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Havana)

 

 아바나(Havana)는 쿠바의 수도로 캐리비안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스페인어로 '라아바나(La Habana)' 또는 영어로는 '하바나(Havana)'라고 한다.

 공식 이름은 산 크리스토발 데 라 아바나(San Cristóbal de La Habana)이다.

 인구는 약 220만 명(2017년)이다.

 

 풍파가 많았던 도시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바나는 국가 전쟁과 혁명속에서 그리 많은 손해를 입지는 않아서 오늘날 100년전 지어진 도시로의 이미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50~60년대 식의 미국의 자동차가 거리를 활보하고 이곳 저곳 페인트칠이 벗겨진 건물들이 즐비하며 이 도시에는 한때의 부흥을 알게 해주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거대한 건축물들이 많다.

 

 아바나에서의 밤은 이벤트가 매우 풍부하다.

 극장, 역사적 공연장, 카바레, 나이트 클럽, 음악공연장 등은 여행지에서의 피로를 싹 풀어 줄 만하다. 이곳은 다른 라틴 아메리카의 도시보다 교통도 덜 막히고 상업화도 덜 되어있어 숨통 트이는 휴가를 즐길 수 있는 도시이다.

 

 아바나(Havana)는 쿠바 섬 북쪽으로 길게 뻗은 해안선의 서쪽 끝에 있으며, 인접한 항구는 카리브 해에서 빼어난 항구들 가운데 하나이다. 쿠바의 경제· 정치· 문화의 중심지이다. 시는 병목처럼 생긴 항구의 서쪽 편에 위치한다. 좁은 항구의 입구를 지나면 작은 3개의 만으로 이루어진 넓은 내륙만이 나온다. 1976년에 실시된 행정개편 때 시의 경계가 확장되었다.

 현재의 아바나 시는 옛 아바나·마리아나오·레글라·과나바코아·산티아고데라스베가스·산타마리아델로사리오 등으로 이루어진 도시지역이며, 정치적·행정적 단위이다. 행정적인 편의를 위해 여러 개의 자치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기후는 열대성이지만 온화한 편이다. 무역풍, 따뜻한 앞바다의 조류, 5~10월에 계속되는 우기 등으로 한결 완화된 열대성기후가 나타난다. 시에서 필요로 하는 식량 가운데 일부는 인접한 아바나코르돈이나 그린벨트에서 들여온다. 이 지역은 근채작물·커피·과일 등의 재배지로 중요하고 낙농업·가축생산지로도 유명하다.

 

 시는 쿠바에서 가장 중요한 공업· 수입· 유통의 중심지이다. 전국적인 제조업· 가공업 업체들의 상당수가 아바나 시에 집중되어 있다. 설탕을 비롯한 식품가공· 조선· 어업· 자동차생산 등이 주요산업으로 꼽히며, 음료· 엽궐련· 섬유· 약품·화학제품 제조업도 중요하다. 쿠바의 수입·수출 교역은 대부분 아바나 항을 통해 이루어진다.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한 현대적 시가지에는 과거 식민지시대의 유적들과 현대적 건축물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항구 바로 곁에 있는 아바나는 옛날에 시의 중심지로 식민지시대의 정통양식으로 된 역사적 건물들이 많은 곳이다. 이 가운데 가장 뛰어난 건물은 1793년에 완공된 캡틴스제너럴 궁전이다. 라레볼루시온 광장 주변에는 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몇몇 현대적 건축물들이 있다.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아바나 성벽은 파괴된 채로 여전히 남아 있으며, 모로 성을 비롯한 오래된 군사건축물들도 그대로 남아 있다. 식민지시대의 아름다운 교회와 시민공원도 여러 개 남아 있다. 정부와 쿠바 공산당중앙위원회가 아바나 시에 있으며 아바나대학교는 훌륭한 교육기관으로 이름이 있다. 국립과학연구 센터와 사탕수수유도체 조사를 위한 쿠바 연구소 등에서는 과학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시에는 또 손꼽히는 국립도서관도 있다. 스포츠 행사를 담당하는 개별기관들만 해도 거의 1,000여 개나 있다. 시내 주요교통수단은 넓은 시가지를 운행하는 버스이다. 버스 노선과 철도노선이 지방 중심지 및 다른 도시들까지 이어진다. 항구에서 남쪽으로 13㎞ 떨어진 곳에 호세마르티 국제공항이 있다.

 

 

아바나의 역사

 아바나(Havana)의 시작은 정복자 디에고 벨라 스케스가 1514년 쿠바 섬의 남쪽(바타바노 만 쪽)에 현재 스루히에도로 데 바타바노 근처에 거주지를 세운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위치(멕시코만 쪽)로 도시가 옮겨진 것은 1519년이다. 1553년 이전의 《산티아고 데 쿠바》 대신 쿠바 총독령의 수도가 되었다. 1519년부터 항구를 중심으로 도시를 쌓아 갔다. 아바나는 스페인의 신대륙의 식민지 경영의 중심지로 그리고에 무역의 중요한 중계지로 발전했다. 그래서 쿠바는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의 해적 의 공격을 받는 일이 잦았다. 1537년에는 프랑스 해적에 의해 습격이 이루어져 불탔고, 1553년 및 1555년도 약탈을 당하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다. 따라서, 아바나는 후에루사 요새, 푼타 요새, 모로 요새 등 많은 요새가 만들어졌고, 군사 도시로서의 면모가 정비되었다.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에 의해 영국과 아메리카 무역의 참여가 제한이면서도 승인되면서 이후 해적을 대신해 밀무역이 성행했다.

 

 18세기는 쿠바 경제의 확대로 인해 1728년 아바나 대학이 설립되었고 1738년 우편 제도가 확립되었다. 이 시기에 조선소가 건설되는 등 산업의 급격히 발달하였고, 1740년에는 성벽을 완성했지만, 칠년 전쟁 중이던 1762년 아바나는 영국군에 의해 포위되었다. 스페인군이 항복하고 영국의 지배 하에 자유무역항이 되면서 수 많은 아프리카 노예가 영국 상인에 의해 아프리카에서 아바나로 끌려왔다. 1763년 스페인과 영국 사이의 협정에 의해, 영국은 쿠바와 마닐라(필리핀)를 반환하고 플로리다를 받았다. 위기를 느낀 스페인은 이에 아바나를 더욱 요새화시켜, 미국 전역에서 가장 견고한 요새 도시로 만들었다. 한편, 1년간 영국군이 점령하던 동안 자유 무역을 실현했다. 아바나는 경제적으로 번영하였고, 아바나 쿠리오죠 지배층은 자유 무역의 실현을 바라되었다.

 

 19세기에 프랑스령 세인트 도밍고의 흑인 반란에 의해, 흑인 국가 아이티가 독립하면서(아이티 혁명), 아이티에서 망명한 프랑스 사람 농장에서 사탕수수 재배의 기술이 도입되었다. 18세기 후반에 노예 무역이 자유화되어 노동력의 확보가 쉬웠던 것도 한 이유가 되어 이후 쿠바의 설탕 산업이 확대가 되어, 아바나는 쿠바의 근대적 설탕 제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1810년경부터 시몬 볼리바르이나 호세 데 산 마르틴 등에 의해서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 운동이 진행되면서, 1818년 스페인 당국은 쿠바의 크리오죠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하바나를 완전한 자유 무역항으로 했다.

 

 19세기 스페인 식민지에서 독립했던 쿠바는 농업 경제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 많은 이민자와 흑인 노예가 유입되어, 다민족 사회가 형성되었다. 1837년 아바나에는 라틴 아메리카 최초의 철도가 도입되었다. 아바나의 인구는 1830년대 10만명, 1860년에는 20만 명을 넘어 아바나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번영을 구가하는 도시가 되었다.

 

 1898년 아바나 항구에서 미국 해군의 전함 '메인(USS Maine, ACR-1)'이 침범하여 미국-스페인 전쟁의 발단이 되었다. 아바나는 1902년 '쿠바 공화국'의 독립을 선포하고 이곳은 쿠바의 수도가 되었다. 독립 이전부터 쿠바에 대한 투자는 대부분 미국 자본이었다. 그러나 독립 이후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 되었다. 1920년대에 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되면서 미국인들은 향락을 찾아 아바나를 방문하게되었다. 그 결과 아바나는 미국 부자들의 별장이 많이 늘어서게 되었으며, 많은 관광객 통해 고급 클럽이나 카지노가 붐비는 리조트 환락 도시로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위락 시설의 대부분은 1959년의 《쿠바 혁명》에 따라 폐쇄되었다.

 

 1959년 쿠바 혁명으로 인한 바티스타 정권의 붕괴와 공산당 혁명 정권 수립 이후에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위치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혁명 정부는 하바나 쿠바 사회주의 건설의 중심지인 생산 도시로 바꾸기 위해 "대아바나 도시권"으로 주거 지역, 새로운 산업 지역, 자연 공원 등 도시 정비를 도모하는 도시 계획을 실시했다. 그 결과 1960년대에 시내의 상점과 호텔이 국영화된 저택은 죄다 학교와 공공 건물로 유용되었다. 또한 바티스타 정권 하에서 컬럼비아 병영이었던 시설은 교육 센터로, '옛 대통령궁'은 '혁명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

 

 

바나(Havana) 기후(℃)

도시명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아바나

(Havana)

최고평균

25.8

26.1

27.6

28.6

29.8

30.5

31.3

31.6

31.0

29.2

27.7

28.0

최저평균

18.6

18.6

19.7

20.9

22.4

23.4

23.8

24.1

23.8

23.0

21.3

19.0

평   균

22.2

22.4

23.7

24.8

26.1

27.0

27.6

27.9

27.4

26.1

24.5

23.5

 

 

 관광 명소

혁명 박물관(Havana Revolution Museum)과 그란마(Granma) 기념비

 혁명 박물관과 그란마 기념비는 매우 영광스러운 건물이다.

 1950년대에는 대통령궁이었던 이곳은 독립을 위해 싸웠던 쿠바 사람들의 투쟁의 역사를 보여준다.

 주요 전시품은 사진, 기록 영화, 당시의 서류들과 무기들이다. 박물관 앞의 정원에 있는 것이 그란마 기념비(Granma Memorial)인데 이것은 1956년 멕시코로부터 추방된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와 80명의 전투원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멕시코로부터 추방 될 때 타고있던 보트의 이름이 '그란마(Granma)'라고 한다.

 

o 주소 : 1 Refugio, Habana Vieja

o 입장료 및 개관시간 :

  화요일 : 10:00~18:00, 수요일~일요일 : 10:00~17:00

o 입장료 : US$3.

 

 

 

아바나 국립미술관(Museo Nacional de Bellas Artes de La Habana)

 아바나 국립미술관은 아바나의 구시가지에 위치해 있다.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의 예술품들이 총망라된 국제미술 전시관과 쿠바의 세계적인 초현실주의 작가 위프레도 램의 작품들이 전시된 쿠바미술 전시관으로 나뉘어져 있다. 특히 쿠바미술 전시관은 전시되어 있는 작품의 수가 대단히 많은 아바나 국립미술관에서도 관광객들이 반드시 관람해야 할 부분이다.

 

 1913년에 설립되었으며 쿠바에서 가장 많은 수집품을 보유한 미술관 중 하나이다. 1954년에 건축가 피카르도(Rodriguez Pichardo)가 건축한 새로운 건물로 이전하였다. 그리고 1999년에는 건축가 호세 리나레스(Jose Linares)에 의해 기존 건물을 보수하면서 새로운 건물 2동을 추가로 건설하게 되었으며 2001년 7월 18일 새롭게 문을 열었다. 쿠바의 16세기에서 20세기까지의 예술품 그리고 유럽의 작품들이 전시된 곳으로 회화는 물론 판화와 조각품도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루벤스, 무릴로, 고야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 원본이 전시되어 있다.

 

 2개의 건물로 나뉜다. 하나는 유니버설 콜렉션 센터로 고대 그리스와 라틴아메리카의 작품에서부터 이탈리아, 네덜란드, 프랑스의 작품까지 전시되어 있고 다른 곳은 쿠바 콜렉션 센터로 16세기에서 20세기까지 쿠바의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1493년 콜럼버스가 처음으로 이 땅을 발견한 이후 500년 이상의 역사가 숨쉬는 곳으로 쿠바 특유의 힘과 강렬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쿠바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빅토르 마누엘 그라시아의 작품과 여러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o 가는 방법: 구(舊) 국회의사당 건물에서 도보 10분

o 주소: Cuban Arts: Calle Trocadero entre Zulueta y Ave. de las Misiones, Havana

           Universal Arts: Calle San Rafael entre Monserrate y Zulueta, Havana

☎: 7 861 3858

o 홈페이지 www.museonacional.cult.cu

 

 

아바나 갤러리(Avana Gallery)

 이곳은 쿠바에서 생겨난 가장 최근의 예술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실내장식 박물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발데도 거리(Vedado street)를 따라 걸어가면 북쪽 끝부분에 위치한다.

 이 갤러리는 주고 1962년 이후의 쿠바의 예술가들의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이곳에서 전시를 했던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계속해서 전세계의 찬사를 받으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페르난도 로드리게스(Fernando Rodríguez)의 블록(Bloque)이라는 작품은 획일화된 노동자를 미니어쳐하여 실제 크기의 벽돌로 벽을 만들어 놓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매우 유명하며 혁명의 양면성에 관해 말하고 있다. 또한 아프로 쿠바 종교 문화의 미묘하고 신비스런 동판화 예술로 유명한 벨키 아욘(Belkis Ayón)도 이곳 갤러리를 통해 유명해진 작가이다. 그리고 윌프레도 람(Wilfredo Lam)이라고하는 쿠바에서 가장 유명한 20세기 미술가도 이곳을 통해 등용했다.

o 개관시간 : Mon~Fri 10am~4pm, Sat 10am~1pm

o 입장료 : 무료

 

 

쿠바 혁명광장(Plaza de la Revolución)

 쿠바 혁명광장(Plaza de la Revolución)은 쿠바의 영우이자 라틴 아메리카의 문인인 109m의 호세 마르티(José Martí, 1853~1895) 기념비가 있는 아바나의 시만광장이었다.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호세 마르티 이름을 따서 '호세 마르티 광장'이라고도 부른다.

 

 면적이 72,000㎡에 이르는 세계에서 아주 큰 도시 광장 중 하나이다.

 쿠바혁명과 함께 역사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곳에서 수많은 혁명 시위, 퍼레이드, 투쟁 등이 열렸기 때문이다. 특히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가 매년 5월 1일과 7월 26일에 100만 명이 넘는 관중 앞에서 2~4시간을 연설한 곳으로 유명하다.

 

 기념탑 외에 국립도서관, 국립극장 그리고 많은 행정 부처들이 밀집해 있다. 기념탑 뒤편에는 피델 카스트로 대통령의 집무실을 경호하는 근위대가 있고 반대편에는 내무부 건물이 있다.

 이 건물 전면에는 쿠바의 또 다른 영웅인 체 게바라(Che Guevara, 1928~1967)의 얼굴과 그의 표어인 "Hasta la Victoria Siempre(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다. 건물 전면에 크게 걸려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 밤에는 체 게바라의 얼굴을 조명으로 장식한다.

 오른쪽 건물에는 쿠바의 혁명가인 카밀로 시엔푸에고스(Camilo Cienfuegos, 1932~1959)의 얼굴이 걸려 있다.

 

 카밀로 시엔푸에고스와 절친했던 체 게바라는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사후 태어난 자신의 아들 이름을 카밀로 시엔푸에고스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카밀로'(camilo)라고 지었다.

     

 

 

국회의사당(Havana Capitol)

 쿠바의 국회의사당은 센트럴 공원의 남서쪽 코너에 위치하고 있으며, 미국의 워싱턴에 있는 국회의사당 건물과 닮은꼴로 만들어졌다. 이 건물은 건축학적으로 매우 정확하게 만들어 졌으며, 도시의 분위기를 한층 다양하게 만들었다.

 건물 내부는 사치스러운 장식으로 도배되어 있으며, 각 방마다 클래식한 분위기이다. 이 국회의사당은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수백 명의 건축가와 기술자의 지휘하에 단지 3년밖에 안걸려 지어진 것이며, 1929년에 거대한 축하쇼와 함께 오픈하였다.

 이 국회의사당을 걸어서 관광하면 1층만 관람하는데에도 약 20분 이상이 걸리며, 가이드를 따라 다녀도 무방하다. Salón de los Pasos Perdidos(영어로는 The Room of Lost Steps)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우아한 정문 로비는 실로 거대하며, 금과 청동으로 장식된 로코코 스타일의 컨퍼런스 룸은 잊혀지지 않는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30분까지 개관하며 입장료는 3$이다.

 

 

 

올드 하바나(Old Havana, La Habana Vieja)

 올드 하바나는 1982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지정된 세계문화유산이다. 이곳에는 옛 하바나의 최고의 유적지들과, 박물관, 성당, 궁전, 혁명비등과 다양한 시장들이 있어서 문화적 경험을 갈망하는 관광객들에게 각광받는 지역이다. 도시 개혁은 거주지역까지는 확장되지 않아서 이 지역 안에는 아주 오래된 건물이 많지만 연간 300개 정도의 건물을 붕괴하고 있어서 이 지역의 주민들은 다른곳으로 이전해야 한다.

 

 

대성당 광장(Plaza de la Catedral)

 아바나 대성당이 자리 잡고 있는 성당 광장은 다량한 쿠바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곳이다.  이곳은 하바나에서 가장 아름답고 보존이 잘 되어 있는 광장이다.

 18세기 바로코 양식으로 건축된 아바나 대성당은 웅장하다기 보다는 우아한 아름다음이 느껴지는 곳이다. 북미에거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꼽힐 정도다.

 이 성당에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의 유해가 1796년에서부터 1898년까지 100년 넘게 보존되었다고 한다.

 광장을 둘러싸고 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많은 건물들이 있으며, 예쁜게 장식한 바와 레스토랑도 즐비하다.

 

 

◇ Catedral de San Cristobal

   (산 크리스토발 대성당)

 이 성당은 18세기에 바로크 양식에 의해 만들어진 건물로 광장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 Plaza de Armas(무기 광장)

 대성당 광장에서 몇블럭 떨어진 곳에 Plaza de Armas가 있다. 이곳은 원래 정부청사가 있던 자리이다.

 

 

◇ Museo de Arte Colonial(식민시대 미술관)

 이 미술관은 광장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1720년대에 지어졌으며 건축학적으로 뛰어난 걸작이다. 주변으로는 다양한 열대 식물이 즐비하며 식민지 시대의 가구와 기물들이 매우 많이 전시되어 있다.

 

◇ Museo de la Ciudad(도시 박물관)

 이 박물관은 하바나 라는 도시가 처음생겼을때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유적과 정보들을 생생히 보여준다.

 

 

◇ 헤밍웨이 박물관(Mueso Momerial Ernest Hemingway)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별장이 있는 아바나는 1961년 쿠바의 공산화와 함께 친구이자 관리인인 푸엔테스에게 별장을 넘겨주고 미국으로 떠난다. 본인은 계속 살고 싶었으나 간첩의 누명을 입게 되므로 어쩔 수 없이 다 버리고 떠났으며 그 뒤 푸엔테스는 기증 형식으로 국가에 헌납하여 지금은 박물관으로 관광객을 맞고 있으며 낚시대회 수상트로피, 헤밍웨이보트(삘라르), 책, 가구 들이 잘 보존되어있으며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의 가치가 충분하다.

 

 헤밍웨이(1899~1961)의 최후는 그의 고향인 미국 아이다호 주의 케첨에서 머리에 총알이 박힌 시체로 발견된다. 부인의 말로는 자신의 장총을 닦다가 오발사고로 죽음을 당한 것이라고 했지만 친구들은 당시 헤밍웨이는 몹시 낙담에 젖어있었다고 했다. 평소에는 활달한 사람으로 기억 되고 있던 그가 두 번의 비행기 사고에도 살아남기는 했으나 그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해지자 자살한 것인지도 모른다.

 

 노벨문학상(1954)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세계적 대문호 헤밍웨이는 20년간 후세대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쳤으며 대표 작품으로는 '태양은 언제나 뜬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 있거라', '노인과 바다' 등 걸작품이 많고 간결문체로 육중한 주제를 다루었으며 모험과 사냥을 좋아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부친도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헤밍웨이 박물관은 하나의 저택이었는데, 하바나 시내에 살던 헤밍웨이가 이쪽으로 옮겨와서 여러가지 저술활동을 하는 등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이 바로 이 곳이다. 그렇게 헤밍웨이가 살던 집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놓은 곳이 바로 이 헤밍웨이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헤밍웨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바나 시내의 장소들 뿐만 아니라, 꼭 와봐야 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입장할 때 포토비를 주고 들어와야 하는데 가이드 말 살짝 찍고 1불주면 된다고 했다.

 헤밍웨이 박물관은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서 창밖에서 내부를 들여다 보는것이 전부이다.

 헤밍웨이가 실제로 쓰던 물건과 사냥해온 동물의 박제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깔끔하게 정리정돈과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사냥도 즐겼고 특히 요트로 바다낚시하는 일은 그가 소일하는 즐거움이었기에 뒷 정원엔 새요트처럼 기름칠을 해 놓은 그의 요트가 녹하나 안슬고 깨끗하게 잘 보관되어 있다.

 

 

 헤밍웨이 풍류가 서린 포구마을, 코히마르(Cojimar)

 쿠바 코히마르, 헤밍웨이 풍류가 서린 포구마을

 예술가에게는 제2의 고향이라는 게 있다. 그가 태어나지 않았어도 집필이나 창작의 자양분이 된 곳 말이다. 유럽의 문호들에게 지중해의 외딴 도시가 그러했듯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는 쿠바 아바나와 함께 어촌마을 코히마르(Cojimar)가 제2의 둥지였다.

 

 헤밍웨이는 쿠바를 사랑했고, 쿠바의 여인을 사랑했고, 쿠바의 럼을 사랑했던 소설가였다. 미국과 쿠바의 관계악화로 헤밍웨이는 쿠바를 떠나야 했지만 그의 흔적은 쿠바 곳곳에 흩어져 있다.

 

 어촌마을 코히마르는 헤밍웨이의 풍류가 서린 고장이다. 수도 아바나 동쪽, 한적한 포구마을인 코히마르는 헤밍웨이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줬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 이념도 피부색도 달랐던 공간에서, 헤밍웨이는 카리브해의 아득한 바다를 촉매 삼아 꿈을 포기하지 않은 한 늙은 어부의 삶을 그려냈다.

 

 코히마르 해변 한쪽에는 헤밍웨이의 동상이 서 있고 그가 즐겨 찾았다는 술집도 남아 있다. 헤밍웨이를 기리는 청새치 낚시 대회도 매년 이곳에서 열린다.

 

 마을은 요란스럽지 않고 아담한 풍경이다. 현란한 이정표도 없고, 관광지를 떠올리게 하는 상인들이 몰려드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욱 운치 있다. 해변을 거닐다 우연히 마주치는 헤밍웨이의 흉상이 이곳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포구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흉상은 한 어부가 기증한 고깃배의 프로펠러를 녹여 만들었다는 사연을 담고 있는데, 그가 그토록 동경했던 바다를 바라보고 외롭게 서 있다.

 

 20년 넘는 세월을 쿠바에 머물렀던 헤밍웨이는 코히마르에서 낚시를 즐겼고, 소설 속 노인인 선장과 술잔을 기울이며 풍류를 나눴다. '낚시하기 안 좋은 날이면 당장 글을 쓰겠다'고 할 정도로 낚시에 푹 빠져 살던 시절이었다. 노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그의 후손들은 어촌마을에 남아 옛 추억을 전하고 있다.

 

 레스토랑 '라 테레사(La Terraza)'는 유일하게 이 포구마을에서 붐비는 곳이다.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단골 술집으로 내부에는 그의 사진들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다. 이곳에서 창밖 바다를 배경으로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그가 마셨던 모히토(Mojito) 한 잔을 기울이는 기분은 묘하다.

 

 소설속 자양분이 된 어촌 사람들 외딴 코히마르의 골목에서는 박물관에서나 볼 듯한, 50년대 올드카들과 마주치는 게 오히려 낯설다. 미군정 시절, 아바나 근교는 미국 부호들의 휴양지였고 그들이 남긴 유흥의 흔적이 수십 년 세월을 지나 그대로 남아 있다. 울퉁불퉁한 올드카들은 외국의 자동차 마니아들이 눈독을 들여도 팔지 않는 쿠바의 명물이 됐다.

 

 포구마을 코히마르가 가슴 깊이 박히는 것은 단지 헤밍웨이 때문만은 아니다. 아바나의 도심이 변질돼 가는 것과는 달리 이곳 어촌마을의 골목에서는 상상 속에 오래 묻어둔 순박한 쿠바인들을 만난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성긴 이를 먼저 드러내고 웃는 모습들이다. 가난 속에서도 쾌활하고 때가 묻지 않은 미소와 눈빛, 그 정경들이 알알이 새겨진다. 소설 속 감흥을 이끌어낸 헤밍웨이의 선택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20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의 숨결은 코히마르 외에도 쿠바의 낯선 해변, 골목과 바에 잔잔하게 녹아 있다. 소설 '노인과 바다' 배경의 다른 한 축을 이뤘던 마리나 헤밍웨이는 요트가 즐비한 관광지가 됐고, 그가 실제로 거주했던 아바나 남쪽의 저택은 헤밍웨이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그의 애장품인 낚싯배도 함께 전시돼 아련한 여운을 남긴다.

 

o 현지 교통 : 쿠바에서 올드카 택시는 미터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흥정이 필수다. 버스가 다니지만 대중교통이 부족해 다수의 출퇴근족들이 히치하이킹을 애용한다.

 

o 음식 : 고기 스튜 '로빠 비에하'와 절인 돼지고기를 구워낸 '레초' 등이 쿠바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야채와 햄인 섞인 복음밥인 '아로츠 프리또'도 한국인 입맛에 맞다.

 

o 기타정보 : 1년중 11~4월은 건기, 5~10월은 우기다. 기온은 연중 22~28℃로 온화한 편이다. 쿠바 내에서는 달러나 유로를 쿠바화폐인 빼소 꼰베르띠블레를 환전해 사용해야 한다. 현금 인출기 사용 등은 쉽지 않다.

 

 

후에루사 요새(Castillo de la Real Fuerza)

 1555년부터 건축되기 시작한 아바나항 입구에 위치한 가장 오래된 요새이다.

 처음 건축될 당시에는 목조요새 였으나 프랑스 해적의 습격으로 소실된 후 산호석을 이용한 석조요새로 재 완성되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해적들의 습격으로 많은 약탈을 당하자 아나바는 후에루사 요새, 푼타 요새, 모로 요새 등 많은 요새가 만들어졌고, 군사 도시로서의 면모가 정비되었다.

 

 

코로나 담배 공장(Fábrica de Tobacco La Corona)

 쿠바하면 유명한 것이 쿠바산 담배이다. 쿠바에는 유명한 담배 공장이 몇군데 있는데 이곳은 혁명 박물관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시내 중심에 있는 두개의 담배 공장중 하나가 바로 코로나 담배 공장(Fábrica de Tobacco La Corona)이다. 약 45분간의 가이드 투어는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다.

 더욱 잘 알려진 파르타가스(Partagás) 공장과 투어는 거의 비슷하지만 담배생산의 전과정을 볼 수 있으며, 같은 빌딩안에 '팔라시우 델 타바코(Palacio del Tobacco)'라고 하는 규모나 명성에서 아바나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담배가게가 있다.

 담배를 피지 않는 사람이라도 꼭 한번 들러볼 만한 가치가 있다.

 가이드 투어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9시에 진행되며 $10의 입장료가 있다.

 

 

르타가스 담배 공장(Fábrica de Tobacos Partagás)

 국회의사당 뒤에 위치한 빠르따가스 담배 공장(Fábrica de Tobacos Partagás)은 쿠바에서 가장 오래되고 담배 생산도 가장 활발한 공장이다.

 이곳은 올드 아바나에 있는 오래된 건물중 하나로, 1849년에 지어졌으며, 코히바(Cohiba), 볼리바르(Bolívar), 파르타가스(Partagás)같은 쿠바의 유명한 시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입장료 $10은 담배 박물관의 입장과, 45분의 투어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 도시에서 가장 흥미로운 구경거리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영어 가이드가 있으며 담배를 만드는 전과정인 건조, 배합, 권련제조, 포장등의모든 단계를 상세히 볼 수 있다.

 이곳에는 담배 제조 교육과정도 있다. 이곳에는 9개월간의 담배공정 코스가 있는데 이 코스에 합격한 사람들은 등급이 한단계 올라가며, 세계에서 가장 좋은 담배를 만드는 전문가 집단에 소속되게 된다.

 이 공장의 가장 윗층에 올라가면, 담배 만들기의 전문가들이 8시간 동안 교대근무를 하면서 약 80개에서 250개의 시가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과히 천재적이며, 관광객의 반응이나 사진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작업을 계속한다.

 투어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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