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Boli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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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파스(La Paz)산타 크루스(Santa Cruz)코차밤바(Cochabamba)

 

 볼리비아의 정식명칭은 볼리비아공화국(Republic of Bolivia)이며, 면적은 1,098,581㎢이다.

 수도는 라파스와 수크레이며, 공통언어는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다.

 인구의 95%가 로마 카톨릭교이며 남미대륙의 중앙에 있는 내륙국이다.

 북쪽과 동쪽은 브라질, 남동쪽은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와 접하고 있다.

 

 볼리비아 다민족국, 줄여서 볼리비아(스페인어: Bolivia 볼리비아, 케추아어: Buliwya, 아이마라어: Wuliwya, 과라니어: Volívia)는 남아메리카 중부에 있는 내륙국으로, 행정 수도는 라파스이며, 사법 수도는 수크레이다. 볼리비아는 브라질,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와 인접해 있으며, 아마존 강 상류에 위치해 있다.

 

기존 정식 명칭은 볼리비아 공화국(스페인어: República del Bolivia 레푸블리카 델 볼리비아이었지만 2009년 2월 헌법 개정으로 인해 지금과 같은 정식 국명으로 변경되면서 오늘에 이른다.

☞ 다른 지도

 

 유럽 식민 지배 이전에 볼리비아 영토는 콜럼버스 이전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였던 잉카 제국의 일부였다. 16세기에 스페인 제국이 이 지역을 정복했다. 스페인 식민 시대에 이 지역은 "상부 페루" 혹은 "차르카스(Charcas)"로 불렸으며, 스페인의 남아메리카 식민지 대부분을 포괄하는 페루 부왕령의 통치를 받았다. 1809년에 독립을 선언한 후 1825년 8월 6일 공화국을 세우기까지 16년간 전쟁을 벌였다. 이 나라의 이름은 독립 영웅 시몬 볼리바르에서 나왔는데, 그는 정치적 불안정, 독재, 경제적 어려움과 싸웠다.

 

 볼리비아는 민주 공화국이며 9개의 주(州, departamento)로 이루어져 있다. 이 나라의 지리는 서쪽에 있는 안데스 지역에서 아마존 분지에 있는 동부 저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다. 볼리비아는 개발도상국으로 인간개발지수에서 중간 점수를 보이며, 빈곤율은 약 60%이다. 주요 경제 활동은 농업, 임업, 어업, 광업, 그리고 직물, 의류, 금속 제련, 석유 정제 산업이다.

 

 볼리비아의 인구는 약 1,100만 명에 이르며 아메리카 토착민, 유럽인, 아시아인, 아프리카인들로 다민족 국가를 이룬다.

 

 스페인어가 주로 쓰이며, 아이마라어와 케추아어, 과라니어도 널리 쓴다. 볼리비아의 다양한 문화는 예술, 음식, 문학, 음악에서 폭넓은 다양성을 보인다.

 

 

개 요

o 수 도 : 라파스(La Paz), 수크레(Sucre)

o 면 적 : 1,098,581㎢(한반도의 약 5배. 세계 28위)

o 인 구 : 약 1,100만 명(2016년)

o 화 폐 : 볼리비아노 (BOB)

o GDP : 350억$(2015년. 세계 91위)

o 종 교 : 카톨릭

o 주요민족 : 백인(15%), 혼혈(30%), 원주민(55%)

o 주요도시 : 산타크루스(Santa Cruz), 코차밤바(Cochabamba), 수크레(Sucre)

o 주요언어 : 스페인어(Spanish), 케추아어(Quechua), 아이마라어(Aymara)

 

 

사회문화

 볼리비아 인구의 55%는 토착 원주민으로써, 이들은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차별을 당하고 있다. 사회의 지도층들은 극소수의 부유한 도시 가족들이며, 나머지들은 광산노동자는 농부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볼리비아의 공용어는 스페인어지만 인구의 60%만이 공용어를 사용하며 나머지는 케추아어나 아이마리어를 사용하고 있다.

 종교의 경우 카톨릭을 95% 정도 사람이 믿고 있지만 외곽으로 떨어진 곳은 기독교 신앙과 잉카나 아이마라 신앙이 합쳐진 종교를 믿고 있기도 하다.

 

 

전 압- 라파스 110V (그 외지역 220V)/ 50HZ

 

 

공휴일

- 1월 1일 : 신년

- 2월 중 : 카니발 축제

- 3월 중 : 부활절

- 5월 1일 : 노동절

- 6월 중 : 성체절

- 8월 6일 : 독립기념일

- 11월 1일 : 성현일

- 12월 25일 : 성탄절

 

 

관 습

 볼리비아인은 약간의 계급의식을 갖고 있고 상류계급은 자부심이 아주 강하다. 산타크루즈에 거주하는 사람은 대다수가 스페인계 자손이고 1950년대 이후에는 산기슭이나 고지대, 계곡지대에서 이주해온 원주민(코리야)과 외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도 있다.

 코리야 여성은 머리를 세갈래로 묶고 모자를 쓰며 주름이 많이 잡힌 스커트를 입는다. 또한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할 때에는 주인에게 꽃이나 적당한 선물을 건네는 것이 좋은데 손님도 답례품을 준다면 받아야 하고 선물은 집에 돌아온 후에 개봉해야 한다.

 볼리비아인은 나온 음식은 조금씩 남김없이 먹는 것을 예의로 생각하며 손님이 남기지 않고 다 먹으면 몹시 기뻐한다. 천천히 식사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다 먹을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

 

 

기 후

 볼리비아의 연중 평균기온은 7℃에서 11℃ 사이이다. 그리고 연중 강우량은 300~600mm 정도로 장마나 홍수가 없으며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고 건기와 우기로 나뉘어진다.

 우기철은 12월~2월 사이이며 그 외에는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 계절은 한국과 반대이다. 즉 봄(9월~11월), 여름 (12월~2월), 가을(3월~5월), 겨울(6월~8월).

 

 라파스시 북쪽에 자리잡고있는 Titicaca 호수는 면적이 8.866㎢에 달하며 크기로는 남미에서 두 번째이고, 위치로는 해상운송 및 교통이 가능한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이다.

 

 안데스 고원지역에는 볼리비아의 최고봉들이 위치하며 가장 높은 Illampu(6.550m)를 비롯 Sajama(6.524m), Illimani(6.402m), Ancohuma(6.360m), Chiaraco(6.240m), Pomeraque(6.222m), Caca-Aca(6.132m), Condoriri(6.125m), Huayna Potosi(6.068m)등 해발 6.000m를 넘는 산들이 수두룩하다.

 

 볼리비아의 중앙지역에 위치한 Cochabamba, Chuquisaca, Tarija 도는 안 데스산맥의 고원지역이 끝나는 부분에 위치하여 가파른 절벽과 계곡으로 이루어지며 동쪽으로 갈수록 완만한 구릉지대와 평지를 이룬다. 평균높이는 해발 2.500m정도로 온순한 기후와 알맞은 강우량으로 목축업이 성하며 볼리비아에서 주거환경으로는 가장 알맞은 조건을 갖춘 지역이다. 연중 평균 우량은 380~700mm정도이고 평균기온은 섭씨 15℃에서 18℃ 사이를 오르 내린다.

 

 볼리비아의 동쪽지방은 열대지역으로 브라질국경에 가까워 질수록 아마존지역의 특성이 나타난다. 이지역에 해당되는 도(道)로는 Santa Cruz, Beni, Pando로서 평균높이 해발 160m에서 500m 사이이고 강우량은 1.100mm~1.900mm로 볼리비아에서 가장 습하며 평균기온 또한 가장 높아 23℃에 이른다.

 

 

볼리비아 역사

 볼리비아 안데스산맥 지역의 문명은 지금부터 21,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여겨지고 있다. 콜롬부스 이전 시대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문화는 띠아와나코로 티티카카 호수 근처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으며 이 지역을 AD 600~1,200년까지 지배했다.

 

 뒤 이은 잉카 제국은 광대한 제국을 세워 현재의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 그리고 칠레 북부 지역을 지배했다.

 

 스페인은 프란시스코 삐사로(Francisco Pizarro)의 인솔 하에 1531년 이 지역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침략자들은 2년 내에 알또 페루(Alto Peru)라고 알려진 영토를 방비하기 위해 인디언들의 신임(그리고 나중에는 불화)를 이용해 가며 빠르게 전진했다. 1544년 뽀또스에서 은광이 발견되었다.

 

 이 발견으로 축적된 부는 이후 두 세기가 넘는 동안 스페인의 경제(그리고 전제군주의 사치)를 보증해 주었다. 그러나 광산 노동자들의 상황은 끔찍한 것으로 대부분의 노예화된 인디언과 아프리카인은 몇 년만에 죽고 말았다.  

 

 방탕한 스페인 통치를 벗어나 독립을 달성하려는 노력은 마침내 시몬 볼리바르의 부관인 안토니오 호스 데 수크레(Antonio Jos de Sucre)에 의해 1824년 아야쿠쵸(Ayacucho) 전투에서 결실을 보게 되었다. 볼리비아는 정식으로 다음 해에 공화국이 되었음을 선포했다.

 

 이웃나라들은 2백만㎢가 넘던 볼리비아의 영토를 둘러싸고 계속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다. 더 많은 땅을 갖고 싶어하던 칠레의 열망은 1879년부터 1884년까지 볼리비아와 싸운 태평양 전쟁(War of the Pacific)에서 결실을 맺었다. 칠레는 승리하여 850km의 해안과 볼리비아의 안또빠가스따(Antofagasta)를 차지하였고 이로써 볼리비아는 내륙국가가 되어버렸다. 곧 이어 페루, 브라질, 아르헨티나도 볼리비아의 국경을 집적거리기 시작했다.

 

 1932년 석유 매장 가능성이 있는 챠코 지역을 둘러싸고 파라과이와 국경 분쟁이 일어나 볼리비아는 더 많은 땅을 빼앗겼다. 뒤이은 챠코 전쟁(1932-1935)으로 국내의 사회적 불안이 조장되면서 개혁주의자들의 연합이 선포되고 개혁 의지로 가득찬 군부 지도자들의 쿠데타가 연이어 발발했다.

 

 아마도 이 기간 동안 가장 중대한 발전은 대중노선의 인민혁명운동(MNR)의 태동일 것이다. 1951년에 빅또르 빠스 에스텐소로(Victor Paz Estenssoro)의 지도하에 선거에서 우세를 보였지만 마지막 순간에 쿠데타에 의해 정권 획득에 실패했다. 쿠데타는 1952년에 4월 혁명으로 알려진 무장 봉기를 일으켰고 그 결과 군부는 물러나고 빠스 에스텐소로가 다시 돌아왔다.

 

 1964년에 레네 바리엔또스(Rene Barrientos) 장군이 이끄는 군사 정권이 MNR을 전복시켰다. 뒤이어 들어선 군사 정권은 획일적인 질서를 강요하며 1982년 에르난 실레스 수아소(Hernan Siles Zuazo)가 이끄는 이스끼에라다 혁명운동(MIR)의 좌익 문민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지배했다.

 

 3년뒤 수아소는 빠스 에스떼네소로의 MNR에 패배했으며 새로운 정권은 곧 천문학적 인플레이션(한때 연간 35,000%까지 치솟았다)을 억제하려고 노력하면서 긴축재정을 실시하였다. 현재는 ADN의 우고 반세르 수아레스(Hugo Banzer Suarez)가 볼리비아의 대통령이다.

 

 볼리비아는 현재 콜롬비아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코카인 수출국으로 이로 인해 볼리비아의 주요 원조국인 미국과의 관계도 소원해지고 있다. 볼리비아는 지역적인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중이며 남미 공동시장을 지지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연간 10% 수준으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예전의 엄청난 인플레이션 역사 때문에 해외 투자가들은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볼리비아의 주된 구조적 문제는 20세기형 사업과 아직도 농부들 그대로인 대부분의 볼리비아인 간에 존재하는 거대한 차이이다.

 

 

볼리비아 약사

2만 년 전 원주민이 이주한 이래 BC 800 년경 최초의 문명인 Chavin문화가 해안 및 고원지대에 등장

 

이후 다수 문명이 나타났으나 그중 Tiwanaku(7-13세기) Wari(8-12세기) 문명이 특기할만한 중심세력을 이루었으며, Tiwanaku 문명소멸 이후 많은 소규모 지역 국가가 등장하였는바 티티카카호를 중심으로한 지역에 최소 7개 이상의 소국가로 구성된 Aymara왕국(12-16세기)이 형성됨.

 

15세기 중반부터 아이마라족은 Cuzco지역으로부터 남진하여 오는 Inca제국(Quechua)과 접촉하게 되었으며 잉카제국은 이 시기를 즈음하여 국가로서의 완전한 조직을 갖추기에 이르렀음.

 

1533년 리마로부터 최초의 스페인 원정군이 파견되어 1538년부터 본격적인 식민지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1545년 대규모 은광이 발견되어 그 중요성이 부각됨.

 

볼리비아는 스페인군에 점령된 이후 리마부왕의 통치하에 있던중 1776년 리마부왕으로부터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통치권이 이전됨.

 

1780-82간 페루, 볼리비아 전역에 걸쳐 스페인 지배에 항거하는 인디오의 대규모 독립운동이 있었으나 진압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스페인에 의해 정복된 이후 명맥만 유지해 오던 토착 인디오 지배계층의 정치, 사회, 경제적 영향력이 완전 소멸됨. 이는 19세기 이전 인디오에 의한 최후의 무력항거였음.

 

16세기초 및 17세기말을 정점으로 은생산은 급격히 감소하여 도시, 광산인구가 감소되고 농장이 확대되었으며 19세기에 이르러 경제위기가 도래함.

 

1806년 프랑스군의 스페인 점령에 이어 중남미에서 최초로 1809.7 볼리비아에서 독립을 위한 민중봉기가 일어났으나 리마부왕 파견군에 의해 완전히 분쇄됨.

 

볼리비아의 독립은 독립영웅 Bolívar Sucre에 의해 1825. 8. 6 쟁취됨.

 

1836년 역사, 문화적으로 많은 공통점을 가진 페루.볼리비아간 국가연합이 형성되었으나 칠레가 이에 반대하고 나서 페루에 원정군을 파견함으로써 1839.1월 국가 연합은 깨져버림.

 

1841년 페루군의 침공이 있었으나 Ballivian 장군에 의해 격퇴되었으며 Ballivian대통령 집권기간을 거쳐 동 정권이 붕괴된 이후 볼리비아 역사상 최대의 정칙적 혼란기가 도래됨. 19세기 중반은 정치적으로 극도의 혼란기였으나 경제적으로는 최대의 팽창기였으며 1873-95년간은 은생산의 황금기로 불리움. 1857년에는 최초의 민선 대통령인 Linares 정권이 수립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Linarista라는 정치세력이 형성됨.

 

1879-83년간 페루와 연합하여 칠레와 싸운 태평양 전쟁에서의 패배로 해안 지역을 상실하고 내륙국가가 되었음(태평양 전쟁을 마무리짓는 평화조약은 1904년 체결됨).

 

1879년 시민.군사반란으로 정부가 전복되고 1880년 시민소수 정부가 수립되었는바, 이는 1936년까지 볼리비아의 지배적인 통치형태가 됨. 1884-1899 간은 보수파 소수정치시대에 속하며 1899년 자유군의 반란으로 보수파가 붕괴됨.

 

1899-1920간은 볼리비아 정치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시기로서 자유주의 물결이 고조되어 정치발전의 황금기를 이루었음.

 

1932-35간은 파라과이와의 Chaco전쟁으로 접경지역 일부를 상실하는 한편, 정치.경제적 혼란이 야기되어 수많은 군사정부와 혁명운동이 난무하는 혼란이 계속되었음.

 

군사정부의 1951년 대통령선거 무효화와 1952년 볼리비아 전체 주석 생산량의 74%를 차지하는 3개광산 국유화조치를 기폭제로 하여 그간 누적되어온 정치. 경제적 혼란과 불황이 폭발, 1952.4.9. 혁명이 발발함. 이는 볼리비아 정치에 전환점을 이루는 사회혁명이었으며, 이 시기에 보통선거제도 정립과 농업개혁이 이루어짐.

 

1952년 망명지도자의 1인인 Estenssoro는 민족혁명운동당(MNR)을 창당, 1952-56 1960-64간 집권하였으며 이후 쿠테타를 주도한 바리엔또스(Barrientos) 장군이 1969년까지 집권함.

 

바리엔또스(Barrientos) 장군이 1969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70.10.7. 토레스(Torres) 장군이 쿠테타로 집권, 좌경 민족주의 노선을 추구하였으나 국내정세는 정치. 경제적으로 더욱 불안정해졌으며, 지도자, 군부 및 정치.사회 각 단체내 우익, 좌익, 극좌의 심한 분열현상이 노정되었음.

 

 

1971.8.19. Hugo Banzer 대령 중심의 군부가 양대정당(MNR FSB볼리비아 사회주의 Falange) 및 중산층의 지지를 받은 Torres 장군의 좌경 정권을 축출하는 쿠테타에 성공, 동 대령이 8.22 대통령에 취임하였음.

 

다수 공산당 및 극렬주의 정치 지도자들은 Torres 정권의 붕괴직후 국외로 도주하였으며, Banzer정부는 1967년 게릴라 봉기에서 실패한 Che Guevara 추종자들의 비밀결사인 국민해방군(Army of National Liberation) 퇴치운동에 힘을 기울였음.

 

1977.11Banzer장군의 민정이양 발표에 따라 1978.7.9 총선거를 실시했으나 볼리비아 선거법원은 7.9 선거의 무효를 선언하고 180일 이내 재선거 실시를 명령

 

1978.7.21.전 내상이며, 공군총사령관인 Juan Pereda장군이 산타크루스에서 쿠테타를 주도, Banzer장군은 3인군사위 위원회에 정권을 인계하고 대통령직을 사임하였으며, 동일 저녁 3인 군사위는 Pereda장군에게 정권을 이양, 동 장군이 대통령에 취임.

 

1978.11.24.육군총사령관 David Padilla Arancibia장군이 무혈 쿠테타를 주도, 1978.7.21 쿠테타로 집권한 Pereda장군을 축출하고 신 군사정권의 대통령으로 취임.

 

Padilla대통령의 민정이양계획에 따라 79.1.1 총선거를 실시하였으나 7명의 대통령 후보중 당선 가능선인 과반수 이상을 득표한 후보가 없었으므로 헌법 규정에 따라 8.1 구성된 의회에서 상위 득표자 3(민주인민연합 UDP)Hernán Siles Zuazo, 민족혁명운동(MNR)Víctor Paz Estenssoro, 민족민주행동(ADN)Hugo Banzer 후보에 대한 결선투표를 실시하였음.

 의회에서 5차에 걸친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였으나, 과반수 이상의 안정세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기 3당간의 양보없는 대결만 계속되어 사실상 대통령 선출이 곤란한 실정에 이르자 군부의 종용에 따라 의회는 Walter Guevara 상원의장을 대통령권한 대행으로 선출하고 1980.5.4 대통령 선거를 재실시하기로 결정하였음.

 

79.11.1 볼리비아 육군사령부 교육처장 Alberto Natusch Busch대령(Banzer 대통령 당시 농림장관 역임)이 쿠테타를 주도, Walter Guevara대통령 권한 대행을 축출하고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나 국내외적으로 곤경에 빠지게 되자 11.16 Natusch 대령이 대통령직을 사임하였으며 볼리비아 의회는 하원의장 Lidia Gueiler Tejada 여사를 권한 대행으로 선출하고 80.6.29 총선거를 실시키로 하였음.

 

 

80.6.29 계획대로 총선거가 실시 되었으나 13명의 후보중 어느 후보도 대통령 당선 가능선인 과반수 이상을 득표하지 못해 새로 구성된 의회에서 선출 예정이었으나 7.17 군부가 6.29 총선의 무효와 Lidia Gueiler Tejada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면서 쿠테타를 일으켜 Lidia Gueiler Tejada 대통령은 3군 총사령관으로 구성된 군사평의회 정권을 이양하고 Luis Garcia Meza육군 총사령관이 대통령으로 취임.

 

81.5.11, 5.26, 6.27 8.3 등 수차의 쿠테타 시도에 의하여 García Meza 대통령이 부득이 81.8.4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Waldo Bernal공군 총사령관등 3인 군사위가 일시 대행하였으나 3인군사위의 지명에 의하여 9.4 Celso Torrelio Villa 육군 총사령관이 대통령에 취임함.

 

Torrelio대통령은 집권중(81.9.4-82.7.20) 경제악화, 헌정회복요구 및 좌익 계열의 정부 전복 활동 지원등 복합적 사회불안이 가중, 82.7.14 사의를 표명하자 3인 군사위는 82.7.19 동 사임을 수락하고 Guido Vildoso Calderón 육군 참모장을 새 대통령에 임명함.

 

Guido Valdoso Calderón 대통령의 군사정부도 정치.경제위기를 타개하지 못하여 민정 이양을 결정하고 82.10.4 의회를 소집함. 동 의회는 페루 망명중이던 좌익 민족주의 혁명운동당(MNRI)당수인 Hernán Siles Zuazo를 대통령으로 선출, 동인이 망명지에서 귀국, 82.10.10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민간정부가 출범케 되었음. 그러나, 경제시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천재지변(1980 홍수 및 한발)으로 경제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계속되는 총파업상태 등으로 정치적, 사회적 불안이 조성되자, Siles대통령은 야당세력 및 일반국민의 여론에 굴복, 85.7 총선거를 1년 앞당겨 실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퇴임함.

 

1985.7 총선결과, 중도좌익 노선의 Paz Estenssoro 후보 (MNR 민족혁명운동당)는 의회내 절대다수를 확보하지 못했으나, MIR(좌익혁명운동당)과 제휴하여 집권하게 되었으며, 집권후에는 다수 야당(ADN:민족민주행동당)과 민주주의를 위한 협약을 체결, 국내정치 안정기반을 구축하는 한편, 당면한 경제위기 극복에 최우선을 두고, 경제회복을 위한 원조 또는 차관획득등 경제실리외교에 총력을 기울임.

 

1989.5.7 실시된 총선에서 어느 정당도 대통령 당선에 필요한 과반수를 득표하지 못하였으나 제1야당인 민족민주행동당(ADN)의 반세르 후보가 대권경쟁을 포기하고 제2야당인 우익혁명운동당(MIR)의 하이메 빠스 사모 라(Jaime Paz Zamora)후보를 지지함으로써 1989.8.3 의회에서 실시된 대 통령 선출 투표에서 동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됨.

 

1993.6.6 선거에서 야당인 민족혁명운동당(MNR)Gonzalo Sánchez de Lozada 후보가 총투표의 36 %를 획득, 여타야당인 시민단결동맹당(UCS)과 볼리비아 자유운동당(MBL)등과 제휴하여 대통령에 선출됨. Sánchez 대통령은 93.8.6 집권즉시 정부조직 재정비, 교육.보건등의 지방분권화(Participación Popular), 대중정치 참여, 주요 국영기업의 자본화, 교육 개혁등 이룩함.

 

1997.6.1. 실시된 선거에서 22.62%를 얻은 ADN(민족행동당)Hugo Banzer Suárez 후보가 MIR(좌익혁명운동당), UCS(시민단결연맹당), CONDEPA(조국의 양심당)과 연합, 상하원 결선 투표에서 157석중 118석을 얻어 대통령에 당선됨.

 

Hugo Banzer Suárez 대통령은 재임중 빈곤타파를 최고 정책 목표로 삼고 볼리비아 국민들이 평화와 번영속에 살아갈수 있도록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천명함.

 

 

출입국 정보

❋ 볼리비아 비자

 2000년 3월 23일 이후로 주한 볼리비아 대사관은 폐쇄 되었다. 따라서 한국내에서는 볼리비아 비자를 받을 수 없고, 제3국으로 가셔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

- 한국 일반여권을 소지하고 있는 여행객은 볼리비아 입국 시 도착비자 발급이 가능하다. 도착비자 발급 시에는 53$(환율변동에 따라 일부 조정)을 도착공항에서 지불하여야 한다.

- 한국은 볼리비아 정부에서 도착비자가 가능한 국가그룹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공항에서의 번거로움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한국 의정부에 있는 주한볼리비아명예영사관이나 체류하고 있는 국가에 있는 볼리비아 대사관 혹은 영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 한국 관용여권이나 외교관여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단기방문 시 비자가 면제된다.

 

❋ 세관

 18세 이상의 여객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궐련 200개피, 여송연 50개피 또는 살 담배 1 파운드이상되면 세관에 신고해야한다.

 

❋ 검역

 황열병 오염지역을 출발한 지 6일 이내에 도착한 경우 이외에는 필요없다.

 

❋ 볼리비아 입국절차 및 심사

<입국심사>

- 기내에서 나누어주는 입국신고서를 작성한 후 입국심사대 앞에서 여권과 함께 제출한다. 특별한 이상이 없으면 통과하고, 몇가지 질문을 할 경우도 있다. 입국스탬프를 찍은 후 입국신고서 한장을 다시 돌려주는데 그것은 출국할 때 필요하니 잘 보관하고 있으면 된다.

- 출입국 시 모두 입국신고서, 세관신고서, 외화신고서를 작성하여야 한다.

- 최근 볼리비아 출입국 당국은 동양인의 입국 시 귀국 항공권 소지 여부를 입국심사 시 확인하고, 미소지 시 입국거부를 하는 사례가 있는 만큼 귀국 항공편을 확인하여야 한다.

 

<세관신고 시 유의사항>

- 모든 여행객은 수화물을 회수한 후 세관을 통과하여야 하며, 세관통과 시 눌러진 버튼색(녹색: 무사통과, 적색: 검사)에 따라 세관 검사를 하게 된다. 따라서 문제가 될 물품은 자진 신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 외화 신고는 반입하는 외화의 액수에 관계없이 모두 신고를 하여야 한다.

 

 

여행 도우미

 볼리비아는 고산지역이어서 일반적으로 생활하기에 불편함을 느끼고 이러한 현상은 각 개인이 고산지대에 적응할 때까지 며칠동안 지속된다. 적응하는 동안 각 신체의 변화에 두통, 오심, 구토, 불면증의 증상들이 나타난다. 보편적으로 호흡곤란의 증상은 많이 나타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은 완화될 것이다. 이러한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하루에 적어도 2ℓ 이상의 수분을 섭취하는것이 좋다. 이것은 적혈구가 높은 고도에 적응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며칠동안은 가능하면 천천히 걷고 활동량을 제한한다. 운동은 피하고, 만약 활동 후 머리가 아프거나 불편감이 있으면 머리부분을 낮게하고 침상 안정을 하는 것이 좋다. 만약 당신이 매일 운동을 하였던 습관이 있었다면, 고산지역에서는 적어도 2주 후에 가벼운 운동부터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라 파스(La Paz) 기후()

도시명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라 파스

(La Paz)

최고평균

13

13

14

14

13

14

13

14

14

16

16

14

최저평균

3

3

3

2

0

-2

-2

-1

0

2

3

3

평   균

8.0

8.0

8.5

8.0

6.5

6.0

5.5

6.5

7.0

9.0

9.5

8.5

강수량mm

116

110

66

26

14

2

6

12

42

29

44

96

강우일수

20

16

11

6

3

2

2

3

8

8

9

16

 

 

 관광 명소

 

 

 

볼리비아 교통

 내륙국인 리비아의 교통은 서부지구 안데스산맥과 동부지구의 광대한 원시림인 아마존의 지리적 요인도 있어 인접국에 비해 개발이 뒤떨어졌다. 전반적으로는 라파스를 중심으로 한 북부 고원지대와 산타 크루즈를 중심으로한 남부 저지대의 교통사정은 약간 다르다. 고원지대에서는 항공편, 철도, 버스를 이용하는 반면. 남부에서는 버스와 택시가 주로 이용된다.

 

가. 항공편

 볼리비아노 항공(LAB : Lloyd Aereo Boliviano)과 에어로 슈르(Aero Sur) 항공이 매일 산타크루즈와 코챠밤바 등의 주요도시를 운항하고 있다. 산타크루즈는 미국항공(AA, American Airlines) 편도 있다. 그외에 항로가 연결되어 있는 도시는 수크레, 포토시, 토리니다이다. 또한 라파스에는 마이애미나 가까운 인접국으로 가는 국제선도 있다.

 

나. 장거리버스

 볼리비아는 플로터(Flota)라 불리우는 장거리버스가 매우 발달되어 있고 편수도 많다. 특히 라파스∼오를로, 라파스∼코차밤바∼산타 크루즈 사이는 포장도로이므로 유쾌한 버스 여행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외의 노선은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 단점이다. 특히 우기에는 도로가 수몰되어 버리는 문제점도 있다. 라파스를 비롯한 각 도시에는 큰 버스터미널이 있고 행선지별, 회사별 플랫홈이 나누어져 있으므로 알기 쉽다.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버스는 시내버스터미널에서 떠나고 도착한다. 행선지, 출발시각 등 상세한 것은 각도시 버스 터미널에 가서 조사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그리고 국경을 넘나드는 칠레의 아리카행 버스가 있는데 화요일, 금요일 5시 30분에 출발한다. 소요시간은 약 24시간이다.

 

다. 철도

 볼리비아의 철도는 라파스를 기점으로 각방면으로 뻗어있지만 정비상태가 나빠 정확한 스케줄을 맞추기는 어렵다. 차량은 급행(Tren Expreso), 레일 카(Feerrobus), 혼합차(Tren Mixto) 세종류가 있고 지정석은 풀맨(Pullman)과 익스페셜(Expecial) 두종류가 있다. 노선은 스코차밤바, 라파스∼오롤로∼니비쟐슨, 라파스∼오를로∼포토시∼스쿠레, 산타 크루스∼키하로 등이다.

 

라. 마이크로(Micro)와 미니 버스(Minibus), 컬렉티보(Corectivo)

 마이크로는 본넷 타입의 버스를 말한다. 버스 정류장이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고 정류장 표시도 없지만 사람이 기다리는 곳은 대개 버스정류장이고 버스 앞유리창에 목적지가 표시되어 있다. 미니버스는 마이크로버스보다 빠르고 편리한데 소년이 어디 어디를 경유하는지 외치거나 앞유리창에 목적지가 표시되어 있다. 콜렉티보는 마이크로보다 큰 버스를 말하는데 혼잡하고 늦다. 익숙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콜렉티보보다 미크로를 이용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마. 택시

 라파스에는 4종류의 택시가 있다. 일반택시, 자가용차를 택시로 이용하는 백택시, 볼리비아에서도 라파스에만 있으며 노선을 정해놓고 운행하는 트루피 택시(Trufi)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디오 택시가 있는데 전화로 예약할 수 있고 차체에 전화번호가 많이 적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바. 교통사고와 유의사항

 볼리비아는 여러가지 지형적인 여건상 운전하기가 어려운 곳이므로 익숙하지 않을 경우에는 경험이 풍부한 운전기사를 고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차와 사람 모두가 우측통행을 원칙으로 일방통행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보행자들이 빨간 신호등상태이든 횡단보도가 아닌 곳이든 어디를 막론하고 건너다니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야간에는 음주운전 단속이 적으므로 음주 운전을 하는 사람이 많다. 교통사고를 당하면 일단 보험회사에 연락하면 되는데 보험회사가 경찰수속 및 사고처리를 해준다. 차가 차고에 들어있지 않는한, 언제 어디서나 도난의 위험이 있고 특히 야간 노상주차는 위험하므로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지 운전면허증은 교통경찰이 실시하는 시험(필기 및 실시)에 합격하면 교부되며 취득하기까지는 약 1주 정도의 시간이 요구된다. 국제면허증은 그대로 사용할 수 없으므로 라파스 자동차클럽에 가지고 가서 도장이 싸인을 받으면 1년동안은 사용할 수 있고, 교통당국이 발급하는 면허증으로 바꿀 수도 있다.

 

 

볼리비아 오루로 카니발(Carnival of Oruro)

 볼리비아 서부 산악의 해발 3,700m 지점에 있는 오루로(Oruro)는 콜럼버스 이전 시대에 중요한 의식을 치르던 장소였으며, 19세기와 20세기에는 중요한 광산 지역이었다. 1606년 스페인 사람들이 재정착한 후에도 이곳은 우루인(Uru people, Uros, 우르어 : Qhas Qut suñi, 잉카제국 이전의 민족)들에게 신성한 장소였다.

 

 우르인은 그들이 특히 중요하게 여겼던 이토(Ito) 대축제 등 의례를 치르기 위해 먼 거리를 마다 않고 이곳으로 찾아왔다. 스페인 사람들은 17세기에 우르인의 의례를 금지했다. 그러나 우르인은 이 의례를 기독교 전례로 가장해 지속했으며 그 결과 안데스의 신들은 기독교 성상 뒤로 감춰지고 안데스 지역의 신성한 존재(divinity)들은 기독교 성인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이토 대축제도 2월 2일에 열리는 성촉절(聖燭節, Candlemas)을 기리는 기독교 전례로 바뀌게 되었고, 그러면서 오루로 신인 티위(Tiw)를 경배하는 전통 춤인 라마라마(lama lama)와 디아블라다(diablada)도 오루로 축제에서 중요한 춤으로 편입되었다.

 

 해마다 개최되는 오루로 카니발은 10일 동안 이어지는데, 가면· 직물· 자수 등의 훌륭한 장식 민속예술도 선보인다. 카니발의 진수는 엔트라다(entrada)라는 댄서들의 행렬이다. 행사기간 동안, 댄서들은 4km에 이르는 길을 뒤덮은 채 20여 시간 동안 쉼 없이 반복하여 춤을 추며 행진의 여정을 이어간다. 28,000명이 넘는 댄서들과 10,000여 명의 음악가들이 이 행렬에 참가하며, 이들은 중세에 기원한 신비로운 느낌의 연주를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 이주를 발생하게 만드는 안데스 산맥 고지대의 사막화와 전통적인 광업 및 농업이 쇠퇴함에 따라 오루로 지역은 인구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게다가 도시화로 인해 문화 변용과 세대차가 심화되고 있으며, 오루로 카니발을 상업적으로 무분별하게 이용하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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