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Australia)                        아르바이트 세계체험 - WWOOF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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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Sydnet)멜버른(Melbourne) 캐언즈(Cairns) 포트스테판(Port Stephens)

브리스베인(Brisbane) / 골드코스트(Gold Coast) 타즈매니아(Tasmania) 퍼스(Perth)

캔버라(Canberra) ∥ 다윈(Darwin)  앨리스 스프링스(Alice Springs)뉴캐슬(Newcastle)

포토 갤러리

 

 영토로 판단하면 호주는 러시아, 캐나다, 중국, 미국, 그리고 브라질 다음으로 큰 영토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인구밀도는 매우 낮다.

 호주는 전 대륙과 부속도서를 총괄하는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내륙은 가장 큰 섬이며 가장 작은 대륙이다. 호주 대륙은 남위 10˚와 39˚ 사이에 위치 한다. 

 내륙에서 가장 높은 지대는 코지우스코(Kosciuszko) 산이지만 이 산의 높이도 2,228m 밖에 안된다. 전체 지형은 낮고 생성연대가 오래된 지형이다. 구름들이 산을 거쳐서 지나가지 않기 때문에 국토의 대부분은 적은 강우량을 가지고 있다.

 극지방을 제외하면 호주는 가장 건조한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 다른 지도(상세 지도)          ☞ 다른 지도(광역 지도)

 

 호주는 관개시설이 잘되어 있는 비옥한 농지를 가지고 있다. 이곳은 매우 효율적인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세계의 곡창지역이기도 하다. 양들과 소들이 다시 메마른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토양에 대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으면 잠시 비옥해진 땅도 오랜 기간동안의 방치로 인하여 빗물에 영양분이 쓸려 내려가서 다시 쉽사리 사막으로 변해 버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호주 연방은 6개의 주와 2개의 테리토리로 구성된다. 대부분의 주경계선은 위도와 경도로 구분된다. 가장 큰 주인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는 서유럽과 거의 같은 면적이다.

 

 

 태평양과 인도양 사이에 있으며 대륙의 절반 이상은 서부 고원 지대이다. 주요 강들로 플린더스·스완·쿠퍼 강 등이 있고 그레이트배리어리프·멜빌 섬·태즈메이니아 등 많은 섬과 암초들이 있다. 국민은 영국·아일랜드계가 대부분이며 원주민이 전체인구의 약 1/5을 차지한다. 공용어는 영어이고 화폐단위는 오스트레일리아달러($A)이다.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01년 독립하여 영연방에 통합되었다. 형식적으로 입헌군주제를 취하며 국가원수는 영국 국왕이고 총독에 의해 대표된다. 실제로는 의회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며 정부수반은 총리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유럽계의 후손이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비백인계 소수집단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다. 인구 중의 아시아계 비율은 완화된 이민 정책의 결과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공용어는 영어이다. 국민 대다수는 개신교를 믿는다. 하지만 로마 가톨릭교·동방정교회·기타 그리스도교도도 있으며, 불교·이슬람교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화폐단위는 오스트레일리아달러($A)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3가지 주요한 지형적 특징을 보인다.

 

 대륙의 절반 이상은 서부 오스트레일리아 고원 지대이다. 이 지역에는 아른헴랜드 지역과 북서쪽의 킴벌리, 동쪽에 위치한 맥도넬 산맥이 포함된다. 두 번째 지역은 고원의 동쪽에 위치한 인테리어롤랜즈이다. 그레이트디바이딩 산맥을 포함하는 이스턴업랜즈에는 높은 산등성이, 고원, 분지들이 나타난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고도가 가장 높은 곳은 오스트레일리안알프스의 코지어스코 산(2,228m)이고, 가장 낮은 곳은 에어 호이다. 주요 강들로는 머리-달링 수계, 플린더스·스완·쿠퍼 강 등이 있다. 해안을 따라 그레이트배리어리프·멜빌 섬·캥거루 섬·태즈메이니아를 비롯한 많은 섬과 암초들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석탄, 석유, 우라늄 등 광물 자원이 풍부하다. 1979년 대량의 다이아몬드 광상이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견되었다. 기본적으로 경제는 자유기업체제이다. 가장 비중이 큰 산업 분야는 금융업, 제조업, 무역업이다.
형식적으로 입헌군주제를 취하고 있으며, 국가원수는 영국 국왕이고 총독에 의해 대표된다. 실제로는 양원으로 구성된 의회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정부수반은 총리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오랫동안 원주민(Aborigines)들이 거주해왔는데, 이들은 최소 5만 년 전에 이주해오기 시작했다. 1788년 유럽인들이 정착할 당시 원주민의 수는 대략 30만~100만 명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17세기 탐험과 함께 유럽인들에게 오스트레일리아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1616년에 네덜란드인들과 1688년에 영국인들이 이 대륙에 발을 디뎠으나, 최초의 대규모 원정대는 1770년 제임스 쿡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원정으로 영국은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영유권을 선포했다. 1788년 최초의 영국인들이 포트 잭슨에 정착했다. 이주한 영국인들은 주로 범죄자와 선원들이었고, 이후에도 이주해오는 사람들의 큰 비중을 차지했다.

 

 1859년까지 오스트레일리아의 모든 주들의 주요한 식민 지역들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유럽인들의 전염병이 퍼지면서 원주민들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고, 그들의 인구는 급격하게 감소했다. 영국은 19세기 중반에 식민 지역들에 제한적 자치 정부를 인정했다. 그리고 1901년에 식민지역들을 영연방으로 통합하는 법이 발효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특히 갈리폴리에서 영국과 함께 싸웠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일본인들의 오스트레일리아 점령을 막기 위해 참전했다. 6·25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는 미국과 함께 전쟁에 참전했다.

 

 1960년대 이래 정부는 원주민들을 좀 더 공정하게 대우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으며, 이민 규제를 완화해 다양한 인구 구성을 가능하게 했다. 영국이 오스트레일리아 정부 정책을 간섭할 수 있었던 헌법적인 장치들이 1968년에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아시아와 태평양 주변의 사안들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영국과의 유대관계를 단절하고 공화국이 되는 것에 대한 몇 차례의 논쟁이 있었다.

 

 

개 요

o 국 명 : Commonwealth of Australia

o 위 치 : 동경 113˚9'-153˚39', 남위 10˚41'-43˚

o 면 적 : 7,682,300㎢

              - 한반도의 약 35배, 알라스카를 제외한 미국본토 면적

              - 러시아, 카나다, 중국, 미국, 브라질에 이어 6번째 면적

              - 동서 약 4,000km, 남북 약 3,680km

o 인 구 : 약 2,300만 명 (2016년)

             - 주요도시 : 시드니(약 500만), 멜번(약 400만), 브리즈번(약 200만), 아들레이드(약 150만),

                              캔버라(약 38만), 퍼스(약 200만)

o GDP : 12,523억$(2015년. 세계12위)

o 인 종 : 앵글로색슨 80%, 기타 유럽 및 아시아계 18%, 원주민(aborigines) 2.0%

o 지형 및 기후 :

             - 서부 40%와 북부의 80%가 열대성, 나머지는 온대성 기후로 전반적으로 온화한 대륙성 기후

             - 육지의 30%가 사막

             - 봄(9-11월), 여름(12-2월), 가을(3-5월), 겨울(6-8월)

             - 지형은 오래되고 평균 해발 300m이하 (최고 Kosciusko산 2,228m)의 평탄한 대지

             - 연평균 강우량 : 465mm(전국적으로 100mm-2,000mm 분포)

 

시드니 기후(℃. mm)

지 역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시드니

(SYDNEY)

최고평균

26

26

24

22

18

16

15

17

19

22

23

25

최저평균

18

18

17

11

11

9

8

8

11

13

15

17

평   균

21.9

21.9

21.2

18.3

15.7

13.1

12.3

13.4

15.3

17.6

19.4

21.0

강우일수

13

12

13

14

12

11

12

10

11

11

11

13

 

o 동식물 : 호주 대륙은 오랫동안 다른 대륙과 분리되어 있어 여타 대륙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동.식물군이 진화

             - 특이동물 : 캥거루, 코알라, 오리너구리, 듀공, 포섬 등

             - 특이조류 : 이뮤, 바우어버드, 쿠카부라 등

             - 특이식물 : 유칼리나무(고무나무), 와틀 등

o 종 교 : 기독교 73%(영국성공회 23.9%, 천주교 26.1%, 연합회 7.6%) , 무종교 25%, 기타 2%
o 국가형태 : 입헌군주제

o 정부형태 : 의원내각제

o 국가원수 : Elizabeth 2세 영국 여왕

o 의 회 : 양원제

o 국 가 : "Advance Australia Fair"(모든 공식 의전행사시 사용)

  - 호주는 국가의 상징으로 특정 식물, 동물 또는 새를 채택하지 않고 있으나 국가 문장에 황금빛 와틀, 캥거루 및 이뮤가 있어 전통적으로 이들이 호주를 대표하는 것으로 인정

  - 국가색채 : 초록색과 황금색

o 수 도 : 캔버라(Canberra) (원주민어로 "만남의 장소"라는 뜻)

o 사용언어 : 영어

o 화폐단위 : Australian Dollar, 1호주달러 (A$) = U$0.517(2002.2. 15 현재)

o 회계연도 : 7월 1일 - 익년 6월 30일

o 국경일 : 1.26 (Australia Day)

             - 1788.1.26. Arthur Phillip 함장 인솔하에 시드니만에 도착, 영국 식민 개시

o 영 해 : 12해리

o 시 차 :

한  국

뉴사우스웨일즈(*)

빅토리아(*)

퀸즈랜드

남부호주(*)

서부호주

타스마니아(*)

북부지역

수도권지역(*)

9시

10시

10시

10시

9시30분

8시

10시

9시30분

10시

※ 섬머타임 실시 주(*표)는 10월 마지막 일요일 - 3월 첫 일요일중 1시간 가산

 

 

자연환경

 호주는 매우 다양한 자연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풍부함을 자랑한다. 호주의 식물군과 동물군들은 세계의 다른 지역과 전혀 연관성 없이 진화해 왔다.

 초기 대륙인 곤드와나(Gondwana)가 1억 6천만년 전에 갈라져 나온 이래로 호주는 남극방향으로 이동하였고 빙하에 의해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한 지점까지 다다르게 된다.

 이로부터 4천 5백만년 동안 호주는 다시 남극과 멀어지기 시작하여 적도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이 이동으로 호주대륙의 기온은 보다 따뜻하게 변하였고 점차 건조해졌다. 대략 3천 5백만년 전에 유칼리 나무가 신선하고 습한 제3기 지질기(Tertiary)에 발생하였다.

 유칼리 나무는 마타케아(Myrtaceae) 종에 속한다. 호주는 다른 대륙의 수목보다도 유칼리 나무가 자랄 수 있는 적합한 조건을 만들어 주고 있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발견되는 마타케어 종의 절반 이상을 호주에서 발견할 수 있다.

 호주 유대류는 다른 대륙의 포유류와 매우 다른 유전형질을 가지고 있다. 전형적으로 이 동물들은 자기 새끼들을 몸에 있는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키운다. 유칼리 나무와 마찬가지로 유대류들도 호주 대륙에 잘 적응하여 살고 있다. 최초로 캥거루가 발생한 것은 1천 5백만년 전이라고 한다. 이들은 매우 많은 수까지 번식하였다. 열대 캥거루라고 하는 종은 나무 위에서 살지만, 대부분의 캥거루들은 메마른 초원지대에서 살아 간다.

 지구의 온난화와 극지방 빙하의 해빙으로 해수면이 점차 높아지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뉴기니와 타즈마니아 섬으로 가는 육로가 끊기게 되었다. 산호초가 새로 조성된 낮은 바다에 번성하여 Great Barrier Reef를 퀸즈랜드 지역에 형성했다.

 바다에서 서식하는 호주의 열대 악어는 이 지역의 포식자(Predator)이다. 이들은 공룡 시대부터 별로 변화하지 않은 종으로도 알려져 있다. 거대 유대류들과날개가 퇴화된 조류(Wingless Birds)들은 1만년과 2만년 사이에 호주에서 사라졌다.

 이들의 멸종은 대륙이 점차 건조해지기 시작하고 인간들이 사냥을 위해 불을 사용하면서 먹이인 관목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고대 식물들은 여전히 야생에서 자란다. 거대한 `남극'(Antarctic)나무는 작은 강의 남쪽 사면에 있는 습하고 그늘진 물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남부 해안을 따라서 늘어서 있는 키가 크고 은빛 점이 박힌 야자수(Cycad Palm Tree)도 매우 오래된 원시 수목의 한 종류이다.

 아주 드물게 사막의 작은 계곡에서는 원시 식물들의 서식처를 발견할 수 있다. 몇 해 전에는 시드니 근처에서 이미 수천 년 전에 멸종하였다고 생각되던 거대한 침엽수 종들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농업이 발달되고 여우나 토끼와 같은 동물들이 늘어나면서 원시 식물군들은 점차 생존을 위협 받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0년 동안 매우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호주는 현재 이 종들을 보호하고 살리기 위하여 매우 강력한 과학 및 법적 조치를 고려하고 있기도 하다. 호주인들은 자국의 독특한 자연 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고대의 유산

 아무도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the Aborigines)과 토레스 해협 원주민(the Torres Strait Islanders)들이 어떻게 이 대륙으로 들어오게 되었는지 모른다. 단지 과학적인 분석의 결과를 통한 화석으로 추측컨대 약 4만년 전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단지 제한적인 기술력을 이유로 분명하지 않다.

 새로운 연도 측정법은 동일한 화석 년도를 측정하여 이 시기를 5만년 전으로 보고한 바 있다. 노던 테리토리와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의 경계를 만들고 있는 킵 강(Keep River)가의 암각화는 무려 17만 5천년 전에 만든 것이라고 보고되었다.

 호주 원주민들은 불을 사용하고 사냥을 하면서 삶의 터전을 만들었고 그들 또한 호주의 자연에 동화되어 살았다. 동물들과 오래된 식물군들은 이들의 이상적인 고대의 유산으로 기억된다.

 비록 문명은 일천했지만 애보리진들과 토레스 해협 원주민들은 매우 정교한 도구를 사용했으며 이를 이용해 그들의 사회를 만들어 내고 보존하였으며 후대에 물려 주었다. 교육은 매우 잘 구성되어 유년기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였다.

 

 

역 사

 최근까지도 서구의 역사가들은 호주의 역사를 말할 때 16, 17세기에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의 탐험가들이 아시아와 교역을 시도하면서 최초로 오세아니아 대륙과 접촉한 사실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관점은 유럽인들이 동쪽으로 진출하기 이전에 이미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지역의 국가들이 아주 오랫동안 오세아니아 대륙과 교역 및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에 의해서 변화되고 있다.

 미국 독립전쟁이 끝나면서 영국은 북아틀란타 유배지를 대체하기 위한 새로운 유배지를 찾고 있었다. 자연과학자 조셉 뱅크스 경(Sir Joseph Banks)은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과 함께 호주의 해안을 탐사하고는 이 지역의 해도를 작성하였다(1768-1771). 역시 그 목적은 남반구에 죄수들의 유형지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었다.

 최초의 11대로 구성되고 1,500명이 승선한 함대가 1788년 1월에 보타니 만에 도착하였다. 이들 중 절반은 물론 죄수들이었다. 필립 총독은 이 지역을 시드니라고 명명하였고 그가 최초로 시드니 내항에 상륙한 날인 1월 26일은 호주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 시드니는 이때부터 영국의 유형지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죄수 유배는 1840년 뉴 사우스 웨일즈로 들어오는 것으로 일단락 된다. 그러나 1868년까지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주에서는 이를 받아들였다. 16만명 정도의 죄수들이 80년간 호주로 들어왔다. 자유 이민자들은 이에 비하여 매해 5만명 정도씩 증가하였다고 한다.

 1850년대에 호주는 골드러쉬를 맞이한다. 노동력이 빈약하고 경작지는 광활하고, 거기에 농업과 광업, 그리고 교역을 중심으로 하는 부가 빠르게 축적되어서 호주 사회의 독특한 제도와 감수성이 길러진 시기이기도 하다.

1901년은 호주식민지가 호주 연방으로 거듭나는 선언을 한 시기이다. 캐나다와 마찬가지로 영국 제국은 호주 제국의 종주권을 아직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호주는 종교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 독립 국가로 탄생하였다.

 

 

주요 약사

1788.1.26 Arthur Phillip 함장의 Endeavor호 시드니 도착

1901. 1 연방정부 수립 및 연방의회 설치 (멜번)

1903 여성참정권 인정

1904 1차대전 참전

1908 노동당(Australian Labor Party) 창당

1915 터키 Galipoli 상륙일 (ANZAC 기념일)

1919 국민당 발족 (Australian National Party)

1924 의무선거제도 채택

1927.7 연방정부 및 의회를 연방수도로 선정된 캔버라로 이동

1939 2차대전 참전

1944 자유당 (Australian Liberal Party) 발족

1950.9 한국전 참전

1951.9 ANZUS 방위조약 체결

1956 멜번 올림픽 개최

1967 호주 최초 인공위성 발사, OECD 가입

1971 영연방 5개국 방위협정체결

1973 백호주의정책 폐지

1975 인종차별금지법(Racial Discrimination Act) 제정

1977 호주 민주당 창당

1993 원주권법(Native Title Act) 제정

1996.3 Howard 총리 제1기 취임

1998.2 공화제 논의를 위한 헌법회의 개최

1998.10 Howard 총리 제2기 취임

1999.11 국민투표에서 공화제안 부결

2000.9 시드니올림픽 개최 

 

 

이 민

 호주의 다문화 사회는 애보리진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원주민, 그리고 모든 세계에서 이주한 이민자들의 문화들을 포함한다. 이민은 호주 사회의 독특한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다. 1945년 이래로 거의 5백 5십만 명의 이민자들이 호주로 이주하였다. 이민문화는 호주를 현대화하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해외에서 태어난 사람들과 그들의 자녀들은 전체 인구의 2/5 정도를 차지 한다.

 연방정부는 이민자의 수를 매년 조절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나라의 어떤 사람도 이민을 신청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인종, 종교, 성별, 피부색의 구분이 없다. 만일 그들이 호주에서 제시하는 이민 적격자라고 판정되면 그들은 모두 호주에서 동등한 조건에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 받는다.

이 조건들은:

- 호주민과의 긴밀한 가족관계

- 자본과 사업적인 전문성

- 특별한 기준에 부합하는 기술력과 자격소지 여부

- 난민과 인도적 그룹

 호주는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도와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1945년 이후로 50만 명 이상의 난민들이 호주에 정착하였다.

호주는 이민들 받아들이는 데에 법적인 절차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트 피플이라고 부르는 소위 불법 이민자들은 종종 일정한 제한구역에 머무르게 하거나 추방될 수도 있다.

 

 

 관광 명소

 

시드니(Sydnet)멜버른(Melbourne) 캐언즈(Cairns) 포트스테판(Port Stephens)

브리스베인(Brisbane) / 골드코스트(Gold Coast) 타즈매니아(Tasmania) 퍼스(Perth)

캔버라(Canberra) ∥ 다윈(Darwin)  앨리스 스프링스(Alice Springs)뉴캐슬(Newcastle)

 

 

블루마운틴(BLUE MT.)

 평지나 구릉이 주류를 이루는 시드니에서 산악관광의 묘미를 제공해주는 곳이다. 시드니 서쪽 100km 지점에 위치해있다. 약 1,000m대의 산맥을 뒤덮은 유칼립투스 나무에서 증발된 유액이 햇빛에 어우러져 빚어내는 푸른 안개 현상으로 블루 마운틴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주말 등산이나 일일 관광코스로 유명하다. 시드니에서 차로 약 1:30분 가량 소요되며 세자매 바위, 경사 50도의 관광 궤도 열차, 케이블카 폭포 관광 및 산림욕을 즐길 수 있다.

 

세자매봉(Three Sisters) 얽힌 전설

 에코포인트에 아름다운 세자매가 살고 있었는데, 이들 자매에대한 이야기를 들은 마왕이 세자매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고 음모를 꾸몄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세자매는 주술사를 찾아가 마왕의 것이 되지 않기 위해 잠깐동안만 바위로 변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주술사는 이들 세자매의 간청을 받아들여 세개의 바위로 만들어 주었지만, 이 사실을 알게된 마왕은 주술사를 죽여 버렸다. 그래서 세자매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한채 현재까지 바위로 남았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온다.

 

에코 포인트(Echo Point)

 블루마운틴 일대에 형성된 산악지대를 일컫는 말로 호주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불리운다. 카툼바 역으로부터 남쪽으로 걸어서 20분정도 걸리는 곳이며, 연간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짙은 원시림으로 뒤덮인 한편에 전망대가 위치해 있으며, 여기에서 세자매 봉우리(The Three Sisters)의 기암이나 재미슨 밸리(Jamison's Valley)의 숲을 바라볼 수 있다.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이 남성적이라면 호주 블루마운틴의 에코포인트는 여성적이라 할 수 있다.

 에코포인트 전망대 주변은 공터가 마련되어 있어 관광객들의 버스가 주차한 후 전망대 주위에서 산의 경치를 줄길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애버리지니 원주민이 나와서 고유한 악기를 연주하며, 관광객들과 함께 사진찍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블루마운틴에서 즐기는 궤도열차(Scenic Railway)의 스릴

 블루마운틴 에코 포인트 전망대에 가깝게 위치한 엔터테인먼트 시설로 과거에 블루마우틴에서 석탄채굴시에 사용하던 궤도열차를 복원하고, 개보수를 거쳐서 놀이시설 형태로 꾸민 것이다.

 에코 포인트에서 관광을 마친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와서 궤도열차 시승을 하게되며, 스릴은 일반 놀이시설보다 다소 떨어지겠지만 경사 50도의 궤도열차를 타고 어둠속으로 밀려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면서 과거 석탄채굴 현장으로 나서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게된다.

 시설이 마련된 고지대에서 궤도열차를 타고 내려가서 바로 다시 올라올 수도 있으며 내려가서 도착한 지점에서 내려서 블루마운틴 산보를 즐긴 후에 케이블카나 다시 궤도열차를 이용해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되어있다. 바닥 정거장에서 동쪽으로 12분 걸으면 폭포를 밑에서 볼 수 있는 웅장한 카툼바 폭포와 쿡스 크로싱이 나온다.

 바닥 정거장에서 서쪽으로 보드워크(Boardwalk)를 따라 80m 걸으면 옛날 광산의 입구가 나온다. 거기에는 광산의 역사와 관련한 시청각 시설이 있고, 당시 광부와 그의 조랑말을 형상화한 "아더"와 "크리미"를 만날 수 있다.

 보드워크를 따라 310m 더 가면 시닉센더 케이블카의 바닥 정거장에 도착한다. 시닉센더는 양쪽으로 매 10분마다 운행한다.

 

블루마운틴 케이블카 시닉센더(Sceniscender)

 블루마운틴 산악 관광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타는 것은 궤도열차(Katoomba Scenic Railway)시설과 함께 연동해서 운행되는 케이블카 시닉센더(Sceniscender)이다. 흔히 관광객들이 궤도열차를 타고 내려가서 산책을 즐기면서 블루마운틴의 수풀을 감상하고 과거 석탄채굴 현장의 유적들을 둘러본 후에 이 시닉센더 케이블카를 이용해서 위로 올라오는 관광코스를 선택하게 된다.

 케이블카 시닉센더를 운행하는 여승무원 또는 남승무원의 재기있는 말투와 몸짓이 매력적이고, 내려가고 올라가면서 블루마운틴의 엄청난 나무들, 웅장한 양치류, 멋있는 숲속의 새들이 만들어내는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엣지 시네마(Edge Cinemas)

 영화의 줄거리 -"호주 블루마운틴 야생지역에서의 모험과 발견"

 The Edge는 가장 위대한 인간사의 하나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복잡하고 취약하며 태고적인 세계를 발견하고 이와 타협하는 이야기를 들려 준다.

 호주의 블루마운틴 야생지역은 전세계에서 독특한 존재이며 절묘하게 아름다운 곳이다. 호주의 야생지역들의 대부분은 여러분들이 의례 그러려느니 생각하는 것처럼 농장과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그러나 블루마운틴은 이 통례에 대한 파격적인 예외가 된다.

 블루마운틴 지역은 인구 4백만의 대도시 시드니의 바로 문턱에 자리잡은 1백만㏊의 울창한 삼림지역이다. 지형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태고적이다. 아리조나주의 그랜드 케니언이 얕은 강물에 불과했던 먼 옛날에 블루마운틴의 절벽과 계곡은 오늘날의 모습과 거의 같은 것이었다. 이 고원은 물줄기들에 의해 표면이 깍여서 아름답고도 험악한 폭포수, 협곡과 지하의 강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 9천만년전의 모습과 같은 미로를 형성하고 있다.

 이 협곡을 따라가는 것은 위험하다. 매년 사람들이 이 협곡속에서 죽는다. 추락해서 죽은 사람들도 있고, 익사하는 사람도 있으며, 길을 잃고 비바람과 추위에 노출된 채로 굶어죽는 사람들도 있다.

 블루마운틴 야생지역은 1천m나 되는 깍아지른 절벽들이 무시무시한 방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현대사회의 침식으로부터 자체를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절벽들의 힘만 믿고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이해했던 것보다 훨씬 더 민감한 생태계의 취약성을 간과하기 쉽다. 환경에 대한 인간의 영향력은 너무나 커서 현재 호주의 4개의 동식물 종류 중 하나는 "희귀하고 멸종위기에 처해있음" 이란 말이 따라붙게 되었다. 그러나 항상 출현하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것들이 지금 여기서 발견되고 있다.

 1994년 10월 어느 탐험가는 "공룡나무"(dinosaur tree)의 숲속에 자신이 서 있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이 나무들이 600만년전 이전에 멸종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이 나무를 발견한 것은 숲속에서 돌아다니는 산 공룡을 발견한 것에 못지 않았다. 이 나무들은 굉장히 커서 높이가 40m나 되며, 어느 생물체와도 모양이 다르다. 우리에게 알려진 우주 속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약 40그루의 이 나무들이 한 지역에서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이 나무들의 위치는 절대적으로 비밀에 붙여 있다. 촬영기사들은 눈을 가리고 그곳으로 가는 것에 동의했다. 따라서 The Edge의 관람객들은 우리의 마음속에 경외감을 일으켜주는 장소로 인도되는 엄청난 특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특이한 식물들과 야생 동물들이 서식하는 이 놀라운 환경이 존재한다. 피륙은 찢겨있지만 그 중 대부분은 남아 있다. 우리는 더 손상이 가지 않도록 이를 보호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 우리는 이 세계의 야성적인 아름다움을 보았는데, 이는 우리 모두가 크게 경하해야 할 일이다.

 

옛 카툼바 채석장(Katoomba Coal Mine)

 재미슨 계곡(Jamieson Valley) 카툼바(Katoomba)에서 1878년 석탄과 셰일 채광이 시작되었다. 1800년대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채광사업은 아주 커져, 채석된 광물을 아래까지 옮기기 위한 트램과 케이블 등의 건설이 이뤄지게 되었다.

 빅토리아산을 지나는 궤도열차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만들어진 것으로, 1878년에 완공되었다.

 이곳의 채광이 중단된 이후, 채광 회사는 채석장까지 이어진 다양한 시설을 이용하여 새로운 경제적 이익을 내려는 노력이 시작되어 마침내 블루마운틴을 중심으로 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관광객들을 위한 편의시설로 전환되었다. 

 새롭게 변모한 채석광을 주변으로한 관련 편의시설은 현재 이곳을 찾는 관광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주면서 아주 인기있는 관광코스가 되어 있다.

 

 

 

 

 

 

크리스마스 섬과 코코스 (킬링)

(The Christmas and Cocos(Keeling) Islands)

 크리스마스 섬은 인도양 호주 퍼스에서 북쪽으로 2,720km, 자바섬에서 남쪽으로 약 36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풍부한 구아노(Guano, 바닷새 배설물) 산지로, 1643년 영국인 윌리엄 마이너스(William Minors)에 의해 발견되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발견되어 이름이 크리스마스 섬이 되었다.

 길이가 18km, 너비가 7km. 면적이 135㎢.

 현재 약 3천명 정도가 거주하는 호주령으로 면적의 63%가 바다앞 50m 지점까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크리스찬보다는 불교, 도교를 믿는 중국계 화교들과 말레이계 회교도가 만하다.

 

 1958년 영국은 호주의 요청에 따라 이 섬의 통치권을 호주에게 넘겼다. 이전까지 이 섬에 대한 권한을 싱가폴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 호주는 싱가폴에게 대가로 당시 2천만 말레이시아 달러를 지불했다. 크리스마스 섬의 주 자원인 인삼염으로 생기는 수입이 끊어지는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

 

 매년 11월~1월까지는 우기로 이때는 섬 전체가 게 천국이 되며,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열대우림에는 크리스마스 레드 크램(Red Crab, 홍게)이 생식하는데 이때가 게의 번식기라서 집단으로 게들이 해안으로 이동한다.

 

 크리스마스 섬과 코코스 섬(the Christmas and Cocos(keeling) Islands)은 지구 상에 둘도 없는 섬들이다. 외딴 열대 휴양지인 이 섬들은 편안히 쉬면서 독특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에 완벽한 곳으로 새들과 바다 동물들이 도처에 서식하고 이곳에만 서식하는 종들도 많이 있다.

 크리스마스 섬에서는 사는 속도를 천천히 줄여야 한다. 예쁜 게들이 천천히 옆걸음질 쳐서 도로를 건너고 주민들은 베란다 안락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모래톱 너머로 지는 석양을 바라 본다.

 

열대 휴양지

 고원의 열대우림에서는 크리스마스 섬 개똥지빠귀가 나무 가지에서 폴짝 뛰어내려와 지나는 관광객들을 유심히 살피기도 하고 희귀한 애보트 가마우지(Abbott’s boobies)가 나무 꼭대기 둥지에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울기도 한다.

 고래상어와 스쿠버 다이빙을 하거나 힘이 넘친다면 대형 물고기를 잡아 바베큐를 해도 된다. 그 밖에도 플라잉 피시 코브(Flying Fish Cove)의 암초 위에서 한가하게 새로운 물고기를 찾거나 수중 세계를 탐험해 볼 수도 있다.

 크리스마스 섬은 대자연과 열대 문화의 다양성이 어우러진 아주 독특한 관광지이다. 아시아적인 분위기를 간직한 열대 섬이지만 여전히 호주의 일부이다.

 매년 이 섬에는 대자연의 신비 중 하나인 붉은 육지 게들의 집단 이주가 펼쳐진다. 게뿐만 아니라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이 섬에서만 살고 있는 조류들도 많다. 또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외딴 섬은 다이빙, 스노쿨링, 낚시 등을 즐길 수 있는 장소들도 많이 있다.

 크리스마스 섬은 1651년 크리스마스 날 발견되었고 인산광물을 채취하기 위해 1888년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여 광산과 더불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섬은 본래 해저 휴화산의 정상부로 가파른 중앙 고원에는 키가 큰 나무들이 자라는 열대우림이 형성되어 있다. 석회암과 화산암층으로 되어 있고 가장 높은 곳이 최고 361m에 이른다.

80km의 해안선은 거의 20m 높이의 절벽으로 되어있다. 일부 장소에서만 작은 동굴들, 모래로 이루어진 얕은 만들, 산호들이 깔린 해변, 바위 물웅덩이가 나타난다.

 좁게 둘러싼 산호초에서는 환상적인 수직벽 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 해안에서 200m안에 있는 산호초는 수심이 약 500m나 된다.

 섬이 심해로 둘러 싸여 있기 때문에 황다랑어와 고등어과 어종에 속하는 와후 같은 대형 원양어종들은 멀리 나가지 않아도 잡을 수 있다. 흰솔피돌고래(spinner dolphins) 떼들도 살고 있으며 점잖은 고래상어도 10월에서 4월 사이에 찾아 온다.

 열대기후인 크리스마스 섬은 1년 평균기온이 27℃로 건기와 우기가 있다. 우기는 11월에서 4월까지로 섬은 북서 몬순의 영향 아래에 놓이게 된다. 우기를 제외한 나머지 기간 동안 남동 무역풍이 불고 , 기온이 약간 낮아지고 강우량이 줄면서 습도도 다소 낮아지게 된다.

 우기가 시작되면서 붉은 게들의 이주가 시작된다. 문자 그대로 수 백만 마리의 게들이 고원에 있던 은신처를 떠나 산란을 위해 바다로 출발하여 도로를 건너고 빌딩 사이를 지나게 된다. 크리스마스 섬에는 14종의 육지 게가 있고 이중 붉은 게가 가장 많다. 게 구멍을 통해 땅에 산소가 공급되며 게들은 숲 바닥에 있는 낙엽들을 먹이로 삼기 때문에 장애물이 제거되어 게들이 이동하기에 편하게 된다. 

 섬의 대부분인 63%가 국립공원으로 독특한 생태계를 지니고 있고 희귀 새들도 많이 서식한다.

 

게를 밟지 마세요

 붉은뭍게(Red Crab, 홍게)가 약 1억 2,000만 마리는 평소에는 이 섬의 숲에서 지내다가 우기인 10월과 11월이 되면 어둔운 은신처에서 나와 산란을 위해 바다로 이동한다. 붉은뭍게는 이섬에 사는 뭍게 14종에서 가장 눈에 잘 띈다.

 붉은뭍게의 크기느 약 12cm이다. 열매나 죽은 시체를 산다.

 붉은뭍게의 행진은 온 섬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섬을 빽빽이 채운 게들은 정원, 골프장, 도로, 철도를 가리지 않고 행진을 계속 한다.

 

 뭍게이지만 번식은 바다에서 하기 때문에 암컷과 숫컷들은 얕은 물에서 만나 수정을 한다.

 짝짓기는 하현달일 때 벌어지는데 이 시기는 만조와 간조의 차이가 거의 없을 때이기도 하다. 바다에서 수정을 마친 게들은 다시 숲으로 돌아가 이듬해까지 자취를 감춘다. 새끼들은 바다에서 자라는데 점점 작고 붉은 게의 모습을 갖추어간다. 수백만 마리에 달하는 새끼 게들은 바위로 몰려간다. 바위가 숲을 대신해서 이들을 보호해 준다.

 

 호주 자연 보호국 조사에 따르면 이 시기에 섬을 배회하는 게가 약 1억 2000천만 마리나 된다고 하며 도로나 주택가도 게 천지가 되고 창문을 열면 집으로 들오 오기도 한다.

 해안에 도착해서 산란이 끄나고 다시 게는 열대우림으로 돌아가는데 이렇게 왕복하는 과정에서 약 1%가 교통사고로 죽는다.

 알에서 부화한 새끼는 새끼손톱 정도가 될 때까지 해안에서 지낸 후 살아남은 게들만 열대우림으로 향한다.

 이 게의 수명은 대략 35년으로 매우 긴편이며 전체 생식 수의 조절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지고 행진하는 것은 매년 연말이면 대이동이 시작되는데 이때는 섬 전체가 온통 빨갛게 물드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다이버들의 이상향

 끝없이 이어진 해안 절벽, 잘 보존된 산호초들, 수백 종의 열대어들, 고래상어, 따뜻하고 맑은 바다. 이 외에 다이버들에게 더 필요한 것이 있을까? 크리스마스 섬은 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지상의 낙원

 외딴 섬에서 해먹 위에 누워 해변 백사장에 찰랑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불타는 석양을 바라보는 장면을 꿈꾼다면 외딴 코코스 킬링 제도(Cocos Keeling Island)가 바로 그곳이다.

 

 

환초의 섬 코코스 킬링 제도(Territory of the Cocos Keeling Islands)

 귀에 들리는 것은 새하얀 백사장 해변에 찰랑거리는 파도소리뿐인 외딴 섬의 해변에 누워 있는 것을 상상해 본적이 있는가? 해변을 따라 몇 시간을 걸어도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못하는 섬을 상상해 본적이 있는가? 한가로이 차가운 와인 한잔을 들고 인도양으로 서서히 넘어가는 불타는 노을을 바라보는 것을 상상해 보았는가?

 이 모든 상상이 코코스 킬링 제도에서는 현실로 다가온다. 코코스 킬링 제도는 외부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호주의 가장 외딴 섬이다.

 코코스 킬링 제도는 두 개의 환초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의 노스 킬링 (North Keeling)은 푸루 킬링 국립공원(Pulu Keeling National Park)에 속해 있고 남쪽은 서던 애톨(Southern Atoll)이라고 보통 부르고 있다.

 서던 애톨의 26개 섬 중에 홈 섬(Home Island)과 웨스트 섬(West Island)에만 사람이 살고 있다. 주민들의 환대 때문에 관광객들은 도착 즉시 마치 섬 주민들과 한 식구가 된 듯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관광명소로는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서는 코코스 킬링 제도의 역사와 호주 역사상 최초의 승리 해전인 SMS 엠덴(SMS Emden) 침몰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맑고 깨끗한 인도양에 둘러싸인 이 제도는 수상 활동의 천국이다.

 디렉션 섬(Direction Island)은 빼놓지 말고 들려 보라. 아름다운 경치와 백사장 해변을 자랑하며 화려한 물고기들과 산호초와 리프상어들 사이에서 스노쿨링을 즐길 수 있다.

 게임 낚시를 좋아한다면 잡기 어려운 주홍삼치(dog-tooth tuna), 와후를 잡는 법을 주민들에게 물어보라. 수중 생물 촬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다이빙을 해서 수중의 비경을 직접 찍어도 된다. 가파른 벼랑을 따라 다이빙하거나 보기 드문 양배추 산호들을 둘러 보노라면 상어, 쥐가오리, 거북, 돌고래, 열대어들이 줄곧 주변을 따라 다닌다.

 코코스 킬링 제도는 전 세계에서 얼마 남지 않은 오염되지 않은 지상 낙원으로 생활도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시계를 멈추고 모든 일상의 짐과 근심을 벗어 버린 뒤 이곳으로 가보라.

 

 

 

※ 와인 산지로 유명한 호주 남부 애들레이드(Adelaide) 바로사 벨리(Barossa Valley)에 있는 '속삭이는 댐'

 이 댐이 '속삭이는 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댐 한쪽 편 끝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반대 편에 있는 사람의 말을 깨끗하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댐의 가로 길이가 144m나 되는 것을 감안하면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댐은 1899년 바로사 벨리 지역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댐의 높이 27m, 넓이 144m로 이 댐이 처음 지어졌을 때만 해도 이는 호주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댐이었다.

 

 댐의 공사를 맡았던 사람들도 공사가 끝난 뒤에야 댐의 벽을 통해 사람들이 서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댐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을 밝히기 위해 미국 과학협회는 이곳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조사 결과 이 댐의 두께가 얇은 것과 전체적인 형태가 포물선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소리를 잘 전달하는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댐을 조사한 미국의 과학자는 "이 댐이 소리를 잘 전달하는 원리는 포물선 효과"라며 "소리가 댐의 휘어진 모양을 따라 완벽하게 전달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댐은 댐을 설계한 사람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알려지면서 더욱 가치를 더하고 있다.

 이 댐의 설계자는 주정부 공무원이었던 알렉산더 몬그리프였다. 그는 공무원 생활을 해왔던 42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았을 정도로 일에 열성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댐의 공사가 시작된 1899년부터 완공될 때까지 2년 동안에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댐 곁에서 공사 현장을 관리했을 정도로 댐에 큰 애착을 보였다. 댐이 완공된 뒤에도 댐을 떠나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안정성을 관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 댐의 관리자로 일했다.

 

 

 

호주오픈테니스선수권대회(Australian Open)

 오스트레일리아 오픈(Australian Open)은 1905년 창설한 권위 있는 오픈테니스대회로, 테니스오스트레일리아가 주관한다. 전영오픈테니스선수권대회, 프랑스오픈테니스선수권대회, US오픈테니스선수권대회와 함께 4대 그랜드슬램대회에 속한다.

 

 오스트랄라시아선수권대회(Australasian Championships)로 창설하여 초기에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의 여러 도시에서 개최했고, 1922년에 호주선수권대회(Australian Championships)로 바뀌면서 여자경기도 추가했다.

 1969년 상금을 걸어, 프로선수도 출전할 수 있는 오픈대회로 바꾸었고 1972년부터 멜버른에서만 경기를 치른다.

 우승상금은 2018년 A$55,000,000(한화 약 472억원)

 2018년 우승한 로저 페더러는 400만 호주달러(약 34억3천200만원)를 받았다,

 

 매년 1월 빅토리아주(州) 멜버른 중심가에 있는 멜버른공원 안의 국립테니스센터에서 개최하며 남녀단식, 남녀복식, 혼합복식 외에 소년· 소녀· 장년 선수의 경기도 실시한다. 대회위원회의 추천받거나, 대회 전에 치르는 예선대회의 승자가 출전하는데, 2000년 대회에서는 남녀개인전 각각 128명 등 652명의 선수가 참가하였다.

 

 호주에서 개최되는 가장 큰 스포츠행사로, 4대 그랜드슬램대회 가운데 제일 늦게 창설되었으며 1년 중 가장 일찍 열려 한 해의 테니스계 판도를 예측할 수 있다. 미국·유럽과 멀어 세계적인 인기는 다른 대회에 비해 떨어지나 호주의 휴가시즌에 개최하여 축제분위기 속에서 치러진다. 매년 30만 명 이상의 관중과 세계 50여 개국 5억 명 이상의 시청자가 지켜본다.

 

 

 오스트레일리아 오픈(Australian Open) 또는 호주 오픈은 매년 1월 개최되는 세계 4대 그랜드 슬램 테니스 대회 중 하나이다. 그랜드 슬램 대회 중에서 연중 가장 일찍 열리며, 대회 장소는 빅토리아 주 멜버른에 있는 멜버른 파크이다. 1회 대회가 열린 1905년부터 1987년까지는 잔디 코트에서 진행되다가 1988년부터 하드 코트로 코트 재질을 바꾸면서 멜버른 파크로 장소를 옮겨왔다. 매츠 빌랜더는 이 대회가 잔디 코트에서 개최되었을 때와 하드 코트에서 개최되었을 때 둘다 우승한 유일한 선수이다.

 

 다른 그랜드 슬램 대회들과 마찬가지로 오스트레일리아 오픈은 남자 및 여자 단식과 남자 및 여자 복식, 혼합 복식, 그리고 주니어 및 시니어 경기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메인 코트인 로드 레이버 아레나(Rod Laver Arena)와 하이센스 아레나(Hisense Arena)는 우천이나 폭염 등 기상상황에 따라 조절이 가능한 개폐식 지붕을 갖추고 있다. 2008년에 이르기까지 실내 경기가 가능한 그랜드 슬램은 오스트레일리아 오픈이 유일했으며, 2009년부터는 윔블던도 센터코트에 개폐식 지붕을 설치했다. 한편 오스트레일리아의 여름시즌 한 가운데에 열리는 탓에 지독한 폭염으로 악명이 높은 오스트레일리아 오픈은, 선수 보호를 위해 경기 중에 기온 및 습도가 위험한 수준까지 상승하는 경우 ‘폭염시 특별 규정’(extreme heat policy)을 적용한다.

 

 매년 뛰어난 관중 동원력을 자랑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오픈은 2009년 대회에서 그랜드 슬램 사상 일일 주/야간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세웠다.(66,018명) 이러한 높은 인기 덕분에 오스트레일리아 오픈은 오스트레일리아 경제에 약 380만 파운드의 경제효과를 가져온다고 알려져 있다.

 

 2008년에는 코트 재질을 20년간 사용해온 리바운드 에이스에서 중간 정도의 바운드 속도에 쿠션층을 갖춘[4] 아크릴 재질의 플렉시쿠션으로 교체하였다. 이 새로운 코트 재질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정성이 높고 열에 의한 변형이 적다는 점으로, 이것은 표면의 최상층이 이전 재질보다 더 얇아졌기 때문에 생기는 효과이다. 이러한 코트 교체는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직전에 열리는 모든 리드업 대회(lead-up tournament)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한편 플렉시쿠션은 US 오픈에서 사용되고 있는 데코터프와 유사하다는 사실로 인해 도입 시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5년 대회에서는 남자 단식에서 노박 조코비치, 여자 단식에서 세리나 윌리엄스가 우승하였다.

 

 2017년 대회에서는 남자 단식 결승전에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이, 여자 단식 결승전에 비너스 윌리엄스와 세리나 윌리엄스가 진출하였다. 남자 단식에서 로저 페더러, 여자 단식에서 세리나 윌리엄스가 우승하였다.

 

 2018년 대회에서는 남자 단식에서 로저 페더러, 여자 단식에서 카롤리네 보즈니아키가 우승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 오픈은 옛 오스트레일리아 론 테니스 협회(Lawn Tennis Association of Australia)의 후신인 테니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주관한다. 제1회 대회는 1905년 멜버른 세인트킬더로드에 있는 웨어하우스맨스 크리켓 경기장(Warehouseman's Cricket Ground)에서 개최되었다. 이 경기장은 현재는 알버트 리저브 테니스 센터(Albert Reserve Tennis Centre)가 되었다.

 

 창설 당시의 대회명은 오스트레일레시아 선수권 대회였다. 그 후 1927년 오스트레일리아 선수권 대회로, 프로 선수의 참가가 허용되기 시작한 1969년부터 현재와 같은 오스트레일리아 오픈으로 대회명이 바뀌었다.[6] 1905년부터 한동안 대회는 오스트레일리아 5개 도시와 뉴질랜드 2개 도시를 순회하며 열렸다. 각 도시별 대회 유치 회수는 다음과 같다.

- 멜버른: 50회

- 시드니: 17회

- 애들레이드: 14회

- 브리즈번: 8회

- 퍼스: 3회

- 크라이스트처치: 1회 (1906년)

- 헤이스팅스: 1회 (1912년)

 

1972년부터는 개최 도시를 한 곳으로 고정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는데, 이에 따라 가장 많은 관중이 몰렸던 멜버른의 쿠용 론 테니스 클럽(Kooyong Lawn Tennis Club)이 유일한 대회 장소로 사용되게 되었다.

 

 대회의 성장으로 더 많은 관중 수용능력이 요구됨에 따라 기존의 쿠용 파크를 대체하는 멜버른 파크(과거의 Flinders Park)가 건립되어 1988년 대회부터 새로운 대회 장소로 사용되었다. 대회 장소의 이전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1988년 대회의 관중 수는 266,436명으로 예년에 비해 90% 증가하였다.

 

 1920년대에는 배를 이용해 유럽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동하는 데에 약 45일이 소요되었다. 이러한 타대륙과의 지리적인 거리로 인해 초기에는 타국 선수가 오스트레일리아 오픈에 참가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비행기를 이용해 오스트레일리아에 와 테니스 대회에 참가한 최초의 선수들은 1946년 데이비스 컵 경기를 위해 오스트레일리아를 찾은 미국 선수들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 내에서 조차도 장거리 이동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회가 퍼스에서 개최되었을 당시 빅토리아 주나 뉴사우스웨일스 주에서 온 선수들은 한 명도 없었는데, 이는 이 지역에서 퍼스까지의 거리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동서를 가로질러 3,000km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1906년 크리스트처치에서 대회가 열렸을 때에는 참가 선수가 10명이었고 그 중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선수는 2명 뿐이었으며, 우승자는 뉴질랜드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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