르내리며, 7월(여름)은 높은 산악지역의 0℃에서 연안지역의 29℃, 남동부 사막지역의 35℃ 사이를 오르내리는 등 편차가 심하다. 연안지역은 남서계절풍의 영향으로 약 150∼200㎜의 비가 내리며, 강유역은 380㎜, 북부 산악지역은 1,000㎜ 이상의 비가 내린다. 강우량은 해마다 달라지며 홍수와 가뭄이 연이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인더스 강 하류 강변을 따라 어느 정도 숲이 형성되어 있지만, 숲으로 뒤덮인 산비탈을 제외하면 대체로 억센 풀, 마른 덤불, 관목밖에 자라지 않는다. 북부 산악지역에는 야생 동물이 많이 서식하는데, 그 가운데 불곰· 히말라야검은곰· 표범 및 여러 종류의 야생 양이 있다. 파키스탄에는 석탄· 철광석· 크로마이트· 석고· 구리· 암염· 대리석 및 거의 개발되지 않은 다른 여러 가지 광물자원이 있다. 가장 가치 있는 자원인 천연 가스는 세계 총매장량 가운데 약 0.5%를 차지한다.

 

 

개 요

❋ 수 도 : 이슬라마바드 (Islamabad, 120만 명)

❋ 인 구 : 1억 9천 7백만 명(2016년 예측치)

❋ GDP : 2,365억$(2015년. 세계 45위)

❋ 기 후 : 지역에 따라 열대 또는 아열대 건조기후

❋ 면 적 : 796,095㎢(세계 36위. 한반도의 3.6배)

❋ 주요도시 : 카라치(Karachi 약 1,600만 명), 라호르(Lahore 510만 명)

❋ 주요민족 : 인도아리안족, 드라비다족, 터키아리안족

❋ 주요언어 : 우루두어(Urdu공용어), 펀잡어(Punjab 56.6%)

❋ 종 교 : 이슬람교(Islam 97%), 기독교, 힌두교 등

 

 

지 리

 남서쪽은 이란, 서쪽 및 북서쪽은 아프가니스탄, 동북쪽의 중국과 일부 접경하고 있는 파키스탄은 동북쪽과 서북쪽은 산악지역으로 거친 반면, 인더스강 유역은 평원지대이다. 카이버 패스(Khyber Pass)는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주요 도로로, 인도아대륙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통로역할을 하고 있다.

 

 

기 후

 고온건조한 아열대기후로, 영하에서 50℃까지의 큰 기온 분포를 보이고 있다. 9월~2월에는 건조하여 생활하기에 적합한 기온을 보이고, 3월~8월사이에는 여름으로 낮기온이 최고 50℃까지 오르기도 한다. 특히 7~8월은 몬순기후로서 많은 비로 인해 인더스강이 범람하기도 한다. 히말라야 남부산악지역과 주변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부족한 강우량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비는 7월에 집중적으로 내린다.

 

이슬라마바드 기후(℃)

지 역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이슬라마바드

최고평균

6

7

11

17

22

25

22

21

21

18

14

9

최저평균

0

0

4

9

13

16

15

15

12

9

5

1

평    균

3

3

7

13

17

20

19

18

17

14

9

5

강우일수

 

 

 

 

 

 

 

 

 

 

 

 

강우량mm

58

53

69

54

40

29

256

250

96

24

18

41

 

 

사 회

 미디어 매체로 비쳐지는 파키스탄의 모습은 정치적 혼란, 폭력사태 등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것은 극히 일부분이 확대 해석된 경우이고 실상 파키스탄 사람들은 그 어느 여행지보다 순수함과 종교적인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시 차

 그리니치표준시 GMT+5로 GMT+9인 한국시간보다 4시간 늦다.

 

 

통 화

 공식 통화는 파키스칸 루피(Pakistani Rupee, PKR)로 1루피=100페사(paisa), 동전은 25페사~2루피까지, 지폐는 1루피~1000루피까지 있다.

 1달러 86PRs (2011.07 현재)

 

 

전 압

 220V / 50 Hz. 전력공급이 불안정하고, 정전사고도 잦다. TV/VCR 포맷은 PAL 시스템을 사용하므로, 우리나라가 채택하여 사용되고 있는 NTSC 방식과 다르므로, 사용시 주의해야 한다.

 

 

주요 연락처

- 경찰(이슬라마바드): 15

- 외교단지 : 921-9674, 920-6878

- 앰블런스 : 115

- 소방서 : 16

- Al Shifa Hospital병원 : 444-6806~30 (응급실: 523480)

- Shaheen Chemist약국(24시간 영업): 282-4759

 

 

역 사

 파키스탄은 수천년전부터 인더스강 유역 평원지대에서 자리를 잡고 수많은 민족의 역사가 남아 있다. 기원전 1,500년 경 고도의 문명을 이룩하였으며, 기원전 6세기, 파키스탄을 포함한 인도 전역에 불교가 확산되었다.

 

 11세기 이슬람교도가 이곳을 침략하였고, 16세기에 이르러 이슬람교도인 바부르가 무굴제국을 일으켜, 전국을 통일하였다. 17세기초 파키스탄에 들어온 영국인들에 의해 무굴의 세력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어 결국 19세기 중엽에는 인도반도가 영국의 지배권아래 들어가게 된다. 영국의 통치하인 1906년 전인도 회교도연맹이 조직하여 '파키스탄(淸淨한 나라라는 뜻)'운동을 펼치게 된다. 힌두교의 억압에서 벗어나 독립된 무슬림국가를 세우려는 노력이 왕성해지면서, 1947년 영국과 인도의 합의하에, 지금의 방글라데시인 '동 파키스탄'과 파키스탄인 '서 파키스탄'으로 분리되어 영국연방내의 자치령으로서 독립을 이루게 된다.

 

 인민당이 이끄는 서 파키스탄과 아와미동맹이 이끄는 동 파키스탄은 각각 강력한 정당형태를 지닌채 발전하게 된다. 자치권확대를 요구하는 동 파키스탄에 그들의 대립을 켜져 가다, 결국, 1971년 국경분쟁으로 인한 인도와 전쟁에서 승리한 동 파키스탄은 독립하여 방글라데시를 이룩하였고, 서 파키스탄은 파키스탄이라는 국호를 유지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나라 이름의 '파키스탄'의 유래

 2차 세계대전후 오랜 식민지 생활을 청산하고 마침내 독립한 파키스탄. 당시 파키스탄의 영토는 신드, 아프칸, 펀자브, 캐시미르, 발루치스탄이라는 다섯 개의 지방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런 까닭에 각 지역며의 머리글자를 따서 나라 이름이 만들어졌다. 즉 펀자브의 P, 아프칸의 A, 캐시미르의 K, 그리고 이슬람 국가이므로 I를 하나 그 사이에 끼워 넣고, 이어서 신드의 S, 마지막으로 발루치스탄의 TAN을 붙여서 'PAKISTAN'아리는 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이 파키스탄이라는 이름에는 또 다른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한다. 파키스탄의 'Pak'는 힌두스타니어로 '맑고 깨끗함'을 뜻하고, 'Istan'은 페르시아어로 '나라'를 의미한다. 연결해서 읽으면 '맑고 깨끗한 나라'가 되는 셈이다.

 

 이 이름은 당시 영국에서 유학 중이던 어느 학생이 고안해 낸 것이라고 한다.

 

 

주의사항

 이슬람교도의 독특한 문화를 고려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은 여행시 주의해야 한다.

➀ 여성을 촬영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여성은 남편 이외의 얼굴을 보이지는 않는 이슬람 계율이 아직까지 지켜지고 있으며, 특히 '브루카'라는 검정천을 두른 여성에게는 카메라를 향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➁ 혼자 여행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여성은 남성을 동반하여 여행하는 것이 좋다. (남성의 보호를 받은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은 파키스탄 남성의 시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➂ 종교적 발언은 삼가하는 것이 좋다.

 

 

여행 길잡이

 20~40℃의 여름철에는 가벼운 남방이나 셔츠를 준비하는 것이 편하다. 이슬라마바드의 가을은 1~18 ℃정도로 아침저녁에 춥고, 한낮은 활동하기에 적합한 기온을 보인다. 북쪽산악지대 여행시에는 동복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특히, 옷을 준비할 때는 파키스탄의 종교 및 관습을 고려하여, 가능한한 노출이 없는 옷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소매없는 옷이나, 반바지 등은 삼가하는 것이 좋다.)

 

 

 관광 명소

 이슬라마바드(Islamabad) 

 

 파키스탄의 수도인 이슬라마바드(Islamabad)는 포토하르 고원의 북쪽 끝 마르갈라 힐을 배경으로 위치하고 있다.

 쌍둥이 도시인 라왈핀디에 비해 짙푸른 녹음과 널찍하고 평화로운 도시이다. 이 이전까지는 작은 도시였는데, 1960년에서 1970년 사이에 카라치에서 수도를 대체하기 위해 건설된 도시이다.

  1959년 라왈핀디에 수도를 옮긴 후, 다시 1967년 이곳 이슬라마바드로 수도를 옮겨 자리를 잡게 된다.

 

 이 초현대식 도시의 마스트 플랜은 그리스의 건축가인 콘스탄티노 독시아데(Constantinos Doxiades)에 의해 1960년 설계되었다. 1961년 10월부터 건설을 시작하여, 1966년 10월 이슬라마바드의 관공서가 첫 입주함으로서 도시로서의 기능을 하기 시작하였다. 진흙으로 지어진 집과 전형적인 시골의 삶이 녹아있는 이전 마을의 흔적은 아직까지 찾아볼 수 있다.

 이슬라마바드는 현대식건축물들이 늘어선 도시이다. 이슬라마바드는 넓은 3열의 거리와 큰 집들, 우아한 공공건물과 잘 계획된 바자(시장)를 가지고 있다.

 교통혼잡과 많은 인구로 인한 번잡도 드문편이다. 좁은 골목과 슬럼은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훨씬 외곽에 위치해 있다.

 

 

샤 파이잘 사원(Shah Faisal Mosque)

 190㎡ 대지위에 높이 88m, 수용능력 74,000명의 샤 파이잘 사원는 마갈라언덕(Margalla Hills) 아래에 지어진 모스크(Mosque; 이슬람교 사원)로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모스크의 디자인은 국제적인 공모를 통해 뽑힌 건축가 반닷 달오케이(Vadat Dalokay)가 디자인했고, 건축비 US$5000만가 들었으며, 그 비용은 사우디 아라비아 파이잘 왕조가 헌납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잘(Faisal)왕에 이름을 따서 이 이슬람교 사원을 샤파이잘 사원이라 부르게 되었다.

 오토만 건축양식(Ottoman-style)으로 만들어진 파이잘 마스지드왕의 미네레트(회교도의 광탑)와 콘크리트 지붕으로 덮여있는 형태의 샤 파이잘 사원은 오늘날 파키스탄에서도 많이 보여지는 건축양식이다.

 동시에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정식용 시설과 이슬람 연구 재단, 인쇄시설, 카페테리아(셀프서비스가능한 간이식당), 박물관과 사원 관리사무실등이 들어가 있다. 1만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샤파이잘 사원은 높이 88m의 미나렛과 40m의 본관이 있으며, 주 현관과 베란다, 광장까지 참배자들로 가득차게 되면 샤 파이잘 사원의 최대 수용인원은 10만 명까지 이르게 된다.

 이슬라마배드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녹색으로 뒤덮여 있는 경광에 놀랄 것이다.

 이곳에 샤파이잘 사원이 세워진 이래, 지속적으로 나무를 심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러서는 600만 그루가 넘은 나무들이 사원주위로 둘러싸여 있다.

 다만에코(Daman-e-Koh)에서 보면 마갈라언덕을 테라스로 둘러싸인 경관을 배경으로힌 웅장한 모습의 샤파잘사원을 정면에서 볼 수 있다.

 

 

장미와 쟈스민 공원

 20,360㎡ 대지에 일년생 꽃과 장미가 봄에 활짝피게 되면 250가지의 다양한 장미꽃과 자스민으로 정원이 온통 뒤덮히게 된다.

 꽃축제가 봄에 열리는데 외래종과 토속종의 다양한 나무와 화려한 색의 장미들과 함께 다양한 관목과 식물이 어우려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 낸다. 가까이에서 관광객의 캠프가 가능하다.

 

 

라왈핀디 아유브 공원(Ayub National Park)

 아유브 국립 공원은 약 2,300에이크로 뒤덮여 있다. 국립공원 내에는 유원지와 수족관과 정원 레스토랑, 보트시설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는 호수가 자리잡고 있다.

 인근라호르 북서쪽 275km에 라왈핀디 공원은 샴사바드(Shamsabad)의 머리(Murree)도로에 있다. 1991년에 문을 열어, 유원지와 잔디밭, 분수, 꽃들로 우거져 있다.

 

 

다마네코 언덕 공원(Daman-E-Koh Hill Park)

 층층 계단형태로 되어 있는 다마네코 언덕 공원은 이스라마바드의 북쪽 마르갈라 언덕(Margalla Hills)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스라마바드 전경을 훤히 볼수 있어 '뷰 포인트(View Point)'로 알려져 있다.

 레스토랑과 스낵바 시설이 있어 이용가능하다. 가족과 친구와 더불어 밤에 소풍하기에 아주 이상적인 곳으로, 금요일에는 사람들이 매우 붐빈다.

 

 

라왈핀디 라자바자(Raja Bazar)

 이슬라마바드 아래쪽에 위치한 라왈핀디 라자 바자는 상당히 큰 규모의 재래시장이다. 1959년부터 1967년 파키스탄의 임시 수도였던 라왈핀디는 인구 200만 명이 사는 도시로 사람들의 북적거림으로 활기찬 도시이다.

 이외에도 라왈핀디내에는 사따(Saddar), 사라파(Sarafa), 머리(Murree) 시장이 있다. 이곳 시장은 이웃지역의 세공품으로 넘쳐난다.

 

 

록 비르사(Lok Virsa)

 샤까르마리앙 언덕(Shakarparian Hill)에서 내려오는 길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 문화와 민속 국립기관으로 파키스탄의 미속과 전통문화의 보존을 책임지고 있다. 샤가르마리앙 언덕부근의 전통문화박물관은 수를 놓아 만든 전통의상, 보석, 목각, 금속공예, 상아 조각 등을 보관하는 거대한 박물관이다.

 전통 건축물 외관에는 프레스코(fresco, 갓 칠한 회벽토에 수채화를 그리는 기법), 거울공예, 대리석 상감, 모자익, 치장벽토 세공 트레서리(고딕식 창의 장식격자)등이 전시되어 있다. 로 비르사 유물 박물관은 민족학, 인류학, 민속학, 음악, 예술, 역사와 기술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구비하고 있다.

 

 

샤까르빠리앙 언덕 정원(Shakarparian Hill Garden)

 샤까르빠리앙 언덕은 해발 609m에 자리잡고 있다. 이스라마바드와 라왈핀디사이에 있는 낮은 언덕으로, 이스라마바드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샤까르빠리앙의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샤까르빠리앙언덕의 테라스정원에서 내려다 보면 머리 언덕(Murree Hill)과 마르갈라 언덕(Margalla Hill), 라왈 호수(Rawal Lake), 라왈핀디 이스라마바드(Rawalpindi Islamabad)등이 훤히 펼쳐진다. 스낵바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라왈 호수(Rawal Lake)

 라왈 호수(Rawal Lake)는 8.8㎢에 펼쳐진 인공 호수로 테라스정원(다만에코 언덕공원)과 더불어 소풍, 낚시, 보트 타기에 이상적인 곳이다.

 이스라마바드-라왈핀디에서 이곳 라왈 호수에서 물을 끌어다 쓰기도 하는 곳이다. PTDC 잘타랑 레스토랑(PTDC Jaltarang restaurant) 스낵바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로터스 호수(Lotus Lake)

 산책로와 꽃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조그마한 호수로, 연꽃이 있다. 록 비르사를 지나면, 바로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다.

 

 

 

 

 

 라호르(Lahore)

 라비강의 동안에 위치하고 있는 경이의 도시 라호르(Lahore)는 파키스탄의 카리스마를 상징한다. 라호르는 인구 8백50만의 생기가 넘치는 펀잡주의 주도이다. 이 도시의 매력은 아름다운 건축물과 사람들이 넘치는 시장이다. 비록 수세기를 지났지만 무굴제국(1500AD~1800AD)의 전통 건물들이 이 도시에 그대로 살아있다. 무굴식의 건축물들은 아마도 가장 매력 넘치는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보통 여기서 이틀 정도를 머물면 어느 정도의 명소를 다 돌아볼 수 있다. 수많은 회교사원들과 시장, 전통 악기로 연주되는 음악 등 다양한 삶의 형태를 여기에서 체험할 수 있다. 라호르 박물관은 이 나라에서는 가장 크고, 파키스탄 곳곳의 유적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 도시의 25km 외곽은 인도와 접경한 지역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곳은 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파키스탄에서 인도로 가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정기 교통편 외에도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라호르에서 암라스터로 가는 기차편이 있고, PIA를 비롯해 외국 국적기가 연결하는 편이 몇 편 있다. 파키스탄의 주요도시들과는 PIA를 비롯해 민항 3사가 연결해 주고 있다.

 기온은 보통 약간 쌀랑한 1월과 2월을 제외하고는 따듯한 편이다.

 

하라파(Harappa)

 1920년대, 파키스탄의 하라파에서의 고분의 발굴이 시작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예상치 않았던 계기로 발굴된 도시로 흥분되었고, 추가로 새롭게 발견된 문명과 연결된 80여개의 마을과 도시를 발굴하게 되었다. 그들은 발견한 최초의 도시를 하라판(Harappan)이라고 불렀으나, 인더스강 문명(Indus River civilization)이라는 명칭으로 보다 일반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언제 그곳에 도시를 수립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불문하다. 하라파 문명은 BC 2250년쯤으로 추측하는 이들도 있고, BC 2500년쯤 혹은 그 이전에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스 문명처럼 하라파는 풍요롭고 생명력이 있는 인더스강의 범람이 잣은 지역에서 성장하였다. 본 도시와 많은 도시들은 강기슭 가까이에 건설되었으나, 인더스강의 파괴적이고 예측불가능한 범람으로 도시들은 자주 자연의 힘에 저항하지 못했다. 서쪽에 있는 인더스강 범람지역인 모헨조-다로(Mohenjo-Daro)는 6번이나 재건될 정도였고, 남쪽에 위치한 하라판는 5번 재건되었다.

 하라판인의 경재 근원은 농업으로 원예에 집중되었다. 거대한 곡창지대가 각각의 도시에 만들어졌고, 곡물의 분배에 있어, 관료제도가 정교하게 운영되었다. 인더스강 계곡은 지금은 비교적 건조하지만, 하라파가 번영했던 당시에는 상당히 습한 지역이었다. 하라파인은 잣은 침수와 높은 습기를 막기 위해, 햇빛에 말려 만든 벽돌을 불에 구워 사용했다. 하라파인이 남긴 유물중에는 코끼리, 사자, 코뿔소등과 같은 습한 곳에서 사는 동물들의 그림이 남아 있어, 그 시대의 주위환경이 습하고, 늪지가 많았음을 반증하고 있다. 또한 낙타, 고양이, 개, 염소, 양, 물소 등 하파란의 다양한 동물 생태를 옆 볼 수 있는 그림도 남아 있다. 도시들은 치밀하게 계산하여 배치하였으며, 재건할 때마다 파괴된 도시의 동일한 방법으로 꼼꼼하게 배치하여 건설하였다. 도시의 길을 만들때에는 주거지역까지 포함하여 열십자 모양의 수직으로 배열하였다.

 특히,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에서 발굴된 거와는 달리, 하라파에서는 단일화된 사원이나 종교적인 유물들이 발굴되지 않고 있다. 공공건물은 단지 경제와 안락한 삶을 영위코저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발굴되어진 다양한 조각상들로부터 보여지는 것은 단일화된 신이 아닌 다양한 신(여신을 포함) 숭배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BC 1700 ~1800년 사이에 하라파의 도시와 마을은 버림받게 되었고, 마침내 흙더미로 뒤덮히게 되었다.

 

 

라호르 국립박물관(Lahore Museum)

 라호르에 있는 오래된 푼잡(Punjab)대학본관에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는 라호르 국립박물관은 1864년 영국 통치기간에 세워진 라호르 국립박물관은 무굴 고딕양식으로 지어졌고, 1894년 문을 열었다. 라호르의 풍부한 문화적 유산중 뛰어난 종교예술품을 보유함으로써, 파키스탄내의 박물관중 큰 규모이다.

 다양한 간다라시대의 불교예술품, 이스람예술품, 필본체, 무기, 의복, 보석등이 전시되고 있으며, 이 박물관에는 무굴제국, 인도-파키스탄, 시크, 영국통치 시대의 다양한 유물이 보관되고 있다.

 

 

무굴 박물관(Mughal Museum)

 라호르 뮬탄도로변에 자리잡고 있는 무굴박물관은 1950년 세워졌다. 상,공업 박물관으로서 파키스탄 경제의 원동력이 되었던 원산품과 공산품등을 보여주고 있다. 무굴박물관은 건물내 한개의 갤러리와 커다란 홀안에 모든 것들을 전시하고 있다.

 홀에 보관된 것들은 뮬탄과 바왈푸르에 생산되는 낙타가죽으로 만든 테이블램브, 파키스탄의 주요도시에서 생산되는 무명실, 악기, 실크 울, 수공예 섬유생산품등이 전시되어 있다.

 페사와르(Peshawar)와 라호르에서 생산되는 구리와 놋쇠, 카라치(Karachi)와 라호르에서의 인형, 시알콧(Sialkot), 구즈란와라(Gujranwala)와 구즈랏(Gujrat), 라호르에서의 장식과 기능성의 세라믹등 파키스탄 각 도시에서 생산되고 있는 다양한 공산품을 볼 수 있다.

 

 

사키르 알리 박물관(Shakir Ali Museum)

 라호르 뉴가든타운에 위치하고 있는 샤키르 알리 박물관은 실제로는 샤키르(Shkir)소유의 집이다. 샤키르 자신이 만든 집은 그가 죽은 후, Idara-I-Saqafat-e-Pakistan에게 팔렸고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1976년 4월 3일 문을 열게 되었다. 예술가의 그림과 명품을 한곳에 보존하려는 의도로 문을 연 샤키르알리 박물관은 일반인에게 공개하기 위해 근대와 전통적인 건축양식의 조화가 이루는 건물로 개관할 의도는 없었다.

 좁고 긴 검은 목재로 된 문과 아치모양의 창문이 나 있고, 입구와 테라스가 있는 층은 길고도 가느다란 적벽돌로 만들어졌다. 화가로서 샤키르 알리는 새로운 세대전체에 명감을 주었다. 그의 집은 그의 예술적 감각과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그의 작품이 팔릴때 마다, 집을 조금씩 만들어 갔다. 그러나, 완성된 집을 보지 못한 채, 그는 세상을 떠났다.

 

 

파키프 카나 박물관(Faqir Khana Museum)

 파키프 카나 박물관은 라호르 바티 게이트 내부에 자리잡고 있다. 토사타나(Toshakhana)는 파키르집안의 개인 박물관으로, 파키르가문이 가장 좋아했던 라호르역사의 축소판이다. 18세기, 부카라(Bukhara)에서 우치사리프(Uch Sharif)로 이주해 온 그들 조상으로부터 6대 이른 지금 세대에 이르는 파키르 가문의 자취가 배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코란(Quran)을 포함한수백점의 17, 18세기 에메랄드와 자수정을 갈아 만든 그림들과 무굴시대의 친필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물이 보관되고 있다. 18세기 무굴왕조가 있었던 의복들과, 왕궁에서 사용했던 카페트, 시크교도들의 무기등의 역사와 관련한 유물도 함께 보관하고 있다.

 

 

아나칼리 바자르(Anarkali Bazar(Market))

 하렘(회교국의 여자의 방)의 무희였던 아나칼리의 이름 따서 세워진 아나칼리 바자르 시장은, 라호르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으로 주변국에서 오는 인파로 항상 북적거리는 곳으로 나디라 베굼(Nadira Begum)또는 샤르프-운-니자(Sharf-un-Nisa)라고 부르기도 한다.

 파키스탄 역사에 있어 번영기였던 아크바르왕, 자한기르왕 시대의 전해 내려 오는 사랑이야기로, 후에 자한기르왕이 된 샤림(Salim)왕자가 무희 아나칼리를 열렬히 사랑했으나, 샤림왕자와의 정분으로 아나칼리가 아크바르(Akbar)왕에게 사형당함으로써 비극적인 러브스토리의 끝을 맺게 된다. 비문에 새겨져 내려 오고 있는 샤림과 아나칼리의 사랑이야기는 많은 영화로 만들어져 오늘날에도 파키스탄인의 가슴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아나칼리 바자르외에도 라호르에는 리버리, 바캇 마켓, 패이스와 많은 다른 쇼핑센터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아시아에서 2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컴퓨터센터, 하피즈 센터(Hafiz Center)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샤리마르 정원(Shalimar Garden)

 라호르동쪽 5km지점에 자리잡고 있는 샤리마르정원은 1642년에 무굴(Mughal)의 황제였던 샤-제한(Shah-Jehan)이 만들었다. 정원은 전형적인 무굴 형식으로 만들었고,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4군데 모서리에 밖을 내다볼 수 있는 타워가 세워져 있다. 원래 7개의 층계모양의 테라스가 있었으나, 지금은 3개 테라스만이 42에이크의 대지 위에 남아 있다. 3개 테라스는 모두 다른 원래 디자인에 맞춰 테라스의 각 층에 맞게 벽돌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수로 아래에 대리석으로 바닥을 만들었으며, 폭포효과를 내기위해, 대리석을 조각한 석판을 만들었다. 2번째 테라스 끝에는 사완 바하돈(Sawan Bhadon)이라 부르는 아름다운 건축물과 3면위에는 물웅덩이를 만들었고 그곳에 벽감으로 사용하기 위해 움푹 들어 놓았다. 작은 오일 램프들이 벽감에 자리를 잡으면 화려한 빛이 물을 물들인다.

 샤리마르 정원은 중요한 리셉션 장소로서 파키스탄에 있어 아직도 자긍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벽외부에는 메라 치라간(Mela Chiraghan)축제가 매년 5월에 열린다. 정원의 첫번째, 두번째 테라스의 독특한 불빛을 일몰 후, 30분 정도 화려하게 정원을 수놓고 있다.

 

 

 

 

 

 카라치(Karachi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신디(Sindh)지역의 핵심도시이며, 파키스탄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카라치는 아라비안해(Arabian Sea) 동쪽해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인더스강의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 인구 8백만 명의 서로 다른 혈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1830년 영국의 통치하에는 작은 어촌과 무역의 도시였으나, 목화와 곡물을 반출하기 위해, 인더스 계곡을 이용하는 주요한 기점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1947년 파키스탄이 독립하였고, 이때 카라치는 새로운 국가의 수도로서, 1959년 라왈핀디로 옮기전까지 12년간 파키스탄의 핵심지역이었다.

 

 카라치는 파키스탄의 가장 규모가 큰 도시로, 무역, 경제, 금융, 교역, 제조업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다. 파키스탄의 국제 무역의 대부분이 이곳 카라치항구에서 이뤄지고 있고, 육지로 둘러싸인 아프카니스탄으로 들어가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1869년 수에즈운하(Suez Canal)가 열리게 되면서부터 카라치는 항만으로써 그 역할이 더욱 더 커지게 되었다.

 1847년 신디(Sindh)의 정복자 찰리 내피어(Charles Napier)는 1백여년 전 카라치를 보고 "동양의 영광이 될 거다(You will yet be the glory of the East)" 라고 말했다. 그 당시에는 작고 보잘 것없는 조그만한 마을에 불과했던 카라치는 오늘날 방대한 교역과 산업의 중심지로 파키스탄의 제1의 도시로 탈바꿈되어 있다. 카라치는 1725년 불모의 땅으로, 아라비안해(Arabian Sea)의 물에 둘러싸여 있었다. 불모의 땅에는 "카라치조쿤(Kalachi-jo-Kun)이라고 불리는 물웅덩이가 있었다. 카라치라는 명칭은 어부의 이름과 "쿤(Kun)"은 '깊은 수로'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카라치조쿤은 "어부 카라치의 깊은 수로"를 의미하고 있다. 몇몇의 진흙 오두막이 이 지역에 퍼져 있었으며, 그 수가 점점 늘어났다. 차츰 마을로서 그 모습을 갖추어 가게 되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성장해 가는 이 마을을 "카라치조코트(Kalachi-jo-Ghote)"라고 불렀다.

 

 

파키스탄 국립 박물관(The National Museum of Pakistan)

 지아우띤 로(Dr. Ziauddin Rd.) 번즈 가든(Burns Gardens)에 자리잡고 있는 파키스탄 국립박물관은 1865년 건축된 고대 건축물 프레르 홀(Frere Hall)에 1951년, 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하라파와 모헨조다로의 인더스 문명의 여러 유물과 간다라 조각품, 불교와 이슬람교의 예술품, 미니어쳐 회화작품, 고대시대 동전 등과 파키스탄 정치에 관한 역사가 필사본으로 보관되어 있다.

 

 

콰이디 아잠 마우솔레움(Quaid-i-Azam Mausoleum)

 파키스탄의 건립자인 무하마드 알리 진나(Muhammad Ali Jinnah, 1876~1948)의 기념비적인인 무덤으로 카라치도시의 53㏊ 자연고원 위에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마우솔레움입구에는 15개의 연속된 분수가 테라스형태로 양쪽에 가로수 길이 나 있다. 각각의 분수대는 가로, 세로 75m 정사각형에 물이 담겨져 있고, 4m 높이의 분수가 뿜어져 나와 그 웅장함과 신비함을 더한다.

 

 건축물의 사면의 벽은 점점 좁아지는 사다리모양 위에 돔이 덮여 있어, 전체의 높이 43m에 이르는 거대한 건축물로, 4면의 벽에는 아치형의 출입문이 나 있다.

 

 내부 공간은 중앙에는 8각형 형태의 의식에 쓰이는 석관이 있으며, 실제 무덤은 바로 지하에 있는 지하방에 자리잡고 있다. 외관과 내부 모두는 대리석으로 마감하였고, 스투코(stucco, 치장벽토)에 의해 돔의 내부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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