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Cu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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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바 북쪽에 있는 미국이 별 짓을 다해도 아직도 쿠바에는 햇빛이 비친다. 쿠바는 카리브해에서 가장 크고 덜 상업화 된 섬이며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공산주의의 보루 중 한 곳이기도 하다. 끊임없는 혁명의 정원에서 모든 것이 장미 빛인 것은 아니지만(많은 쿠바인들이 미국으로 탈출하는 일이 벌어질 정도로), 쿠바의 정치적인 고립은 관광객이 지나치게 들끓는 것을 막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쿠바인들은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준다. 심지어는 이러한 봉쇄를 실시하고 있는 미국인마저 따뜻하게 환영한다.

 

 비록 식민지 풍의 건축물이 길거리에 늘어서 있는 것은 보기 힘들지만 쿠바는 커다란 도시들까지도 상당히 편안한 분위기이다. 가장 요란법석을 떠는 것은 열정적인 차차차의 절정에 다다를 때이며 가장 시끄러워지는 것은 커다란 장식을 달아놓은 미국산 자동차가 빵빵거리며 질주한 다음이다. 이보다도 조용한 것을 원한다면 하이킹이나 수영, 동굴 탐험, 또는 야자수 그늘 아래서 좋은 담배를 피우며 느긋함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쿠바의 시골 오지나 해변이 가장 완벽하게 썰렁한 지역이 될 것이다.

 

 

개 요

o 수 도 : 하바나(Havana, 인구 약 300만)

o 면 적 : 110,922㎢(세계 106위. 한반도의 1/2)

o 인 구 : 약 1,120만 명(2016년)

o 화 폐 : 쿠바 페소 (CUP)

o 인 종 : 혼혈인(메스티죠, 물라토) 51%, 백인 37%, 흑인 11%

o 언 어 : 에스파냐어

o 종 교 : 카톨릭 85%

o 기 후 : 아열대 기후(연평균 기온 25℃, 연평균 강우량 1,375㎜)

 

자연환경

 쿠바섬은 동서길이가 약 1,300km, 남북길이 약 70∼200km의 기다란 섬으로, 국토의 4분의 1은 산지이고 나머지 지역에는 대체로 평야와 구릉지가 형성되었으며 해안선은 굴곡이 심하다. 주요 산지로는 남쪽 해안의 마에스트라산맥, 북서부의 오르하노스산맥, 중앙부의 트리니다드산지 등이다.

 기후는 전형적인 열대성 사바나기후로 여름에 동풍·남동무역풍, 겨울에 북동무역풍이 분다. 연평균기온 25.6℃이며, 1월평균기온 22℃로 가장 춥고 8월평균기온 28℃로 가장 덥다. 기온의 교차가 적기 때문에 계절적 기후변화는 주로 강수량에 의해 좌우된다. 11∼4월까지 건기(乾期), 5∼10월까지 우기(雨期)가 나타난다. 연평균강수량은 1400㎜이나 산지는 2000㎜에 이르며, 시에라 마에스트라산맥 뒤쪽 관타나모가 가장 적다. 우기와 같은 시기인 6∼10월 허리케인이 상륙하여 북서부에 풍수해를 입힌다.

 

하바나(Havana) 기후(℃)

도시명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하바나

(Havana)

최고평균

25.8

26.1

27.6

28.6

29.8

30.5

31.3

31.6

31.0

29.2

27.7

28.0

최저평균

18.6

18.6

19.7

20.9

22.4

23.4

23.8

24.1

23.8

23.0

21.3

19.0

평   균

22.2

22.4

23.7

24.8

26.1

27.0

27.6

27.9

27.4

26.1

24.5

23.5

 

 

사회문화

 쿠바는 전체 주민의 약 51%가 물라토(흑인과 에스파냐계 백인의 혼혈)이며, 약 37%가 에스파냐계 백인, 약 11%가 흑인, 1%가 중국인이며 그밖에 소수의 메스티조(백인과 인디언의 혼혈)가 있다. 공용어는 에스파냐(서반어어)어를 사용하나 도시에서는 영어와 러시아어도 통용된다. 종교는 85%가 가톨릭교도이고 그밖에 그리스도교, 여호와의 증인 등도 믿고 있다.

 

통화

 쿠바의 통화는 페소(Peso/Ps, 1 Peso=100 Centavos)이다. 동전은 1, 2, 5, 20, 40 센타페소와 1 페소 6종류이며 지폐는 1, 3, 5, 10, 20, 50페소 등 6종류이다.

 

전압

 110V-230V/50Hz

 

환전

 한국에서 페소롤 환전하지는 못하며, 달러를 직접 사용할 수 있으나 여행자 수표는 사용이 안된다. 카드는 많은 곳에서 사용이 불가능하다.

 

공휴일

1월 1일 - 해방의 날

3월 28일 - 여성의 날

5월 1일 - 노동절

5월 17일 - 토지개혁일

7월 25-27일 - 국가 혁명 기념일

7월 30일 - 혁명순교자의 날

10월 10일 - 쿠바문화의 날

 

 

역 사

1492년 콜롬부스에 의해 발견/ 쿠바를 스페인 영토로 선포

1519년 하바나 건설

1868-1878년 제 1차 쿠바독립전쟁

1895년 제 2차 쿠바독립전쟁

1898년 파리조약으로 스페인으로부터 해방

1898-1902년 미국의 군정

1902년 독립, 팔마가 대통령으로 선출

1906-1909년 미국의 제 2차 군정

1909년 고메스 대통령 집권

1933년 바티스타(Batista)대통령 집권

1959년 카스트로(Castro)의 혁명

1961년 미국과의 외교단절(사회주의 노선 공식 선언)

1965년 쿠바 공산당 창당

1975년 쿠바 공산당 제 1차 전당대회, 신헌법 인준(認准)

1976년 전국인민권력회의 실시, 신헌법 제정

1980년 제 2차 공산당 전당대회

1982년 미국의 경제재제조치 강화

1986년 제 3차 공산당 전당대회, 독자적 사회주의 노선 추구

1988년 EC와 외교관계 수립

1991년 제 4차공산당 전당대회 / 소련 특혜무역협정 종료 / 배급제 실시 / 고르바초프 쿠바 주둔 소련군 철수

1992년 미국의 봉쇄조치 강화

1993년 구 소련군 전면 철수

1994년 쿠바 난민 미국 유입(미-쿠바간 관계 악화)

1996년 미국 헬름 스버튼법 제정으로 쿠바에 대한 제제조치 더욱 강화

 

1) 스페인 점령기

 1492년 콜롬부스가 최초로 도착했을 때 쿠바에 있던 원주민은 시보네이족, 과나아타베이족, 이들보다 뒤에 정착했던 아라와크(타이노)족 등의 인디언이었다. 콜롬부스는 쿠바를 스페인 영토로 선포했고 1511년 디에고벨라스케스가 바라코아에 최초의 유럽인 영구정착지를 세웠다. 스페인인들은 쿠바를 7개의 자치제로 나누고 멕시코 진출을 비롯한 스페인의 중앙 아메리카 탐험의 근거지로 만들었다. 식민지 시대에는 신대륙과 스페인 본국을 연결하는 교역의 중개자로 번영하여 금은보화를 운반하는 스페인의 배가 통행하였다. 그로 인하여 마이그스, 모오간(H. Morgan) 등의 유명한 대해적이 횡행하여 여러 도시가 파괴되었다.

 17세기에 들어서 경쟁관계에 있는 유럽 강대국들이 침략해옴에 따라 식민지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18세기에는 영서(英西)전쟁에서 영국이 점령하므로 하바나는 자유무역항으로 번영하여 노예매매의 중심지가 되었다.

 18∼19세기에 걸쳐 사탕수수 재배의 발전, 노예노동력의 수입, 설탕산업의 성장 등에 힘입어 쿠바는 번영을 누렸다. 19세기에 설탕산업을 세계최고수준으로 기계화했고 1860년경에는 전세계 설탕의 약 1/3을 쿠바에서 생산했다. 1865년 노예매매가 중단되고 1886년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지만 멕시코 인디언과 중국인 노동력이 증가했다. 19세기 말에는 미국이 주요 교역상대국이자 투자국이었다.

 

2) 독립운동

 스페인은 쿠바의 정치적 자치를 허용하지 않고 세금부담을 증대하자 제1차 쿠바독립전쟁인 10년전쟁(1868~1878년)이 발발해 군사적 교착상태에 빠졌다. 제2차 독립전쟁은 1895년에 발발했는데 스페인은 이 전쟁에 20만명 이상의 병력을 배치했다.

 19세기에 들어서자 미국이 진출하여 스페인 지배에 불만을 가진 쿠바인들의 반란을 원조하였다. 1898년 하바나 항에 정박중이던 미국함대 메인호 선상에서 원인불명의 폭발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미국도 스페인에 대항하여 제 2차 독립전쟁에 참가했다.

 

3) 미국의 지배

 1898년 미국과 스페인간에 전쟁이 일어나자 쿠바는 미국의 점령하에 들어 갔다. 같은해 파리조약에 의해 쿠바의 독립을 인정받았으나 플라트(Platt) 수정조항에 의해 군사기지가 설치되는 등 미국의 내정간섭이 계속되었다. 1901년 미국은 관타나모만의 해군기지 설립권과 쿠바의 국내외 행정을 감독 할 권리를 얻어냈다. 1902년 토마스 에스트라다 팔마가 쿠바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폭동기였던 1905-1906년을 거쳐 1906-1909년에는 미국의 제2차 점령이 실시되었다.

 

4) 쿠바독립

 1909년 자유당 출신의 호세 미겔 고메스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새로운 행정부가 출발하게 되었다. 고메스 대통령은 재임기간중 뇌물수수, 부정부패, 아리카계 쿠바인에 대한 사회적 부정 등이 구조적으로 고착되었다. 1933-1959년 바티스타(Batista)에 의해 독재정권이 계속되었고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더해만 갔다.

 

5) 카스트로 혁명 정권

 계속적인 미국의 투자와, 설탕산업, 관광산업, 도박산업에 힘입어 경제발전이 계속되었으나 부의 불평등한 분배와 정치적 부패가 지속되던 끝에 1958년 오랫동안 망명생활과 농민과 도시중간층의 지지를 받은 대정부 게릴라전을 지속했오던 혁명적 공산주의자 피델 카스트로가 바티스타 대통령의 장기 독재를 타도하고 혁명에 성공하였다.

 카스트로 정권은 1959년 6월 농지개혁법을 시행, 쿠바에 있는 미국인 소유의 재산을 몰수하였고 이로 인해 미국의 경제보복이 일어났다. 1960년 소련과 수교하고 1961년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단절되었다. 혁명후 카스트로는 자본주의를 폐지, 외국인소유 기업의 국유화, 농업의 다각화와 근대화 등 일련의 급진적인 개혁정책을 추진하면서 1961년 4월 사회주의 혁명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1961년 5월 소련과 대사관 교환 설치했으며 1961년 12월 사회인민주의 혁명통일당(PPC)을 창설했다.

 미국과의 관계는 악화되어 미국의 지원을 받은 반(反)카스트로 망명군의 1961년 피그스 만 침입과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때 최악에 달했다.

 1965년 10월 쿠바공산당이 결성되고 1972년 공산당 기구개혁과 제도가 정비되었다. 1975년 공산당 전당대회가 개최되었고 1976년 2월 신헌법에 공포되어 사회주의 헌법이 구체화 되었으며 같은해 12월 새로운 국가기구가 발족하였다.

 1960-1970년대에 소련의 위성국가로서 확고한 자리를 굳혔고, 제3세계로 확산되는 공산주의 혁명에서도 소련을 대신해 활약했다.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운동을 지원해왔으며 앙골라, 에디오피아를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기도 했다. 카스트로 정부는 모든 계층에 대한 교육, 의료 혜택을 실시하여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경제는 여전히 침체되었고, 계속 소련의 경제적, 군사적 원조에 크게 의존하였다.

 1980년 12월 각급 대표부와 공산당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2차 공산당 전당대회가 개최되었다. 카스트로 체체확립을 기반으로 실용주의적 경제정책을 수용하면서 공산주의체제를 더욱 강화했다.

 1986년 12월에 개최된 제3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는 소련의 영향력에서 탈피하여 독자적인 사회주의노선을 채택하여 소련과 동구권의 국제적 변화속에서 사회주의를 더욱 강화했다. 소련과 동구권의 변혁이후 쿠바는 개방과 개혁의 압력을 받고 있으나 이를 계속 부인하면서 독자적 사회주의 추구라는 구호 아래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1991년 제4차 공산당 전당대회를 개최하면서 구 소련과 동구의 붕괴후 야기되는 정치적, 경제적 고립을 탈피하고자 사회주의 체제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부분적인 개혁안을 도입하였다. 이런 원칙하에 중국식 개혁모델을 점진적으로 도입하여 극심한 경제난을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수출증대와 관광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외국자본 유치나 개인의 부업을 인정하는 등 자본주의 시장경제이 도입단계에 있다. 1992년 7월 구 소련과의 동맹관계를 명시한 헌법전문의 일부를 삭제하고 동시에 종교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직접, 간접선거의 도입 등 헌법개정을 승인하였다. 천안문사건으로 고립된 중국에 접근하여 1990년 5월 중국공산당이 쿠바를 방문하였다. 개헌후 국가인민회의 의원 선거를 1993년 실시되었으나 98.7%의 투표율로 카스트로 의장이 선출되었다.

 

 

쿠바의 비자정보

 한국과 쿠바는 아직 미수교국이기 때문에 쿠바 외교기관이 없다.

 따라서 쿠바비자 담당여행사에서 하여야 한다.

 비자를 발급할때는 6개월 이상 남은 여권사본, 주소, 기본 인적사항등을 기재하면 되고, 소요시간은 1박 2일, 비자유효기간은 6개월이며, 체류기간은 30일이다. 비자를 취득하고 나서는 쿠바 입국후의 활동을 밝혀야 하며, 명기된 입국목적 이외의 활동은 모두 금지시 된다.

 

'시가의 나라' 쿠바

 쿠바 길거리에서 시가를 태우는 사람들과 시가를 파는 상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중남미 여러곳에서 생산되고 있는 시가는 멕시코,푸에르토리코 등의 나라에서도 생산되지만 쿠바산이 가장 품질이 좋다. 그 이유는 쿠바의 기후가 강수량과 일조양이 풍부한 아열대성이고, 담배가 잘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고루 갖추고 있어서 세계적인 시가를 생산해 낸다.

 

쿠바여행이 좋은 시기

 쿠바를 방문하는데 있어 나쁜시기는 없다. 5월과 10월사이에 덥고, 우기철이고(평균기온 27℃), 겨울철에는 (4월부터 12월)여행객들이 방문하기에 좋은 시기이다. 쿠바인들의 휴가철은 7월과 8월로 그 때에는 자국시민들이 해변가로 많이 몰리게 되어 복잡하므로 피하는것이 좋다.

 

쿠바의 축제

 태국의 알카자쇼, 프랑스의 리도쇼가 있다면 쿠바에는 트로피카나(Tropicana) 공연이 있다. 쿠바 혁명이 일어나기 이전 1939년에 아바나에서 처음 소개된 트로피카나는 귀족풍의 고급스런 디너쇼 정도된다.

  머리에 화려한 화관과 몸에는 꽃단장을 한 무희들이 정열적인 춤을 선보인다.

 

주의사항

 쿠바에서는 달러나 페소이외에 여행자수표나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 신용카드를 사용할 경우 미국과 제휴관계가 없는 것만 쓸 수 있다.

 가능한 신용카드 회사는 비자, 마스터 카드이고, 불가능한 신용카드 회사는 아메리칸 엑스프레스, 시티뱅크, 다이너스클럽이다. 

 

 

 관광 명소

bullet11_redspot.gif 하바나(Havana)

 하나바는 쿠바의 수도로 캐리비안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풍파가 많았던 도시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하바나는 국가 전쟁과 혁명속에서 그리 많은 손해를 입지는 않아서 오늘날 100년전 지어진 도시로의 이미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50~60년대 식의 미국의 자동차가 거리를 활보하고 이곳 저곳 페인트칠이 벗겨진 건물들이 즐비하며 이 도시에는 한때의 부흥을 알게 해주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거대한 건축물들이 많다.

 하바나에서의 밤은 이벤트가 매우 풍부하다.

 극장, 역사적 공연장, 카바레, 나이트 클럽, 음악공연장 등은 여행지에서의 피로를 싹 풀어 줄 만하다. 이곳은 다른 라틴 아메리카의 도시보다 교통도 덜 막히고 상업화도 덜 되어있어 숨통 트이는 휴가를 즐길수 있는 도시이다.

 

혁명 박물관과 Granma 기념비

 혁명 박물관과 그란마 기념비는 매우 영광스러운 건물이다. 1950년대에는 대통령궁이었던 이곳은 독립을 위해 싸웠던 쿠바 사람들의 투쟁의 역사를 보여준다. 주요 전시품은 사진, 기록 영화, 당시의 서류들과 무기들이다. 박물관 앞의 정원에 있는것이Granma Memorial인데 이것은 1956년 멕시코로부터 추방된 Fidel Castro와 80명의 전투원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멕시코로부터 추방 될때 타고있던 보트의 이름이 'Granma'라고 한다.

o 주소 : 1 Refugio, Habana Vieja

o 입장료 및 개관시간 : 화요일 : 10:00~18:00, 수요일~일요일 : 10:00~17:00

o 입장료 : US$3.

 

 

아바나 갤러리

 이곳은 쿠바에서 생겨난 가장 최근의 예술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실내장식 박물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발데도 거리(Vedado street)를 따라 걸어가면 북쪽 끝부분에 위치한다.

 이 갤러리는 주고 1962년 이후의 쿠바의 예술가들의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이곳에서 전시를 했던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계속해서 전세계의 찬사를 받으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있다. 페르난도 로드리게스(Fernando Rodríguez)의 Bloque라는 작품은 획일화된 노동자를 미니어쳐하여 실제 크기의 벽돌로 벽을 만들어 놓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매우 유명하며 혁명의 양면성에 관해 말하고 있다. 또한 아프로 쿠바 종교 문화의 미묘하고 신비스런 동판화 예술로 유명한 Belki Ayón도 이곳 갤러리를 통해 유명해진 작가이다. 그리고 Wilfredo Lam이라고하는 쿠바에서 가장 유명한 20세기 미술가도 이곳을 통해 등용했다.

o 개관시간 : Mon~Fri 10am~4pm, Sat 10am~1pm

o 입장료 : 무료

 

 

국회의사당

 쿠바의 국회의사당은 센트럴 공원의 남서쪽 코너에 위치하고 있으며, 미국의 워싱턴에 있는 국회의사당 건물과 닮은꼴로 만들어졌다. 이 건물은 건축학적으로 매우 정확하게 만들어 졌으며, 도시의 분위기를 한층 다양하게 만들었다.

 건물 내부는 사치스러운 장식으로 도배되어 있으며, 각 방마다 클래식한 분위기이다. 이 국회의사당은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수백명의 건축가와 기술자의 지휘하에 단지 3년밖에 안걸려 지어진 것이며, 1929년에 거대한 축하쇼와 함께 오픈하였다.

 이 국회의사당을 걸어서 관광하면 1층만 관람하는데에도 약 20분 이상이 걸리며, 가이드를 따라 다녀도 무방하다. Salón de los Pasos Perdidos(영어로는 The Room of Lost Steps)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우아한 정문 로비는 실로 거대하며, 금과 청동으로 장식된 로코코 스타일의 컨퍼런스 룸은 잊혀지지 않는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30분까지 개관하며 입장료는 3$이다.

 

 

올드 하바나(La Habana Vieja)

 올드 하바나는 1982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지정된 세계문화유산이다. 이곳에는 옛 하바나의 최고의 유적지들과, 박물관, 성당, 궁전, 혁명비등과 다양한 시장들이 있어서 문화적 경험을 갈망하는 관광객들에게 각광받는 지역이다. 도시 개혁은 거주지역까지는 확장되지 않아서 이 지역 안에는 아주 오래된 건물이 많지만 연간 300개 정도의 건물을 붕괴하고 있어서 이 지역의 주민들은 다른곳으로 이전해야 한다.

 

 

◇ 대성당 광장(Plaza de la Catedral)

 이곳은 하바나에서 가장 아름답고 보존이 잘 되어 있는 광장이다.

 광장을 둘러싸고 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많은 건물들이 있으며, 예쁜게 장식한 바와 레스토랑도 즐비하다.

 

 

 

◇ Catedral de San Cristobal

   (산 크리스토발 대성당)

 이 성당은 18세기에 바로크 양식에 의해 만들어진 건물로 광장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 Plaza de Armas(무기 광장)

 대성당 광장에서 몇블럭 떨어진 곳에 Plaza de Armas가 있다. 이곳은 원래 정부청사가 있던 자리이다.

 

 

◇ Museo de Arte Colonial(식민시대 미술관)

 이 미술관은 광장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1720년대에 지어졌으며 건축학적으로 뛰어난 걸작이다. 주변으로는 다양한 열대 식물이 즐비하며 식민지 시대의 가구와 기물들이 매우 많이 전시되어 있다.

 

◇ Museo de la Ciudad(도시 박물관)

 이 박물관은 하바나 라는 도시가 처음생겼을때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유적과 정보들을 생생히 보여준다.

 

 

◇ 헤밍웨이 박물관(Mueso Momerial Ernest Hemingway)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별장이 있는 아바나는 1961년 쿠바의 공산화와 함께 친구이자 관리인인 푸엔테스에게 별장을 넘겨주고 미국으로 떠난다. 본인은 계속 살고 싶었으나 간첩의 누명을 입게 되므로 어쩔 수 없이 다 버리고 떠났으며 그 뒤 푸엔테스는 기증 형식으로 국가에 헌납하여 지금은 박물관으로 관광객을 맞고 있으며 낚시대회 수상트로피, 헤밍웨이보트(삘라르), 책, 가구 들이 잘 보존되어있으며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의 가치가 충분하다.

 

 헤밍웨이(1899~1961)의 최후는 그의 고향인 미국 아이다호 주의 케첨에서 머리에 총알이 박힌 시체로 발견된다. 부인의 말로는 자신의 장총을 닦다가 오발사고로 죽음을 당한 것이라고 했지만 친구들은 당시 헤밍웨이는 몹시 낙담에 젖어있었다고 했다. 평소에는 활달한 사람으로 기억 되고 있던 그가 두 번의 비행기 사고에도 살아남기는 했으나 그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해지자 자살한 것인지도 모른다.

 

 노벨문학상(1954)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세계적 대문호 헤밍웨이는 20년간 후세대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쳤으며 대표 작품으로는 '태양은 언제나 뜬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 있거라', '노인과 바다' 등 걸작품이 많고 간결문체로 육중한 주제를 다루었으며 모험과 사냥을 좋아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부친도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헤밍웨이 박물관은 하나의 저택이었는데, 하바나 시내에 살던 헤밍웨이가 이쪽으로 옮겨와서 여러가지 저술활동을 하는 등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이 바로 이 곳이다. 그렇게 헤밍웨이가 살던 집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놓은 곳이 바로 이 헤밍웨이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헤밍웨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바나 시내의 장소들 뿐만 아니라, 꼭 와봐야 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입장할 때 포토비를 주고 들어와야 하는데 가이드 말 살짝 찍고 1불주면 된다고 했다.

 헤밍웨이 박물관은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서 창밖에서 내부를 들여다 보는것이 전부이다.

 헤밍웨이가 실제로 쓰던 물건과 사냥해온 동물의 박제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깔끔하게 정리정돈과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사냥도 즐겼고 특히 요트로 바다낚시하는 일은 그가 소일하는 즐거움이었기에 뒷 정원엔 새요트처럼 기름칠을 해 놓은 그의 요트가 녹하나 안슬고 깨끗하게 잘 보관되어 있다.

 

 

 헤밍웨이 풍류가 서린 포구마을, 코히마르(Cojimar)

 쿠바 코히마르, 헤밍웨이 풍류가 서린 포구마을

 예술가에게는 제2의 고향이라는 게 있다. 그가 태어나지 않았어도 집필이나 창작의 자양분이 된 곳 말이다. 유럽의 문호들에게 지중해의 외딴 도시가 그러했듯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는 쿠바 아바나와 함께 어촌마을 코히마르(Cojimar)가 제2의 둥지였다.

 헤밍웨이는 쿠바를 사랑했고, 쿠바의 여인을 사랑했고, 쿠바의 럼을 사랑했던 소설가였다. 미국과 쿠바의 관계악화로 헤밍웨이는 쿠바를 떠나야 했지만 그의 흔적은 쿠바 곳곳에 흩어져 있다.

 

 어촌마을 코히마르는 헤밍웨이의 풍류가 서린 고장이다. 수도 아바나 동쪽, 한적한 포구마을인 코히마르는 헤밍웨이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줬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 이념도 피부색도 달랐던 공간에서, 헤밍웨이는 카리브해의 아득한 바다를 촉매 삼아 꿈을 포기하지 않은 한 늙은 어부의 삶을 그려냈다.

 

 코히마르 해변 한쪽에는 헤밍웨이의 동상이 서 있고 그가 즐겨 찾았다는 술집도 남아 있다. 헤밍웨이를 기리는 청새치 낚시 대회도 매년 이곳에서 열린다.

 

 마을은 요란스럽지 않고 아담한 풍경이다. 현란한 이정표도 없고, 관광지를 떠올리게 하는 상인들이 몰려드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욱 운치 있다. 해변을 거닐다 우연히 마주치는 헤밍웨이의 흉상이 이곳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포구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흉상은 한 어부가 기증한 고깃배의 프로펠러를 녹여 만들었다는 사연을 담고 있는데, 그가 그토록 동경했던 바다를 바라보고 외롭게 서 있다.

 

 20년 넘는 세월을 쿠바에 머물렀던 헤밍웨이는 코히마르에서 낚시를 즐겼고, 소설 속 노인인 선장과 술잔을 기울이며 풍류를 나눴다. '낚시하기 안 좋은 날이면 당장 글을 쓰겠다'고 할 정도로 낚시에 푹 빠져 살던 시절이었다. 노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그의 후손들은 어촌마을에 남아 옛 추억을 전하고 있다.

 

 레스토랑 '라 테레사(La Terraza)'는 유일하게 이 포구마을에서 붐비는 곳이다.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단골 술집으로 내부에는 그의 사진들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다. 이곳에서 창밖 바다를 배경으로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그가 마셨던 모히토(Mojito) 한 잔을 기울이는 기분은 묘하다.

 

 소설속 자양분이 된 어촌 사람들 외딴 코히마르의 골목에서는 박물관에서나 볼 듯한, 50년대 올드카들과 마주치는 게 오히려 낯설다. 미군정 시절, 아바나 근교는 미국 부호들의 휴양지였고 그들이 남긴 유흥의 흔적이 수십 년 세월을 지나 그대로 남아 있다. 울퉁불퉁한 올드카들은 외국의 자동차 마니아들이 눈독을 들여도 팔지 않는 쿠바의 명물이 됐다.

 

 포구마을 코히마르가 가슴 깊이 박히는 것은 단지 헤밍웨이 때문만은 아니다. 아바나의 도심이 변질돼 가는 것과는 달리 이곳 어촌마을의 골목에서는 상상 속에 오래 묻어둔 순박한 쿠바인들을 만난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성긴 이를 먼저 드러내고 웃는 모습들이다. 가난 속에서도 쾌활하고 때가 묻지 않은 미소와 눈빛, 그 정경들이 알알이 새겨진다. 소설 속 감흥을 이끌어낸 헤밍웨이의 선택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20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의 숨결은 코히마르 외에도 쿠바의 낯선 해변, 골목과 바에 잔잔하게 녹아 있다. 소설 '노인과 바다' 배경의 다른 한 축을 이뤘던 마리나 헤밍웨이는 요트가 즐비한 관광지가 됐고, 그가 실제로 거주했던 아바나 남쪽의 저택은 헤밍웨이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그의 애장품인 낚싯배도 함께 전시돼 아련한 여운을 남긴다.

 

o 현지 교통 : 쿠바에서 올드카 택시는 미터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흥정이 필수다. 버스가 다니지만 대중교통이 부족해 다수의 출퇴근족들이 히치하이킹을 애용한다.

 

o 음식 : 고기 스튜 '로빠 비에하'와 절인 돼지고기를 구워낸 '레초' 등이 쿠바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야채와 햄인 섞인 복음밥인 '아로츠 프리또'도 한국인 입맛에 맞다.

 

o 기타정보 : 1년중 11~4월은 건기, 5~10월은 우기다. 기온은 연중 22~28℃로 온화한 편이다. 쿠바 내에서는 달러나 유로를 쿠바화폐인 빼소 꼰베르띠블레를 환전해 사용해야 한다. 현금 인출기 사용 등은 쉽지 않다.

 

 

후에루사 요새

 1555년부터 건축되기 시작한 아바나항 입구에 위치한 가장 오래된 요새이다. 처음 건축될 당시에는 목조요새 였으나 프랑스 해적의 습격으로 소실된 후 산호석을 이용한 석조요새로 재 완성되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코로나 담배 공장(Fábrica de Tobacco La Corona)

 쿠바하면 유명한 것이 쿠바산 담배이다. 쿠바에는 유명한 담배 공장이 몇군데 있는데 이곳은 혁명 박물관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시내 중심에 있는 두개의 담배 공장중 하나가 바로 코로나 담배 공장(Fábrica de Tobacco La Corona)이다. 약 45분간의 가이드 투어는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다.

 더욱 잘 알려진 파르타가스(Partagás) 공장과 투어는 거의 비슷하지만 담배생산의 전과정을 볼 수 있으며, 같은 빌딩안에 '팔라시우 델 타바코(Palacio del Tobacco)'라고 하는 규모나 명성에서 아바나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담배가게가 있다.

 담배를 피지 않는 사람이라도 꼭 한번 들러볼 만한 가치가 있다.

 가이드 투어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9시에 진행되며 $10의 입장료가 있다.

 

 

르타가스 담배 공장(Fábrica de Tobacos Partagás)

 국회의사당 뒤에 위치한 빠르따가스 담배 공장(Fábrica de Tobacos Partagás)은 쿠바에서 가장 오래되고 담배 생산도 가장 활발한 공장이다.

 이곳은 올드 아바나에 있는 오래된 건물중 하나로, 1849년에 지어졌으며, 코히바(Cohiba), 볼리바르(Bolívar), 파르타가스(Partagás)같은 쿠바의 유명한 시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입장료 $10은 담배 박물관의 입장과, 45분의 투어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 도시에서 가장 흥미로운 구경거리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영어 가이드가 있으며 담배를 만드는 전과정인 건조, 배합, 권련제조, 포장등의모든 단계를 상세히 볼 수 있다.

 이곳에는 담배 제조 교육과정도 있다. 이곳에는 9개월간의 담배공정 코스가 있는데 이 코스에 합격한 사람들은 등급이 한단계 올라가며, 세계에서 가장 좋은 담배를 만드는 전문가 집단에 소속되게 된다.

 이 공장의 가장 윗층에 올라가면, 담배 만들기의 전문가들이 8시간 동안 교대근무를 하면서 약 80개에서 250개의 시가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과히 천재적이며, 관광객의 반응이나 사진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작업을 계속한다.

 투어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있다.

 

 

 

bullet11_redspot.gif 바라데로(Varadero)

 쿠바의 최고 휴양지인 바라데로는 Peninsula de Hicacos(이까꼬스 반도)에 위치해 있다. 하바나에서 차로 약 2시간 정도 걸리며, 국제적으로 알려진 휴양도시이다. 이곳은 20km에 달하는 백사장을 가지고 있으며 그 위로 최고의 휴양지 답게 거대한 규모의 호텔들이 즐비하다.

 처음 이곳 반도의 개발은 1923년 시작되었으나, 주민 거주 지역은 1950년 까지도 개발이 시작되지 않았다. 이후 듀퐁(Du Pont사)가 이 땅을 사들였고, 사들이는 과정에서 큰 이익을 보게되면서 지역 개발을 시작하였다.

 이후 도로를 건설하고 수많은 빌딩을 지어 현재의 바라데로의 모습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여전히 대규모의 개발은 계속되고 있다. 비록 현재 지어지고 있는 빌딩들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지는 않지만 가족 단위의 휴양객을 위한 최고의 장소를 만들려는 계획이다.

 이곳에는 수많은 다이빙 장소, 멋진 레스토랑, 나이트 클럽등이 매우 많다. 또한 바라데로를 둘러싸고 10개의 작은 섬들도 있다. 이곳에는 40종이 넘는 산호초와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 등이 휴양객들에게 충분한 즐거움을 준다.

 

시립박물관(Museo Municipal)

 이곳에는 인디언 스타일의 인공물과 그림등을 전시하고 있다.

Tue~Sat : 09:00~18:00, Sun : 09:00~12:00, US$1.

 

호소네 공원(Parque Josone)

 이곳은 수영장, 볼링장등의 위락시설을 가진 거대한 공원이다.

 

 

Cueva de Ambrosio(Ambrosio동굴)

 1961년에 이곳에서 다양한 인디안 족들의 회화가 출토 되었다.

Tue~Sun : 10:00~12:00, 14:00~16:00, US$2,

 

Parque Natural de Varadero

  (바라데로 국립 공원)

 반도의 끝에 위치한 바라데로 국립 공원은 나무와 선인장들로 가득차 있는 자연적인 공원이다.

 

 

 

bullet11_redspot.gif 산티아고(Santiago)

 다양한 문화가 혼합된곳, 산티아고 데 쿠바는 아프리카-쿠바 문화의 본원지 이다. 쿠바에서도 가장 오래된 도시중에 하나이지만 도시의 분위기는 결코 오래되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한 때의 큰 지진으로 대부분의 건물들이 19~20세기때 새로 복구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주로 농업을 위주로 경제가 돌아가며 몇몇개의 작은 산업들도 발달하고 있다. 이 도시 사람들은 항상 춤과 함께 한다. 산티아고를 방문할 가장 좋은 시기는 카니발 때이다.

 매년 7월 25~26일에 열리는 이 카니발은 이도시의 활기를 맘껏 느낄 수 있다.

 산과 바다 사이에 놓인 이 도시의 위치는 커다란 만에 위치하며 도시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도시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투어도 많다.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 가 사랑한 아바나(Havana)

 하드보일드 문학의 대표주자인 헤밍웨이는 멋진 이름을 가졌다. 이름에 잘 어울리는 풍모도 갖췄다. 그는 자신의 이름 앞에 붙는 모든 수식과 잘 어울리는 나라, 쿠바에서 불세출의 문학 작품들을 집필했다. 그에게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안겨준 대작 《노인과 바다》도 쿠바에서 썼다.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헤밍웨이를 만나기 위해 그 노인과 그 바다가 있던 곳을 찾아 지구 반 바퀴를 돌았다.

 

헤밍웨이가 사랑한 도시, 아바나

 소설 《노인과 바다》 표지를 보자. 가지런히 자란 수염, 오른쪽으로 빗어 넘긴 머리, 호기심 가득한 눈빛의 잘생긴 얼굴은 지성적 매력을 겸비한 마초의 전형이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얼굴을 굵은 패턴의 니트가 따뜻하게 감싼다.

 마초마저 따뜻한 인상을 풍기게 하는 스타일의 니트는 ‘헤밍웨이 니트’라는 이름을 얻었고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인기다.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작가의 삶은 다사다난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자신의 낚싯배를 개조해 쿠바 인근 해안에서 독일군 잠수함을 정찰하는 ‘크룩 팩토리’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전쟁 중 당한 심각한 부상과 이후 아프리카 탐험 중 경비행기 추락 사고가 두 번 있었지만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그는 네 번이나 결혼할 정도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으며 음주와 낚시, 글쓰기를 사랑했다. 헤밍웨이는 자신이 살아낸 모든 찰나를 주시하고 통찰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글로 풀어 독자들에게 실제로 경험한 듯한 착각을 선사했다. 가장 미국적인 작가로 평가되지만 정작 그가 반평생을 지낸 곳은 아바나와 아바나 인근의 코히마르다. 파란만장한 삶, 글쓰기를 향한 깊은 고뇌, 고뇌를 뚫고 세상으로 나온 모든 작품을 통해 세기의 우상이 된 헤밍웨이가 아바나에 관해 말했다.

"당신은 사람들에게 쿠바에 사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글을 썼던 세상 다른 어떤 곳만큼이나 그곳의 서늘한 이른 아침이 글쓰기에 좋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헤밍웨이의 단골 바

 아바나는 아름답다. 과거로 회귀한 듯하고 이국적인 정취로 가득하다. 감각을 둘러싼 시공간 모두가 비현실적이다. 돈을 받고 사진 찍히기 위해 형형색색의 옷과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고 시가를 물고 앉아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도, 어디에서건 멜로디 없이 울리는 리듬에 몸을 흔들고 눈을 맞추며 웃는 사람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푸른 하늘 아래로 콜로니얼, 바로크, 아르누보 양식의 오래된 건물들이 도열해 있다. 건물 사이의 작은 골목들은 언제나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옛 시가지 옆으로는 신시가지가 이어진다. 이 지점에 호텔 암보스 문도스(Ambos Mundos)가 있다. 두 개의 세계를 뜻하는 이 호텔에서 헤밍웨이는 세 번째 세계를 창조했다. 그는 이곳에서 두 번째 부인인 폴라, 두 아들, 처제와 머물면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집필했다.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로비를 지나 빈티지한 철제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곳은 5층 11호, 헤밍웨이의 방이다.

 볕이 화사하게 드는 방 중앙에는 헤밍웨이가 쓰던 타자기가 놓여 있다. 타자기를 중심으로 벽면을 따라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신, 사진자료, 소품 등이 전시돼 있다.

 

 유명한 애주가였던 헤밍웨이의 단골 바에도 꼭 들러봐야 한다. 몬테라세와 엘 플로리디타는 헤밍웨이의 자취를 쫓는 여행객으로 인산인해다. 바 몬테라세에 들어서자 7인의 악단이 연주하는 큐반 뮤직에 몸이 절로 움직였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클라베스, 마라카스, 과요 등의 악기가 만들어내는 리듬이 흥겹다.

 

아바나에서 만난 할머니. 1달러를 주지 않으면 사진을 찍지 못하게 부채로 얼굴을 가린다.

 럼에 콜라를 섞은 칵테일 쿠바리브레를 한 잔 들이켜자, 축제의 정점을 즐기듯 신명 난다. 아르누보 스타일의 엘 플로리디타는 고급스럽고 클래식한 느낌의 바인 동시에 음식 맛 좋기로 소문난 레스토랑이다. 특히 럼 베이스의 쿠바 칵테일인 다이키리 맛이 일품인데, 이곳에 설치된 헤밍웨이의 동상과 동석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헤밍웨이는 앉은 자리에서 무려 13잔의 다이키리를 연거푸 마셨다고 한다. 엘 플로리디타를 찾아온 관광객은 대부분 헤밍웨이 동상과 나란히 앉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선다. 물론 한 손엔 언제나 다이키리를 들고 있다. 상큼한 다이키리를 들고 개구진 표정의 헤밍웨이를 위해 건배! 살루드(Salud)!

 

거장이 사랑한 아름다운 마을과 집

 아바나에서 헤밍웨이를 추억하는 마지막 여정은 헤밍웨이 마리나다. 과거에는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곳이었지만, 정부에서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곳엔 의학 시설들이 들어섰다. 이후 관광객의 발길은 끊겼다. 인근 부촌에서 피크닉이나 낚시를 즐기러 방문하는 사람들이 전부. 해질녘 도착한 헤밍웨이 마리나에는 그를 꼭 빼닮은 남자가 낚싯바늘에 미끼를 끼고 있었다. 붉게 물드는 사위를 가르고 낚싯줄을 능숙하고 호방하게 던져 고기를 건져 올리는 모습이 마치 헤밍웨이의 현현인 듯했다. 소란하고 활기 넘치는 아바나 도심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조용하고 호젓한 풍경이다.

 

 코히마르(Cojimar)는 아바나 인근의 어촌마을이다. 소설 《노인과 바다》의 모티브가 된 곳으로 조용하고 아담한 정취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를 닮은 어부들이 그늘에 앉아 열기를 식히는 풍경이나, 방파제에서 바다로 점프해 수영을 즐기는 아이들의 망중한은 아늑하고 평온한 어촌마을의 정취를 배가시킨다.

 

 마을 입구에는 푸른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헤밍웨이의 흉상이 우뚝 서 있다. 흉상을 중심으로 흰 기둥이 빙 둘러서 있는데, 마치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한다. 어딘지 어설픈 노랫소리가 바닷바람에 실려 귓전을 울린다. 동네 할아버지가 방파제 어귀에서 노래를 부르고 계셨는데, 그 풍경이 마치 헤밍웨이를 위한 세레나데를 부르는 듯했다.

 

20년을 산 저택 핑카 비히아(Finca Vigia)

 여행객들이 헤밍웨이의 동상과 사진을 찍고 들르는 곳은 골목 어귀의 라 테라사(La terraza). 헤밍웨이의 단골 바와 레스토랑이었던 곳으로, 헤밍웨의의 사진이 한쪽 벽면을 가득 메웠다. 헤밍웨이는 코히마르 언덕에 저택을 짓고 20년을 살았다. 저택의 이름은 망루 농장이라는 뜻의 핑카 비히아다. 핑카 비히아의 가장 높은 곳에 서면 푸른 바다 곁으로 펼쳐진 아바나 도심의 풍경이 한눈에 드니,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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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에는 헤밍웨이의 모든 것을 박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현재는 헤밍웨이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헤밍웨이는 핑카 비히아에서 후대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집필했다. 이 집에 사는 동안 노벨상도 받았다.

 

 대작들의 찬란한 고향이지만 집은 낡고 허물어져 간다. 외벽도 지붕도 세월의 흔적을 거스르지 못하고 늙어가지만 집이 간직한 우아함은 여전하다. 집안 곳곳에선 그가 남긴 흔적이 정갈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별채와 본채로 나뉘는데, 본채는 출입이 불가능하지만 창문을 통해 침실, 옷장, 식당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사냥을 취미로 즐긴 헤밍웨이는 물소, 사슴, 표범의 헌팅 트로피들로 벽을 장식했다. 장식이라기보다 샤머니즘을 신봉해 모셔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헤밍웨이의 메모· 미신· 분위기까지

 헤밍웨이는 남성적이고 거친 성향과는 반대로 은근히 소심한 구석도 있었다. 미신을 철석같이 믿어 행운을 기원하는 장신구와 주술품을 집안 곳곳에 두었다. 바지 주머니에는 늙은 토끼의 발과 조개껍데기, 행운의 돌 등을 넣고 다녔고 타자기에 끼워 둔 종이를 빼면 재수가 없다고 믿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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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핑카 비히아를 덮칠 듯 자란 케이폭 나무의 뿌리가 현관 타일을 뚫고 지상으로 드러나도 자르지 않았단다. 쿠바 토착신앙인 산테리아 종교에서 케이폭 나무를 신들의 집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당시 헤밍웨이의 부인인 메리가 그의 동의 없이 뿌리를 잘라내자, 노발대발하며 일꾼들을 내쫓고 뿌리 일부분은 그의 서재에 봉헌했다고 한다. 덩치 큰 마초의 귀여운 행실을 상상하니 웃음이 난다. 핑카 비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자 가치 있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었으니, 그곳을 수호하기 위한 나름의 조치였으리라. 도서관 내부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오래된 판본, 희귀본 등으로 빼곡하다.

 

 헤밍웨이는 읽고 있던 책 귀퉁이에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책에 관한 내용도 있고 하고 싶은 일, 지출 계획, 건강 상태 등 순간순간 생각나는 일상의 상념을 모두 적었단다. 탐방객은 그가 남긴 메모들의 면면을 자세히 볼 수 없지만, 9000여 장서의 여백에 적힌 메모를 한 사람이 연구하는 데만 12년이 걸렸다고 전해진다. 실로 엄청난 사료다.

 

 핑카 비히아의 외길을 따라 걸으면 아담하고 푸른 수영장에 닿는다. 풀 사이드의 벤치에 앉아 그곳에서 벌어진 수많은 이야기를 머릿속에 그렸다. 헤밍웨이와 동시대를 살아간 유명인사들이 모여 즐기는 파티의 활기, 마을의 늙은 어부들을 불러 모아 그들을 소재로 쓴 소설을 낭독하던 밤의 고즈넉함. 이곳에서 피어난 모든 정취는 공기 중 고스란히 스며있다가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여행자의 마음을 두드린다.

 

 쿠바 혁명 이후 헤밍웨이는 미국으로 추방됐다. 그가 쿠바에서 좋아하는 낚시를 마음껏 즐기며 살았더라면 엽총으로 자살해 생을 마감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행 정보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 이후 쿠바는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가 될 추세다. 한국에서 쿠바로 가는 직항은 없다. 캐나다, 멕시코, 일본을 경유하는 방법이 있다.

 공용어는 스페인어다. 관광지 이외에서 영어 소통은 불편한 편이므로 간단하게라도 스페인어를 알아두는 게 좋다.

 화폐는 페소를 사용한다. 쿠바에는 두 개의 화폐가 있다. 외국인 전용 화폐 쿡(CUC)과 내국인용 쿱 혹은 모네다(CUP). 하지만 외국인도 쿡을 모네다로 환전할 수 있으니 두 화폐를 다 쓸 수 있는 셈이다. 모네다를 쓰는 이유는 비싼 관광객용 물가를 벗어나 저렴한 현지 물가를 즐기기 위해서다.

 생활물가와 여행물가가 다르다.

 여행객은 외국인 전용화폐 CUC(세우세)를 사용해야 한다. 0.9CUC가 약 1USD.

 시간은 한국보다 13시간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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