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누라다푸라 (Anuradhapura)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

 인구 99,000명으로 스리랑카 최초의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는 B.C. 500년경 수립된 고대도시로써, "아누루따(Anurudda)"라고 일반적으로 불려진다. 스리랑카 불교유적지의 핵심으로 일컫어 지고 있는 이 도시는 기원전 5세기부터 약 1,500년간 스리랑카의 수도였던 고대도시로서, 2000년 이상된 불교 유적이 무수히 많다.

 

 아누라다푸라는 판두카바야(Pandukabhaya)왕에 의해, B.,C.380년에 스리랑카의 수도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고, 1017년까지 1,500여년간 수도로서 화려한 문명을 피었다. 웨와스(Wewas)로 알려진 저수지를 만들고, 관개시설을 확충함으로서, 농업은 번창하였다. 그때 만들어진 저수지는 지금도 사용할 정도로 견고하게 만들어졌다.

 

 B.C. 3세기경에 불교가 유입되면서, 아누라다푸라의 문화에 강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수많은 사원, 거대한 탑과 조각상들이 이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전성기에는 둘레가 80km에 달하는 외벽이 도시 외곽에 건축되었고, 이는 런던보다 넓은 지역으로, 도시 외벽 밖으로 나있는 문을 통해, 도시 근교로 통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스리랑카의 건축학적 면에 있어, 지금 남아 있는 유적들은 아누라다푸라의 찬란한 역사를 단편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있다.

 

 

아누라다푸라 도보 여행

 아누라다푸라의 도시는 신사가, 구시가, 유적지의 세 구역으로 나뉜다. 말와투 강을 끼고 동남쪽에는 신시가, 북동부에는 구시가가, 서쪽에는 유적지가 있다. 신시가에서 구시가는 걸어서 20분 정도의 거리 인데 교통량이 가장 많은 아누라다푸라의 메인 로드인 니바쓰타 세티야 로 Nivaththa Chetiya Para로 연결되어 있다. 이 두 거리에는 버스 터미널과 시장, 우체국, 레스토랑 등이 있는데 이곳 사람들의 생활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곳은 역시 구시가이다. 

 

 

 관광 명소

스리 마하 보리수(Sri maha Bodhi Tree)

 이수루무니야 정사에서 북쪽으로 약 1.2km 지점에 아누라다푸라가 불교의 성지라는 사실을 더욱 강하게 인식시켜 주는 곳 스리 마하 보리수가 있다. 기원전 3세기에 인도 아쇼카 왕의 딸 상가밋타가 인도 부다 가야의 보리수 가지를 가져와서 당시 데바남피야 팃사 왕이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19세기에 들어와서 코끼리를 비롯한 야생 동물로부터 이 보리수를 지키기 위해 주변에 석대와 철책을 만들었다. 지금은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에 기도를 드리러 와, 이 철책에 와우를 묶고 석대 위에 꽃이나 코코넛 등을 공물로 바치고 있다.

 열심히 기도를 드리는 순례자들의 모습에서는 부러울 정도의 신앙심이 느껴진다. 이 곳의 보리수는 푸르고 무성하지만 수령이 2,000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가늘다. 그러나 순례자들의 기도를 받아들일 것만 같은 강한 그 무엇이 느껴진다.

 

 

◈ 바위에 세워진 작은 사원 이수루무니야 정사(Isurumuniya Vihara)

 흔히 록 템플이라 불리는 것이 바로 팃사 웨와 저수지근처에 지어진 이수루무니야 정사이다. 바위를 파낸 듯이 지어진 불당과 바위 위에 세운 다고바, 밝은 색으로 칠해진 불상을 모신 본당, 귀중한 발굴물을 보관하는 보물관은 아누라다푸라의 어떤 유적과도 다른 이색적인 풍취를 느낄 수 있는 사원이다. 기원전 3세기에 세워진 승원의 일부가 복구될 때 사원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본당은 비교적 새 건물이다. 본당에 모신 불상은 도쿄에 있는 천초사의 도움을 받아 색을 다시 입혔다고 한다.

 이곳을 방문하면 우선 사원 뒤에 있는 바위 위로 올라가 보자. 다고바 이외엔 높은 건물이 없는 이 도시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아누라다푸라의 시가지가 동쪽으로는 거대한 누오라 웨와 저수지, 서쪽으로는 팃사 웨와 저수지, 바사웨크 쿠라마 저수지 사이에 낀 나무가 많은 곳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바위 표면에 새겨진 수많은 불교 조각도 빠뜨릴 수 없다. 예부터 쓰던 코끼리, 풍요의 신 파리쟈니와 불의 신 아구니의 조각 등을 보면 옛날 사람들이 무엇을 기원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본당 옆에 있는 보물관에는 사원 북쪽의 왕궁 정원에서 발견되었다는 연인의 상과 왕족의 상이 있다. 연인의 사은 5세기 무렵의 작품이라는데, 여기 조각된 남녀는 기원전 2세기 도투게무누왕의 아들 사리야 왕자와 그의 연인 마라라고 한다.

 

 

미힌탈레(Mihintale)

 아누라다푸라 동쪽 11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미힌탈레는 바위언덕으로, 스리랑카의 불교의 요람지이다.

 B.C. 247년에 데바남피야티싸(Devanampiyatissa)왕이 아소카왕의 아들 마힌다(Mahinda) 왕자로부터 불교를 전승받은 곳으로서, 데바남피야티싸왕은 새로운 종교인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다.

 미힌탈레(마힌다의 언덕)은 곧 불교 전파의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다. 미힌달레의 정상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1840개의 계단을 밟아야 한다.

 꽃나무가 심어져 있는 계단은 Bhathika Abhaya(22B.C~7A.D)왕때 만들어진 것으로, 포손(Poson: 5, 6월경 만월시기)동안에는 언덕과 계단은 거대한 백색으로 장식하여 전역에서 이곳 미힌탈레로 오는 불교순례자들을 맞이하게 된다.

 다시 계단을 조금 올라가면, 마힌다 왕자와 왕이 처음으로 만난 곳에 세웠다는 암바스탈라 대탑이 나타난다. 언덕 꼭대기에 오르면 석가모니의 머리카락을 모셔 놓았다고 하는 마하세야 불탑이 있다. 여기서는 아누라다푸라의 인공호수와 불탑들이 바라보인다. 탑에는 마힌다 왕자의 유골이 모셔져 있다.

 

 

◈ 아누라다푸라의 상징 루완웰리 세야 대탑(Ruwanweli Seya Dagoba)

 버스나 열차의 창 너머로 루완웰리 세야 대탑이 보이기 시작하면 차 안의 사람들은 갑자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누라다푸라의 도착을 알리는 것이 바로 이 탑이다. 루완웰리 세야 대탑은 유적지구 중심부에 세워진 희고 거대한 탑이다. 스리 마하 보리수에서 이 탑에 이르는 길은 가로등이 있는 아름다운 석조 보도로 이어진다. 스리마하 보리수의 돌문을 나와 이 석조 보도를 걷기 시작하면 우선 오른쪽에 로하 파사다라 불리는 돌기둥들이 있다.

 로하 파사다를 지나 그 끝에 우뚝 선 루완웰리 세야 대탑을 향해 걷는다. 이 탑은 수많은 코끼리 조각에 둘러 싸여 있는데, 새하얗고 엄청나게 크다. 바블 세이프라 불리는 만두 모양의 탑으로 높이는 55m이다. 처음 완공했을 때는 무려 110m 정도의 높이였다고 한다.

 기원전 2세기의 도투게무누 왕 시대에 건설하기 시작했으나 왕은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사다 팃사 왕자가 아버지의 뜻을 이어 완성시켰다.

 도투게무누 왕은 남인도에서 침략해 온 타밀 군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하다. 여러 차례의 전쟁이 있었는데, 도투게무누 왕 말년에 남인도의 엘라라 왕이 싸움을 걸어 왔다. 이때 사다 팃사 왕자는 선두에 서서 싸우기를 원했으나 아들을 염려한 왕은 허락하지 않았다.

 뒷날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 왕자는 이 탑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게 된 아버지를 위해 대나무와 천을 이용해 하룻밤 사이에 탑이 완성된 모습을 만들어 죽기 직전의 아버지에게 보여드렸다고 한다. 위대한 왕 도투게무누, 그의 모습은 정문 왼쪽에 있는 조각을 통해 알 수 있다. 

 

 

제타바나 다고바(The Jetavana Dagoba)

 마하투파(Mahathupa)동쪽에 수많은 벽돌로 이뤄진 제타바나 다고바가 자리잡고 있다. 마하비라하(Mahavihara)의 명에 따라, 다고바는 원래 400피트 즉, 120m 높이로 건축되어졌다. 그 규모는 그당시 세계에서 이집트의 피라미드 2개 다음으로 높은 건축물이었다. 마라세나가 3세기경 건축한 이 거대한 다고바는 불교가 사가리야(Sagaliya)까지 전파되었음을 입증하고 있고, 또한 그의 막강한 힘을 표현하기도 한다. 마하비라하(Mahavihara)의 명에 따라 건축되었다.

 

 

◈ 아누라다푸라 최고의 투파라마 다고바

 루완웰리 세야 대탑에서 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푸르른 숲속에 우뚝 서있는 것이 바로 투파라마 다고바이다. 종 모양의 높이 19m짜리 흰 탑으로, 기원전 4세기 후반에 석가의 오른쪽 쇄골을 모시려고 세운 것이다. 완공 당시에는 건초를 쌓아 놓은 듯한 산 모양이었던 것 같으나 1984년에 재건 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탑 둘레에는 몇 개의 돌기둥도 세워져 있다. 이것은 탑에 울타리를 치려고 만들어진 것 같다. 지금은 쓰러져 가는 기둥도 있어 옛날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 가드스톤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라트나 프라사다 (Ratna Prasada)

 아누라다푸라 시대 말기에 왕과 승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던 곳이다. 왕과 신하들이 경전을 무시한 압정을 하자 이에 반발한 승려가 이곳을 떠났다. 그러자 승려를 신봉하던 민중이 격노해 라트나 프라사다를 공격 했다. 곤경에 처한 왕은 승려에게 사죄하고 이곳을 재건하기 위해 힘썼다고 한다.

 

 

 

스타투어(Star Tour)

☎:(02)723-6360

http://www.startour.pe.kr

블로그 : 스타투어

E-mail: startour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