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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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

 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는 16세기초부터 1834년까지 주의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였다.

 

 브라질 공화국이 선포된 1889년 리우데자네이루 군은 주가 되었고 1890년 테레소풀리스가 주도로 정해졌다.

 

 지역의 경제는 노예노동력을 이용한 사탕수수 생산에 바탕을 둔다. 19세기에 커피가 중요한 상업작물이 되었다.

 

 현재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으며 대부분이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주산업은 야금술· 인쇄업· 조선업· 정유업이다.

 기후는 대체로 덥고 습하다.

 

 

 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는 북쪽으로 에스피리투산투 주와 미나스제라이스 주, 서쪽으로 상파울루 주, 남쪽으로 대서양을 경계로 한다.

 

 리우데자네이루라는 이름은 주가 만들어지는 데 큰 영향을 끼친 리우데자네이루 시에서 유래했다. 전체면적 가운데 해안 석호(潟湖)와 내륙 호수 같은 곳이 960㎢를 차지한다. 주도는 리우데자네이루 시이다. 이 주의 역사는 리우데자네이루 시의 역사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 시는 16세기초부터 최초로 분리 독립체가 된 1834년까지 주의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였다. 1835년 니테로이가 리우데자네이루 군(郡)의 군청소재지가 되었다.

 

 브라질 공화국이 선포된 1889년 리우데자네이루 군은 주가 되었고 1890년 테레소풀리스가 주도로 정해졌다. 그러나 1902년 행정중심지는 다시 니테로이로 옮겨졌다. 1960년 브라질의 수도가 새로 건설된 브라질리아로 이전했을 때, 연방구(聯邦區)였던 영토는 과나바라 주로 신설되어 리우데자네이루 주 안에 고립된 채 남아 있게 되었다. 1975년 이 두 주는 합병되어 리우데자네이루 주로 재편되었고 리우데자네이루 시가 주도로 지정되었다.

 

 군 단위의 영토가 형성될 때부터 이 지역의 경제는 노예노동력을 이용한 사탕수수 생산에 바탕을 두었다.

 

 19세기에는 커피가 가장 중요한 상업작물이 되었으며 이를 통해 파라이바 계곡의 지주들은 큰 부를 축적했다. 이들은 1888년 노예제가 폐지되고 1889년 공화국이 선포될 때까지 브라질 제국의 지배집단으로 권력을 행사했다. 리우데자네이루 주는 평야 및 해안 저지대, 산이 많은 고지대, 내륙 고원 등 세 지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해안의 저지대 곳곳은 그란데 섬 앞바다 맞은편에 있는 해안줄기를 따라 프리우 곶과 사쿠아레마에서 볼 수 있듯이 바다까지 뻗어 있는 단층지괴나 암석으로 단절되어 있다.

 

 이곳은 바다 쪽으로 뻗은 마르 산맥이 가까운 서쪽으로 갈수록 좁아진다. 기후는 대체로 덥고 습하다. 여름에는 소나기가 많이 내리며 겨울에는 남쪽에서 접근해오는 차가운 기단의 영향을 받는다. 1일 평균기온은 보통 22℃ 이상이다.

 

 산이 많은 고지대는 남서에서 북동방향으로 해안과 평행하게 뻗은 마르 산맥의 일부와 내륙 쪽으로 멀리 있는 만티케이라 산맥 일부를 포함한다.

 

 페트로풀리스·테레소풀리스·노바프리부르구 같은 몇몇 주요 관광지 및 휴양지가 자리잡은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은 고도가 높기 때문에 평균기온 20℃ 이하의 온화한 날씨가 계속되는 것이 특징이다. 가장 높은 곳은 오르강스 산맥과 이타티아이아 지괴인데 최고봉인 아구야스네그라스 산의 고도는 2,787m나 된다.

 

 고원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은 파라이바두술 강 유역으로 19세기에 처음으로 커피농장이 발달했던 곳이다.

 

 정상 부분은 기온이 온화하지만 파라이바두술 강으로 내려오면서 점차 더워진다. 이 강은 북동쪽으로 흐르다가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북동부에 있는 대서양으로 흘러나간다. 파라이바두술 강의 수평면에 해당하는 지역은 열대기후로 기온이 상당히 높다.

 

 원래 열대림으로 뒤덮인 습윤지역이었으나 16세기 인디언과 유럽인 거주자들이 임시 농경지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고 불을 지르는 케이마다스 농법으로 넓은 토지를 개간하면서 열대림은 파괴되었다(화전농법). 플랜테이션 농경으로 사탕수수를 재배하면서 삼림개간은 계속되었다.

 

 커피재배가 늘면서 더욱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삼림은 거의 소실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20세기 중반 브라질 정부는 넓은 언덕 중턱과 지괴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다시 나무를 심고 남아 있는 원시림을 보존하는 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식물과 동물을 보존하기 위해서 티주카 삼림(3,300㏊)으로 널리 알려진 지역을 1961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오르강스 산맥의 3만㏊에 걸친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만들었고, 미나스제라이스 주 경계에 있는 만티케이라 산맥의 이타티아이아 지괴에도 1만 1,900㏊에 이르는 이타티아이아 국립공원을 조성했다.

 

 공원에는 홍두(紅豆)· 페로바스· 임부이아스· 양치류 및 종려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이런 국립공원을 제외하면 숲지대는 리우데자네이루 시 근처에 있는 구릉 사면에 조금 남아 있을 뿐이고 그나마 도시권이 점차 넓어지면서 사라지고 있다. 산타크루스· 캄푸그란데· 자카레파과 평원에는 목초지가 펼쳐져 있고, 반면 진흙이 많은 해안지대에는 여러 수종으로 된 울창한 홍수림(紅樹林)이 붉고 노랗거나 흰빛이 어우러진 다채로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삼림에는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지만 초기 거주민들의 약탈과 계속된 도시반경의 확장 때문에 아주 깊은 보안림(保安林)이나 눈에 띄지 않는 장소로 들어가 사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 지역에서는 아직도 검은 꼬리와 부드러운 털을 가진 발톱원숭이를 비롯하여 '카신겔레(Sciurus ingrami)'라고 하는 다람쥐, '마쿠루(Tinamus solitarius)'라고 하는 도요타조가 발견된다. 오셀롯· 앵무새· 개미핥기· 아르마딜로· 아메리카너구리· 덤불개· 주머니쥐· 뱀 등이 흔하다.

 

 리우데자네이루 주는 브라질에서 가장 많이 도시화된 곳으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주민 대부분은 리우데자네이루 시를 비롯한 도심에 몰려 살고 있는데 로마 가톨릭교도가 대다수이지만 일부는 개신교와 심령술을 믿는다. 20세기 후반에 상당수의 병원과 의료 센터가 생겼다. 공립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및 대학교가 있으며 사립 고등교육 기관도 있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으며 노동인구의 대부분이 제조업과 서비스업 계통에 종사한다.

 

 농업은 주수입의 약 1/6, 제조업 생산은 약 1/3을 차지하며 서비스업은 절반 남짓한 비중을 차지한다. 주산업은 야금술·인쇄업·조선업·정유업이다. 섬유·식료품·화학제품 등을 많이 생산하며 사탕수수· 오렌지· 바나나 같은 농산물도 재배한다.

 

 도로포장률은 20% 미만이며 센트랄두브라질 철도와 레오풀디나 철도를 통해 브라질 국립 철도망과 연결된다. 길이 14.5㎞의 리우-니테로이 다리는 리우데자네이루 시와 과나바라 만(灣) 동쪽에 있는 니테로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두 도시 사이에는 연락선과 수중익선(水中翼船)도 운항된다.

 

 리우데자네이루 시에 속한 과나바라 만의 산투스두몬트와 고베르나도르 섬의 갈레앙에는 공항이 있다. 1977년 개설된 갈레앙 공항은 국내항공뿐 아니라 국제항공도 담당한다.

 

 20세기 후반 들어 박물관· 영화관· 극장 및 방송국 등이 많이 생겼다. 일간신문도 상당수 발행되고 있다. 

 

 

리우의 역사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국토를 갖고 있으며 인구가 1억 8000만 명이나 되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이하 리우)는 여러 가지 자랑거리를 갖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는 '1월의 강'이라는 뜻인데 16세기 초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 1454~1512)가 처음 이곳에 상륙한 것이 1월이었고 파도 없이 깊숙이 들어온 만을 강이라 생각하고 붙인 이름이다.

 

 리우는 이탈리아의 나폴리,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힌다. 대서양에 면해 있고 1년 내내 따뜻하고 온화한 기후이다. 코르코바도, 팡데아수카르(까끌까끌한 작은 섬), 킨타다보아비스타 공원, 티주가 공원, 세계적인 휴양지인 코파카바나 해변 등이 유명하다.

 

 팡데아수카르는 해발 400m가 채 안 되는, 달걀처럼 묘하게 생긴 화강암 산인데 바다로 돌출해 있기 때문에 정상에 오르면 리우의 아름다운 해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로 알려진 '리우-니테로이' 다리도 보이는데 길이가 장장 12km나 된다.

 

 리우의 해변은 유명한 코파카바나를 비롯해 10여 곳의 해변이 각기 특색을 자랑한다. 백사장 길이를 모두 합하면 80km에 달하며 특히 5km에 달하는 백사장이 있는 코파카바나 해변은 아름답기로 이름나 있다. 코파카바나 해변 인근의 메이오(Meio) 해변도 시선을 끈다. 메이오 해변은 토플리스 차림의 여인들이 일광욕을 즐기는 나체해변으로도 유명하다.

 

 베니스 · 니스와 함께 카니발(Carnaval)로도 유명하다. 원래 카니발은 금욕 기간인 사순절을 앞두고 즐기는 축제를 말하는데 리우 카니발은 매년 2월 말부터 3월 초 토요일 밤에서 수요일 새벽 4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축제가 열린다. 전체 브라질 관광객의 3분의 1이 이 기간에 브라질을 찾는다.

 

 리우 카니발은 포르투갈에서 브라질로 건너온 사람들의 사순절 축제와, 아프리카 노예들의 전통 타악기 연주와 춤이 합쳐져서 생겨났다. 이것이 점차 발전하여 20세기 초에 지금과 같은 형식의 카니발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 초반까지는 보통의 거리축제에 지나지 않았는데 카니발을 위한 삼바학교들이 설립되고 학교별로 퍼레이드를 펼치면서 지금과 같은 대규모의 축제로 발전했다. 리우 카니발이 세계적인 축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삼바 퍼레이드 덕분이다. 삼바 무용수들이 퍼레이드를 할 수 있도록 설계된 거리를 '삼바드로모'라고 하는데 총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타악기를 연주하는 대규모 밴드를 '바테리아'라고 한다.

 

 브라질인들은 리우 카니발이 끝나자마자 다음해의 카니발을 준비한다. 과거 브라질에서는 리우 카니발을 보다 활성화하기 위해 경연대회를 개최하여 우승팀에게 거액의 상금을 부상으로 주었지만 현재는 상금을 주지 않는다.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각 단체에서 지원하는 지원금과 자비로 경비를 부담해야 하는데 보통 지원금은 총 경비의 10%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거의 전부를 참가자들이 부담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화려한 의상과 독창적인 장식, 춤과 율동을 선보이는 것을 보면 브라질인들의 축제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브라질인들이 카니발을 기다리며 1년을 산다는 말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리우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마낭까낭 축구장(Estadio Maracana)이 있다. 1950년 월드컵을 위해 건립된 이 경기장은 2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지붕을 받치는 기둥이 하나도 없으며 자동차가 관중석까지 들어올 수 있게 설계되었다. 이 경기장에서 열린 195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은 20만 명의 관객이 보는 가운데 우루과이에게 패했다. 일반 축구 경기에도 10만 명 정도의 관객이 모인다니 축구에 대한 브라질인들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 평일에는 축구장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는데 리프트를 타고 귀빈석에 가볼 수 있고 잔디도 밟아 볼 수 있다. 축구장에는 흥미로운 것이 있는데 승자와 패자의 눈물이라는 동상이다. 승자는 기쁨에, 패자는 슬픔에 눈물을 흘린다는 의미로, 축구의 결과가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리우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것은 역시 세계 신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된 코르코바도(곱사등이)의 그리스도 상이다. 그리스도 상은 브라질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1931년 코파카바나 해변 맞은편에 위치한 해발 710m의 코르코바도 언덕 정상에 건설되었다. 브라질인 에이토르 다 실바 코스타가 설계를 마무리했다.

 

 원래 십자가를 들고 있는 청동상으로 설계되었으나 금속 골조는, 당시 브라질 정황을 감안할 때, 정권이 바뀌면 철거하고 녹여버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철근 콘크리트 골조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수차례의 설계 변경을 거치면서 결국 프랑스의 조각가 폴 란도프스키가 디자인한 높이 38m, 양팔을 벌린 길이 28m, 손바닥 크기 3m, 무게 1145t의 거대한 조각상으로 확정되었다.

 

 하단부의 소규모 성당 위에 조각상을 설치했는데 산 정상에 세워지는 것을 감안해 머리의 면류관과 두 팔이 피뢰침 역할을 하도록 했으며 양 손바닥에 예수의 고난을 의미하는 못 자국을 조각했다. 기본 재료는 콘크리트지만 그 위에 연마한 녹색 동석(凍石)으로 된 작은 삼각형 타일을 덮어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 거상은 프랑스에서 제작된 다음 리우로 옮겨 조립한 것이다.

 

 그리스도 상의 의상 안에 든 네 기둥은 조상 전체를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기둥들은 가로 버팀대로 묶여 있어 조상이 바람에 견딜 수 있게 해주며 아래로는 기단의 토대에 연결되어 있다. 또한 바닥에서 조상의 어깨가지 올라가는 기둥 중간 중간에 적당한 간격으로 단을 끼워 묶었다. 그 기둥들은 조상의 외부 형태에 따라 구부러져 있다. 목 부분의 안에는 가로 들보로 연결한 캔틸레버(cantilever)식 지지대를 설치해 머리의 무게를 지탱토록 했다. 두 팔은 철근 콘크리트로 된 격자 들보로 지탱했고 손 부분은 강철 격자 들보로 떠받쳤다. 세월이 흐르면서 해풍 등으로 풍화가 계속되자 1990년 실리콘계 방수 석재 처리제를 이용해 보존처리 과정을 거쳤다.

 

 주름진 성의(聖衣) 자락 위로 활짝 펼쳐 든 팔은 하늘을 향하지도 땅을 향하지도 않는다. 백인과 인디오의 풍모가 묘하게 융합된 조상의 얼굴은 리우시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다. 조상 내부에는 15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전망대가 마련돼 있지만 현재는 사전에 브라질 산림청(IBAMA)으로부터 촬영허가를 받은 사람에 한해 공개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시내의 경관뿐만 아니라 코파카바나 해변, 이파네마 해변까지 볼 수 있다. 2003년 1월부터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200여 개의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서 주변의 경관을 보는 것도 일품이다.

 

 리우의 상징 거대 그리스도 상이 세계 신 7대 불가사의의 후보 명단에 포함되자 인간이 만든 가장 경이로운 작품을 뽑는다는 세계 신 7대 불가사의 선정의 본래 목적과는 달리 민족성에 의지하는 졸작들이 선정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그리스도 상은 19세기 말에 건설된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이나, 20세기 중반에 건설된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만큼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에펠탑과 오페라하우스는 건설 시기는 늦지만 당대의 과학기술이 총동원된 역작이지만 리우의 그리스도 상은 단순한 콘크리트 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리우 그리스도 상은 당당하게 세계 신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되었다.

 

 사실 어느 정도는 예상된 것이었다. 그리스도 상이 세계 신 7대 불가사의 최종 후보에 포함되었다고 알려지자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1억 8000만 국민에게 세계 신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될 수 있도록 투표에 적극 참여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심지어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브라질인은 브라질인이 아니라고까지 말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리우 그리스도 상이 세계 신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되자 브라질인들은 그리스도 상의 가치와 선정의 정당성에 대해 당당히 밝혔다.

 

 이 선정 프로젝트는 인간들이 만들었다고 생각하기에는 믿기 어려운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불가사의한 작품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일곱 개의 걸작품을 선정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리우 그리스도 상이 다른 후보들에 비해 역사성이나 건축적 의미에 있어 다소 떨어진다 하더라도 프로젝트의 20개 후보군에 선정될 정도라면 그리스도 상이 선정되도록 자신들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 신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된 기념물을 가진 중국 · 인도 · 요르단 등의 나라에서도 국민들에게 투표에 적극 참여하라고 호소하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스도 상을 만들게 한 브라질의 역사는 유럽인들의 상륙으로부터 시작한다. 1500년 인도를 향해 리스본에서 항해를 나선 페드로 알바레스 카브랄(Pedro Alvares Cabral, 1467~1520)이 우연히 브라질 해안가에 도착한 뒤 1531년 포르투갈 왕은 브라질에 정착민들을 보냈다. 당시 포르투갈은 해양국으로 매우 막강한 국력을 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에스파냐 등 다른 나라의 정복자들이 접근하지 않았다. 브라질이 남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이유이다.

 

 브라질에 도착한 포르투갈인들은 브라질의 토지와 기후가 사탕수수 재배에 적합하다는 것을 곧 알아차렸고 많은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았다. 1690년대에는 미나스 제래스(Minas Gerais)에서 황금이 발견되자 브라질인과 포르투갈인은 물론 아프리카 노예들이 광산에 투입되었다.

 

 1807년 나폴레옹 군대가 리스본으로 진격하자 포르투갈 왕 주앙 6세와 왕족 일가가 브라질로 피신하여 리우데자네이루를 포르투갈브라질연합공화국의 수도로 정했다. 그런데 1822년 국왕 주앙 6세가 귀국한 후 왕자 돔 페드루는 브라질의 독립을 선언하고 스스로 페드루 1세라 칭했다. 1831년 페드루 1세가 전제(專制)를 이유로 물러난 후 페드루 2세가 뒤를 이었다. 1888년 브라질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페드로 2세는 요양 여행이 잦아 딸 이사벨 공주에게 국내 정치를 위임했는데 그녀가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노예들을 해방시켜버린 것이었다. 이 사건은 브라질 정국을 소용돌이로 몰아갔다.

 

 어이없이 노예들을 빼앗기게 된 당시의 기득권자인 지주와 권력자(일명 콜로네레스)들은 곧바로 왕정에 반격을 가했고 1889년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제를 출범시켰다. 그 후 40년 동안, 19세기 말 세계 커피 총생산의 4분의 3을 차지한 커피 생산 경제를 바탕으로, '콜로네레스'의 지배가 계속되었다.

 

 그리스도 상을 건립하겠다는 아이디어는 1850년대부터 있었지만 1889년 브라질이 공화국이 되면서 정교(政敎) 분리가 이루어져 성사되지 못하다가 1921년 시의 상징적 차원에서 그리스도 상 건립 필요성이 다시 한 번 제기되어 추진됐다. 1926년 공사가 시작되어 브라질 독립 100주년 되는 해인 1931년 10월 12일 오후 7시 불꽃이 펑펑 터지는 가운데 거대한 그리스도 상은 온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평화와 사랑의 상징인 그리스도 상이 계획되고 건설된 시기에 브라질에서는 봉기와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콜로네레스'의 지배에 대항해 19세기 말 바이아주 농민들이 대봉기를 일으켰고 1912~1915년에는 남부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1922년 '테니엔테스(청년장교)'의 반란을 지휘한 프레스테스는 1924~1926년에 부대를 이끌고 정부군과 싸우면서 2만 4000km나 행군했지만 정권을 타도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1930년 세계대공황 하에서 커피 생산이 타격을 받게 된 것을 기회로 리우그란데두술주 목축· 공업자본을 대표한 바르가스가 청년장교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일으킨 쿠데타를 통해 '콜로네레스'의 지배는 무너졌다.

 

 

리우 데 자네이루 기후(℃)

도시명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리우 데

자네이루

최고평균

34

34

33

32

31

29

29

31

32

32

33

34

최저평균

19

24

20

18

16

15

14

14

16

16

17

18

평 균

26.0

26.2

25.6

24.1

22.4

21.1

20.7

21.2

21.6

22.3

23.4

24.9

강수량mm

135.1

123.9

133.9

108.6

77.5

51.5

44.7

45.5

61.9

82.0

99.7

137.1

 

 

리우 쌈바축제(Rio Carnival, Carnaval do Rio de Janeiro)

 브라질은 특기가 참 많다.

 축구, 쌈바, 축제...그러고 보니 모두 온 몸으로 즐기는 것들이다.

 그래서 브라질을 정열의 나라로 부르는 것 같다. 그 중 브라질을 가장 요란하게 광고하는 것은 단연 쌈바와 축제다.

 매년 1~2월 무렵에 시작해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전날인 참회화요일(Mardi Gras, Shrove Tuesday)까지 약 5일간 개최된다. 가톨릭 전통의 카니발이지만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브라질의 역사 속에서 유럽과 아프리카, 원주민의 전통이 뒤섞인 다채로운 축제로 성장했다.

 

 

 화려한 의상의 무희들, 휘황찬란한 각종 퍼레이드, 흥겨운 쌈바의 리듬, 그리고 정열의 쌈바춤...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몸 속의 모세혈관이 몸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흥분에 휩싸이게 된다.

 

 이런 분위기는 오랫동안 카니발을 개최해 온 브라질의 남다른 노하우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축제의 주인공인 쌈바가 실은 아픈 역사 속에서 탄생된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쌈바'는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강제로 끌려온 흑인들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포르투갈이 브라질의 원주민인 인디오를 몰아내고 이곳을 점령했을 때 이들은 이곳의 비옥한 대지에 사탕수수를 심기 시작했고, 노동에 필요한 노예들을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어 왔다. 흑인 노예들은 온 종일 힘든 노동을 끝내고 잠자리에 들 때면 언제나 고향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굶주린 배고픔의 고통도 참기 힘들었다. 그들은 이런 슬픔과 고통을 잊기 위해 그들의 고향에서 즐겼던 노래와 춤을 추며 그 시간을 달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쌈바다.

 

o 유래와 역사

 브라질의 카니발 문화는 남아메리카 대륙에 이주한 유럽인들에게서 전해졌다. 브라질은 1500년 무렵부터 1822년까지 포르투갈에 의해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식민지 브라질에서 노예제가 발전한 것은 16세기 중반 이후였다. 당시 사탕수수를 통한 설탕 무역이 브라질 경제의 중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탕수수 붐으로 기존 원주민 노예로는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노예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18세기 후반까지도 광산과 식품 산업, 목장 등 대부분의 브라질 경제가 노예 노동력에 의존해 성장했다. 대규모 아프리카 노예 유입과 동시에 원주민 노예화 역시 18세기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1888년 노예제가 폐지되자 자연스레 브라질은 포르투갈과 원주민, 아프리카 문화가 뒤섞인 사회로 발전했다.

 

 포르투갈의 전통적인 봄맞이 축제 '엔트루두(Entrudo)' 역시 식민지 시기에 브라질로 유입됐다. 엔트루두는 봄이 시작할 무렵인 사순절 직전 거리에서 서로 달걀과 밀가루, 진흙 등을 던지며 봄의 시작을 알리던 풍습이다. 식민지 브라질에서도 포르투갈 사람들은 엔트루두 기간에 음식물을 서로 뿌리며 장난치는 일을 계속했다. 다만 브라질의 엔트루두는 가난한 사람이나 노예들이 상류층 사람들에게 종종 오물을 뿌리는 폭동으로 변했다. 결국, 1850년 무렵 브라질 지배계층은 엔트루두 대신 폴카나 왈츠 등을 즐기는 가면무도회를 새로운 축제로 개최하기 시작했다. 폭동 위험을 막고 엔트루두의 무질서한 성격을 바꾸기 위한 시도였다. 축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메리카 원주민과 아프리카 이주민들의 문화가 가미되어 현재 리우 카니발과 비슷한 형태로 발전해갔다.

 

 19세기 후반에는 퍼레이드가 리우 카니발의 중심 행사가 되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신분과 다른 복장을 하거나, 화려하게 치장하고 거리를 행진했다. 노예 해방이 일어난 19세기 말까지 아프리카인 노예를 중심으로 한 폭동은 계속됐다. 20세기 초 리우데자네이루에는 아프리카계 브라질인을 포함해 유대인이나 집시 등 이민자들이 모여 빈민가가 형성됐다. 삼바는 리우데자네이루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하층민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삼바와 카니발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부터다. 당시 대통령인 제툴리우 바르가스(Getúlio Vargas)는 경기 부흥책을 목적으로 카니발 지원을 결정했다. 리우 카니발은 정부 지원을 받아 브라질의 관광 상품으로 자리 잡았으며, 제2차 세계대전으로 잠시 중단했다가 1947년 재개됐다. 리우데자네이루 시는 1960년대부터 카니발 입장권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긴 군사독재 시절에도 리우 카니발은 개최되었으며, 정부 풍자적인 성격을 띠었다. 이후 리우 카니발은 세태 풍자와 자유로움, 유럽과 아메리카·아프리카의 다양한 문화를 아우르는 브라질의 대표 축제로 자리 잡았다.

 

o 주요 행사

* 삼바 퍼레이드

 리우 카니발의 삼바 퍼레이드는 리우데자네이루 지역의 삼바 학교(Escola De Samba)들이 경쟁하는 삼바 경연대회다. 삼바 퍼레이드는 1920년대부터 카니발에 등장했으며 지금처럼 규모가 커진 것은 1950년대 무렵이다. 퍼레이드의 성장으로 삼바 학교가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경연대회는 승강제로 치러지기 시작했다. 즉 삼바 학교들은 하위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최상위 리그에 올라가야만 삼바 퍼레이드(경연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경연에 참가하는 삼바 학교는 일 년 동안 대회를 준비하며 심사 결과는 카니발이 끝난 다음 날인 재의 수요일에 발표된다.

 

 삼바 퍼레이드는 전용 공연장인 '삼보드로무(Sambódromo)'에서 진행한다. 삼보드로무에는 삼바 퍼레이드를 위한 700m 정도의 길이 있으며 이를 관람하기 위한 9만여 개의 관람석을 갖추고 있다. 1984년 완공됐으며 관람료는 구역에 따라 다르다. 삼바 학교 하나가 길을 따라 준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는 약 60~8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삼바 학교의 프로그램은 각자 주제를 가지고 있으며 주제에 따라 음악과 춤, 의상 등을 맞춰 표현한다. 삼바 학교 하나에 5개 이상의 축제 차량이 동원되며, 차량은 철제 구조물과 나무 등을 사용해 한껏 화려하게 장식한다. 축제 차량은 안전을 위해 사람이 밑에서 직접 움직이게 되어 있다.

 

 삼바 퍼레이드에서는 삼바 학교마다 남녀 무용수 몇 쌍이 깃발을 들고 춤을 춘다. 깃발은 각 삼바 학교를 상징하며 깃발을 든 여성 무용수를 '포르타-반제이라(Porta-Bandeira)', 남성 무용수를 '메스트리-살라(Mestre-Sala)'라 부른다. 포르타-반제이라는 '기수', 메스트리-살라는 '주인'이란 뜻이다. 둘은 커플로 움직이며 여성 무용수가 깃발을 흔들면서 춤을 추면 남자 무용수가 그녀를 받쳐준다. 삼바 퍼레이드의 중심이 되는 명예로운 역할로, 대개 이 역할을 맡기 위해서는 15년 이상의 경력이 필요하다. 삼바 학교를 상징하는 인물들인 만큼 가장 화려한 복장으로 치장하는 경우가 많다.

 

 삼바 퍼레이드에는 삼바 무용수를 포함해 수백 명의 타악기 연주자들도 포함한다. 퍼레이드에서 흥을 돋우는 타악기 악단은 바테리아(Bateria)라고 한다. 또한, 수많은 삼바 무용수들의 행렬도 이어진다. 그 중 '알라 다스 바이아나스(Ala das Baianas)'는 나이 든 여성 무용수들로 구성된 행렬이다. 이들은 브라질 바이아(Bahia) 지역의 전통 의상을 입고 춤을 춘다.

 

 '삼바(Samba)'라는 명칭의 유래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아프리카 서쪽에 있는 콩고·앙골라 지역에서 추던 전통춤 '셈바(Semba)'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셈바는 조상과 신에게 기도하는 신성한 의식에서 골반을 흔들며 추는 춤이다. 다른 하나는 '삼보(Zambo)'에서 삼바가 유래했다는 설이다. 삼보는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 아프리카 출신 이주민이나 혼혈을 비하하기 위해 모욕적으로 쓰던 말이다. 어원은 정확하지 않지만, 삼바가 아프리카 전통춤을 기반으로 탄생했다는 점은 확실하다. 삼바는 여기에 폴카, 마시셰 등의 특징이 섞여 현재 형태로 완성됐다.  

 

* 레이 모모(Rei Momo)

 레이 모모(Rei Momo)는 카니발의 왕으로 간주하는 상징적인 캐릭터다. 직역하면 '모모 왕'이란 뜻으로,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는 카니발의 시작을 알리는 인물이다. 리우 카니발 역시 시장이 레이 모모에게 시 열쇠를 전달하는 즉위식을 통해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전통적으로 레이 모모 역할은 키가 크고 뚱뚱한 체격의 남자가 맡는다. 일부 카니발에서는 사람 대신 인형이 레이 모모 역할을 맡기도 한다. 레이 모모 역할을 맡은 사람은 활달한 성격으로 리우 카니발의 세부 행사는 물론, 삼바 퍼레이드에도 참여한다.

 

* 거리 공연과 무도회

 리우 카니발 기간에는 도시 곳곳에서 수많은 거리 공연과 무도회가 열린다. 리우데자네이루에는 수백 개의 지역 밴드가 있으며, 각 밴드는 카니발이 시작하기 전부터 거리 공연을 시작한다. 퍼레이드에서 연주할 때는 장소나 거리를 미리 정해두는 경우가 많다. 밴드는 보통 오케스트라로, 직접 작곡한 곡을 연주한다. 즉흥 공연도 수시로 일어나며 규모가 큰 밴드는 정해진 큰길에서 공연을 펼친다. 음악이 울리면 지나가던 사람들과 밴드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도회 역시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열린다. 유명 호텔들이 주최하는 고급 무도회도 있으며, 삼바 학교들이 개방한 댄스 홀이나 해변에서 무도회가 열리기도 한다.

 

 

먹거리

 리우데자네이루 시내에는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다양한 레스토랑들이 가득하다. 대부분의 브라질 레스토랑에는 츄라스끼레(Churrasquerias)라 불리는 바비큐 요리(쇠고기, 돼지고기 등의 각종 육류를 소금, 양파 및 레몬 등으로 양념한 요리) 판매하고 있으며, 신선한 생선과 조개 요리도 맛볼 수 있다.

 훼이죠아다(Feijoada)라 불리는 전통 브라질식 음식은 대부분의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매주 토요일에 점심식사로 준비된다.

 브라질의 와인과 맥주는 질이 좋으며, 까이삐리냐(Caipirinha)로 불리는 브라질식 칵테일도 일품이다.

 

 

여행 길잡이

리우데 자네이루 카니발 즐기기

 해마다 틀리지만 2월초 또는 3월초에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세계적인 삼바축제가 토, 일, 월, 화의 4일 동안 지칠 줄 모르는 정열로 불타오른다.

 

카니발 축제를 즐기는 세 가지 방법

 티켓(US$ 100 이상)을 구입해서 관람석(관광객은 No.7)에서 퍼레이드를 즐긴다.

 거리에서 시민 퍼레이드를 즐긴다.

 클럽 하우스에서 열리는 카니발에 참가한다.

 

버스와 지하철의 할인 티켓

 버스와 지하철을 연계하여 이용할 경우에 할인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버스에서 지하철로 환승하는 코스라면 버스에 승차할 때 '인테그라존 메트로'라고 말하면 할인된 지하철 티켓을 구입할 수 있으며, 지하철에서 버스로 환승할 예정이라면 지하철역에서 '인테그라존 오니부스'라고 말하면 할인된 버스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매력 3S: Sand, Sun, Sea

 리우데자네이루의 매력은 3S 즉 Sand, Sun, Sea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변에 있다 보면 리우데자네이루의 3가지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3S에 Sex를 추가시켜 리우데자네이루의 매력 4S로 부르기도 한다. 세계적인 휴양지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코파카바나 해변 보다는 이빠네마나, 아포아도르 등의 해변에 미녀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안다면 리우 방문의 또 다른 즐거움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내에는 포르투갈 식민지 시내의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어 유럽 국가를 방문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건물 자체가 뛰어난 예술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오페라 하우스, 과나바라 궁전, 박물관, 몬로궁 등도 볼 만하다.

 

 

 관광 명소

국립 역사박물관

 국립역사박물관 - 다양한 역사적 유물이 있는 곳

 1922년에 문을 연 국립역사박물관은 브라질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있는 박물관 중의 하나이다. 박물관 건물은 리오데자네이루에서 가장 오래된 것중 하나로 건축학적 견지에서도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루이 바로사(Ruy Barbosa) 광장에 있는 것을 그대로 옮겨온 미네르바의 문이라 불리는 출구가 특이하다.

 원래 상티아고 요새(São Tiago Fortress)라는 이름의 감옥으로 사용되다가, 아서날(Arsenal) 전쟁 때는 전쟁 본부였고 한때는 로얄 밀리테리 아카데미 군사학교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9,000 스퀘어 피트 규모의 전시 공간에 무기, 갑옷, 문서, 그림, 자기류, 금품, 가구, 종교유물 등 30여만 가지가 넘는 전시물로 가득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이곳은 기차역 스타일의 박물관으로도 유명하다.

 

o 주소: Praça Marechal Âncora, s/nº.Centro

o 개관 시간: 화요일-금요일: 10:00am-5:30pm / 토,일요일: 12:30pm-5:30pm

 

 

국립 박물관(Museu Nacional)

 1818년에 세워진 이 국립 박물관 건물은 처음에는 브라질의 과학 교육기관이었다가, 브라질 국왕의 집이었던 곳이다. 현재 3층의 건물로 퀸타 보아 비스타 공원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리우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박물관이다.

 이곳에는 우주에서 남반구로 떨어진 가장 큰 유석(무게 5,362kg)을 비롯해 백만 가지 이상의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주 전시품들은 화석, 미이라, 페루에서 가져온 고대 유물, 이집트 유물, 마야 유물, 브라질 인디언들의 여러가지 도구등이며 특히 거대한 동물원을 연상케 할만큼의 동물의 화석등도 커다란 매력이다.

 

o 개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0am-4pm

o 입장료: 3레알

 

 

모던 아트 박물관

 1948년에 생긴 이 박물관은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윤기가 나는 외벽의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다. 이곳은 원래 로베르토 벌 막스(Roberto Burle Marx)라는 사람의 개인 정원이었는데 그것을 알폰소 에두아르도 레이디(Afonso Eduardo Reidy)가 지었다.

 그러나 1978년 대형 회재에 의해 1990년 다시 복구가 되었고 이후 커다란 브라질 국내외 전시회를 개최하는 박물관으로 더욱 발돋움 하였다.

 주로 브라질의 모던아트 작품을 전시하며 약 4000점을 소장하고 있다.

 

 

H.STERN 보석 박물관(H. Stern Jewelry Factory and Museum)

 브라질에서 가장 큰 보석공장이 운영하는 이 보석 박물관이다. 정교하고 우아한 보석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보석 디자이너들이 보석을 세공하는 모습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이곳의 보석들은 대부분 브라질을 대표하는 보석 다자이너들에 의한 것이며, 공장과 함께 있어 맘에 드는 보석이 있으면 싸게 구입할 수도 있다.

 

 

빠쑤 임페리알(Paço Imperial)

 리우 데 자네이로의 금융의 중심가의 빌딩숲 사이로 19세기 리우의 식민지 시대의 산물인 빠쑤 임페리알(Paço Imperial)은 우아하게 위치하고 있다. 처음 이 건물은 1743년 정부 건물로 지어졌다. 그로부터 20년 후에는 리우를 브라질의 정부 중심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가장 중요한 건물이 되었다.

 1985년부터는 문화센타로서 Luis Pizarro, Nuno Ramos, Daniel Senise, Ricardo Ribenboin, Beatriz Milhazes, Victor Arruda 같은 브라질의 신세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하였다.

 전시관은 1,2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카페와 레스토랑, 기념품 점등도 가볼 만하다.

 

o 주소: Praca Quinze de Novembero 48

o 입장료: 입장은 뮤료이고 때로는 특별한 전시가 있을 때 입장료를 내야한다.

 

 

세계적인 가수 Miranda를 기리는 카르멘 미란다 미술관

 카르멘 미란다 미술관은 브라질의 폭탄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원래 미란다는 브라질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가수의 이름이다.

 이곳에는 그녀의 싸인이 적힌 모자, 의상, 신발, 다른 기억할 만한 것들 그리고 그가 출연하 영화등이 소장되어 있다.

 이곳을 둘러 보기 위해서는 가이드 투어에 참가해야 한다.

 

o 개관시간: Tuesday-Friday 11am-5pm, Saturday and Sunday 1-5pm

o 입장료: 1레알, 어린이는 무료

 

 

코파카바나 해안(Praia De Copacabana)

 리우데자네이루하면 제일 먼저 코파카바나 해안(Praia De Copacabana)을 떠올릴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 휴양지이다. 5㎞에 달하는 흰 백사장은 활처럼 굽어져 있으며, 1년 내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과 대담한 수영복 차림의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북적댄다.

 코파카바나 해안과 접해있는 애틀랜티카 대로는 고급 호텔과 맨션, 레스토랑, 카페테라스 등이 즐비해 평일 밤에도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며 보석상과 토산품점, 유흥장도 많아서 리우데자네이루 관광의 중심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최근에는 조금 식상한 관광지로 그 신선함을 잃어가고 있으며, 소매치기 등도 많아졌지만 그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명곡 '이파네마의 처녀'로도 유명한 이빠네마 해안(Prala De Ipanema)

 리우브랑코 대로에서 버스를 승차하여 아타울포 데 파이바거리에 하차하면 리우데자네이루다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이빠네마 해안(Prala De Ipanema)에 도착하게 된다. 코파카바나 해안 남단의 아르포아도르 곶을 돌아서 이빠네마 해안, 레블론 해안이 잇달아 있는데, 이빠네마 해안은 보사노바의 명곡인 <이파네마의 처녀>로도 유명하다.

 이곳 해안가에는 고급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고, 레블론 해안 근처에는 고급 부티크와 레스토랑이 많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가장 분위기 있는 곳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이외에도 플라멩고 해안, 보타포고 해안, 우르카 해안, 베르밀랴 해안, 레메 해안, 상콘라두 해안 등이 있다.

 

 

퀸타 다 보아 비스타 공원(Psrque Da Quinta Da Boa Vista)

 퀀타 다 보아 비스타 공원은 포르투갈 왕과 브라질 황제의 공저였던 궁전을 중심으로 조성된 것으로 국립박물관, 동물원이 있는 시민을 위한 휴식공간이다. 국립박물관은 칸타 다 보아 비스타 공원의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150년 동안 수집한 인디오의 유물, 역사문서, 도기등 중남미 중심의 고고학, 민족학, 자연사 관련자료가 100만점 정도 소장되어 있다.

 특히 벤데고라 불리는 책상 크기에 무게가 5,360㎏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운석이 소장되어 있는데 이는 1888년 바이아 주 벤 데고강에서 발견된 것이다.

 

 

 

한적한 리우 최고의 전망대 Parque Dois Irmãos Hill

 이곳은 리우 데 자네이로에서 가장 맑은 공기를 마시고 아름다운 도시 전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최근에 재보수 공사를 하여 도시를 세 방향으로 분류하여 구경할 수 있는 전망대를 만들었다. Dois Irmãos Hill 이라는 가장 높은 전망대 에서는 레브롱(Leblon_과 이빠네마(Ipanema) 해변을 볼 수 있으며 이곳이 늪지대와 어떻에 연결되어 있는지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날씨가 좋은 날을 택해 방문하여야 이곳의 진면목을 볼 수가 있다.

 아직까지 이곳은 관광객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한적한 곳에서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o 입장 요금은 무료이다.

 

 

세계대전 참전 군인을 위한 플라맹코 공원

 이곳은 1965년 Santo Antônio 언덕에서 흙을 옮겨와 기초 토목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곳의 면적은 약 1.2㎢ 정도이고 브라질의 유명한 조경사인 로베르토 벌 막스(Roberto Burle Marx)에 의해 디자인 되었다. 이곳에는 약 300종의 170,000개 정도의 나무가 있고, 몇몇의 운동장이 있다.

 뒤로는 코르코바도 언덕과 슈가로프 산이 보이고, 달리나 피카소의 작품도 소장되어 있어 매우 인기있는 브라질 사람들의 휴식 공간이다.

 원래 이곳의 정식 명칭은 Parque Brigadeiro Eduardo Gomes이며 에우아르도 고메스(Eduardo Gomes) 공군 장군의 공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2차 세계대전 때 죽은 병사들을 위한 위령탑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심속 자연 공원 Tijuca 국립공원

 이곳은 국립 공원으로 지정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심속 산림으로 카스카티나(Cascatinha)라는 아름다운 폭포와 메이링크(Mayrink) 예배당, 아름다운 호수, Acude da Solidao(외로운 댐이라는 뜻), 여러개의 동굴까지 가지고 있다. 또한 이곳의 나무에서는 귀여운 원숭이까지 살고 있어 공원 이용객들에게 매우 큰 즐거움을 주고 있다.

 주의할 것은 이곳은 너무 넓어 길을 잃기 쉬우니 하이킹 전용 길을 따라 가거나 가이드가 될 만한 사람과 함께 다녀야 한다.

 

o 입장료는 무료이고 매일 7am-7pm까지 이용 가능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워터 랜드 Wetn Wild Water Park

 미국과 남미등에 체인을 두고 있는 거대한 Wet'n Wild Water Park는 리우 데 자네이로에서는 전형적인 여행자들의 행선지로 유명하며, 많은 관광객들에게 호평 받고 있다.

 이곳은 고르타 뿐다(Grota Funda)산이 둘러싸고 있어서 경치도 매우 좋으며 다양한 길이의 슬라이드와 탈 것들, 수영장등 볼거리가 매우 풍부하다.

 

o 주소: Avenida das Américas 22000

o 입장료: 약 $11이며 오후 2시 이후에는 $9이다. 키 1m 이하의 어린이와 65세 이상의 노인, 그리고 임산부는 입장이 무료이다.

 

 

가베아 천문 관측대

 이곳에서는 천문관측 돔에서 다양한 빛을 발하는 수천 개의 별이 있는 하늘을 볼 수 있다. 이곳은 1970년대 지어졌으며 1998년 다시 보수 공사를 하여 다시 우주 박물관으로 개관했으며, 현재는 비행 시뮬레이션에서부터 망원경 관측까지 천문 관측에 대한 모든 경험을 제공한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태양까지 관찰할 수 있다.

 700㎡의 넓이와, 반지름 23m의 원형 돔은 수천 개의 별을 관찰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별을 바로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행성에 들어가 관찰하는 시뮬레이션은 특히 인기가 높다.

 이곳은 또한 극장, 전시관, 비디오룸, 레스토랑도 서비스 하고 있다.

 

o 주소: Rua Padre Leonel Franca, 240

o 입장료: 어른은 약 $2.80이며 어린이와 학생은 $1.50이다.

Saturdays and Sundays: from 2 a.m. to 9 p.m.

 

 

Rio Water Planet

 리우 데 자네이로의 12월에서 3월까지의 날씨는 종종 38℃가 넘어가는 더운 날씨이다. 이때 이 도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Water Planet이다. 리우의 서쪽 Pedra Branca 언덕 아래에 위치해 있으며 주변은 나무와 인공해변, 협곡등으로 둘러싸여 있어 경관도 매우 뛰어나다. 일종의 테마 파크로 조성해 놓았다.

 이곳은 리우의 어떤 워터 파크보다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으며 특히나 스릴있는 슬라이드는 최고의 인기 기구이다.

o 주소: Estrada dos Bandeirantes 24000 (Vargem Grande)

o 입장료: 약 $15(Saturdays and Sundays), $12 (Fridays)이며 65세 이상은 $6

o 개관은 금, 토, 일10am-5pm

 

 

세계에서 가장 큰 마낭까낭 축구 경기장(Maracanã Soccer Stadium)

 브라질 국민의 축구 열기는 세계적이다.

 이곳은 그러한 명성에 걸맞는 세계에서 가장 큰 축구 경기장이다. 1950년 월드컵을 위해 건립되었던 이 경기장은 2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경기장에서 열린 195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은 199,854명의 관람객 앞에서 우루과이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보통 경기가 있는 때이면 10만 명 정도의 팬들이 모이며, 특히 축구시즌인 11월과 12월에는 일주일에 세번 정도 경기가 열린다.

 관람객을 위해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열며,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대통령을 위한 특별석을 구경하고 잔디도 밟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리우 동물원(Rio Zoo)

 이곳은 브라질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이다. 대략 2,100이 넘는 동물들의 터전이며, 이곳의 가장 유명한 볼거리는 박쥐의 집, 브라질에만 서식하는 조류의 집, 세계에서 몇종 남지 않은 희귀한 원숭이 집 등이다.

 한쪽은 레스토랑, 스낵바, 원형 경기장, 기념품 가게등이 있으며 이곳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9am-4:30pm까지 열리며 주중에는 3레알, 주말에는 4레알 이다. 키 1m 이하의 어린이는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리우를 지키는 파수꾼 팡데아수카르(Pao de Acucar)

 팡데아수카르(Pao de Acucar)는 바다의 위협으로부터 대륙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내륙 해안선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화강암과 수정으로 이루어진 언덕이다. 높이가 396m로 코르코바도 언덕에 비해 높은 편은 아니나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코르코바도에 뒤지지 않는다. 특히 팡데아수카르 정상에서 바라보는 코르코바도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코바카바나 해안과 이빠네마 해안, 그리고 주변 도시들, 대서양도 시야에 들어와 아름다운 경관을 즐길 수 있다. 바다에서 돌출해 있기 때문에 마치 바다에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해질 무렵에 이곳에 오르면 산이 밤이 되며 기온이 떨어지므로 스웨터를 준비하도록 한다.

 팡데아수카르 정상에 가기 위해서는 산기슭의 프라이아 베르메랴 역에서 곤돌라를 타고 이동하게 된다. 1912년에는 나무로 케이블카를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산위로 올라가면서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75명을 지탱할 수 있는 최신식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다. 프라이아 베르메랴역에 도착하려면 시내중심, 코파카바나, 이빠네마 해안에서 운행되고 있는 버스를 이용하거나 상콘라두 해안에서 각 해변을 연결하는 관광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코르코바도 언덕(Mountain of Corcovado)

 코르코바도 언덕(Mountain of Corcovado)은 1931년 브라질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예수그리스도상이 완성되기 전부터 리오 사람들은 이곳을 리오의 중심지로 여겨졌던 곳이다.

 돔 빼드로 l (Dom Pedro l)세는 푸르게 우거진 경관을 통과하여 코르코바도의 정상까지 오르는 열차가 다닐 수 있도록 만들라고 명령하였고 현재까지도 이 길은 당시보다는 현대화된 트램이 운행되고 있고, 주변의 숲도 아직까지 그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예수그리스도상은 높이가 30m이고, 좌우로 벌린 두팔의 너비도 28m, 무게 1,145t에 이른다.

 예수 그리스도 상을 사진에 담으려면 거의 누운 자세에서 하늘을 향해 사진을 찍어야 할 정도로 크다. 동상의 내부에는 리오의 시내 경관이 한눈에 들어올 뿐 아니라 코파카바나 해안과 이빠네마 해안의 유려한 곡선까지도 감상할 수 있는 15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이곳을 방문하려면 맑은날 오후 3~4시 정도가 가장 좋은데, 이때에는 도시에 황혼이 내려앉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렇다고 구름이 가득한 날을 피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구름을 가르고 예수그리스도 동상 뒤에서 솟아나는 태양은 코르코바도가 제공하는 절경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코르코바도 언덕 위까지는 스위스제 케이블식 등산열차가 운행되고 있으며, 코즈메베료 역에서 출발하고 있다. 등산전차 운행시간은 매일 08:00~18:40이고 약 20분 가량이 소요된다. 그리고 전차에서 내려서 동상까지 가려면 꽤 많은 수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너무 급하게 오를려고 하지말고 간간이 쉬면서 오르는 것이 좋고 높은 지역이어서 바람이 강하게 불어 모자가 날라갈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리우 데 자네이루 식물원

 리우 데 자네이루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손꼽히는 이 식물원은 1.4㎢ 전역에 펼쳐 있으며 약 8,000종의 식물들로 가득차있다.

 이곳은 200년 전에 만들어진 곳이며, 도시의 거주 구역과 경제구역을 나눠주는 리우 데 자네이로만의 특별한 오아시스이다.

 이곳은 오전 중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아침의 식물들이 더욱 생기 넘치기 때문이다. 삼림욕으로은 최고의 장소이다.

 

o 주소: Jardim Botanico, Rua Jardim Botanic 920,

o 입장료: 약 $2.5 정도이며 10살 이하는 무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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